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총리 중에 타게 에를란데르(Tage Erlander)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매주 목요일마다 정적(政敵)을 만났다. 정적은 재계 인사와 우파 정치인들이었다. 에를란데르는 스웨덴 복지국가의 완성자다.
45세에 총리에 올라 68세로 정치를 관두기(재임 기간 1946~69년)까지 운동권 출신으로서 23년간 총리를 하면서 각계각층 인물들과 스스럼없이 만나 대화와 타협을 했다.
그의 정치는 스웨덴을 ‘국민의 집(The people’s home)’으로 만드는 데 집중됐다.
이 기간 중 전 국민 의료보험,
전 국민 연금 지급,
4주 휴가제,
9년간 무상교육,
100만 호 주택 건설했다. 그의 이룸으로 국가는 국민의 안전한 보호처요 따뜻한 가정이 되었다. “그 집에선 누구도 특권의식을 느끼지 않으며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다”는 게 국민의 집의 가훈이다.
에를란데르가 추구한 건 복지국가였다. 그는 경제를 일으키면서 복지에 투입할 돈을 댈 수 있는 자본가의 협조가 필요했다. 좌파 권력을 두려워하는 자본가 집단, 재계와 대화가 시작됐다.
그때 에를란데르의 초대장엔 “난 목요일이 한가한데 일단 만나서 얘기합시다”라고 쓰여 있었다. 그 뒤에 아예 “목요일 저녁을 비워놓을 테니 함께 식사합시다”라고 제안했다. 노사정, 여·야·정 협의가 이어졌다. 스웨덴 현대사에서 ‘목요 클럽’은 아주 유명한 만찬 모임이다.
목요 클럽은 지방에 있는 총리의 여름 별장에서, 스톡홀름의 특별한 고궁에서도 진행됐다. 파업 종식, 임금인상 중단 같은 노조의 협조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세금을 내는 재계의 결단도 목요 클럽에서 나왔다.
그는 11번 선거에서 승리했으나 권력의 절정에서 물러났다.
1969년 득표율 50%를 넘는 압승을 거두자 ‘지금은 새 인물이 필요하다’며 스스로 걸어 내려왔다.
꿈을 다 이뤘다는 것이다. 총리 사퇴 뒤 그가 들어가 살 집이 없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23년간 국민의 집을 만드는 데 성공했으나 자신의 집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는 총리 관저에서 공식 집무만 보고 임대주택에 거주했다.
막상 총리에서 퇴임하자 살 집이 없었다. 이를 안 국민들이 한적한 시골 마을에 별장을 지어주었다.
55년간 해로한 부인 아이나도 검소했다.
남편이 총리였지만 고등학교 화학교사를 계속했다. 그녀는 남편이 퇴임한 후 한 뭉치의 볼펜을 들고 총무 담당 장관을 찾아가 건네주었다.
볼펜에는 ‘스웨덴 정부’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남편이 총리 때 쓰던 볼펜인데 이제 정부에 돌려주는 것이 맞다’고 했다.”
총리는 사민당이 청년 연수원 옆에 지어준 집에 살면서 당원들과 함께 지내다 84세에 숨졌다. 스웨덴 사람들은 그에게 ‘국민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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