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틴의 문화 변혁의 역사
1. 어거스틴의 역사관 서론 이해
21C를 바라보고 살고있는 이 시점에서 5C기 사람을 언급하고 연구한다는 것이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진부하게 느껴지는 이 연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거스틴은 5세기 이전의 소아시아 신학, 라틴(서방)신학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신학을 통합하였을 뿐 아니라, 중세 교회의 어두움을 깨는 동인이 되었고, 종교개혁의 물꼬를 준비하였던 이론적 사상가였으며, 그의 사상을 17,18세기를 거쳐 20세기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0새기의 대표적 자유주의 자인 폴틸리히는 "나는 매우 분명하게 나 자신과 나의 전 신학이 토마스 아퀴나스의 전통에 서 있기보다는 훨씬 더 어거스틴의 노선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개혁신학의 전통이 바로 어거스틴의 전통에 있는데 바로 그러한 어거스틴의 사상이 대표적 자유주의자인 폴틸리히의 전제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거스틴의 신학이 얼마나 방대하였는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앞으로 계속되는 연구속에서 어거스틴의 신학적 이해가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를 보게 될 것이다.
어거스틴은 당시의 혼란했던 신학을 정리 종합하였던 위대한 신학자였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그의 전 신학 체계를 살피고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 방대한 것이다. 또한 그렇게 다룰 만큼,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 방대한 신학 체계중에서 역사관에 중심을 두고 살펴보려고 한다. 특히 문화 변혁의 역사의 관점에서 어거스틴의 사상연구에 point를 두려고 한다.
21세기는 첨단 과학과 문화의 시대이다. 옛날처럼 문화의 지역성이 각종매체를 통해서 우리가 접하는 문화는 우리만 접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동시에 접하고있는 문화이다. 이재는 문화가 삶을 인도해 가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이런 세대에 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서 있어야 하는가는 매우 심각한 질문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전까지 교회는 이원론의 행습에 빠져 있어서 문화에 대한 전혀 무관심하였다. 교회가 무관심속에서 외적 성장에 기치를 다할 때 속으로 문화는 썩어지고, 교회의 기둥들을 부식시키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결과로 현대교회는 점점 세상에 대하여 힘을 잃어가고 기독교인들의 정체성은 첨예한 이원론의 삶 속에서 방황하다, 교회를 등지게 되는 현상들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문화에 대한 눈은 떴지만 왜곡된 문화의 눈으로 문화신학이 "토착화 신학""민중신학""다원주의 신학"으로 되어버렸다.
왜곡되었다 하는 것은 성경의 점검없이 경험적 다원주의에 중심을 두고 문화이론을 펴 나갔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폴틸리히, 변선환, 서남동, 윤동식등이다. 이렇게 됨으로 정통 교회는 자유주의 교회에 문화신학의 자리를 내어주고 정통교회 안에서 "문화신학"을 이야기하면 자칫 자유주의 사상의 대변자로 몰리게 되는 현상도 있게 되었다. 물론 복음주의 신학자인 김영한 교수가 "한국 기독교 문화 신학"이란 책을 냈지만 이것은 한국 기독교 문화신학이란 이름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깊은 연구가 없는 것 같이 보인다.
그것은 헨리 반틸의 사상을 거의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정성구 교수이 "칼빈주의와 문화서설"역시 동일한 우를 범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는 "F,N,lee"의 "The central siginificanse of culture"의 내용을 재기록 하고 있을 뿐이다. 즉, 아직 까지 개혁주의 입장에서 특별히 독특한 이론은 부족한 것 같다.
물론 개혁주의 역사속에 문화신학에 대한 연구와 토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칼빈을 비롯하여, 아브라함 카이펴, 그리고 클라스 스킬더, 도예벨트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 철학자들의 연구와 이론은 개혁신학의 한 흐름을 정확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신학의 한 흐름은 현대에 와서 신학자들의 손에서 떠나 일반 학문하는 학자들에게 많이 돌아가고 있는 것을 본다. 기독교 윤리실천운동본부, 기독교 학문 연구회, IVF등 선교단체들의 활발한 활동은 이러한 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것은 신학교의 교육에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문화신학이라는 과목을 개설하고 신학교는 거의 없다. 이러한 현실은 문화에 대한 한국교회의 보이지 않는 관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불구하고 지금의 시대는 문화에 관심이 요구되고 있고 문화에 대한 연구가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때늦은 감은 있지만 시대에 맞는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에 대한 신학적 관점이 정리되지 아니하면 혼란만 있을 것이라 본다. 이러한 면에서 문화에 대한 어거스틴의 견해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바로 어거스틴의 연구의 필요성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다양한 문화의 흐름속에 성경적인 기준이 서있지 아니하면 문화는 거침없이 흘러갈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기둥도 거침없이 상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러한 면에서 초대교회의 어거스틴의 사상을 살펴 볼 것이다.
우선 어거스틴의 역사관을 이해하려고 한다. 문화는 역사관과 불가분의 관계이다. 역사를 어떻게 보느냐는 문화를 어떻게 보느냐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의 역사관은 어떠한 것인지를 살펴 볼 것이다. 특별히 "고대 철학과 기독교의 종합"을 이룬 어거스틴의 사상적 전 이해를 본 다음, 그의 역사관의 특징을 살펴보고, 이러한 기준 위에서 어거스틴의 문화관을 살필 것이다. 어거스틴은 문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이 문화의 이해가 현실을 사는 우리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이며, 그 영향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를 밝히고, 결론적으로 어거스틴의 문화변혁의 역사가 우리 새대에 무엇을 요구하는가를 살펴보려고 한다.
Ⅱ. 어거스틴의 역사관 이해
1. 사상적 전 이해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마니교, 플라톤주의, 그리고 기독교로 세 단계의 개인적인 확신을 회고하고 있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이 어거스틴 될 수 있었던 사상적 순례를 이해하는 것은 어거스틴의 이해에 매우 중요하리라고 본다.
1) 어거스틴은 19살때부터 동방에서 기원된 마니교에 심취하였다. 3세기경 페르시아의 마니(215-73)로 부터 유래된 마니교는 페르시아의 이원론적인 종교와 연결된 헬레니즘화 시대에 발생한 종교로서 조로아스터의 예언과 플라톤주의의 영지주의적 형태와의 혼합물로서 이원론이 특징이다. 유대교와 구약성경을 반대했지만 그리스도를 선조로 모시면서 현존하는 세계가 윈 시간적 타락의 결과로 빛과 어두움이 뒤섞인 불행한 혼합으로 나타났다고 본다. 인간의 영혼도 이 신적인 빛의 실체에서 흩어져 나온 섬광으로 보았다. 영혼은 육체의 감옥에 갇혀 있는데 여기에서 탈출하는 실천적인 구원을 추구하였다.
역사적으로 이런 마니교는 기독교의 주요 경쟁자였다. 이런 마니교에 어거스틴이 10년동안 탐닉한 이유를 틸리히는 마니교는 진리를 이원론적이 아니고 실천적이고 실존적으로 보았다는 점, 진리를 악에 속박된 선을 해방하는 구원의 진리로 인식했다는 점, 그리고 진리는 선의 원리와 악의 원리가 싸우는데서 나타났다고 보았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마니교의 영향은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젊은 시절의 지성을 예리하게 다듬어 주었다는 사실이다.
마니교는 어거스틴에게 인간 실존이 안고있는 모순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진리를 추구하면서 비 진리에 떨어지고, 통일과 평화를 갈구하면서 분열을 범하는 것이 인간이 범하는 모순임을 배웠다. 마침내 마니교의 이원론과 쾌락적인 윤리관은 그를 갈등하게 하였고 결국 떠나게 하였다. 그러나 어거스틴이 마니교에 대해서 실망하게 된 까닭은 첫째로 마니교 철학이 안고 있는 공허함 때문이었고, 둘째는 마니교는 겉으로 덕을 강조하지만 안으로는 비도덕적 행위를 자행하기 일쑤였으며, 셋째로 마니교는 자연과 사물에 관해 설명 할 수 있는 아무런 과학도 제시해 주지 못하였다. 마니교를 떠나오는데 결정적 역학을 한 것은 천문학과 플라톤 사상이었다.
2) 신 플라톤 주의
어거스틴이 마니교를 청산한 것은 그의 나이 29살때이다. 마니교의 이원론과 쾌락적인 윤리관에 회의를 느끼고 떠난 어거스틴은 마니교를 거쳐 회의주의에 빠졌다가 철학적으로는 신플라톤주의의 도움을 통해서 극복했다. 틸리히는 지적한다. 신플라톤주의는 어거스틴이 마니교의 이원론과 아카데미의 회의주의를 동시에 극복하고 영적 실재를 발견하는데 결정적인 역활을 하였다.
신플라톤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영적 완전성을 밝혔고 내적 명상을 통한 통찰력을 추구하였다. 신플라톤주의 신관은 마니교의 신관과 본질적으로 달랐다. 신플라톤주의는 하나님을 절대적이시고 불변의 선으로 모든 변화를 초월하며, 존재하는 모든 것의 구원으로 인식하였다. 악은 결코 독자작인 원리는 아니며 악인 선과 함께 싸우는 것이 아니다. 악이란 근본적으로 다른 근원으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니라 단지 궁극적 존재로부터 멀리 벗어 남음으로써 성립하는 것이다. 결국 어거스틴이 찾은 진리는 악에 대한 것이었는데 악은 선의 결핍이라는 사상이었다.
그리고 다른 존재들의 근원으로서의 신, 비물질적이고 무한 자로서의 신, 말씀으로서 로고스에 대한 것이었다. 이런 모습에서 렘프레히트는, 어거스틴이 신플라톤주의와 기독교적 전통을 결합시켰다고 주저 없이 평가했다. 로날드 내쉬도 어거스틴의 기독교 플라톤주의는 플라톤의 철학이 기독교 세계관과 인생관의 발전을 위한 기초로 사용될 수 있다고 믿는 사상가들에게 자료로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어거스틴의 신플라톤주의 사상은 그의 여러 관점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질송(Gilson)은 어거스틴이 플로티누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반대 하면서, 어거스틴이 교리를 형식화한 것은 신플라톤주의자 플로티누스의 영향을 배반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즉, 어거스틴이 하나님의 존재를 출애굽기 3장 14절의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개념에서 얻어온 것은 그를 근본적으로 플로티누스와 분리시키는 것이라고 단정했다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역사적으로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사상이 플라톤이나 플라티누스에게로 환원 될 수 없다. 오히려 그의 사상은 유대 기독교적 전통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3) 유대 - 기독교적 전통
어거스틴의 사상은 그가 그토록 존경했던 경건한 기독교인인 어머니 모니카가 그의 사상의 배후에 있음으로 그는 기본적으로 기독교적 전동 위에 기초해 있었다. 어거스틴의 역사이해의 밑바탕은 플라톤이나, 플로티누스가 아니라, 신앙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인식론은 "영원 세계나 일자만을 인식함에 의의를 두지 않고 궁극적인 지식과 함께 경험세계에 대한 인식을 함께 중시한 점에서 역사의식을 북돋우는 뒷 받침이 필요하다.
뿐만아니라 인간의 고차원적인 지적 활동을 조명이론에서 찾음으로써 진리인식의 출구를 열어주고 신앙에 의하여 성경과 성경의 역사관을 받아들인 것이 그의 인식론의 중요한 면이다. 그리고 그의 신 이해에 있어서도 신은 모든 것의 근원, 지성의 영원, 최고의 선의 존재로서 세계의 토대를 놓았다. 세계는 처음과 끝이 있는 시간세계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이 창조한 세계는 역사적인 세계이다. 그 세계가 어디서 시작하여 어디로 가느냐에 대해 어거스틴이 내놓은 사상은 신 플라톤주의의 유출설과 구별되는 것이고, 순환설과는 달리 세계는 신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결국 신께 돌아간다는 것이다. 결국 어거스틴의 사상은 신플라톤주의의 철학을 받아들였다기 보다는 "철학하는 방법"을 받아 들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거스틴의 모든 역사관의 인식의 기반은 "유대 기독교 신앙인 것이다.
2. 선분적, 섭리적 목적사관
허버트 버터 필드는 자연과 역사와 일상생활 가운데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는데에는 세가지 방법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첫째는 인간의 행위가 역사를 만든다. 둘째는 역사는 자연과 마찬가지로 법칙의 영역을 보여준다. 세째는 역사에는 인간의지의 자유와 법칙의 지배 외에도 수세기 동안의 삶과 역사가운데 작용하는 한층 더 강한 요인이 있으니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라고 부르는 것으로 그 안에서 우리가 살고 움직이고 생존한다. 20세기의 기독교 역사학자인 버터필드의 주장은 바로 어거스틴의 역사관의 제 이해이다.
어거스틴은 바울과 베드로의 도시인 로마가 외적의 침입으로 고통을 받았던 절박한 시대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 속의 개입이라는 거대한 질문이 던져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412년 로마의 지도자인 히포의 집정관 마르셀리우스의 요청으로 위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 13년동안 기독교 공동체와 기독교 역사철학에 대한 변증서인 "신의 도성"을 집필하였다. 이 신의 도성에서 어거스틴은 두 도성과의 관계를 통 하여 새로운 역사지평을 열어 주었다. 이러한 어거스틴의 역사이해는 다음으로 이해 될 수 있다.
하나님의 도성과 인간의 도성이라는 Motive,를 통해 결국 어거스틴이 제시하고자 하는 역사이해는 창조이후의 인간의 역사가 하나의 종말을 향해 진행 되어간다는 것이다. 즉, 어거스틴이 제시한 역사이해는 목적론적이고 직선적인 사관이다. 고대 희랍인들은 우주는 하나의 경계를 가진 밀폐된 실체이며 시간이란 하나의 중심을 축으로 하여 동일한 괘도를 순환하는 수레 바퀴적인 것으로 이해하였다. 즉, 그들의 역사에 대한 순환론적 견해를 가지고 있어서 역사관 뚜렷한 출발이나 종말이 없이 무한히 계속되고 의미없는 반복만이 있는 영원 회귀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시간 세계 안에 새로운 것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 역사에 대한 혹은 순환론적 이해는 바로 운명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어거스틴의 역사관은 이런 희랍의 역사관을 반대하여 역사는 결코 역사자체의 내재적 법칙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그의 섭리적 경륜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며 혼돈과 무의미의 연속이 아니라 의미있는 합목적적 진행인 것이다.
또한 어거스틴은 역사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곧 하나님의 통치를 신앙하고 있다. 즉, 역사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전적 통치를 믿는 것이다. 역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경륜이라고 어거스틴은 주장한다. 어거스틴은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의지가 결정요인이라고 주장했던 펠리기우스파의 이단교리에 대항하기 위해 이 교리를 발전시켰다. 이 어거스틴의 주장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근거한 것으로 모든 역사적 현실은 하나님의 뜻의 구현이라고 한 것이다.
결국 어거스틴의 역사관은 순환론과 대비되는 직선론이며, 맹목적 회귀론이 아니라, 종말론적 목적론이다. 역사는 신에 의해 예정된 과정이면서도 동시에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시간 지평속에서 펼쳐 가는 과정이다.
어거스틴의 역사관은 기독교의 역사관을 체계화하였음을 보여준다. 다만 직선적 목적론이라는 언어적 개념을 보통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어거스틴이 역사관에 더 알맞는 개념은 선분적 섭리적 목적사관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앞선 내용과 별 차이가 없지만, 오히려 개연적으로서는 더욱 정확하지 않는가 생각한다. 이렇게 볼때 어거스틴의 역사관의 전체적 정의는 "선분적, 섭리적, 종말론적 목적사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Ⅲ 어거스틴이 바라본 문화변혁
1. 어거스틴의 문화이해
어거스틴의 문화이해는 그의 역사이해에서 부터 시작된다. 어거스틴은 역사는 단순히 Historie적인 세상사의 외면적인 면 뿐만아니라, Historie를 넘어 존재하는 Geschite적인 실존적인 의미를 역사에서 도출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어거스틴은 따라서 역사란 한편으로 개인의 실존속에서 존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개인의 실존을 넘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임을 인식하면서도 각 개인이 역사를 구성하고 역사를 형성하여 가는 역사의 주체자들이라는 인식을 동시에 제공함으로써, 하나님의 문화변혁의 동참자인 인간이 문화명령을 수동적으로 수행하는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라 사회와 역사속에서 적극적인 문화적 사명을 부여 받은 존재임을 일깨워 주었다.
어거스틴의 신국은 기독교 문화를 가리키는 말로 간주 될 수 있으며 신국 문화의 인체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고 지상국은 자기 사랑에 입각한 문화를 형성하는 곳이다. 어거스틴은 뿐만아니라 신국의 원리가 인간의 문화에 스며들어 이 문화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문화 변혁론을 주장하였다. 결국 신국의 이상을 지상국에 침투시켜 지상 문화의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보았다. 세상 문화를 페기함이 아니고 그것을 무조건 수용하지도 않고 변화시켜 신국의 이상에 다가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 변혁적 어거스틴의 태도는 극단적인 문화배척태도, 문화를 이상화하는 태도, 극복 될 수 없는 비도덕적 사회에서도 복음적으로 살아보려는 이원론자의 태도등과는 대조적이다.
고전문화와 기독교 문화의 분수령이라 일컬음 받는 히포의 감독자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문화의 변혁을 시도했다.
하나님께서는 어거스틴에게 특별한 재질을 주시고 그를 특별한 역사 속에 두셨으므로 로마 제국의 황제중심 문화에서 중세기 교회문화로 변천하는 사회개혁은 마땅히 어거스틴으로 인하여 되었다고 보아도 여지가 없을 것이다. 어거스틴의 문화관은 터톨리안 처럼 문화가 단순히 이교에서 기원하였고 그것과 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모든 형태의 문화를 정죄하는 식에 속한 문화적 비관주의자가 아니었다. 어거스틴은 기독교의 원리가 인간이 문화적 노력에서 쟁취한 성광에 스며들어야 하고 그것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거스틴의 사상체계는 헨리 반틸이 피력하는 것처럼 이교문화를 기독교 문화로 변혁시키는 문화변혁운동의 선구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사상체계 안에서는 이교의 덕이 기독교의 사랑으로 변화되었고 이기주의와 우상숭배로 더럽혀진 인간적인 문화가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고 그에게 영광 돌리는 하나님 중심의 문화로 변모되고 있다. 어거스틴의 변혁주의 문화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부패된 문화가 회복될 수 있는 길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라는 것이다. 혼합주의에 대한 예는 그의 윤리학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기독교인의 덕에 대해서 논 할 때 그는 도덕법에 근거하여 체계를 세우거나 그것을 마련 시킨 것이 아니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적인 덕론을 인용하여 사랑의 원리로 재해석하였다. 즉 "절제는 자신을 보유하고 타락하지 않게 하는 하나님에 대한 사람이며 불굴의 정신은 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고 견디는 것이며 정의는 하나님만을 섬기는 사랑이며, 분별은 무엇이 하나님의 일에 도움이 되며 무엇이 하나님의 일에 방해하는 가를 구별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결국 그가 의미하는 문화의 개혁이란 이 세상에서 악과 죄를 일소하는 것이 아니라 속죄를 통한 개개인의 근본적인 인격의 변화 및 인간의 전인격이 문화 자체를 개혁하는 것이다.
반의와 중생의 문화 철학자 어거스틴은 바울이 제시한 만물은 너희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는 것이 그의 진지한 목표였으니 그리스도에게 헌신하고 또한 당시의 이교적 사상과 문화를 변혁시키고 하나님께 영광 돌렸다.
(2) 문화이해의 신학적 전제
문화변혁의 관점을 가지고 있는 어거스틴의 이와 같은 신학적 전제는, 창조와 타락, 그리고 역사에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다. 창조된 세계 안에서 일하는 피조자인 인간은 그리스도의 통치 밑에서 창조적 능력과 하나님의 말씀의 질서에 의하여 살고 있다. 창조 시의 인간의 본성은 타락했다. 타락은 창조의 반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행동이 아니라 육체에 영향을 줄뿐 아니라, 도덕적이고 인격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지향하는 변화된, 또는 변화되어가고 있는 인간의 삶이 어거스틴의 문화관의 전제이며, 본질이다. 이러한 신학적 전제는 회복과 하나님의 영광을 그 목표로 하고 있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 신학적 전제인 창조, 타락, 구속은 성경적인 세계관인 것이다. 문화는 이것을 늘 전제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모든 세계도 다 하나님의 창조이다. 이 창조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기로 작정되었고, 또 거기로 진행되어 가던 중 창조 세계에 타락이 발생하여, 하나님 나라에로의 행진이 중단되었다. 이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회복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예수 그리스도로 구속을 이루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창조주이셨는데 우리를 구속하기 위하여 육체 안에서 세상에 오셨다. 그리하여 십자가에 죽으시사 세상을 구속해 내심으로 새 생명을 인류에게 주시사 새 백성이 되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셨다. 이 구원이 완성되면 역사가 종결되고, 하나님 나라가 완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창조는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따라서 의존적 성격을 지닌다. 인간도 피조물이므로 의존적이어야 하고,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세계를 탐구하고 표현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창조 사실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해야 한다. 또 창조 세계의 탐구와 표현, 그리고 그 재활용은 다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다.
이 선한 창조에 죄가 도입됨으로 인간과 창조가 저주받아 이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죄의 역사를 제어하는 역사를 모든 활동영역에서 해야 한다. 학문, 예술과 실제생활에서의 죄의 제어를 위한 역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죄의 역사로 인한 참 지식의 체계가 안된 체계를 지식의 체계가 되게 해야 한다. 죄의 표현을 예술로 아는 것을 바꾸어 창조와 조화를 이룸으로 아름다움의 표현이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또 실제 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죄의 역사를 제어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사회의 유지요, 문화의 사역이다.
이 창조가 다시 회복하게 되었다. 이 회복의 역사가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이다. 인류가 속량되고 그 다음에 창조도 함께 속량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구속에 동참하는 창조만이 존속할 것이다. 따라서 모든 창조가 다 구속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이 회복에 모든 문화 활동을 포함 시켜야 한다. 구속된 문화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문화 활동은 구속에 의해 가능해졌을 뿐 아니라, 이 구속을 증거하고, 회복에 동참케 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어거스틴의 사상은 종교개혁자 칼빈을 통해 계승 발전되었다. 칼빈은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왕권을 확립하기 위하여 노력함으로 문화를 개조하기 시작하였다. 모든 영역을 그리스도의 왕권아래 두는 것은 그 영역들을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아래 두는 것이고, 그 말씀대로 바꾸는 것을 뜻하였다. 그리하여 완전한 기독교문호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변혁의 사상은 19세기 화란에서 아브라함 카이퍼의 신 칼빈주의 운동에서 나타났다. 그도 칼빈과 같이 전 영역에서의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미국 청교도들의 사상이 되었고, 미국에서 참다운 기독교 문화를 세우려고 노력하여 국가의 생활 원리를 칼빈주의 곧 하나님의 말씀에 두는 일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개혁주의 교회의 입장이 되었다.
우리 시대의 문화 변혁을 꿈꾸며........
21세기의 입장에서 어거스틴이 살던 시대의 모습을 향한 정확한 이해를 갖기에는 부족함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거스틴의 문화변혁론적 역사이해는 어거스틴 당시보다, 더 복잡하고 혼탁해진 이 시대에 더욱 실감나게 느끼어진다. 특별히 문화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없으므로 인해 빚어진 오늘의 현실을 책임지어야 할 우리들로서는 어거스틴의 문화변혁적 역사이해는 참으로 중요한 제시임을 확언하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당시의 신학을 종합하여 집대성한 신학자답게 문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통찰력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의 문화변론적 역사관은 죄의 오염을 긍정하지만 변화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동시에 긍정한다. 창조자로서의 하나님, 구속자로서의 하나님을 다 함께 감안하여 문화에 대한 인간의 의무를 자각함으로써 그의 문화 변혁론적 역사관이 생성될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으로 지상국을 개혁하려고 했다. 그것이 문화에 대한 그의 특징적인 태도였다. 그의 문화관은 세계로부터의 탈출과 은둔을 주장하는 도피적 사상과 달리 적극적인 것이었다. 그의 문화 발전에 대한 적극적인 사고는 신중심의 문화 확립이 신의 의지로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삶의 모든 영역에 신의 주권을 확립하는 것을 지상의 과제로 두었다. 갈등과 파괴가 있는 문화에 통일과 평화,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심는 것이 문화적인 사명이고 내용이다. 사랑을 가치로 하는 신국을 미움과 분쟁을 일삼는 지상국에 심는 것이 문화적인 사명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과 마귀의 왕국 즉 지상국이라는 이원적인 세력을 말하지만 이 세계에서 그것들의 요소가 함께 얽혀 있다는 것이라는 그의 사상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세계를 결코 부정하지 않고 세계로부터의 이탈을 권하지 않았다 오히려 악은 존재가 아니라 존재와 선의 결핍이고 선의 부재라는 말과 세계는 신의 형상을 부여 받은 존재라는 그의 사상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세계에 긍정적인 태도가 요구됨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어거스틴의 문화변혁론적 사관은 오늘 우리에게 문화에 대해서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 것인지를 제시해 주고 있다. 이에 우리의 문화에 대한 모습을 살피고자 한다.
이 시대 속에서 문화에 대하여 가져야 할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하여야 하는가? 어떤 모양으로 문화에 대한 관점을 준비하여야 하는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지만 반드시 확인되어져야 되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반문화적인 태도가 반드시 제거해야 되는 것이다. 문화보다 전도를 우선한다는 생각, 기독인들이 문화속으로 침투해 들어가기보다는 오히려 문화로부터 도피하는 경향, 변혁보다는 모방에 앞서는 태도와 같은 반문화적인 견해는 없어야 한다. 이와 같은 현실이 있어지기에는 첫째로, 문화에 정신을 파는 것은 덜 영적이라는 생각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일반은총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창조명령에 왜곡된 지식에서 오는 것이다. 셋째로, 하나님 나라의 오해 때문이다. 왜곡된 종말론에 왜곡된 문화적 사고 팽배는 문화활동에 대하여 무가치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세대주의적 종말론주의자들은 이 세대의 문화는 미래의 하나님 나라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 문화적인 토양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상에서 바라본 것과 같이 반 문화적인 태도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있다. 그것은 문화에 대한 우리들의 적극적인 대응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명령은 철회되지 않았고 우리는 여전히 창조질서의 청지기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사회에서 우리가 하는 행동을 통하여 "문화를 만들어야"한다는 사실이다. 왜냐햐면 진술하였듯이 그 중 일부가 천성에 가서도 보존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특별히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 먼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표지가 되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을 통치하심을 주장하는 하나님의 주권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의 주권을 미리 체험해야 한다. 즉 우리의 공동체와 우리의 사고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 안에서만 존재하는 안전한 그리스도인들의 고립된 장소를 들어가기 위해 세상에서 나오도록 부르심 받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가도록 부름 받았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가져야할 대응모습이 드러나야 할 것이다.
1) "성경적 세계관에 확립한 지성의 형성"이다.
모든 것은 사상의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의 전제가 되는 세계관의 형성이 있어야 되며, 그 세계관으로 시대의 문화를 만들며, 이기어 나아가는 것이다. 쉐퍼는 "우리가 믿는 전제에서 나오는 논리적 결론이 무엇인가를 고찰해야 할 때이며, 그러기에 이 시대는 전제와의 대화이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2) 우리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 하는 역사적 안목이 필요한 것이다.
역사는 직선적인 것으로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도록 이끄는 의미심장한 사건들의 연속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타락과 최종적인 구속사이의 기간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미와 아직의 중간기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역사의 종말을 향해가고 있는 현상 속에서 특별히 현대문화의 사상가운데 고대, 중세, 계몽주의, 합리주의, 과학주의, 이성주의 시대를 걸쳐서 포스트 모던 시대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현실은 어제가 준비된 가운데서 오늘을 딛고 내일을 준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여야 하는 것이다.
3)분명하게 문화적 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 말은 생각을 많이 가지라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기술만 좋아지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지성의 제자는 삶 속에서의 제자인 것이다. 특별히 아집과 독선을 버리고 변혁의 주체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타락한 문화 속에서는 희생과 대결이 선행되는 곳에서만 새로운 문화창조를 기대할 수 있다. 그것은 문화창조의 자극제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 속에서 문화변혁의 의지를 가지고 싸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반드시 바른 영성과 성경적 지성, 창조적 실천의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야 기독교적 문화는 창출되는 것이다.
4)지역 교회교육의 문화적 접근을 시도하자.
교회는 시대를 앞서야 된다. 그러기 위해서 교회는 이시대의 문화를 충분히 소비하여 대응및 적용을 현실화하여야 한다. 60-70년대처럼 한강 백사장 집회를 생각하는 사고를 벗어 버려야 하는 것이다. 이제는 지역교회의 역활로서 교회의 위치를 나타내야 하는 것이다. 특별히 존스토트 목사의 표현처럼 "교회의 중심은 교회밖에 있다." 교회는 외부 중심적으로 살아야만 한다. 세상을 향해 밖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세상에 대하여 교회가 도전을 하여야 만 맘몬의 여리고성을 부숴뜨려야 하는 것이다.
이러기 위해서 각교회는 지역사회 조사를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 우리지역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가? 교육기관으로는 어떤것이 있는가? 상업지역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주인들은 어떤 곳에 살고 있는가? 여가시간에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는 어떤 곳들인가? 다른 종교건물이 있는가? 지난 10년간 지역사회에 어떤 변화가 있는가? 그리고 앞으로 10년간 어떤 변화가 예상되는가? 교회에 대한 조사가 있어야 한다. 교회는 자신의 생존안위 그리고 그 특권의 유지만을 위한 조적을 갖추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으면 지역사회를 섬기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도록 조직되어 있는가? 그 동안 소중히 지켜온 전통이나 관습 가운데 불필요하게 교회를 세속사회와 분리되게 만들고, 세속화를 만드는 것은 어떤 것인가? 교인과 프로그램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교인들의 신앙 상태와 환경을 살펴보고 각자의 달란트에 맞게 조직이 되어 있는가? 아니면 교회가 지나치게 성직자 중심이어서 평신도 활동이 불가능한가? 교인들이 지역사회 일원인가 아니면 먼 지역에서 교회까지 오가는 출퇴근기독교인이어서 교회가 행하는 그 지역 전도에 참여하기가 어려운가? 교인들이 학력, 생활 수준은 어떠한가 교회에 대한 관심도는 어떠한가? 그리고 교회 프로그램에 대한 조사로서 교회가 교회내의 교인들만 위한 프로그램에 얽매어 있는가? 아니면 지역사회에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는가? 사실 교회는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교회 내에서의 필요를 위한 것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같이 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조사되어 질대 교회교육의 문화적 접근은 확실히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적 접근이 이루어지면 지역사회를 위한 그리고 교회 성도를 위한 풍성함이 있을 것이다.
5) 바른 문화의 창달은 21세기를 향한 한국교회에 주신 사명임을 기억하자.
하나님을 때에 따라서 역사하셨으며 때에 따라서 열매를 거두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이전 21세기를 향한 이 시점에 있어서 바른문화의 창달은 한국교회에 주신 사명이다. 한국교회는 시대를 이끌어 왔던 지난 시대를 생각하면서 21세기를 이끌어갈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바로 한국교회에 주신 사명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역사의 책임과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그러나 대담하게 담당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한 실천 방향으로서 한국교회는 문화선교에 대한 올바른 교육과 강좌가 있어야 되며, 기독교독자성을 너무 강조하지 않으며 비기독교적 문화 형태라 할지라도 배우고자 하는 겸손함이 있어야 한다. 이 땅은 바로 우리에게 준 것이다. 그리고 이 땅은 우리가 변혁시켜야 되는 것이다. 이런 사명이 한국교회에 있는 것이다.
6]무엇보다도 교회의 본질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는 문화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문화중심의 교회는 결코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교회는 교회로서의 본질이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말씀선포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지 않는 교회는 아무리 문화적 이해가 있다하더라도 하나님의 교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교회는 말씀의 선포 사역에 그 중심을 두고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가야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변화는 문화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되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문화의 이해 없는 교회는 또한 균형이 무너진 상태라 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이미 문화의 현상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문화를 도외시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이다. 어거스틴이 말하는 논리는 바로 이러한 균형 잡힌 시각을 바로 보여 주고 있다.
이 시대는 문화의 시대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창조부터 문화는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존재하는 한 문화는 우리와 항상 붙어 있을 것이고, 누구의 손에 누구의 생각에 의하여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상상할 수 없는 결과가 있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상을 통하여 개혁주의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문화관을 대략 살펴보았다. 이제 이 시대를 이끌어갈 우리가 가져야 할 문화관은 어떠해야 하는 것인가?
문화명령은 포기되지 않았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의 현시인 이 세계는 결코 포기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는 죄악으로 오염된 이 세계를 향하여 그리스도의 주권을 가지고 변혁의 주체자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것이 재창조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목적이다. 한국 교회는 바로 이 사명의 제일선에서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문화의 위기는 곧 교회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이제 21세기는 최첨단 문화의 시대가 될 것이다. 우리는 60,70년대의 의식을, 버릴 것은 과감히 버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문화에 대한 교육과 접근에 의미 있는 투자를 하여야 할 것이다. 문화에 대한 한국교회의 깨어있는 사명만이 식어져 가는 한국교회의 또 다른 부흥의 활력소가 될 것이다. 어거스틴의 변혁의 역사관이 이 시대의 교회의 사명을 일깨우는데 얼마나 중요한 가를 살펴보았다. 이제는 교회는 변혁의 주체자로서 21세기를 선도해야 할 한국교회의 건투를 기대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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