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툼을 멀리하고 평화를 누리는 법 잠17:1, 9, 14절
오늘은 잠언 17장 1절, 9절, 14절
이렇게 세 곳을 제가 봉독하겠습니다.
잠19:1,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9절,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14절, 다투는 시작은 둑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 아멘
제가 진짜 복과 가짜 복이 있다.고
말씀드렸었죠?
가짜 복, 짝퉁 복이라고도 제가 말씀을 드렸습니다.
평안과 편안 중에
평안은 진짜 복이고요.
편함은 짝퉁 복이에요.
편한 게 좋지만
편함이 행복까지 주지는 못하거든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행복을
편안함에서 찾고 있거든요.
우리나라 경제가 엄청나게 발전해서
전에는 꿈도 꾸지 못하던
과거 임금보다도 더 편하고 좋은 세상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잖습니까?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한테 물었어요.
요즘 어떻게 사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뭐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았을까요?
1등 '그럭저럭 삽니다'
2등 '마지못해 삽니다'
3등 '죽지 못해 삽니다' 아니겠습니까?
이거 50년, 60년 전에
우리나라가 세계 최빈국이었을 때 물었을 때도
답은 비슷했을 거고요.
지금 3만 불, 4만 불, 이제는 완전히 선진국 대열에
접어든 것 같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 질문을 물어도, 답은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짜 복은
돈과 세상이 주는 편안함에 있지 않고
믿음이,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함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잠언하면서 오늘 다루는 주제가
계속 여러 번 반복되고 있어요.
근데 저는 이 말씀이 요즘 좋아서 그냥 스쳐 지나가지 않고
눈에 보이면 또 설교하고 눈에 보이면 또 붙잡아서
지금 설교하고 있는데요.
살아오는 동안 참 괴로웠던 시절
목사로서 할 말은 아닌데
'아이,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
'내일 아침에 눈 안 떴으면 좋겠다'
'자다가 돌아가시는 분도 있다던데
자다가 그냥 죽어서
아침에 눈 안 떴으면 좋겠다..' 하던 때도 참 많았어요.
그런데 언제 그랬느냐면
아마 다른 분들도 대개 마찬가지일 겁니다.
저는 100%, 저는 100%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다툼
불화
분쟁
전쟁
정말 전쟁 같은 싸움을 하거든요.
그때가 가장 불행하고 고통스러웠어요.
그건 항암 할 때보다.
네 번 졸도할 때보다 훨씬 더 힘들었어요.
여러분 암 투병할 때는 몸은 괴로웠지만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견딜만했어요.
그때는 마음은 평안했어요.
몸이 괴로웠지요.
그런데 다툼, 분쟁, 불화, 가정의 또 교회의
또 생사를 건 교회개혁하면서
개혁을 외치다가 싸움들이 나가지고
얼마나 힘든 세월을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백 번, 천 번 동의합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가지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제사 고기)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예, 부요하게 살면서 다투는 것보다는
마른 떡 한 조각 갖고 살아도
화목한 것이 낫다... 제가 백번 동의합니다.
마른 떡 한 조각 갖고 사는 것보다는
제육이 가득한 삶 사는 게 좋은 거죠.
그렇지만 그러면서 다툰다면
좀 불편하고 힘들고 배고프지만
서로 마른 떡 한 조각 가지고도 사랑하고
콩 한쪽도 나누어 먹고
이렇게 사는 것이 나으니라 하는 말씀에,
저는 백번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평안, 평화를 사모하지 않고
그냥 편하게 세상적으로 부유하게
잘 사는 것을 꿈꾸고 살아요.
그런데 사랑하는 우리 날기새 가족 여러분
평안을 사모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평화를 간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가정이나
직장이나 교회나
세상에 하나님이 주시는 참 평안과
평화를 전달하는 평화의 사도
평화의, 화평케 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우리 날기새 가족들 꼭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근데 평화는 어디서 오고
다툼은 어디서 오나? 할 때
오늘 잠언 17장을 읽으면서
눈에 띄는 말씀이 두 절 있었어요.
그게 9절과 14절이었어요.
9절,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질하는 자니라
친한 벗을 이간질해서 다툼을 일으키잖아요.
그럴 때 허물을 덮어주는 자가
피스 메이커고요.
허물을 자꾸 들춰내고 거듭 말하는
한두 번 얘기할 수 있는데
거듭 말하는 자는
친구 사이를 이간질하는 자니라...
'허물을 덮어준다' 하는 말씀이
오늘 이렇게 마음에 참 와닿았습니다.
평화는 남의 허물을 덮어줌에서 오고
그리고 불화는 남의 허물을 거듭 말함에서 온다..
하는 교훈을 오늘 9절에서 받았고요.
거듭 말하고 남에게 자꾸 퍼트리고
이 사람에게 허물 얘기하고
저 사람에게 가서 또 허물 얘기하고
거듭 얘기하고...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서
벌거벗은 채 동굴에 누워있었죠.
그 노아의 아들들이 이렇게 보고 와서
두 아들은
아버지 허물을 보지 않으려고 뒤로 돌아가서
보지 않고 덮어드렸고
함이라는 아들은
형제들에게 다 전하고
들추고, 들통 내고 그래서
저주를 받았다.. 하는 얘기가 성경에 있지 않습니까.
거기서 우리 목회자들이 많은 교훈을 하는 것은
'허물과 부끄러움을 덮어주는 사람이 되자
그거 여기저기 동네방네 떠벌리고
그러고 다니는 사람 되지 말자'
하는 얘기를 하는데
저는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요즘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나요?
허물을 덮어주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나요?
허물을 들추고 드러내고
동네방네 전하고
그리고 그것을 또 구경하러
여기 클릭하고 저기 클릭하고
그런 세상을 살아가고 있나요?
SNS, 유튜브 뭐 이런 것들에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것은 뭘까요?
남의 허물, 남의 비밀스러운 부끄러움
남의 고통, 이런 것들을
속된 말로 까발리는 것이 대세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이 많아서
허물을 덮어주는 세상이 아니라
허물을 까발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소득은 3만 불이 넘고
자가용 타고 다니고, 에어컨 틀고 살고
해외여행도 다닐 수 있고
이런 부유한 삶을 살지만
삶의 품질은 턱없이 나빠진 것을
우리가 시인하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하나 오늘 이렇게 마음에 탁 와닿는 말씀이 있었어요.
14절, 다투는 시작은 둑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
시시비비, 시비 (옳고 그름)
시비를 그치자 하는 것이에요.
<생사를 건 교회개혁>
제가 그런 책도 썼는데요.
생사를 걸고서라도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해야 할 말이 있어요.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그른 것은 그른 것이에요.
어물쩍 넘어가면 세상이 안돼요.
예, 시비를 가려야 할 일이 있어요.
그런데 옳고 그름이 있기는 하지만
그걸 가리는 일이
뭐 그렇게 꼭 중요하지 않은 일도 참 많아요.
제 개인의 부끄러운 얘기를 얘기해서
어떨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내하고 조금 다툰 적이 있었어요.
저도 가끔 좀 다투거든요.
아내가 많이 저한테 섭섭해했어요.
섭섭한 게 참 많았어요.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됐는데
제 생각에는, '그 섭섭한 거는 인정하는데
정도가 좀 지나쳤다...
거기까지 섭섭할 일은 아니었는데
그건 당신 좀 오해한 거야
사실은 이런 거야'
옳고 그름, 시시비비에 대한 생각이 저는 참 많았어요.
그런데 아내는 그 말을 잘 동의를 안 해주고
많이 섭섭해하셨어요.
이게 잘 수습이 안돼서
제가 자녀들에게 SOS를 쳤어요.
'야, 이거 풀기가 좀 어려운데
너희들이 좀 나서서 도와주면 좋겠다.'
그러자 막내 아들이
저한테 굉장히 중요한 교훈을 주었어요.
"아버지, 옳고 그른 게 뭐 그렇게 중요해요?"
'아버지 말이 맞을 수도 있는데
중요한 건
그게 오해든지 지나쳤다든지
사실이 아니라든지.. 그걸 따지는 것도 필요하지만
지금 아버지 제일 중요한 건, 엄마가 섭섭해서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는 거 아니겠어요?
그거 그냥 받아주시면 안 돼요?'
이제 그런 뜻의 얘기였어요.
저한텐 굉장히 중요한 교훈이었어요.
왜 옳고/ 그른 것만 그렇게 중요하냐?
물론 옳고 그른 것의 시비를 따지는 것이 중요한 때가 있어요.
그것까지 무시하면 이 사회에 정의가 무너져요.
그런데 정의, 불의와는 싸워야 되는데
여러분 그 정도가 아닌 사소한 시시비비도 있어요.
그냥 한 번 넘어가 줘도 되는 거
그런데 우린 꼭 시비를 따져가지고 별것도 아닌 일에
시비(옳고 그름)를 자꾸 가리려고 하다가
둑이 터져서 큰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제가 그 이후에
그거 이제 연습하고 몸에 익히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몰라요.
이제 그런 일들이 주기적으로 가끔씩 있잖아요.
그럴 때 저는 이해가 잘 안되고
그래서 자꾸 또 시시비비를 따지려 하고,
'이건 사실은 그게 아니고, 이렇고 저렇고..'
설명하고 납득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는데..
그때마다 제가 그걸 조금 참았어요.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하냐?
그게 뭐 그렇게 참 중요하냐?' (마음 속 다짐)
'아내든 누구든지 저 사람이
저렇게 생각한다는 자체를
우선 내가 받아주고 인정해야 문제가 풀리지 않겠나?'
여러분 그래서요.
제가 우리 막내 아들의 얘기 듣고
그거 마음에 새기고
제가 한 단계 삶이 업그레이드된 것 같아요.
스스로 얘기하면 참 웃기는 얘기지만
조금 도가 트는 것 같아요.
그랬더니 다툼이 많이 수그러들었어요.
둑이 터지지 않아요.
전 같았으면 둑이 한 번 터졌을 텐데
살살 물이 새다가..
'시비 가리는 게 뭐 그렇게 중요해?'
하고 제가 시비를 그치니까
둑이 새던 게 멈춰가지고 둑이 터지지 않았어요.
다투는 시작은
둑에서 물이 조금씩 새는 것 같은즉
둑에서 물이 새는 거예요. 둑이 터진 게 아니라
그런데 그거 시비를
그때 그쳐서 일단 그쳐서
물이 새는 걸 그치게 한 다음에
마음이 다 풀린 후에
그때 '그건 사실 이런 거 아니야'
'아 그랬구만!' 이렇게 얘기하면
풀릴 수 있는 걸
지금 감정이 상했는데, 마음이 섭섭한데
그것도 받아주지 않고 시비만 가리다가
둑을 터트리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어요.
오늘 '마른 떡 한 조각만 가지고도
서로 화목한 것이
육선, 제육이 가득하고도
서로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17:1
잠언에서 가장 유명한 말씀 중에 하나거든요.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구를,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9
허물도 한 번 용서해 줬으면
잊어버리고 끝내야 되는데
한번 용서하고 화해해서 끝냈는데
다음에 또 문제가 생기면 그거 또 끌고 들어와서
또 얘기하고 또 얘기하고.. 그러는 경우가 많잖아요.
허물을 거듭 얘기하는 자는
이간질하는, 다툼이 거기서 생긴다.
그래서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이세요.
하나님은 한 번 용서한 죄는
다시는 기억지를 않으신다. 그러시더라고요.
동에서 서가 먼 것처럼 옮겨놓는다.. 그러셨어요.
하나님은 회개하고 용서해준 죄를
거듭 얘기하시지 않으셔요.
이거 우리가 한 번 배워야 돼요.
한 번 용서하고도 또 자기가 불리해지면
'전에 당신도 그랬잖아!'
또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거듭 남의 허물 얘기하는 거
제 속에도 있고 우리 속에도 있는데
거기서 다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시비,
목숨을 걸고라도 가려야 할 시비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지 않은 사소한 문제들입니다.
그때 좀 막아놓고 둑을 다 견고히 한 후에
그때 가려도 되는데
그 별것도 아닌 시비 가리려고 하다가 둑을 터트려서
일을 망치는 경우가 많더라는 거죠.
이게 저한테 100% 맞는 말씀이거든요.
그래서 이 말씀이 참 좋고요.
자꾸 성경을 읽는데 그 말씀만 나오면
그게 딱 제 마음에 걸려요.
그래서 설교하고 또 설교하고 설교하는데
아마 여러분도 저와 비슷하지 않으실까?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화목, 평안을 구하세요.
편안보다. 평화를 구하세요.
피스 메이커가 되기를 기도하세요.
트러블 메이커가 되지 마세요.
그러기 위해서 남의 허물을 덮어주세요.
남의 허물을 거듭거듭 얘기하는 자 되지 마세요.
한 번 끝난 건 잊어버리세요.
용서하세요.
그리고 시비 가려야 할 것은 가리지만
대부분은 시비를 그쳐서
둑 터지는 것을 막고
둑을 막은 후에
시비를 가려도 넉넉한 것입니다.
이 귀한 말씀, 이 지혜의 말씀을
여러분의 것으로 삼으실 수 있는
우리 날기새 가족들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명인 명설교편◑ > 김동호목사 명설교 (155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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