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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조나단 에드워드-신적이며 영적인 빛

by 【고동엽】 2007. 7. 15.
 

                                신적이며 영적인 빛

 

 

총론 : 하나님을 아는 영적 지식의 본질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아는 바른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지식은 거듭난 신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며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해당됩니다. 신자와 불신자의 가장 큰 차이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차이에 있으며 조나단 에드워즈가 30세가 되던 1733년에 설교하고 1734년에 발간된 ‘신적이고 영적인 빛’이라는 설교는 구원을 얻는데 필수적인 ‘하나님을 아는 바른 지식의 본질’에 대해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해 줍니다. 

 

이 설교의 핵심 내용은 초자연적인 빛이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영혼에 직접 비취는 것은 성경적이며 이성적인 진리에 요약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직접 주시는 초자연적인 영적지식 입니다.

 

ㅇ 개념적인 지식과 체험적인 지식

 

에드워즈는 성령께서 우리 영혼에 직접 전달해 주시는 ‘신적이고 영적인 지식’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지식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머리로 아는 지식’이고 다른 하나는 ‘가슴으로 아는 지식’입니다.

 

머리로 아는 지식이란 지성을 통해 객관적인 사실을 순전히 개념적이고 관념적으로 아는 지식을 말하고 가슴으로 아는 지식이란 객관적인 사실을 단순히 개념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 의지적 반응까지 불러일으키는 체험적이며 실존적인 지식을 말합니다.

 

에드워즈는 머리와 대비되는 가슴으로 아는 지식을 ‘마음의 감각’으로 아는 지식이라고 말합니다.

 

<에드워즈의 설교 본문>

 

선을 알 수 있는 두 종류의 이해 혹은 지식이 있다. 첫째는 단지 이론적인 혹은 개념적인 지식이다. 이는 어떤 것을 단지 개념적으로만 판단하는 것으로 예를 들면 어떤 것을 탁월하다고 할 때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동의할 수 있는 지식이다. 둘째는 마음의 감각으로 아는 지식이다. 어떤 것의 아름다움을 깨달을 때 마음으로 어떤 것에 있는 실재를 기뻐하고 즐겁게 느끼는 것이다. 이론적인 지식은 의지 또는 성향과는 구별되는 지성으로 이루어진다. 마음의 감각으로 아는 지식은 의지, 성향, 마음이 주로 관련한다.

 

ㅇ 하나님에 대한 이론적인 지식과 체험적인 지식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서도 두 종류의 지식이 있는데 첫째는 우리가 하나님을 머리로만 아는 지식이며 둘째는 하나님을 우리의 마음의 감각으로 아는 지식입니다. 에드워즈는 1793년 행한 ‘신학공부의 필요성과 중요성’이라는 설교에서 이 두 종류의 신학지식 즉 하나님에 대한 두 종류의 지식을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에드워즈의 설교 본문>

 

두 종류의 신학지식 즉 이론적(speculative)지식과 실천적(practical)지식 또는 다른 말로 자연적(natural)지식과 영적(spiritual)지식이 있다. 전자의 이론적 지식 또는 자연적 지식은 머리만의 지식으로 이 지식은 이해하는 것 외의 다른 기능은 관련되지 않는다. 특별한 하나님의 성령의 조명 없이도 우리 기능을 자연적으로 사용할 때 얻어질 수 있는 지식이다. 후자의 실천적 혹은 영적지식은 머리와 이론에만 달려있지 않고 마음이 연관되어 있다. 이 지식은 주로 마음의 감각에 달려 있으며 보는 것만이 아니라 느끼는 것, 맛보는 것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 안에 담겨 있는 교리에 대한 바른 이론적인 지식과 마음으로 교리를 적절하게 느끼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전자는 신학에 대한 이론적 또는 자연적 지식을 구성하고 후자는 신학의 영적 또는 실천적 지식을 구성한다.

 

ㅇ 두 종류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모두 필요하다

 

이 두 종류의 신학지식 혹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으며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우리에게는 두 종류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모두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아는 지식을 가지려면 먼저 하나님에 대한 이론적인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체험적 지식도 있어야 합니다. 에드워즈는 이런 상관관계를 ‘신학공부의 필요성과 중요성’이라는 설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에드워즈의 설교 본문>

 

두 종류의 신학지식 가운데 어느 것도 다른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 반대로 우리가 영적 혹은 실천적 지식을 얻으려면 이론적 혹은 자연적 지식을 추구해야 한다. 영적 지식 없는 신학의 이론적 지식은 아무 소용없지만 이론적 지식 없이 우리는 영적 또는 실천적 지식을 얻을 수 없다는 점에서 이론적 지식 또한 무한히 중요하다.

 

o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아는 체험적인 지식도 있어야 한다

 

에드워즈는 ‘신학공부의 필요성과 중요성’에서 체험적인 영적지식이 생기기 전에 개념적이고 이론적인 지식을 증가시키려면 부지런히 성경공부, 신학공부를 해야 할 필요성과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필요한 구원을 얻는데 필요한 지식은 머리로 아는 지식을 포함하면서도 이를 더욱 능가하는 마음의 감각으로 아는 영적지식인데 이는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이요, 온전한 구원을 얻기에 합당한 지식입니다.

 

마음의 감각으로 아는 지식이 생기게 되면 하나님의 성품과 사역을 사랑하게 되며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됩니다.

 

<에드워즈의 설교 본문>

 

하나님이 거룩하시며 은혜로우신 분이라고 하는 견해를 가지는 것과 하나님의 거룩과 은혜의 사랑스러움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꿀이 달다고 하는 것을 이론적으로 아는 것과 꿀의 달콤함을 맛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전자는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들어서 알 수 있지만 후자는 자기가 직접 맛 볼 때에만 느끼는 것이다. 전자는 머리(head  )와만 관계 되는 것이나 후자는 가슴(heart)과 연관되어 있다. 가슴이 어떤 것의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느끼는 것은 그것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o 마음의 감각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에드워즈가 말하는 마음의 감각으로 아는 지식은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인 지식, 하나님께 대한 체험적 지식, 하나님께 대한 실존적 지식이라는 말이 될 것입니다. 에드워즈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이론적, 개념적으로 알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우리의 지성이지만 하나님에 대해 체험적, 실존적으로 알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우리의 마음의 감각 즉 ‘영적감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알 수 있게 해주는 이 마음의 감각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요? 이 마음의 감각이 신자와 불신자, 거듭난 사람과 거듭나지 않은 사람을 구별해주는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이고 체험적인 바른 지식이 없는 것은 바로 이 마음의 감각 혹은 영적감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신자에게는 하나님을 바르게 알 수 있는 이 마음의 감각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신자들에게 마음의 감각이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요? 이것은 성령님이 신자 안에 내주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신자 안에 내주하면서 영적인 감각 즉 마음의 감각을 주십니다. 거듭난 신자란 성령님께서 그 사람의 영혼 속에 들어와 내주하시는 사람을 말합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과 하나님의 영광을 맛볼 수 있는 영적인 미각이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에드워즈의 설교 본문>

 

성령님은 자연인의 마음 밖에서 활동한다. 그러나 성도의 마음 안에서는 내주하는 생명의 원리로 활동한다. 성령님은 비중생자들에게 역사하실 때 그들과 연합하지 않고 외부적인 행위자로 행동한다. 비중생자들은 성령님의 모든 영향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육에 속한 자이며 성령은 없는 자’이다. 그러나 성령님은 성령자신을 신자의 마음과 연합하며 신자를 성령의 성전으로 삼고 신자에게 새롭고 초자연적인 생명과 행동의 원리로서 역사하며 영향을 미친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영향력 즉 영적인 작용을 하실 때는 특별히 자신을 나누어 주시는 방식으로 역사하신다. 그래서 이것을 영적이라고 부른다.

 

성령님이 신자들 안에서 내주하시면서 신자들에게 생명의 원리로 역사하시는 것이 바로 신자들에게 ‘신적이며 영적인 것’을 알 수 있도록 ‘마음의 감각’을 주시는 것입니다. 즉 성령님은 성도들에게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구원에 속한 모든 영광스러운 실재와 진리를 체험적으로 알게 해 주십니다. 이런 영적인 감각을 가진 성도들은 자신이 체험한 진리에 대한 깊은 영적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에드워즈는 이와 같이 신적인 것의 탁월함을 인지할 수 있는 영적인 감각과 영적인 감각에서 나오는 영적 확신을 모두 포함해서 은유적으로 ‘신적이고 초자연적이며 영적인 빛’이라고 말합니다. 

 

o 신적이고 영적인 빛은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직접 주실 수 있다

 

에드워즈는 이러한 ‘신적이고 영적인 빛’은 오직 하나님이 성령님을 통해 직접 성도의 영혼에 비추어 주신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 초자연적인 빛은 인간의 지성이나 다른 이차적인 수단을 통해 전달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성도의 영혼에 직접 전달하십니다.

 

<에드워즈의 설교 본문>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머리에 교리에 대한 개념을 심어 줄 수는 있지만 우리 가슴에 교리가 신적으로 탁월하다는 감각을 주지는 못한다. 사람은 말씀 없이는 영적인 빛을 가질 수 없다. 그러나 말씀이 빛을 만드는 원인이라는 주장은 아니다. 교리나 명제 자체는 말씀으로 전달되지만 그 교리의 탁월함을 보는 것은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그러므로 빛의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지성에 전달되지만 형식적으로 이 빛을 이루고 있는 마음의 감각은 하나님의 성령이 직접 부여하시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가 거룩하고 은혜로우신 분이라는 생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지성에 도달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거룩하심과 은혜로우심이 탁월하다고 깨닫는 감각은 직접적으로 성령님의 사역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o 에드워즈의 설교 신적이고 영적인 빛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

 

신적이고 초자연적인 영적인 빛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참되게 알 수 있으며 이런 참된 지식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다는 에드워즈의 주장은 크게 3가지로 적용 됩니다. 

 

1. 구원에 이르는 참된 지식은 머리가 좋거나 학식이 많은 사람에게 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남녀노소 구분 없이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기에 복음을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전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초자연적인 영적인 빛으로서 누구나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나 자신이 이런 ‘신적이고 영적인 빛’에 의해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어느 시대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있어 이런 ‘신적이고 영적인 빛’이 없이 오직 인간의 이성으로만 이해하고 만족하는 지성주의가 있어 왔습니다. 우리 자신도 오늘날 만연되어 있는 이런 지성주의적 신앙관이나 지식관에 노출되어 있지 않은지를 살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머리만의 지식으로 알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성령이 주시는 마음의 감각을 통해 체험적. 실존적으로 알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3. 우리는 우리의 지성을 다해 하나님에 대한 이론적이며 개념적인 지식을 얻기에 힘써야 하지만 더욱더 이런 영적이며 신적인 빛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이 빛은 우리 마음의 본성과 성향을 변화시켜 주며, 우리로 하여금 보편적인 거룩의 열매를 맺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신적이며 영적인 빛이라는 이 설교는 분량은 아주 짧지만 하나님에 대한 참된 영적 지식의 본질, 거듭난 성도의 본질, 참신앙의 본질에 관한 에드워즈 사상의 정수(Essence)가 담겨 있습니다. 이 설교를 한 13년 뒤인 1746년에 발간된 에드워즈의 가장 대표적인 걸작인 ‘신앙감정론(Relitious Affections)’에서는 이 설교에서 씨앗처럼 담겨있던 사상이 활짝 꽃피어 충실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신적이며 영적인 빛’은 ‘신앙감정론’의 요약본이며, ‘신앙감정론’은 ‘신적이며 영적인 빛’의 확대판인 셈입니다.

 

2004년 12월 신촌 예수마을에서 백금산

 

 

제 1 부 본문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태복음 16장 17절)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에 대해 물으셨는데 이 말씀은 베드로가 예수님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신앙고백 했을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1. 베드로에게 복 받은 사람이라고 선언하심

 

네가 복이 있도다. 내가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네가 알고 있으니 너는 행복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은 눈이 멀어 있어 어떤 사람은 나를 엘리야라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은 나를 예레미야라 생각하며, 또 다른 사람은 다르게 생각하여 그 누구도 바르게 생각한 사람이 없었으나 너는 이 문제에 대해 아주 특별하게 진리를 알고 있으니 너는 복 받은 사람이다.

 

2. 베드로가 복 받은 사람이라는 하나님의 계시

 

1) 베드로는 선택받은 사람

 

베드로가 하나님께 복을 받은 것에는 이런 뜻이 있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너는 얼마나 복을 받은 자냐! 지혜 있고 힘 있는 자들, 서기관, 바리새인, 장로들과 나라 전체는 어두움 가운데 있어 잘못된 생각에 이끌려 살아가지만 너는 혼자 선택을 받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구나.’

 

2) 베드로가 알게 된 영적인 지식

 

베드로가 복을 받았다는 것은 베드로가 알게 된 지식이 혈과 육을 가진 사람이 계시해 줄 수 있는 이상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만이 줄 수 있는 지식이다. 너는 복을 받아서 하나님만이 너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지식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이 지식의 창조자로 선언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지식과 이해의 창조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식의 중계자 혹은 이차적 원인으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만 이런 영적 지식을 계시해 주시며 인간은 이런 지식을 계시해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영적지식을 다른 지식과 같이 자연적이며 이차적인 간접적 수단으로 삼지 않고 직접 계시해 주십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통해 이 계시를 해준 분이 혈육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여줍니다.

 

만일 이런 지식이 자연적인 원인이나 수단에 달려 있는 것이라면 가난한 어부와 무식하여 많은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진리를 알게 되었으며 반대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아주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아는 지식에서는 무지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신앙을 고백하는 이런 지식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주신 특별한 은혜와 계시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 2 부 교리

 

자연적인 수단으로 획득되는 것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하나님이 영혼에 직접 주입해 주시는 영적이고 신령한 빛이 있다

 

첫째 이 신적인 빛이 무엇인지 보여주려 합니다. 둘째 이 신적인 빛이 자연적인 수단으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떻게 직접 주시는지를 밝히려 합니다. 셋째 이 교리가 진리임을 말하고자 합니다.

 

1. 신적이고 영적인 빛이란 무엇인가

 

o 신적인 빛이 아닌 것은 무엇인가

 

이 신적인 빛이 무엇인지를 보여드리기 위해 우선 신적인 빛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o 이 신적이고 영적인 빛은 자연인이 자신의 죄와 비참함을 깨닫는 것이 아니다

 

1) 자연인이 자신의 죄와 비참함을 깨닫는 것이 이 ‘신적이고 영적인 빛’은 아닙니다.    

 

어떤 죄인들이 다른 사람보다 자신의 죄책과 비참함을 더 크게 깨달았다는 것은 그들이 다른 사람보다 진리에 대한 빛 또는 이해력이 더 좋기 때문입니다. 이런 빛과 깨달음은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신적이고 영적인 빛의 전달보다 자연적인 것이 더욱 많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단지 자연적인 원리를 보조하는 것이지 어떤 새로운 원리를 주입함으로써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반은혜는 단지 영혼의 기능을 도와서 본성적으로 하는 것을 조금 더 잘하게 합니다. 양심은 사람에게 자연적인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중생하지 않은 사람도 때로 양심을 깨닫게 하셔서 이런 일을 더 잘하도록 합니다. 영혼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령님의 사역은 본성을 초월하는 것인데 영혼의 여러 기능들이 더욱 자유롭고 자기의 기능을 잘하도록 도움을 받게 될 뿐만 아니라 타락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던 영혼의 기능들이 회복되게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신자와 불신자에게 전혀 다른 방식으로 행동합니다. 성령님은 자연인의 마음 밖에서 활동합니다. 그러나 성도의 마음 안에서는 내주하는 생명의 원리로 활동합니다.

 

성령님은 성령 자신을 신자의 마음과 연합하며, 신자를 성령의 성전으로 삼고 신자에게 새롭고 초자연적인 생명과 행동의 원리로서 역사하시며 영향을 미치십니다. 신자의 영혼에 역사하실 때 하나님의 성령은 하나님 자신의 고유한 본성을 나누어 주시는 방식으로 역사하십니다. 거룩은 하나님 성령의 고유한 본성입니다. 성령님은 신자의 마음 안에서 자신을 연합하시며 신자 안에 살면서 역사하시며 신자들의 기능이 행사되는 것을 통해 자신의 본성을 사용하십니다.  

 

o 이 신적이고 영적인 빛은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인상이 아니다

 

2) 이 신적이고 영적인 빛은 상상력 때문에 생긴 어떤 인상이 아닙니다. 이 빛은 마치 육신의 눈으로 어떤 것을 보는 것처럼 마음에 떠오르는 어떤 상상이나 관념이 아닙니다.

 

o 이 신적이고 영적인 빛은 하나님의 말씀에 담겨 있지 않은 어떤 새로운 진리나 명제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3) 이 영적인 빛은 하나님의 말씀에 담겨 있지 않은 어떤 새로운 진리나 명제를 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빛은 계시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교리를 계시하지 않으며 새로운 명제를 제시하지 않고 하나님, 그리스도, 다른 세계에 대해 성경이 말하지 않은 새로운 내용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고 있는 내용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o 이 신적이고 영적인 빛은 신앙적인 것에 대해 받은 감동이 아니다

 

4) 사람들이 신앙적인 것에 대해 감동을 받았다고 해서 이것이 모두 이런 영적이며 신적인 빛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낭만적인 소설을 읽거나 연극을 보고 감동을 받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믿지 않아도 그 이야기에 감동받을 수 있습니다. 신앙열정이 있는 사람도 영적인 빛이 아주 결여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혈과 육은 영적인 빛을 창조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일반적인 지적 동의의 수준에서 신적인 일들에 대해 열정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이 사람에게 신적인 것들을 영적으로 발견할 수 있게 하실 수 있습니다.

 

o 신적이고 영적인 빛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 계시되어 있는 것들의 신적인 탁월함을 참되게 깨닫게 되는 것이며 이 때문에 생겨나는 진리와 실재를 확신하는 것이다. 

 

이런 영적인 빛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 계시된 것들의 신적인 탁월함을 실제적으로 깨닫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 계시된 것들의 진리와 구원에 이르는 확신은 신적인 탁월함과 영광을 보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o 신적이고 영적인 빛은 신앙적 대상의 신적 탁월함에 대한 참된 감각이다

 

1) 신적이고 영적인 빛은 신앙의 대상에 대한 신적이며, 최상의 탁월함을 참되게 깨닫는 감각입니다. 즉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구속, 복음에 계시된 하나님의 사역의 탁월함을 실제적으로 깨닫는 감각입니다. 영적으로 조명을 받은 사람은 그런 영광을 참으로 이해하며 봅니다. 그는 하나님이 영광스러운 분이라는 것을 단지 이성적으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낍니다. 즉 이런 하나님의 성품이 아름답다는 것을 느낍니다.

 

선을 알 수 있는 두 종류의 이해 혹은 지식이 있습니다. 첫째는 단지 이론적 혹은 개념적 지식입니다. 어떤 것을 단지 개념적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동의 할 수 있는 지식입니다. 둘째는 마음의 감각으로 아는 지식입니다. 어떤 것을 대할 때 마음으로 어떤 것에 있는 실재를 기뻐하고 즐겁게 느끼는 것입니다. 이론적 지식은 단지 이론적인 것을 담당하는 기능, 더 정확히 말해서 의지 또는 성향과는 구별되는 지성(understanding)으로 이루어집니다. 마음의 감각으로 아는 지식은 의지(will). 성향(inclination), 마음(heart)이 주로 관련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거룩하시며 은혜로우신 분이라고 하는 견해를 가지는 것과 하나님의 거룩과 은혜의 사랑스러움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꿀이 달다고 하는 것을 이론적으로 아는 것과 꿀의 달콤함을 맛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전자는 다른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서 알 수 있지만 후자는 자기가 직접 겪을 때만 생기는 것입니다. 전자는 머리(head)와만 관계되는 것이나 후자는 가슴(heart)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가슴이 어떤 것의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느낄 때 그것은 반드시 이해를 했기 때문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o 참된 영적 감각에서 영적 확신이 생긴다

 

2) 하나님의 말씀에 담겨 있는 것들의 신적인 탁월함을 이렇게 느낄 때 이런 것들의 진리와 실재를 확신하게 되는데 이런 확신은 직접적이며 간접적인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 간접적인 확신

 

간접적인 확신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o 영적인 감각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리를 반대하는 마음의 편견이 제거되면 지성은 이런 진리를 이성적으로 논증하는 힘에 대해 민감해진다

 

① 영적인 감각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리를 반대하는 마음의 편견이 제거되면 지성은 이런 진리를 이성적으로 논증하는 힘에 대해 민감해 집니다. 사람의 지성은 본래 영적인 진리에 대한 편견과 복음에 대한 적대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런 편견과 적대감은 진리의 논증이 지성에 미치는 영향을 크게 약화시킵니다. 그러나 기독교 교리가 신적으로 탁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런 발견으로 인해 적대감은 없어지고, 편견은 제거되며, 이성은 성화되어 진리에 대한 논증을 잘 받아들이게 됩니다.

 

o 영적인 감각은 이성의 장애물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성을 도와준다

 

② 영적인 감각은 이성의 장애물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성을 도와줍니다. 영적인 감각이 생기면 이론적인 개념도 더욱 생생해지고 지성을 더욱 자극해서 지성이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지성은 더욱 판단을 잘하게 됩니다. 이성 자체는 기능을 발휘하는데 있어 더욱 큰 이점을 가지게 되며 어두움과 기만에서 벗어나서 이성의 고유한 목적을 이루게 됩니다.

 

@ 직접적인 확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신적 탁월함이 있다는 것을 참되게 깨닫는 감각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담긴 것들이 진리라는 것을 더욱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확신하게 해 줍니다. 매우 탁월한 하나님의 말씀 안에 담긴 것들은 신적으로 아름답기 때문에 단순히 인간적인 것 또는 사람이 만들어 낸 것과는 아주 분명하게 구별됩니다. 하나님께 속한 영광의 신성과 아름다움과 탁월함을 실제적으로 생생하게 보게 되면 그것이 인간이 만들어 낸 열매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신적인 탁월함을 깨닫는 감각에서 생겨나는 신앙의 진리를 확신하는 것이 구원을 얻을 만한 믿음 안에 담겨 있는 참된 영적 확신입니다. 이것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일반적인 지적 동의와는 본질적으로 구별됩니다.

 

2. 신적이고 영적인 빛은 하나님이 직접 부여하시는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이 빛은 직접 하나님이 부여하시는 것이며, 자연적인 수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o 자연적인 수단은 빛에 대해 적극적이다

 

1) 자연적인 기능들은 이 빛의 대상입니다. 자연적인 기능들은 이 빛에 대해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적극적입니다. 하나님은 이 빛을 사람의 영혼 안에 비추어 주심으로써 사람이 사람의 본성에 따라 즉 이성적인 창조물로서, 인간의 정신적 기능들을 바르게 사용하도록 하십니다. 이 영적인 빛은 이런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오는 것입니다.

 

o 자연적인 수단도 적극적인 역할이 있다

 

2) 이것은 외적인 수단이 이 영적인 빛 안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진리의 내용은 빛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계시된 진리를 합당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영적인 빛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말씀 없이 빛이 제공되지 않기에 복음이 이 영적인 빛에 사용됩니다. 복음은 거울과 같습니다. 이 빛은 복음으로써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고리도후서 13장 12절은 ‘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보는 것같이.....’라고 말합니다.

 

o 자연적인 수단은 이차적인 원인이다

 

3) 이 신적인 빛은 하나님이 직접 부여하시는 것이며 자연적인 수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은 하나님이 어떤 자연적인 수단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수단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수단이 결과를 만들어 내는 직접적인 원인은 아닙니다. 이 신적인 빛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직접 생기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이 빛의 일차적인 원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연적인 힘으로는 독립적인 빛을 만들어 내지 못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교훈의 내용을 지성에 전달해 주는 데 사용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머리에 교리에 대한 개념을 심어 줄 수는 있지만 우리 가슴에 교리가 신적으로 탁월하다는 감각을 심어 주지는 못합니다. 교리나 명제 자체는 말씀으로 전달되지만 그 교리의 탁월함을 보는 것은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빛의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성에 전달되지만 형식적으로 이 빛을 이루고 있는 마음의 감각은 하나님의 성령이 직접 부여하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가 거룩하고 은혜로우신 분이라는 생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지성에 전달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거룩하심과 은혜로우심이 탁월하다고 깨닫는 감각은 직접적으로 성령님의 사역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3. 신적이며 영적인 빛 교리의 진리성

 

 이 교리가 진리라는 것을 보여 주겠습니다

 

o 이 교리의 성경적 근거

 

① 오늘 본문으로 택한 마태복음 16장 17절만 해도 이 교리가 진리라는 성경적 근거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경구절을 통해 성도들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본다는 점에서 불신자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몇 구절만 보면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요삼 1:11).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요 17:3)

 

이 지식 또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것은 단순한 이론적인 지식일 수 없습니다. 이 빛과 지식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직접 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5절~2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전달해 주는 것은 하나님의 유일한 전권특사로서 하나님의 아들이 전담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이 구절은 명백히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인 최고의 영광과 탁월함을 발견하는 일이 있으며 이것은 특히 성도들에게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갈라디아서 1장 15~16절에 나오는 것처럼 전에는 우리에게 감추어졌던 것이지만 회심할 때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또한 시편 119장 18절처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을 하나님의 직접적인 선물이라고 분명하게 언급합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자기의 눈을 열어달라고 기도했을 때 그는 무엇을 간구한 것일까요? 그는 하나님 율법 안에 있는 기이한 것을 말했는데 하나님 말씀 안에 있는 명령과 교리 안에서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영광의 놀라운 탁월함과 또한 하나님의 계시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사역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하나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계획과 자비의 언약과 은혜의 길 등에 대한 지식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주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그리스도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오셨으며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6장에는 ‘예수께서 외쳐 가라사대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나를 믿는 자는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다.’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그리스도를 영적으로 보는 것이 같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사도들이 복음의 진리를 견고하게 확신한 것은 그리스도의 신적인 영광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변화되실 때 사도들이 보았던 그리스도의 영광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 영광은 신적이며 하나님의 거룩과 존귀와 은혜를 드러내었으며 그리스도께서 신적인 분이라는 것을 분명이 말해 주었습니다.

 

o 이 교리의 합리적 근거 

  또한 이 교리는 합리적입니다.

 

o 신적인 것에는 다른 것과는 아주 다르며 아주 초월적으로 탁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1) 신적인 것에는 다른 것과는 아주 다르며 초월적으로 탁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신적인 것, 최고의 존재에게 속해 있는 것에는 하나님처럼 높고 영광스러운 탁월함이 있으며 인간적인 것과는 아주 뚜렷하게 다른 것이 있을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의 교리에는 신적인 흔적, 신적인 영광이 있습니다. 그 말씀 속에는 사람의 말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합리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가장 지혜로운 사람의 말보다 분명 훨씬 더 다른 무엇인가가 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 23장 28~29절은 이 점을 잘 보여줍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몽사를 얻은 선지자는 몽사를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o 만일 신적인 것에 이런 두르러진 탁월함이 있다면 이런 것을 보는 어떤 것이 있다고 생 각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2) 만일 신적인 것에 이런 두드러진 탁월함이 있다면 이런 것을 보는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입니다. 그런데 이런 신적인 것의 탁월함을 보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신적인 것에 이런 탁월함이 있다면 사악한 사람이 이런 것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이며 마음이 완전히 오염되어 있고 혐오스러운 욕정의 지배 아래 있는 사람이 신적 아름다움이나 탁월함에 대한 어떤 맛이나 감각이 있으며 이런 사람의 마음이 아주 순수하고 천상에 속한 빛을 인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합리적입니다.

 

o 이 지식은 하나님이 직접 부여하시는 것이며 자연적인 수단으로 획득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3) 이 지식은 하나님이 직접 부여하시는 것이며 자연적인 수단으로 획득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입니다.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의사소통 수단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어떤 창조물에 대해서도 이런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특별히 이성적이고 지적인 창조물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더욱 합리적입니다. 이성적이며 지적인 피조물은 다양한 존재의 질서에서 하나님 다음이며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님을 존중하는 일을 하도록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의 창조주를 섬기며 영화롭게 하기 위해 지음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신적이며 영적인 빛을 인간에게 주시는데 영적인 지혜와 은혜는 하나님이 어떤 피조물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탁월한 선물입니다. 인간의 행복과 인간의 영원한 유익이 바로 이 선물에 달려 있습니다. 이런 선물과 유익이야말로 그 자체로 가장 하나님의 성품과 관련되어 있고 피조물이 하나님의 성품과 신성에 참여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빛이 태양에서 나오는 것처럼 그것은 일종의 하나님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발산한 것입니다.

 

이런 지식과 빛을 자연적인 이성의 능력으로 얻는 것은 인간의 능력을 벗어나는 것인데 왜냐하면 영적인 것들의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보는 것은 이성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음의 감각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감각으로 이런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데는 이성도 필요합니다. 이성은 많은 방식에서 간접적으로 유익이 됩니다. 즉 이런 빛을 통해 진리를 보는 것은 이성으로 가능합니다. 이성은 이런 빛을 받은 결과로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어떤 것의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인지하는 것은 이성의 영역이 아닙니다. 이성의 기능은 진리를 인식하는 것이지 탁월함을 인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의 감각에 달려 있습니다. 이성은 다른 사람에게 꿀이 달다는 것을 말할 수는 있지만 결코 나에게 꿀의 달콤함을 인식시켜 줄 수는 없습니다.

 

 

제 3부 적용

 

1. 신적인 빛은 학식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도 복음의 진리를 알도록 해 준다

 

지금까지 말한 것을 간단히 적용해서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1) 이 교리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하심을 묵상하도록 해 줍니다. 하나님은 복음의 진리에 대한 증거를 가장 뛰어난 능력과 학식을 가진 사람만이 아니라 보통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도 얻을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만일 학식 있는 사람만이 역사적 증거를 추론할 수 있다면 복음이 모든 인류에게 확장되는 데 지장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의 지식을 가진 사람도 어려운 논리적 훈련 없이 신앙에 속한 것들의 신적인 탁월함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일반사람도 하나님 성령으로 말미암아 공부를 많이 한 사람 못지않게 배울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것들이 계시될 때, 지혜 있는 자들에게는 종종 감추어지기도 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26~27절은 이것을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라고 말합니다.

 

2. 이 신적인 빛을 경험했는지 우리 자신을 살펴보자

 

이 교리에 따라 우리는 지금까지 묘사한 이런 신적인 빛을 우리가 이미 경험한 적이 있는지에 대해 우리 자신을 검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이런 것이 있다면 이것을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배웠는지 또한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이 우리에게 비추어져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우리에게 주셨는지, 또한 우리가 아들을 보고 아들을 믿으며 영적으로 그리스도를 봄으로써 복음을 믿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 됩니다.

 

 

3. 이 신적인 빛을 간절히 추구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이런 신적인 빛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의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o 이 빛은 피조물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탁월한 신적인 지혜다

 

1) 이것은 어떤 피조물이 소유할 수 있는 가장 탁월하고 신적인 지혜입니다. 이것은 어떤 인간의 학문보다 탁월하고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의 모든 지식보다 더욱 탁월합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흘낏 보는 것만으로도 은혜가 없으면서 신학을 이론적으로 대단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의 모든 지식보다 영혼을 더욱 고귀하고 품위 있게 만들어 줍니다.

 

o 이 빛은 가장 달콤하고 아름다운 지식을 준다

 

2) 이 지식은 다른 모든 달콤함과 기쁜 것보다 더 뛰어 납니다. 사람은 인간에 대한 지식과 자연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될 때 큰 기쁨을 얻습니다. 하지만 이런 지식에서 오는 기쁨은 신적인 빛이 영혼에 비침으로 생겨나는 기쁨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신적인 빛은 가장 최고의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이 신적인 빛은 마음속에 있는 영광의 새벽입니다. 고통 속에서 우리를 지탱시켜주고 이 험하고 어두운 세상에서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주는 것은 이보다 더 강력한 것이 없습니다.

 

o 이 빛은 마음의 본성과 성향을 변화시킨다

 

3) 이 빛은 마음의 성향에 효과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영혼의 본성을 변화시킵니다. 이 빛은 사람의 본성이 신적인 본성을 닮게 해주며 사람의 영혼을 고리도후서 3장 18절에 나오는 것처럼 영광의 형상으로 변화시킵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이 지식은 마음의 성향으로 하여금 세상을 사랑하던 것을 포기하고 천국으로 향하도록 해 주고 마음을 선의 원천이신 하나님께 향하게 하여 하나님을 유일한 소유로 삼게 해 줍니다. 이 빛만이 영혼을 그리스도와 연합시켜 주며 마음을 복음과 일치시켜주어 복음에 계시된 구원의 계획과 반대되는 복음의 적대적인 세력을 제거해 줍니다. 이 빛은 우리 구세주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를 환영하며 온 마음을 복음에 대해 전적으로 동화시켜 주며 완전한 신뢰로 복음을 인정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 빛은 마음을 전적으로 그리스도에게 헌신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O 이 빛은 보편적인 거룩의 열매를 맺게 해 준다

 

4) 이 빛만이 삶에 전반적인 거룩의 열매를 맺게 할 수 있습니다. 교리에 대한 단순한 관념적이며 이론적인 이해는 결코 이런 거룩의 열매를 맺게 할 수 없습니다. 이 빛은 보편적인 순종까지 이루어 낼 것이며 하나님이 순종과 섬김을 받으셔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 빛은 마음속에 참되고 은혜롭고 보편적인 순종을 만들어 내는 유일한 원리인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산출해 냅니다. 그리고 이 빛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순종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영광스러운 상급을 확신하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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