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구원! (요 3:16-18)
성경 주석자들은 이 구절을 가리켜서 '복음서 중의 복음서 또는 작은 복음서'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신. 구약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복음의 진수'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여기 보면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과 구원' 이것은 기독교의 핵심이며 복음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믿음을 말할 때는 몇 가지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①관계성입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여기서 '저'는 물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과 관계되지 않고는 구원이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구원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예수님입니다. /아멘!/ 예수님과 관련성이 없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마치 태중의 어린 아이가 어머니의 탯줄과 연결되어 있을 때만 생명을 유지하고 영양을 공급받게 되는 이치와 같습니다. 태아가 탯줄에서 떨어지면 끝장입니다.
피아노를 보십시오. 피아노의 생명은 줄입니다. 피아노가 겉에서 보면 화려하고 윤기가 나고 빛이 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 속에 들어 있는 줄입니다. 그 피아노가 아무리 값이 비싸고 화려해도 모든 줄이 붙어 있어야 할 곳에 붙어 있어야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고 값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관계성입니다.
성경은 이 관계성을 말할 때 포도나무의 비유를 말씀합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아무리 극상품이라고 할지라도 줄기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저 잘났다고 줄기에서 떨어져 나가면 그것은 곧 죽음입니다.
시골에서 고구마를 캘 때가 되면 땅속에서 고구마가 커서 땅이 갈라지고 흙이 수북하게 올라옵니다. 그때 갈라진 곳을 파면 큰 고구마가 튀어나옵니다. 그때 줄기를 잡고 쑥 뽑으면 여러 개의 고구마가 한꺼번에 주렁주렁 매달려서 뽑혀 나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모든 고구마들이 줄기에 단단히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줄기를 잡아당기니까 여러 고구마들이 함께 뽑혀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관계성입니다.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모두 예수의 생명 속에 연합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 우리가 있고, 우리가 있는 곳에 예수님이 함께 계신 것입니다. 요15: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할/
우리가 주 안에 있으면 주님이 누리는 축복을 우리도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그가 부활했으니 우리도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가 영광을 받으셨으니 우리도 영광을 받을 것이고, 그가 승리했으니 우리도 승리할 것이고, 그가 세상을 이기었으니 우리도 세상에서 승리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두 주님께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골3:3절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이것이 모두 관계성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말씀입니다.
②아는 일입니다.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누구든지 그를 믿게 해서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면 그 같은 예수를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우선 알아야 합니다. 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여기 '안다'는 말은 머리로 기억한다는 의미보다는 이 말은 체험한다는 말입니다.
요6:68절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베드로의 이 고백은 곧 체험에서 나오는 고백입니다. 이 같은 체험이 있으니까 그는 예수를 떠나지 못하고 끝내 거꾸로 십자가를 지는 순교까지 한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과학의 근거는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우주선에 사람을 태워서 달 나라로 쏘아 올립니다. 그때 우주선에 태워져 달나라로 가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별로 긴장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우주선이 다시 지구로 무사히 돌아올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학조차도 믿음에 기초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 같은 이치는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비행기를 타고 공중에 높이 올라가서도 편안히 잠을 잡니다. 왜냐하면 이 비행기가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요1:12절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어떻게 믿습니까? 알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고로 믿음은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무지한 사람입니다. 성경은 무지가 죄라고 했습니다.
모르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길을 걸어가도 느낌이 갈 때 다르고 올 때 다릅니다. 갈 때는 모르는 길을 가게 되니까 더 멀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올 때는 아는 길을 오기 때문에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도 알고 살아가는 것과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이렇게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식의 근본이 되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곧 나를 아는 길이고, 세상을 아는 길이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아는 길입니다. 특히 나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문제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힘써 여호와를 알라'고 했습니다. 아는 일이 곧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③영접하는 일입니다. 요1: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믿음은 알고, 인식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알고 인식한 바를 마음 깊이 영접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나의 주님으로 고백해야 하고, 나의 주님으로 체험되어야 합니다. /믿/
우리가 이렇게 예수님을 알고, 믿고, 체험을 해서 영접을 하게 되면 맨 먼저 변화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목적의 변화입니다. 나 중심에서 예수 중심으로 목적이 변화됩니다. 또 소속이 바뀌는 변화가 오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의 힘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어도 목적은 그대로 있고 방법만 바뀌는 분들이 있습니다. 가령 무당을 찾아다니며 복을 달라고 하던 대로 이곳저곳을 헤매다가 마침내 교회로 들어와서 그 목적 그대로 복을 달라고 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목적은 그냥 있고 방법만 바뀐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예수를 알고, 믿고, 영접을 했으면 분명히 목적도 바꿔져야 합니다. 그리고 복의 개념도 바꿔져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복으로 알고 살았지만 목적이 변하면 이 세상에서 진정한 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야 그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의 삶 전체를 위탁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삶뿐만 아니라 나의 인생도, 심지어는 나의 영혼까지도 그에게 위탁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게 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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