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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이렇게 살자! (엡 5:15-21)

by 【고동엽】 2022. 3. 16.

새해에는 이렇게 살자! (엡 5:15-21)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시간의 제약을 받습니다. 사람은 시간 속에서 태어나 시간 속에서 살다가 마침내는 시간 속에서 어느 날 죽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모두 각자가 다르게 하나님으로부터 시간을 배당 받아서 태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50년, 어떤 사람은 70년의 시간을 배당 받아서 태어납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는 90년이 넘는 시간을 배정 받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은 그 받아온 시간만큼 세상에서 살고 나면 그 다음에는 모두 죽습니다.

  히9:27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사람들은 죽고 나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데 그때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너는 내가 준 시간을 가지고 세상에서 어떻게 살고 왔느냐?' 분명하게 물으십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시간을 받은 청지기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그 시간들을 잘 관리하고 소중하게 살아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①시간을 아끼며 살자! (15-16)

  세월 앞에 장사가 없습니다. 세월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고 말 것입니다. 세월은 우리가 그렇게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들을 다 모래성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서유석이란 가수는 '가는 세월 그 누가 막을 수가 있나요' 노래했습니다. 정말 이 노랫말대로 가는 세월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힘이 좋은 항우장사도 안 되고, 천하를 호령하는 권력자도 안 되고, 세상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돈 가지고도 안 되는 것입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세월을 헛되게 보내지 말고 아껴서 믿음의 생활을 잘하라'는 것입니다. 낭비는 왜 생깁니까? 아직 많이 남았다고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시간이 많으면 낭비되는 시간도 많습니다.

  여러분, 내 인생의 시간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다는 생각을 하고 산다면 그 시간들을 그냥 허비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무료하게 낮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아침 늦게까지 늦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하루해를 그냥 목적 없이 보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시간을 아끼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시간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관리할 책임도 주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시간을 선하게 관리하지 못하고 악한데 낭비할 때가 더 많습니다. 칼뱅은 '마귀에게 빼앗긴 시간을 되찾아내라'는 뜻으로 본문을 해석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하나님을 위하여 쓸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을 위하여 쓸 수도 있습니다. 대게 하나님을 위하여 시간을 쓰자고 하면 핑계도 많고 이유도 많지만 내 자신을 위하여 시간을 쓰는 데는 관대하고 말이 없습니다. 향락을 위해 쓰는 시간도 많지만 하나님을 위해 쓰는 시간은 없습니다. 바로 그러한 잘못된 시간들을 고치라는 것이 본문의 교훈입니다.

  ▶세월을 아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⑴시간은 생명같이 귀중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돈이다, 시간은 금이다'는 말이 있지만 실제는 시간은 생명과 같이 귀중합니다. 사람은 시간 속에서 태어나서 시간 속에서 살다가 시간과 더불어 죽습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생명처럼 귀히 여기고 아껴서 헛되이 낭비 말아야 합니다. /할/

  ⑵일할 시간이 얼마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지혜 있는 자가 되어 세월을 아끼고,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남은 때가 점점 단축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⑶세월을 아껴야 할 이유가 또 있습니다. '때가 악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의 현실과 여건이 얼마든지 세월을 허송하고 죄 속에 살아갈 수 있도록 환경들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악한 일에 젊음을 보내지 말고 선한 일에, 하나님의 일에 세월을 아끼라고 가르칩니다.

 

  ②성령 충만으로 무장하자! (18)

  먼저 바울은 '술 취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당시 에베소라는 도시는 번화한 도시로, 방탕과 향락의 도시였습니다. 언제나 방탕과 향락에는 술이 빠질 수가 없습니다. 또 에베소는 술 신인 '바커스' 신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술 취한 체 거리에서 비틀거리는 것을 일종의 자랑으로 삼기도 했다고 합니다. 본문의 술 취하지 말라는 말은 술 마시지 말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술 취함은 방탕한 일이요, 아주 해로운 일이요 세상 쾌락문화이기 때문입니다. 술은 신체에 해롭습니다. 간이 나빠집니다. 술은 정신적인 타락과 지적 감퇴를 가져옵니다. 중국 '이 태백'이가 술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다가 마지막에는 물에 비친 달을 잡는다고 물에 뛰어 들어갔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본문에서 '성령과 술'을 비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술을 마시면 취합니다. 술의 맛은 마시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취하는데 있습니다. 사람이 술에 취하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납니까? 내 정신과 의지와 감정이 모두 술에 지배를 받게 됩니다. 이것이 술의 힘이고 위력입니다.

  사람이 술에 취하게 되면 술은 내 것을 모두 빼앗아 갑니다. 그때 나는 술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조종을 받게 됩니다. 그때는 내 정신이 내 것이 아니고 내 의지가 내 것이 아닙니다. 나의 의지는 의미 술에게 장악돼 버렸습니다. 그래서 점잖던 분도 실수를 하게 되고 말이 많아지게 되고 혼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왜 그런지 아시지요? 술에 충만해져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술 취하지 말고 성령에 취하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성령에 감동되어서 충만하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하면 술에 취한 것과 똑 같은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술에 취한 사람이 술의 지배를 받듯이 성령이 충만하게 되면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그때는 내 생각이 내 생각이 아닙니다. 나의 모든 것을 성령이 주관하여 나를 완전히 성령의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성령의 뜻대로 살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실 맨 정신의 인간이 의지나 중심은 아주 보잘것없습니다. 연약하고 나약하고 무능하고 그래서 실수하고 조금만 어려운 문제에 부딪쳐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조그만 일에 울고, 웃고, 좋아하고, 슬퍼하고, 또 조그만 이해타산 앞에서 다투고 갈등하고 얼굴 붉히고 소화도 못하고 안절부절 합니다.

  왜 이런 일들이 자꾸만 내 속에서 일어나는가 하면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성령의 능력을 덧입지 못하고 순전히 보잘것없는 내 힘만 가지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태로는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효과적으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 충만 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충만의 개념은 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지극히 정상적인 관계'임을 의미합니다. 이때가 가장 힘이 있을 때입니다. 성경에 모든 인물들이 모두 이 성령의 배경 때문에 한 시대의 인물들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의 사건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 충만은 한번으로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계속 받아야 하는 사건입니다. 쉽게 예를 들자면 옥상에 있는 물탱크와 같습니다. 물탱크는 쓰면 즉시 채워집니다. 성령 충만도 그런 이치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할/

 

  ③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며 사는 한해가 되자! (19-20)

  여기 '시'는 보통 구약의 시편을 가리키고, '찬미'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지은 즉 찬송가입니다. '신령한 노래'는 일반적인 복음성가를 말합니다. 찬송은 상향선 이고, 복음성가는 하향선 입니다. 찬송은 주께로 온 것이기에 하늘로 올라가고 복음송가는 내려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전체가 찬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천국도 찬양이 가득한 곳입니다. 우리는 예배시간에 기도하고, 찬송하고, 설교를 듣고, 헌금을 하고, 축도를 받습니다. 이 5가지 요소가 기본입니다. 그 중에 찬송은 예배의 분위기를 압도합니다.

  '너희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찬미와 신령한 노래는 입으로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가슴으로 불러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에서 우려 나오는 찬미를 부르라는 것입니다.

  고전14:15절(하)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 했으며, 히13:15절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 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했습니다.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입니다. 찬송은 기쁨과 평안과 능력과 신유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렇습니다. 술 취한 사람들에게도 노래가 있고, 성령 충만히 받은 사람에게도 노래가 있습니다. 술 취한 사람도 배짱이 생기고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도 배짱이 생깁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사람이 부르는 노래나 배짱은 술 취한 사람들이 부르는 것과는 비교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에서 신령한 노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신령한 노래란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입니다. 그래서 신령한 노래는 서로 화답하며 마음으로 주께 노래해야 한다고 19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서로 화답하며'란 '서로 노래하며' 이런 뜻으로 화답은 대화와 조화를 의미합니다. 우리시대는 대화와 조화와 화답이 모자랍니다. 혼자 부르는 노래를 솔로라고 말합니다. 여럿이 부르는 노래를 합창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소리와 소리의 조화를 화음이라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믿음의 사람들도 서로 화답하며 조화를 잘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조화를 잘 이루며 사는 참 행복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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