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위로의 보혜사 성령
이스라엘의 아버지들은 가정교육에 매우 엄격합니다. 아들이 곁길로 가면 꾸중하고 무서운 체벌을 가합니다. 그러면 아들은 ‘저 사람이 정말 나의 아버지가 맞을까?’하고 의심한다고 합니다. 그때 어머니는 아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아들아,네가 잘못할 때마다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아픈 줄 아느냐. 너를 때릴 때마다 아버지는 가슴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신다”고 말해준다고 합니다.
보혜사란 말은 이처럼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아름답게 이어주는 어머니의 역할을 의미하는 ‘파라클레이토스’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우리가 애매하게 당하는 고난이나 이해할 수 없는 고통으로 인하여 눈물 흘리고 있을 때 보혜사 성령께서는 아버지에게 맞은 아들을 위로하는 어머니처럼 눈물을 닦아주시고 위로해주십니다.
인생이 광야처럼 삭막하고 힘들 때 아무도 나를 돌아봐주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고독한 순간에도 내 영혼을 안아주시는 위로의 보혜사 성령님의 손길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소강석 목사(분당 새에덴교회)
2. 바이러스와 백신
컴퓨터를 사용해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컴퓨터 바이러스에 걸려 고생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컴퓨터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프로그램이 망가져서 그동안 수고해서 작업한 파일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린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바이러스에 걸리면 소용이 없다. 이때는 컴퓨터 백신으로 바이러스를 잡아 제거해야 한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 역시 아무리 좋은 목표와 계획을 세웠다 해도 이를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 곧 마귀라는 바이러스다. 그것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성령의 백신뿐이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아직 예방은 하지 못하고 치료만 가능하다고 하지만 성령의 백신은 예방과 치료가 동시에 가능한 최첨단 슈퍼 치료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항상 성령으로 무장하고 깨어 기도하여 마귀라는 바이러스를 물리쳐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김성혜 총장 (한세대)
3. 왜 무디인가?
미국의 D L 무디(1837∼99) 목사만큼 기독교 부흥시킨 인물도 드물다. 그는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지만 복음적이며 영감 있고 열정적인 설교로 수많은 영혼을 주께 인도했다. 그의 집회가 있을 때마다 은혜를 받으려고 모여든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한 지역에서 무디 목사를 초청,전도집회를 가지려는 준비모임이 열렸다. 이때 어떤 젊은 목회자가 벌떡 일어나 “왜 강사로 무디만 고집합니까? 무디 외에는 설교자가 없단 말입니까? 그가 성령을 독점하기라도 했단 말입니까?”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존경받는 원로 목회자가 조용히 웃으면서 말했다. “무디만이 성령을 독점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이 시대에 무디를 독점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순간 장내에는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이 시대에도 분명히 성령께서 쓰시는 사명자들이 있다.
/김상길 국민일보 논설위원
4. 기도를 도우시는 성령님
옛날 이야기 입니다만, 희랍의 한 신이 왕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당신의 한 가지 소원을 말하면 이루어 주겠다” 고 하니, 왕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금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으니 내 손이 닿는 것 마다 다 금이 되게 해달라”고 소원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정말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는데, 마이크를 잡으면 마이크가 금이 되고, 종을 잡으면 종이 금으로 변했습니다.
너무 신이 나서 왕비에게 알리려고 가다가, 강아지가 반갑게 다가와서 껴안으니 강아지가 금 강아지로 변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꼭 껴안았더니 아내가 금덩이로 변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와서 안기니까 그 아들도 금덩이가 됐습니다. 배가 고파서 밥을 먹으려고 수저를 들었더니 수저도 금덩이요, 밥도 금덩이로 변해서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어서 쫄쫄 굶다가 굶어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대로 다 된다면 오히려 우리에게 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로 바꾸어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5. 기독교의 능력은 성령의 능력
여러 해 전에 어떤 사람이 미국에 와서 큰 인기를 얻으며 많은 추종자들을 끌어모았다. 그 방법은 가정에서 만든 ‘로자리오 묵주’(rosary)였다. “매일 아침 이 작은 줄을 어루만지며 ‘나는 날마다 더 좋아지고 있다’라고 중얼거리면 만사가 형통할 것이다”라는 그의 황당한 주장에 그토록 많은 사람이 놀아났던 것이다.
기독교는 이런 황당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권능은 다른 세계로부터 찾아오는 능력이요, 우리의 동의에 따라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오는 능력이요, 우리의 삶의 뿌리까지 찾아와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다. 이것은 미신의 능력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이 성령님에 대해 정말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 일부 신자들은 성령님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그분에게는 비정상적이거나 무시무시한 것이 없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靈)이시다. 때문에 그분은 꼭 예수님 같은 분이시다. 예수님이 그토록 온유하고 겸손하실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이 성령님의 능력으로 충만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하나님의 영은 홀대를 당하신다. 심지어 성령님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조차 광신자라는 손가락질을 받을까 봐 성령님의 능력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다.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이 성령님을 두려워하여 피하도록 만들려는 마귀의 속임수 때문에 생긴 현상들이다.
「세상과 충돌하라」/ A. W. 토저
* 기도: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허락하소서. 또한 말씀을 읽을 때마다 성령님을 의지하게 하시고 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적용할 수 있도록 매순간마다 인도자가 되어 주소서.
6. 성령 충만 하지 않으면
강원도 예수원에서 사역하셨던 대천덕 신부님은 성공회 신부님이신데 그분 할아버지인 R. A. 토레이 목사님의 글에는 성령 충만이 자주 강조됩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성령 충만을 위해서 기도한다. ‘하나님! 성령 충만하게 도와주십시오.’ 왜냐하면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오늘 하루 나는 너무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 제가 성령 충만하다고 느끼지 못할 때 함부로 말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성령 충만하지 않을 때 말하면 실언이 되기 쉽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제가 성령 충만하지 않을 때 제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저의 결정은 잘못될 가능성이 항상 있기 때문입니다.” R. A. 토레이 목사님은 이처럼 성령 충만을 사모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 감정을 다스린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부패한 인간의 죄성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실패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을 사모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를 주관하시면 우리는 감정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분노를 넘어서서 자유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는 죄의 소원을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회개행전」/ 이동원
7. 성령의 역사
성경: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인도의 개척 선교사였던 스코트 목사는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미개척 선교지를 향하여 가다가 적의를 품은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긴 창으로 그의 심장을 겨누었습니다. 이젠 꼼짝 없이 죽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약속 위에 굳게 서서 늘 가지고 다니던 바이올린을 켜면서 원주민들의 언어로 찬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주 예수 이름 높이어 다 찬양하여라. 그 앞에 무릎 끓고서 면류관 드리세. 금 면류관을 드려서 만유의 주 찬양" 스코트 목사는 잠시 후면 다가 올 죽음을 기다리며 눈을 감고 찬양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3절이 다 끝나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눈을 떠보니 그를 겨누고 있던 사람들의 손에서 창이 떨어져 있었으며, 눈에는 눈물이 가득 교여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찬양을 받으실 그 높으신 이름이 누구인지 말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들과 함께 집으로 가서 여러 해 동안 그들 가운데서 거하며 수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도 성령님을 의지하여 승리하시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8.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내게 계시네
황의성 씨가 쓴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내게 계시네] 라는 책의 제목은 찬송가 427장 후렴 가사를 옮겨 놓은 것이다 그는 지난 2001년 3월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427장의 찬송을 하루에 세 번 내지 다섯 번씩 불렀다고 한다 황의성 씨는 소년 시절부터 절도와 폭력, 강도, 강간, 등 닥치는 대로 죄를 저질렀던 사람이다. 그래서 교도소도 여러 번 다녀왔다 그런데 1970년 12월, 7개월의 복역 잔류 기간을 앞두고 안양 교도소로 이송되는 상황이 생겼다 새롭게 지정된 감방에 들어가니 고참들이 고통을 주기 시작했다 화가 난 황의성 씨도 육탄전으로 맞섰지만, 그때마다 눅실하게 맞고는 분을 삭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감방 안에 변기통 옆에서 한 죄수가 그들의 싸움을 보며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기도를 마친 그 사람은 눈물도 닦지 않은 채 황의성 씨의 피를 닦고 간호를 해 주었다고 한다 그때 황의성 씨의 가슴은 마치 불덩이가 날아와서 불을 붙이는 것처럼 뜨거워졌다고 한다 그로부터 황의성 씨는 착실한 신자 죄수와 친하게 지내면서 그리스도를 영접했고, 성경을 읽으면서 뜨거운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다 황의성 씨가 변화되는 모습을 본 교도소 측에서는 3개월을 앞당겨 출소시켜 주었다 이후 그는 날마다 이 찬송을 불렀다 "성령이 계시네, 할레루야 내게 계시네." 이렇게 성령은 불씨 중에 가장 위력 있는 불씨라서 한 죄수의 마음을 태우고, 그로 하여금 영혼 구원 역사에 동참케 했던 것이다.
/임해식
9. 비둘기 같은 성령
젊은 크리스천 여성이 백화점에 취직했다.
주위 동료들이 모두불신자였으므로 그녀는 세속적이고 비속한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얼마 동안은 친구들에게 물들거나 무의식 중에 기독교인 티를 내는 말이 튀어 나올까봐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은 친구들의 방식을 따르고 싶은 마음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예전과 변함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사실이 참으로 놀라울 뿐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런 환경 속에 있으면서도 전혀 더럽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녀는 자신보다 먼저 기독교인이 된 믿음의 선배를 찾아갔다.
"제가 그런 곳에 있으면서도 물들지 않은 생활을 하는 것이 참 이상합니다. 이것만으로도 큰 기쁨입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선배는 조용히 말했다.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를 알지? 이 비둘기는 지상의 오물 가운데에 있어도 단 한 번도 더렵혀지지 않아. 항상 자신의 빛깔인 순백을 잃지 않고 있어. 왜냐하면 비둘기의 날개 밑에서 계속 기름이 흘러나와 더러움을 깨끗하게 씻어 주기 때문이야."
우리들도 비둘기처럼 끊임없이 성령의 기름에 의해 죄의 더러움을 씻고 있다. 그러기에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다.
10. 성령 받은 증거
작가 이어령씨의 <아들이여 이 산하를>이란 책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옛날 어느 시골에 수염을 길게 가꾸고 다니는 할아버지가 한 분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동네에 사는 꼬마 아이 하나가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궁금한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할아버지를 만나자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밤에 주무실 때 그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주무십니까. 아니면 끄집어 내놓고 주무십니까.” 할아버지는 이 질문을 받고 “얘야. 미안하다. 나도 미처 생각지 못한 일이니 하룻밤만 자보고 대답을 하마.” 그리하여 그 날 밤 수염을 붙들고 씨름을 합니다. 수염을 이불 속에 넣으면 답답하고 끄집어내면 쓸쓸하고. 그리하여 30년 동안 달고 다닌 수염이지만 수염의 위치를 알지 못하고 맙니다. 저자는 이 얘기를 통해. 30년 동안 내 몸에 달고 다닌 수염이 이불 속에 있어야 하는지 밖에 있어야 하는지. 철야를 하면서도 깨닫지 못하듯 내가 지금 예수 안에 있는지 예수 밖에 있는지. 내가 지금 진리 안에 있는지 진리 밖에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자세를 꼬집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유일하고도 완벽한 대답이 성령을 받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오늘 한국 교회 안에 성령을 받는 것은 귀신들린 점쟁이와도 같이 공연한 열정과 열심을 내며 광신적으로 날뛰어야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한국 교회 한 부분에서는 방언이 성령 받은 유일한 증거인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느 교단에 들어가면. 또 어느 기도원에 들어가면 개도 다 방언을 한다고 가르칩니다. 개는 다 방언을 할지 몰라도 그리스도인이 다 방언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방언은 수많은 성령의 선물 가운데 하나이지 성령 받은 단적인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시라 할수 없느니라.”(고전12: 3)
11. 성결한 언어
성령으로 충만한 자는 성령님의 인격에 감화와 영광을 받고 있는 자인데 그런 자의 마음에서 나오는 언어들은 성령님의 인격의 감화에서 나오는 언어들인 것이다. 그래서 성령으로 충만한 자의 말을 듣고 있으면 그 언어가 풍기는 사랑의 향기가 감미롭다. 그래서 기쁨으로 마음이 밝아져 옴을 느낀다. 그 자리에 평화가 감돌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성령충만한 자들의 모임에서의 대화는 모든 이의 마음을 하늘로 향하게 하고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성결된 언어들로 가득하다.
똑같은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해도 성령으로 충만한 자의 언어는 하나님의 빛 아래서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감동이 있고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 그 언어에다가 곡을 붙이면 찬송이 되고, 그 언어를 소원의 형태로 다시 고치면 기도가 되고, 그 자리를 구별시키면 하나님 경배의 자리가 되는 것이다.
/한태완 목사(예화포커스)
12.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
본문: 갈5:16-26 * 찬송: 177장, 178장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어떤 사람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밭 중에서 가장 기름지고 좋은 밭에다 구덩이를 깊이 파고 돌들을 다 제해 버리고, 거름을 잘 주고는 아주 품종이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이 주인은 큰 기대를 걸고 포도나무가 자라고 포도가 열리면 여우가 와서 따먹을까봐 망대도 세우고 잘 자라서 열매를 맺도록 잘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열매가 잘 열리면 다 따먹을 수가 없으므로 그것을 따서 술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포도송이를 눌러서 짜는 집틀, 즉 술틀도 마련해 놓았습니다. 이 농부로서는 온갖 있는 정성을 다 들여서 나무를 가꾸고 좋은 열매를 맺으리라고 기대했었는데 열매를 보니 포도는 포도인데 들포도, 즉 머루를 맺어버렸습니다. 이것을 본 농부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기대를 하고, 만반의 준비를 해 놓았는데 기대에 어긋나는 열매를 맺었으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포도나무를 파내고 싶은 심정이요, 그것을 지키는 울타리나 망대도 더 이상 관리할 의욕을 상실해 버렸습니다.(눅13:6-9) 이 말은 현대를 사는 성도들에게 하시는 교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의 피로 구원해 주시되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내어 주시기까지 하면서 사랑해 주셨는데, 과연 우리의 마음과 생활에는 어떤 열매를 맺습니까? 결국 우리들도 주님이 원치 않은 들포도를 맺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즉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육신의 열매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을 기쁘게 합니다.(요3:5, 고전12:3)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8)
* 기도: 성령이여 강림하사 크신 권능과 능력을 주옵시고 주의 역사를 위하여 맡은 일을 헌신적으로 잘 감당하고 성령의 열매를 많이 맺게 하옵소서.
/한태완 목사(가정예배)
13. 성령의 인도
본문: 에베소서 5:15-21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본문에서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말씀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갖추었다고 하여도 악령의 권세를 이길 힘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악령의 지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 마음 속에서 역사 해야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길이 무엇입니까? 날마다 쉬지 않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영적인 교통을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성경은 가르치기를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의 능력은 우리의 생활이 성령 안에서 인도를 받게 하는 힘을 공급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31편15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와 핍박하는 자의 손에서 나를 건지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억압감정에서 자유함을 얻는 길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미국의 우주 항공국에서 아폴로 8호를 계획하고 진행시켰던 저명한 전자과학자 린드만 박사는 아폴로 8호가 우주 비행을 시작하기 위해서 발사대를 떠날 때에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우주 비행이 성공적으로 끝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체험했던 린드만 박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자연과학자가 그 후에는 목사가 되었고 지금은 신학교의 교수로 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에 우리는 보람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 기도: 성령의 인도 없이 이 가정은 유지될 수 없아오니 오늘도 선한 목자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옵소서
14. 성령의 음성을 따라서
서른이 넘어서 군 생활을 하게 된 나에게는 너무나도 뚜렷하게 들렸던 성령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신병이 되어서 내무반에 신고식을 하게 될 때, 고참의 엄포와 함께 신고식에서 반드시 내무반장이 좋아하는 유행가를 불러야 한다는 요구에 괴로워하던 날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내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찬송가 434장을 하라는 조용하지만 너무나도 강력한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후에 벌어지는 어떤 불이익도 감수하겠노라는 각오로 성령의 음성을 따르기로 작정하고는 그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상관들의 고함과 야유와 협박이 찬송을 중단시키려고 했지만, 어디선가 "조용히 해라, 찬송 좀 듣자" 하는 어떤 소리와 함께 나는 찬송을 끝까지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그 내무반에서 한 상관이 내게 다가와 성경에 대해 묻고, 성경공부를 인도해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그 상관은 제대 후에 어느 자그마한 교회에서 없어서는 안될 큰 일꾼이 되었습니다. 나는 그때 성령의 뜻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는 때로는 잔잔하고 고요하게, 때로는 급하고 강하게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성령의 역사하는 힘은 너무나 강렬하여서 '바람에 의해 절로 날아가는 종이 비행기'같이 우리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그저 그 힘에 편승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 기도: 주님의 일에 함께 참여하도록 격려하시는 주님, 주님의 음성에 민감하여지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게 하옵소서
15. 성령은 승리자이다
이태리의 프란체스코의 수녀이며 신비 사상가인 안제라는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성령이 어떤 사람의 영혼에 부어지면 성령은 그 사람의 외양도 완전히 정숙하게 한다. 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일 뿐이다." 오늘날 성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그들의 태도도 이 말로써 측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성령의 9가지 열매를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성령 충만함을 받을 때 맺을 수가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는 일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근본적이며 중요한 일입니다. 믿음과 은혜의 성장은 성령으로 인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충만하게 받지 못하면 우리는 불가불 하나님께 욕을 돌리고 교회에서는 무익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오스틴 오말리는 "반쯤 익은 설교는 영적인 소화불량을 일으킨다"고 말했습니다. "반쯤 익은 설교란 성령이 충만하지 못한 상태의 설교를 뜻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성령을 받기 위하여 기도하는데 그런 사람 중에는 순전히 이기적인 목적으로 기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의 뜻과는 상관없이 성령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 기도: 온전케 하시는 주님, 말씀으로 나를 치유하시고 열매맺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옵소서. 주님의 영광을 내게 허락하사 나의 허영과 탐심, 욕망들이 성령충만함으로 버려지게 하옵소서.
16. 희생과 열매
성령을 받아 거듭난 사람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 열매들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맺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속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맺어지는 열매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이런 열매들을 맺으려면 날마다 순간마다 죽어야 합니다. 이런 열매는 자아가 살아있을 때는 불가능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음으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요 12:24)
17. 예배와 성령
예배를 드림에 있어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성령은 예배자의 마음을 예배에 집중하게 하고 매순간 은혜로 채우신다.
즉 예배자의 마음에서 세상 염려, 삶의 두려움, 분노, 좌절감 등을 제거하시고,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은혜를 덧입고자 갈망하는 마음으로 가득 채우신다. 그리고 예배를 방해하는 사탄의 공격(잡념, 육체의 통증, 두리번거리고 잡담하게 하는 것)을 차단시켜 주신다. 또 찬송을 부를 때 모든 노랫말이 진정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기도와 신앙 고백이 되게 하시며, 대표 기도자의 기도에 “아멘”으로 화답하게 하시고, 말씀을 들을 때 깨달음과 회개함과 전적으로 의지하는 마음을 주신다. 특히 성령은 설교 말씀이 각자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르쳐 주신다.
따라서 성령의 기름 부음 속에서 드리는 예배에는 자유함과 기쁨과 능력과 평안이 임하게 된다. 그러므로 아무런 준비 기도 없이 예배에 임하지 말라. 예배를 드리고 난 뒤에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먼저 성령의 기름 부어 주시는 은혜를 받아야 참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하는 믿음 행하는 믿음 /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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