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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총동원주일설교1 (열린 문을 찾자!)|
결단예배
열린 문을 찾아라!
왕하 5:1-19
나아만장군은 아람나라에 아주 크고 존귀한 자였습니다.
그는 왕으로부터 총애를 받는 사람이요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어디 내 놓아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장군이며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이렇듯 훌륭한 명성과 신분에 어울리지도 않고 전혀 맞지도 않게 그에겐 불치병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문둥병환자였다고 성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겉으로 보면 나아만 장군처럼 그 위세가 대단하나 속으로 들어가 보면 문둥병 같은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이 세상엔 많습니다.
나아만장군의 모습은 오늘날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의 영혼의 상태를 말해줍니다.
지위와 학식과 겉치레로 가려놓아서 그렇지 사실 벗겨보면 그 속엔 문둥병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아만장군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었으니, 어떻게 해서든 그 병을 고쳐 보려고 나름대로는 온갖 노력을 다 했을 것입니다. 유명하다는 명의는 다 찾아보았을 것이고 또 좋다는 약은 다 써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아만장군의 병세는 점점 더 깊어갔을 것이고 몸뚱이는 점점 더 썩어져 들어갔을 것입니다.
원래 인간의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숨겨 놓으면 숨길수록 그 문제는 더 크게 번지기 마련입니다.
해결은커녕 나중엔 어떻게 손쓸 수도 없게 되서 두 손 두발 다 들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문둥병은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따로 격리되어 지내야 합니다.
나아만장군의 명성도 부귀도 다 잃을 수도 있는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이 나아만 장군의 집에는 이스라엘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온 계집아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계집아이는 나아만 장군 부인의 수종을 들고 있는 종이었는데 이 계집아이는 노예의 신분이면서도 매일 즐겁게 노래를 중얼거리고 힘든 일도 불평 없이 잘 해내었습니다. 그래서 나아만장군부인의 눈에 들어 장군부인을 수중 드는 계집종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계집아이가 우연히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계집아이는 나아만 장군이 불쌍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 큰 권력과 권세가 문둥병으로 인해 무색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계집종은 서서히 나아만 장군의 부인에게 일을 시작합니다.
“우리 이스라엘 나라에 선지자가 한 분 계신데. 그분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문둥병이 깨끗이 고칠 수 있습니다.” 라고 은근히 말을 던집니다.
나아만장군의 부인은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데 오죽 그 말이 솔깃했겠습니까? 그래서 계집종에게 자초지종을 자세히 듣고 나아만 장군에게 말합니다.
그야말로 밑져야 본전인데 계집종의 나라인 이스라엘에 있는 그 선지자에게 한번 다녀와 보라고 자꾸 조릅니다. 처음엔 하찮은 계집종의 말이라고 무시했던 나아만 장군도 부인의 권유도 있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이스라엘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물에 일곱 번 몸을 담그고 문둥병을 고침 받게 되었다는 것이 오늘 본문내용입니다.
성경엔 없는 이야기지만 나아만 장군이 병을 고침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나아만 장군의 병을 고친 일등 공신은 누굽니까? 바로 그 계집종이지요?
아마도 그 계집종은 노예의 신분을 벗고 나아만 장군의 딸과 같은 신분으로 바뀌였을겁니다. 나아만 장군에겐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는데 그 정도 대우야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닙니까?
오늘 저는 본문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에서 잡혀와 나아만 장군의 집에 노예로 있던 계집종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 첫째로 이 세상 무엇보다 존귀한 복음에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계집종이 포로 된 신분으로 나아만 장군에게 복음을 전할 때 정치학적으로 했겠습니까? 아니면 군사학 적으로 했겠습니까? 계집종은 아주 단순하게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 선지자에게 가자고 만 했던 것입니다.
1절 말씀에 말하기를 나아만 장군은 아람 나라에서는 크고 존귀한 자였다고 기록을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몸이 문둥병자로 썩어 가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게 하려고 하는 말씀일까요??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참으로 크고 존귀한 것은 복음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 말씀입니다. 복음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복음보다 더 큰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 복음을 전할 때 참으로 당당히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 16절에 이르기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 고 했습니다.
또 로마서 1: 17 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 라고 했습니다.
결국 우리가 믿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할 때 이 복음 자체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계집종이 내 처지가 이런데.. 내 형편이 이 모양인데. 하면서 자기를 비관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면 결코 나아만 장군에게 이스라엘의 선지자를 알려 줄 수 없었을 것이고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도 치료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계집종은 자신의 처지를 보지 않았습니다. 선지자를 통한 역사를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계집종이 가졌던 이 믿음이 필요합니다. 복음보다 더 크고 존귀한 것은 없습니다. 이 놀라운 복음을 우리가 가졌으니 이 또한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 복음을 전할 때 결코 내 자신이나 또 전하고자 하는 대상의 신분 여하나 또는 그들 마음의 강퍅함이나 완악함을 보지 말자는 것입니다.
왜냐면 복음의 능력은 다른 어떤 것보다 크고 존귀하기 때문입니다.
★ 두 번째로 생각해 볼 것은 복음의 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마다 복음을 받을 문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나아만 장군처럼 사람마다 숨겨 놓은 문둥병이 있다는 것입니다.
전도 대상자의 문둥병을 찾아내면 그 영혼은 거꾸러집니다. 여러분은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저 사람은 나보다 나은데.. 즉 학생이 선생님을 향하여 전도할 수 있을까? 라고 하는 것이라던가?
직원이 직장 상사를 향하여 전도가 될까... 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환자가 의사를 향해 저 사람은 나보다 나은데 내 말을 들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계집아이를 보세요, 계집아이의 지혜를 보세요, 계집아이는 나아만 장군의 계급장이나 지위를 보지 않았습니다. 계집아이는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을 보았던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겉으로 보면 대단하고 화려하고 잘나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속을 헤치고 보면 누구나가 마음속에 치명적 문둥병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질병일 수도 있고 사업에 대한 실패일 수도 있고 자식에 대한 고민일 수도 있고 우울증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고 바람난 남편이나 아내의 문제로 고민인 경우도 있을 것이고 무엇이든 인간의 맘속에 드러내 놓고 말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고통의 문제가 문둥병인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화려하고 위대해 보여도 누구나가 감추어 둔 문둥병이 있습니다.
이 문둥병은 기도하면 보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문입니다. 이 문을 찾으면 전도할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복음의 문이 있는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에겐 복음의 문은 그가 가지고 있는 문둥병이 바로 하나님이 열어 놓은 복음의 문이었습니다.
계집종은 비록 다른 나라에 잡혀 와 종이 된 처지였으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하나님이 열어 놓은 복음의 문을 찾기 위해 기도하던 중 계집종이 나아만 장군에게서 찾아낸 복음의 문을 보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계집종에게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습입니다.
어떤 보험회사 통계에 의하면 성인 남자가 사회생활 할 때에 이모저모로 알고 지내는 사람이 평균2,500명이 된다고 합니다.
그 2,500명중엔 매점 아줌마도 있고, 담배 가게 아저씨도 있고, 우체부 아저씨도 있고 오가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사람도 있고, 등등 사소하게 얼굴만 알고 지내는 모든 사람들을 말합니다.
여러분.. 이 사람들 모두가 구원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내 자신을 통해 구원받아야 할 대상인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 주여 이 영혼들을 내게 붙여 주세요.
★ 세 번째는 복음 전파를 할때 인내와 더불어 노래를 부르라는 것입니다.
계집종은 복음을 위해 노래하며 기도했습니다. 날마다 노래했다는 것은 매일 전했다는 것입니다. 진지하고 간절하게 노래했다는 것입니다.
처음엔 계집종의 말을 무시하던 나아만 장군도 계집종의 진지함에 또 매일 전하는 그 노력에 마음이 움직여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 전파는 인내가 필요하며 나아가서 반복해서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단코 한번 슬쩍 교회 가자고 찔러보고 거부 반응이 나온다고 포기하고 저 사람은 안 돼 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복음의 문은 있습니다. 그 복음의 문을 찾기 위해 기도하고 또 그 문이 보여 졌을 때 우리는 주저하지 말고 세상 무엇보다 강한 힘을 지닌 복음을 바로 즉시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복음을 전할 때 믿음과 끈기로 전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주변에 있는 2500명의 사람에게 제사장의 사명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구원받는 큰 일이 여러분을 통해 일어나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7주 연속 총동원 주일 동안 나아만 장군의 계집종이 되길 바랍니다.
이 일은 그 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도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이 전도자의 일을 결단코 그냥 보시지 않습니다.
이 계집종을 보세요. 이 계집종이 자신의 힘으로 노예의 신분을 바꿀 수 있었겠습니까?
계집아이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생명을 걸었을 때 역사가 일어나고 자신의 신분이 바뀌어 지는 일도 일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등불을 등경 위에 두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등경위에 올라가있는 등불의 영광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힘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올려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올리십니까? 바로 복음의 길에 서 있는 자입니다.
여러분 모두 7주간 연속 총동원 주일 동안 이 계집아이처럼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계집아이에게 주셨던 그 축복을 여러분에게도 그대로 주실 것입니다.
주변에 안 믿는 사람들의 명단을 쓰고 기도하기 시작하세요. 전도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나머지는 다 해 주십니다.
전도해서 한 영혼 구원시키는 기쁨은 아주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계집종처럼 복음을 위하여 열린 문을 보여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7주 연속 총동원 주일에 모두 꼭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결단의 기도 - 통성으로
성도의 교제 - 이 시대의 계집아이가 됩시다. 하나님은 예비하고 계십니다.
2.7주총동원주일설교2 (만남)| -목사님설교-
만남
이사야 55장 6절~9절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 할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9,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리라.
사람은 이 세상을 살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며 삽니다.
그런데 사람이 이 세상 살면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삶의 색깔이 달라지 게 되는데
그것이 축복이 되기도 하고 저주가 되기도 합니다.
좋은 사람 내게 유익이 되는 사람을 만나면 축복의 길이 되기도 하고 나쁜 사람 해가 되는 사람을 만나면 사기를 당할 수도 있고 평생 고생하며 살 수도 있고 심지어 한번 잘못된 만남으로 목숨까지 잃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좋은 만남의 축복이 있길 바랍니다.
그런데 사람이 한 인생 살면서 몇 가지 반드시 만나는 만남이 있는데 오늘 그것을 통해
어떤 만남이 축복된 만남인지 한번 살펴보려고 합니다.
★ 첫 번째로 부모와의 만남이 있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 모두 부모님이 계셔서 이 땅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람은 엄마와의 만남이 중요한데 어릴 때 성격 형성의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거의
엄마가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나는 부모님 잘 만났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두 손 들고 아멘 합시다.
여러분 여기 몇 분은 아멘 안하시는데 제 말을 한번 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예) 몇 년 전 경상도 마산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이 신문에 났는데요. 어떤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아마도 무척 가난하고 힘들게 살았었나 봅니다.
그래서 이 아버지가 자식 앞으로 보험을 들어 놓고 밤에 잠자는 자식에게 몰래 가서
자식의 손가락을 잘라 버렸어요. 여러분 그 기사 기억나십니까?
왜~ 자식 앞으로 나오는 보험금을 타 먹으려고요. 강도가 들어서 자식의 손가락을 잘랐다고 거짓말을 해서 보험금을 타 먹으려고 그랬던 겁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어디서 데려온 양자도 아니고 친아들인데... 경찰이 이제 수사를 하겠지요? 아이한테 정말 강도가 들었냐? 물어보니 아이는 횡설수설합니다.
강도가 어떻게 생겼느냐 ? 그려봐라.. 하니 잘 모르겠다고 하고 강도가 어떻게 들어왔느냐? 창문으로 들어왔느냐? 방문으로 들어왔느냐? 물으니 또 대답을 잘 못합니다.
애들은 원래 거짓말 길게 못해요~
그런데 경찰이 자세히 조사해 보니 어린애 앞으로 수억의 보험이 들어 있거든요
어린애 앞으로 보험이 많이 들어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이지요.
결국 아버지가 그랬다는 사실을 알고 아버지를 잡아갔어요.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은 절대 아이들 손가락 자르지 마십시오.
그런데 이 자식을 보십시오. 이 아들은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고 경찰에 잡혀간 아버지를 위해 아버지 풀어 달라고 법원에 탄원서를 냈습니다.
눈물로 쓴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결국 판사가 아들의 효심에 감동해서 그 아버지를 풀어 주었습니다. 판사가 뭐라고 했느냐?
“당신의 죄를 봐선 풀어 주면 안 되지만 당신을 풀어 주지 않으면 당신 아들이 또 한번 피해를 입게 되니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풀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부모님이 여러분 손가락 자르지 않았지요? 그러면 부모님 잘 만난 거지 뭘 더 바라겠습니까? 부모님에게 손가락 잘리지 않은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모두 부모님 잘 만난 겁니다.
어떤 사람은 부모님 잘 만났느냐 하고 물어보면 자기는 부모님 잘 못 만났다고 해요
왜 그러냐하고 물어보니 자기 부모님이 자기에겐 유산을 물려주지 않아서 잘 못 만났다고
하는데... 여러분 저도 우리 부모님이 유산 물려 준거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도 전 부모님 잘 만났어요.
왜 내가 이 땅에 태어날 수 있게 해 주시고 이렇게 목회자로 만들어 주신 것만도 감사하지 뭘 더 바라겠어요?
여러분 옆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부모님 잘 만났습니까?
부모님이 계셨기에 여러분이 모두 이 축복된 자리에 앉아 계실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부모님이 계셨기에 여러분과 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부모님이 살아 계신 분은 부모님이 계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일입니다.
부모님이 잘났건 못났건 오늘날 내가 있기까지의 모든 공로는 하나님 다음으로 부모님입니다. 여러분 어디 이 말씀에 동의하십니까? 동의하시면 아멘 합시다.
여러분과 저는 모두 하나님 다음으로 부모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그런 뜻에서. 어버이날은 아니지만 보모님 은혜 감사하는 맘으로 한번 불러 봅시다.
어버이 노래 부릅시다.
★ 두 번째로 형제와의 만남이 있습니다.
요즘은 한 자녀도 많이 있어서 형제간이 없는 아이들이 간혹 있지만 형제가 없다는 것은
오히려 불행한 일입니다. 형제간도 잘 만나는 것도 큰 축복입니다.
이것도 한번 옆 사람에게 물어 보세요? 형제 잘 만났습니까?
이렇게 우애가 좋은 형제간이라면 더할 나위 없지만..
여러분 형제가 나한테 돈 꾸러 오지 않으면 그나마도 형제간 잘 만난 것입니다.
요즘 형제간에도 사기 당하는 사람 많아요. 여러분은 형제간에 사기 당하지는 않았지요?
여러분 나한테 돈 꾸러 오지 않으면 잘 만난 거예요.
그런데 형제 때문에 일생 고통당하는 사람도 있어요. 신생아일 때 엄마가 시장 간 새에 누나나 형이 새로 태어난 동생한테 부모의 사랑을 빼앗긴 것이 분해서 엄마 몰래 동생 눈 찔러서 실명하는 아이도 있어요.
여러분은 그런 형제 없이 지금까지 무사하시죠? 그러니 형제간 잘 만난줄 아시기 바랍니다.
★ 세 번째는 이제 유치원에 입학하면서부터 친구와 선생님을 만나게 되는데 이 친구의 영향 선생님의 영향도 무척 큽니다.
여러분 유치원서 친구 잘 못 만나서 얼굴에 손톱자국이 평생 남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친구 안 만나면 친구 잘 만난 겁니다.
특별히 중, 고등학교 때 친구 잘 만나는 거 정말 중요합니다. 최근 중, 고등학교서 일진회 사건으로 떠들썩하지요? 중, 고등학교 때 친구 한번 잘못 만나서 평생을 고통 속으로 빠지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친구들이 우리 애들 옆에 없다는 것이 정말 다행입니다. 여기 자녀들 가지고 계신 부모님들 많이 계시지요? 지금부터 기도하세요.
자녀들이 자라면서 친구 잘 만나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친구 만나는 거 내 힘으로 맘대로 정해 줄 수 있습니까? 학년이 바뀌어서 새 친구 만나고 보니 옆에 있는 애가 일진회야. 이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우리 자녀들 친구 잘 만나게 되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 이유 없이 애들에게 스트레스 풀고 애들을 때리는 선생님들도 많습니다.
또 전교조에 있는 선생이 아이들에게 은근히 공산주의 사상 물들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아이들이 그나마 순수하게 공부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합시다.
★ 네 번째는 인생 최대의 만남의 사건입니다.
이것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계획되어진 만남 같습니다. 그것은 부부와의 만남입니다.
부모님과는 겨우 20여년 함께할 뿐이지만 그 남은 인생은 부부와 함께합니다.
여러분 부부간에 잘 만나야 합니다.
그럼 어디 한번 조사해 봅시다. 여러분 나는 배우자를 참 잘 만났습니까?
여러분 나는 다시 태어나도 지금 배우자랑 다시 결혼하겠습니까?
예화) 옛날에 서새원이 사회 보던 장수 만세 프로그램에서 사회자가 여러분 나는 다시 태어나도 지금 배우자랑 다시 결혼하겠습니까? 하고 질문을 했더니 한명도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할머니가 손을 들길래 사회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할머니 다시 태어나도 지금 할아버지와 다시 결혼하시겠어요?” 그랬더니 할머니께서 뭐라고 대답하셨는지 아십니까?
그 할머니께서 “내가 지금까지 길들인 공이 얼마인데 또 다른 사람하고 결혼하라고?” 라고 하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배우자가 지금 옆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잘 만난 것입니다.
잘난 사람이던 못난 사람이던 내가 선택한 배우자가 지금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선택하셔서 조금 아쉽고 미흡하다고 생각되는 부부간은 서로가 배우자를 위해 좋은 만남이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이제는 돌이킬 수도 없고 물릴 수도 없는 것이니까 앞으로 좋은 만남이 되어지게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지금 처녀 총각들 학생들은 미리부터 배우자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배우자와의 만남은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너무나 중요한 만남이기에 기도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는 만남을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 밖에도 많은 만남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일터에서 사람 잘 만나는 것도 큰 축복인 줄 압니다. 여러분에게 살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좋은 만남으로 연결되길 축복합니다.
자 그런데.... 사람의 모든 만남이 사람이 계획하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 뒤에서 작용하는 것입니다.
누가 강도 만나고 싶어서 만나는 게 아닙니다. 누가 사기꾼 만나고 싶어서 만나는 게 아닙니다. 누가 도둑놈 만나고 싶어서 만나는 게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만남에 재수가 좋았다느니 없다느니 하거나 인연이 좋다느니 나쁘다 거니 하거나 운수가 있다고 하거나 없다고 하는 것으로 돌립니다.
그러나 인간의 만남에 특별히 우리 믿는 사람들의 만남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개입하시고 계십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좋은 만남을 이루도록 소원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좋은 만남을 원하시지요? 그러나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 하나 부모 형제를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마음대로 선택하는 사람 있습니까?
내가 태어나고 보니 그런 것인데....
또 좋은 배우자 고르고 고른다고 아무리 골라 봐도 배우자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선택하기가
어려운 법입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오늘 밤에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강도라면 어찌되겠습니까?
이처럼 우연한 만남 속에도 인간의 계획이나 노력으로 되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좋은 만남은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지금까지 인생 속에 이런 만남이 한번은 있을 것입니다. 난 이런 만남은 정말 아주 잘 만난 만남이다.
난 이 사람을 만나서 정말 행복하고 기쁘다 이 사람 안 만났으면 나 어쩔 뻔 했을까? 하는
그런 만남이 다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시지요?
지금 옆 사람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 당신에게는 누가 가장 좋은 만남이었습니까?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 한번 물어보세요?
또 반대로 한번 해 보세요, 내 이 사람만 안 만났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이런 악역을 준 만남이 무엇입니까?
이 사람 만나서 내 인생이 이렇게 잘못되고 어긋났다 하는 그런 만남 있으시지요?
옆 사람에게 또 한번 물어보세요?
“당신에게 가장 어려운 만남은 무엇입니까? 가장 불행한 만남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이런 상처받는 만남을 자녀들은 격지 않게 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나간 것은 이제 어쩔 수 없어요 이미 지나간 만남은 어쩔 수 없고 지나간 상처는 앞으로 복이 되게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맘속에 상처받은 모든 만남은 예수님의 보혈로 다 씻어지기 바라고 앞으로의 만남이 여러분에게 복이 되기 바랍니다.
특별히 이제 믿는 성도들은 목회자를 잘 만나야 합니다. 양떼는 목자를 잘 만나야 좋은 풀을 먹고 시원한 생수를 마실 수 있습니다. 좋은 풀이 무엇인지 좋은 물을 주는 시냇물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목자를 만난 양떼는 불행합니다. 살이 찔 수 없습니다.
믿는 성도들이 삯군 목사를 만나거나 이단 사이비 교주를 만난다면 어찌되겠습니까?
여러분들의 평생 일군 삶의 터전을 헌금하라고 강요하고 사기 쳐서 빼앗고 그러면서도 그것이 축복인 양 가장한 채 지옥으로 이끌고 가는 목사를 만났다면 어찌되겠습니까?
여러분은 저와 만난 것을 감사히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저와 좋은 만남을 이루어 가십시다.
좋은 목사님 만나면 하나님 깊이 알고 신앙이 자랍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의 만남을 감사히 여깁시다. ( 아멘)
이렇게 우리 삶이 다 좋은 만남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다 나쁜 만남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만남은 유익이 되어 행복하게 될 수도 있고 어떤 만남은 불행이 되어 힘들고 고난을
받게 할 수도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인간이 이 땅에 살면서 수없는 만남을 갖게 되는데 이제 저는 여러분께 인생 최고의 한 만남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이 자리는 여러분과 목사인 제가 만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이 자리는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사람이 인생 속에서의 만남에 별로 안 좋은 부모님을 만났어도 매번 돈만 꾸어 달라는 형제가 있어도 내 돈 떼어먹고 사기 치는 친구를 만났어도 날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직장 동료가 있어도 이 모든 만남 속에서 내가 아쉽고 손해 본 모든 상처가 있어도 하나님 한분 잘 만나면 이 모든 상처들이 싹 씻어질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한번 잘 만나면 모든 잘못된 만남에 대해서 보응 받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아쉬운 만남에서 한 사건으로 회복되어지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만남으로 해결됩니다.
반대로 난 부모 잘 만나고 형제 잘 만나고 세상사는 동안 승승장구 모든 만남에 홈런을 쳤다 할지라도 하나님 만나지 못하면 그 모든 만남이 헛된 것이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 자리에 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잘 만나시므로 사람과의 만남에서 받은 모든 상처와 아픔을 싹 씻으시고 회복하는 축복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또 여러분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만난 그 어떤 좋은 만남을 다 합쳐도 하나님 만난 거 그 한 사건만도 못한 것입니다.
찬양 -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또는 “세상에서 방황할 때”
사람의 만남에 대한 최고의 축복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우리 인생의 모든 만남을 다 합한 것 보다 더 중요하며 그 모든 것을
뛰어 넘는 만남입니다.
우리가 한번 살아가는 인생 속에서 꼭 만나야 할 예수를 만나지 못하면 그것은 비극인 것입니다. 왜냐면 인생은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의 삶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만남에서 다 실패했을지라도 예수님 한번 잘 만나면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부모님 다 죽고 형제가 없어도 친구가 사기꾼이었다거나 배우자를 만남에 있어 실패했다.
하더라도 다 괜찮습니다. 이 모든 만남은 단 한 사건으로 보상받는데 그것이 예수와의 만남인 것입니다. 예수님 만나면 다 회복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처음 오신 분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는 위대한 자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자리가 여러분에게 예수님 만나는 자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통성기도 - 말씀 붙잡고
새 신자 환영 - 인도자와 함께 일어서서 영접 기도
주 예수님, 나는 세상에 여러 만남 속에 나도 상처를 많이 받았고 또 남에게도 많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말 오늘 주신 말씀대로 부모와 형제와 친구와 부부 사이에 너무도 아쉬움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오늘 나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나도 예수님을 만나 그 모든 아쉬움을 씻음 받기를 원합니다.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모든 말씀 날 구원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3.7주총동원주일설교3 (살아 계신 하나님)| -목사님설교-
살아 계신 하나님
로마서1장18절-25절, (시편53:1)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뀌었느니라.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25,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할렐루야 !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물론 교회 다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옛날부터 이 세상 우주 만물을 통하여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데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어떻게 아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말할 때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보이지도 않는데 하나님이 살아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
그러나 이 세상에는 사람이 눈으로 보고 확인한 것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보지 못했어도 존재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기 조상에 대하여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태어나기 전에 친 할아버지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손들어 보십시오.
할아버지 본 적 있는 사람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저도 보지 못 했습니다.
또 증조할아버지 본적 있다. 하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여러분 증조할아버지 위에 고조할아버지를 본 사람 손들어 보세요. 없지요? 손드는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여러분 고조할아버지 못 봤다고 여러분에게 고조할아버지가 없습니까?
고조할아버지 위에는 고 고조할아버지 고 고조할아버지 위에는 무엇일까요.
고 고 고조할아버지요. 계속 올라가면 조상이 있습니다.
그 조상의 무덤이 지금은 없어도 우리는 조상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여러분의 100대 할아버지가 있다는 증거는 바로 여러분 자신이 지금 존재 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조상이 있었기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조상을 못 보았다고 여러분의 조상이 없습니까?
고 고조할아버지를 나는 못 보았어도 그 조상이 있다는 증거가 바로 나입니다.
하나님이 안 보인다고 하나님이 없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은 자연 현상 속에 하나님을 알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교회 처음 오신 분은 인생 최고의 경험인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스스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여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알 수 있느냐~
1) 첫째 우주와 자연을 보면 압니다.
이 세상 모든 자연과 우주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장 오늘 읽은 성경에 보면 19절 20절을 읽습니다.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다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20절에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그 만드신 만물 즉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과 우주를 보면 알 수 있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손을 들면 그림자가 나타납니다. 그림자는 이 손에 대한 반사작용입니다.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그 실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림자를 본 사람은 그림자를 만들어 사람의 손의 실체가 있음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자연 속에 하나님의 흔적인 그림자를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연과 우주는 하나님의 흔적이며 그림자인 것입니다.
우주가 아주 신비합니다. 우주의 신비함을 보세요. 저녁에 별 한번 보십시오. 별이 사람의 눈 속에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걸리느냐? 제가 이 말씀을 드릴 때 여러분에게 영적 지각이 살아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속도가 있습니다. 비행기가 속도가 있지요? 비행기 날아가는 시간, 속도가 있습니다. 미국까지 10시간이 넘게 가야 합니다.
소리에도 속도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소리의 속도는 초당 340m라고 합니다.
이 소리가 1초 동안 가는 거리를 마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소리 보다 더 빠른 것이 있습니다. 빛입니다. 빛의 속도는 1초에 몇 m 가느냐. 째깍하는 동안 지구를 쉬~ 돌았다는 겁니다. 빛은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돕니다.
빨라요 늦어요? 빛의 속도로 한 시간을 간다는 것은 아주 대단한 일입니다.
빛의 속도로 미국 가는 것은 1초도 안 걸립니다.
빛의 속도로 한달을 간다면 엄청난 거리이고 빛의 속도로 1년 간다면 상상도 못할 거리입니다. 빛의 속도로 1년을 가는 것을 1광년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저녁에 보는 별을 보면 그 별의 빛이 발생하여 출발하여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은 몇 년이 걸리느냐? 이 이야기를 들으면 충격 받는 표정이라도 지어야 합니다. 빛이 여기서 생겨서 지구까지 오는 거리가 50억년입니다. 놀란 사람은 알아들었고 못 놀란 사람은 아직 감이 잡히지 않는 것입니까? 50억년입니다.
오늘 밤에 별을 보고 충격을 받아야 합니다. 별 빛이 우리 눈에 들어오기까지 50억년이 걸려서 내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새롭게 우리 눈에 보이는 별은 빛이 출발하여 새롭게 발견된 것입니다.
지구와 별의 거리는 멀어요? 가까워요? 우주의 넓이가 이게 다가 아니에요. 별과별의 거리는 150억 광년입니다. 이것도 다가 아닙니다. 이것은 미국의 허물 망원경으로 관측된 것만 그렇다는 것인데 이 우주엔 이 세상에서 제일 크고 멀리까지 관측된다는 허블 망원경으로도 볼 수 없는 또 다른 은하계가 수없이 많다는 것입니다.
우주에는 지구보다 1천배 큰 별이 태평양 모래알 숫자보다 더 많이 있습니다.
지구가 동그랗게 생겼지요. 이 우주 가운데 몇 개가 있느냐? 지금까지 발견된 별들을 대략 헤아려 봤더니 그 지구보다 1천배 큰 별을 아담으로부터 지금까지 이 지구상에 살았던
인간의 숫자를 다 모아서 컴퓨터로 나누어 보았더니 한 사람당 5조개씩 돌아간답니다.
야아~~~~ (감탄사 )
이러한 우주 안에 지구에 한 모퉁이에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이런 위성들이 서로와 서로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공전과 자전을 통하여 운행되고 있습니다.
스스로 한 바퀴 도는 것을 자전이라 합니다. 정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지구로부터 태양에 조금만 가까이 가면 인간은 모두 통닭 됩니다. 태양이 10센지만 가까워지면 지구는 불덩어리로 변해 버립니다. 지구와 태양이 조금만 멀어지면 우리는 다 얼어 죽습니다. 10센지만 멀어지면 지구는 얼음 덩어리로 변해 버립니다.
그림자를 보면 그림자의 실체가 있는 것처럼 지구가 있는 것 보면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것이 우연히 되겠습니까? 이것이 하나님 없이 가능하겠느냐고 나는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책을 사면 책을 쓴 저자가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도 책을 쓴 저자를 모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구에 살면서 지구를 만드신 분을 알아야 합니다. 우주 말고 지구 하나만 생각해도 얼마나 신기합니까? 나무 풀 꽃 한 두 가지입니까? 지구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생물 현상이 얼마나 신비롭습니까?
여러분들에게 일어나는 인체의 신비도 얼마나 신기합니까? 지구 자체도 신비의 자체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증거가 우주입니다. 내가 있었다는 것이 조상이 있었다는 증거인 것처럼 이 세상과 우주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 살아 계신다고 선포하는 사람을 비웃지 말고 여러분도 함께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따라 합시다. -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
이런 곳에 살아도 하나님이 살아 계신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모른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어리석은 판단입니다.
집에 텔레비전이 있습니다. 어떤 집은 TV가 고장 나서 어떤 화면은 안나 와요
화면이 안 잡히는 집은 안테나가 망가진 거예요 안테나가 고장 나서 그 방송을 못 잡는 거예요. 자기 집의 TV 화면이 안 나온다고 방송국 전파가 없는 것입니까?
방송국에서 아무리 좋고 재미있는 방송을 만들어서 보내 줘도 안테나가 망가진 집은 그 방송 볼 수 없어요 방송 못 본다고 방송 전파가 없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내 눈에 하나님이 안 보인다고 해서 하나님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온 여러분들은 영적 안테나를 세우기 비랍니다.
영적 안테나가 연결되지 않으면 그 사람 속에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자기 TV가 고장 났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안테나를 세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텔레비전 화면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못 찾는 사람은 고장 난 텔레비전과 같은 사람입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 모두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면 우리가 이 세상이 어디서 생깁니까?
어떤 사람은 원숭이가 사람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인간이 원숭이라고 말하는 것이 진화론인데 진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이렇습니다. 원숭이 전에는 무엇입니까? 오랑우탄입니다.
보르네오섬에 있는 오랑우탄이라는데 그것은 파충류에서 나왔고 또 그것은 맨 처음 아메바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진화론의 시작은 아메바라는 균인데 아메바는 단백질입니다. 단백질인 아메바는 어디서 나왔느냐고 물으면 우주에서 떠돌아다니던 가스끼리 충돌해서 다시 말하면 그 우주 폭발을 빅뱅이라고 하는데 아메바가 그 대 우주 폭발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럼 그때 폭발을 일으킨 가스가 어떻게 생겼느냐? 라고 물으면 몰라 입니다. 복잡한 과정에서는 몰라. 라고 말합니다.
아니~~ 처음부터 모른다고 할 대답을 뭐 하러 그렇게 복잡하게 몰라 라고 합니까?
그들에겐 몰라가 정답입니다.
안다고 하면 원숭이로부터 나왔다. 이런 말을 하는데 이건 완전히 거짓말입니다.
왜 거짓말이냐. 이미 예전에 이것을 실험한 사람들이 있어요.
일본 사람들이 아주 나쁜 사람들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독종입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생체 실험으로 별짓 다 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세계대전을 일으켜서 군사가 모자라니까 어떻게 해서든 군대를 많이 만들어 볼 생각으로 원숭이와 사람을 교배시켜서 원숭이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어떤 생명체를 만들어서 대신 군사로 만들어 보려고 이런 실험을 했다는 것입니다.
사람 남자의 정액을 암컷 원숭이에게 넣으면 중간 인생이 나올 것이니 그 중간 인생을 군인으로 만들어 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해 보아도 안 됩니다. 이 남자 저 남자 바꿔 가면서 다 해 보아도 안 되는데
그 때는 지금처럼 과학이 발달하지 않아서 그것이 왜 그런지 이유를 몰랐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생명공학이 발달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지요.
왜 안됐는지 그 이유는 이와 같습니다. 원숭이의 염색체와 인간의 염색체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원숭이 염색체가 공부시킨다고 바뀝니까? 안 바뀝니다.
원숭이의 DNA와 사람의 DNA는 다르기 때문에 섞여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원숭이 속에 있는 염색체는 안 바뀝니다. 사람의 DNA도도 안 바뀝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원숭이는 원숭이로 사람은 사람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원숭이는 원숭이로 사람은 사람으로 딱 찍어서
내보냈다는 것입니다.
찬양 -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송합시다.
그러므로 원숭이가 사람이 되었다는 야만인 같은 소리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만약에 원숭이가 사람이 되었다면 동물원에 가서 원숭이 가지고 새우깡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됩니다. 원숭이가 인간의 조상인데 동물원에서 새우깡 던지며 장난치면 되겠어요? 아이고 조상님 그렇게 갇혀 계시느라 고생하십니다. 하면서 예의를 깍듯이 갖추어야지요. 사람들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해서 되겠습니까?
만일 원숭이가 사람으로 진화한 것이라면 원숭이가 사람이 되는 것은 두 가지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인간끼리 결혼해서 사람이 태어나고 또 한 가지는 원숭이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원숭이가 사람이 되면 지금도 아프리카 정글에서 원숭이가 사람이 되어 내려왔다고 방송국에서 생방송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이런 허황된 이론에 머물 때가 아닙니다.
인간과 우주와 자연은 하나님이 만드셨다 믿으십니까? 이것이 정답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제 1 증거가 우주와 자연입니다. 비단 이것뿐만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있는 자연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자연이 얼마나 신비하고 아름답습니까? 인간의 신체가 얼마나 신비하고 오묘합니까?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2) 두 번째로 하나님이 살아 계신 증거는 무엇이냐?
하나님을 믿던지 안 믿던지 인간은 신을 그리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속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입니다.
사람은 예수를 믿던 안 믿던 신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이 어디 있느냐? 지옥이 어디 있느냐?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제사를 지냅니다. 신이 없다고 하는데 산길을 가다가 이상하게 생긴 나무를 보면 그 앞에서 절을 합니다. 기묘하게 생긴 바위 앞에서 절을 합니다.
신이 없다면서 왜 통나무 앞에 절을 합니까? 왜 바위에게 절은 합니까?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 인간보다 능력이 많은 그 무엇인가를 그리워 한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이 무언가를 그리워 할 때는 그 그리움의 대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배고프다고 느끼는 것은 무언가 먹을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춘기가 되면서부터 이성을 그리워하는 것은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사랑할 대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맞지요?
고향을 떠난 사람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고향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고향이 있기 때문에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을 찾아갑니다.
고향을 떠난 사람이 고향을 그리워하듯, 사람이 마음이 무언가를 그리워 할 때엔
그 그리움의 대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언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리워 할 대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 속에 신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아시아에도 아프리카에도 유럽에도 다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신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사람을 보세요. 죽으면 그만이지 죽어 봐야 알지하는 사람도 부모님 죽으면 제사 지내요
사후 세계를 인정하는 것이고 영원을 그리워 한다는 마음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거짓말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 마음속에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이 틀림없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이 없어 라고 말을 해도 그것은 거짓말이고 마음속에 무엇인가 허우적거리는 마음이 사람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종교를 만들게 된 이유입니다. 이 지구상에 종교 없이 종교 행위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무신론자들은 그 무신론이 그들의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영원을 그리워하고 종교를 만드는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찬양 - 살아 계신 주 찬양합니다.
3) 세 번째로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 합니다.
성경이야 하나님 책인데 그럼 성경이 하나님 있다 하지 없다 하겠느냐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 알기를 우습게 아는데 여러분 성경이 그리 만만한 책이 아닙니다. 여러분 성경은 인류역사를 주도해 온 책입니다
성경은 절대 거짓말하는 법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경 속에서 거짓말을 한번 찾아내 보려고 성경의 허점을 한번 찾아보려고 연구를 했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성경에 속아서 교회에 다니지요.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요.
그래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이 성경으로부터 구원해 주어야겠다고 성경을 비판하고 성경을 거짓말 책이라고 말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근대에 70여 년 동안 공산주의자들의 제 1의 적이 성경 이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중국과 구소련이 지난 70여 년 동안 성경의 거짓말을 잡아 보려고 그토록 연구했으나 아직도 성경의 거짓말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분야에는 권위가 있습니다.
학생이 학교 가면 선생님의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학생이 선생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면 어찌 됩니까? 큰일 나지요~
그렇다면 영적 세계에도 성경의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권위는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나 대단한 것입니다.
성경은 신비한 책입니다. 성경은 인간들에게 가장 많이 읽혀진 책입니다.
인류 역사상 성경만큼 많이 찍어낸 책이 있습니까?
뭔가 이 책에 의미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지 않겠습니까? 또 성경은 이 세상 역사상 가장 많이 발간된 책이고 또 가장 많은 나라 말로 번역된 책입니다.
여러분 서점에 가보면 베스트셀러라고 있지요?
매달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읽혀진 책을 선정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읽도록 보여주는 것이
베스트셀러 아닙니까? 그런데 여러분 성경이 베스트셀러에 올라가는 거 봤습니까?
출판 업계 사람들이 절대로 성경을 베스트셀러에 올리지 않습니다.
왜냐~ 성경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리면 영원히 성경만 베스트셀러예요.~~~
그들이 만든 책은 성경 때문에 팔리지 못하고 말아요. 세상 사람들도 성경은 따로 분류할 줄 압니다. 성경은 세상 적인 지식이나 이야기하고는 다르다는 것을 그들이 인정하는 것입니다.
일반 사회에서도 성경을 읽어 보지 않는 사람은 지성인이라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경 자체의 신비함을 보십시오. 수 십 명이 수 천 년 동안 썼지만 성경은 성경과 충돌하는 법이 없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각 분야에서 성경을 인용합니다.
한 나라를 말할 때 보통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을 통해 말하는 것이 상식인데
한번 보십시오. 근대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았다는 조지 와싱턴 어디서 나왔습니까?
그의 사상은 바로 성경입니다.
미국의 정치를 한차원 높여 놓았다는 아브라함 링컨~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치.. 그 유명한 슬러건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바로 성경 아닙니까? 경제를 보자면 성경 들어간 나라는 잘 살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 있는 가정은 잘 살게 되어 있습니다 북한과 남한의 차이가 무언지 아십니까?
독재요? 솔직히 박정희 때 남한도 반독재 했었잖아요? 땅 덩어리요? 북한이나 남한이나 땅 덩어리 크기는 비슷해요 그런데도 지금 북한과 남한의 경제 차이가 왜 이리 크게 나느냐 북한에는 성경 없습니다. 남한에는 있어요. 바로 이 차이입니다. 다른 것 없어요.
6.25때 인천 상륙 작전을 주도했던 맥아더 그 맥아더는 비록 담배 파이프를 입에 물고라도 매일 하루에 한 장씩 성경을 읽었다는 것 아닙니까. 교육이요? 우리나라 교육은 성경 배우기 하면 살아날 줄로 믿습니다.
성경은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거짓말하지 않는 권위가 있습니다. 성경은 객관적인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권위 있는 성경이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로 종합해 보아도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사람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 상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나오신 우리 새 성도들은 꼭 하나님을 만나시고 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여 여러분 정말로 사람으로 태어나서 최고의 기쁨을 한번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4) 네 번째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먼저 경험한 사람들을 통하여 증거 합니다.
이 지구상에 많은 사람들 중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증거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 중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나보다 지식이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모두 정신병자여서 하나님을 증거 하겠습니까?
그들 중엔 천국을 경험한 사람도 있고 암이나 불치병에 걸렸다가 고침 받은 사람들도 있고 지금도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한 사람들이 지구상에는 꽉 찼습니다.
정신병자가 아닌 정상인이 사람들이 하나님이 살아 계십니다. 이렇게 말할 땐 정상적으로 받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지식이 부족한 사람뿐 아니라 자타가 공인하는 올바르고 사회적 지위와 권위가 있는 사람들도 그 경험담을 서슴없이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만도 앞서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증거 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이 자리에 오늘 교회에 처음 나오신 분이 있으시지요? 친구 손에 친척 손에 이끌려서 나오신 분도 있으시지요?
한번만 교회 나가자고 이끌어서 정에 못 이겨 나오신 분이실지라도 어떤 이유로 이 자리에 오셨던지 그 분들의 증거를 믿으시고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4.7주총동원주일설교4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다)| -목사님설교-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다
로마서 3 : 10-18
10,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할렐루야! 오늘 이 시간 다같이 합심으로 기도하실 때, 특별히 오늘 처음 교회 나오신 분들을 위하여 기도 해 주시고, 처음에 교회 나오신 분들이 다 하나님을 만나서 꼭 죄용서 받고, 구원받고,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다 같이 합심으로 기도합시다.
* 기도 -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죄와 허물로 죽어서 영원히 우리는 영원한 형벌 심판을 받아 지옥가야 마땅한 저희들을 사랑하여 주셔서 하나님 자녀를 삼아 주시고, 모든 죄악을 용서받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오늘도 예배 가운데 나와 하나님을 경배하며 예배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사옴을 감사합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이 한 시간을 축복하여 주시고, 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저희들 큰 은혜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병든 육체를 가지고 나온 자들은 씻음 받게 하여 주시고, 눌린 자는 자유 함을 얻게 하여 주시옵시고, 인생에 답답한 모든 무거운 죄짐 무거운 짐들을 다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예수님과 상의하며 주님과 함께 의논하다가 큰 하늘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우리 옆에 좌우에 다 같이 악수합시다. -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시작....
앞뒤로 한번 하십시다. -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시작.... -아멘-
오늘 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러 나오신 우리 모든 성도들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읽은 성경 말씀을 본문으로 삼고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상고하겠습니다.
한번 따라 합시다. -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다.
오늘 읽은 성경에 보니까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은 의인이 한 사람도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이 말은 모든 인간은 다 죄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그런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금방 태어난 어린 얘기들도 자기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진 죄는 없다 할지라도 엄마의 배속에 있을 때, 그 부모가 범죄 한 죄를 유전으로 이어받아서 유전적 죄는 이미 가지고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인간들은 이 땅에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가르치지 않아도 죄는 빨리 배웁니다. 어린 애기들에게 누가 악을 가르치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다 착한 어린애기가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금방 태어났을 때, 그 순수한 어린 애기들의 모습이 나이가 많아서 이 세상 죽을 때까지 그렇게 다 깨끗하고 순진하고, 순수하게 커 가기를 바라지만 벌써 태어날 때부터 사람이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얼마가지 못하여 모든 인간들은 악을 벌써 분출하기 시작합니다.
형제들과 싸우는 방법을 부모가 가르친 적이 없어도 어린 애기들이 금방 싸워요. 자기한테 잘 안 해준다고 고집을 피우고 또 막 난리를 칩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성경 말씀이 말씀한바 그대로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라는 말이 맞습니다.
사람 속에 죄가 오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아랍의 테러리스트에 의해 미국의 쌍둥이 무역센타가 폭발된 9.11사건(2001년) 이후 요즘 전 세계가 테러의 공포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미국이 점령 중인 이라크에서 일하던 김선일이라는 청년이 한국이 이라크에 파병한다는 이유로 이슬람 테러 단체에 의해 참혹한 죽음을 당한 후(2004.6.22) 우리나라도 테러에 대한 공포가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테러라고 하면 납치, 폭탄 투척, 총기 살해 등이 먼저 떠오르지만 그 중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화생방테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자들 중에 군대갔다 오신 분들은 잘 알지만 군에 가면 화생방 전투 훈련을 예비로 미리 합니다. 그 신경가스라는 무서운 가스가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기억하기로는 CN가스로 기억하는데, 그 CN가스는 마시면 색깔도 없습니다. 가스여서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나지 않습니다.
그 가스는 색깔도 없고 냄새도 없으니 이건 무슨 뭐 어디에 연기같이 색깔이라도 있든지, 또 요즘 밀가루 같이 눈에 보이든지, 그 하면은 보고 도망이라도 가고 피해라도 갈 수 있지만 이건 가스탄이니까 부탄가스 같은 것 살짝 열어 놓고, 지하철 같은 데서 살짝 열어 놓고 가버리면 거기서부터 살 살 구석에서 올라오면 그 가스가 눈에 색깔이 없으니까 보이지 않고, 냄새가 안 나니까? 사람들이 구분 못한다. 그러나 그 가스를 마시게 되면 사람들이 다 중독이 걸려서 신경이 마비가 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 읽은 성경에 보면 더 무서운 테러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죄입니다. 죄!
육신세계 물질로 만들어진 생화학 무기는 사람들의 육신의 생명을 노리지만 이 죄라고 하는 것은 그것보다 더 무섭습니다.
죄가 사람 속에 들어오게 되면, 사람이 죄를 마시게 되고, 죄에 오염이 되면, 방독면을 차도 안 됩니다. 죄가 사람 속에 들어오게 되면 인간의 영적 기능을 다 마비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영의 기능이 마비가 된 사람은 어떤 현상이 일어나나요?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데도 하나님 살아 계신 줄 몰라요. 그게 벌써 죄의 가스에 마비가 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이 모든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했습니다. 우주 모든 만물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습니다. 우리 사람도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죄로 오염된 사람들은 사람이 어디서부터 와서 왜 살고 어디로 가는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감각을 하질 못합니다.
그래서 가끔 전도해 보면 사람들이 그렇게 말합니다. “예수님 믿으세요. 하나님 믿고 천국 갑시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하나님을 믿으면 네 주먹을 믿어라.”
그렇게 말들을 합니다. 왜 그렇게 확신하며 말할까요? 그 사람은 이미 죄의 가스를 마셨기 때문에 죄로 말미암아 사람 속에 영의 기능이 다 마비가 되었기 때문에 그 영의 기능이 마비된 신경이 죽은 사람은 영적 신경이 죽은 사람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감지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확실하게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앞에 나와서 모든 죄를 다 내어놓고 죄 용서함을 받고 죄의 문제가 해결되면 내가 지금까지 하나님에 대해서 반응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해서 의식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대해서 내가 그 동안 모르고 살았다는 것에 대하여 통회와 자복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다 한가지의 공통된 후회를 하는데, 내가 왜 빨리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을까? 그것에 대한 후회와 통회를 하게 됩니다.
오늘 이 가운데 교회 처음 나오신 성도님들은 제 말씀을 잘 들어 보세요. 하나님이 없어서 하나님을 못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속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영적 그 기능이 죄의 테러를 당하여 신경가스를 마시게 되면, 사람이 신경이 다 죽어요.
우리가 병원에 가서 수술할 때에 이렇게 주사를 놓으면, 하반신 주사를 놓으면 하반신 밑으로 다 마비가 됩니다. 그러면 아픈 부분을 수술하지요 수술하면서 눈뜨고 보아도 칼로 쭉 쭉 찢어도 소리만 나지 싸각싸각 소리만 나지 안 아파요.
전신마취 해 보십시오 전신 마취하면 온 배를 다 가르고 의사 선생님들이 이 배 안에 있는 모든 내장을 바깥으로 꺼내어 가지고 그걸 집고 자르고 꿰매고 해도 본인은 몰라요. 신경이 죽었기 때문에 나중에 수술을 다 마치고 위에 것까지 꿰매어 놓고 깨면 알게 됩니다.
육신의 신경이 마비가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본인이 모르는 것처럼, 영적인 세계도 똑 같습니다. 사람의 죄가 사람을 마비시켜 버리기 때문에 죄에 오염된 사람은 영적 세상에 대해서는 전혀 감각할 수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모든 성도들은 무너진 죽은 기능을 상실한 감각을 잃어버린 영의 세계가 다 살아나기 바랍니다. 그러려면 죄의 문제가 해결이 되어야 합니다. 죄를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사람이 그 죄 때문에 죄가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려 버립니다.
빛은 뭔가에 가려지면 빛이 보이지 않습니다. 차단되면, 구름이 가려버리면 해가 대낮같이 밝아도 구름이 태양을 가려 버리면 햇빛이 이 땅에 내려오지 않아요. 왜냐하면 구름이 덮었기 때문에, 구름이 가렸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죄가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려버리면 하나님의 강렬한 사랑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사람들에게 비쳐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잠시 후에 구름이 싹 지나가 버리면 그 구름사이로 구멍이 하나 뚫려버리면 햇빛이 쏟아집니다. 그와 같이 무서운 죄악의 구름이 위에서 가려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내게 들어오는 하나님의 통로가 끊겨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빛이 내게 비췰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처음 나오신 여러분들은 다 나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은 죄악의 문제를 다 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다. 그러면 그 말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나는 별로 죄가 없다.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큰 실수입니다.
죄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물론 나는 죄 없다 하는 사람은 비교를 해 볼 때, 나 보다 더 악한 사람들 보다 나는 죄가 좀 적다는 뜻이지, 죄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기 혹시 나는 죄가 전혀 없다고 말 할 수 있는 아주 간이 우주만큼 큰 사람 있으면 한번 손들어 보십시오. 내가 그 죄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드릴 생각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한번 따라 합시다. - 의인은 없다.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의롭다하는 것은 인간의 의는 상대적 의입니다. 나보다 더 악한 사람보다는 내가 더 선하다. 그 말이지 이 땅에서 온전히 선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없어요.
다른 사람보다 내가 좀더 의롭다. 다른 사람보다 비교하여 볼 때, 좀 더 의롭다. 형태적으로 저 사람이 범하는 죄는 나는 범하지 않는다. 저 사람이 범죄 하는 그 범죄 쪽으로는 나는 의롭다. 그러나 방향이 다른 죄는 내가 더 큰 죄일 수도 있습니다.
이 땅에서 사람들은 나타나는 죄를 보고 손가락질을 많이 합니다. 사람을 죽였어요. 살인죄입니다. 손가락질을 합니다. 아! 살인죄를 범했다고, 또 누가 간음죄를 범하면, 아이구! 저 사람 더러운 사람이네, 바람피우는 사람이네. 아주 더러운 놈이네.
이렇게 죄가 나타날 때,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다 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말하기를 죄는 나타나는 죄도 있지만 나타나지 않고 속에 숨어있는 죄도 많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말씀하실 때, 죄를 말씀하실 때, 성경에 보면 마태복음 5장을 다 넘겨보시면 예수님은 죄를 말씀하실 때, 숨은 죄를 더 크게 여겼습니다.
나타나는 죄보다 더 큰 죄가 숨은 죄입니다. 마태복음 5장을 다 찾았으면 아멘! 합시다. 찾으셨으면 21절부터 다같이 한목소리로 읽습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이 말씀은 사람이 육신으로 사람을 죽이는 살인죄도 있지만 마음속에 이미 벌써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이미 벌써 그 마음에 살인죄를 지고 있다. 그런 뜻이고
27절을 보시면 또 한 목소리로 읽으면 시작....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이것도 역시 간음죄도 육신적으로 간음죄 보다는 이미 벌써 마음속에 불순한 생각을 하면 그것이 음란죄 다라고 하는 것을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죄는 나타나는 죄도 있지만 아직 나타나지 않고 마음속에 담겨있는 죄도 있는데, 사람들은 이 땅에서 나타나는 죄만 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나타나는 죄도 죄고, 나타나지 않는 죄도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람 속에 들은 죄를 지적할 때보면 사람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 그렇게 주님이 말씀했어요.
그 말씀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이게 음식입니다. 먹으면 요것은 24시간 내로 더러운 것으로 바뀝니다. 아무리 깨끗한 것 먹어보세요. 아무리 정결한 것 먹어보아요. 24시간 후에 나올 때는 무어로 나와요. 다 깨끗한 척하셔서 대답을 안 하시는데, 대답 안 하셔도 여러분 속에 다 들었습니다.
여러분 다 배를 만져보아요. 무엇이 들었나. 깨끗한 척하여도 여기 다 들었어요. 만져보아요. 무엇이 들었나요. 내가 가르쳐 드릴게요. 또 자에 0이 들었습니다.
화장실가면 나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똥을 다 더럽다고 그래요. 아이구! 냄새나, 아이구! 더러워! 똥 다 더럽다 그러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물질적인 더러움 보다가, 똥보다 더 더러운 것이 있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입으로 들어가는 물질입니다. 음식, 음식이 들어가면 다 더러운 것으로 나오잖아요.
물질의 더러움보다 더 더러운 것이 무엇이냐? 여기 보면 예수님이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게 한다하는 것을 보니까? 요 속에 마음속으로 품은 죄, 생각의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합시다 - 죄, 이 죄는 똥보다 더 더럽다.
그래서 마15장 말씀 또 넘겨보시면.... 옆 사람하고 찾아보시면 다 찾았으면 -아멘-
17 말씀 읽으시면 시작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버려지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또 11절 말씀을 일겠습니다.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한번 따라 합시다. -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왜! 예수님이 여기서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할까요. 입에 들어가는 것이 분명히 더럽게 하거든요. 입에서 들어가면 다 누구든지 그것은 나중에 나올 때는 똥으로 나오니까 다 더럽다 말이요.
아무리 예쁜 사람이 싸는 똥도 더러워요. 안 더러울 수 없어, 애기들 똥도 더러워, 애기들 똥은 예쁘다고요. 그러면 그것 한번 드셔 보세요. 애기들 똥이라고 안 더러워요?
그러니까 똥이란 똥은 다 더러워. 다 더러워. 그런데 예수님은 똥보다 더 더러운 것이 있고 그랬어요. 그것이 무엇이냐? 사람 마음속에 품은 죄라는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 죄는 똥보다 더 더럽다.
그런데 사람들은 육신 적으로 똥이 묻으면 난리가 납니다. 더럽다고 그냥 냄새난다고 그러고 사람이 똥은 고사하고 방귀만 끼어도 난리나 냄새난다고..., 그런데 사람이 육신적인 더러움을 보면 가만히 있지 않고 다 씻으려고 하고, 다 그것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고, 다들 그것을 어떻게 하든지 그것을 처리하려고 몸부림을 치는데, 육신적인 더러움의 극치인 똥보다 더러운 것이 무엇이냐 예수님 말씀하길 죄라 그랬습니다.
따라 합시다. - 죄는 똥보다 더 더럽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죄를 그대로 놔두려고 할까요. 그것이 아까 제가 말씀드린 대로 죄는 사람의 영적 기능을 마비 시켜버리기 때문에, 죄에 이미 마비가 된 사람은, 죄에 오염된 사람은, 죄가 더러운지 몰라요. 모르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의 신경이 살아나고 영적 세계에 눈을 뜨게 되고....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즉시로 죄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고, 죄에 대한 반응이 일어나게 됩니다.
죄는 더럽다는 것을 알게 되고, 죄에 대해서는 벌써 싫어지고, 할렐루야!
그러므로 오늘 여기 교회 처음 나오신 여러 성도 여러분 제 말씀을 잘 들어 보세요.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사는 것은 얼굴을 온 몸에 똥을 다 바르고 사는 사람하고 같습니다. 육신 적으로 얼굴 온 몸에 똥을 다 바르고 산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형편 처지가 얼마나 안타까운가....
또 정신적으로 치매 걸린 사람을 보십시오. 그 며느리, 딸내미 자식들 잠깐 밖에 나갔다 온 사이에 똥 싸 가지고 똥을 온 벽에 다 발라 놓고 그냥 온 얼굴에 다 바르고 더러운 줄 몰라요. 더러운 줄도 모릅니다.
여러분! 부모님들을 위해서 기도 많이 하십시오. 돌아가실 때, 치매 걸리지 않고 돌아가시도록 기도 많이 하면 치매 안 걸리고 돌아가셔요. 찬송 부르다가 가시도록 “나 찬송 좀 불러다오.” 그러다가 찬송 부르는 중에 천사손에 싹 붙들려 갈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그렇게 임종을 맞이하셔야지. 그 노인들 중에 보면 회개 덜한 사람들이 주로 치매 걸린 사람이 많습니다. 죄는 똥보다 더 더럽습니다. 죄에 오염된 사람은 치매 환자와 같습니다.
따라합시다 - 죄의 오염된 사람은.
죄에 오염된 사람은 꼭 치매환자들이 하는 그런 짓을 합니다. 육신의 똥을 가지고 벽에다 막 바르고 이리 저리 바르고 하는 것. 그것 다 우리가 보면 더럽잖아요.
그런데 어머니 아버지 왜 그런 짓 합니까? 그러면 내가 무엇 잘못했냐? 오히려 혼내는 자녀들보고 난리를 칩니다. 내가 뭐 잘못했다고 그러느냐? 이놈들아! 이럽니다. 왜 그러느냐?
그것은 정신이 없어 분별력을 잃어 버려서 그럽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죄에 마비된 사람은 죄를 먹고 마시고 죄를 가지고 벽에 다 칠하고 죄를 얼굴에 바르고 하면서도 그것을 책망하는 사람을 보고는 뭐라고 그러느냐? 아이고! 더러운 죄를 가지고 그렇게 합니까. 그러면 오히려 그것을 보고 책망하는 사람을 더 책망합니다.
그래서 이 죄라고 하는 것은 사람을 엄청나게 더럽게 하는 무서운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 세상에서 생명이 떠나기까지 사람은 꼭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됩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보여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요. 영원한 생명을 얻어요. 죽으면 천국 간다 말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되면
따라서 합시다. - 죄의 문제를 해결하면 하나님이 보인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보이고, 성경이 보이고, 할렐루야! 인간 자신이 보이고, 내가 누구인지가 보이고,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사모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살아요.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성도들은 한 분도 빠짐없이 죄의 문제를 이 자리에서 다 해결하고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죄의 문제를 해결하나요. 내 죄를 예수님 앞에 나 내어 놓으세요. 예수님 앞에 다 자백하세요. 예수님한테 고백하세요. 고백하면 주님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 피의 능력으로 우리 죄를 다 용서하시고, 깨끗하게 용서하십니다.
용서함을 받아 보십시오. 얼마나 마음이 기쁘고 얼마나 즐거운지 저는 처음 죄 용서함을 받았을 때, 얼마나 기쁜지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습니다. 붕 떠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할렐루야 !
그래서 여러분 오늘 처음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은 오늘 한 분도 그냥 돌아가지 마시고 만약에 그냥 돌아가시는 분은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치매 환자들을 생각하고 돌아가세요.
아! 치매환자들이 똥 싸 가지고, 똥을 손으로 막 만지면서, 입에도 집어넣고, 얼굴도 바르고, 벽도 바르고, 그 모습이 내 모습이라고 생각하면서 가시면 됩니다.
죄의 문제 해결안하고 가면 내 모습이 그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 필요가 있나요. 죄를 그렇게 주물럭거리면 만지며 더러운 것을 얼굴에 바르고 그렇게 살 필요가 있습니까? 그러지 마시고 예수의 피로 깨끗이 씻음 받고 용서함 받아서 새 생명을 얻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 머리를 숙여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교회에 처음으로 나오신 분들은 그 자리에서 한번 일어서기를 바랍니다. 인도하신 분들도 함께 그 자리에 일어서기를 바랍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는 죄가 적지만 그러나 어쨌든 나는 죄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시는 분은 그 자리에 다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우리 다같이 합심으로 기도하실 때, 일어 선 우리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처음으로 나오신 형제자매들이 다 죄 용서를 받고 예수님 만날 수 있도록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 오늘 이 시간 일어서신 귀한 형제자매들 기억하여 주옵시고 모든 죄악이 다 씻음 받게 하여 주시고, 모든 죄가 다 용서 받게 하여 주시고, 더러워진 죄악이 깨끗하게 씻어질 수 있도록 주님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주님 보혈의 피로써 씻음 받는 복된 시간 되게 하여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임할 수 있는 귀한 역사가 일어날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살아 계신 우리 주님이시여 거룩하신 우리 주 예수님이시여 주님의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거듭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성령으로 도와주시옵소서.
저를 따라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죄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동안 죄를 범하며 살았습니다. 이 시간 말씀을 듣고, 죄가 더러운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죄를 용서함 받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피로 씻어 주시옵소서. 내 영혼을 다시 살려 주시옵소서 꼭 구원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우리 다 같이 박수하겠습니다.
* 찬송가 487장 - 죄 짐 맞은 우리 구주
* 광고 7주 연속 총력 영혼 구원에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 오늘 처음으로 교회 나오신 분 다시 한번 호명을 하겠습니다. 그 자리에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오늘 처음으로 우리교회 나오신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5.7주총동원주일설교5 (예수그리스도를 만나자)| -목사님설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자
요9 : 1-11
“1,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 이오니이까, 자기 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 이로라.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8, 이웃 사람들과 및 전에 저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가로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 혹은 그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제 말은 내가 그로라 하니. 10, 저희가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
* 찬송 - 내가 걷는 이 길이
오늘 읽은 하나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길을 가시다가 아주 불쌍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어린 생명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기 자신에게는 큰 비극이었고 또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그를 낳았던 부모님들까지도 많은 걱정을 하지 아니 하면 안 되었던 태어날 때부터 소경 된 자였습니다.
한번도 이 세상에 사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지를 못했던 아주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땅에 우리가 육체적인 여러 가지 장애를 당할 수 있고, 또 육신적인 장애를 여러 가지로 우리가 만날 수도 있지만 이 시각 장애, 소경, 만물을 보지 못하는 이 캄캄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언어 장애는 차라리 좀 덜합니다. 말을 못하니까 그래도 수화로써, 손으로 말을 해서 의사를 전달 할 수도 있지요. 이 시각 장애는 일생동안 비극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소경으로 태어난 자를 예수님이 만났습니다.
우리 9장 1절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신지라.” 아멘!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셨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사물의 색깔 못 보아요. 자기 부인의 생긴 얼굴도 못 보아요. 자기가 낳은 그 자식의 모습도 못 봅니다. 아무것도 못 봅니다. 비극 그 자체입니다. 총체적 비극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육신의 세계에서도 사물을 보지 못하고 만물을 보지 못하는 이 소경이라고 하는 것은 비극 그 자체인 것처럼 이 땅에서는 또 한 가지의 소경이 있습니다.
이것은 육신의 소경보다 훨씬 더 비극적입니다. 그리고 더 처참한 또 한 가지의 소경입니다. 그 소경은 육신의 소경이 아닌 영혼의 소경입니다. 이 영혼의 소경은 육신의 소경들이 이 세상에 민물이 있어도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것처럼 빛이 있어도 하루에 24시간 중에서 낮과 밤이 이렇게 계속 거듭되어 와도 육신의 소경은 낮이 밤이요 밤이 낮이요. 그게 그것이요. 낮인지 밤인지 누가 옆에서 가르쳐 주지 아니하면 낮과 밤도 구분할 수 없습니다. 손으로 만지는 시계가 있어서 그 시계를 만져보지 아니하면 빛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시계 없어도 우리는 낮인지 밤이지 알아요. 금방 태어난 애들도 알아요. 낮과 밤을 구분할 줄 알아요. 캄캄함이 임하면 밤이 오는구나. 아침에 빛이 서서히 밝아 오르면 낮이 오는구나 알아요. 그러나 소경들은 몰라요. 앞을 못 보시는 시각 장애인들은 몰라요. 그것도 이 시각 장애인들을 만나보면 태어날 때부터 소경으로 된 사람은 처음부터 못 보았기 때문에 그래도 좀 덜할지 모르는데, 후천적 장애인들은 더욱더 어려움이 많습니다.
요즈음은 뭐 교통사고도 있을 수 있고, 또 여러 가지 희귀한 질병들이 있어서 뇌신경이 마비가 되어서 그래서 실명하는 눈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눈이 있으되 빛을 못 봄으로 눈을 잃어버리는 이러한 일들이 많은데 그러한 분들의 비참함은, 그 답답함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 이상으로 처절한 것이 영적 소경인데, 영적 소경은 육신의 소경과 마찬가지로 빛이 있어도 빛을 못 보는 것처럼, 영적 소경이 그와 같습니다.
의의 태양이신 하나님이.... 하나님의 빛이 쏟아져도 내가 소경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로운 빛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이 가운데 오신 우리 여러 성도들이여 나는 육신의 소경 안 되었다는 것, 그것도 감사한 일이지요. 또 여러분이 낳은 자녀들 중에 육신의 소경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게 생각하지요. 그러나 여러분 그것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영적 소경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 합시다. - 영적 소경!
왜! 요한복음 9장에 예수님 이 땅에 오셔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병도 고쳐 주시고, 상담하시고 많이 하셨는데, 요한복음 제 9장에 보면 날 때부터 소경 된 자라고 하는 말로 9장이 시작되는 이 사건을 여기다 써 놓았느냐 이것은 단순히 날 때부터 소경 된 한 사람을 불쌍히 여겨 예수님이 고쳐 주었다는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 쓴 것이 아니라 이 속에는 깊은 영적인 교훈이 여기에 들어 있는데, 다시 말해서 날 때부터 소경 된 자를 만났다는 이 말은 이 세상에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다 소경이라는 것입니다. 다! 한 두 사람이 아니라 다요.
따라 합시다! -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 때문에 소경이다.
다 소경으로 태어난다. 그런 얘기입니다. 이해되시면 아멘!
그러면 태어날 때부터 영적 소경으로 태어났으면 어떻게 눈이 떠질 수 있나요. 육신의 눈이 떠질 수 있는 소경들이 몇 사람 있습니다. 눈에 안구는 살아 있고 신경은 살아 있는데, 눈 껍질이 덮여져 있어서 눈을 못 떠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소경이 있어요. 그런 소경은 개안 수술을 하면 즉시 보여 버립니다.
칼로 눈꺼풀을 딱 잘라서 수술해 줘버리면 눈이 보여요. 개안 수술이라는 것이 있어요. 그건 사실 뭐 소경이라고 할 수 없죠. 여기 자동 셔터(shutter)가 있잖아요(눈을 가리키며). 이 자동 셔터가 고장 난 사람이 있다고요. 자동 셔터가 고장 난 사람은 수술을 하여 자동 셔터를 영원히 올려놓으면 되요.
안 움직이도록 밑으로 안 처지도록, 위로 딱 꿰매어 버리면 돼, 저녁에 잘 때는 덮여야 되는 데 어떻게 하냐? 그냥 이렇게 싸매고 자면 돼, 싸매고 자면 됩니다.
저 구라파 쪽 북반구에 가면 지구가 이렇게 동그랗게 생겨서, 공전과 자전하기 때문에 24시간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있습니다. 있을 것 같아요? 그것도 안 믿어져요? 하도 의심들을 많이 하니까 사실을 사실대로 얘기해도 안 믿어요.
지구가 공전과 자전을 하기 때문에 24시간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있다고요. 그런 나라는 국가에서 밤을 선포를 합니다. 윙 지금부터 밤입니다. 사실이에요. 윙 지금부터 밤입니다 하고 모든 집은 다 커튼을 닫으세요. 그래서 커튼을 다 닫아야 해요. 그것도 여관이나 모텔 방처럼. 여관방이나 모텔에 들어가 보면 아주 햇빛이 하나도 안 들어오도록 일반 커튼 말고 극장에서 쓰는 커튼, 그걸로 딱 가려 놓아서 딱 치면, 캄캄해서 한 밤중 같습니다.
그와 같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는 그 커튼을 다 닫고 밤으로 선포하고 그래서 밤을 정해놓고 잡니다. 그와 같이 태어날 때부터 눈에 위에 눈을 덮는 이 살갗이 덮여서 소경이 된 사람은 칼로 찢어서 열어주면 돼요. 그러면 볼 수 있어요.
그리고, 또 이 눈동자 동그란 눈알맹이, 의학적 용어로는 안구, 이 안구의 기능이 마비되고, 안구까지 오는 뇌로부터 신경은 살아있는 이러한 소경이 있어요. 이런 소경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눈 하나를 이식 받으면 즉시 볼 수 있어요. 신경은 살았는데 안구만 고장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런 소경이 있어요. 그런 소경은 두 눈을 가진 자가 하나를 희생을 해 주면, 눈을 하나 옮겨주면 볼 수 있었습니다.
안구 기증운동 있잖아요. 어차피 다른 기능이 마비되어서 세상을 떠나야 되는 사람들은 눈을 다른 사람들한테 기증하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참 좋은 일 같습니다. 내가 볼 때, 우리들도 그렇게 한번 하는 것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내가 다른 기능이 마비가 되어서 살 수 없다면 하늘나라에 가야 된다면, 누구라도 장애인들에게 기증해서 그래서 앞을 보게 하는 것이 좋지 않으냐?
그러나 영적 소경은 이 세상에 수술법이 없어요. 영적 소경은 칼을 가지고 찢어도 안 되고, 영적 소경은 다른 방법으로 불가능해요. 치료법이 없습니다. 영적 소경은 유일한 치료법이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길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날 때부터 소경된 이 소경을 고친 것은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은 다 영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영이 소경이라고 하는 것을 여기에 보여 줄 뿐 아니라 영적으로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므로 치료될 수 있습니다.
따라 합시다. - 오직 예수!
오직 예수를 만나므로 영적 소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영적 소경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이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바로 이 사람을 고쳤습니다.
성경을 다시 한번 보시면 우리 요한복음 9장 1절부터 다시 읽으시면. 시작!
자!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고자, 그 하나님의 일이 뭐냐? 예수님은 영적 소경을 고친다고 하는 하나님의 일, 이걸 보여주기 위하여 이게 하나의 표본입니다. 할렐루야!
자 보세요. 4절 말씀부터 당장 이것이 영적 소경으로 돌아섭니다. 이 성경을 보면 앞에서 일어난 이 것이 영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예수님이 즉시 4절로 끌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4절부터 일겠습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 로라.” 할렐루야!
벌써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하여, 나는 육신의 소경을 고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영적 소경을 고친다고 하는 것을 주님이 여기서 벌써 말씀을 통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오늘 처음으로 교회 나오신 분들은 제 말씀을 잘 들어 보세요. 지금 처음으로 교회 나오신 분들은 지금 예배를 마치고 가시다가 길거리에서 소경 분들 만나면 마음속으로 아이구 참 불쌍하다. 나는 소경으로 안 태어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실 것 아니겠어요.
그와 같이 여러분들도 육신의 소경을 보면 당장 아무리 마음이 완악하고 강박하고 내 살기에 바쁘고 아무리 마음이 곤고한 사람도 육신적인 소경을 보면 여러분들이 다 표현은 못해도 마음속으로 “아이구! 참 안됐다. 우선 나는 참 소경 안 된 것이 감사하다.” 그리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 인간의 본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길을 가다가 아무리 바빠도 시각 장애인들을 보시면 길을 좀 안내해 주는 것이 우리의 기본 예의입니다. 이건 가르칠 필요가 없어요. 그런 시각 장애자가 보이면 자동 적으로 누가 안 시켜도 “내가 저 사람 좀 도와주어야 되겠다. 길이 같은 방향이라면 함께 손을 잡고 내가 가는데” 같은 방향이라면 도와주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심이요.
그와 똑 같아요. 무엇이 똑 같으냐? 영적 소경으로부터 눈이 먼저 떠진 사람은 여기 서있는 목사로부터 시작해서 예수 믿지 않고, 그리스도를 만나지 않고, 아직도 영적 소경 가운데 그대로 있는 사람들을 보면 여러분이 육신의 소경을 볼 때에 누가 안 시켜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막 일어나는 것처럼, 안타까운 것처럼 그리고 가까이 가서 “아저씨 내 손잡으세요. 괜찮습니다.” “괜찮아 필요 없어, 필요 없어” “그래도 그러지 마시고 제가 같은 길이니까”
이렇게 누가 아니시켜도 이 마음속에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그냥 일어나는 것처럼 안타까워서.... 똑 같은 거예요. 영적 소경이 영적 소경을 보는 순간에 영의 눈이 열린 사람들은, 영적 소경을 보면 누가 안 시켜도 안타까워서 다가서서 도와주고 싶어. 그래서 오늘 처음 교회 나오신 여러분들도 아마 자진해서 교회 온 분 아마 한 분도 없을 거요.
누군가가 반강제적으로 끌고 왔어. 친구가 아는 사람이. 그리고 이해를 못해. 왜 나를 물귀신처럼. 예수 믿는 사람 다 물귀신이여. 물귀신, 지 혼자 교회를 다니지. 뭐 하러 자꾸 교회 가자 가자해서 그렇게 가기 싫은 것 데리고 올까?
또 한번 와 봤더니 재미가 하나도 없어. 지들끼리만 아는 것하고 있다 이거요. 웃는 것도 지들끼리 웃고, 나는 뭐 때문에 웃는지 몰라. 찬송도 하나도 몰라. 목사님 말씀도 귀에 안 들어와 그럴 때 어떤 생각을 하느냐? 아이구! 교회 재미없어 그런 곳을 왜 자꾸 오라고 하느냐? 그럽니다.
그것이 육신적 소경을 보면, 육신적 소경을 보는 순간에 눈이 먼저 떠진 사람이 안타까워서 그 본인이 원치 않아도 도와주고 싶어서, 도와주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것처럼, 영적 소경을 보는 순간에 먼저 영의 눈이 열린 사람들은 마음이 안타깝다는 거요. 육신의 소경이 사물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영의 소경은 영적 세계를 볼 수가 없는 거요.
육신의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은 나를 낳은 우리 부모님도 당장 눈에 못 봅니다. 그와 같이 영적 소경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우주의 부모, 우주의 부모인 하나님이 안보여. 그것이 영적 소경이다.
오늘 저희들은 육신의 소경이 아닌 것 감사해야 되요. 그러나 더 큰 감사가 하나 있다면 내가 영의 소경으로부터 눈이 떠진다는 것 이것을 더 감사해야 되요.
영의 소경으로부터 눈이 떠지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그렇게도 내가 부인했던 빛이 보입니다. 색깔도 보입니다. 하나님이 보입니다. 성경이 보입니다. 할렐루야!
오늘도 여기 교회 처음 나오신 분들 중에서 친구가, 아는 사람이 교회에 가자! 가자! 그래서 다른 사람의 힘에 의해서 교회에 오신 분이 계실 거예요.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 영의 눈이 다 열리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영의 눈이 열리면 완전히 세상이 새로워집니다. 육신의 소경이 불쌍한 것이 아니요 더 불쌍한 것은 영의 눈이 열리지 않은 사람이 더 불쌍합니다.
* 기도하실 때, 하나님 영의 눈이 열리게 하여 주세요. 영적 소경이 다 눈이 뜨게 하여 주세요라고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처음으로 교회 나오신 분, 또 처음으로 교회 나오신 분을 인도하신 분, 그 자리에 한번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다 일어서기를 바랍니다. 제가 한번 기도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든 성도들이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이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 해 주실 것입니다.
저도 기도할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의 눈이 열리기 바랍니다.
다같이 우리 합심으로 일어선 형제자매님들을 위하여 합심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일어선 형제자매님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영의 눈이 열리게 하여 주시고, 주님! 활짝 활짝 열리게 하여 주시고, 살아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영의 눈이 열리면 얼마나 좋을까요. 살아 계신 우리 아버지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예수님을 만나 실로암 연못가에서 씻음을 받아 눈이 열리듯이 주여! 이 시간에 일어선 귀한 형제자매들의 모든 죄악을 용서하여 주시고 예수님 피로 씻어 주시고 실로암 되신 주님이 덮어 주셔서 눈이 열리는 아름다운 역사가 일어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주님! 오 주님 감사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일어선 귀한 형제자매들은 저의 기도를 한번 따라서 해 주십시오. 이 기도를 통하여 우리 하나님 앞에 도움을 한번 요청합니다. 따라서 한번 기도합니다.
살아 계신 예수님! 나는 태어날 때부터 영적 소경입니다. 나의 눈을 열어주시옵소서!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죄가 많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피로 나의 죄를 씻어 주시옵소서. 천국 갈 때까지 나의 영혼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 할렐루야!
우리 이 자리에 일어선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우리 박수로 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다 앉아 주시고 앞으로 열심히 여러분 신앙생활을 잘 해주시기 바랍니다.
인도자들과 함께 하나 하나씩 배우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신앙을 시작 해 주시기 바랍니다.
* 찬송 - 에바다
6.7주총동원주일설교6 (이성의 불완전)| -목사님설교-
이성의 불완전
히6:16-18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사람 속에는 육체 말고 생각하는 기능이 있는데 이것을 이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하기를 이성은 불완전하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이 땅에 살면서 여러 가지 것들을 후회하면서 삽니다.
후회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한두 번 후회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수십 번 후회하고 삽니다.
옆 사람 손잡고 물어 봅시다. 당신은 후회해 본 적 있나요?
후회해 본 적이 있다면 몇 번이나 후회해 보았나요?
후회 중에 제일 큰 후회가 무엇입니까?
제일 큰 후회가 무엇입니까? 발표 한번 해 봅시다.
어릴 때 공부 열심히 못한 것 후회스럽나요?
어떤 사람은 중학교 때 공부 못한 것을 성인이 되어서 후회합니다.
내가 그때 조금만 더 열심히 노력했더라면... 지금보다는 더 잘 살텐데... 이런 후회
그 때 그 놈만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이 지금 같지는 않을 텐데.. 하는 후회
이런 후회 저런 후회....... 여러분 후회되는 일이 많이 있으시죠?
어떤 것은 1년 지난 후에 후회가 됩니다. 어떤 것은 10년 후에 후회합니다.
사업하는 사람은 이것 한 번 하면 성공하겠다고 생각되어서
친척 처갓집 돈 까지 다 빌려 일해 보지만 펑 하고 터져서 부도가 나기도 합니다.
인간이 살면서 진행했던 일 들 중엔 좋은 일도 있고 아쉬운 일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후회스러운 일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제 말에 동의하시지요? 맞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아멘~···
이렇게 여러분들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때 후회스러운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크고 적은 후회스러운 것이 있을 텐데, 이처럼 우리의 과거는 후회의 누더기입니다.
그런데 이 후회라는 것이 이렇습니다. 보십시오.
후회라는 것은 과거에는 확신이었습니다.
과거의 확신이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후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확신이었지만 지나고 나니 후회가 되었습니다.
확실히 맞다. 또는 확실히 잘 될 것이다. 라고 믿고서 그 일을 진행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후회는 과거에 시작할 당시엔 확신에 찬 일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처음 시작할 때의 그 확신이 살면서 진행하다 보니 후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때 확신이 중학교 가면 후회됩니다. 고등학교때 확신이 대학교 가면 후회됩니다.
결혼할 때 확신하여 결혼했으나 살다보면 후회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이 진행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일 들 중에서 이것만은 분명하다
이것만은 확실하다. 라고 믿고서 진행하는 일일지라도...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미래가 되어서
에이~ 그 때 조금만 더 잘 했더라면 아차~ 그 때 그것만 안 했더라면
이렇게 후회할 일들이 또 생길까요? 안 생길까요? 생깁니다.
네.. 그렇지요? 분명히 우리의 미래에도 후회할 일들이 생겨나겠지요?
여러분들이 제 말에 동의하신다면 아멘~····
이렇게 제 말에 동의하셨다면 여러분의 이성은 불완전한 것입니다.
왜냐~ 여러분의 과거의 확신이 지금에 와서 후회로 바뀐 것이 많고.. 또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지금의 확신에 찬 일들 중에 많은 것이 앞으로 후회로 바뀔 것이 있다면
여러분의 이성은 불완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의 이성이 불완전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이성은 불완전하기에 폐기처분해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되시면 아멘~
그런데도 인간은 이러한 전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확신이 지나고 보니 후회가 될 경험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삶은 후회할 것이 없을 것이다. 라고
막연히 확신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거짓확신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미래에는 무언가 확실할 것이라고 거짓확신에 차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후회하는 전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착각하고 있으나 후회합니다.
미래에 가서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거짓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에 가면 또 후회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자기의 이성을 신뢰하면서 지나간 이러한 일들을 앞으로도 계속 되풀이 하려고 합니다.
사람이 과거의 확신이 지금 와서 후회가 되어있기 때문에 여러분의 판단과 생각과 가치관과 여러분이 기초한 이성은 절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이성과 판단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람은 자기의 이성을 믿고 살려고 합니다.
삶의 기초를 거기에 두려고 합니다. 이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 말을 들을 때 여러분 지각에 깨달음이 오길 바랍니다.
자꾸 자기 이성 속에 붙잡힙니다.
후회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꾸 자기 이성에 삶의 기초를 놓으려고 합니다.
이성은 불완전한 것인데 불완전한 이성을 붙잡으려고 합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여러분은 거짓확신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후회는 나의 과거의 거짓 확신에서 나왔습니다. 거짓 확신은 또 후회를 만듭니다.
인생은 이 원리가 계속 이어집니다.
현재의 나의 확신은 미래의 후회의 씨를 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이성은 불완전하다 라는 것입니다.
옆 사람에게 말합시다.
당신은 불완전한 사람입니다.
인간은 어리석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으냐? 하면 과거의 확신한 것이 후회로 바뀐 경험이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집으로 버팁니다. 과거에는 그랬어도 앞으로는 없을 것이다.
이것만은 틀림없다. 라고 거짓확신으로 버팁니다.
거짓 확신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99% 가 후회입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무덤 속에 들어갈 때까지 이것은 내가 한 일이 틀림없다고 확신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후회는 시간이 오래 지난 뒤에 할수록 치명적입니다.
후회를 어차피 하게 될 것이라면 빨리 할수록 좋습니다.
어짜피 후회할 일은 빨리 탄로 날수록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확신 하고 있는 것도 불완전한 확신이 많습니다.
후회의 씨를 안심을 수는 없지만 이 비율을 줄여야 합니다..
사람마다 제일 큰 후회가 뭐냐? 하고 물어보면 하도 많아서 뭐하나 찍기 어렵다고 합니다.
어떤 후회는1년 10년 50년 뒤에 후회하지만 또 어떤 후회는 죽어서 하는 후회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마다 큰 후회가 있지만 그중에 가장 큰 후회는 어떤 것이냐?
그것은 지금까지의 과거에 있는 게 아닙니다. 제일 큰 후회는 뒤에 있습니다.
그 후회는 앞으로 하게 될 후회입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 하는 후회가 아니라 죽어서
무덤 건너편에서 하나님 보좌 앞에 섰을 때 할 후회입니다.
나는 이 땅에서 당당하게 살았다 떳떳하게 살았다 후회 없이 살았다 이렇게 큰소리치면서
자신 있게 죽습니다.
그러나 인생에게는 죽은 뒤에 무덤에 가서 하는 후회가 있습니다.
죽고 나서야 후회하게 된다면 이것은 너무나 무서운 후회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지 예수는 믿어서 뭐하느냐?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죽으면 그만이 아닙니다.
죽음 뒤에 영혼의 세상에 그 때 가서 하게 되는 후회가 있는데 그때 할 후회가 제일 큰 후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미래에 해야 할 후회가 남았다 이겁니다.
여기까지 이해가 되면 아멘~·
죽고 나서 하게 될 가장 큰 후회는 이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과 좀 더 바른 관계를 했더라면 좋았을 걸...
이 후회는 누구나 죽고 나서 모두 할 후회입니다. 후회 중에 제일 큰 후회입니다.
그러나 죽어서 할 후회를 이 땅에서 미리 앞당겨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후회로부터 벗어날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큰 후회는 죽음 건너편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후회는 무엇이냐?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하지 못하고 산 것을 후회하는데
지금부터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된다면
이것은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바로 하는 것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후회를 해본 일이 없는 인류 최초의 인간입니다.
예수 믿지 아니하고 예수 영접하지 아니하면 후회 중에 가장 큰 후회를 하게 됩니다.
예수 믿지 않고 죽으면 그것이 바로 인생에 가장 큰 후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으면 가장 큰 후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일은
가장 큰 후회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과 저도 지나간 일은 어찌 할 수 없습니다. 이미 후회를 많이 했기 때문에... 그러나 지나간 후회가 앞으로도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성경은 이렇게 하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이성을 의지하지 말고, 여러분의 생각에 믿음을 주지 말고, 여러분의 이성을 조용히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이성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예수님을 심어 놓으면, 모셔 놓으면 앞으로 많은 후회로부터 벗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 한 번도 후회가 없으신 예수님의 권면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이대로 돌아가면 지금까지 했던 일을 또 되풀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확신이 지금의 후회가 되고 지금의 확신이 미래의 후회가 되는 이 행진을 계속 하게 되는 것입니다
찬양---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나요(873)
지금 이 시간 그 후회를 줄이도록 제가 반 강제로 이성을 내려놓아 드릴게요.
따라합시다---나의 이성아 지금 이 시간 내가 너에게 명령한다. 조용히 내려와라.
지금까지 나를 후회로 만든 이성아 이제는 내 속에서 조용히 내려와라
이제는 여러분 이성에 근거하여 큰 소리 치면 돼요? 안 돼요? 안 됩니다.
이제는 여러분 그 자리에 누가 들어가 있느냐? 예수가 들어가 계십니다.
예수가 들어가 계시면 많은 후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후회하지 않으려면 예수와 연합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후회의 씨를 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후회는 무덤 건너편에 가 봐야 합니다. 지금의 후회는 예행 연습니다.
우리는 무덤 건너편에 가서 할 후회를 지금 여기서 해야 합니다.
후회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빨리 후회하는 사람은 잘못된 후회를 바꾸어 놓을 기회가 있습니다.
잘못된 거짓확신이 오래가는 것은 그만큼 손해입니다.
어차피 후회할 것이 있다면 이 자리에서 한꺼번에 털어버리시길 바랍니다.
예수 모르면 인간 최후의 후회를 합니다. 예수란 분이 이렇게 위대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부탁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후회 안할 수는 없습니다.
작은 후회는 사는 동안 계속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인간 최고의 후회가 뭐냐? 그것은 죽음 건너편에서 하는 후회입니다.
죽음 건너편에서 할 후회는 이 자리에서 끝내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지 않았던 후회에서만 자유 함을 얻어도 나머지 후회가 점점 적어질 것으로 믿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하면 후회로부터 점점 벗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미 지나간 후회는 할 수 없지만 미래에 대해선 후회가 점점 적어지길 바랍니다.
교회를 오래 나오셨거나 지금 나오셨거나 누구든지 간에 자유 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후회의 씨앗을 바꾸어야 합니다.
내 생각 내 판단 내 의지를 삶의 중심에 놓으면 후회가 이어집니다.
그러나 예수 중심으로 살게 되면 그 사람은 후회로 부터 벗어납니다.
많은 후회의 찌꺼기가 벗어집니다.
후회가 늘어나길 바라나요? 아니지요?
점점 갈수록 후회가 줄어 들어야합니다.
찬양합시다---그 길고 긴 방황의 늪을 지나(911)
많은 과거의 확신이 현재를 만들었습니다.
죽음 건너편에 가서 후회하는 것 까짓거 죽으면 그만이다. 그런 생각은 무서운 것입니다.
후회를 줄이려면 예수를 믿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예수 믿길 잘 했다 순종하길 잘했다 그런 날이 오게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의 이성의 자리에 예수님을 심으시길 바랍니다.
기도합니다.
7.주총동원주일설교 (죄를 용서받자)| -목사님설교-
총동원 주일 여섯 번째 주일
죄를 용서받자 사59 : 1- 8
오늘은 죄에 대한 말씀을 상고합니다. 결코 기분이 상쾌한 제목은 아닙니다. 죄! 죄!
한번 따라서 합시다. - 죄
이 죄라는 것을 생각하기도 싫고 별로 기분 좋은 말도 아니지만 이 죄라는 것이 분명히 실존하고 현존합니다.
성경에 보면 죄를 안 짖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이렇게 성경에 쓰였는데, 사실이 그런지 이 시간에 제가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죄 한번도 안 지은 사람 한번 손들어 보세요. 죄, 나는 태어나서 죄를 한번도 죄라는 것을 져 본적도 없다.
성경이 맞는지 안 맞는지 내가 한번 확인을 해보려고 그래요. 나는 성경을 믿거든요 여러분도 성경을 믿어요? 아멘, 아멘 안 하신 분도 많으신 데 저는 성경을 믿는 목입니다.
성경을 얼마큼 믿느냐 저는 일점일획까지도 믿습니다. 일점일획, 성경은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는다고 나는 그렇게 믿는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니까 죄를 안 짖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그 말씀이 맞는지 내가 한번 확인해 보려고 해요. “한번도 죄 안 짖어 사람 한번 손들어 보세요. 태어나서 나는 죄를 한번도 진 적이 없다. 죄를 한번도 진 적이 없다. 보세요. 손든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보니 여러분들도 죄를 지기는 졌는가 봅니다. 그러면 또 죄를 한번도 안 지은 사람을 본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나는 죄를 졌지만 죄를 한번도 안 지은 사람을 내가 본적이 있다. 저 사람은 태어나서 죄 한번도 안 지었다.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다. 한번도 죄 안 지은 사람 본 사람 손들어 보세요.
죄 한번도 안 지은 사람 없어요.
한번 따라서 합시다. - 의인은 없나니 한 명도 없다.
로마서 3장 한번 넘겨보시면. 10절부터 한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시작!....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한번 따라서 합시다. -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의인은 없는데 몇 명도 없어요. 단 한 명도 없다.
그러고 보니까 성경 말씀이 맞는 말씀이라면 오늘 이 가운데 오신 여러분들도 의인은 없다는 것입니다. 의인이 없다고 성경에 쓰였으니까! 저는 성경을 믿으니까 그리고 좀 전에 현장 조사를 해봐도 의인은 여기 죄 안 지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했으니까 오늘 이 가운데 오신 모든 분들은 크고 적다의 차이 뿐이지 다 죄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보면 죄의 차이를 크기가 큰 차이가 나는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모래알도 바다에 빠지고 바위 덩어리도 바다에 빠집니다. 물에 빠지는 속도만 다를 뿐이지 빠지는 것은 똑 같습니다.
이와 같이 죄의 크기가 사람이 사람을 볼 때는 죄의 크기가 크게 보입니다. 저 사람은 나보다 더 큰 죄인이야. 나는 저 사람보다 죄가 작어. 작다 크다 해도 하나님 나라에서 보면, 하나님이 보시면 그 죄가 그 죄입니다. 같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인입니다.
이해가 되세요? 이해가 안돼요?
인간의 죄라고 하는 것이 내가 저 사람보다 더 선하다 나는 죄가 더 적다해도 그게 적은 게 아니라 그 죄가 그 죄고 그 죄가 그 죄입니다. 다 죄인 이예요 인간은 다 죄인입니다. 이해되시면 아멘 합시다.
그러면 죄가 있는 사람은 어떤 현상이 일어나느냐? 이 죄는 무서운 현상을 일으킵니다.
자동차를 몰고 가다보면 안개가 많이 끼어서 낮인데도 앞이 잘 보이지 않아서 접촉사고도 많이 납니다.
안개가 꽉 끼면 바로 앞에 차도 안보입니다. 그와 같이 인간 마음속에 죄라고 하는 것은 안개와 같아서 내 앞을 못 보게 만들어 버립니다. 무얼 못 보게 만드느냐? 이 죄는 무서운 현상을 일으켜요.
한번 따라서 합시다. - 죄는 안개와 같다.
안개 끼니까 안 보이잖아요. 안 보이니까 충돌하고 사고 나지요. 이 세상에서도 안개가 끼면 대낮인데도 새벽과 같이 어두컴컴합니다. 안개가 끼니까 다들 조심조심해서 운전을 합니다.
영혼의 안개가 뭐냐? 죄입니다. 죄....
따라서 합시다. - 죄는 영혼의 안개다.
영혼의 안개가 심령을 덮어 버리면 죄가 심령을 덮어 버리면 안 보여요. 뭐가 안 보이느냐. 하나님이 안보입니다. 오늘 마음에 죄에 안개로 덮여 있는 사람은 그 안개가 싹 걷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안개와 같은 죄가 싹 걷히고 돌아가야 됩니다. 아멘!
* 찬송 - 488장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그러므로 여러분께서는 하나님이 없다는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예수님이 없다 그런 소리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없다 또 예수님이 없다 그러면 그 사람은 야만인입니다.
한번 따라하세요. - 하나님이 없다 하면 야만인이다.
하나님이 없다하는 사람은 상식 이하의 사람입니다. 인간 마음속에 죄악의 안개가 덮어서 심령을 마비시켜 영을 눈을 멀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안 보입니다. 죄악의 안개만 걷히면 하나님이 잘 보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 또 처음으로 교회 나오신 분들도 다 죄의 안개 그대로 덮어서 가시면 안 됩니다.
따라서 합시다. - 죄의 안개는 걷혀 지라.
싹 말끔히 걷어지기 바랍니다. 죄의 안개를 가지고 그냥 집에 가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그 안개 때문에 피해를 봅니다.
안개가 많이 끼면 교통사고 많이 나요? 안나요? 많이 납니다. 고속도로에서 순식간에 몇 중 충돌사고가 납니다.
그러니까 오늘 여러분들이 죄악의 안개를 그대로 덮어 가지고 살면 사고를 많이 일으킵니다. 그 모든 사고들이 영적 사고들입니다. 그런 영적 사고 안 나려면 안개가 깨끗이 걷혀서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죄악의 안개는 걷혀져야 됩니다. 믿습니까? 아멘!
생활 속에서도 유리창을 깨끗이 안 닦으면 밖이 잘 안보입니다. 눈 오는 날 유리창을 내다보세요. 눈이 내려서 눈이 유리창에 붙어 있으면 밖이 잘 안보입니다.
그와 같이 인간 속에 죄악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을 영혼의 눈을 가려 버립니다. 제가 처음 서두에 물어보니까 죄 없는 사람 손들어 물어보니 한 명도 없었습니다. 다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 죄가 그대로 있으면 그 죄를 청소를 해야 됩니다. 유리창을 일년에 한번은 닦아 줘야지 게을러 일년에 한번도 유리창 청소를 안 하면 되겠어요.
눈 오는 날 고속도로를 달려 보세요. 눈 오는 날 고속도로 달리면 은요. 밤에 달릴 때 보면 앞차의 바퀴에서 나오는 눈하고 모래하고 섞인 그 먼지를 뒤로 푹 품으니까 우리 차 앞의 라이트 헤드라이트를 그냥 막 갖다 때려서 나중에 보면 시커먼 먼지하고 눈하고 섞인 것이 헤드라이트 앞을 다 가려버립니다. 그러면 자동차 라이트를 켜도 안 보입니다. 그러면 오다가 다시 내려서 휴지로 깨끗이 닦아내고 라이트를 켜면 환하게 불빛이 비칩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내 심령의 영혼에 헤드라이트가 먼지가 끼거나 눈이 와서 앞에 먼지 때문에 더러워지면 불을 아무리 강하게 켜도 안 보이는 것처럼, 죄악에 먼지가 끼워버리면 죄악의 먼지가 사람을 덮으면 그 때부터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것이 흐려집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청소하고 돌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 죄악은 사람의 심령을 아주 송두리째 마비를 시켜 버립니다.
여러분 컴퓨터를 사용하시지요. 컴퓨터를 통해서 원하는 것은 다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컴퓨터에다가 물 한바가지 부으면 컴퓨터가 나올까요? 안나올까요? 안나옵니다. 왜 그러느냐 컴퓨터 안에 있는 회로가 마비가 되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죄는 인간의 영혼의 회로를 죄악으로 마비시켜버립니다. 회로를 마비 시켜버리면 인간의 영혼의 기능이 다 마비가 되어버립니다. 이렇게 무서운 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읽은 성경에 보면 죄악의 구름이 덮어 있거나 먼지가 끼거나 죄악의 물이 부어진 사람은, 심령에 회로가 다 망가져 버린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니까 이사야 59장을 보세요. 이렇게 써 있지 않습니까? 이사야 59장을 보면 이 죄가 무서운 것입니다.
사59:1-2절 다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그러니까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한 분도 빠짐없이 죄악의 안개는 걷혀져야 됩니다. 이걸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영혼의 교통사고 납니다. 큰 사고가 납니다.
오늘 이 시간 이 죄악은 다 사라져야 될 줄로 믿습니다.
찬송하나 부르고 이 죄악을 어떻게 하면 살아지게 할 것인가 말씀을 드리겠어요.
* 찬송 - 487장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그러면 사람 영혼을 덮고 있는 죄를 어떻게 해결 할 것인가? 사람 영혼을 덮고 있는 죄는 사람이 만든 방법으로는 해결할 길이 없어요. 이것은 옷처럼 물로 빨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도를 닦는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수양을 해도 안됩니다. 자선을 해도 안됩니다.
지금부터 내가 죄를 안 짓기 위하여 참선을 하고 저 깊은 산 속에 들어가서 집을 혼자 지어놓고 밥을 먹으면서 아무 사람과 대화도 안하고 나 혼자 고행을 하며 참선을 해도 죄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는 것은 왜 그러느냐 하면 지금까지 진 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아니 지금부터는 이빨을 꽉 깨물고 나 다시는 죄 안 지을 꺼야. 이런다 해도 지금까지 이미 쌓아 놓은 죄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것은 해결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눈을 감고, 이를 꽉 깨물고 바위 위에 앉아서 도를 닦으며 나 죄 안 지을 꺼야 해도 그 속에 벌써 죄가 또 움직이고 있습니다. 죄라고 하는 것은 행동으로 만 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 생각의 죄는 더 큰 죄입니다.
또 뭐 한 10년 됐나? 남의 종교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지만 뭐 불교의 큰스님 어떤 분이 돌아가셨다 해서 온 난리를 피우고 그냥 세상이 떠들고 산은 산 이로다 뭐 어쩌고 하고 별소리 다하고 그러는데요. 내 참! 그리고 뭐 그 스님을 화장을 했더니 사리가 몇 천 개 나왔다든가 사람의 시체를 화장하고 사리가 많이 나오면 그 사람은 덕을 많이 쌓은 사람이라는데, 참 야만인적인 짓 하지 마세요. 요즈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화장할 때, 뒤에서 나중에 사리를 주먹으로 던졌다는 비리의 소문도 들리는데, 그런 야만인 짓 할 필요 없어요. 돼지를 화장해도 나와요. 돼지 돼지고기 불고기 해 먹어봐. 딱 딱 씹히는 것. 돼지를 화장했더니 사리 많이 나왔데. 돼지도 화장하면 사리가 나와. 그런 야만인 짓 하지 마세요.
말 같지도 않을 짓을 해야지. 죄가 없어지라고 태우면 전광훈 목사 죽은 뒤에 화장 한번 해 보시오. 사리 몇 개 나오나. 사리 많이 나오면 우리 모르게 죄 많이 지었구먼. 그런데 잘 들으시오.
메스컴에서 그 분을 하도 떠들어대서 그 분의 전기를 읽어보았어요. 도대체 얼마큼 도를 통하고 큰스님으로 대단한 일을 했기에 그렇게 이름이 났는가? 별것 아니요. 그 분이 젊어서 딸을 낳았더라고. 딸을 낳고 그 때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가정을 버리고 딸도 버렸습니다.
그리고 수도하러 들어갔어요. 그러면 딸한테 지은 죄는 더 큰 죄지. 무슨 부모가 부모의 사명을 다 해야지. 낳아 놓기만 하고 짐승처럼 “나가! 이 새끼야!” 그리고 나 혼자 산 속에 가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부모에 대한 책임을 다 안하는 게 죄지요.
난 그분이 대단한 사람인줄 알았어요. 내가 전기를 읽어보니까 대단도 아니고 여러분과 나보다 더 나쁜 놈이요. 자기 딸내미를 놔두고 아이구! 딸내미 내 버려 버리고 산 속에 들어가서 무슨 입신 수도하겠다고 합니까?.
그러니까 인간의 의는 뭐냐. 인간의 의는 다 헛된 것입니다. 인간의 의는 사람은 자기의 죄를 없이 하려고 해 봤자 없어지는 것 아니고 더 큰 죄가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모든 자존심 교만 다 내려놓고 죄를 속죄함 받는 하나님의 방법을 택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어떻게 했습니까?
죄 없는 하나님이 사람의 뱃속에 10달 동안 와서 살았습니다. 마리아의 뱃속에 그 하나님이 인간의 육체의 옷을 입고 땅에 와서 33년을 살았어요. 우리 예수님 결혼 안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여러분과 저를 위하여 우리 죄를 씻어주시려고 우리 모든 죄를 다 해결하시려고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 보좌를 비워두고 땅에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33년을 사시고, 여러분과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통하여 보험을 들어 놓은 거예요. 보험 알아듣기 쉽게 말해서 보험을 들어 놓은 것입니다.
부모들이 자식이 어릴 때 혹시나 내가 불의의 사고로 죽지 않을까 죽으면 내 자식은 불행하게 할 수 없다 하여 어린 애기들 앞으로 보험을 들어 놓고 보험금은 누가 내냐 부모들이 냅니다. 혜택은 누가 보느냐. 자식이 봐요.
그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과 제가 이 땅에 태어나기도 전에 벌써 태어나서 우리가 죄인으로 태어날 줄 아시고 우리가 다 죄 질줄 아시고 십자가 보험을 들어놓았다.
우리는 그 혜택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보험을 들 때 보면 보험금을 넣는 사람과 수혜자, 혜택자 이름을 꼭 쓰라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보험을 든 사람들은 보험 계약서에 보니까 1차 수혜자, 2차 수혜자, 이 사람이 죽으면 첫째는 누구, 둘째는 누구, 이렇게 혜택 보는 사람을 써놓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미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십자가에 죽으신 그 피의 효험을 인류를 위하여 죽으니 내게 죽음에 대한 대가를 누구한테 돌리느냐 죄인들에게 우리에게 혜택을 보도록 십자가에 보험을 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피의보험입니다.
따라서 합시다. - 십자가의 피의보험!
누가 해당자냐. 해당자의 이름은 이렇게 써 있습니다. 죄인이라고 써 있어요. 죄인. 죄인을 위하여 들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 한 사람도 의인이 없고 다 죄인이라면 예수 십자가의 그 보험의 해당자로 여러분이 다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해당이 된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오늘 이 시간 신고해야 됩니다.
그 신고가 뭐냐. “주께 고함 없는 고로 우리가 입으로 시인을 하면” 하나님께서는 요것만 요구하십니다. 큰 것 요구하는 거 아닙니다. 이렇게 하라는 거예요. 이렇게 입으로 시인해야 됩니다.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험의 피로 내 죄 씻음 받기 원합니다. 나는 그 십자가의 혜택을 보기를 원합니다.” 라고 하는 말, 당신의 자존심 하나만 굽혀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뻣뻣하게 버티며 “나는 당신이 나를 위하여 십자가의 보험을 들어놓아도, 난 치사하게 당신의 혜택을 보지 않겠어. 난 당신에게 신세를 안 지겠다”고 하면 그 사람의 죄는 용서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십자가의 피를 적용할 수 가 없어요.
따라서 합시다. -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이 말 한마디 만 해달라는 거예요. 한 마디만하고 예수님이 2000년 전에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보지도 못했지만 목사님 말씀에 또 성경에 십자가에서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먼저 피를 흘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어. 보험을 다 이루어 놨다하니 나도 그 혜택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말 한마디만 해달라는 거야. 말 한 마디만 해주면 주님이 그 모든 효과를 적용시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못 하겠습니까? 그것 한번 못하겠어요.
그러니까 이 땅에 태어난 인간들이 지옥 가는 이유가 죄가 많기 때문에 지옥 가는 게 아니라 지옥 가는 사람은 이 말 한마디 하기 싫어서 지옥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난 죄인입니다. 십자가에 나를 위하여 흘린 그 피로 내 죄를 씻어 주세요, 라고 그것 한 마디 굴복하기 싫어서, 하나님 앞에 굴복하기 싫어서, 그것 때문에 지옥 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그래서 저는 설교하는 설교자로써, 이 교회목사로써, 오늘 처음 이 교회에 오신 여러분들에게 같은 인간으로써 부탁 한 번 드리고 싶습니다.
그 말씀 한 마디 만 해 주세요. 나는 죄인입니다. 그 한마디만 해주시면....
집에서도 보면요. 아빠는 주로 공의로 나타나서 애들이 숙제 안하고 공부 안하고 말썽피우면 막대기 들고 야! 하고 혼내면, 엄마는 아이 옆에 가서 뭐라 그래. 빨리 아빠한테 잘못했다 그래. 그런데 코가 센 놈은 씩씩거리면서 잘못했다는 소리를 안 합니다. 엄마가 아빠! 잘못했어요, 하고, 아빠가 안 때리거든 인정했다는 얘기지요.
판사들이 재판 할 때도 마지막 진술하시오. 눈물을 흘리면서 내가 원래는 이렇게 안 하려고 했는데 어떻게 하다 내가 이런 실수를 했습니다. 판사도 인간인지라 속으로 울어요. 판사는 겉으로 안 우는 것 같지만 집에 가서 생각해요. 이것은 절반으로 감형이다. 참조한다 말이요. 그런데 뻣뻣하게 서 가지고 대한민국에 법이 잘못된 거야. 000같은 놈들이라고 해버리면 판사가 집에 가서 뭘 찼나? 더 추가 할 것 없나 추가 할 것만 찾는 거예요. 판사도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를 분노케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다 하나님 앞에 머리 숙이고 이렇게 하면 됩니다.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내 죄를 씻어주세요. 할렐루야! 아멘!
그렇게 하시면 죄가 완전히 용서됩니다. 보세요! 안개가 걷히는 것처럼 그렇게 없다고 하는 하나님이 서서히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확신이 생깁니다. 그리고 곧 여러분은 전도자로 돌아서게 됩니다. 간증자로 돌아섭니다. 아! 나는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보인다. 이런 감격의 기쁨에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다 머리를 숙이시고 이 시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죄 없는 사람 없습니다. 그러나 그 죄를 그대로 가지고 사는 사람은 안개가 덮인 사람과 같습니다. 안개 덮이면 앞이 안보여요. 죄악의 안개가 덮인 사람은 볼 수가 없어. 오늘 그 안개는 주님 십자가의 피로 말끔히 걷어 질 수 있습니다.
오늘 교회를 처음 나오셨거나, 마음에 평강이 없거나, 교회 다니다가 낙심하고 있다가 나오셨거나, 나는 죄인입니다. 하나님 나도 죄 용서를 받고 싶습니다.
그런 사람은 인도자와 함께 그 자리에서 일어서기를 바랍니다.
자! 오늘 처음으로 교회 나오신 분들 그 자리에서 한번 일어나세요.
인도자와 함께 그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서슴지 마시고, 머뭇거리지 마시고, 지금 이 순간이 아주 중요한 순간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이 일어서는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한 마디만 말해주기를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십니다. 형제자매들이 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많은 영혼들이 일어났습니다. 주님 기억하여 주세요. 구원받게 하여 주세요. 생명의 길로 인도하여 주세요. 무엇보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범한 모든 죄가 씻음 받게 하여 주세요. 다같이 우리 합심으로 기도하겠습니다.
* 기도
살아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일어선 형제자매들을 기억하여 주세요. 우리는 죄가 다 많습니다. 그릇 행하였습니다. 각기 제 길로 갔습니다. 저 머리카락보다 더 검은 죄. 주님! 용서하여 주세요. 예수님 씻어 주세요. 주님께로 가까이 가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앞으로 한번 가까이 가기를 원합니다. 살아 계신 주님이시여! 구원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여 주시고, 씻음 받는 시간 삼아 주시옵소서.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일어선 형제자매들 저를 따라 기도 한번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기도가 우리의 죄를 다 용서받게 하는 인도의 기도가 될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 크게 한번 하세요. 살아 계신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죄가 많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용서받기를 원합니다. 십자가의 피로 씻어주시옵소서. 내 영혼을 거듭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생명책에 이름을 기록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자녀 되기 원합니다.
구원받기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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