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와 교만 잠21:24
잠21:24절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 아멘
저는 신학교에서 학부 때
기독교교육학과를 다녔습니다.
그래서 교육에 관심이 참 많아요.
그래서 은퇴하기 전에 기독교 학교도 하나 설립하고
지금까지 아이들을 위한 초등학교, 중학교
내년에는 고등학교도 시작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육에 관심이 많은데
우리 옛날에 우리 조상들도
자녀교육에 참 관심이 많았죠.
그래서 한국은 참 교육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던
그런 지혜로운 민족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옛날 교육이 더 좋았을까요?
요즘 교육이 더 좋았을까요?
이렇게 무턱대고 얘기하는 게 좀 그렇지만
저는 옛날 교육이
도리어 참 교육에 더 가깝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요즘 학교에서 행해지는
학원에서 행해지는 일을
거기에다 '교육'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저는 들어요.
요즘 대부분의 아이들이 하는
교육이라고 하는 것은요,
학교 교육, 학원 교육은
그건 훈련이지 교육은 아니에요.
영어가 무슨 교육이겠어요?
수학은 문제 푸는 연습 하고 훈련하는 것이지요.
사는 데 필요하니까 그런 훈련도 필요해요.
그렇지만 훈련보다
사람은 교육을 받아야 돼요.
옛날 서당 교육을 시킬 때는
대부분 논어, 맹자 이런 거를 가르칠 때는
그런 것보다도 '사람답게 사는 법도'를 가르치는 것이
서당 교육이 아니었는가? 이렇게 생각이 들어요.
법도를 가리키고
예법을 가르치고
예의를 가르치고
예의와 사람답게 사는 법도를 가르쳐요.
저는 그 예의와 삶의 법도를 가르치는 일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중에서도 예의 교육
예의를 갖추는
예를 갖추는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어른 보면 인사해라
허리 굽혀 인사해라
존대해라
순종해라
이런 교육을 우리는 많이 어렸을 때 받고 자랐죠.
▲그런데 여러분 예의가 뭘까요?
'예의'란 말을 놓고 제가 생각해 봤어요.
그건 자기를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는 것이에요.
나는 낮고 상대방은 높다는 것이
예의의 기본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절하고
또 허리 굽혀 인사하고
말도 존경하고
그런 것은 "나는 낮고 당신은 높습니다"
라는 표현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이 예의 교육을
유교적으로 생각하면
아이가 어른에게
학생이 선생에게
그리고 부하 직원이 상관에게
또 부하가 임금에게 하는 것이 예의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배웠어요.
그런데 기독교, 성경이 가르치는 예의도 있거든요.
근데 성경의 예의는 그것을 조금 넘어서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공경하고
예의를 갖추어야죠.
아이가 어른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이 옳지요.
근데 기독교의 예의는 그것을 넘어서서
어른도 아이에게 예의를 갖추어야 된다는 것이에요.
그 대표적인 예가 뭔가 하면
예수님이 제자의 발을 씻기신 거잖아요.
여러분 선생이 되어
제자의 발을 씻는 것,
선생이 더 높은데
제자를 높이는 것이에요.
그래서 예의를 갖추는 거예요.
발을 씻기고 섬기는 것이에요.
기독교계의 예의는 선생이 제자에게 갖추는 예의고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어른이 젊은이를
부모가 자식을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부자가 가난한 자를
큰 사람이 작은 사람을
소자를 높이고 예의를 갖추는 거
이게 기독교의 예의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여러분 참 쉽지 않은 얘기예요.
쉽지 않은 얘기예요.
▲오늘 본문에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그러는데요. 잠21:24
여러분 우리가 '무례하다'는 말을 쓰는데요.
잘 생각해 보세요.
버릇없는 아이들이 참 있어요.
우리는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어"
"예의가 없어"
이런 얘기 참 많이 해요.
버릇없는 아이들이 참 많아요.
무례한 젊은이들 꽤 많아요.
그런데 여러분
이 '예의 없다'라고 하는 무례를 얘기할 때
여러분, 아이가 어른에게 행하는 무례가 더 많을까요.?
어른이 아이에게 행하는 무례가 더 많을까요.?
저는 아마 배는 더 많이
어른이 아이들에게 무례하다 라고 생각해요.
어른은 아이들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쉽게 무례한 행동을 해요.
함부로 대해요.
여러분 그래서 무례하다.. 라고 얘기하면
여러분 저는 아이를 생각하지 않고 어른을 생각해요.
무례한 어른!
부모가 참 자식에게 무례할 때가 많아요.
그 생각도 못 해요.
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자기가 무례하다는 생각 하지도 못하면서 살아요.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그것 때문에 상처를 받고 살거든요.
남편과 아내
아내는 남편에게 그러는 일이 적은데
남편은 아내에게 무례한 경우가 참 많아요.
조금만 힘이 있다고 생각하면
자기가 조금만 높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그냥 자꾸 무례해져요.
함부로 교만해져요.
그런데 성경은 그것을 '망령된 자라'
여러분 망령이라는 말을
이거 무슨 뜻일까? 생각했어요.
이건 제가 억지로 해석한 건지 모르겠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을 불어 넣어 주셨잖아요.
그러니까 그 영은 뭔가 하면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있어요.
망령된 자는, '그 하나님의 영이 망한 상태'예요.
교만하고 무례하고
아랫사람이라고
부하 직원이라고
함부로 대하고
예의 없이 갑질 하고 사는 일은
'망령된 일이라..
그건 하나님의 영이 없어서 되는 일이니라'
저는 그렇게 해석했어요.
하나님의 영이 있다면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공경하고 예의를 갖추고 순종하듯이
부모도 아이에게 예의를 갖추고
아이의 인격을 존중하고
아이를 높이고
존중이 여기고 살아가는
그것을 우리가 행해야 될 거예요.
▲사랑하는 날기새 가족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떤 위치에 계셔요?
여러분은 부모세요?
어른이세요?
직장에서 부하직원이세요?
어느 정도 꽤 높은 위치에 있는 분이세요?
여러분 사람이 살다 보면
나이 들면 어른이 되잖아요.
저도 지금 보니까요.
이제 우리 윗세대는 다 돌아가시고요.
우리 형님 한 분 계시고요.
이제 제가 우리 집의 조상이에요.
저도 모르는 이제 꽤 높아졌어요.
다 이제는 우리 아들, 조카, 며느리, 손주들
이렇게 되었어요.
이제 저는 우리 집안에 어른이 되었어요.
세월이 가면 저절로 그렇게 되잖아요.
그리고 교회에서도
저도 교육전도사부터 시작해서 강도사 하다가
담임목사 했었잖아요.
작지 않은 교회 담임목사 했었잖아요.
그러다 보면 부목사님도 계시고
교육 전도사도 계시는데
제가 오늘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과거에 나는 과연 우리 부목사들에게 예의가 있었나?
무례하지는 않았나?
함부로 갑질하지는 않았나?'
이런 생각을 해 봤어요.
'무례하다.. 라고 하는 것은 망령된 일이구나
그것은 교만한 일이구나..'
사랑하는 우리 날기새 가족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실 때
여러분 있는 자리에서
여러분 부하직원에게
또 학교에 계시면 학생에게
또 아이에게, 자녀들에게
예의 있는 부모
예의를 아는 부모
아이의 인격을 존중하는 어른,
가난한 사람과 약한 사람과
낮은 사람의 자존심을 지켜 줄 줄 알고
예의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의 영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라는 사실을 여러분 기억하시고
여러분 그 말씀을 실천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힘쓰고 애써서
나이 들어도 높아져도 성공해도 부유해도
자기를 낮추고
가난한 사람을 더 섬기고
부하직원의 발을 씻기듯 하는 마음으로
예의를 갖출 줄 아는
근사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까요?
살기 좋은 아름다운 세상 되지 않을까요?
우리들 때문에 하나님이 영광을 받지 않으실까요?
하는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예의에 대한 말씀이었어요.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 잠21:24
'넘치는 교만으로..'
우린 정말 교만이 넘쳐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하는 망령된 자'
여기에 속하지 않는
우리 사랑하는 날기새 가족들
다 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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