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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껴안는 제자의 길 (마태복음 5:38-42)

by 고동엽 2025. 12. 13.

원수를 껴안는 제자의 길  (마태복음 5:38-42)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고,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마태복음 5:38-4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마태복음 5장, 곧 주님께서 선포하신 산상수훈의 가장 도전적이고 혁명적인 가르침 앞에 서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익숙한 세상의 정의, 곧 '동해보복(同害報復)'의 원칙을 완전히 뒤집어 놓습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이 명령은 사실 고대 사회에서 무제한적인 복수를 제한하고 최소한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법적 장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제한된 정의마저 넘어설 것을 요구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에게는, 그 이상의, 하늘의 차원이 담긴 윤리와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방식은 바로 **'악을 이기는 사랑'**이며, **'원수까지도 껴안는 제자의 길'**입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소극적인 인내나 체념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오른뺨을 맞는 순간, 왼뺨마저 내어주는 이 행위는 나약함의 표현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의 악의 순환 고리를 끊어내는 극도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입니다. 만일 우리가 받은 대로 되갚는다면, 우리는 복수의 악순환, 미움의 연쇄반응 속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우리가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사랑으로 응답할 때, 우리는 이 땅의 악의 권세 앞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악한 세력에 의해 규정되거나 지배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복음의 능력으로 악을 극복하고, 새로운 차원의 관계를 창조하기를 바라셨습니다.

또한, 우리의 것을 빼앗으려는 자에게 겉옷까지 내어주는 행위나,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는 로마 군인과 십 리를 동행하는 모습은, 세상의 논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자발적인 희생과 섬김의 정신을 보여줍니다. 속옷과 겉옷은 그 당시 유대인에게 생계와 체면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재산이었습니다. 겉옷을 빼앗긴다는 것은 알몸으로 내몰리는 치욕과 생계의 위협을 의미했습니다. 그럼에도 겉옷까지 내어주라는 주님의 명령은, 물질적인 소유보다 더 근본적인 영적인 자유를 선포합니다. 우리는 소유에 얽매이지 않고, 사랑을 베풀 자유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십 리 동행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 리는 로마법이 허용한 강제 동원의 한계였지만, 십 리 동행은 그 의무의 경계를 넘어선 자발적인 선행이었습니다. 이는 억압자에게조차 예상치 못한 사랑과 친절을 베풀어, 그들의 마음속에 새로운 질문과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능동적인 선교적 행위였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비폭력적인 사랑의 혁명을 실천할 때, 우리는 단순히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을 넘어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다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명령들을 통해 우리를 세상의 법규나 관습보다 더 높은,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하늘의 윤리로 초대하십니다. 이 윤리의 근원은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과 선인에게 햇빛을 비추시고,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비를 내리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의 이 가르침은 바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곧 **아가페(agapē)**의 본질을 우리의 삶 속에서 실현하라는 요청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본능적으로 우리는 받은 만큼 되돌려주고 싶어 합니다. 억울함은 쉽게 분노로 변하며, 복수심은 달콤한 유혹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그 본능적인 충동을 거스르고, 성령의 능력으로 사랑을 선택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이 선택은 단순한 도덕적 의무가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에 대한 합당한 응답이요, 우리가 진정으로 그분의 제자임을 증명하는 표지입니다.

[예화]

한 기독교인이 깊은 신앙을 가진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목사님, 제가 평생을 봉사하고 헌신했지만, 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재산까지 가로챈 사람이 있습니다. 그를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도저히 용서가 안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목사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조용히 답했습니다. "자매님, 아마 자매님의 상처는 너무 깊어서, 자매님의 힘으로는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매님은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대가를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자매님뿐만 아니라, 자매님을 해친 그 사람의 죄까지도 용서하기 위해 그 피를 흘리셨습니다. 이제 자매님께서 할 수 없는 그 용서의 몫을 예수님께 맡겨드리십시오. 자매님의 아픈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 '주님, 제가 이 사람을 미워하는 것까지도 주님께 드립니다. 주님의 그 크신 사랑으로 이 사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눈으로 그를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우리 주님은 우리의 미움까지도 받아주시고, 그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용서는 감정의 결과가 아니라, 십자가를 붙드는 순종의 시작입니다."

이 예화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예수님의 이 혁명적인 명령은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성취 불가능한 요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이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힘을 의지하는 대신,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의 능력을 구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악을 사랑으로 대할 수 있는 유일한 원천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경험하고 그 사랑 안에 거할 때입니다. 우리는 용서받았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고, 사랑받았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말씀은 우리의 삶의 영역 전체를 포괄합니다. 단순히 뺨을 맞는 물리적인 상황뿐만 아니라, 직장 내의 부당한 대우, 가정 내의 억울한 오해, 사회 속의 불공평한 처사 등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손해를 입히는 모든 상황에서 이 원칙은 적용됩니다.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는 마지막 명령은, 우리가 가진 것을 움켜쥐고 인색하게 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통로 삼아 풍성하게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가르칩니다. 세상은 소유함으로써 안정감을 얻으려 하지만,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나눔으로써 하나님의 풍요로움을 증거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할 때,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됩니다. 우리가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사랑으로 응답할 때, 세상은 혼란스러워합니다. 세상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그들은 우리가 가진 다른 근원, 곧 하늘의 능력과 사랑에 대해 질문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악을 이기는 방식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상에 전달되는 가장 강력한 통로입니다.

십자가는 바로 이 말씀의 궁극적인 성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뺨을 맞으셨고, 침 뱉음을 당하셨으며, 옷을 빼앗기셨고, 억지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 모든 고난 속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눅 23:34) 예수님의 십자가는 악에 대한 보복 대신, 악을 파괴하는 완전한 사랑의 선포였습니다. 우리는 이 십자가를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다시 한번 결단해야 합니다. 우리의 본성이 요구하는 보복과 자기 보호의 유혹을 물리치고, 그리스도께서 걸으신 그 길을 따라 악한 자를 대적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과 섬김으로 그들을 맞이하는 길을 선택합시다. 우리의 인격적인 손해나 물질적인 손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흘려보내는 통로가 됩시다.

우리가 비록 연약할지라도, 우리를 붙드시는 주님의 사랑과 성령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악을 선으로 이기는 거룩한 싸움에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 마음속에 미움과 복수심이 자리 잡았던 모든 영역을 주님께 내어드리고, 십자가의 사랑으로 채워 달라고 간구합시다. 그리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로 이 세상에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 설교 부속 자료

📌 요약 (Summary)

마태복음 5:38-42는 예수님의 산상수훈 중 가장 급진적인 가르침으로, 구약의 동해보복 원칙($Lex\ Talionis$)을 넘어설 것을 명령합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인 사랑과 비폭력적인 순종을 통해 악의 순환 고리를 끊고 하나님의 의를 실현하는 데 있습니다.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내어주고, 속옷을 취하려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며, 억지로 오 리를 동행하는 자에게 십 리를 동행하는 행위는, 소극적인 인내가 아닌, 억압과 불의 앞에서 복음의 능력을 증거하는 능동적인 사랑의 혁명을 의미합니다. 이 가르침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아가페)을 삶으로 실천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임을 세상에 드러내는 제자의 삶의 방식입니다.

💡 묵상 포인트 (Meditation Points)

  1. 나의 보복 본능: 나는 억울함이나 손해 앞에서 즉각적으로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나의 마음속에 '눈은 눈, 이는 이'라는 세상의 논리가 얼마나 깊이 뿌리내려 있는가?
  2.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 오른뺨/왼뺨, 속옷/겉옷, 오 리/십 리의 비유에서 내가 '넘어서야 할' 경계는 무엇인가? 내가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사랑을 선택해야 할 구체적인 상황은 무엇인가?
  3. 하나님의 자녀다움: 내가 악을 사랑으로 이길 때, 세상은 나에게서 어떤 '다름'을 보게 될 것인가? 나의 용서와 나눔이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통로가 될 수 있는가?
  4. 십자가의 능력: 내가 이 말씀대로 살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나의 복수심과 이기심을 어떻게 무력화시켰는가를 묵상하라.

🔍 강해 (Exposition)

  •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마 5:38): 이는 출애굽기 21:24, 레위기 24:20, 신명기 19:21에 나오는 $Lex\ Talionis$를 언급합니다. 이 법은 무제한적인 복수를 제한하고 법적 재판을 통해 '동일한 해악'만을 허용함으로써, 최소한의 공의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법이었습니다.
  •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마 5:39): 여기서 '대적하다'($ἀντιστῆναι$, antistēnai)는 '반대하여 서다, 무력으로 맞서다'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물리적인 폭력이나 복수심으로 대응하는 것을 금하시고, 오히려 사랑과 인내, 선한 행동으로 악에 맞서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는 **'악에 대한 소극적인 저항'**이 아닌, **'악을 선으로 이기는 능동적인 행동'**을 의미합니다 (롬 12:21).
  • 오른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마 5:39): 당시 오른손으로 오른뺨을 친다는 것은 손등으로 뺨을 때리는 행위로, 극심한 모욕을 주는 행동이었습니다. 왼뺨을 내어주는 것은 모욕에 모욕으로 응수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한 깊은 도덕적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비폭력 저항의 방식입니다.
  • 속옷과 겉옷 (마 5:40): 속옷($χιτών$, chitōn)은 속옷, 겉옷($ἱμάτιον$, himation)은 겉옷으로, 밤에는 담요 대용으로 사용되었기에, 율법상 저당 잡더라도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어야 했습니다 (출 22:26-27). 겉옷까지 내어주라는 것은 재산상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사랑을 실천하며, 소유에 얽매이지 않는 영적인 자유를 보여줍니다.
  • 오 리와 십 리 (마 5:41): 오 리($μίλιον$, milion는 약 1.5km)는 당시 로마 군인이 점령지의 주민에게 짐을 운반하게 강제할 수 있는 최대 거리(로마법상 권한)였습니다. 십 리 동행은 법적인 의무를 넘어선 자발적인 섬김이며, 억압자에게조차 친절과 선의를 베풀어 복음을 간접적으로 증거하는 태도입니다.

📝 주석 (Commentary)

본문은 구약 율법의 정신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하는 가르침입니다 (마 5:17). 동해보복법은 정의를 세우는 최소한의 기준이었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최고의 윤리 기준을 제시하십니다. 이 가르침들은 세상의 불의와 악에 대한 단순한 '분리'가 아닌, **'사랑을 통한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것은 세상의 폭력적인 순환을 끊는 그리스도인의 독특한 방식이며, 이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도움으로만 가능한, 초월적인 사랑의 실천입니다.

🗣️ 원어 주석 (Original Language Note)

  • $ἀντιστῆναι$ (antistēnai, 대적하다): 부정과거 능동태 부정사. 기본 동사 $ἀνθίστημι$ (anthistēmi)는 '맞서다, 대항하다'의 의미로, 여기서 예수님은 복수나 폭력적 대응으로 악에 맞서는 것을 금지하고, 대신 비폭력적이며 능동적인 사랑의 실천을 명령합니다.
  • $ἀγαπᾷτε$ (agapāte, 사랑하라): 요한복음 13:34, 15:12 등 신약에서 주로 사용되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을 나타내는 동사 $ἀγαπάω$ (agapaō)의 현재 명령형입니다. 이는 단순히 감정적인 사랑이 아니라, 의지적이고 지속적인 행위로서의 사랑을 명령하는 것입니다.

💎 금언 (Aphorisms)

  • "복수는 악의 순환을 지속시키는 악마의 노래이다. 사랑은 그 노래를 멈추게 하는 하늘의 음률이다."
  • "그리스도인의 힘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내어줄 수 있느냐에 있다."
  • "세상은 네가 너의 권리를 주장할 때 놀라지 않는다. 네가 너의 권리를 포기하고 사랑을 선택할 때 비로소 십자가의 능력을 보게 된다."

📝 신학적/주제별/목회적 정리 (Theological/Thematic/Pastoral Synthesis)

  • 신학적 정리 (Theological): 본문은 하나님 나라 윤리의 급진성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을 도덕법적 완성이 아닌, 은혜 언약적 완성으로 이끄셨습니다. 이 윤리는 인간의 공로가 아닌,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성령의 능력을 통해서만 실현 가능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무한하고 초월적인 '아가페' 사랑을 모방하는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의 증거입니다.
  • 주제별 정리 (Thematic): 주제는 **'악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승리 방식'**입니다. 세상은 힘과 보복으로 악을 이기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비폭력적인 사랑의 실천'**을 통해 악의 권세를 무너뜨립니다. 이는 단순한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악한 자의 폭력과 부당함에 대해 복음의 진리가 가진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힘으로 대응하는 것입니다.
  • 목회적 정리 (Pastoral): 목회적으로 이 말씀은 성도들에게 **'희생적 제자도'**를 촉구합니다. 세상에서 부당한 대우나 손해를 볼 때, 억울함을 감정적으로 해소하기보다, 그 상황을 **'복음 증거의 기회'**로 삼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성도들이 용서할 수 없는 상황에서조차 용서를 선택함으로써, 그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형상이 회복되고 온전해지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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