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임재 vs 돈의 임재 히13:5~5
현대인들은 주님의 임재는 등한시 하고, 돈의 임재를 간절히 바라는데요..
과거에 소득이 지금보다 낮았을 때는, 다들 '사명 감당하며 살겠다' 했는데,
요즘은 소득이 높아졌는데, 다들 '더 부자가 되겠다'는 목표로 살고 있습니다. 미혹입니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주님의 말씀과 눅18:25
'부하고자 하는 자는 멸망과 파멸에 이를 것이라'는 바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딤전6:9
참으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부를 추구한다는 사실이
수년 동안 나 John Piper 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거나
자신들만은 그 법에 예외 이거나 혹은
하나님의 말씀은 꼭 그 말 그대로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 말 그대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부하고자 하는 자들은 멸망에 이를 것입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딤전6:9
그 이상입니다. 이 본문을 해석하는 열쇠는 6절에 있습니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딤전6:6
이런 돈의 치명적인 결과로부터, 나를 보호해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으로 자족하는 마음'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으로 충분히 만족하여
이런 자족하는 마음, 이 만족 때문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부하게 하셨던지/ 가난하게 하셨든지 상관없이
망가지지 않고 잘 살고 있습니까?
가난은 우리로 '하나님은 인색하고, 나를 돌보지 않으며, 무력하다'고 느끼게 하여
하나님으로 자족하는 마음을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부 역시 '하나님은 너무 풍족하다'고 느끼거나
혹은 '내 인생의 조력자 같은 부차적인 분'으로 느끼게 하여
하나님으로 자족하는 마음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으로 자족하는 마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는지를 배우기에, 덜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삶의 목적은 '하나님은 늘 영광스러운 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인생의 가장 최악의 상황에서, 그리고 가장 최선의 상황에서
우리가 하나님 자신으로 자족 하기에 충분할 만큼
그분이 영광스럽고 넉넉하신 분인 것을 보이심으로써 그렇게 하십니다.
바울은 그렇게 살 수 있는 비결을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4:11~12
바울은 자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것이 디모데전서에서 '돈을 올바로 사용하는 방법'의 핵심입니다.
그 비결은 무엇입니까?
나 Piper 는 바로 앞장에서 그 비결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빌3:8
요즘 방식으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주식시장이 달아오르든지
혹은 보너스를 받든지 상관없이
나는 불어나는 내 돈보다, 그리스도를 더 귀하고 가치 있고
만족스러운 분으로 여깁니다.
주식시장이 침체에 빠지고 급여가 깎이더라도
나는 내가 잃는 것보다, 예수님을 더 귀하고 가치 있고
만족스러운 분으로 여깁니다"
그리스도의 아름다움과 가치와 고귀함과 영광이
바로 돈이 그를 지배하지 못하게 막아주는 자족함의 비결이었습니다.
부를 축적하는데
당신의 인생을 바치는 것이
혹은 바치기를 원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모릅니다.
결국 부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다음의 비유를 들어 강하게 경고하십니다.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눅12:16~21
'어리석은 자여, 당신의 죽으면, 당신이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되겠습니까?'
죽을 때 돈은 결코 친구가 되지 못합니다.
성경이 돈의 위험성을 매우 자주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다만 수박겉핥기에 그쳤습니다만,
하지만 이런 겉핥기라도, 저는 매우 진지하게 전달했습니다.
돈은 속임수의 대가입니다.
돈은 '구매 능력이 하나님보다 더 큰 만족을 준다'고 생각하고 느끼도록
우리를 속입니다.
돈보다 더 손쉽게, 하나님의 영광을 대체하도록 유혹할 수 있는 것들은
거의 없습니다.
돈은, 그것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을 향한 갈망을 일깨웁니다.
이 욕망이 하나님과 견줄만한 탐욕이 되기도 합니다.
이 탐욕이, 하나님의 영광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자족을 파괴합니다.
우리는 십계명과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을 어기면서
우상숭배자들, 즉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는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탐심은 곧 우상숭배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골3:5
히브리서 기자는 돈에 대한 사랑에서 해방되어야 할 근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히13:5
하나님께서 뭔가를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돈을 사랑하게 하는 힘은
우리에게 뭔가를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깨질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왜냐하면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히13:5b
다시 말해서,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임재를
돈의 임재보다 더 만끽할 수 있다면
그 분의 임재의 약속을 통해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돈의 임재가 주는 만족으로부터의 해방은
하나님의 임재가 주는 더 우월한 만족으로부터 옵니다.
이것이 돈의 탐욕을 죽이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검으로, 하나님보다 높아진 것을 약속하는 탐욕을 죽입니다.
히13:6절에서 저자는 '그러므로' 라고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어떠하다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아주 두렷한 확신을 가지고)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오?" 히13:6
하나님의 영광스런 임재의 약속 때문에
그러므로 돈을 갈망하게 하는 두려움은 극복될 수 있습니다.
돈이 아닌, 하나님께서.. 이제 나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돈이 아닌, 하나님께서.. 나의 달콤한 안전이 되시고, 위로와 평안이 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태양이, 이제 흔들림없는 중심이 되심을 통해
돈의 행성은 우리의 인생에서
그 섬김의 참 궤도를 찾기 시작합니다. (이상 존 파이퍼 목사님의 말씀입니다.)
이 메시지의 핵심 내용을 정리해 봅시다.
첫째, 부를 추구하는 것은 크리스천에게 치명적인 함정이 될 수 있지만
하나님 안에서 자족하는 마음이야말로 돈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열쇠입니다.
둘째, 자족의 비결은
풍족하든/ 궁핍하든
돈보다 그리스도를 더 소중하고 만족스럽게 여기는 것입니다.
셋째, 돈에 대한 사랑에서 해방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더 큰 만족을 발견하는 데에서 비롯됩니다.
돈과 탐욕의 속임수로부터 우리 마음을 지키기 위해
경계를 늦추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족하고, 무엇보다 그리스도를 귀히 여기며
그분의 임재안에서 만족을 찾는 비결을 배우게 하소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에 대한 약속으로
돈에 대한 사랑에서 해방되고
우리의 자원을 하나님의 나라 목적을 위해 사용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도움과 피난처이신 주님에 대한 만족과 관대함,
흔들리지 않는 신뢰로 알려진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이 메시지를 기억하며 함께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많은 축복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옵니다.
우리는 당신이 풍성한 공급과 당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신 자원에 감사드립니다.
동시에 우리는 부를 추구하고 돈을 사랑하는 것이
당신의 자녀인 우리에게 위험한 함정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합니다.
우리는 종종 주님 보다, 물질적 소유를 신뢰하려는 유혹을 받았으며
때때로 세상적인 재물에 대한 욕망이
주님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가렸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안에서 자족하는 비결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를 소중히 여기고
주님안 에서만 만족을 찾을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귀한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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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간과하면 교회 열심히 다니면서도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팀 켈러 ☞▣ 우상화 (주제별 분류)
'우상숭배'란 단어를 들으면, 현대인은 목상 앞에 절하는
고대인의 모습을 떠올린다.
사도행전에는, 고대 그리스 로마 세계의 문화가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당시 도시마다 좋아하는 신이 있어서, 신전을 짓고 신상을 숭배했다.
바울이 아테네(아덴)에 가보니 말 그대로 신상 천지였다.
아테나 여신의 파르테논 신전이 도시 전체를 압도했고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전쟁의 신 아레스,
다산과 부의 여신 아르테미스,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 등
온갖 신이 광장마다 즐비했다.
우리 현대사회도, 고대사회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문화마다, 그 문화를 지배하는 우상이 있다.
제사장과 토템과 의식도 있다.
'사무실'이나 '헬스장'이나 '스튜디오'나 '경기장' 같은 신전이 있어
'행복한 삶'이라는 복을 얻고, 액운을 물리치려면
거기서 제사를 드려야 한다.
미모와, 권력과, 돈과, 성취의 신이란
바로 우리 개개인의 삶과 사회 전반에서
신적 위치를 점한 것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아프로디테 동상 앞에 무릎 꿇지는 않을지라도
오늘날 많은 젊은 여성이 외모와 몸매에 과도히 집착한 나머지
우울증과 각종 섭식장애에 시달린다.
실제로 아르테미스 에게 향을 피우지 않아도
돈과 성공을 세상 최고의 가치로 떠받들면
우리도 자녀를 일종의 인신 제물로 바치는 것이다. *자녀에게 돈과 성공을 강요하므로
직장에서 높은 자리로 올라가고
더 많은 재물과 위신을 얻고자
가정과 공동체마저 팽개친다.
오래 전에 사도 바울은, 탐심이 나쁜 정도가 아니라 우상숭배라고 꼬집었다.
즉 돈은 신(경배)의 속성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돈의 신적 힘을 경험하고, 그것에 점차 마음을 뺏기면
자유는 사라지고, 숭배와 복종관계에 가까워진다.
돈은 영적 중독이 될 수 있다.
모든 중독처럼, 피해자에게 자신의 진짜 덩치를 숨긴다.
아무리 갈망해도.. 만족은 자꾸만 줄어든다.
그래서 우리는 더 채우려고, 더 크고 많은 모험도 불사하다가
결국 파탄에 이른다.
그러다가 회복이 시작될 때면 '내가 지금까지 무슨 생각을 한거지?
어떻게 그렇게 눈이 멀 수가 있었지?' 라는 의문이 든다.
깨어날 때 우리는 숙취 때문에, 전날 밤 일이 통 기억나지 않는 사람과 같다.
'왜 그랬을까, 그토록 이성에 어긋나게 행동한 이유가 무엇일까?
왜 우리는 옳은 길을 시야에서 완전히 놓친 것일까?'
성경은 '인간 마음이 우상공장 이라서 그렇다'고 답한다.
대체로 사람들은 '우상'하면, 눈에 보이는 신상을 떠올린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의 극찬을 받은 신인 팝스타를 떠올릴 수도 있다.
물론 아직도 세상 곳곳에서 전통우상숭배가 이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는 '내적 우상숭배'는, 모든 사람에게 두루 널리 퍼져 있다.
에스겔서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장로들을 가리켜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라고 말씀하신다. 겔14:3
우리처럼, (에스겔서의) 장로들도 그런 지적에 틀림없이 이렇게 반응했을 것이다.
'우상이라니요, 무슨 우상?
저한테는 아무런 우상도 보이지 않는데...'
여기서 하신 하나님 말씀은
'인간의 마음이 성공, 사랑, 재물의 소유, 가정 등 좋은 것을
궁극적인 (영원한) 것으로 탈바꿈시킨다'는 뜻이다.
우리 마음은 그런 것을 신격화 해서 삶의 중심에 둔다.
그것만 얻으면, 존재감과 든든함과 안정과 충족감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상이란 무엇인가?
무엇이든 당신에게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무엇이든 하나님보다 더 크게, 당신 마음과 생각을 차지하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을, 다른 데서 얻으려 한다면.. 그게 바로 우상이다.
무엇이든 워낙 당신 삶의 중심이자 필수여서
그것 없이는 살아갈 가치를 별로 느끼지 못한다면.. 그게 바로 가짜 신(우상)이다.
우상은 마음을 지배하므로
당신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열정과, 에너지, 돈과, 정서적 자원을 다분히
거기에 쏟을 수 있다.
가정과 자녀, 직업과 돈벌이, 성취와 평론가의 호평
체면과 사회적 지위가 다 우상이 될 수 있다.
로맨틱한 이성관계, 업계의 인정, 안전하고 평안한 환경,
외모나 두뇌, 정치나 대의명분, 도덕과 가치관
심지어 기독교사역에서 성공하는 것도 다 우상이 될 수 있다.
타인의 삶을 고치는데, 자기 인생의 의미를 거는 것을
흔히 '상호의존'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그것도 우상숭배다.
무엇이든 당신이 그것을 보며, 마음 깊은 곳에서 이렇게 말한다면
그게 곧 우상이다. '저것만 있으면, 내 삶이 의미 있어질거야!
나도 가치있는 사람이 될 거야, 내가 중요해지고 안정감이 생길 거야!'
이런 관계를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지만
가장 적합한 말은 '(우상)숭배'일 것이다.
이교도들이 사실상 모든 것을 신으로 본 게
지나친 상상력을 발휘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섹스의 신, 일의 신, 전쟁의 신, 돈의 신, 국가의 신이 있었다.
무엇이든 신이 되어, 개인의 마음이나 대중의 삶을 신처럼 지배할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때문이었다.
예컨대 아름다운 몸은 좋은 것이지만
이를 신격화해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삼는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단지 아름다움이 아니라
아프로디테 이다.
사람들과 문화 전체가 끊임없이 외모때문에 고민하고
거기에 시간과 돈을 지나치게 쏟아 붓고
어리석게 성품까지 외모에 기초해 평가하게 된다.
당신이 행복, 삶의 의미, 정체성에
하나님보다 더 영향을 끼친다면.. 무엇이든 우상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우상숭배는 지극히 복잡한 개념이라서
지적, 심리적, 사회적, 문화적, 영적 범주를 모두 아우른다.
우선 개인의 우상으로는
로맨틱한 사랑과 가정, 돈의 추구, 권력, 성취, 속한 분야의 인맥,
타인이 정서적으로 (내게) 의존하기를 기대하는 것,
건강, 몸매, 매력적인 외모 등이 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희망과, 의미와, 충족을 이런데서 얻으려한다.
문화적 우상은 군사력, 기술 발전, 경제적 번영이다.
전통사회의 우상에는 가정, 고된 노력, 의무, 도덕적 가치가 포함되는 반면
서구문화의 우상은 개인의 자유, 자아 발견, 개인적 풍요, 성취 등이다.
이 모든 좋은 것이 한 사회 내에서, 규모와 세력을 과도히 불릴 수 있고
실제로 그렇다.
그리하여 삶의 기초를 거기(우상)에 두기만 하면
우리에게 안정과, 평화와, 행복을 줄 것처럼 약속한다.
우리의 유일한 주인이자 군주는 하나님이 이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은, 무엇이든 자신이 사랑하고 믿는 대상을 또한 섬기게 마련이다.
그게 무엇이든, 타협할 수 없을 만큼
하나님보다 중요해지면.. 우리를 속박하는 우상이 된다.
이 경우 우상은, 우리의 가장 집요한 감정을 보면 찾아낼 수 있다.
우리를 주체할 수 없는 분노나 불안, 낙심에 빠뜨리는 것은 무엇인가?
떨칠 수 없는 죄책감으로 괴롭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우상이 우리를 지배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것 없이는 삶의 무의미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절망에서 헤어나와 전진하려면
우리 마음과 문화에 자리잡은 우상을 분별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짜 신들의 악영향에서 해방되는 길은, 참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뿐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시내산과 십자가에서 자신을 계시하셨다.
그분을 만나면 진정으로 당신을 채워주신다.
당신이 (하나님을) 실망시켜도 참으로 용서해주신다.
능히 그러실 수 있는 분은 주님 뿐이시다. (이상 팀 켈러 목사님의 말씀입니다.)
이 메시지의 핵심 내용을 정리해 봅시다.
첫째, 우상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으며
돈, 성공, 인간관계, 심지어 가족이나 건강과 같은 좋은 것 등
우리 삶에서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모든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우상에게 너무 많이 집중하면,
우상은 우리의 생각, 행동, 감정을 통제하는 거짓신과 같은 존재가 되어
우리를 진정한 자유와 성취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셋째, 우상의 지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오직 우리를 용서와 사랑, 의미로 채우시고
목적과 기쁨의 삶으로 인도하실 수 있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야합니다.
우리 삶과 문화에서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에 귀를 기울이십시다.
우리는 성공, 부의 집착, 아름다움을 무엇보다 우선시하라는 메시지에
휩싸여 있지만, 이러한 거짓 신들은 우리를 공허하고 불만족스럽게 만들 뿐입니다.
대신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고 영생을 주시는
참 하나님 한분께 시선을 고정합시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그분을 찾고
그분 안에서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평안과 기쁨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이 메시지를 기억하며 함께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저희는 죄의 무게에 짓눌린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옵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우상으로 만들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직업, 소유, 관계, 그리고 그 밖의 많은 것들에
신뢰와 희망을 두어 주님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우상숭배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집어삼킨 거짓 신들로부터 돌이킬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우리는 우상숭배가 고대에만 존재했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음을 인식합니다.
우리는 성공, 부의 추구, 아름다움이
행복과 성취의 열쇠라고 말하는 메시지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러한 거짓 약속의 공허함을 깨닫고
주님안에서만 찾을 수 있는 참된 부유를 찾도록 도와주세요.
주님, 주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는 진정한 가치와 가치를 볼 수 있도록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마음과 뜻과 영혼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을 우선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또한 삶에서 우상의 손아귀에 붙잡혀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을 묻고 있는 사슬을 끊어주시고
주님 안에서 진정한 자유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이, 주님 만이 그들의 마음속깊은 갈망을 채워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도와주세요.
주님, 우리 마음속에 뿌리를 내린 우상을 분별하고
무너뜨릴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우리를 붙잡고 있는 것들을 놓아버리고
주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우리의 마음이 당신의 사랑으로 가득차고
우리의 마음이 당신의 진리에 집중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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