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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의 변증법

by 【고동엽】 2011.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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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의 변증법

 

1. 첫번째 단계(1919 - 1927) 바르트 신학의 첫번째 단계를 우리는 통상 '위기 신학' 혹은 변증 법적 신학이라고 한다. 그럼 먼저 '위기 신학'이라는 관점에서 그 의 신학적 사고를 살펴보자.

 

이 시기의 바르트의 사상은 한 마디로 기성 그리스도교에 대한 격 렬한 항의에서 시작하여 한결같은 항의로 계속된다. 그리고 바르트 가 휘둘렸던 그 반동의 유일한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가 새롭게 발견한 하나님의 말씀은 19C 자유주의 신학자들과는 달리 인간을 철두철미한 죄인으로 파악했다.

 

인간은 결코 본래적으로 선 한 존재일 수 없다. 하나님에 대해 올바른 사고를 할 능력도 없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을 어떤 접촉점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따라 서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그리고 하나님이 인간과 갖는 관계 가 무엇인가에 대한 모든 인간적 사상은 필연적으로 오류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또한 바르트가 이해한 성서 메시지는 인간이 철저한 죄인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인간과 하나님간의 절대적 차이를 강조 한다. 하나님은 인간에 대해 "전적인 타자"(der ganz Andere)이며, "절대적 초월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 신학이 인간의 경험 혹은 이성적 사고 혹은 도덕적 가치추구를 통해 하나님께 이 룰 수 있다고 가르친 것은 엄청남 과오 였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치명적인 간극은 여하한 경우에도 인간 쪽에서는 그 가교가 마련될 수 없다. 따라서 인간 편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려는 노력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인간이 스스로 알 수 있는 하나님이란 언제나 자기가 만들어 놓은 우상일 뿐이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초월적 분이시기 때문에 인간이 그에 관한 바른 관념을 가질 가능성을 훨씬 넘어서 계신다. 성서는 이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위치라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 은 도저히 건널 수 없는 이 엄청난 간극을 하나님은 건널 수 있고, 또 건너셨다. 즉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당신의 말씀 안에서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하셨다.

 

따라서 이제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알려면 인간을 향해 선포된 그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바르트의 사상은 '위기 신학'이 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에게 발해지는 순간 인간의 삶에는 일생일 대의 최대의 위기 상황이 초래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선택의 결 단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자신을 죄인으로 규정하는 그 계시의 말씀을 거부하고 자신을 의존하는 길을 계속할 것이냐, 아 니면 그 말씀 앞에서 자신을 개방함으로써 자기가 죄인임을 시인하 고 구원의 유일한 주체이신 하나님께 의존할 것이냐의 기로에 서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인간에게 닥 친 최대의 위기이다.

 

그럼 이번에는 좀 더 다른 관점 즉 '변증법적 신학'이라는 측면에 서 접근해 보기로 한다. 첫번째 단계의 바르트의 신학을 '변증법적 신학'이라고 성격화 하 는 것은 그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본적으로 부정과 긍 정이라는 구도에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계시를 서로 상반되는 것의 긴장으로 파악한다.

 

즉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인간의 죄됨, 하나님의 인간 심판과 하나님의 인간 용서,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 등의 도식이 다 그렇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됨에 대하여 언제나 "부정"하신다. 그러나 그럼 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간의 죄됨에 대하여 언제나 인간에게 " 긍정"을 말씀하시며 죄악에서 인간을 구출하여 받아들이신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그러므로"가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로서 인간을 대하신다. 계시의 메시지란 인간이 무가치하므로 하나님이 인간을 거부하신다 가 아니라 인간이 무가치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간 을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바르트의 이러한 변증법적 논조들은 그의 십자가에 대한 논의에서 아주 집약적으로 나타난다.

 

바르트에 의하 면 십자가에서 바로 하나님의 긍정과 부정이 만난다. 하나님은 십 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의 죄를 정죄하고 동시에 인간의 죄를 용서하는 당신의 말씀을 전하셨다. 또한 십자가에서 신앙과 종교가 만난다. 예수의 죽음에 대해 책임 져야 할 사람들은 당시의 종교인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누구신 지,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대 표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길들여 그들의 신으로, 아니 보다 더 정 확히 말하면 그들 스스로 창조한 우상으로 전락 시켜버린 사람들이 었다. 그래서 바르트에 의하면 종교란 인간을 하나님으로 부터 멀 어지게 하고 인간을 죄인으로 만드는 원흉이다. 따라서 종교는 신 앙의 적이다. 종교는 인간이 자기의 재주로써 하나님과 관계하려는 노력인데 반해 신앙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므로써 하나님이 누구시고 인간이 누군지에 관해 안다.

 

또 신앙은 예수 그 리스도를 하나님의 성육신으로, 스스로를 계시한 하나님의 자기계 시로 이해한다. 또 신앙은 종교의 정체도 정확하게 인식한다. 곧 종교는 인간이 만든 형식과 구조, 인간의 신념과 태도, 인간에게 스스로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교만과 허위의식의 체 계라는 것이다. 바르트의 초기 신학의 방법을 이렇게 간략하게 요약을 해봤는데 이 시기의 바르트의 사고에서 드러나는 두가지 중요한 관념을 지적한 다면, 첫째는 신의 초월성 개념이고 다음은 그에 따른 게시의 필요 성이라는 개념이다.

 

(1) 신의 초월성 바르트의 판단에 의하면 19C 자유주의 신학은 계시의 참다운 의미 를 역전시켰다. 적어도 바르트가 이해한 계시란 하나님에 관한 인 간의 지식이나 경험 따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신학자들 은 그리스도교가 그 시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 질 수 있게 하기 위 해 하나님의 초월성을 파괴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하나님을 인 간에게 너무 가까이 접근시켜서 인간이 하나님 상을 철학과 과학과 역사적 방법을 통해 자유롭게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고 믿게끔 착 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바르트는 하나님은 인간과 전적으로 다른 존재이며 따라서 하나님은 그가 스스로를 계시해 주시는 만큼만 인 식될 수 있다는 성서의 주장을 되풀이하여 지적함으로써 하나님을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관념으로부터 구해내려고 노력했다. 신의 초월성이라는 관념은 바르트 신학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확실하게 밝혀두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바르트에게서의 초월이란 공간적 개념이 아니다.

 

하나님이 "전적인 타자"(derganz Andere)라는 말은 하나님이 타계적 존재라든가 이 세상과 역사 밖의 어떤 곳에 존재한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은 누구신가, 그를 어디서 발견할 수 있는가, 그와의 관계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등의 온갖 인간적 노력으로부터 전 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설정한 거룩한 장소나 거룩한 시간으로부터 자유 롭다. 하나님은 형이상학적인 사색, 사변에 의해 포착되지 않는다.

 

그는 자연신학, 곧 독자적인 인간의 사고에 의해 도달하고자 하는 하나님 인식에의 노력에 포착되지 않는다. 바르트는 우리가 하나님 에 관하여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여하한 경우에도 인간은 하나님 을 알 수 없다는 사실 하난 뿐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 자신이 선택하는 시간과 장소와 방식을 통해 인간에게 접근한다. 하나님은 그가 원하는 때와 원하는 방식으로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 하신다.

 

다시 말하면 초월이란 하나님은 그를 파악하고 알려하고 만나려하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 계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초월 은 공간적 초월이 아니라 존재론적 초월이시다.

 

(2) 계 시 초월과 계시는 상호관련이 있는 개념이다. 초월은 인간이 하나님을 인식하는 방식, 또 인간이 종교와 도덕과 경건과 문화 속에 표현한 하나님에 관한 관념들이 실은 모두 우상숭배라는 점을 명백히 가르 쳐 준다. 그런데 인간은 게시에 의해서만, 즉 하나님 스스로 당신 이 누구시고, 당신에게 이르는 길이 무엇인가를 말씀해 주실 때만 인간은 그 왜곡된 현실로부터 구원될 수 있다. 결국 이렇게 하여 인간은 계시를 필요로 하게 된다.

 

하나님이 그에 대한 인간의 인식 능력을 초월하여 계신다는 것은 곧 하나님 스스로가 자기를 계시하 지 않는 한 인간들로서는 도무지 하나님을 알 길이 없다는 뜻 이외 에 다른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어떤 관계가 존재하려 면 초월은 반드시 계시를 필요로 하게 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 도가 하나님의 계시임을, 인간에게 준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하나님의 계시가 인간에게 받아들여지게 되면 인 간의 모든 자기 의존성, 자력구원에 대한 신념이 포기되고, 인간은 결코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깨달아지게 된다는 것이 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인 그리스도 안에서만 인간과 만 나고 인간을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2. 두번째 단계 (기독교 교의학, 교회 교의학 시대) 1920년 중반에 이르러 바르트는 자신이 아직도 하나님의 말씀을 자 기 사고의 유일한 근원과 기준으로 삼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 닫는다. 이때까지도 자신이 어떤 철학적 사고형식들, 특히 키에르 케고르의 실존주의를 하나님의 말씀의 설명과 해석을 위한 도구로 크게 이용해 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자, 이런 자각과 함께 1932 년 그의 유명한 교회 교의학 제 1권이 출간되는데 이 저작은 바르 트가 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하기 위해 지금가지 알게 모르게 의존해 온 모든 인간적 도구들로부터의 단호한 결별을 상징하는 기념비적 작품이다. 이때부터 바르트의 사고는 오로지 하나님 자신의 말씀에 담겨있는 계시,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해명에만 관심을 갖기로 노 력하게 된다. 이 당시의 바르트는 하나님 말씀의 해명을 위한 수단 으로서 어떠한 철학적, 문화적 또는 인간학적 요소에도 의존하려 하지 않는다.

 

특히 실존주의가 냉혹하게 거부된다. 까닭은 실존주 의란 그리스도교에 대한 자유주의 신학의 인간학적 접근법의 또 다 른 한 형식이라고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오로지 신앙인 식만으로 작업하는 일이 바르트의 신학방법론의 전부가 되었다. 즉 바르트는 신학을 그가 신앙으로 받아들인 전제, 곧 하나님이 그리 스도 안에서 인간에게 말씀하셨다는 대 전제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자기계시를 말씀에 대한 신앙적 순종 가운데서 해 명하는 것"을 자신의 최대의 과제로 삼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 리에 사로잡힌 신앙은 반드시 그 진리를 이해 할 수 있는 길을 찾 게 되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그리스도교 계시가 참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라는 변호는 불필요하다고 보았다. 하나님의 계시는 스스로 진리요 참이 라는 사실을 증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제1권 이후에 계속 출간된 전 14권의 그의 교회 교의학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앙 적 해명이라는 전제에 철저하게 의존하여 저작된 조직신학 체계이 다. 그러면 교회 교의학 전반을 살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제 2기에 나타나는 바르트의 사고의 근본구조 가운데서 핵심을 이루는 개념 몇 가지를 정리해 보고 마지막으로는 바르트 신학의 윤리적 측면을 잠시 살핀 다음 결론을 맺도록 하겠다.

 

(1) 신의 자기계시 제 1기에서는 '계시의 필요성'이라는 주제가 신의 초월성이라는 개 념과 함께 바르트 신학 체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었는데 제2기 에서도 역시 '계시' 개념이 대단히 심각하게 취급된다. 계시의 의 미에 관한 바르트의 이해는 계시에 대한 정의로부터가 아니라 오히 려 계시의 구체적인 현실에서부터 출발한다. 여기에서 계시의 구체 적 현실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역사에 개입한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나님은 행동하심으로 계시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 구 체적인 계시 행위는 인간과 더불어서도 아니고,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도 아니다. 그 주도권은 전적으로 하나님 에게 있다. 하나님은 인간과 만나는 시간과 장소와 환경을 스스로 결정하신다. 이처럼 계시에 대한 바르트의 첫번째 명제는 '신의 주 권과 자유'이다. 하나님이 당신의 주권을 일방적으로 행사하지 않는 한 인간이 하나 님을 알 도리는 없다.

 

계시란 하나님 자신의 결정에만 전적으로 의 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2기에서의 바르트는 이렇게 계시에서의 신의 역할의 절대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그 계시에 대해 응답해야 하는 인간의 상대적 역할도 잊지 않고 언급한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에 직면하여 책임적인 자유 속에서 응답해야 하는 것은 역시 인간이다.

 

다음으로 바르트는 계시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이 경우도 역시 인간 의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의 본질을 탐색한다. 계시란 인간 이 지적으로 동의해야 할 하나님에 대한 어떤 관념들이 아니다. 오 히려 하나님은 행위로서 자신을 계시 하신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 시는 말로된 것이 아니라 사건으로 된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누 구신지를 인간에게 보여주는 데 관심이 있지 자신에 대한 명제들이 나 사변들을 전달하는데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의 본성을 계시 하시지는 않는다. 단지 인간을 위해 취하는 행동 을 자신으로 계시하실 뿐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의 객 관적인 사실일 뿐만 아니라, 그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라고 했을 때는 유일하다고도 말 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자신 을 확연하게 보여준 하나뿐인 계시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삶은 역사 안에서 이루어진 일련의 객관적인 사건들이다. 그런데 바르트 의 관심의 배반은 바로 이 사건들의 함축적 의미를 탐구하는데 집 중되고 있다.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은 언제나 하나님이 스스로 를 나타내신 일차적 계시, 원색적 계시, 아니 유일한 계시로 존재 한다.

 

그러나 계시란 언제나 최종적 의미에서는 주관적이다. 그것은 하나 님이 성령의 활동을 통하여 인간을 신앙의 자유로운 결단에 이르게 하기 전까지는 자신을 진정으로 계시한 것이 못된다는 점에서 그렇 다. 이제 바르트는 계시를 다루면서 마지막으로 신의 주체에 대해 강조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사건들 속에서 언제나 절 대적 중요성을 차지하는 것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다. 그럼에도 문 제는 하나님이 자신을 대상으로 계시하시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 는 자신을 객체로서가 아니라 주체로 계시 하신다. 인격으로 계시 하신다.

 

그는 자신을 주시고자 하지 자신에 대한 지식을 주시고자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계시에서 중요한 것은 계시되는 것이 아니 라 인간과의 모든 만남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시며, 현존하시는 하 나님이다. 계시란 하나님이 인간을 심판하시고, 용서하시고, 구원하신다는 사 실을 가리켜주는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스스로가 인간을 심 판하시는 분으로, 인간을 용서하시는 분으로, 인간을 구원하시는 분으로 계시 가운데 현존하시는 사건이다.

 

그러므로 엄밀하게 말하 면 신의 계시구조에는 객체가 없다. 스스로를 계시하는 주체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을 두고 소위 신의 '자기 계시'라고 한다. 2. 예수 그리스도 =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교 계시의 본질적인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 의 말씀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이 자 신을 나타내신 유일한 계시가 담겨져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 을 알려고 하는 사람은 예수를 알아야 한다. 이렇게 볼 때 바르트 는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의 관점을 떠나서는 이해하려 하지 않는 다.

 

까닭은 그리스도의 존재와 행동이 곧 계시며, 따라서 인간은 그리스도 안에서와 그리스도를 통해서가 아니면 하나님에 대해 아 무것도 알 수 가 없기 때문이다. 바르트의 초기 사상(특히 로마서 주석 2판)에 대한 가장 격렬한 비판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타자 성과 초월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하나님과 인간간의 어떠한 관계의 여지도 남겨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하나 님이 인간과 가깝다는 사실을 강조하는데 반해 바르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엄청난 분리를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을 바르트는 우선 인정한다.

 

그리고 자기가 특히 신의 초월성을 강변 했던 것은 자유주의 신학이 하나님에게서 일체의 타자성을 빼앗아 버리고, 하나님을 거의 인간의 경험과 문화 속에 전적으로 내재한 분으로 만들어 버린데 대한 반발 때문이었다고 한다. "복음주의 신학은 그 노선의 전체 면에 있어서 분명히 종교적인 것 이 되고, 인간 중심적이 되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인본주의적인 것 이 되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문의 여지가 없다. 여기서 바로 인간은 하나님을 희생시킨 대가로 위대하게 된 것이다"(하나 님의 인간성). 바르트는 하나님이 인간과는 전적으로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충분 히 강조했다고 느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인간성", 인간을 향하 시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게 관심을 돌렸다. 그리고 그의 초기의 관점이 일방적이었음을 스 스로 시인하면서 후기에 와서는 자신의 사상의 균형을 회복시키고 자 한다. 하나님은 전적 타자이시다.

 

그러나 그는 인간과 함께 있 는 길을 택하셨다. 하나님은 인간 및 세계와 다른 분이심이 사실이 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인간과 그의 세계를 긍정하 신다. 하나님은 초월자이시면서도 그 자신의 선택에 의해 인간의 세계에 근본적으로 현존하신다. 바르트에게서의 하나님의 말씀은 계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선행적인 개념적 정의를 허용하지 않는 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격과 마주침으 로써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된다. 여기서 바로 두 인격 간의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 진다.

 

그리고 그 만남 가운데서 하나님 의 말씀(예수 그리스도)은 자신을 계시하고, 그럼으로써 하나님이 누구신지와 그가 자유롭게 선택하신 인간과의 관계의 본질이 무엇 인가를 계시하신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말을 삼중적 의미로 사용한다. 일차 적으로는 예수의 인격을 말하며, 이차적으로는 성서의 증언, 그 다 음은 교회의 선포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 삼자는 모두 그것 이 인간에게 전달되고 인간으로부터 응답되어질 때 비로소 말씀이 된다. 여기에 덧붙여서 한가지 지적할 사항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 간이 소화하는 일이란 한꺼번에 완전히 이루어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느 한 시점에 주어져서 그 순간 동의를 요구하는 어떤 명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 하여 하나님이 인간과 관계하시는 일련의 행위들이기 때문이다.

 

따 라서 문제는 한 순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느냐가 아니고, 선 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계속 거기에 응답하는 과정 속에 있 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 안에서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하 심에는 세가지 요소가 있다. 즉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그 분 안에 서만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이르고 인간이 하나님에게 이르는 분인 예수가 있다. 예수의 이야기 곧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의 이야기 는 하나님을 말하되 인간을 죄인으로 아시는 분으로, 그러나 그리 스도 안에서 인간을 심판하시고, 벌하시고 그런 후에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분으로 얘기한다. 이렇듯 예수의 삶이 말하는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예수는 인간의 정체에 관해서도 죄인이면서 동시에 용서함을 받은 자로, 교만 하나 동시에 순종에 로 부름 받은 자로, 정죄 당했으나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의 선택받은 자로, 타락하였으나 동시에 하나님과 더불어 영생하도 록 의도된 자로 계시한다. 요컨대 인간은 피조물이고, 죄인임에도 은총으로 구원함을 받은 존재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그가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인간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 가장 권위 있게 말한다.

 

예수 그리스 도는 양자의 본성을 같이 나누고 있기 때문에 그의 말과 존재와 행 동 속에는 그 양자의 본질이 반영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종이 되어 인간의 천한 자리에까지 자신을 낮추신 하나님이다. 또한 예 수 그리스도는 '주로서 종'이며, 하나님이 되신 인간이다. 예수 그 리스도는 참인간이다. 예수에 비할 때 다른 모든 인간들은 인간됨 의 수준에 못 미친다. 예수 그리스도는 또한 진실하신 하나님이시 다.

 

그 안에서 신의 모든 경륜이 드러났다. 신의 속성이 드러났고, 참다운 하나님의 모습, 곧 인간을 위하신 하나님, 인간과 함께 하 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알려졌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계시하면 서 동시에 인간이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결정하시는 분이시 다.

 

조성노 박사 (현대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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