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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쉐퍼-영적 능력과 기쁨은 하나님과의 계속적인 관계와 행함에 있다

by 【고동엽】 2011.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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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능력과 기쁨은 하나님과의 계속적인 관계와 행함에 있다 / 프란시스 쉐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의롭다 하심을 일단 받은 후에도 우리는 매순간 주님과의 초자연적인 교제를 나누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전류가 흐르도록 플러그가 끼워져 있는 전등 같아야 한다. 성경은 우리의 기쁨과 영적 능력이 하나님과의 계속적인 관계에 달려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만큼 주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주님께 의지하지 않는다면 플러그는 뽑히고 영적 능력과 영적 기쁨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한다. 바울이 기도 중에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 진술하는 것을 상기해 보라. 우리 안에 거하시며 삼위일체 전체의 대리자이신 성령의 교통하심의 실재가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계속적인 실재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면 우리는 순간순간의 삶 속에서 그 사실에 따라 행동해야 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마리아는 수태 예고를 들었을 때,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나는 당신의 손에 내 몸을 드립니다. 뜻대로 하옵소서.” 이것이 적극적 수동이었다.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갖게 하는 부분에서 그녀는 수동적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의지 안에서는 수동적이지 않았다. 이와 같은 상황이 그리스도인인 우리 각자에게도 매우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만일 내가 순간순간 자신을 그리스도의 품에 맡기면, 그는 나를 통하여 이 비참하고 손상된 세상에 그분의 열매를 맺으실 것이다. 그러나 만일 내가 그분을 의지하여 행동하지 않는다면, 나는 비신앙의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내가 믿음에 따라 행동하지도 않으며,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다고 말하는 그리스도로 하여금 나를 통해 열매를 맺게 하지도 않는다면 그것을 비신앙이라 해야 되지 않을까? 현재의 삶에서 초자연적인 분께 의지하여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는 비신앙 속에서 사는 것이다. 비신앙은 기독교를 단순한 철학으로 변질시킨다. 순간순간 당신이 음식을 먹는 데에 사용하라고 있는 은수저를 나사를 푸는 드라이버로만 사용하기 위해 공구함에 넣어두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당신이 우주에는 영적 영역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그것에 따르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우주에 대해 이교도보다 모르는 상태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복음주의 교회에서 왜 우리가 종종 무미건조함, 비현실성, 그리고 추상적인 느낌을 갖게 되는가? 우리가 믿는다고 여전히 말하는 교리가 한 때 살아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공 모조품의 박물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비신앙은 바로 유물론자의 의자에 앉아 있는 그리스도인이다. 실존적으로 매 순간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앞에는 두 개의 의자가 있는 것이다. 주어진 순간마다 살아 있는 그리스도께 내 삶을 굴복시키든지 그렇지 않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이 의자가 아니면 저 의자이다.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머리로 믿는 것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그 믿음에 따라 믿음으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참된 영성은 주어진 순간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가 믿는다고 말한 교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복음주의 교회는 개혁-부흥과 더불어 건설적 혁신을 이루어낼 수 있다.

 

- 프란시스 쉐퍼, 『개혁과 부흥』, pp 116-126

 

 

출처: 청교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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