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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인내로 경주하는 사람 (본문 히12:1-3)

by 【고동엽】 2021. 12. 10.

인내로 경주하는 사람   (본문 히12:1-3)


지금 세계 각국의 시선이 호주 시드니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시드니에서는 세계 각국 선수들이 한데 모여 금메달을 향해 총력을 경주하는 올림픽이 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각 종목에 걸려 있는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 각국 선수들은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선수들이 목에 거는 금메달은 하루아침에 거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몇 년 동안 피나는 연습과 강력한 훈련을 통해서 쌓아올린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인내하면서 경주하는 사람에게 귀한 메달이 돌아간다는 평범한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신앙생활이 마치 올림픽에 출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선수들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11장에서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조상들과 그들의 업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처럼 살고자 하는 사람들과 그들처럼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 비결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예수 님을 바라 보라"는 것입니다. 예수 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다른 말로는 고난과 인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한평생 예수 님을 바라보고 예수 님을 따라가는 것은 마치 경기에 임하는 선수가 온갖 고통을 견디고 참아야 하는 것과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라고 한 것입니다. 인내란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만, 헬라어 원문의 뜻은 지속적으로 일정한 상태에 머물면서 견디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라도 끝까지 참고 견디는 것을 인내라고 하는 것입니다.

⑴,인내해야 할 이유
①,증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호주의 시드니에는 세계 올림픽 경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올림픽에는 200여 국에서 많은 선수와 임원들이 참여하여 열띤 메달 경쟁을 펼치고 있고, 또 각 경기장에는 많은 관중들이 선수들의 경기하는 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많은 응원단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본문은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고 했고 그 증인들은 구름같이 둘러싸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느 어머니가 아들이 입학 시험을 치르는데 따라 갔다가 너무 추워서 자동차 속에서 초조하게 한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아들은 첫 시간 시험을 보고 쉬는 시간에 담 너머로 어머니를 잠깐 만났는데 시험을 못 봤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그래, 미안하다. 지금부터는 내가 저 솔밭에 가서 기도할 터이니 최선을 다하여라"하고 당부하고선 추운 땅에 꿇어앉아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시험을 마치고 나온 아들은, 시험을 보는 동안 줄곧 어머님의 기도하시는 모습이 떠올라 큰 힘이 되어 시험에 집중할 수 있어서 잘 치렀다고 어머님께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위하여 정성을 쏟고 기도하는 분이 많습니다. 구름과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먼저 가신 믿음의 조상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특히 예수 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힘있게 경주할 수 있었고, 스데반도 원수를 사랑하는 경지까지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허다한 증인이란 말은 그 수를 셀 수 없다는 뜻도 있고, 한마디씩 하는 사람들이라는 뜻도 될 수 있습니다. 운동 선수끼리만 하는 경기는 재미가 없습니다. 연극도 구경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인내하며 신앙의 고된 경기를 계속해 나가야 하는 이유는 허다한 관전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미 우리보다 먼저 게임을 치른 노장들이기 때문에 훤히 경기를 꿰뚫어 보면서 격려와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행7:54이하를 보면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는 장렬한 순교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돌에 맞기 직전 하늘이 열리고 주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대개 다른 곳에는 주님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유독 스데반이 순교하는 시간만큼은 주님께서 일어서 계셨던 것입니다. 그 의미를-존 칼빈은: 심판자가 아니라 변호사로서 서 계셨다고 해석합니다. 챨스 스펄젼: 위대한 개선 장군을 응원하고 환영하기 위해서였다고 해석하였습니다.

②,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시드니에서 올림픽이 경기에서 초반 5일이 지날 때까지 우리 나라 선수들은 금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해서 선수들과 임원들 그리고 국민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19일에 비로소 18세의 여자 고등학교 학생인 윤미진이란 어린 학생이 장하게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그 다음 날 펜싱 종목에서 김봉호 선수가 예상 밖의 선전을 하여 귀중한 금메달을 하나를 더 추가했고, 21일에는 양궁 여자 단체전에서 또 하나의 금메달을 추가하여 조국의 명예를 한껏 드높였습니다. 우리 나라 선수들은 금메달뿐 아니라 은메달과 동메달을 추가하여 종합 성적 10위안에 들게 했습니다. 선수들이 각고의 노력 끝에 딴 금메달은 그 자체를 돈으로 환산하면 사실 얼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메달이 지니는 영광은 전세계적인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등이라는 그 사실 자체가 상급이며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한평생 열심으로 일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얻은 것은 의의 면류관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준비해 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상은 누구나 다 받는 것이 아닙니다. 상 받을 만큼 열심히 뛰고 달린 사람들만 받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받는 상도 귀한데, 주님께서 준비하시고 수여해 주시는 그 상이라면 얼마나 귀하고 영광스럽겠습니까?

⑵,두 종류의 인내
①,경기자의 인내입니다.
특히 신앙의 경주를 장애물 경주에 비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는"일이 필요합니다. 인내는 헬라어로는 "휘포모네"(hupomone)라고 합니다. 그 뜻은 멍청히 머리를 숙이고 팔짱을 끼고 체념한 채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곤란이라도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장애물 경기는 보통 달음질과는 다릅니다. 초등 학교 시절 학교 운동회를 하는데 그 운동회에는 많은 경기들이 있었습니다. 가름대 뛰어넘기, 그물 밑으로 기어가기, 눈 가리고 달리기, 사람이나 물건 찾아 함께 달리기 등. 그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의 하나가 바로 장애물 경기였습니다. 특히 그물 밑으로 기어가는 경우는 이마가 벗겨지고 무릎이 깨져 피가 날수도 있지만 남보다 앞서야 된다는 승부감 때문에 열심히 뚫고 나갑니다. 본문에서는 신앙의 경기를 방해하는 것을 두 가지로 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입니다. 여러 곳을 오랫동안 여행하려고 할 때 짐이 많으면 거추장스럽고 고생스럽습니다. 등산도 짐이 많으면 높이 오르기가 어렵습니다.

지난 94릴레함메르 겨울 올림픽에서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000m에서 금메달의 꿈을 이룬 미국의 [댄 잰슨]은 경기에 입고 나온 유니폼이 공기저항을 덜 받도록 특별히 제작된 유니폼을 입고 나왔다고 합니다. 하늘색 바탕에 붉은 색으로 디자인 된 잰슨의 경기 복은 언뜻 보기에 평범해 보이지만 다리와 팔에 실리콘 줄을 달아 공기 흐름을 일정하게 해 선수의 경기 진행 방향을 곧게 했다는 것입니다. 상어의 거죽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이 실리콘 띠는 일반적으로 아무런 장착이 없는 경기 복이 바를 가를 때 불규칙하게 흐름이 흩어지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어 기록 경신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경기에서도 상을 받으려면, 이기려고 한다면 영적 공기의 저항을 받는 무거운 죄 짐이나 장애물이 많으면 안됩니다. 주경가 바클레이는 "멀리 가기 위해서는 가벼운 여장이 필요하다. 인생의 행로에 있어서도 불필요한 것은 정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습관, 오락, 욕망 그리고 인간관계가 장애가 되고 있다면 출발점에서 경기자가 윗저고리를 벗는 것처럼 그 모든 것들을 벗어버리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죄를 벗어버리고 얽매이는 것들을 떨쳐 버리고 싶지만 그렇게 할 힘이 없다는데 있습니다. 바로 거기에 고민이 있는 것입니다. 우린 그때 주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마11:28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일1:9을 보면, "모든 죄는 주께 나와 고백함으로 용서받게 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내가 달리고 있는 신앙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들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그것들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와져야 합니다.
-그리고 경기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본문이 말하는 "경주를 경주한다"는 것은 경기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또 "경주를 경주한다"는 것은 자기 경기에 최선을 다하고, 남의 경기에는 간섭하거나 끼어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옛날 한 젊은 재상이 나이 많은 임금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죄의 유혹을 피하고 많은 시험을 이겨서 나라를 위한 깨끗한 충신으로 일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입니다. 임금님은 그 뜻이 기특하다고 생각하여 지혜를 베풀었습니다. 그 젊은 재상으로 하여금 컵에다가 물을 가득히 채워서, 이 컵을 들고 제한된 시간 안에 시내를 한 바퀴 돌되, 물을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큰 벌을 내리겠다고 하명했습니다. 그리고 창과 칼을 든 군사들을 재상 뒤로 따르게 했습니다. 젊은 재상은 질문 한번 했다가 큰 곤욕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드디어 임금님이 명하신 대로 제 시간에 물 컵을 들고 궁전으로 돌아왔습니다. 임금님은 크게 칭찬하시며 그의 수고를 고마워했습니다. 그리고 물으십니다. "자네가 시내를 한바퀴 도는 동안 여자를 보았나?" "못 보았습니다." "그럼 술집은 보았나?" "못 보았습니다." "그러면 길거리에 사람들이 많이 나왔던가?" "임금님, 못 보았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본 것이 없습니다." 이때 임금님은 "바로 그것이야. 내가 할 일을 열심히 하노라면 하지 않아도 되는 시시한 일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법이야"라고 말씀하시며, 왜 그런 일을 시켰는가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노라면 하지 말아야 될 일은 자연히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될 일이 나를 유혹하고 시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목표를 향하여 초점을 똑바로 하고 그리로만 달려가는 자에게는 문제될 것이 전혀 없습니다. 신앙의 경기도 예외가 아닙니다. 다른 곳에 눈을 돌리거나 관심을 갖게 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나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그는 결국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②,예수 그리스도의 인내입니다.
본문은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주님의 세 가지 인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십자가는 다음의 몇 가지 이유에서 참기 어려운 것입니다.
㉠,십자가는 "수치스러운" 것입니다. 파렴치범이나 국사범 혹은 정치범을 처형하는 도구였기 때문에 십자가에 죄수를 처형하는 것은 성밖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두고두고 그 명예와 이름이 땅에 떨어지고 지탄받는 수치스러운 형틀이기 때문에 십자가는 참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 어려운 십자가의 고통을 예수 님은 잘 참으시면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십자가는 "고통스럽습니다." 손과 발에 못을 박아 매단 후 고통받다가 죽도록 버려두는 것이 십자가 처형입니다. 팔목이 찢기고 발이 찢기는 아픔은 숨이 멎는 순간까지 계속됩니다. 그 고통은 정말 참기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는 손가락 끝에 조그마한 가시 하나만 찔려도 쑤시고 아픔 때문에 견디기 힘든데 우리 주님은 십자가상에서 그 모든 고통을 다 당하셨습니다.

㉢,"정신적 아픔"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정신적 아픔을 십자가에서 체험하셨습니다. 그래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부르짖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러한 아픔을 다 참으셨습니다.

㉯,부끄러움을 참으셨습니다.
사람은 짐승과 달리 자존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짐승은 자존심이 상했다고 해서 타려던 차를 안 타거나 먹으려던 음식을 안 먹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다릅니다. 자존심 하나 때문에 싸우고, 안가고, 안 먹고, 안탈 때가 많습니다.

다윗의 혈통을 타고난 명문가 출신 예수, 자아가 가장 강한 때인 젊은 나이의 예수, 희망과 꿈이 무르익는 때인 30대의 예수, 그런 그가 벌거벗겨진 채 십자가에 달려 죽는다는 것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그 모습을 많은 병정들이 보고 있었고, 많은 그 당시의 지도자들이 보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어머니를 비롯한 몇 명의 여인들이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참으셨습니다. 이유는 죄나 잘못이 있어서 당하는 부끄러움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거역도 참으셨습니다.
3년 동안 예수 님께서는 숱한 반대와 도전과 모략과 중상을 받으셨습니다. 본문은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셨다"고 말합니다. 큰소리칠 수 없는 사람들이 예수 님을 거역했습니다. 죄인들이 예수 님을 정죄했습니다. 그것은 굴욕이고 모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참으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겠습니까? 본문은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라고 이야기합니다. 앞에 즐거운 일이 있고, 상이 준비되어 있다면 잠깐 동안 참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화내는 것도 그렇습니다. 순간적으로 화내고 온종일 속이 답답하고 괴로운 것보다는 그 순간 인내하여 온 종일 기분 좋고 마음 편한 것이 훨씬 좋을 것입니다. 공부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 인줄로 생각합니다.

고난은 견디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이나 고통을 참지 못하면 신앙 경기에서는 낙오자가 되고 맙니다. 고통이나 고난을 견딜 수만 있다면 그것 때문에 금메달을 달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주님의 도우심을 기도하십시다. 주의 능력으로 내가 겪고 있는 고난을 인내하고 극복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주안에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출처/이석권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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