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학의 뿌리-츠빙글리를 읽다>
“츠빙글리(1484~1531)는 루터와 함께 종교개혁의 양대산맥으로 불립니다. 츠빙글리의 신학은 특히 매우 실천적이고 현장 중심적입니다. 츠빙글리를 알수록 개혁신학의 소중함을 회복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며, 복잡다단한 사회 속에서 어떻게 세상을 섬길지 그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주도홍 교수가 <개혁신학의 뿌리-츠빙글리를 읽다>(세움북스)를 저술했다. 츠빙글리가 남긴 저술과 편지를 1차 원문 자료를 바탕으로 살피되 사상의 요점을 알기 쉽게 정리했고 글이 발표된 연대순으로 배열해 츠빙글리의 신학과 삶이 어떤 변천을 거쳤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저자의 친절한 풀이와 더불어 원전의 내용을 직접 확인할 수 있어 마치 500년 전의 위대한 종교개혁자 츠빙글리를 직접 만나는 느낌을 준다.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은 1519년 취리히 그로스뮌스터교회에서 취임예배를 드리면서 마태복음을 본문으로 강해설교를 한 데서 비롯됐습니다.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문에 95조를 붙이는 행동을 했다면 츠빙글리는 설교로 종교개혁을 한 것이죠.”
주도홍 교수는 츠빙글리가 성령 신학자이면서도 공공신학자라고 강조했다. 둘 사이의 균형을 말씀 위에서 잘 맞추었다.
츠빙글리의 강해설교는 로마교황청으로부터 내려오는 본문을 받아 진행하는 방식을 깬 것이어서 당시로서는 대단한 파격이었다. 그의 결단은 말씀의 해석은 교황청이 아니라 성령의 은혜로 이뤄져야 한다는 소신 때문이었으며 성경에 근거한 것이었다. 츠빙글리는 로마가톨릭의 잘못된 교리와 부패, 루터교의 공재설, 재세례파의 유아세례 등이 문제가 될 때마다 글을 발표해서 개혁신학의 중심을 지켰다.
또 교회 내적으로 성직자들이 부와 권력을 멀리하고 성도들에게 무거운 율법의 짐을 지우지 말 것과 십일조로 가난한 이웃을 섬기고, 일반 시민과 마찬가지로 성직자도 세금납부의 의무를 감당하라고 권면했다. 국가를 향해서는 부패한 권력은 국민의 투표로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외쳤으며,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용병제도를 운영했던 것을 지적하면서 국민들을 위험과 타락에 빠지게 하면 안된다고 비판했다.
츠빙글리의 글은 논리적이며 신학적이지만 이처럼 바르지 않은 교회와 사회의 모습을 보고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매우 현실적이었다. 이런 경향은 루터와 비견된다. 루터는 두 왕국론을 내세우며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열어놓았다면 츠빙글리는 신앙과 삶의 영역이 말씀으로 개혁되어야 한다는 통합적인 시각을 가졌다.
주도홍 교수는 “츠빙글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개혁신학은 당시의 상황과 구체적으로 맞닿아 있었다”면서 “츠빙글리의 사상을 읽을수록 이론화되고 사변화되어가는 데서 탈피해 생동감있는 신앙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도홍/세움북스)
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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