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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와 타자의 해석학

by 【고동엽】 2011.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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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와 타자의 해석학

 

- 종교신학과의 비판적 대화를 위해 1. 시작하는 글

 

기독교의 '타자'를 인정하고 그 성숙성에 관한 다원주의적 논쟁들은 특히 북미의 신학계에서 영성, 해석학, 포스트 모던주의 이론과 엮어져 복잡하게 나타나고 있다. 논쟁들을 주의 깊게 살펴볼 때, 흔히 언급되는 것처럼 배타주의적 주장이나 포용주의적 입장 또는 다원주의적 입장으로 명쾌하게 갈려나가지 않는다. 이러한 이론적 상황 때문에 '혼란'으로 또는 '절충'으로 그런가하면 '반격'으로 신학의 입장들이 드러난다. 그런가하면 종래의 신중심(Theocentric)신학을 근거로 타종교의 차별성을 보편성으로 묶었던- 예를 들어 '통전자로서의 하나님'- 그룹들은 뒤늦게 세계의 고난의 현실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고 종교간의 대화의 문제에 이데올로기 비판적인 해석학을 보충하기 시작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어째든 포스트모던 사유가 근대성에 관한 '계몽의 기획'에 대해 일사불란하게 해체적인 태도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그 동안 에큐메니칼 대화들을 통해 북미의 신학계에 나름대로의 영향을 미쳐왔던 유럽의 신학들, 예를 들어 칼 라너나 몰트만의 신학은 급진적인 종교다원주의들이 벌이는 논쟁에서 뒷전으로 밀리는 추세를 보이기도 한다. 종교신학자들이 주장하는 급진적인 기독교의 상대화(Relativization of Christianity)- 대표적으로 쟌 힉(John Hick)이나 폴 니터(Paul Knitter)- 시도들은 아시아 신학자들에 의해 새롭게 비판적으로 조명된다.

 

하버마스는 프랑스의 포스트모던 철학을 요약하면서 니체 철학을 근대성의 품질상표인 이성의 껍데기를 분쇄하고 "이성의 타자인 신화" 속에 안주하는데 있다고 진단한다. 여기서 주체 중심적 이성은 이성의 타자인 신화의 세계와 부딪치게되고, 주체중심의 이성과 권력의지와의 연계가 폭로된다. 니체의 길을 통해 회의와 해체의 대가로 변신한 일군의 프랑스철학자들은 근대성의 기획인 '주체=이성'의 허위에 찬 등식을 공격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포스트모던 상황에서 이성은 절대적이거나 선험적이라기보다는 상황적이며 상대적이다. 지식과 권력은 서로 연계되어 있으며 이제 계보학(Geneology)이 비판을 대체한다. 정치적 실천은 쉽게 정당화되지 않고, "일상생활의 마크로 파시즘"에 대항하는 게릴라전의 성격이 포스트모던주의의 실천으로 드러난다.

 

그런가하면 쟈크 데리다에 의해 붙여진 '현존의 형이상학'(A Methaphysics of Presence)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와 헤겔 그리고 하이데거에 이르기까지 서구사상이란 은폐된 진리를 명증한 언어로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해왔고, 여기서 이성중심적(logocentric)추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음을 파헤친다. 결국 이성 중심주의는 항상 '불확실한 것', '적합하지 않은 것', 이성과는 '다른 것'을 배제한다. 다시 말해 이성은 '다름'에 대해 무차별하며 결국 자유와 해방이라는 '거대담론'아래 근대성은 축소되고 왜곡된 자유와 해방을 부여해왔을 뿐이다. 그런가하면 주체의 종언을 부르짖는 포스트모던주의의 반격에 대해 해석학적 사유는 포스트모던주의의 '의심과 해체전략'을 '해석들의 갈등'(Conflict of Interpretations)으로 수용하면서 타자의 문제를 새롭게 독해해나간다. 가다머의 영향사적 개념에 근거된 지평융합론은 료타르(Lyotard)의 불가공약성(Incommensurability)에 병행하는 해석학적 제한성을 말한다. 다시 말해 각각의 다른 역사와 문화적 지평에 서있는 해석자들은 같은 텍스트를 해석하더라도 다른 해석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즉, 다른 것은 다른 것으로 그 고유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철학과 사회과학에서 벌어지는 해석학과 포스트모던주의의 논쟁들이 신학의 영역으로 들어올 때, 그것은 종교다원주의 상황과 맞물려 한층 더 복잡하고 급진적으로 전개된다. 거대담론에 속하는 '하나님', '세계사적 구원', '그리스도의 중심성'은 해체되든 재해석되든지 간에, 지금까지 투명한 것으로 제시되어왔던 모든 교리적 진술들은 포스트모던 주의자들의 총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가하면 종교신학자들의 근대적 기획- 예를 들어 통전자(Integrator)로서의 하나님 또는 신중심적(Theocentric)인 시도들을 통해 종교간의 차별성을 급진적으로 상대주의화하고, 이러한 상대화를 보편적으로 넘어서려는 시도들- 에 대한 포스트모던 신학자들의 날카로운 공격과 이에 대한 종교신학자들의 반격 역시 21세기 문화와 종교의 이론적 다원성을 풍부하게 한다.

 

이 글에서 시도하는 것은 칼 바르트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다. 바르트를 해석학이나 종교다원주의와 연관시켜 다룬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별 다른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바르트의 초기저작들이나 교회 교의학의 문제를 검토해볼 때 바르트 신학은 하나님, 인간, 세계의 문제들을 해석학적으로 깊게 연관시킨다. 초기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과 후기의 교회 교의학의 이론적인 연계는 이미 유럽의 신학계에서 바르트 신학을 좌파적으로 해석하는데 수장의 역할을 해온 헬무트 골비처(Helmut Gollwitzer)나 마르크바르트(F.W Marquardt) 또는 그의 동료들에 의해서, 그런가하면 종교사회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단네만(U. Dannemann)에 의해 주목되고 해명되었다. 이들의 주된 관심은 바르트 신학의 중심문제로 등장하는 신학과 정치 사회적 연관성의 문제에 있는데, 특히 '하나님 나라의 현실성'이라는 전망을 통해 초기 로마서 주석과 교회 교의학과의 이론적 연속성을 정치 사회적 성격에서 해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바르트가 '하나님의 인간성'과 '사회적 존재로의 인간의 인간성'의 문제를 어떻게 해석학적으로 반성하는가 하는 문제에는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 지점은 사실 바르트가 문화와 타 종교들의 성숙성에 대해 어떤 해석학적 반성을 했는지 알게 하는 중요한 영역에 속한다. 이 분야가 명쾌하게 해명될 때- 물론 바르트는 이 영역을 하나의 숙제로 남겨놓았고, 해석을 필요로 한다- 포스트모던주의 길목에 서 있는 바르트의 신학은 종교다원주의 신학에 건설적인 비판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2. 바르트의 해석학

 

해석학은 인간을 의미부여하는 주체로 파악함으로써 사회적 실제와 문학적 텍스트에 주체로서의 인간을 위치시키며, 의미를 보존하려고 한다. 하이데거의 과제는 존재의 물음을 복권하고, 보편 해석학의 신 칸트적 틀인 주객도식의 이원론을 무너뜨리는데 있었다. 칸트의 선험적 구상력의 철학에 대한 창조적 수용을 통해 하이데거는 이해를 존재방식으로 재 정의한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주체성과 객관성에 앞서 '세계-내-존재'의 우위성을 확보한다. 이러한 존재론적 해석학은 슐라이에르마허나 딜타이의 해석에 깔려있는 심리적인 한계를 극복한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딜타이에 의해 규정된 생의 표현으로서 비판과 방법에 대한 해석학적 정당성의 문제를 무시해버렸다. 하이데거가 무전제적 출발점을 전이해적인 상황으로 대체할 때, 니체, 프로이드, 마르크스는 '전이해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비판적인 물음을 제시하고 있었다. 이들은 '의심의 대가들'이었고, 권력의 왜곡에 대한 분석들을 통해 세계와 인간의 사회적 조건에 대한 의심의 해석학적 지평을 열고 있었다.

 

신학적 해석학의 영역에서 에벨링은 해석의 중심문제가 말씀사건을 동반하는 이해론(Lehre vom Verstehen mit dem Wortgeschehen)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말씀사건의 이해는 언어자체에 관한 이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통한 이해'가 중요하게 부각된다. 말씀은 이해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이해를 열어주고 매개시킨다. 그러므로 말씀이 사건화 되는 곳에서 이해가 가능해진다. 해석학은 말씀과 관계함으로써 사회적 현실에 관계된다. 그리고 이 현실은 말씀을 통해서 이해된다. 여기서 우리는 슐라이에르마허 이후 신학적 해석학에서 잊혀져 온 해석학의 '사회적 기반'(Soziale Basis der Hermeneutik)을 에벨링의 시도를 통해 얻게된다.

 

해석학이 하이데거에 의해 칸트 이후 주객도식의 형이상학적 이원론의 극복이라는 과제를 가지고 시작되었을 때, 불트만은 특히 이 개념을 자신의 실존주의 신학에 유용화 하면서 핵심적인 의미를 갖게 했다. 또한 하이데거의 인간 현존재 분석은 성서가 말하는 죄와 죽음아래 서 있는 인간에 대한 기술과 상응한다. '나의 실존의 비본래성에서 어떻게 본래성으로 결단' 하는가 하는 불트만의 물음은 하이데거의 현존재 해석에 대한 신학의 반향이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인간 실존이해에 가장 적합한 개념을 불트만에게 제공한다. 실존철학은 자기자신을 잃어버린 인간의 비본래성(Uneigentlichkeit)을 깨우치게 하며 여기서부터 자기실존을 책임 있게 결단함으로서 그의 본래성(Eigentlichkeit)에 이르도록 요구한다.

 

불트만은 해석학의 문제(Das Probelm der Hermeneutik)에서 인간실존의 전이해는 해석학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임을 밝힌다. 본문에 대한 질문은 인간존재의 잠정적인 이해 다시 말해 실존이해에 의해 유도되며 이러한 전이해와 여기에 동반되는 질문 없이 본문은 침묵할 수밖에 없다. 실증주의 역사주의와는 달리 실존론적 해석학은 역사를 실존의 역사성에서 파악하는 점에서 주객도식관계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극복한다. 역사의 원천 속에는 인간실존의 결단과 자유로운 가능성들이 표현되어있다. 결국 역사의 중심테마는 인간실존의 가능성으로 파악되며 여기서 우리는 포이에르바하의 종교비판- '신학의 비밀은 인간학'- 이나 인간의 전이해에 이미 정치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이데올로기(종교)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하나님의 인간성'이나 또는 '인간의 인간성'이 아니라 불트만에게는 인간의 '실존론적 역사성'이 그의 해석학의 중심으로 등장한다. 바르트는 불트만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인간의 문제가 함께 설정되어 있음을 본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하나님의 인간성'과 '인간의 인간성'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연관지음으로써 그의 신학의 성격을 사회 해석학 적으로 전개해간다.

 

지금까지 해석학이 내용적 사실(Sache)에 관한 '이해방식'을 중요과제로 삼았다면, 바르트의 관심은 자유주의 신학과 문화 개신교와는 달리 '신학의 내용적 사실'(Sache)로 되돌아가길 원했다. 다시 말해 역사나 심리학과는 구분되는 신학의 특수한 것-이것이 바르트가 말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신학의 사실적 내용 내지 사실성(Sachlichkeit)에 관한 논쟁은 역시 해석학적 프로그램을 전제할 수밖에 없다. 칼 바르트는 '오늘의 신학적 실존'(1933)에서 '(사회적) 상황을 향한 말씀'(Zur Lage)과 '내용을 향한 말씀'(Zur Sache)을 구분 짖고 신학의 실존은 모든 정치 사회적 상황에 필연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이 연관성을 신학의 사실적 내용에 해석학적으로 매개하려고 했다. 다시 말해 성서적 진술은 일차적으로 성서적인 상황과 연관시켜 주석적으로 취급되지만,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성서와 우리의 시간적 간격을 뛰어넘는' 해석학적 매개(Hermeneutische Vermittlung)와 실천을 통해 시대적 상황을 위한 말씀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여기서 바르트는 신학의 사실적 내용, 예를 들어 계시와 같은 개념은 단순히 객관적이며 무시간적으로 주어진 형이상학과는 상관없는 것임을 밝힌다. 신학의 사회사적인 실존 속에서 바르트는 모든 교의학적 진술들- 예컨대 신론, 그리스도론, 교회론 등- 을 역사, 사회적인 것으로 파악했고, 동시에 교회에 위임된 실천적인 과제로 이해했다. 이런 관점에서 바르트는 해석학적 신학에 필수 불가결한 실존개념을 포기하지 않는다. 신학의 정치사회적 실존을 통해 바르트는 하이데거- 불트만의 개인주의적 실존론적 신학과는 다른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인간성문제'를 해석학적으로 해명함으로써 그의 교의학적 진술들을 히틀러에 대한 저항과 정치해방의 운동에 연관지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바르트의 해석학적 관심은 불트만과는 달리 그의 초점을 인간의 정치 사회적 조건에 맞춘다. 이 조건은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종교적인 총체적 인간의 삶의 자리를 의미한다. 인간의 본성에는 거룩한 것을 단순한 객체로 고정시키고 우상으로 변조해버리는 악의 경향 즉 신화론적인 경향(Mytholoische Tendenz)이 있다. 틸리히의 언어로 언급한다면 이러한 경향은 종교의 성례전적 차원의 타락을 말하는데, 이 차원이 마술적인 것으로 전락해버릴 때 이에 대한 비판으로 신비주의적 운동과 윤리- 예언자적 운동이 발생하게 된다. 틸리히가 종교의 세 가지 차원 즉 성례전적 기반, 신비적 및 예언자적 차원을 통합하는 "구체적인 정신의 종교"- 이 차원에서 신율적 요소가 발생한다- 를 그의 문화 해석학의 중요한 방법으로 고려한다면, 바르트는 초기에 신화와 우상을 만들어 가는 인간의 사회 문화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바르트에게 의미 있는 것은 살아있는 것을 죽어버린 객체로 만들어버리는 악마적인 경향을 폭로하고, 그 비판을 통해 새로운 의미로 회복시키는데 있다. 이 과제를 위해 의심의 대가들이었던 니체, 포이에르바하, 마르크스의 해석방식이 바르트에게 중요한 이론의 도구로 등장한다. 의심의 대가들의 해체와 기존질서에 대한 파괴는 현실성의 새로운 구축을 향한 지평을 개방한다. 이런 점에서 니체, 포이에르바하, 마르크스는 바르트에게 해석학의 사회적 차원과, 이미 실존의 전이해에 영향을 주는 신화론적인 이데올로기에 주목하게 한다.

 

불트만의 실존론적 해석학은 바르트에 의해서 사회, 역사적 지평으로 수정되고 확대된다. 하나님은 만유 안에 계시며(Alles in Allem), 인간존재의 총체성에 관심 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존재는 현실을 새롭게 조명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세계에 속한 모든 것들을 변혁하신다(CDII/1, 258). 하나님의 존재는 개인의 내적 종교성에 대한 단순한 갱신이 아니라 현실세계의 변혁을 의미한다. 정치, 문화, 자연은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변혁의 대상이 되며, 동시에 화해의 대상이 된다. 이것은 바르트가 표현하려는 사회에 대한 신율성의 차원이다. 적어도 인간은 하나님을 떠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버리지 않는다. 이른바 바르트에게서 본래적 사실로서 임마누엘의 현실(Urfaktum Immanuel)은- 일본의 뛰어난 바르트 학자인 다키자와(K. Takizawa)는 이 내용을 근거로 바르트 신학과 선불교의 대화의 출발로 삼은 적이 있다- 타종교와의 만남에서 중요한 출발점을 제공한다. 마르크스의 포이에르바하의 11테제가 바르트의 하나님의 이해에 수용되며, 마르크스의 유물론 안에 육체의 부활의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고 마르크바르트가 진단할 때, 그것은 본래적 사실인 임마누엘이 바르트에게서 '하나님의 혁명'과의 연관시켜 이해되고 있음을 말한다. 바르트의 전적타자는 몰트만이나 융엘이 오해하는 것처럼 인간의 경험적 현실과 무관한 형이상학적 은유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인간의 모든 불의한 상황을 변혁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이며, 동시에 역사의 악과 사회의 불의에 전적인 타자로 존재하시는 분임을 말한다. 그리고 이 타자인 하나님은 만유 안에 계시며 만유 안에서 일하시는 분이다. 이 하나님에 대한 사회적 실존경험과 해석학적 이해는 바르트 신학의 특징에 속한다.

 

 

3. '하나님의 혁명론': 해석학과 사회분석의 통합개념

 

바르트의 가난한 자의 해석학은 로마서주석을 쓰던 정치 사회적 상황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바르트의 종교사회주의 비판은 그가 노동자의 상황을 종교적으로 해석하지 않은데서 나타난다. 그것은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변혁의 문제였고, 노동자의 사회적 상황을 성서해석의 중요한 대상으로 파악한다. 불트만과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의 배경에서 출발했지만, 불트만이 성서를 개인의 실존과 그 존재론적 구조(존재와 시간)에서 해석했다면, 바르트는 역사적 실존과 그 사회적 구조(인류의 사회사의 관점에서)에서 해석한다. 여기서 바르트 사고의 이해는 마크부르트학파에서 포이에르바하로 그리고 마르크스로 이어지는 헤겔 좌파적 선회를 그린다. 바르트와 불트만이 갈라서는 것은 이들이 역사와 사회적 현실성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학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19년 탐바하 강연(Tambach Vortrag)에서 종교사회주의자들과의 결별이 예고된다. 여기서 바르트는 사회안에 있는 기독교인들의 과제를 정치사회적으로 어떻게 사회현실과 중재할 것인가 대해 관심 한다.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인류를 포함하며 세계와 사회 속에 있는 인간의 존재를 포함한다. 불름하르트와 더불어 바르트는 하나님을 믿는 것은 인간성을 믿는 것이며, 그리고 인간성을 믿는다는 것은 세계의 실제적 변혁과 갱신으로 인도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사회는 자체의 중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규칙이 하나님의 빛 안에서 상대화된다고 할지라도 사회적 삶을 지배하고 규제한다.

 

그러나 인간의 업적과 인간의 사회는 바르트가 부른 "운동"내지 "근원" 즉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만난다. 이 하나님의 역사가 인간의 역사로 개입해 들어오며, 세계와 사회를 변혁한다. 사회 속의 기독교인은 하나님 나라의 빛 속에서 사회의 비영속성(Impermanence)을 인식해야하며, 동시에 하나님의 개입은 인간의 전체적인 삶에 대한 비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의 사회적 항거와 비판은 하나님 나라운동을 향해 통전적인 부분이 되어야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저항과 비판을 넘어서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인간의 혁명을 넘어서 있는 진정한 혁명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성격이 강하게 부각된다. 사회는 이제 미래의 희망의 삶의 전망가운데 서 있게 되며 전적인 타자(totaliter aliter)로서의 하나님의 현실은 교회와 사회와 문화에 대한 변혁의 근거가 된다. 하나님나라의 운동의 근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불트만 처럼 실존론적 이해를 위해 비신화화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변혁적으로 비신화화된다. 이 '전적 타자'는 하나님의 현실성과 세속화된 사회현실을 매개하며, 기존의 부르주아 사회와 문화의 전복을 의도하는 인간의 새로운 세계로 이해된다. 바르트의 해석학적 전이해는 개인주의적 실존론적 전이해가 아니라 변혁의 시기에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이 갖는 급진적인 '하나님의 혁명'에 대한 전이해를 말한다.

 

로마서 1판에서 수행되는 레닌 혁명과의 비판적 대결은 그리스도안에서 열려지는 '자유의 저항운동'(Gegenbewegung der Freiheit)을 통해 일체의 인간적 실존의 소외와 물화에 대항하는 하나님의 혁명으로 독해된다. 그리스도안에서 제기되는 것은 도덕적 윤리의식이 아니라 사회적 토대에 대한 인식과 거기서 산출되는 실천에 상응하는 '하나님의 운동'이다. 여기서 바르트는 이론과 실천의 통합을 하나님의 운동의 관점에서 파악한다(롬1.392). 특히 골비처는 이것을 이후 바르트신학의 정치신학적 전개를 해명하는 중요한 해석학적 전제로 파악하며, 존재와 당위, 사회적 현실성과 인간의 실천의 모든 이분법이 바르트에게서 지양되고 있음을 밝힌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행동은 '은총의 고유한 능력'을 근거로 하나님의 행동과 함께 고려된다. 은총의 고유한 능력은 자유롭고 선하며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며, 하나님을 향해 지향된 인간의 의지이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행동과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행동사이에는 어떠한 동요가 있을 수가 없다. "은총아래 서있는 인간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존재와 같다"(롬1.169). 여기서 마르크스주의에 의해 비판적으로 제기되어온 '은총과 인간의 자기창조의 반립'은 바르트에 의해 신학적으로 극복된다. '인간은 자신이 스스로 실천을 통해 창조해나가는 존재'라는 마르크스의 인간의 자기창조의 테제는 바르트에게 은총의 근본적 사유로 수용된다. 그리고 이 은총은 타종교와 문화 속에 여전히 그 영향력을 행사한다. 적어도 바르트의 은총신학은 보편적인 문화구조를 갖는다.

 

'하나님의 혁명 운동'은 사회 문화적 대립들 속에서 근본적으로 '밑으로부터의 운동'(eine Bewegung von unten her)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열악한 자, 비천한 자의 하나님이지 부유한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롬1.367). 가난한 자를 위한 하나님의 당파성에 대한 해석학적 이해를 통해 바르트는 급진적인 사회민주당과의 협력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는 레닌의 혁명론에 접근해간다. 일차적으로 바르트는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레닌의 급진적 비판과 자신의 비판사이에 일정한 친화력이 있음을 본다. 그러나 바르트는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독재개념을 거절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국가를 또 다른 국가기구로, 그런가하면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독재'로 대체하기 때문에 보수적일 수가 있다. '레닌주의 이상으로'(Mehr als Leninismus),(롬1.379)- 이것은 바르트가 견지하고 있던 정치적 이해이며, 하나님의 혁명은 기존의 국가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하는 것이며, 정의의 힘을 통해 부정의 폭력을 위에서부터 밑에까지 해체하는 것을 말한다(롬I.377).

 

마르크바르트 해석에서 바르트의 신론이 레닌의 혁명개념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리고 바르트의 정치적 입장을 레닌의 관점에서 '무정부주의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마르크바르트가 바르트의 정치적 입장을 2차 인터내셔날과 3차 인터내셔널의 이론적, 실천적 방황의 기로에 서 있었던 스위스 사회민주당에 자리 매김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서 주석 1판에서 바르트는 오히려 레닌을 무정부주의자로 역 규정하고 있으며, 바르트의 개혁과 혁명의 변증법적 역동성을 고려해볼 때 바르트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급진적 사회주의와 흐름을 같이한다. 특히 클라라 제트킨의 불름하르트에 대한 존경, 불름하르트의 급진적 사회주의적 입장 그런가하면 로버트 그림(Robert Grimm)이 이끌던 스위스 사회민주당의 급진적 강령들은 무정부주의적으로 이해되기는 무리다.

 

로마서 주석 2판에서 바르트는 하나님의 혁명을 '비판적 초월'(Kritische Transcendenz)로 자리 매김 한다. 로마서1판 주석에서 하나님의 혁명과 연관되는 인간의 해방실천은 '은총의 고유한 능력'을 통해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갖지만, 이제 그는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파렴치한 동일성"(Unverschamte Indenfikation)을 경고하기 시작한다.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무한한 질적 차이'(키엘케고르)는 러시아의 혁명에서 벌어지는 백군파와 적군파들 간의 참상, 혁명가들의 보수화, 여전히 가난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의 억압의 현실을 보면서 정치적으로 수행된다. 여기서 바르트는 그의 유명한 위기신학(Theologie der Krisis)의 길로 들어선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위기로 몰아넣으시는 분이다. 전적타자(동시에 모든 것을 전적으로 새롭게 변혁시키시는 분)인 하나님은 인간에 대해 긍정과 부정의 양 계기를 갖는다. 바르트는 위기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부정에서 하나님의 긍정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여전히 로마서주석 2판에서 바르트는 그리스도안에 존재하는 혁명(롬2.180)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 혁명은 도처에서 사슬에 매여있는 모든 존재들을 해방하는 자유의 회복을 의미한다. 로마서 주석2판에서 바르트의 정치해석학은 1)이데올로기비판 2)개혁정치 3)저항윤리로 요약된다. 심판자(II.1-3)의 항목에서 바르트는 주장하길, 인간은 중심의 자리에 서기 위해 하나님을 이데올로기로 만들어버린다고 분석한다(롬2.73-74). 하나님과 인간을 혼동하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은 인간의 허위의식에 대한 공격으로 드러난다. 물신숭배를 통한(롬2. 50) 우상작업은 인간을 진리가 아니라 거짓으로 이끌어간다. 여기서 역사는 권력과 지성을 소유한 자들이 연약한 자들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각축장이요, 생존투쟁(Kampf ums Dasein)의 장이 되어버린다. 비록 혁명가들은 정의와 자유를 실현한다고 했지만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왔다. 여기서 기독교인의 정치윤리는 현존하는 모든 것에 대한 의심과 부정의 시선에서 움직인다.

 

비판적 초월로서 '하나님의 혁명'은 여타의 혁명적인 이데올로기뿐만 아니라 체제 옹호적인 보수적인 견해를 단죄한다. 바르트의 견해에 따르면 교회와 국가, 법과 사회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유하는 자들은 부르주아들이다(롬2.477). 이들은 자신들의 권력, 소유, 출세를 향유하기 위해 생존투쟁을 전개한다. 이것은 적어도 "위로부터 시작되는 계급투쟁"의 측면을 말한다(롬2.433). 위로부터 행해지는 계급투쟁의 상황에서 동료인간들은 적이 돼버린다. 이것은 계급의 적대감을 유발하며, 권력과 지성의 이익을 얻어내기 위한 부르주아들의 투쟁이다(롬2. 77). 계급사회는 가난한자들을 위한 인권과 자유와 평화를 창출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혁명을 낳게 하는 사회적 원인이다. 혁명의 탄생은 모든 기존의 질서 속에서 악이 있음을 간파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롬2.480). 혁명가들은 적어도 이러한 악을 근절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람들이며, 새로운 질서와 권리를 수립하려고 한다(480). 그러나 혁명의 결과들을 분석해볼 때 혁명가들은 오히려 보수적인 부르주아들보다 더 위험한 경향을 보인다.

 

러시아에서 벌어지는 계급사회의 혁명적 전복은 반혁명의 길이 아니라 개혁정치의 길을 고려해야한다. 적어도 바르트에게서 혁명과 개혁은 로자 룩셈부르크처럼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보완적이다(롬2 .455-475). 혁명과 개혁은 변증법적인 관계에 있다. 아무리 급진적인 혁명일지라도 기존체제를 승인하고 정당화해주는 우를 범할 수 있다. 혁명과 개혁은 하나님의 혁명의 빛에서 조명될 때 그 보수성이나 또는 절대화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혁명가들은 이제 러시아에서 새로운 권력 엘리트들로 변신해버렸고, 인권과 자유라는 허울좋은 이데올로기로 사회의 독재를 강화한다. 러시아의 혁명에서 여전히 가난한자와 비특권층들은 새로운 권력 엘리트들에게 억압당한다. 여기서 바르트는 러시아혁명을 사회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면서, 하나님의 혁명과 종교개혁의 은총론을 결합한다. 하나님의 은총은 혁명적이다. 로마서 1판 주석과는 달리 하나님의 혁명은 우리의 외부에서(extra nos) 그러나 우리에게 저항해서(contra nos) 일어난다. 로마서 주석 1판과는 달리 인간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혁명의 동역자들이 아니다(롬1. 145,151,286). 바르트는 혁명비판을 통해 볼셰비키스트들을 자기반성과 자기비판으로 안내한다. 그들은 보다 많은 사회정의와 민주주의적 평등함을 위해 개혁정치를 진지하게 고려해야한다.

 

결론적으로 바르트의 로마서주석 1판과 2판에서 드러나는 가난한 자의 해석학은 이후 바르트 전체신학의 중심에 자리하게된다. 하나님문제와 변혁과 사회적 빈곤의 문제는 사회 분석적으로 그리고 동시에 해석학적으로 통합되어 나타난다. 바르트의 로마서주석 2판은 일약 바르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로마서 주석1판과의 관련에서 읽혀지지 않았다. 하나님의 절대성, 위기, 개인의 실존등의 개념들이 바르트의 신학을 19세기 신학으로부터 갈라놓는 소위 변증법적 신학으로 파악하게 했다. 바르트는 자펜빌에서 여전히 정치 사회적 투쟁에 관여하고 있었고, 러시아의 혁명상황에 주목하고 있었다. 신학적으로 바르트는 가난한 자를 위한 정치실천과 그 해석학적 토대를 위해 씨름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르트를 괴팅엔의 대학교수의 길로 가게 한다. 그는 신학의 해방적 실천과 교의학적 진술에 대한 사회 해석학적 접근을 통해 교회 교의학의 정치적 길을 예비하고 있었다.

 

3.1. 바르트의 비신화화론?

주지하는 대로 불트만의 실존론적 해석학은 특히 성서의 신화적 세계상을 어떻게 현대의 사고에 이해시킬 것인가 하는 데로 초점이 맞춰진다. 모든 성서는 신화적 세계상에 기초되어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십자가 사건, 부활, 심판, 새 하늘과 새 땅의 모티브들은 영지주의적 구속신화와 후기 유대교적 묵시문학의 동시대적 신화론에 연관되어 있다. 더 이상 현대인은 신, 천사, 사탄이라는 삼층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종말 때의 재난, 죽은 자의 부활 등과 같은 영지주의적 구속신화나 후기 유대교적 묵시문학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

불트만에 의하면 신화의 본래적 의미란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세계상을 제시한다기보다는 세계에 대한 인간의 자기이해 다시 말해 신화는 우주론적이 아니라 실존론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신화 안에 어떤 실존이해가 표현되어있는가를 묻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신약성서 안에 우주론적 표상과 실존론적 표상들이 혼합되어 있다. 그러므로 비신화화론에서 중요한 것은 신화의 제거가 아니라 신화에 대한 실존론적 이해이다. 이 실존론적 해석을 위해 불트만은 사실적인 것(Historisch)과 역사적인 것(Geschichtlich)을 구별한다. 불트만은 예수의 구속사건이 지니는 사실성을 신화론적 표상으로, 역사성을 실존론적 의미성으로 파악한다. 신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역사하셨다는 구속사건은 사실적인 의미에서 객관적으로 확정될 수 있는 그런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이것은 신화론적으로 기술되어 있기 때문에 신의 종말론적 사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불트만의 실존론적 해석에서 십자가와 부활사건은 그 객관적인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실존의 의미를 개방하는 종말론적 사건이다. 이 종말은 역사의 종말이 아니라 매순간 결단하는 실존의 종말성을 말한다.

 

불트만의 비신화이론은 리케르나 엘리아데(M. Eliade)또는 융(K. Jung)등의 신화연구와 비교해볼 때 정반대의 방향이 드러난다. 신화란 헤겔적인 의미에서 개념으로부터 표상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표상과 실재의 일치를 고대적 존재론 자체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불트만의 비신화작업은 신화의 해석이라기보다는 신화론적 사고에 대한 비판으로 환원되며, 그 비판기준은 합리주의적 실존론적 개념이다. 비신화화의 문제로서 신화와 문화, 말씀과 예배의 관련성은 불트만에게서 결코 통전적인 부분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불트만의 비신화화 프로그램을 주목하면서 바르트는 불트만과는 다른 비신화화의 작업을 수행한다. 불트만이 신화의 문제를 실존론적 해석학으로 이끌어가지만, 바르트는 신화의 문제가 신학적으로 특수한 영역에 속하는 것이며 단순히 실존론적인 방법으로 다룰 수 없음을 본다. 불트만은 종교사적인 연구에 의거해 비 세상적인것, 신적인 것이 세상적인 것으로, 또는 인간적인 것으로 그런가하면 저 세상적인 것이 이 세상적인 것으로 나타내는 표상방식(Vorstellungsweise)을 신화론적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현대적인 의미에서 신화를 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 고려하지는 않는다.

 

칼 바르트의 로마서주석(1판/2판)은 종래의 자유주의 신학의 방향과는 전혀 다른 해석학적 문제를 보여준다. 물론 바르트는 역사비판적 방법자체를 포기하지는 않지만, 이 해석의 방법을 상대화시키고 성서본문의 고유한 이해를 위한 예비단계로 파악한다. 바르트 자신은 비록 해석학적 문제를 본격적으로 취급하지는 않지만, 교의학의 내용적 전개를 통해 실존론적 해석학의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본다. 바르트는 신학이 일반 이해론에 의존되는 것을 비판적으로 다루었고, 오히려 해석학 일반은 계시의 증언으로서 성서를 통해 배울 수 있어야함을 역설한다(KDI/2, 515). 로마서주석 2판이 실존론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다면, 1판은 사회 문화적 의미를 갖는다. 불트만은 바르트의 로마서주석 2판을 중요하게 취급했지만, 그러나 실존주의를 넘어서는 로마서주석 1판의 사회집단적 개념들은 불트만에게는 낯 설은 것이었으며, 그의 실존론적 해석학에는 수용될 수 없는 것이었다. 로마서주석 1판의 사회적 개념들과 언어들은 이미 바르트의 사회적 실존의 전이해 속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교의학적 차원으로 전개된다. 두 개의 로마서 주석은 이러한 신화적 현상들에 대한 신학적 분석으로 볼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대로 로마서주석 1판에서 바르트는 사회 정치적 실천에 접근하는 신학적 해석학을 '하나님의 혁명'의 개념으로 독해한다. 자유주의 신학의 실패는 역사적 우연이라기보다는 그 신학의 본질 때문이다. 자유주의신학의 인간학적 의도를 바르트는 인간의 우상을 만들어내는 신화론적 사고에서(롬1.18) 그리고 하나님을 인간의 이해관계에 묶어버리는 시도에서 본다. 자유주의에 대한 신학적 비판을 통해 바르트가 의도하는 것은 동시에 자유주의가 근거하고 있는 부르주아와 정치와 이데올로기비판을 포함한다. 이 비판은 특히 자본주의, 국가, 군국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분명해진다. 자본주의, 국가, 군국주의비판은 우상을 만들어 내는 인간의 신화론적 사고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비판의 계기를 포함한다. 더욱이 자본주의 비판은 후기 바르트에게서 특히 중요한 지점을 갖는데, 교회 교의학 III/4에서 자본주의 경제질서에 대한 분석과 비판에서 잘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바르트의 역사-비판방법에 대한 비판을 이해 할 수 있다. 여기서 로마서주석 1판의 유명한 선언, "내가 보기에 역사- 비판방법은 보다 더 비판적이라야 한다"는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바르트의 역사개념은 관념론적이거나 개인주의에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경제적 영역을 통해 드러나는 역동적인 유물론적인 역사개념을 견지한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갖는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원하기 때문에 갖는다(롬1, 11). 종교적 인간은 신과의 관계를 성취하며 산다기보다는 '신적인 것에 대한 영원한 동경'(롬I, 12)속에서 살아간다. 왜냐하면 신을 추구하는 인간은 신의 저 세상성, 처분할 수 없음에 부딪치기 때문이다. 트렐취(E. Troeltsch)의 종교적 아프리오리(reigiose Apriori)는 바르트에 의해 부인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종교분석의 출발로 인정된다. 신에 대한 인간의 종교적 관계에서 종교가 생겨난다. 인간은 신과 진리를 알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인간은 신을 자신의 인격으로 연관시키며, 신에 관한 생각은 자신에 관한 생각으로 대체해버린다. 이러한 불의한 행동에서 인간의 교만이 생겨나며 여기서 인간은 스스로 신으로 고양된다. 인간 스스로가 신이 됨으로써 그의 주인 없는 세계는 우상들로 가득 차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신과 실존적 관계를 맺는 종교적 과정이 발생한다. 이것이 신으로부터 도피에 대한 실존적 이해이며 그 자체상 모든 신화론의 원천이 된다. 바르트의 비신화론은 이러한 우상의 폭로에 있다.

 

 

4. 그리스도와 종교다원주의

 

제2 바티칸 공의회를 거치면서 칼 라너의 '익명의 그리스도인'은 비판과 수용을 통해 로마 카톨릭의 진영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물론 이에 대한 저항으로 파니카나 피에리스는 '익명의 기독교'를 말하는 자들은 '익명의 힌두교', '익명의 불교'를 함께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비판한다. 그런가하면 판넨베르크는 틸리히의 문제의식을 수용하면서, 종교현상학과 역사의 문제를 자신의 종교신학의 중요한 과제로 설정하기 시작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은 하나님의 미래에 연관된 사건이며, 하나님의 보편적 활동은 타종교와 문화에서 언제든지 만날 수가 있다. 죤 캅(John Cobb)이 종교다원주의 시대에서 그리스도론(Christ in a Pluralistic Age)의 문제를 고려하고 있을 때, '예수=그리스도'의 등식을 넘어서는 '그리스도 > 예수'의 문제의식은 그에게 배타주의와 상대주의를 넘어서게 하는 중요한 사고로 등장한다.

 

 특히 역사적 예수의 육체성의 외부에 존재하는 로고스의 씨앗은 타종교와 문화에서 발견된다. 70년대 들어오면서 세계교회협의회의 공식적인 주장인 '우주적 그리스도론'(The cosmic Christ)은 인도의 신학자들 예를 들어 토마스(M. M. Thomas)나 사마르타나에게 특히 종교다원주의 상황을 고려하면서 수용되기 시작했다. 70년대 이후 세계교회협의회가 제시한 '우주적 그리스도론'이 여전히 역사적 예수의 절대적인 규범에 매여있다면- 대표적으로 몰트만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The Crucified God)이후 유럽의 신학계에서 호평을 받았던 '예수 그리스도의 길'(Der Weg Jesus Christi)에서 우주적 그리스도론을 제시하는데, 전형적으로 이러한 입장을 대변한다- 토마스(N. M. Thomas)는 바르트의 계시를 통한 종교비판을 탁월한 신학의 통찰로 받아들이면서, 계시를 동시에 종교로서의 기독교에 대립시켜나갔다. 니터는 이러한 입장을 바르트에 대한 왜곡으로 설명하지만 바르트를 왜곡하는 것은 니터 자신의 바르트 해석처럼 보인다.

 

사마르타는 우주적 그리스도론이 예수 그리스도 중심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타종교에 여전히 로고스로서의 그리스도가 있음을 간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그리스도론적 중심은 신 중심을 향해 일종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과 혁명을 맞이하기 시작한다. 힉(J. Hick)은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과의 삼위일체론적인 등식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긴 하지만, 완전한 하나님일 수가 없다. 통전자로서의 하나님은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구원의 매개자들은 그가 예수든 부처든 마호멧이든 절대 초월적인 하나님 앞에서 급진적으로 상대화될 수밖에 없다. 힉이나 또는 신 중심적인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시도하는 종교신학자들 안에서 영성신학의 전통적인 흐름인 부정의 신학(Aphophatic Theology)의 새로운 수용을 보게 된다.

 

그러나 파니카는 이러한 힉의 무차별한 상대주의와 하나님의 보편성으로 모든 종교를 통합하려는 시도를 은폐된 제국주의적 사고의 연장으로 비판한다. 종교는 서로 다르다. 서로 다름의 불가공약성(Incommensurability)은 포스트모던주의의 핵심적인 사유에 속하는데, 이것은 동시에 근대성의 기획에 사로 잡혀있는 종교신학의 논리에 하나의 비판으로 제시된다. 적어도 파니카에 의하면 익명의 그리스도론은 익명의 제국주의를 암시할 수밖에 없다. 파니카의 신인일치적 (Theandric)관계는- 동방교회교부들의 구원론의 핵심인 신화(Theosis)의 새로운 표현으로 제시되는데- 하나님과 인간과 우주를 통전적으로 포함하면서, 힌두교 안에 알려지지 않는 "미지의 그리스도"(Unknown Christ)를 향해 개방한다. 힌두교에 대한 파니카의 탁월한 그리스도론적 해석은 힉이나 폴 니터의 보편적 우주신학과는 달리 각각의 종교의 다름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삼위일체 신학 속에 있는 성부 하나님의 근원성과, 성자와 성령을 앞서가는 성부 하나님의 부정적 측면(Darkness of Godhead),(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을 불교와 힌두교와의 대화 속에서 심화시켜 나간다. 하나님은 많은 이름을 가질 필요가 없다. 여기서 기독교에 대한 나의 신앙고백은 상대화되거나 무력화되지 않는다. 개인의 영적이며 고백적인 기독교의 이해(christic understanding)는 오히려 불교나 힌두교 속에 있는 미지의 그리스도이해를 통해 더욱 깊게 강화되거나 변혁될 수가 있다.

 

종교다원주의 상황 속에서 지금까지 바르트의 신학은 계시실증주의의 깃발아래 여타의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 거절로 이해되어왔다. 그러나 토마스가 통찰한 것처럼 바르트에게서 계시는 종교와 불가공약성을 갖는다. 계시와 종교는 근본적으로 서로 다르다. 그리고 이 계시는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넘어서 있다. 적어도 바르트는 타자를 통합하거나 기독교의 깃발아래 모든 종교를 끌어 모으려는 여타의 종교 제국주의적 발상을 끊임없이 경고하고 있었다. 파니카처럼 바르트의 관심은 문화현상으로서의 기독교(Christendom)나 종교적인 기독교(Christianity)보다는 그리스도와 나와의 만남이라는 경험적 의식(christic consciousness)이 대화와 증언에 중요하다. 기독교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Der Name Jesus Christi)의 현실 안에서 타종교와 마찬가지로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이러한 태도는 그가 유대교의 문제를 다루는데서 명쾌하게 드러난다. 유대교와의 만남에서 개종은 불필요하다. 역사적 예수가 없는 유대교는 자체상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의 약속에 서있는 백성들이다. 그렇다면 타종교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기독교와 유대교와의 대화는 역사적 예수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는가 하는 중요한 패러다임을 제공할 수 있다.

 

4.1. 바르트의 종교다원주의

바르트는 후기 교회교의학의 화해론에서 로마서주석에서 나타나는 해석학과 사회분석의 통합개념인 하나님의 혁명론을 예수 그리스도의 화해의 현실 안에 보다 깊이 있게 해석학적으로 독해한다. 바르트 자신이 1956년 강연에서 시인하듯이 자신의 초기적 관심을 붙들고 있었던 전적 타자로서의 하나님은 너무 지나치게 절대화됐고, 추상화되었으며, 그의 하나님이해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보다는 철학의 초월적 하나님에 보다 더 근접하지 않았었는지 우려한다. 하나님의 신성을 말하는 것은 그의 인간성을 말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인간성을 말하는 것은 기독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의 화해론적 회복은 하나님과 인간의 '자리바꿈' (Austausch)에서 발생한다. 고후 5:18-21에 의해 이러한 '자리바꿈'은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받아들였으며, 죄인과 완전한 연대를 이루었다는 데 근거한다. (IV/1. 72-73) 자리바꿈의 또 다른 측면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담당했다는 의미에서 이제 인간은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에 놓여졌다는데 근거한다. 인간의 세계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에게 방향전환 되었다(IV/1.,76). 바르트는 이러한 '자리바꿈'의 역동성과 하나님과 인간, 세계와의 파트너쉽의 관계를 세가지 주제 아래서 다루어 나간다: 1)종으로서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IV/1, 157-642) 2)주님으로서 종이신 예수 그리스도(IV/2,3-613) 3)참된 증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IV/3.1, IV/3.2, 481-680).

 

종이 되신 그리스도에 관한 신학적 언급에서 인간의 죄악된 세상에 나갔던 하나님의 여정을 설명하기 위해 탕자의 비유를 은유로 사용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인류를 위해 순종의 길을 취했다. 이 순종의 길은 신약성서의 표현을 빌어 "자기를 비우심" "종이 되심"(빌 2:7), "겸허하심" "십자가에 달리심"(빌2:8), "고난"(히 5:8)등으로 표현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의 수납은 스스로 하나님의 진노아래 서 있는 죄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르트에 의하면 이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이다. 이 그리스도의 신성은 아들의 순종이며 겸허를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전히 주권적인 하나님으로 계신다. 이런 관점에서 바르트는 "성부의 수난설"로 인도할 수 있는 케노시스(kenosis) 기독론을 승인하지 않는다. 바르트의 표현을 빌면 하나님은 스스로에 대항하여 존재하셨다(Gott gegen Gott),(IV/I184). 여기서 우리는 바르트에게 미친 루터의 십자가신학을 만나게된다.

 

인간의 죄를 담당한 하나님의 겸허를 다루는데 비해 주님으로서 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항목에서 바르트는 하나님과 참된 관계로 고양된 인간을 다룬다. 예수 그리스도가 화해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모델이라면 그는 또한 화해된 인간에 대한 모델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인간성'과 더불어 '인간의 인간성'이 매우 역동적으로 다루어진다. 하나님과 인간의 계약의 갱신과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낮아지심(exinanitio)과 인간의 고양됨(exaltatio)이라는 '자리바꿈'에서 가능하다(IV/2,21).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일어난 인성과 신성의 역동적 연합은 칼케돈 신조에서 드러나는 알렉산드리아 신학의 과도함에 대해 자기방어를 한다. 이 연합은 모든 인간의 본질과 모든 인간성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가하면 안디옥학파의 신학에 대항하여 바르트는 인간본질의 어떠한 요소도 이러한 연합에서 배제되거나 영향을 벗어날 수가 없다고 밝힌다. 인간성의 고양(Exaltation)은 인간성의 파괴나 변경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심지어 우리와 같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여전히 우리와는 여전히 다른 차원을 말한다. 여기서 바르트는 기독론적인 anhypostasis와 인간학적 enhypostasis를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역동적인 사랑의 행동으로 파악하길 원한다. Enhypostasis-Anhypostasis를 근거로 하는 바르트의 해석학적 입장은 그의 신학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바르트의 신학적 문화해석학에 접근할 때 중요한 것은 그의 기독론적 포괄주의를 구성하는 교의학적 이해이다. 루터파와 개혁파들의 성찬 논쟁에서 두드러지게 등장했던 속성의 교류(communicatio Idiomatum)와 급진적인 칼빈주의 교리(Extra Calvinisticum)에서 루터파들은 그리스도의 인간성이 그리스도의 신성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인간적 고난에 그리스도의 신성이 직접적으로 참여한다고 보았다. 물론 이것은 루터의 십자가 신학에 근거되어 있으며, 그리스도의 편재설을 옹호한다. 그러나 개혁파들은 그리스도의 인간성과 신적 주권성은 간접적으로만 관계되며, 그리스도의 신성은 그리스도의 인간적 고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늘에 무한하고 영원하게 주권적으로 머문다고 본다. 성찬이해를 둘러싼 논쟁에서 루터파들은 실재적 임재(Real Presence)를 편재설에 근거하여 주장했지만, 개혁파들은 그리스도의 신적 주권성을 근거로 성찬에 임재하는 그리스도의 실재적 임재를 영적 임재 내지 기념설로 받아들인다.

 

마르크바르트는 "신학과 사회주의"(Theologie und Sozialismus)에서 "육체의 수납과 유적(類的)인간"을 다루면서 바르트의 기독론적 해석학 (Enhypostasis-Anhypostasis)을 자연신학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물론 그의 주장은 바르트 학자들에 의해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그의 논지는 다음처럼 요약될 수 있다: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가 지닌 인간본성의 존재(enhypostasis)를 통해 모든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안에 수납되고 있음을 밝히고, 이것을 통해 확장되고 완성된다고 본다. 간단히 말하면 유적 존재(Gattungswesen)로서 집단적인 인류는 예수 그리스도의 화육된 말씀의 인간성안에 그 존재양식(enhypostasis)을 갖는다. 여기서 Extra Calvinisticum(유한은 무한을 포용할 수 없다)에 대한 바르트의 해석은 히틀러 투쟁기간동안에 완고하게 계시중심주의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인 동기로 사용된 신학의 개념인데, 역설적으로 마르크바르트는 이 교의학적 개념을 인류를 향한 기독론적 포괄주의로 해석한다. 그리스도의 신성이 계시신학을 가능하게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보편적 인간성은 자연신학의 내용에 의미를 부여한다. 영원한 말씀의 화육은 바르트에게서 단순히 역사적 인물인 예수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을 포함한다.

 

사실 이러한 도발적인 기독론적 주장은 바르트 제자들을 좌파와 우파로 나누어 놓았고, 좌파들의 시도는 바르트를 유대교와의 대화속에서 그런가하면 종교다원주의와의 대화를 위해 바르트를 여전히 중요한 전거점으로 파악한다. 그러나 좌파들의 해석의 최대의 난점은 바르트의 신학을 삼위일체론적으로 전개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에버하르트 융엘(E. J ngel)은 헤르베르트 브라운(H. Braun)과 논쟁을 벌였던 골비처의 입장이 지나치게 유신론적인 잔재를 극복하지 못했고, 바르트의 삼위일체론적인 하나님 이해를 간과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골비처는 마르크바르트를 옹호하면서 쓴 서문에서 바르트의 삼위일체신학은 스콜라주의적이거나 단지 계시 중심적으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사회적인 실천과의 연관성에서 하나님의 혁명론으로 독해되어야 한다고 응수한다. 그런가하면 미국의 신학계에서 몰트만의 제자인 헌싱거(G. Hunsinger)는 마르크바르트의 논쟁을 소개 한 적이 있다. 그러나 헌싱거는 마르크바르트에 대해 감정적으로 편향된 헤르만 디엠의 비판점을 지지한다. 최근에 들어 북미의 신학계에서 이 논쟁에 대한 보다 학문적인 평가는 골비처 문하에서 교수논문을 쓴 훗(Robert Hood)인데, 그의 책을 통해 미국에서 바르트의 좌파적 해석과 종교다원주의와의 연관성이 활기차게 토론되고 있다. 이 논쟁을 위해 다소간의 교의학적인 부연설명이 필요하겠다.

 

칼케톤 신조의 기독론(참된 하나님, 참된 인간)을 변호하기 위해 비잔틴의 레온티우스(Leontius of Byzantium)는 안디옥 학파의 수장격인 네스토리우스를 정죄했던 알렉산드리아의 시릴 (Cyril of Alexandria)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가현설(Docetism)과 에비온주의(Ebionitism)의 양극단을 피해가기 위해 두가지 용어(anhypostasis와 enhypostasis)를 사용했다. 그에 의하면 예수그리스도의 인간성(Enhypostasis of Jesus Christ)은 (영원한 말씀인 로고스로서) 그분의 신성에 독립하여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인간성은 영원한 말씀인 로고스에서만 존재하는데, 만일 그리스도의 인간성이 영원하신 말씀과의 일치 에서 존재하는 한, 그것은 동시에 참된 인간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가현설과 에비온주의는 설자리가 없다. 왜냐하면 영원한 말씀의 신성과 떨어진 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인간성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에비온주의). 그런가하면 그리스도의 인간성과 떨어진 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신성도 불가능하다(가현론). 그러므로 (영원한 신성)안에 거하는 존재로서 그리스도의 인간성(Enhypostasis)은 이와는 다른 존재의 유형을 갖지 않는다 (anhypostasis). 참된 하나님, 참된 인간으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칼케톤의 규정을 레온티우스는 그리스도의 신성에 우위성을 주면서(이것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전형적인 방법이다), 안디옥 학파의 강조점인 예수의 인간적 본성을 수용한다.

 

바르트에게 미친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영향은 그의 복잡한 기독론과 삼위일체이해를 둘러싸고 잘 드러난다. 바르트는 초기에 예수의 인간성 외부에 존재하는 그리스도론(Logos Asarkos)에 몰두한 적이 있었다. 다시 말해 영원한 로고스는 역사적인 한 개인 나사렛 예수에게 한정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고난의 십자가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의 의미는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하는가? 적어도 바르트는 히틀러와의 투쟁을 거치면서 Extra Calvinisticum을 육체 외부에 존재하는 그리스도론에 연결시킴으로써 개혁교회의 입장을 넘어서 사고한 적이 있다, 이것이 마르크바르트로 하여금 바르트가 계시신학 안에서 자연신학의 가능성을 개방했다고 해석하게 한다. 그러나 마르크바르트 해석의 문제는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그는 바르트의 십자가 신학의 성격을 오해한다. 적어도 바르트의 십자가의 신학은 루터 이후 하나님의 고통의 문제(God's passibility)를 기타모리- 기타모리는 하나님의 고통의 신학을 전후 일본의 상황에서 토착화 시킨 적이 있다- 나 몰트만에 앞서 매우 진지하게 취급했다. 여기서 바르트는 개혁교리인 Extra Calvinisticum이 아니라, 루터의 속성의 교리를(Communicatio Idiomatum) 하나님의 활동의 교류(Communicatio operationis)의 관점에서 역동화 시킨다. 적어도 바르트가 보기에 칼케톤 신조의 두 본성의 기독론은 여전히 예수의 인간성과 신성의 교류를 추상적으로(communicatio indiomatum in abstracto) 파악하며 가현론의 위험을 피해갈 수 가 없다. 예수의 인간성이 이미 그리스도의 신성과 구체적으로 연합되고 교류된다면 인간성을 자체 안에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을 삼위일체적으로 말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Extra Calvinisticum은 인간성을 내재적으로 수용하시는 하나님이해에 부적합하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둘째로 마르크바르트는 바르트의 삼위일체론을 피해갈 수밖에 없었다. 바르트는 후기에 들어오면서 마르크바르트가 강조하는 것처럼 육체의 외부에 존재하는 그리스도론을 일관성 있게 견지한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론적으로, 그리고 성령론적으로 통합한다. 예수의 인간성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어떤 연관을 갖는가? 인간 예수는 내적 삼위일체의 관계 속에 이미 포함된다. 내재적으로 성부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인류를 위해 선택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선택은 경륜적인 의미에서 역사적인 계시사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포함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인류를 향한 보편적인 선택을 말한다. 이런 점에서 바르트의 삼위일체론은 초기 교회 교의학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은 주님으로서 자신을 계시했다"는데 한정되지 않는다.

 

몰트만은 성급하게 여기에 초점을 맞춰 바르트에 대한 비판을 시도한다. 몰트만에 의하면 하나님이 자신을 주님으로 계시할 경우,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삼위일체론적 이해가 아니라 군주론적인 이해에 불과하게 되며, 더욱이 한 하나님이 세 가지 존재양식(Seinswesise)을 통해 '자기반복'으로 드러날 경우 바르트의 삼위일체론은 필연적으로 양태론(Modalism)이나 사벨리안주의로 막을 내리게 된다. 이것은 칼 라너의 세 가지 본질방식 (distict manner of subsisting)에 대해서도 무차별하게 적용된다. 몰트만은 자신의 사회적 삼위일체론을 위해 동방교회의 교부인 요한의 다마스커스에게서 차용한 페레코레시스(Perechoresis)를 역사적으로, 종말론적으로 전개함으로써 삼위일체의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본다. 몰트만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인류를 위한 구원론적인 맥락에서가 아니라(물론 구원론적인 맥락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연관에서 다룬 적이 있다. 그러나 칼 라너의 삼위일체의 유명한 규칙- 내재적 하나님은 경륜적 하나님이며, 그 역도 마찬가지다- 을 받아들임으로써, 몰트만은 우주와 세계와 인류의 인간성을 포함하는 내재적 하나님의 삼위일체론을 바르트처럼 전개하지 못했다. 결국 몰트만의 삼위일체론에 대한 구상은 동방교회의 교부로부터 빌려온 삼위의 개념- 몰트만은 이 개념을 Person으로 과감하게 사용한다- 을 공동체적인 친교와 사귐, 그리고 사랑으로 해석함으로써, 삼위-일체(Tri-Unity)의 하나님의 사회성과 인간의 사회적 공동체와의 연관성을 역사적으로 그리고 종말론적으로 전개한다. 그러므로 몰트만은 칼 라너의 익명의 그리스도론을 하이데거의 영향 아래, 타종교의 진리주장과 문화를 유럽중심의 존재론으로 함몰시키려는 부르주아 이론으로 비판했지만, 자기자신 역시도 삼위일체론에서 타자를 위한 해석학적인 이해나 개방을 봉쇄한다. 왜냐하면 몰트만은 하나님의 '고통받을 수 없음'(Aparteia)만 제외하고는, 희랍의 존재 철학에 함몰되어있던 교부들의 전통을 충실히 답습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말해 그의 삼위일체론은 몰트만이 그토록 주장하고 싶은 것처럼 타문화와 종교를 향해 열려있는 '개방의 삼위일체론'(Open Trinity))이 아니라 구원에 관한 역사적 예수중심을 심화하는 자기 폐쇄적인 전통의 삼위일체론의 연장에 불과하다.

 

4.2. 삼위일체와 종교다원주의

바르트는 주권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강조와 켄터버리 안셀름을 근거로 "하나님의 영원한 자기 반복"을 그의 신론에서 다음과 같이 수정한다. 즉 하나님은 "자유 안에서 사랑하는" 존재(God who loves in freedom)이다. 이 하나님의 존재는 '만유 안에서 모든 것을 변혁하시는 하나님'의 행동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그런가 하면 바르트는 레온티우스의 입장을 수용하면서 화육은 항상 역사적 예수 이전에 '선재하는 영원하신 말씀의 화육'이며, 화육하신 말씀은 인간이 된(Enhypostasis)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임을 말한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인간으로서의 예수는 항상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었다(anhypostasis). 그러므로 화육은 한 개인 예수의 인간성에 국한되기 전에 내재적으로 전 인류를 향해 개방된다. 삼위일체 안에 선재적으로 수용된 인간성은 한 개인의 육체가 아니라 부정의와 불의 속에서 고통받는 인간의 인간성을 말한다. 이것이 바르트가 십자가의 신학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이유이다. 하나님의 존재는 처음부터 인간성을 수납함으로써 인류와 우주의 고통과 내재적으로 연대하는 '사랑 가운데 고통받으시는 하나님'이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인간성'과 '인간의 인간성'을 해석학적으로 중재함으로써 기독교의 타자의 성숙성을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바르트 신학의 깊은 통찰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인간성안에 인류의 집단적인 인간성이 포함되어있다면, 육체의 수납은 마르크바르트처럼 Extra Calvisticum과 육체외부에 존재하는 그리스도론과의 연관에서 다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종교와 타문화를 위해 이미 선재적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의 내재적 삼위일체론에서 파악되어야한다. 만일 타키자와가 그의 "신인간학적인 일치"를 바르트의 삼위일체론과 십자가 신학에서 추구했다면 선불교와의 대화는 불교의 가장 핵심적인 통찰에 속하는 우주적인 두카(dukkhar)와- 여기서 불교의 두카는 우주적인 고난의 맥락을 갖는다- 만나게 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다키자와는 기타모리의 "하나님의 고통신학"에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바르트에게서 역사적인 예수 안에 드러난 삼위일체 하나님의 자기계시는 상대화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많은 이름을 가질 필요도 없으며(힉), 그렇다고 해서 많은 구원의 중개자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파니카).

 

유적본질로서 집단적 인간존재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삼위일체론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면, 바르트의 보편주의(Universalismus)는 구체적인 역사 사회적 차원을 향해 개방할 뿐 만 아니라 자연과 문화 그리고 타종교들을 향해 역사적 예수에 한정되지 않는 삼위일체론적인 보편신학을 개방한다. 그러나 이 보편성은 근대성의 보편적 이성을 지지하지 않고, 고난의 특수성을 지지한다. 적어도 기독교의 거대담론은 근본적으로 '적은 이야기'를 통해 표현되어야 한다.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안에 관련되어있다는 Enhypostasis에 대한 바르트의 입장은 한 인간 개인이 아니라(homo), 인간성에 육체를 수용했다는 그의 주장에서 잘 드러난다. 화육 하신 분은 역사적인 한 인물 예수의 특수성과 유일성을 구체화 할 뿐 만 아니라, 이것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은 인류의 인간성을 이미 수납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인류의 고통의 문제를 진지하게 취급하는 이데올로기나, 타종교의 진리 속에서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만나게 된다. 초기로마서주석에서 가난한자의 해석학은 후기에 이르러 삼위일체론적인 전개 속에서 타종교와 문화를 향해 심화되고 확장된다.

 

여기서 예수는 인류 안에 드러난 하나님의 화육에 대한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자들에게 절대적인 구원과 진리의 가치를 갖는다. 그러나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는 고난받는 인류의 인간성을 자신의 존재 안에 포함으로써, 계시는 더 이상 역사적 예수의 계시의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화해의 한 부분이 된다. 다시 말해 인류와의 화해 속에서 이제 더 이상 하나님과 낯 설은 존재와 영역은 없게 된다. 설령 그 영역이 아무리 악한 기원을 갖는다고 할지라도, 때론 그것이 무신론적이며 반(anti) 기독교적인 형식을 갖는다고 해도, 내재적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화해된 인류의 인간성은 역사적인 예수의 계시 사건을 통해- 적어도 기독교인에게는- 그리고 이것을 넘어서서 모든 타종교와 문화의 종교성안에 수납되고 화육 된다.

 

여기서- 마르크바르트의 좌파적 해석의 운명이 달려있는- 바르트의 자연신학의 기독론은- 바르트가 그토록 강조했던 내재적 삼위일체론적으로(God beforehand in himself)- 타 종교와 문화, 그리고 역사 사회적 현실을 변혁하는 하나님의 행동과 더불어 이 세계의 고통의 문제를 진지하게 취급할 때 한층 더 의미가 있게 된다. 적어도 삼위일체론에서 종교다원주의를 향한 바르트의 문화 해석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편적 인간성을- 단순한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넘어서서- 확정하려고 한다. 모든 인류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간성안에 존재- 인격적으로(anhypostically and enhypostatically, CD IV/2,60)연계 된다는 바르트의 주장은 전통적인 기독론이 갖는 서구 문화 우월주의나 배타주의적인 은폐를 넘어서서, 하나님의 존재를 타종교와 문화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성의 고난의 문제를 향해 확장하고 심화시키는 탁월한 시도로 볼 수 있다.

 

바르트는 동방교회의 신화론(Theosis)에 중요한 근거가 되는 이레니우스의 명제,-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다"- 를 다음처럼 받아들이면서 수정한다. "인간이 하나님에게 다가가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다"(IV/2.106). 이것은 바르트적인 의미에서 '밑에서 위를 향한'(unten nach oben) 기독론적 표현이며, 영성의 표현이다. 그리스교부들에게서 발견되는 구원론의 핵심개념인 신화는 신학의 영성을 명료하게 밝혀준다. 종교개혁의 의인론의 지나친 법정론적 주장 때문에, 신화의 역동성과 영성의 깊이는 종교개혁신학의 전통에서 종종 간과되거나 오해되었다. 그러나 바르트는 여기서 하나님처럼 되어 가는 과정을 동방교회처럼 단순히 개인적인 측면에서 고찰하지 않고, 정치사회적으로 그리고 종말론적 지평에서 하나님의 화해를 향해 움직여나가는 인간의 해방의 실천으로 파악한다. 하나님이 고통받으시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처럼 고양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세계의 고난의 현실 가운데 연대하시는 하나님의 고통에 대한 예언자적인 제자직을 의미한다. 그의 해석학적 모티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에 대한 인간의 자기실존이해보다는 바르트가 서 있었던 정치사회적 현실의 전 이해에 있고,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밑으로부터의 인간학적-영성적(Anthropologisch-spiritual)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바르트는 예수의 삶과 사역을 칼빈의 삼중 직분론에 근거해서 기술한다. 왕의 직무는 왕적 인간(the royal man)에서, 제사장의 직무는 '종 되심'이라는 항목에서 그리고 예언자적 직무는 참된 증언자라는 항목에서 다룬다. 무엇보다도 바르트는 제사장직무와 왕적 직무에서 정치사회적 연관성을 다루고 난 후 예언자적 직무에서 일반계시와 특수계시를 진지하게 다룬다(IV.3.1.12).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은 '생명의 빛'이라는 관점에서 다루어진다.

바르트는 예수그리스도의 사역과 예언자의 사역을 비교 검토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계의 빛으로 동일시한다. 물론 그는 이러한 주장이 새로운 빛들을 제공해줄 수 있는 타종교들의 영역에 대해 너무 제한적인 것임을 인정한다. 더욱이 도덕적으로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간의 의사소통을 단절할 수 있으며, 정치적으로 볼 때 이러한 주장은 비관용으로 흐를 수도 있으며, 다른 종교적 견해와 양심의 문제를 다룰 때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바르트가 이 주장을 하는 것은 기독교의 승리주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론과 타종교의 불가공약성 때문에 그러하다. 다른 것은 다른 것이다. 계시와 종교는 서로 다르다. 이 불가공약성은 종교신학자들처럼 상대화되거나 폐기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각자 자기신앙에 대한 성숙한 고백을 가지지 않는 사람과는 서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기독교인이나 비기독교인이든지 상관없이 연대관계에 서 있다(IV/3/1.81). 더 나아가 이 그리스도는 기독교 외부의 타종교에서 그 진리의 빛들을 통해 언제든지 만날 수가 있다.

 

그러나 바르트의 계시와 종교에 관한 불가공약성은 다른 종교나 문화 속에 주목할 만한 진리의 주장들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성서나 교회밖에 있는 다른 진리주장이나 종교적 계시들은 오류나 거짓 예언들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유일하신 말씀으로 인정하면서 동시에 종교 다원주의의 사회 속에서 다른 진리주장들을 어떻게 인정할 수 있는가? 바르트의 해석학적 접근은 이들의 진리주장들이 내재적인 삼위일체 하나님의 빛에서 인정될 때 유의미하다. 역사적 예수 없이도 타종교와 문화의 진리주장들은 신인간학적인 일치(Theanthropoogische Einheit)가운데 서 있다. 이 진리 주장 속에서 역사적 예수의 한계를 넘어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본래적인 임마누엘의 사실- 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다키자와(K. Takizawa)의 해석은 뛰어난 바르트의 해석으로 평가될 수 있다. 다키자와는 일본의 경도학파에서 선불교의 철학에서 자란 사람이었다. 그의 선생인 니시다의 소개로 그는 본(Bonn)에서 바르트의 강의를 들었고, 이후 아시아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바르트의 총애를 받던 제자가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임마누엘의 본래적 사실(Urfatum Immanneul)-에 대한 그의 탁월한 해석은 바르트 신학안에 있는 신일치론적인(theoanthropologisch)관계를 해명할 뿐 만 아니라 선불교의 소쿠(Soku)사상- 신은 언제나 인간과 함께 한다- 과의 종교간의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 다키자와의 이러한 입장은 바르트 좌파들에게 중요하게 수용되었고, 마르크바르트에 의해 집단적인 인류의 인간성을 포함하는 기독론적인 보편주의로 심화되었다. 그러나 다키자와는 모든 이름을 넘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임마누엘의 본래적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묻지 못한다. 여기서 기독교인들에 대한 역사적 예수의 신앙 고백과 그 정치 사회적 중요성은 간과 되어버린다.

 

종교다원주의 사회 속에서 세속주의 한 형태로서 하나님과 그 복음을 거절하는 무신적 진리주장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이 세계는 하나님과 화해가 되었기 때문에 세계는 하나님에 의해 거절되는 여타의 세속의 영역을 갖지 않는다(IV/3.1.119). 그런가하면 다른 형식의 세속주의가 있다. 그것은 복음에 의해 질문되도록 자신을 개방하며, 복음과의 상관성에 서 있을 수 있다. 바르트의 주장에 의하면 이러한 형식의 세속주의는 기독교인에 의해 낯 설은 영역이 아니라 복음의 내용을 심화시키고 확장해주는 안내판과 지침으로 간주되어야한다. 이러한 진리주장들은 복음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해석학적으로 제공해줄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세계적 사건들과의 상호연관성을 갖는다. 그리고 교회와 사회적 삶에 중요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제도화된 교회는 세계의 사건들 속에서 그리고 다른 종교나 문화를 통해 중요한 영적 통찰들과 그 조명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세계는 자체상 자신의 진리의 빛들을 정당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IV/3.1.132,139). 인간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증언들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인간의 삶에 유익한 빛으로 해명될 수 있다. 화해의 사역이 창조의 사역을 부정하지 않듯이, 화해는 창조의 빛들과 언어들을 파괴하지 않는다(IV/3/1,139). 하나님의 말씀은 다른 세계의 말씀들과의 관련에서 해방의 기능을 갖는다. 하나님 말씀은 이 세계를 공격해 들어오면서 인간의 죄는 해결되었고, 세계의 미래는 하나님 안에서 실현되었음을 가르쳐준다. 이러한 해방의 기능을 통해 인간은 이 세계 속에서 자유하며, 다른 사람들과의 사랑과 연대 안에 존재하게 된다. 이제 비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성취된 계약 안에서 형제와 자매로서 그리고 화해의 파트너쉽 안에서 이웃동료들로서 이해된다. 이것이 바르트가 의미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양식 안에서 전 인류가 연관되어있다는 내용이며, 기독론적 존재양식(Christological anhypostasis)이 인류학적 존재양식(Anthropological enhypostasis)을 통해 확장되고 완성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독론적 이해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혁명론과 깊은 연관 속에 있는 그의 내재적인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이다. 그러므로 바르트는 여타의 이데올로기나 문화를 기독교화 하는 시도에 혐의를 둔다.

 

 

5. 나가는 글

 

몰트만은 그의 새로운 성령론을 전개하면서 지금까지 무시되어왔던 인간의 경험과 특히 신비주의 문제에 주목한다. 그에 의하면 신학의 영역에서 영성과 경험의 문제를 불구화로 만들어 버린 개혁신학의 딜레마가 바로 바르트에게 출발하고 있음을 진단한다. 예를 들어 신학의 출발점이 바르트처럼 '전적인 타자' (totaliter aliter)로서 하나님에게 있다면 인간과의 질적인 차이 때문에 이 하나님은 인간에게 경험되거나 체험될 수가 없다. 그런가하면 신학의 출발이 슐라이에르마허처럼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절대의존적 감정'에 주어진다면 하나님의 존재의 객관성은 실종 되어버릴 수 있다. 몰트만은 자신의 성령론을 '하나님의 계시와 인간의 경험의 양자택일'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나라와 종말론의 빛에서 새롭게 해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몰트만은 바르트 자신이 서 있던 사회 현실적 상황과 이 상황에 깊숙이 연계된 그의 신학의 해석학적 성격을 종종 오해한다.

 

흔히 바르트의 경험-실천신학은 이른바 바르트 좌파라로 불려지는 골비처와 마르크바르트 그리고 이들의 후계자들의 노선에서 해명되어왔다. 이들은 특히 바르트의 신학을 그의 정치적 실천과 사회역사적 현실과의 연관시켜 해명했다. 이들의 해석에서 '의심의 대가'로서 포이에르바하와 마르크스는 바르트로 하여금 신학적 진술 속에 숨겨져 있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폭로하고 해체하도록 고무한다. 바르트 좌파적 해석의 대표급적 신학자인 베를린대학의 마르크바르트 교수는 바르트 전체신학에 미친 사회주의적 영향을 분석하면서 바르트의 초기와 후기의 사상의 연속성을 메워 나간다. 마르크바르트에게서 하나님나라와 사회주의와의 연관성은 해석적 원리에 속한다. 그러나 그의 해석의 문제점들은 바르트의 십자가 신학과 삼위일체론을 간과한데 있다.

 

그런가하면 좌파적 시도에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융엘의 해석은 바르트 신학에서 나타나는 실천적 개념이나 혁명적 표현들을 하나의 은유(Methaphor)로 파악함으로써 바르트 신학에서 정치적 이론과의 연관성을 배제한다. 이외에도 수 없는 바르트 신학에 대한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나름대로의 정당성과 비판점을 공유한다. 우리가 여기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융엘의 바르트 해석이나 골비처- 마르크바르트적 해석 또는 몰트만적 바르트 해석은 나름의 가치를 지니지만 하나의 해석의 시론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6세기의 어거스틴 해석과 중세의 어거스틴주의 그런가하면 20세기 어거스틴주의에 대한 해석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처럼 텍스트가 자신의 세계를 독자들 앞에서 펼쳐나갈 때 이미 '저자의 죽음 (미셀푸코)은 예견될 수밖에 없다. 해석자 역시 그의 언어나 삶 그리고 역사, 사회적인 '해석학적 제한성'(가다머) 때문에, 항상 해석은 텍스트와의 끊임없는 지평융합을 통해 특수하거나 상황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시도해온 나의 바르트 해석은 여기에 근거한다.

 

바르트의 화해론에서 우리는 종교다원주의 모티브들을 삼위일체론적으로 그리고 기독론적으로 전개하는 것을 본다. 이미 본회퍼에 의해 비판되었던 '계시실증주의'(Offenbarungspositivismus)는 바르트에 의해 '하나님의 인간성'에서 성인이 된 세계의 문제를 수용한다. 그리고 세례론(Tauflehre KD IV/4, S.X(Vorwort))에서 '성숙해야만 하는 인간'에 대한 강조를 만나게된다. 더욱이 화해론의 전망에서 전개되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세계의 말씀들, 그리스도의 빛과 세상의 빛들과의 상관관계는 유대인과의 대화를 새로운 해석학적 지반에서 열어줄 뿐 만 아니라 동시에 타문화와 종교들에 대한 해석학적 통찰을 제공해준다. 그러나 이러한 과제는 바르트가 아니라 바르트의 제자들에게 속하는 새로운 신학적 과제에 속한다. 그리스도의 화해의 현실에서 하나님에게 낯 설은 세속성(Profanitat)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는 자체상 진리의 말씀들을 가지고 있으며, 설령 그것이 하나님의 복음에 도전하는 무신론적 사회주의의 진리주장일지라도 교회는 귀를 기울려야 한다. 정치사회 이론이나 그 보편적 주장뿐 만 아니라 타종교나 문화 속에 있는 우주론적 통찰과 진리주장들 역시 성서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그 해석학적 통찰들을 담고 있다. 에른스트 푹스(E. Fuchs)의 말처럼 바르트의 교의학이 그 제자들에 의해 반드시 평가되고 새로운 전망으로 전개되어야 한다면, 문화에 대한 해석학적 통찰은 새로운 과제에 속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신학의 담대성(Verwegenheit)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 우리는 바르트가 그의 신학에서 정치적으로 소외된 '타자'들을 어떻게 해석학적으로 독해해내며, 이러한 정치적 해석학이 그의 후기 화해론에서 어떻게 문화 해석학적인 통찰로,- 다시 말해 타종교와 문화의 성숙성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전개되는지를 살펴보았다. 틸리히의 문화 해석학이 그의 유명한 상관방법(The Methode of Correlation)을 근거로 편협한 교회지상주의의 타율성(Heteronomy)을 벗어나 타문화와 종교의 영역 안에서 드러나는 자율성(autonomy)으로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차원을 지양하는 종말론적 신율성(theonomy)을 향해 변증법적으로 움직여 나간다면, 바르트의 해석학은 역사로 들어오는 하나님의 현실성이 (교회를 넘어서서) 어떻게 세계의 현실과 문화 종교적 영역에 연관되는 가를 제시하는 정 반대의 방향을 취한다. 마크 테일러는 틸리히를 기독교의 진리에 대한 헌신(Commitment)과 종교 다원성 (Plurality)에 대한 급진적인 개방성(Openness)을 지닌 경계에 서있는 신학자로 평한 적이 있다. 김경재 교수는 이미 '해석학과 종교신학'에 대한 탁월한 이론적인 통찰을 통해 틸리히 신학방법의 해석학적 함의를 해명해 놓았다. 여기서 김경재 교수는 틸리히와 더불어 종교에 대한 바르트 비판의 정치사회적 성격을 정당하게 취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 우리는 바르트의 종교비판을 넘어서서, 그의 후기신학에서 나타나는 문화 해석학의 종교다원주의적 성격을 평가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바르트는 틸리히 신학의- 복음에 대한- 헌신과- 타문화와 종교에 대한- 급진적인 개방성의 내적 긴장을, 기독교의 외부에서 찾으려고 한다. 다시 말해 타종교와 사회 문화운동(대표적으로 사회주의 운동)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우주론적인 진리의 빛들을 해석학적인 순환을 통해 자신의 신학에 통합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나님의 진리의 빛은 교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의 영역 즉 교회의 밖에 존재하는 타종교나 문화에서 찾아 질 수 있고, 이것을 통해 교회는 새롭게 변혁될 수 있어야한다. 적어도 교회는 타자를 통해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겸손히 경청할 수 있어야한다.

 

바르트가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한계를 오버벡의 종말론을 통해 예리하게 비판하면서 담대하게(mit Verwegenheit) 20세기의 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듯이, 개혁교회의 신학과 교회는 새로운 밀레니움 앞에서 타자의 성숙성의 요구와 도전들 앞에서 움츠려들거나 계시실증주의적으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 '논쟁은 사랑'이기 때문에, 타자의 성숙성에 대한 종교신학이나 포스트모던사유와의 논쟁은 바르트 신학의 새로운 전개와 심화를 위해 진지하게 취급될 필요가 있다. 바르트의 말처럼 인간은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지만, 화해의 사건을 통해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하나님은 종교다원주의와 포스트모던 상황가운데서 계시며 자유와 고난 속에서 모든 인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며, 자기 겸허를 통해 세계와 문화와 타종교의 종교성안에 '육체의 수납'(Asumptio carnis)을 허락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타자의 세계는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의 희망의 약속에 서 있고, 그 거절은 성숙성으로 인정될 수 있어야한다. 메시야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유대교적인 부정이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성숙성의 귀결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비종교적인 세계나 또는 타종교와 문화의 성숙성들, 말하자면 무신론적 진리주장이나 타종교와 문화의 보편적 진리주장들은 더 이상 인간의 교만이 아니라 교회를 향한 의미 있는 도전과 새로운 통찰로 인정되어야한다. "악인들이 극락에서 받아들여지는데 하물며 선량한 사람이야" "심지어 선인들이 극락에서 받아들여지는데 하물며 악한 사람이랴"(신란) 기독교의 타자의 성숙성을 인정하는 시도는 이론의 문제를 넘어선다. 그것은 하나님의 신비와 사랑에 대한 영적 나눔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승훈 / 센프란 시스코 신학대학원, 영성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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