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c 최고의 신학자 칼 바르트의 신학은 정복하기 힘든 높은 산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은 저술의 방대함이 접근을 쉽게 허용하지 않으며, 신학의 변화와 폭이 넓고 사상의 심오함과 치밀한 논리가 사람을 압도한다. 그의 논리는 보통 사람이 좇아가는 것을 용이하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칼 바르트의 신학을 경원시 하기만은 어려운 것은 이미 바르트의 신학이 막강한 영향력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바르트의 신학을 받아들이고 아니고를 떠나서도 바르트의 신학을 알고 이해하는 일이 신학도들에게 요청된다고 본다.
I. 칼 바르트의 신학의 성격
본 논문은 바르트의 교회교의학을 중심하여 바르트의 창조론을 이해하려고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신학의 성격의 대략이라도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된다. 스위스 산업마을 자펜빌의 목사인 30대의 초의 바르트가 1919년에 출판한 [로마서]는 현대신학의 조류에 신학의 혁명을 일으켰다. 바르트의 [로마서]를 기폭제로 시작한 위기신학은 19세기의 인본주의 신학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계시를 신학의 주요한 위치로 되돌려 놓았다. 불트만이 실존(Existenz)속에서, 틸리히는 존재(Sein)속에서 계시를 해명하고자 했다면, 바르트는 원역사(Urgeschichte)속에서 해명하고자 했다.
바르트는 19세기의 문화기독교주의의 신관을 비판하고, 인간의 교만한 신격화를 엄격히 거부하고, 당시의 사화민주주의와 하나님나라의 동일시를 부인하였다. [로마서] 1판에서 바르트는 신의 능력에 의하지 않고는 인간은 새로운 구속상태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바르트는 실재주의와 유기주의를 제시하였는데, 전자는 하나님 나라의 객관적 실재성과 그리스도안에서의 그의 통치를 말하고 후자는 신의 歷史가 변증법적 종합, 곧 세계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종합 속에서 성장하는 사실을 말한다.
그런데, 변증법적인 이라는 용어는 바르트의 신학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바르트의 주석을 변증법적이라고 하는데, 변증법적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진술이 진술대로 있는 것이 아니고 동일하게 역 진술이 가능한 것을 말한다. 바르트의 이런 방법은 19세기의 자유주의자들이 하나님의 내재성을 강조하는데 비해 바르트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하여 하나님을 절대타자로 인식한데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무한하신 절대자가 유한세계에 들어오시는 것이 성육신인데, 어떻게 유한이 무한을 붙들고 있을 수 있는가? 결국, 변증법적인 이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이런 그의 사상은 그의 계시관에서도 드러난다. 바르트는 성경은 과거 계시사건의 기록으로만 본다. 과거 계시사건의 기록은 그 사건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인간의 말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때 성경이 하나님 말씀으로 효력을 발생한다는 것이다. 바르트의 생각으로는 불완전하고 유한한 인간이 기록한 성경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겨지지 않았든 것이다. 바르트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로 인정하지 않고 그 안에 오류도 있고 고대 동방 종교들의 신화도 많이 들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하나님 말씀이 된다고 하니 그는 현대주의자이다. 바르트는 자유주의자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요 계시의 문서라고 마음대로 비평적 방법으로 쪼개고 나누고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하나님을, 계시를, 전적인 타자로 하여 하나님 말씀을 성경책하고 일치시키는 데에서 떠나 분리시켰다. 그런 의미로는 말씀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려고 했어도 결국 계시가 성경으로 형태화 하여 나타나지 못하게 막는다. 만약에 계시와 성경을 일치하지 않고 분리하면 성경은 인간의 심리의 결정으로 끝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바르트도 근세주의자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고 본다.
20 세기의 철학과 신학은 실망과 신앙의 이상한 혼합물이며, 또한 하나님을 등지는 것과 돌아오는 것의 이상한 혼합물이다. 현대인은 진리를 막는 장님인 반면, “하나님을 혹 더듬어 발견하려는”(행17: 27)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역할도 한다. 이상하게도 철학은 가끔 신학보다 더욱 열심히 하나님을 발견하며, 신학은 철학보다도 힘차게 진리를 막는다고 말해지는데, 바르트의 신학도 이런 분위기를 맴돌고 있다고 보여진다. 바르트는 자유주의를 거부하였지만, 현대인들에게 이성 안에서 합리적으로 성경을 이해시키려고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본다.
II. 창조주에 대한 신앙
바르트는 그의 교회교의학 3권에서 창조론을 전개하고 있다. 40절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 41절은 창조와 언약, 42절은 창조주 하나님의 긍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42절 까지의 내용으로 칼 바르트의 창조론을 이해하려고 안다. 우선, 41절의 내용은 무엇인가?
바르트는 그의 창조론을 전개하면서,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통찰은 기독교의 다른 가르침처럼 하나님의 자기계시에 대한 수용과 응답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창조주와 피조물의 통일에 관한 인식 속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중재된 현재의 삶 속에서, 권한아래서 그리고 피조물에 대한 창조주의 선을 경험하는데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창조는 신앙의 조항, 다른 말로 신앙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바르트는 먼저 사도신경의 첫번째 조항인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습니다‘라는 신앙고백의 내용으로 창조를 설명하고 있다. 이 내용은 인간에게 생래적인 것도 아니고, 지각이나 이성에 의해 접근되거나 습득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전적으로 신앙 안에서만 실행되는, 즉 신적인 자기계시의 수용과 응답 속에서만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이러한 주장을 입증하기 위하여, 히11;3절”믿음으로 모든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아나니“을 인용한다. 그러나, 이 성경 구절의 믿음이란 뉘앙스와 바르트의 신앙의 뉘앙스는 조금 다른 것으로 생각된다. 전자는 이성을 초월하는 믿음이라면 후자는 이성 안에서의 믿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바르트는 창조는 성경의 다른 이적들처럼 Historie 가 아니고 Geschichte라고 보는데, 이것은 창조가 일반적인 의미의 역사가 아니고 전역사적, 비역사적이라는 것이다. 전자처럼 이세상의 시공간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계시대로 믿는, 신앙 고백 안에서만 유효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다른 창조교리의 내용은 비밀(Geheimnis), 다른 말로 하면 신비라는 것이다. 그런 내용과 영역에는 성경대로, 신앙고백대로 신앙하는 길만이 창조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 왜 창조론이 신앙론이며 신앙의 조항일 수 밖에 없다고 바르트는 설명하는가?
1. 창조론에 따르면 하나님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의지와 행위에 의해 그 분과는 구별되는 다른 것이 존재한다. 이 명제는 부정적으로는 하나님은 유일하게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고, 긍정적으로는 하나님 앞에, 곁에,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자기 존재를 가지는 다른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부정적 측면과 긍정적 측면가운데 어떤 측면도 증명되거나 논쟁될 수 없다. 언제나 논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양측면 모두 과학적 입증같은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신적인 자기증거(성경의 창조 신앙)를 믿지 않는 한 반박 가능한 가설에 불과하다.
2. 창조론에 다르면 피조물이 홀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의지와 행위에 의해서만 존재한다. 다른 말로 피조물의 전 영역이 하나님으로부터 존재하며, 그를 통하여, 그 자신의 존재로부터 구별된 실재로서 원하여지고, 설정되어졌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도 부정적인 것과 적극적인 것을 포함하고 있다. 부정적으로는 이 세계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더구나 세계는 신이 아니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홀로 계실 수 있으나, 세계는 그럴 수 없다.
세계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하나님에 의해 존재케 되지 않았다면 결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세계는 자기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께서 그것을 원하시고 창조하셨기 때문에 존재하게 된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본다면, 바르트가 물질창조를 완전 불신한다는 주장을 그대로 받기는 어려운 것이 아닐까? 긍정적으로 세계 앞에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강한 의미에서 세계 앞에 계시는 분으로서, 세계의 절대적인 근원이시다. 하나님은 세계의 의미이시며, 그것을 통치하시는 능력이시며, 그것의 주님이시다. 그러나 창조 교리의 이러한 측면도 자명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한 신앙으로 응답하는 방식이 나이라면 그러한 명제나 주장은 언제든지 논박하고 거부할 수 있는 가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바르트의 변증법적인 사고, 즉 긍정적인 진술을 했다가도 역으로 진술이 가능하다는 논리가 있는 것이다. 신앙과 불신앙의 경계를 넘나든다고 해야할 까?
3. 우리는 이러한 주장들을 하나님의 자기 증언인 -이 증언은 그리스도와 그에 대한 신앙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증언하고 있는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성경의 직접적인 응답으로서만 할 수 있다. 하나님을 하늘과 땅의 창조주라 칭하는 첫 번째 항은 명백하고 명백하지 않은 요소들 속에서 성경의 언어사용으로 되돌아간다. 창조 개념은 또한 이런 언어 사용을 통하여 미리 결정되어 진다. 우리는 그러한 내용을 임의적으로 채우면 안되고, 오로지 신구약의, 약속과 성취의 연관성 속에 있는 성경적 증언에 부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창조와 창조가 담고 있는 내용들은 성경을 떠나서는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창조는 별개의 떨어진 사건이 아니라 약속과 성취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오로지 신앙 안에서 수납되고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사도신경의 첫항의 내용을 면밀하게 분석한다.
1) 하나님이란 주격개념이다. 이 하나님은 합법적으로든 불법적으로든 요청되거나 드러났거나 혹은 성취된 세계 근거개념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그러한 세계 개념은 인간에 의해 설정되는 한 그것은 피조물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적인 정신 작업의 소산 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늘과 땅을 지으신 창조주와 동일시 될 수 없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다. 아리스티데스(Aristides)가 말하는 일반적인 신이 아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그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출생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정립하신다. 영원한 아버지로서 내부적으로 그의 아들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규정하시고 또한 창조주로서 규정하시는 분이다. 여기에서 바르트의 신관의 일부가 드러난다. 바르트은 전술한 바와 같이 19세기의 자유주의 자들의 신학을 거부했는데, 자유주의자들의 신관은 내재주의적 이었다. 바르트는 그런 것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개념, 세계 정신 같은 것은 성경의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2) 창조주라는 술어이다. 이 술어는 그 자체 속에 하나의 사건, 즉 성취된 행위를 포함하고 있다. 창조주는 창조주와 피조물간의 저변에 놓여 있는 자유로운 은혜의 행위를 통하여, 하늘과 땅의 시작을 완성하셨다. 또한 이러한 시작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은 지속되고 있으며, 창조주는 여전히 창조주로 머물러 있으며 이신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창조에서 뒤로 물러나 계신 분이 아니라, 창조주로서 현존하고 계신다. 사도신경의 1항이 고백하는 바는 역사적이기 때문에, 무시간적인 관계를 상정하는 세계 근거, 최고 혹은 제일의 원인, 혹은 존재원리 등으로 대체하거나 곡해해서는 안된다.
3) 창조주의 행위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즉 모든 완전성을 가지시고 전적으로 자족하시고, 내적인 삶에 있어서 영광스러우며 복스러우신 유일자이신 하나님이 홀로 머물기를 원치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는 그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그리고 그의 자유로운 사랑이외에는 어떤 내적인 강요에 의해서도 아니고, 그의 영광의 넘침의 행위 속에서 그 자신과는 구별되는 실재를 만드셨다. 따라서 피조물은 자신의 실존과 본질을 스스로 창출해 낼 수 없고, 오로지 하나님께로 선사 받은 것이다. 창조 행의의 시발점은 신적인 사랑의 자유로운 전능의 호의이다. 그리고 귀착점은 목적지는 이 신적인 호의에 의해서 선택되고, 조정되고, 또한 그것을 통하여 정초되고 규정되고 한계 지워진 비신적인 실재로서 그것의 실존과 본질이 하나님과 그의 창조 행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된 자로 그에게 속한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세상은 그의 우발적인 행위를 통하여 피조물의 위치를 유지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선물로 있을 것이며 또한 있을 것이다.
4)창조의 대상은 하늘과 땅이며 이 둘을 일치시키면서도 구분하신다. 또한 인간을 그 중심에 놓으신다. 천지라는 것은 성경의 전체적인 증언 속에서 하나님과 구별되는 실재의 총괄 개념이다. 하늘은 땅이 아니고 땅은 하늘이 아니다. 양자의 관계는 균등하거나 대칭적인 것이 아니다. 하늘과 땅은 이러한 상이점 속에서 하나의 전체를 형성한다. 양자는 하나님과 구별되는 실재의 전체이고, 하나님에 의해서 원해졌고 창조되어진 전체이다.
제 1 항의 신앙고백은 결코 종속적인 부문장이 아니고, 기독교 신앙고백의 하나의 독자적인 주문장이다. 우리는 하늘과 땅을 만드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1항의 내용들은 그것의 의미의 특수성안에서 2항과 3항의 고백들을 미리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
왜 창조에 대한 진술이 신앙의 조항이 되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세가지 근거 내지 이유를 바르트는 창조론이 하나님의 자기 증언을 받아들이고 그에게 응답하는 가운데 있게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4. 창조론과 계시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우리들은 어떻게 천지와 인간이 창조되었으며 그것이 실재이며 또한 하나님에 의해서 실재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바르트는 그것의 근거가 성경속에 있다고 말한다. 성경만이 우리의 인식과 우리의 신앙고백을 위한 확실한 근거를 제시해 주기 때문에, 성경이 말하는 진리 위에서 교회는 자신의 선포 내용을 근거 지을 수 있으며,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집을 안전하게 건축할 수 있다. 에밀 부루너 와는 달리 일반 은총을 거절하고 자신의 신학을 오로지 성경 위에 세운 이유가 여기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신학을 [신정통주의]라고 명명하고 있다. 그렇다고 바르트의 전체 신학이 철저히 성경적 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성경은 하나님이 자신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언을 한다는 점에서 진리이다. 성경의 모든 말씀들을 무오한 말씀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그것이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성령의 도구로서 아들을 통하여 아버지에 관한 지식을 전달해 준다. 전체 성경은 창조에 관하여, 창조주에 관하여 그리고 피조물에 관해서 말할 때에도 모형적으로, 예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말한다. 우리들이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의 일차적이고 궁극적인 대상이시라는 것이다.
성경의 내용의 모든 주변과 하나님에 의한 세계의 창조의 진리와 실재는 단지 이 중심으로부터 만 이해 될 수 있다. 여기서 바르트의 철저한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이 나타난다. 바르트는 하나님에 관해서 말할 때 언제나 그리스고 안에 있는 하나님을 말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구체적인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고 만일 그리스도를 떠나서 그리스도의 배후에 있는 하나님을 말한다면 추상적인 하나님을 말하는 된다는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의 과오은 특히 칼빈의 과오는 그리스도를 떠나서 그리스도의 배후에 있는 하나님 즉, 추상적인 하나님을 말 한데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비판이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바르트의 신관은 하나님의 계시의 현실성에만 치중하는 신관이다. 계시의 현실성에서만 알 수 있는 바르트의 하나님은 그의 계시 밖에서 인간과 아무런 관련성이 없는 초월적 신이라고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창조교리에 관하여도 이러한 중심점을 떠나서는 잘 이해될 수 없다. 이 중심점이란 이스라엘에 의하여 기다려졌으며, 약속에 따라서 실재로 나타나신 메시야, 교회의 주, 신약의 공동체의 머리요, 이사야 7장 14절에서는 임마누엘이라고 명명되신 분을 가르킨다. 그의 계시와 그에 대한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창조의 사실들에 관하여 하나의 참되고, 명백하고 그리고 확실한 지식을 제공해 준다. 바르트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안에서 인간에게 전적으로 잔신을 보여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리스도안에서 전적으로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수행된 하나님의 인간과의 하나됨이라는 계시된 사실로부터 우리가 알게 되는 단순한 사실은 하나님은 혼자가 아니시다 라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구별된 누군가가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리고 그와 더불어 행하시며, 그에게 그를 통하여 그가 자신을 계시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은 피조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하나님의 인간과의 하나됨이라는 계시된 사실로부터 우리들이 알게 되는 두 번째 사실은 인간 역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우리는 인간이 혼자가 아니며, 인간은 그 자체로서 절대적이지도 않고, 인간 역시 파트너가 있음을 안다. 사람은 본질은 그 자신에 의해서나 그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 인간의 인간 됨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이다.이 인간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이 그 자신과의 하나됨으로 수용하시고 취하셨다는 면에서 존재한다. 인간이 하나님을 이 하나됨 속에 있는 공존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하나됨이 필요치 않으나 인간은 전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 다른 실재는 하나님 앞에서 오로지 감사함으로 존재하게 된다. 감사는 여기서 피조물의 본질로서 계시된다.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와 창조와 관련하여 인식적 연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예수는 인간과 인식적 관련만 가진 것이 아니라, 존재의 근거도 가지신다. 왜냐하면 예수는 말씀이시고, 이 말씀에 의해 우리는 창조를 알며,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에 의해 창조하시고 말씀에 의해 피조물은 지탱하시고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이다.
바르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의 비밀을 푸는 열쇠이다.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가 믿는 것은 그와 더불어서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천지의 창조자이시다 라는 것을 보기 위하여 그리고 이해하기 위하여서이다.
바르트는 창조의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우리에게 오는 것이기 때문에 마땅히 이 지식은 신앙의 지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신앙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주인이 되신다는 사실에 대한 태도요, 결단이요, 인정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창조주의 현존에서의 삶이다. 즉 그 앞에서 행하는 삶이다. 이러한 신앙은 창조주의 현재 안에 있는 삶인 동시에 모든 사물과 관계 위에 군림하는 그 분의 권능을 경험하고 인정하는 삶이다. 이 권리는 예수께서 세상과의 화해에서 성취하신 권리이다.
결국, 바르트는 그의 창조론을 사도신경과 결부 시켜 해설하고 있는데, 사도신경은 기독자들이 믿는바의 내용이다. 창조는 계시에 대한 신앙,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화해의 성취에서라는 창을 통해서만 바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III.창조와 언약
바르트는 창세기 이야기에 대한 실마리가 창조와 언약의 관계에 있다고 믿는다. 창조는 언약을 이해 이루어졌고, 그 언약은 화해를 위해 체결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창조라는 개념보다 언약이라는 개념에서 그의 출발점을 취하고 있다. 즉 바르트의 신학에서 기본적인 눈제들 중 하나는 창조가 언약을 위해 이루어진다는 인식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창조 그 자체를 위해 발생하지 않았다. 그래서 창조-언약-타락이라는 전통적 순서는 언약- 창조-타락의 순서로 전환된다. 창조는 자기 피조물들을 향하는 신적 사랑이라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사랑하시는 자이므로 사랑의 대상을 만드셔야 했다. 창조는 하나님의 존재와 구분되며 그분의 사랑을 받을 또 하나의 실재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 피조물들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시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 대상, 즉 전제조건을 창조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는 언약을 위한 외적토대라고 할 수 있다. 창조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위한 사역으로 이해되며,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창조에서 자기의 사랑과 영광을 현시 하시기를 바라신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자신의 상대자로 창조하셨고, 세상을 인간의 거처로 창조하셨다. 이것을 보고서도 우리는 세상의 창조가 언약 체결을 위한 준비이며, 언약관계의 전개를 위한 무대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 되시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그 전에 바르트는 제 1항에서 “창조, 역사, 그리고 창조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역사적인 질문을 한다. 성경은 창조를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의 첫 번째 사역이라고 한다. 그러나 창조는 언약 -언약은 그 의도에서 창조보다 선행하며, 창조는 언약에 필요한 배경을 제공한다-의 역사 속에 일어난 다른 사역들 속에 있다. 바르트는 이러한 관련속에서 창조주 교리가 절재적 의존과 같은 개념에 대치된다면 기독교 신앙고백은 반드시 시들고 말 것이라고 주장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으로서 창조의 독특성은 창조를 계승한 언약적 은혜의 의도적 사역과 관련해서만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창조는 역사를 목표로 한다고 말한다. 창조주는 역사 안에서, 언약의 역사 안에서, 혹은 19세기 신학자들이 명명한대로 구속사 안에서 행동하시는 상위일체 하나님이시다. 역사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창조는 역사에 소속된다. 비록 끊임없이 진행되기는 하지만 창조는 때를 이루는 하나의 사건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창조 이야기는 무의미하지 않고, 또한 형이상학적으로나 과학적 우주론으로 계시된 것이 아니다. 창조 이야기들은 우리들에게 창조의 사건에 대해 말해 주는데, 창조를 뒤따르는 언약의 역사와 분리시켜서는 안된다. 바르트에 따르면 창조 이야기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전(前)역사(歷史)를 보여준다.
전역사로서 창조는 시간의 근거로서 시간속에서 발행한 하나의 역사적 현실이라고 규정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안에서 창조를 실행하심과 더불어 시간을 창조하셨다. 창도의 시간성은 구원사 시간성의 근거가 된다. 구원사 안에는 두 파트너가 있는데, 하나는 타락의 때인데, 이 때에는 혼돈이 극심하였고, 다른 하나는 은혜의 때인데, 이것은 참된 시간의 원형으로서 타락의 때와 더불어 진행된 창조의 참된 결과이다. 여기서 우리들은 바르트의 시간관에 대한 심원한 사고를 엿보게 된다.
창조는 실제로 일어났다. 그러나 창조는 다른 모든 사건들과 달리 피조계의 맥락에서 발생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는 다른 사건들처럼 기록될 수 도 연구될 수도 없다. 이러한 시각에서 창조는 비역사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왜냐하면 창조는 인간역사와 자연역사보다 앞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바르트의 변증법적인 내용, 즉 긍정했다가 부정하는 면을 보게 된다. 물론 바르트에게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래서 바르트는 성경의 창조 이야기들은 ‘saga'라고 부르는 것이 적당하다고 제안한다. 바르트의 saga란 시간과 공간 안에서 실제로 발생한 전(前)역사적 실재에 대한 직관적이고 시적인 기술이다.
율법, 시, 노래, 잠언 등과 같은 장르가 saga도 성격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나, 이 saga는 동화나 신화와 혼동되어서는 안되고, 특별히 신화는 창조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렇다면 saga가 다른 형식들과의 차잇점은 어떻게 구분될 수 있는가? 그것은 끊임없이 창조를 언약과 관련시킬 때, 또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언약의 성취와 관련시킬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제 다시 창조와 언약과의 관계에 대한 바르트의 주장으로 되돌아 가보자.
1. 창조는 언약을 위한 준비이다.
바르트는 창조가 사랑과 언약 상대자에게 모든 필수적인 준비를 제공하기 때문에 사랑의 신적 활동들은 창조를 근거로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창조 그 자체가 언약은 아니고, 창조는 언약으로 가는 방편이다. 이 언약을 성취하기 위한 준비의 첫 단계는 인간 상대자를 위한 거처와 외적인 준비와 관계가 있다. 이 단계는 인간의 활동과 삶의 공간이 마련된다. 그래서 빛, 궁창, 땅의 순서로 창조가 진행되며, 최종적으로 인간의 출현으로 나아가 창조는 목적론적으로 전개된다.
창조기사에 대한 바르트의 해석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창조가 언약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 41절 2항을 ‘언약의 외적토대로서 창조’로 3항을 ‘창조의 내적토대로서의 언약’이라고 명명한데서도 알 수 있다. 하나님과 언약이 창조의 중심을 차지한다. 이러한 관계에서 언약의 핵심이 창조 안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므로 바르트는 창조를 성전 건축으로 묘사함으로써 창조의 첫 역사를 이해한다.
바르트가 주장하는 두 번째 요점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말씀에 의한 그 창조는 피조물들이 어떠한 신적 성격을 지닌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로부터 그러한 것들을 제거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하늘과 땅이 나타났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질적이고 적대적인 피조물의 소멸된 실재에 맞서서 단번에 선포되었다. 여기서 바르트는 창조 이전에 선재하는 실재를 전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데, 창조는 분리의 성격을 지니고, 전 창조는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적대 세력으로부터 그것을 지키는 신적보호를 나타내고 있다. 요컨대, 창조 그 자체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생겨났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통해 이루신 첫 창조는 빛이었다. 빛의 출현 이후 모든 창조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빛 안에서 이루어진다.
바르트의 주장의 세 번째 요점은, 적대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창조의 분리와 보호로서 특징지어진다는 것이다. 혼돈은 하나님에 의해 부정되고 추방되었으며, 그것은 하나의 실재로서 사실상 잘못 만들어졌으며 그 자체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에 의해 버림받고 간과 된 그 혼돈은 하나님의 결정과 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실재의 한계와 경계선으로서 존재하며, 불경건한 것들과 경건에 반대하는 것들로서 존재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낯설고 위협적인 그와 같은 한 피조물의 버림받은 과거 실재속에서 일하기 시작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창조는 분리와 보호의 성격을 띤다.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 하셨을 때, 어둠으로부터 빛을 분리하셨는데, 그 어둠이 버림받은 실재이다. 이와 같이 어둠으로부터 빛의 분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빛을 선하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창조는 분리나 분할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외적 위협으로부터의 분리와 보호는 다음 창조에서 계속된다. 둘째날 창조는 위의 물과 아래의 물을 분할하는 것, 다시 말해 경계선을 확정하고 세우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측면은 혼돈의 주권이 중단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분리 속에서 우주가 생기게 된다. 창조에 대한 세 번째 요점으로부터 하늘과 땅이 불완전한 성격을 가지고 창조되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창조기사에 대한 바르트의 네 번재 요점은, 창조의 이러한 성격이 제2의 완전한 창조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격이 첫 창조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지는 않다. 그것은 선한 것이나 잠정적인 것이기 때문에 더 좋은 창조에 의해서 대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은 어둠으로부터 빛을 분리한 사실에서 명백해진다. 어둠은 분리되고 버림받은 실재로서, 피조 세계로부터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빛의 주위를 감싸고 있으면서 그 곁에 존재한다.
최종적으로, 바르트는 창조의 진행중 첫 단계는 언약사를 위한 삶의 영역의 준비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언약사는 은혜롭게 진행되어야 하므로 인간이 자신의 삶과 활동을 위한 공간을 제공받은 것은 아주 중요하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자기 피조물들에게 그들의 생활 영역을 위하여 시간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물들로부터 육지를 분리 하셨을 때, 땅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영역으로서 주어졌다.
언약을 위한 준비에서 첫 단계는 주로 인간 상대자에게 그의 생활과 활동을 위한 땅을 제공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두 번째 단계는 빛과 동물들의 준비와 기원과 관계가 있다. 빛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사를 위하여 가르침의 표시와 기준으로서 만들어졌으며, 새와 물고기들은 인간의 동료들이 되도록 만들어졌다. 빛들은 인간에게 자기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보고 인식하고 활동하도록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며, 인간이 그것들을 봄으로써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로 자신을 순응시키는 것을 돕는데 기여한다. 넷째 날은 태양과 달과 별들의 천체의 창조로 시작되는데, 그것들은 언약 상대자가 자신의 언약 관계를 인식하도록 돕는다. 이런 의미에서 전 우주는 하나님과의 인간 역사를 목표로 한다고 일컬어진다.
언약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목표로 한다. 그러므로 그 별들이 시간과 날과 역사가 바로 그 계시의 시간과 날과 역사임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들은 이러한 역사의 최종목표를 위한 표시들이며 영상들이다. 모든 계시의 최종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것들은 언약사의 목표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이를 때까지 유효할 것이데, 이는 이 목적만을 위해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2. 언약의 상대자의 등장과 언약의 체결
신적 창조는 인간의 창조에서 끝나는데, 그것으로 신적 창조의 긴 연속은 최종 단계에 도달하였다. 조건적으로 인간은 전 창조의 면류관으로 불리어질 수 있다. 신적 창조의 면류관은 제 칠일에 하나님께서 취하신 휴식 가운데 자신의 전 창조에 재한 회상(回想)과 언약의 체결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바르트의 심원하여 감탄할 만한 사고와 통찰력이 드러난다. 처음으로 언약 상대자 나타났다. 이 역할을 위해 그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다. 다른 모든 것은 이 목적 실현을 위해 필요한 배경 형성에 관계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더불어 언약을 체결하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자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다.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인간의 창조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더불어 협의하셨다. 자신의 새로운 피조물이 언약의 상대자가 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더불어 특별히 협의하셨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의 의미는,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관계에 기초하여 하나님 내부에서 일어나는 ‘자기발생’과 ‘자기발견’을 반영하며, 그것을 묘사하며, 모방하기 때문에 인간 자신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형상이다.상대자의 형태를 취한 이 존재는 인간의 상호관계 속에서 되풀이된다. 이러한 존재의 전형적 형태는 남자와 여자의 이원성 속에 있는 인간이다. 인간 대 인간의 관계는 남자 대 여자, 여자 대 남자 라는 방식과 구별이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나와 너’의 관계는 하나님 안에 있는 ‘나와 너’의 관계에 대한 모방이다. 이런 관계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인간 곳에서 자신을 보시고, 인식하시고, 재발견하신다. 이런 관계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너’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인간 또한 ‘나’로서 하나님께 대답할 수 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관계 유비’(analogia relations)이다.
전 우주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 체결을 위해 창조되었으며, 하나님의 풍성한 식탁이 인간에게 제공된다. 언약 상대자는 은혜 언약의 역사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무대 위에 등장했다. 이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고, 전 창조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종결되었다. 그분의 모든 사역들과 활동들이 은혜 언약을 위한 외적 토대로서 설치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매우 좋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제 7일에 자신의 상대자와 언약을 체결하셨고, 자신의 상대자를 안식일 축제 의식에 동참하도록 초대하셨다. 이렇게 언약은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체결되었으며, 언약사는 첫 안식일에 시작되었다.
이와 같이 언약사의 첫 활동은 인간이 하나님의 축하 잔치에 동참하는 것이다. 인간은 그의 첫날을 휴식으로 시작하였다. 인간은 하나님의 잔치에 동참하는 덕택에 진정한 인간이 될 것을 약속 받았다.
하나님의 안식일 축하와 각자의 자유를 사용하는데 있어 인간이 지닌 사이의 완전한 일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가 하나님께서 자기 창조를 성실하게 완성하셨든 안식일의 계명을 지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관한 창조 기사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예언적으로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언약사와 구속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기 때문에 예수의 부활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와 신실하심은 안식일에 나타난 하나님의 축복과 성화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창조하셨고, 만물을 그리스도안에서 완전하게 만드실 것이기 때문에, 첫 안식일에 하나님께서 인간과 체결하셨든 그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미래에서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3. 언약 첫 단계에서의 언약사
언약에 대한 수단과 방편으로서의 창조는 종결되었다. 창세기 2장은 언약의 새로운 역사를 열고 있는데 그 창조는 은총을 위한 장치요, 언약으로 향하는 방편이며, 언약의 외적인 힘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언약의 전제로서 그 창조를 세우셨으며 그분의 언약에서 동역을 위하여 자기 피조물을 준비하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담과 체결하셨든 언약의 궁극적 목표는 인간의 앙양인데, 그것은 이러한 앙양 없이는 하나님의 창조가 아직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를 피조물에 연합시키심으로 그분의 피조물들을 고양시키기 원하셨다. 이것이 언약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보살핌과 관심이다. 이 신적 사랑은 영원한 경륜 속에서 인간을 위해 자기 아들을 줄 것을 결정하셨던 사랑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게서는 자기 피조물들을 사랑하신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언약의 상대자로 지명하셨고, 그와 더불어 언약을 체결하셨다 .그러나, 이 언약은 동등한 두 당사자들 사이에 체결된 것이 아니라 동등하지 않은 당사자들, 즉 한편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다른 한편은 자기 피조물 인간사이에 체결되었다. 그러므로 양자사이에 언약의 승인이 가지는 형태는 일방적인 명령인데, 다른 상대자는 그 명령에 복종해야만 한다. 더군다나 그 언약의 조건들은 상호간의 협약이 아니라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먹는 것을 금지하는 신적 명령이었다. 언약을 위해 준수되어야 하는 조건은 인간에게 요구된 순종이었다. 단 하나의 요구 조건은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의 명령을 준수하는 것이었다.
인간은 순종에 대한 보답으로 생명을 보장받는다. 이러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에서 생명에 대한 약속은 그 나무에 관한 명령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인간이 이 명령을 준수하지 못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더 나쁜 것이 인간에게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그 생명 나무로부터 인간을 옮기셨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의 첫 번째 행동이다. 에덴 동산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인간과의 교제와 친교를 지속하기 원하시는 것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어떻게 그분의 뜻을 성취하고 자신의 신실함 속에서 자기 뜻을 계속적으로 실현해 가시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언약사 전체는 유대인의 메시야인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 목표를 달성할 것인데, 그러므로 에덴 동산과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실현된 친교를 계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하와가 나타나기 전에 아담과 더불어 자신의 언약을 체결하셨고, 아담으로 하여금, 창조를 다스리는 자로 삼으셨고, 그를 축복하셨으며, 그에게 자신의 명령들을 주셨다. 그런데 왜 그분의 언약에서 또 다른 상대자를 창조하셨는가? 바르트는 여자의 창조의 필연성과 이유를 부여한다. 모든 창조의 통치자이신 하나님께서는 남자가 홀로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보셨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바로 잡고 자기 백성 안에 그분의 구체적인 상대자를 가지기 위한 목적으로 남자에게 내조자를 주셨다. 남자는 자신의 진정한 대상을 여자에게서 찾았으며, 그녀가 자신의 참된 내조자임을 인지하셨다. 자신의 내조자가 창조되기 전에 남자가 경험했든 결핍은 채워졌으며, 여자는 그의 완전한 인간다움을 위해서 필수적인 조력자이다. 남자는 여자와의 결합 속에서만 인간일 수 있고, 그는 여자 속에서 ‘너’를 발견하는데, ‘너’ 없이는 남자가 ‘나’가 될 수 없다. 남자와 여자는 함께 인간이 된다. 남자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고, 그는 자기 아내와 더불어 인간으로 일컬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이 남자와 그의 아내와 더불어 언약을 체결하셨고, 언약 속에서 하나님과의 이런 관계를 위하여 남자가 여자가 창조되었고, 두 상대자들은 서로를 대면한다.
칼 바르트는 인간의 창조를 통해 확립된 언약관계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 내에서 그 언약의 관계의 실현으로 확장한다. 남자가 홀로 있을 수 없었던 이유와 남자가 여자에게서 한 배우자를 얻어야만 했던 이유, 그리고 그의 창조는 여자의 창조로 완성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인 인간 예수가 혼자일 수 없었으며, 자신의 교회 안에서 예수는 자신의 상대자를 가질 수 있었고, 그 자신의 성육신이 단지 이러한 타자들을 가지는 것과 교회 안으로 그들을 영접함으로 통해서 완성되었다는 사실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여자가 남자로부터 취해진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죽음의 고통을 인내하셨든 그리스도 후에 나나났으며, 그리스도 자신의 생명 중 한 부분이 자신으로부터 취해지기를 허용하셨다는 사실이다. 아담의 갈빗뼈를 취해서 이브가 만들어 진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살과 피를 희생함으로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졌다는 말이다.
이상에서 바르트의 신학에서 창조와 언약과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IV. 맺는 말
바르트의 창조론을 그의 교회 교회학을 통해 살펴본 결과, 그는 창조를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은 과학적 방법으로 증명될 수 있는 사건도 아니고, 일반 역사적인 사실로 취급될 수 있는 사실도 아님을 분명히 하여 사도신경의 신앙조항임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바르트는 물질 창조를 부인하는가? 일부 보수주의 학자 중에는 그렇게 단언하지만, 그렇게 말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그런 견해는 바르트의 신학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이 논문을 쓰면서 얻은 결론이다. 그렇다고 바르트가 물질창조를 확고히 믿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고 본다. 설사 그가 그렇게 하였다고 하드라도 그의 신학의 성격상 곧 그것을 부인해버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르트는 창조와 언약을 외적 근거와 내적 근거로, 그들이 상호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면밀한 논리로 전개했다. 그의 심원한 사고의 깊이 앞에 어떤 반론도 하기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바르트의 신학도 서두에서 언급한대로, 20세기의 특징인 신앙과 실망의 이상한 혼합물인 분위기에 있으며, 현대인들에게 이성 안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시키려고 한 결과 성경의 절대성을 추락시키므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북돋우는 역할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의 역할을 하는데 더 큰 공헌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소견이 든다.(*)
칼 바르트의 생애와 업적
1886: 5월 10일, 스위스 바젤(Basel) 그렐링가(Grellingstr.) 42번지에서 아버지 요한 프릿츠 바르트 (Johann Friedrich Fritz Barth)와 어머니 안나 카타리나(Anna Katharina) 사이에서 장남으로 출생.
1889: 아버지(Fritz Barth)가 스위스 베른(Bern) 대학 신약신학 및 교회사 교수로 취임.
1892-1904: 베른의 기독교 계통의 고등학교(Greies Gymnasium)에서 공부.
1904: 9월 17일 고등학교 졸업 국가시험(Abitur)에 합격하고, 베른 대학에서 신학공부 시작.
1906: 베를린(Berlin) 대학으로 옮겨서 공부함
1907: 마부르크(Marburg) 대학 및 튀빙엔(Tuebingen) 대학으로 옮겨감.
1908-1909: 마부르크에서〈기독교 세계: Die Christliche Welt>의 편집 조교로 일하면서, 신학사 (Diplom) 시험에 합격.
1909-1911: 제네바에서 사강사(Privatdozent)로 활동.
1911-1912: 자펜빌(Safenwil)에서 목회.
1912: 아버지 프릿츠 바르트 사망(칼 바르트 나이 26세 때).
1913: 부인 넬리 호프만(Nelly Hoffmann)과 결혼.
1914: 첫 딸 프란체스카(Franziska)를 낳음.
1915: 스위스 사회민주당 입당(Kanton주 Aargau), 첫 아들 마르쿠스(Markus)를 낳음
1917: 둘째 아들 크리스토프(Christoph)를 낳음.
1919: 9월 22-24일 탐바하(Tambach)에서 개최된 종교사회주의 전당대회에서 “사회 속의 그리스 도인(Der Christ in der Gesellschaft)”이란 제목으로 강연. /《로마서강해》 Roemerbrief 제1판 출판
1921: 셋째 아들 마티아스(Matthias)를 낳음.
1921-1925: 괴팅엔(Goetingen) 대학에서 개혁주의신학 담당 교수로 봉직.
1922: 《로마서 강해》 제2판 개정판 출판.
뮨스터(Muenster) 대학으로부터 명예 신학박사 학위 취득(1939년 취소되었다가, 1946년 다시 수여함). / 격 월간지 〈Zwischen den Zeiten〉 발행.
1925: 넷째 아들 한스 야곱(Hans Jakob)을 낳음.
1925-1929: 뮨스터 대학에서 교의학 및 신약신학 교수로 봉직
1927: 《기독교 교의학 개설》 Die christliche Dogmatik im Entwurf 1권 “하나님의 말씀론” 출간.
1930-1935: 본(Bonn) 대학의 조직신학 교수로 봉직.
1930: 영국 글래스고우(Glasgow) 대학으로부터 명예 신학박사 학위 취득. / 항가리 사로스파탁 대학의 명예교수로 추대 받음.
1932: 《교회 교의학》 Kirchliche Dogmatik I/1 (하나님의 말씀론) 출간.
1933: 6월, 《오늘의 신학적 실존》 Theologische Existenz Heute 출간 / 11월부터 투르나이젠(E. Thurneysen)과 함께 〈Zwischen den Zeiten〉에 실렸던 논문을 편집-수록함.
1934: 1월 4일, 바르멘(Barmen)에서 개최된 복음주의 개혁교회 자유총회(Die Freie Synode)에서 현재의 개혁파 신앙 고백 선언문 작성을 제안하는 등 교회 투쟁을 시작함. / 5월 16일, 고백교회 총회에 대비한 “신학분과 위원회”에 참석하여 “신학선언”을 기초 함. / 5월 31일, 바르멘에서 모인 독일 복음주의교회(DEK) 제1차 총회에서 “신학 선언” 채 택. / 10월 19-20일, 베를린-달렘에서 제2회 총회모임 - 바르트가 ‘형제단’ 회원으로 가입. / 11월 22일, ‘형제단’ 탈퇴 / 11월 26일, 바르트의 교수직(敎授職) 유보 통보 - 징계위원회 회부. / 12월 20일, 교수직 박탈(지방법원).
1935: 6월 14일, 베를린 고등법원이 지법의 선고를 파기하고 년간 봉급액의 1/5에 해당하는 액수 의 벌금형 선고. / 6월 25일, 스위스 바젤(Basel) 대학 교수로 취임.
1936: 우트레히트(Utrecht)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 취득.
1937: 성 앤드류(St. Andrew, Scotlans, Aberdeen)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 취득.
1938: 《교회 교의학》 Kirchliche Dogmatik I/2 출간. / 옥스포드(Oxford)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 취득. / 바르트의 저술집 독일 내에서 출판을 금지당함. / 바르트의 어머니 사망. / 9월 19일, 체코 프라하에 있는 로마드카(Josef Hromadka, 1889-1969)에게 편지를 씀.
1939: 뮨스터 대학은 1922년 바르트에게 수여한 명예 박사학위 취소.
1940: 《교회 교의학》 Kirchliche Dogmatik II/1 (신론) 출간.
1941: 6월 신학생인 셋째 아들 마티아스(Matthias)가 등산 중 추락 사망함.
1942: 《교회 교의학》 Kirchliche Dogmatik II/2 (예정론) 출간.
1945: 8월 21-24일, 프랑크푸르트(Frankfurt)에서 열린 ‘형제단 총회’에 참석. / 8월 27-31일, 트라이자에서 열린 ‘교회 지도자 회의’ 참가. / 《교회 교의학》 Kirchliche Dogmatik III/1 (창조론) 출간.
1946: 여름 학기에 본(Bonn) 대학의 초빙 교수로 특강. / 뮨스터 대학에서 명예 신학박사 학위 다시 수여 받음.
1947: 여름 학기에 본 대학에서 초빙 교수로 재차 특강. 베를린, 드레스덴(Dresden) 여행 방문.
1948: 8월 22-9월 4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Amsterdam)에서 열린 WCC 총회에 참석하여 “인간 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구원계획(Die Unordnung der Menschen und Gottes Heilsplan)”이란 제목 으로 주제강연. / 헝가리 여행. / 《교회 교의학》 Kirchliche Dogmatik III/2 출간.
1950: 《교회 교의학》 Kirchliche Dogmatik III/3 출간.
1951: 《교회 교의학》 Kirchliche Dogmatik III/4 출간.
1952: 영국에서 평화훈장 수여받음.
1953: 《교회 교의학》 Kirchliche Dogmatik IV/1 (화해론) 출간.
1954: 헝가리 부다페스트(Budapest)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 취득.
1955: 《교회 교의학》 Kirchliche Dogmatik IV/2 출간.
1956: 영국 에딘버러(Edinburgh)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 취득.
1959: 《교회 교의학》 Kirchliche Dogmatik IV/3, 1-2 출간. / 프랑스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 취득.
1961: 스위스 바젤(Basel) 대학에서 여름 학기를 마치고 명예교수로 추대 받음. 그러나 후임자가 결정되지 않아 그 해 겨울 학기도 2시간 강의함: 제목: “개신교신학입 문(Einfuerung in die evangelische Theologie)”.
1962: 3월 1일, 마지막 강의를 한 후 총장에게 작별인사 / 미국(美國)여행, 시카고(Chicago)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 취득.
1962-1965: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받고 요양 생활
1963: 4월 19일, 덴마크 코펜하겐(Kopenhagen)의 Sonnig-Preis(유럽의 문화창달에 공헌한 공으로) 받음(지금까지 이 상(像)을 받은 사람은 Winston Churchil - Albert Schweitzer - Igor Stravinsky - Niels Bohr - Bertrand Russel - Alvar Aalto 등이다). / 프랑스 파리(Paris)의 소르본느 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 취득.
1966: 5월 10일(80회 생신), 본(Bonn) 대학 평의회 명예회원으로 추대 받음. / 9월 이탈리아 바티칸(Vatican) 예방.
1967: 마지막 세미나를 가짐, 교재: 《바티칸 교리 칙령》 Die Constitutio Dogmatica des Vaticanums Ⅱ(66-67년 겨 울 학기); 《칼뱅의 기독교 강요》 Calvins Institutio(67년 여름 학기). / 《교회 교의학》 Kirchliche Dogmatik IV/4 (세례론) 출간.
1968: 4-5월, 슐라이어마허(Schleiermacher) 《종교론》 Reden에 대한 강좌. /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으로 추대 받음./ 독일 다름슈타트(Darmstadt)의 아카데미에서 프로이드(Freud) 상(償) 받음
12월 9일 밤 스위스 바젤(Basel)에서 영면(永眠)함.
1886: 5월 10일, 스위스 바젤(Basel) 그렐링가(Grellingstr.) 42번지에서 아버지 요한 프릿츠 바르트 (Johann Friedrich Fritz Barth)와 어머니 안나 카타리나(Anna Katharina) 사이에서 장남으로 출생.
1889: 아버지(Fritz Barth)가 스위스 베른(Bern) 대학 신약신학 및 교회사 교수로 취임.
1892-1904: 베른의 기독교 계통의 고등학교(Greies Gymnasium)에서 공부.
1904: 9월 17일 고등학교 졸업 국가시험(Abitur)에 합격하고, 베른 대학에서 신학공부 시작.
1906: 베를린(Berlin) 대학으로 옮겨서 공부함
1907: 마부르크(Marburg) 대학 및 튀빙엔(Tuebingen) 대학으로 옮겨감.
1908-1909: 마부르크에서〈기독교 세계: Die Christliche Welt>의 편집 조교로 일하면서, 신학사 (Diplom) 시험에 합격.
1909-1911: 제네바에서 사강사(Privatdozent)로 활동.
1911-1912: 자펜빌(Safenwil)에서 목회.
1912: 아버지 프릿츠 바르트 사망(칼 바르트 나이 26세 때).
1913: 부인 넬리 호프만(Nelly Hoffmann)과 결혼.
1914: 첫 딸 프란체스카(Franziska)를 낳음.
1915: 스위스 사회민주당 입당(Kanton주 Aargau), 첫 아들 마르쿠스(Markus)를 낳음
1917: 둘째 아들 크리스토프(Christoph)를 낳음.
1919: 9월 22-24일 탐바하(Tambach)에서 개최된 종교사회주의 전당대회에서 “사회 속의 그리스 도인(Der Christ in der Gesellschaft)”이란 제목으로 강연. /《로마서강해》 Roemerbrief 제1판 출판
1921: 셋째 아들 마티아스(Matthias)를 낳음.
1921-1925: 괴팅엔(Goetingen) 대학에서 개혁주의신학 담당 교수로 봉직.
1922: 《로마서 강해》 제2판 개정판 출판.
뮨스터(Muenster) 대학으로부터 명예 신학박사 학위 취득(1939년 취소되었다가, 1946년 다시 수여함). / 격 월간지 〈Zwischen den Zeiten〉 발행.
1925: 넷째 아들 한스 야곱(Hans Jakob)을 낳음.
1925-1929: 뮨스터 대학에서 교의학 및 신약신학 교수로 봉직
1927: 《기독교 교의학 개설》 Die christliche Dogmatik im Entwurf 1권 “하나님의 말씀론” 출간.
1930-1935: 본(Bonn) 대학의 조직신학 교수로 봉직.
1930: 영국 글래스고우(Glasgow) 대학으로부터 명예 신학박사 학위 취득. / 항가리 사로스파탁 대학의 명예교수로 추대 받음.
1932: 《교회 교의학》 Kirchliche Dogmatik I/1 (하나님의 말씀론) 출간.
1933: 6월, 《오늘의 신학적 실존》 Theologische Existenz Heute 출간 / 11월부터 투르나이젠(E. Thurneysen)과 함께 〈Zwischen den Zeiten〉에 실렸던 논문을 편집-수록함.
1934: 1월 4일, 바르멘(Barmen)에서 개최된 복음주의 개혁교회 자유총회(Die Freie Synode)에서 현재의 개혁파 신앙 고백 선언문 작성을 제안하는 등 교회 투쟁을 시작함. / 5월 16일, 고백교회 총회에 대비한 “신학분과 위원회”에 참석하여 “신학선언”을 기초 함. / 5월 31일, 바르멘에서 모인 독일 복음주의교회(DEK) 제1차 총회에서 “신학 선언” 채 택. / 10월 19-20일, 베를린-달렘에서 제2회 총회모임 - 바르트가 ‘형제단’ 회원으로 가입. / 11월 22일, ‘형제단’ 탈퇴 / 11월 26일, 바르트의 교수직(敎授職) 유보 통보 - 징계위원회 회부. / 12월 20일, 교수직 박탈(지방법원).
1935: 6월 14일, 베를린 고등법원이 지법의 선고를 파기하고 년간 봉급액의 1/5에 해당하는 액수 의 벌금형 선고. / 6월 25일, 스위스 바젤(Basel) 대학 교수로 취임.
1936: 우트레히트(Utrecht)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 취득.
1937: 성 앤드류(St. Andrew, Scotlans, Aberdeen)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 취득.
1938: 《교회 교의학》 Kirchliche Dogmatik I/2 출간. / 옥스포드(Oxford)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 취득. / 바르트의 저술집 독일 내에서 출판을 금지당함. / 바르트의 어머니 사망. / 9월 19일, 체코 프라하에 있는 로마드카(Josef Hromadka, 1889-1969)에게 편지를 씀.
1939: 뮨스터 대학은 1922년 바르트에게 수여한 명예 박사학위 취소.
1940: 《교회 교의학》 Kirchliche Dogmatik II/1 (신론) 출간.
1941: 6월 신학생인 셋째 아들 마티아스(Matthias)가 등산 중 추락 사망함.
1942: 《교회 교의학》 Kirchliche Dogmatik II/2 (예정론) 출간.
1945: 8월 21-24일, 프랑크푸르트(Frankfurt)에서 열린 ‘형제단 총회’에 참석. / 8월 27-31일, 트라이자에서 열린 ‘교회 지도자 회의’ 참가. / 《교회 교의학》 Kirchliche Dogmatik III/1 (창조론) 출간.
1946: 여름 학기에 본(Bonn) 대학의 초빙 교수로 특강. / 뮨스터 대학에서 명예 신학박사 학위 다시 수여 받음.
1947: 여름 학기에 본 대학에서 초빙 교수로 재차 특강. 베를린, 드레스덴(Dresden) 여행 방문.
1948: 8월 22-9월 4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Amsterdam)에서 열린 WCC 총회에 참석하여 “인간 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구원계획(Die Unordnung der Menschen und Gottes Heilsplan)”이란 제목 으로 주제강연. / 헝가리 여행. / 《교회 교의학》 Kirchliche Dogmatik III/2 출간.
1950: 《교회 교의학》 Kirchliche Dogmatik III/3 출간.
1951: 《교회 교의학》 Kirchliche Dogmatik III/4 출간.
1952: 영국에서 평화훈장 수여받음.
1953: 《교회 교의학》 Kirchliche Dogmatik IV/1 (화해론) 출간.
1954: 헝가리 부다페스트(Budapest)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 취득.
1955: 《교회 교의학》 Kirchliche Dogmatik IV/2 출간.
1956: 영국 에딘버러(Edinburgh)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 취득.
1959: 《교회 교의학》 Kirchliche Dogmatik IV/3, 1-2 출간. / 프랑스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 취득.
1961: 스위스 바젤(Basel) 대학에서 여름 학기를 마치고 명예교수로 추대 받음. 그러나 후임자가 결정되지 않아 그 해 겨울 학기도 2시간 강의함: 제목: “개신교신학입 문(Einfuerung in die evangelische Theologie)”.
1962: 3월 1일, 마지막 강의를 한 후 총장에게 작별인사 / 미국(美國)여행, 시카고(Chicago)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 취득.
1962-1965: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받고 요양 생활
1963: 4월 19일, 덴마크 코펜하겐(Kopenhagen)의 Sonnig-Preis(유럽의 문화창달에 공헌한 공으로) 받음(지금까지 이 상(像)을 받은 사람은 Winston Churchil - Albert Schweitzer - Igor Stravinsky - Niels Bohr - Bertrand Russel - Alvar Aalto 등이다). / 프랑스 파리(Paris)의 소르본느 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 취득.
1966: 5월 10일(80회 생신), 본(Bonn) 대학 평의회 명예회원으로 추대 받음. / 9월 이탈리아 바티칸(Vatican) 예방.
1967: 마지막 세미나를 가짐, 교재: 《바티칸 교리 칙령》 Die Constitutio Dogmatica des Vaticanums Ⅱ(66-67년 겨 울 학기); 《칼뱅의 기독교 강요》 Calvins Institutio(67년 여름 학기). / 《교회 교의학》 Kirchliche Dogmatik IV/4 (세례론) 출간.
1968: 4-5월, 슐라이어마허(Schleiermacher) 《종교론》 Reden에 대한 강좌. /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으로 추대 받음./ 독일 다름슈타트(Darmstadt)의 아카데미에서 프로이드(Freud) 상(償) 받음
12월 9일 밤 스위스 바젤(Basel)에서 영면(永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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