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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것과 가장 유익한 것 사이의 선택 (빌1장 22절~26절)

by 고동엽 2025. 11. 25.

 

가장 좋은 것과 가장 유익한 것 사이의 선택 (빌1장 22절~26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하는 빌립보서 1장 22절부터 26절의 말씀은 한 인간이 직면할 수 있는 가장 신비롭고 궁극적인 선택의 기로를 담고 있습니다. 이 구절들은 단순히 사도 바울이라는 한 위대한 인물의 개인적인 고뇌를 넘어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 모든 이들이 필연적으로 씨름하게 될 영적 실재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바울은 지금 자신의 생명이 연장되는 '사는 것'과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죽는 것' 사이에서 팽팽한 저울질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저울질은 생과 사의 단순한 물리적 경계가 아니라, 지상적 사명과 천상적 영광이라는 두 절대적인 가치 사이의 영적인 긴장입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내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알지 못하노니" (빌 1:22). 여기서 '육신으로 사는 것'은 곧 이 땅에서의 현존을 의미하며, 그 목적은 '일의 열매', 즉 복음 사역을 통해 얻게 될 결실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세우는 사명을 통해 '열매'를 맺을 때만 가치를 가집니다. 바울에게 삶의 목적은 이미 정해져 있었으며,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과 봉사, 그리고 그로 인한 영적인 수확이었습니다. 만약 그가 지금 당장 세상을 떠난다면, 이 열매 맺는 사역은 중단될 것입니다. 이것이 그가 육신으로 살기를 고려하는 유일한 이유입니다. 그의 삶은 이기적인 욕망이나 안일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타인과 교회를 위한 희생적 봉사라는 측면에서만 의미를 찾고 있습니다. 그의 존재는 이미 자신을 넘어선, 공동체적이고 사명적인 존재로 변모한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바울의 마음속에는 또 다른 강력한 열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어 있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지며 이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빌 1:23).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은 단순히 고난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미 빌립보서 전체를 통해 고난을 그리스도와 동참하는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이 욕망은 세상의 모든 짐이 사라진 절대적인 복락, 즉 그리스도와의 친밀하고 영구적인 연합을 향한 갈망입니다. 그는 이 상태를 '훨씬 더 좋은 일(καὶ γὰρ κρεῖσσον)'이라고 단언합니다. 이 '크레이쏜(κρεῖσσον)'이라는 비교급 형용사는 이 땅에서 경험할 수 있는 어떤 기쁨이나 성취보다도 월등히 뛰어나고 탁월한 가치를 내포합니다. 바울은 천상의 영광을 알았기에, 그 영광 앞에서 지상의 어떤 사명도 개인적인 만족이라는 측면에서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의 궁극적인 소망이요, 우리가 이 땅의 모든 애착을 끊고 나아가야 할 종말론적 도착점입니다.

이처럼 한쪽에는 '열매 맺는 삶'이라는 유익한 선택지가, 다른 한쪽에는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이라는 가장 좋은 선택지가 놓여 있습니다. 바울은 이 두 가치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영적인 교착 상태, 즉 '끼어 있음(συνέχομαι, 내가 억눌려 있다/사로잡혀 있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교착은 무력함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두 위대한 목적에 대한 헌신에서 비롯된 거룩한 압박입니다. 만일 바울이 세상 사람들과 같았다면, 그는 당연히 고난이 없는 '죽음'을 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광의 시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24절에서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빌 1:24).

여기서 핵심어는 '유익하리라(ἀναγκαῖον, 아낭카이온)'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개인적인 행복과 영광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좋은 것'을 알았지만, 공동체와 복음 전파라는 사명적 측면에서는 '더 유익한 것'을 택합니다. 그는 지극히 이타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뒤로 미룹니다. 그는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을 원하지만, 너희에게 더 필요한 것은 내가 남아있는 것이다'라고 선언합니다. 이 선택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던 그 희생의 정신과 완전히 궤를 같이 합니다. 바울은 지금 자신의 천국 입성을 유보하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해 이 땅에 남아 고난을 감수하겠다는 사랑의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개인의 영적 만족보다 공동체의 성장을 우선시하는 헌신이야말로 진정한 복음의 열매입니다.

이러한 결단은 단순한 감정적 충동이 아닙니다. 이 결단은 깊은 신학적 통찰과 확신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존재 목적이 이제 더 이상 자신에게 있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데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남아서 해야 할 사명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그것은 성도들의 '믿음의 진보(προκοπὴν, 앞으로 나아감)'와 '기쁨(χαρὰν)'입니다. 성도가 이 땅에서 겪는 수많은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그리스도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도록 돕고, 그 진보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을 경험하도록 돕는 것, 이것이 바울이 남아서 해야 할 '더 유익한 일'의 본질이었습니다. 사도적 존재의 가치는 그가 누릴 영광의 크기가 아니라, 그를 통해 성도들이 누릴 은혜의 깊이에 있는 것입니다.

이 깊은 헌신을 바탕으로 바울은 25절과 26절에서 놀라운 확신을 선언합니다.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신하노니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이 일로 말미암아 자랑할 것이 많게 하려 함이라" (빌 1:25-26). 이 확신은 옥중에 갇힌 죄수의 헛된 희망이 아니라, 주님의 뜻과 사명에 대한 명확한 이해에서 나오는 예언적 선언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빌립보 성도들을 위해 남아 있어야 한다는 신적 필요성을 깨닫자, 하나님께서 분명히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얻게 됩니다. 이 확신은 그의 사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가 남아있는 결과는 성도들의 '자랑할 것'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바울의 고난과 이후의 석방, 그리고 다시 그들과 함께하게 되는 모든 과정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할 수 있는 풍성한 간증이 될 것입니다. 그들이 겪는 고난이 헛되지 않으며, 바울의 생명이 연장된 것은 그저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한 깊은 사랑과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 바울의 남은 삶 자체가 그리스도의 능력을 드러내는 살아있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바울의 거룩한 딜레마를 통해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우리의 '열매 맺는 일'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을 진정으로 '훨씬 더 좋은 것'으로 여기는가? 만약 우리가 지상의 삶의 목적이 오직 영원한 것을 수확하는 데 있음을 깨닫는다면, 우리의 선택은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행위는 영적인 열매를 맺기 위한 씨 뿌리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 지점에서 하나의 예화를 들어봅시다.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에서 고전학을 가르쳤던 C. S. 루이스는 말년에 아내 조이 데이비드먼을 먼저 떠나보내고 큰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와의 이별을 겪으며 깊은 고뇌를 했지만, 동시에 그가 오랫동안 가르쳐왔던 기독교적 소망, 즉 '이 땅의 삶보다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천국의 삶이 훨씬 더 좋은 것'이라는 진리를 다시 붙잡아야 했습니다. 루이스는 그의 저서 『네 가지 사랑』 등에서 인간의 모든 지상적 사랑이 천상의 사랑을 향한 훈련임을 역설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아내와의 사별이라는 고통 속에서 그는 자신의 지적 확신이 현실의 고통 앞에서 얼마나 흔들릴 수 있는지 경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이스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힘은, 바울과 마찬가지로, '가장 좋은 것'인 천국에서의 연합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가 다시 글을 쓰고 가르치는 사역으로 돌아온 것은, 지상의 남은 자들을 위한 '더 유익한 것'을 위해 자신의 슬픔을 사명으로 승화시킨 바울의 선택과 같습니다. 바울이 육신으로 남아있음을 택한 것은 천국을 향한 그의 열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천국의 소망을 모르는 이들에게 그 진리를 전해주는 것이 사랑의 완성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루이스가 고통 속에서도 다시 펜을 잡은 것처럼, 우리의 남은 삶도 누군가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위로하는 유익한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은 바울의 딜레마와 완전히 동일합니다. 우리는 매 순간 '가장 좋은 것'인 안식과 만족을 향한 개인적인 갈망과, '가장 유익한 것'인 남을 섬기고 복음을 전하는 사명 사이에서 선택을 내립니다. 그리스도인의 성숙은 이 두 가치 중 하나를 포기하는 데 있지 않고, 가장 좋은 것인 천상의 영광을 알지만, 오직 사랑 때문에 더 유익한 것인 지상의 봉사를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데 있습니다. 바울은 육신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연장된 그 생명으로 말미암아 타인의 믿음이 진보하고 기쁨이 충만해지는 것을 보장받았기에 주저 없이 유익한 길을 택했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직 우리에게 '열매 맺을 기회'를 허락하셨다는 명확한 증거입니다. 우리의 호흡 하나하나는 우리의 안녕을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영적 진보와 기쁨을 위한 사명의 도구입니다. 우리의 남은 시간을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유익한 것'을 위해 사용합시다. 우리의 존재가 다른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능력과 소망을 자랑할 수 있는 간증이 되게 합시다. 우리의 남은 삶이 바울의 확신처럼, 오직 교회의 유익과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온전히 드려지는 복된 선택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바울이 보여준, 천국을 향한 열망과 지상 사명에 대한 책임감이 완벽하게 조화된, 가장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선택입니다.

 

1. 설교 요약 (Summary)

본문은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직면한 생사(生死)의 딜레마를 다룹니다. 바울은 이 땅에 남아 '육신으로 사는 것'을 통해 '일의 열매'(복음 사역의 결실)를 맺는 것과,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라는 '훨씬 더 좋은 일'(개인적인 영광) 사이에서 고민합니다. 이 두 선택지 중, 개인적인 갈망으로는 천국행이 '가장 좋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해 이 땅에 남아 사역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결론 내립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사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확신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살려두시어 교회의 성장을 돕게 하실 것을 예언적으로 선언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이 개인의 안식이나 영광이 아닌, 오직 공동체의 유익과 복음 전파에 있음을 보여주는 이타적이고 헌신적인 선택의 모범입니다.

2. 강해 (Exposition)

구절강해 내용

빌 1:22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 바울에게 삶의 가치는 오직 '열매'(καρπός, 카르포스), 즉 복음 사역의 결실에 있습니다. 삶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한 수단입니다. 그가 삶을 택할 유일한 이유는 이 열매 맺는 일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빌 1:23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 이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 '떠난다(ἀναλῦσαι, 아날뤼사이)'는 것은 배를 묶어 둔 밧줄을 풀거나, 여행자가 짐을 푸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지상적 구속에서의 해방과 안식을 상징합니다. '훨씬 더 좋은(κρεῖσσον, 크레이쏜)'은 비교급 중에서도 최상급에 가까운 표현으로, 천상의 영광이 지상의 어떤 선(善)보다 우월함을 강조합니다.
빌 1: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 '유익하리라(ἀναγκαῖον, 아낭카이온)'는 '필수적인, 피할 수 없는, 필요한'의 의미를 가집니다. 바울은 자신의 개인적 열망보다 빌립보 교회의 영적 필요를 절대적인 가치로 두고 이타적인 결단을 내립니다. 이 결단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적 존재 의식을 보여줍니다.
빌 1:25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신하노니" - 바울이 남아서 할 일의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1) 믿음의 진보(προκοπὴν, 프로코펜): 단순히 정체된 상태가 아니라, 앞으로 전진하는 적극적인 성숙. 2) 기쁨(χαρὰν): 구원의 확신과 진보에서 오는 영적인 기쁨. 이 사명에 대한 확신이 곧 자신의 생명이 연장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이어집니다.
빌 1:26 "나의 이 일로 말미암아 자랑할 것이 많게 하려 함이라" - 바울의 사명 완수(석방과 재방문)는 빌립보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고난 속에서도 역사하신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할 풍성한 간증 거리를 제공합니다.

3. 묵상 포인트 (Meditation Points)

  • 나의 삶의 목적: 나의 삶의 '열매'는 무엇인가? 내가 지금 육신으로 살고 있는 궁극적인 이유가 나의 안락인가, 아니면 복음 사역의 결실인가?
  • 천상의 소망: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을 바울처럼 '훨씬 더 좋은 것'으로 갈망하는가, 아니면 이 땅의 삶에 대한 미련과 두려움으로 인해 천국을 막연한 개념으로만 생각하는가?
  • 이타적 헌신: 나의 개인적인 안식과 만족을 유보하고, 공동체의 유익과 영적 진보를 위해 기꺼이 고난을 감수하려는 '더 유익한 선택'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 확신과 간증: 내 삶의 현장이 다른 이들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할 것'이 되도록, 믿음의 진보를 이루고 있는가? 나의 삶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하는 간증인가?

4. 금언 (Aphorisms/Sayings)

  • "그리스도인의 삶은 죽음으로써 시작되고, 죽음을 위해 사는 훈련이다."
  • "가장 좋은 것을 알지만, 가장 유익한 것을 택하는 것이 사랑의 완성이다."
  • "우리의 생명은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을 위한 빌린 도구이다."
  • "천상의 소망을 확신하는 자만이 지상의 사명에 헌신할 수 있다."

5. 신학적, 주제별, 목회적 정리

  • 신학적 정리 (Theological Summary): 본문은 기독교 종말론과 사명론을 긴밀하게 연결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소망(그리스도와 함께 있음)은 지상에서의 소명(복음 전파와 교회의 유익)을 약화시키지 않고, 오히려 그 소명을 수행할 힘과 동기를 부여합니다. 바울의 선택은 칼뱅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소명'(Calling)의 절대적 우위를 보여주며, 하나님이 정하신 사명의 완수가 개인의 안식보다 우선함을 입증합니다. 성도의 죽음은 단순한 소멸이 아닌, '더 좋은 것'으로의 '승진'이자 '이전'입니다.
  • 주제별 정리 (Thematic Summary): 본문의 핵심 주제는 '이타적 사명 (Altruistic Mission)' 입니다. 바울은 '나를 위해'가 아닌 '너희를 위하여(δι’ ὑμᾶς, 디 휘마스)' 남아있음을 명확히 합니다. 이는 모든 신앙 생활과 봉사의 근본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믿음의 진보'**는 그리스도인의 성화(Sanctification) 과정이 정적인 상태가 아닌, 적극적인 전진(προκοπὴν)임을 보여줍니다.
  • 목회적 정리 (Pastoral Summary): 이 말씀은 목회자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가 삶의 우선순위를 재정립하도록 도전합니다. 성도들은 자신의 삶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기고 다른 사람의 영적 성장을 돕는 데 초점을 맞출 때, 참된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목회 현장에서는 성도들에게 천상의 소망을 분명히 가르침으로써, 그들이 지상의 고난에 얽매이지 않고 사명에 헌신하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1. 주석 (Detailed Commentary)

구절핵심 주석

빌 1:22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 바울은 자신의 생존을 '육신으로 사는 것(ἐν σαρκί, 엔 사르키)'으로 표현합니다. 이는 영적 타락을 의미하는 '육체'(flesh)와 달리, 단순히 지상에서의 물리적 존재 상태를 가리킵니다. '열매(καρπός, 카르포스)'는 그의 사역의 결과물, 즉 복음을 듣고 회심하여 믿음이 성장하는 교인들을 의미합니다. 그의 고민은 자신의 안위가 아닌, 사역의 지속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빌 1:23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지며" - '떠나다(ἀναλῦσαι, 아날뤼사이)'는 군사용어로는 진영을 해체하고 이동하는 것, 항해 용어로는 출항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지상의 장막을 해체하고 영원한 본향으로 '이사'하는 개념을 내포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σὺν Χριστῷ, 쉰 크리스토)'은 단순한 천국행 이상의, 인격적인 주님과의 직접적이고 영원한 교제를 강조합니다. 바울에게 죽음은 축복이자, 영광의 상태입니다.
빌 1: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 바울이 남기를 선택한 동기는 오직 '너희를 위하여(δι’ ὑμᾶς, 디 휘마스)', 즉 빌립보 교회를 향한 이타적 사랑입니다. '유익하리라(ἀναγκαῖον, 아낭카이온)'는 도덕적/영적으로 '필수적이고' '꼭 필요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욕망을 꺾고 교회의 필요를 절대적인 사명으로 받아들입니다.
빌 1:25 "믿음의 진보와 기쁨" - '진보(προκοπὴν, 프로코펜)'는 원래 군대가 장애물을 치우고 '앞으로 나아가다'는 뜻에서 유래합니다. 이는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믿음 안에서 성숙해 가는 역동적인 과정을 의미합니다. 바울의 역할은 이 진보를 촉진하고(촉진제 역할), 그 결과로 성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기쁨(χαρὰν, 카란)'을 경험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빌 1:26 "나의 이 일로 말미암아 자랑할 것이 많게 하려 함이라" - 바울의 석방과 재방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ἐν Χριστῷ Ἰησοῦ)'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강력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 이 '자랑(καύχημα, 카우케마)'은 개인적인 교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와 바울의 고난을 통해 역사하셨다는 것에 대한 영광 돌림입니다.

2. 원어 주석 (Greek Lexical Analysis)

헬라어 단어한국어 번역어원/의미 분석신학적 중요성

συνέχομαι (수네코마이)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어 있으니 (빌 1:23) '함께'(συν) + '붙잡다'(ἔχω)의 결합. '함께 붙잡혀 있다', '강하게 억눌려 있다', '사로잡혀 있다'는 의미. 바울의 내적 긴장 상태가 얼마나 강렬했는지를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두 가지 절대적인 가치 사이의 거룩하고 이타적인 압박감.
ἀναλῦσαι (아날뤼사이) 떠나서 (빌 1:23) '다시'(ἀνά) + '풀다'(λύω)의 결합. '풀어주다', '출항하다', '진영을 해체하고 떠나다'의 의미. 죽음을 안식처로의 해방과 여정의 완료로 묘사합니다. 죽음이 끝이 아닌, 새롭고 더 좋은 상태로의 이동(승천)임을 명확히 함.
κρεῖσσον (크레이쏜) 훨씬 더 좋은 일 (빌 1:23) '좋다, 유익하다'는 뜻의 ἀγαθός(아가소스)의 비교급. 단순한 비교를 넘어 '월등하게 좋다, 탁월하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바울은 천상의 상태에 대해 주저 없이 최상의 평가를 내립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지상에서 얻을 수 있는 그 어떤 기쁨이나 사역의 성취보다 우월함을 선포함.
ἀναγκαῖον (아낭카이온) 더 유익하리라 (빌 1:24) '필수적인', '필연적인', '피할 수 없는'이라는 강한 의미의 형용사. KJV는 'more needful'로 번역했습니다. 바울의 생존이 빌립보 교회를 위해서는 '필요조건'임을 강조합니다. 개인의 소망보다 공동체의 필요가 하나님 보시기에 더 '필수적인' 사명으로 인정받는다는 신학적 의미를 부여합니다.
προκοπὴν (프로코펜) 진보 (빌 1:25) '앞으로 나아가다', '선두에 서다'는 뜻. 단순히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방해물을 뚫고 적극적으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역동성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성화는 정체가 허용되지 않는, 지속적인 영적 성장의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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