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아찌 인생
요즘은 먹거리가 풍성해서 무엇을 먹을 것인가로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제 철에 맞는 별미도 있고, 전혀 색다른 음식도 있다. 마땅한 찬거리가 없던 여름에는 소금물에 절였던 오이지를 송송 썰어 갖은 양념에 무쳐 먹는 일이나, 찬물에 우려내어 냉국으로 먹는 것도 일품요리였다. 보릿고개 시절에 먹었던 장아찌조차 그리워진다. 된장, 고추장, 간장 속에 박아 둔 장아찌들은 진정한 별미였다. 그것은 서양식 오이피클이나 일본식 단무지의 맛과는 차원이 다른 우리 민족 특유의 짠맛과 향기가 배어났다.
문득 장아찌의 경제학을 떠올린다. 낭비와 소비가 일상화된 요즘, 나부터 조금씩 절약하며 살면 어떨까. 좀 짜게 살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웃을 배려하고 나눔을 실천한다면 은은한 삶의 맛이 우러나오지 않을까. 장아찌처럼 짭짤하고 깊은 맛을 내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마 5:13).
/신경하 목사(기감 감독회장)
2. 거룩한 삶에 대한 애통함
1984년에 세상을 떠난 프란시스 쉐퍼 박사를 기억합니다. 쉐퍼 박사는 말년에 암으로 투병 생활을 합니다. 그는 암과 혹독하게 싸우면서도 아픈 몸을 이끌고 캠퍼스 사역에 나섰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자기가 사랑했던 젊은이들에게 남기고 싶은 최후의 메시지를 피를 토하듯 외쳤습니다. 그가 외친 내용은 이상스런 것이었습니다. “행복을 삶의 목표로 삼지 마십시오.”
누구에게나 의아한 제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이러했습니다. 미국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행복은 구하지만 거룩함은 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프란시스 쉐퍼 박사의 메시지는 미국인들에게만 해당되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한국 교회가 이 시대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이유는 축복과 행복은 구했지만, 거룩함은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크리스천 젊은이들은 꿈과 비전은 구하지만 거룩함을 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복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꿈과 비전이 우선이 아닙니다. 행복과 축복이 우선이 아닙니다. 죄에 대해 애통하고 슬퍼하는 마음을 갖고 거룩한 삶을 추구할 때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고경환
3. 문화의 의미
문화는 라틴어로 쿨투라(Cultura)다. 그것은 종교의식과 경작하고 파종한다라는 ‘쿨투스’에서 기원했다.종교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신앙 차원에서 문화가 발생했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의 기독교문화도 이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바벨탑을 쌓은 일은 하나님의 뜻을 어긴 인간이 모여 하늘로 올라가려는 의지를 표현한 문화적 활동이었다. 하나님의 진리를 적대시하고,명령을 거스르는 ‘바벨탑의 문화’는 지금도 곳곳에서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문화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장 좋은 선교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신앙을 파괴시키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소금인 그리스도인들이 소금의 사명을 그 시대 속에서 잘 감당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정직과 희생의 모습을 갖춘 신앙인의 삶이 모일 때 아름다운 새 문화를 이룰 수 있다.
/장학일목사(예수마을교회)
4. 폐결핵에 걸린 공주
어느 나라의 공주가 인형을 너무 좋아해서 곰 인형,토끼 인형 등 갖가지 종류의 인형을 안고 놀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공주가 폐결핵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음식도 좋고, 환경도 좋은 왕궁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됐는지 조사를 했습니다. 왕은 자신의 왕국에 있는 가난한 사람을 잘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 밖의 가난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은 곧잘 폐결핵에 걸리곤 했고, 기침하면서 만들었던 그 인형을 통해 공주가 폐결핵에 걸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왕은 성에 있으면서 잘 먹고, 잘 입고, 잘 지내면 늘 건강하고 괜찮으리라 생각했지만 그가 돌보지 않았던 가난한 사람들,폐병환자로 인해 결국 자신도 사랑하는 공주를 잃게 되는 끔찍한 피해를 입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나만 괜찮으면 다 괜찮다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공동체가 정의로운 공동체가 되어서 이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원하십니다.
/피영민 목사(강남중앙침례교회)
5. 성도의 역할
본문: 마태복음 5장 13절
잔칫집에 초대된 손님은 잘 차려진 음식을 먼저 대하면서 흥이 돋기 시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음식 맛이 없는 잔치는 실패한 잔치입니다. 이 말은 음식 맛이 그 잔치의 성공을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잘 차려진 음식의 맛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좋고 많은 양의 양념도 필요하겠지만, 그 음식의 맛을 좌우하는 가장 귀중한 양념은 바로 소금인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교회에서, 가정에서, 사업장과 직장에서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세상은 죄를 짓는 장소로서의 땅을 말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죽어 묻히는 장소로서의 땅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땅에서 우리 인간의 역사는 어리석고, 타락하고, 절망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쓴맛밖에 없는 이 세상에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것은 자신을 희생하심으로써 인류의 소금 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죄로 인하여 절망해 살맛을 잃었던 모든 사람이 십자가의 주님을 만나 거듭나면 살맛이 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막힌 천국의 진리의 맛을 본 사람들이 잔치에 자원하는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기막힌 잔치(복음)에 더 많은 사람을 불러들이기 위해 사랑과 희생을 감내하면서 열심히 또 기쁨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소금이 맛을 내는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을 철저하게 희생시켜 녹은 소금은 그 맛을 감칠나게 하는 것입니다. 잔치를 하는 집의 일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음식 장만, 손님 대접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손님들은 잘 차려진 음식과 유흥에 입과 눈은 즐겁지만 일꾼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들은 그저 손님들이 잘 먹고, 잘 노는 것에 만족해야 합니다. 일꾼이 자신의 일을 망각하면 소금이 그 맛을 잃은 것과 같습니다. 결국 성도가 천국 잔칫집의 일꾼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예수님의 제자라는 위치를 잃어버리게 되고,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열심으로 소금의 역할을 다해 세상을 살맛나게 하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열심히 그 역할을 감당할 때 성령께서 함께하실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사명을 다하여서 이 세상을 깨끗하고 건강하게 만들어 살맛나는 세상이 되게 하는 성도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상운 목사
6. 이제는 소금으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태복음 5장 13절)
바닷물의 짠맛을 내는 소금의 양은 2.071%에 불과합니다. 생각보다 아주 적은 양입니다. 한국의 크리스천이 1000만명을 넘는 지금 과연 세상에 대한 기독교인의 영향력은 어떻습니까? 얼마전 독일의 여론조사 기관이 조사한 ‘뇌물제공지수’에 의하면 세계 21개국 중 한국이 4위에 올랐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누구를 탓할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이 먼저 청렴과 정의를 실천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본문은 죄악으로 가득한 이 시대에 믿는 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줍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왜 예수님은 우리에게 소금으로 살라고 하셨을까요?
‘소금은 부패를 방지합니다.’ 소금은 음식이 썩는 것을 막는 방부제 역할을 합니다. 그리스도인 역시 어느 곳에 가든지 그곳을 썩지 않게 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빌 4:8) 모든 일에 참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소금은 맛을 냅니다.’ 소금이 들어가지 않으면 어떤 음식도 제 맛이 나지 않습니다. 맛을 내려면 먼저 소금이 음식에 녹아야 합니다. 녹는다는 것은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주님은 살맛나는 세상을 이루기 위해 믿는 자에게 겸손과 사랑으로 섬길 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소금은 생명력을 제공합니다.’ 인간의 몸에 필요한 하루 최저 소금 섭취량은 10∼15g 정도라고 합니다. 만일 이것이 공급되지 않으면 노폐물이 배설되지 못해 병이 생기는 것은 물론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조용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사회에 생명력을 제공하는,없어서는 안될 인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이상과 같은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할 때 주님은 무섭게 경고하십니다.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밖에 버리워 밟힐 뿐이니라”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에는 암염이 많았습니다. 암염은 만약 이를 옮기다 비를 맞게 되면 소금기가 다 빠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가치가 없어져버립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소금 된 그리스도인들이 비 맞은 암염처럼 그 맛을 잃어 세상 사람들에게 밟히고 있지 않는지 염려스럽습니다. 혹시 당신도 그 맛을 잃어 세상 사람들에게 비웃음당하는 불쌍한 그리스도인은 아닙니까? 이제라도 회개하고 소금의 맛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소금의 맛을 회복하면 이 세상은 조용히,그러나 분명 새롭게 변화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 기도: 주님, 세상에 밟히는 무력한 크리스천이 아니라 소금의 사명을 회복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참된 예수 제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석년 목사(서초교회)/국민일보
7. 소금의 맛
구세군을 창설한 윌리엄 부스가 죽기 3개월 전입니다. 신자들이 그의 병상에 모였습니다. 부스는 그들에게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거리에는 우는 여인들이 있습니다. 함께 우시오. 배고픈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대의 주머니를 터시오. 감옥에 죄인이 넘쳐납니다. 사랑의 손길을 펴시오. 우리 구세군은 사회의 악과 싸우는 주님의 군대입니다. 희생이 없는 신앙생활은 짠 맛을 잃은 소금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빛과 소금으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내 자신을 쳐서 복종시킬 때 빛과 소금의 사명이 가능해 집니다. 오늘도 나 자신을 쳐서 복종시킴으로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8. 소금의 위력
바닷물은 대단히 짜다.그런데 그 바닷물에 들어있는 소금 함량은 고작 3.4%에 불과하다. 소금이 3.4%만 있어도 바닷물은 석지 않는다.그런데 기독교라는 소금이 25%가 되는데도 학국 사회는 왜 썩어만 가고 있는가? 켐퍼스를 뒤흔들고 한국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학생운동은 실질적으로 1%미만의 학생들에 의해 이루어 지고 있는데...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만들었을 때 그리스도인은 9%밖에 되지 않았다. 9%의 로마인들이 얼마나 멋지게 살았던지 황제까지도 자기를 신이라 하지 말고 저들이 믿는 신을 믿게 하자고 기독교를 국교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25%의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우리 사회는 왜 이런 변화가 없는지.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길에서 밟힐 뿐이다. 한국의 기독교는 세상의 길에서 밟히고나 있지는 않는지 반성해 봐야 한다.
9. 자신을 녹여 내는 소금
바닷물 100에는 3정도의 염분이 들어있습니다. 3이라는 소금을 만들려면 97의 물을 증발시켜야 합니다. 출렁이는 물 속에서 자신을 녹이고 드러내지 않는 소금이 있기에 바닷물은 썩지 않습니다. 음식에 소금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맛이 날까요? 소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생선을 절이거나 김치를 담을 때, 혹은 나물을 무칠 때나 국을 끓일 때, 자신을 낮추고 다른 것을 드러내어 맛깔스럽게 하는 소금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소금은 창백한 빛을 발해 유약해 보이는 듯하나 주어진 것에는 최선을 다합니다. 결코 내세우지 않으며 스스로 녹이고 있을 뿐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결국 자신을 녹여서 그를 위해 빛과 소금이 되어 주는 것이 아닐까요
10. 사모곡
내 나이 벌써 40대 중반, 슈퍼에서 많은 소금 봉지들을 두고 딱 하나를 고르기 어려워하는 것은 소금을 몰라서가 아니라 무공해 소금을 찾는 시대에 살기 때문일 것이다. 비슷하게 그 옛날 두 가지 소금으로 충분했던 시절, 장독대에서 나는 소금항아리를 못 찾아 늘상 항아리 뚜껑을 열어봤어야 했다. 두 항아리 중 맨 뒤 굵은 소금항아리는 구분이 쉬운데 앞쪽에 섞여 있는 가는 소금항아리는 수시로 물행주를 들고 닦으시는 데다가 조경의 미까지 즐기시느라 자꾸 항아리 위치를 바꿔놓으시는 친정어머니의 부지럼함 덕분에 가끔 장독대에 들어가는
나로서는 구분하기 어려웠다. 소금이 떨어질 때쯤이면 이른 아침부터 대문을 활짝 열어제끼고 깡마른 체구에 팔순도 넘어뵈는 주름진 얼굴로 ‘고흥 할머니’가 “아즈메, 고흥 소금사!” 하고 나타난다. 우리 동네 소금판매 고정 출연 스타였다. 어머니도 장독대에서 항아리를 꺼내 마루에 올리셨고 왕왕, 개들이 달려들어도 보무도 당당하게 마루까지 오셔서 소금을 꾹꾹 항아리 주둥이까지 눌러 채우셨다. 값을 챙겨 잰걸음으로 나가시면, 어머니는 항아리를 제자리에 갖다놓으시고 아침 햇살 아래서 반짝반짝 닦고 계셨다. 그 소금을 사주시던 동네
어른들은 이젠 한분도 살아 계시지 않고 살림만 아시던 우리 어머니도 긴 세월의 무게를 못 이기시고 병원 요양원에 안쓰러이 묶이셨다.
“나만 남았어야… 언제 올래?” 채광을 무시하고 지은 우리 아파트 베란다에 버림받은 아이처럼 서 있는 저 빈 항아리 두 개가 길이 멀어 자주 못 뵙는 어머니를 그리며 서러워질 때마다 내 동무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국봉희, 서울시 강남구 일원동
11. 타지 않은 초, 녹지 않는 소금
어느 부자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 부자는 억울했다.
“죽지 않는다면 무엇이든지 하겠어.”
천사는 그의 영혼을 데리고 촛불이 가득 켜져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초의 크기는 재능 재산 명예 학식 등 온갖 소유물을,불꽃의 밝기는 그 소유물을 선한 일에 얼마나 썼는지를 나타냈다. 잠시 후,천사는 부자에게 굵은 초를 가리켰다.
“저 초가 얼마나 밝은 빛을 내고 있는지 보시오.”
그 초는 이제 겨우 팥알만큼 파였을 정도였고,촛농으로 인해 불꽃은 거의 꺼져가고 있었다. 그 초는 다름 아닌 부자의 초였다. 부자는 자신의 삶을 진심으로 뉘우치고는 1년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그는 병상에서 일어나 많은 재산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했다. 소금이 짠 맛을 내려면 녹아야 하고, 초가 타서 녹지 않으면 불을 밝힐 수 없다. 밀알은 썩어야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이는 불변의 진리다.
/장학일 목사<예수마을교회>
12. 세상의 소금이라
옛날 어느 임금이 온 국민을 불러 놓고 대연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음식은 왕이 마련하고 참석자는 그저 포도주 한 병씩만 가져오도록 했습니다. 잔칫날이 왔습니다. 사람들이 가져온 술들은 모두 큰 동이에 모아졌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식탁에 앉아 그 포도주를 잔에 따라 마시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술맛은 맹물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누구나가 다 남들은 포도주를 가져올 것이니까 나 한사람쯤은 술 대신 물을 가져와도 모르겠거니 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희생정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소금은 녹아질 때 맛을 냅니다. 바로 우리들을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십니다. 오늘도 희생정신을 가지고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생명의 삶
13. 세상의 소금
소금은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어서 별로 귀하게 취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삶은 소금 없이는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소금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귀하게 취급 되었는가는 지난 역사를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소금을 구하기 위해서 전쟁까지 일어 났으며 소금을 구하기 쉬운 곳에 서 대개 고대 국가들이 건설되었습니다. 그것은 소금을 지배하는 것이 곧 백성을 지배 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월급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Salary라는 말은 원래 소금이라는 단어 Salt에서 나온 말입니다. 옛날 로마 군인들이 월급을 소금으로 받았기 때문에 소금은 바로 현금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인류는 옛날부터 소금을 먹지 않으면 죽는 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소금이 없으면 몸안에 소금과 물 사이에 미묘한 균형이 깨어져서 탈수 현상으로 죽고 맙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이 소금을 쉽게 구할 수 없을 때에는 짐승의 뒤를 따라가서 암염을 찾았다고 합니다. 동물들도 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소금으로 된 바위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옛 고대 도시들을 보면 소금과 물을 얻기 쉬운 곳에 형성되었습니다. 바다는 언제나 소금의 중요한 공급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인류 문명의 발상지를 보면 바다를 낀 강을 배경으로 생겨났습니다. 바다는 참으로 신비로운 곳입니다. 짠 소금기를 가득 가지고 있어서 바닷물은 부패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몰려드는 그 숱한 물들을 정수시켜 대지로 다시 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하셨습니다. 진실로 성도는 역사 속에 소금 노릇을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세상의 생명의 균형을 지키며 자신을 기꺼이 세상을 위해 희생의 제물로 삼았습니다. 교회는 바다처럼 별별 사람이 다 들어오지마는 새 사람을 만들어 다시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교회는 어떤 사람이라도 변화 시킬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성도들이 소금이 되어 교회가 바닷물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세상의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4.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은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어서 별로 귀하게 취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삶은 소금 없이는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소금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귀하게 취급 되었는가는 지난 역사를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소금을 구하기 위해서 전쟁까지 일어 났으며 소금을 구하기 쉬운 곳에 서 대개 고대 국가들이 건설되었습니다. 그것은 소금을 지배하는 것이 곧 백성을 지배 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월급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Salary라는 말은 원래 소금이라는 단어 Salt에서 나온 말입니다. 옛날 로마 군인들이 월급을 소금으로 받았기 때문에 소금은 바로 현금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인류는 옛날부터 소금을 먹지 않으면 죽는 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소금이 없으면 몸안에 소금과 물 사이에 미묘한 균형이 깨어져서 탈수 현상으로 죽고 맙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이 소금을 쉽게 구할 수 없을 때에는 짐승의 뒤를 따라가서 암염을 찾았다고 합니다. 동물들도 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소금으로 된 바위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옛 고대 도시들을 보면 소금과 물을 얻기 쉬운 곳에 형성되었습니다. 바다는 언제나 소금의 중요한 공급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인류 문명의 발상지를 보면 바다를 낀 강을 배경으로 생겨났습니다.
바다는 참으로 신비로운 곳입니다. 짠 소금기를 가득 가지고 있어서 바닷물은 부패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몰려드는 그 숱한 물들을 정수시켜 대지로 다시 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하셨습니다. 진실로 성도는 역사 속에 소금 노릇을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세상의 생명의 균형을 지키며 자신을 기꺼이 세상을 위해 희생의 제물로 삼았습니다. 교회는 바다처럼 별별 사람이 다 들어오지마는 새 사람을 만들어 다시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교회는 어떤 사람이라도 변화 시킬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성도들이 소금이 되어 교회가 바닷물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세상의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제가 처한 곳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금이 되게 하시며, 하나님의 축복을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게 하소서. 술 취하지 않게 하시며, 모든 언행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발하게 하소서.
15. 설탕같은 사람 소금같은 사람
설탕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고 소금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설탕같이 일을 하는 사람이 있고, 소금같이 일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설탕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있고, 소금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바닷물에는 하얀 소금이 들어 있듯이 우리 마음의 바다에도 소금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내안에 있는 소금으로 사람들의 이야기에 맛을 내고, 사람들의 사랑에 맛을 내고, 사람들의 이름에 맛을 내도록 합시다. 설탕같이 흐려지는 이웃이 되지 말고 소금같이 분명해지는 이웃이 됩시다. 설탕같이 흔한 사람이 되지 말고 소금같이 소중한 친구가 됩시다. 설탕같이 맛을 잃는 사람이 되지말고 소금같이 맛을 얻는사람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설탕은 없어도 살수 있지만, 소금이 없다면 살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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