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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법정에서 선 인류의 얼굴 (로마서 3장 9절~18절)

by 고동엽 2025. 11. 22.

하나님의 법정에서 선 인류의 얼굴 (로마서 3장 9절~18절)

우리는 지금 어떤 법정 앞에 서 있습니다. 이 법정은 세상의 법정과는 다릅니다. 이 법정의 재판장은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며, 증인은 우리 자신의 양심과 역사입니다. 오늘 우리가 듣고자 하는 말씀은 인류 전체, 곧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지성인이든 무지한 자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모든 인간을 향한 최종적인 법적 선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엄중한 법정에서 우리에게 면죄부를 주거나 위로의 말을 건네기보다, 가장 근본적이고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남보다 나으냐?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이 선언은 단지 종교적인 수사가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실존의 정의입니다. '죄 아래에 있다'는 것은 '죄의 지배와 권세 아래 있다(ὑφ’ ἁμαρτίαν)'는 법적인 상태를 의미합니다. 마치 노예가 주인 아래 있듯이, 혹은 전쟁 포로가 포승줄 아래 있듯이,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죄의 권력 아래 묶여 있다는 선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선언 앞에서 그 어떤 민족적 특권이나, 도덕적 노력의 차이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유대인은 율법이라는 거울을 가졌기에 죄인이고, 헬라인은 율법이 없어도 양심이라는 거울을 가졌기에 죄인입니다. 율법이 있건 없건, 지식으로 죄를 알건 모르건, 인류는 단 하나의 공통 분모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 아래 있다는 비참한 현실입니다.

이 비참함은 이내 인간의 영적인 내부를 파헤치는 구절로 이어집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우리의 영혼을 향한 이 해부학적 진단은 너무나 가혹해서 차라리 믿고 싶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선언합니다. 영적인 ‘의인’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스스로 설 수 있는 자가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는 진단입니다. 우리는 흔히 인간에게는 본능적인 종교심이 있어서, 신을 찾고자 하는 순수한 열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진단은 정반대입니다. 죄의 지배 아래 있는 인간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설령 어떤 신적인 존재를 찾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자기중심적인 욕망을 채워줄 우상일 뿐, 진리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도록 설계되었으나, 고장이 나서 '자신'이라는 목적지로만 향하도록 프로그램이 뒤바뀐 것입니다.

여기에서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라는 구절은 죄의 전염성을 보여줍니다. '치우치다(ἐξέκλιναν)'는 길을 벗어나 옆길로 빠진 상태를 의미하며, 이는 모든 사람이 제 갈 길로 가버렸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무익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무익하다'는 말은 썩어서 더 이상 쓸모가 없는 우유나, 녹슬어버린 도구를 의미합니다. 인간의 가장 고귀한 기능, 즉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과 교제하는 기능이 상실되고 부패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사회에서 수많은 선행과 미덕을 보지만,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선'은 그 모든 행위의 동기가 하나님을 향하고 그분의 영광을 위한 것일 때에만 성립합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는 인간이 행하는 모든 선행은 그 근본적인 지향점의 부재로 인해 궁극적으로는 '무익한' 것으로 판정됩니다.

이러한 영적인 부패는 즉각적으로 우리 육신의 모든 기관을 통해 끔찍하게 발현됩니다. 바울은 시편과 이사야서 등의 구약 성경 구절들을 인용하여 죄의 증상들을 해부합니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으며,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목구멍은 숨을 쉬고 생명을 유지하며 대화를 나누는 통로입니다. 그런데 그 목구멍이 '열린 무덤'이라는 충격적인 비유로 묘사됩니다. 무덤은 부패와 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곳입니다. 즉, 인간의 말(목소리)이 생명을 주고 위로를 주기보다, 죽음과 부패, 악취를 퍼뜨리는 근원이 된다는 뜻입니다. 혀와 입술은 속임수와 독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혀는 속이는 데 쓰이고,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습니다. 독사의 독은 순식간에 상대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파괴적인 힘을 가집니다. 이는 우리의 말이 얼마나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우리의 칭찬은 아첨이 되고, 우리의 비판은 험담이 되며, 우리의 침묵조차 때로는 악의를 담고 있습니다.

한때 저는 세상의 눈으로 보기에 완벽한 삶을 살았던 한 사업가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매주 교회에 출석했고, 막대한 자선 기금을 기부했으며, 직원들에게 존경받았고, 가정에도 충실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죄인'이라는 범주에 넣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남들보다 훨씬 낫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예상치 못한 건강 문제로 인해 병상에 눕게 되었고, 자신의 모든 성공과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절대적인 무력감을 경험했습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그는 문득 성경의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들의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그는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성공을 향해 내달렸던 그 발걸음이, 사실은 경쟁자들을 밟고 올라서고, 때로는 약자들을 희생시켜 이익을 취했던 '피 흘리는' 발걸음이었음을. 그는 자신의 자선 행위조차도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의 인정과 명예라는 '자기 영광'을 향한 계산된 움직임이었음을 인정했습니다. 그는 세상의 도덕으로는 흠잡을 데 없는 '의인'이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법정에서는 죄의 독으로 가득 찬, '무익한' 존재였음을 고백했습니다. 이 예화는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죄는 겉모습으로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장 은밀하고 근본적인 동기를 부패시키는 실존의 문제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우리를 움직이는 모든 행위의 목적지, 곧 우리의 발을 언급합니다. 그 발은 파멸과 고생이 가득한 길로 빠르게 달려가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평강의 길(ὀδὸς εἰρήνης)'은 알지 못합니다. 인간의 활동은 늘 번잡하고 분주하지만, 그 모든 노력은 평화를 생산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과 타인에게 고통과 파멸을 안겨줄 뿐입니다. 이 땅의 모든 전쟁, 다툼, 갈등, 그리고 개인의 불행의 근원에는 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영적 맹목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의 결론은 18절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을 두려워함'은 경건한 외경심(外敬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사라진다는 것은 인간이 더 이상 하나님을 자신의 존재 근거이자 최종적인 심판관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신격화하며, 죄를 짓는 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그 결과, 입으로는 저주와 악독을 쏟아내고, 발로는 파멸의 길을 재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로마서 3장 9절부터 18절까지가 선언하는 인류의 초상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절망케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의 목적은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 죄의 권세 아래서 벗어날 수 없음을, 우리의 모든 도덕적 노력이 무익함을 깨닫게 하여, 모든 입을 막고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고백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이 심판의 엄중함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이어지는 말씀, 곧 3장 21절 이하에서 제시되는 하나님의 의,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값없는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놀랍고 감격스러운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죄의 깊이를 알 때, 구원의 높이와 넓이를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법정의 선언 앞에서 우리 모두는 겸손히 무릎 꿇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만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엄중한 진단이 우리를 자기 의에서 건져내어,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을 의지하는 참된 은혜의 길로 인도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1. 요약 (Summary)

로마서 3장 9-18절은 사도 바울이 유대인과 이방인(헬라인) 모두가 예외 없이 죄의 권세(ὑφ’ ἁμαρτίαν, under sin) 아래 놓여 있음을 확증하는 구절입니다. 바울은 구약 성경(시편, 이사야, 전도서 등)의 일곱 구절을 조합하여 인용함으로써, 인간의 전적 부패와 타락의 상태를 영적, 지적, 관계적, 그리고 신체적 영역 전반에 걸쳐 증명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찾지 않고, 모두가 무익하게 되었으며, 입으로는 파괴적인 말(열린 무덤, 독사의 독)을 하고, 발로는 평화 대신 파멸의 길을 재촉합니다. 이 모든 근본 원인은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음'에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의로운 행위로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최종적으로 선언하는 역할을 합니다.

2. 묵상 포인트 (Meditation Points)

  1. 죄의 보편성 (롬 3:9): 나는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보다 도덕적으로 낫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내가 가진 어떤 특권(신앙적 배경, 지식, 선행)이 나를 '죄 아래에 있음'이라는 보편적 진리에서 제외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가?
  2. 영적 무능력 (롬 3:11-12): 나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는가, 아니면 나의 필요와 욕망을 채워줄 '신적인 도구'를 찾는가? 성경이 '깨닫는 자도,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고 선언할 때, 나의 모든 영적 추구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서 시작되었음을 고백하는가?
  3. 말의 치명성 (롬 3:13-14): 나의 목구멍이 '열린 무덤'이나 '독사의 독'과 같이 부패와 파멸을 퍼뜨리는 통로가 된 적은 없는가? 나의 말이 생명을 살리는 데 사용되는지, 아니면 타인을 해치고 관계를 무너뜨리는 데 사용되는지 깊이 성찰해야 한다.
  4. 행위의 파멸성 (롬 3:15-17): 나는 삶의 에너지와 노력을 평강(Shalom)을 추구하는 데 사용하는가, 아니면 경쟁, 갈등, 그리고 궁극적인 파멸로 이어지는 '피 흘리는' 발걸음을 재촉하는가?
  5. 경외심의 상실 (롬 3:18): 나의 삶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사라졌을 때 어떤 죄를 쉽게 범하는가? 하나님 경외가 나의 모든 행동과 결정의 기초가 되도록 어떻게 의식적으로 노력할 수 있는가?

3. 강해 (Exegesis - 구조 및 흐름)

로마서 3:9-18절은 로마서의 핵심 주제인 '하나님의 의'를 설명하기 위한 도입부로, 죄의 상태를 극대화하여 보여줍니다.

  • 법적 선언 (V. 9-10): 유대인과 헬라인, 모두 '죄 아래에 있음(ὑφ’ ἁμαρτίαν)'을 재확인합니다. 이는 죄가 외부의 행위뿐만 아니라 인간 존재 전체를 지배하는 '법적 권세'임을 명시합니다.
  • 영적 상태 (V. 11-12): 인간의 심리적, 의지적 부패를 진단합니다.
    • 의인은 없다 (V. 10):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독립적으로 설 자가 없다는 절대적 진술.
    • 깨닫는 자, 찾는 자 없다 (V. 11): 지성과 의지가 이미 타락하여 스스로는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이나 갈망을 가질 수 없음을 선언합니다.
    • 치우쳐 무익하게 됨 (V. 12): 히브리어 '술'(go astray)의 번역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길로 갔으며, 그 결과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치 없는(무익한) 존재가 되었음을 강조합니다.
  • 신체적 발현 (V. 13-17): 죄가 육체의 각 지체를 통해 어떻게 표출되는지 구체적으로 나열합니다. (구약 인용의 절정)
    • 목구멍/혀/입술 (V. 13-14): 말의 타락. 생명을 전해야 할 기관이 죽음(열린 무덤)과 독(독사의 독)을 생산합니다.
    • 발/길 (V. 15-17): 행위의 타락. 행동의 목적지가 파멸(σύντριμμα, crushing)과 고생(ταλαιπωρία, misery)입니다. 평강(εἰρήνη, shalom)을 모르는 삶의 방식을 지적합니다.
  • 근본 원인 (V. 18): 모든 죄의 행위와 부패의 뿌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음(φόβος Θεοῦ)'**에 있습니다. 하나님 경외심의 상실은 곧 인간이 자신의 삶의 기준과 가치를 자신에게 두는 교만으로 이어집니다.

4. 주석 (Commentary)

구절핵심 내용신학적 함의

3:9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죄 아래에 있다(ὑφ’ ἁμαρτίαν)'는 아담 안에서 모든 인류에게 전가된 죄의 법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행위의 죄를 넘어선 존재론적 굴복 상태입니다.
3:10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의로움의 기준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거룩함이며, 그 기준에서 볼 때 인간은 전적으로 무능력합니다. 여기서의 의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의미합니다.
3:11-12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인간의 지성과 의지가 타락하여 스스로는 구원에 필요한 영적 진리를 인식하거나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다는 '전적 무능력(Total Inability)'을 말합니다.
3: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말의 부패를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말이 생명을 죽이는 악취와 독설을 내뿜는 통로가 되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합니다.
3:15-17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인간의 능동적인 행위가 파멸과 고통을 초래하는 방향으로 신속하게 움직임을 지적합니다. 평강(샬롬)의 부재는 죄의 가장 큰 결과입니다.
3:18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죄의 모든 증상(말과 행위의 타락)의 궁극적인 근원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살겠다는 선언입니다.

5. 원어 주석 (Original Language Commentary)

  • ὑφ’ ἁμαρτίαν (휘프 하마르티안) - "죄 아래에":
    • 전치사 *ὑπό (휘포)*의 속격 형태인 *ὑφ’*는 '아래에', '지배 아래에'라는 의미입니다. *ἁμαρτίαν (하마르티안)*은 죄(sin)를 뜻합니다.
    • 이 표현은 죄를 단순히 행위의 목록이 아니라, 인간을 사로잡아 지배하는 '법적 권세' 또는 '주인'으로 제시합니다. 인간은 죄의 지배하에 있는 노예와 같습니다.
  • ἐξέκλιναν (엑세클리난) - "치우쳐":
    • 동사 *ἐκκλίνω (에클리노)*의 과거형으로, '밖으로 기울어지다', '길에서 벗어나다'라는 뜻입니다.
    • 창조 질서와 목적(하나님께로 향해야 하는 길)에서 완전히 이탈했음을 강조하며, 인간의 타락이 단발적인 실수가 아니라 전적인 '방향 전환'이었음을 보여줍니다.
  • ἀχρεῖος (아크레이오스) - "무익하게 되고":
    • '쓸모없는', '쓸모를 잃은'이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목적을 위해 존재하지만, 그 목적을 수행할 능력을 상실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 인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창조되었으나, 죄로 인해 그 본래적이고 고귀한 목적을 수행하는 데 무능력해졌음을 선언합니다.
  • ὀδὸς εἰρήνης (호도스 에이레네스) - "평강의 길":
    • *ὀδός (호도스)*는 '길', *εἰρήνη (에이레네)*는 히브리어 샬롬의 번역으로, '평화', '안녕', '온전함'을 의미합니다.
    • 인간이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온전함과 화해의 길'을 죄로 인해 보지 못하며, 오히려 자신과 타인을 파멸로 이끄는 길로 질주하고 있음을 대조적으로 보여줍니다.

6. 금언 (Aphorisms)

  1. "죄의 가장 무서운 증상은 그 죄를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의롭다 여기는 교만이다."
  2. "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다는 성경의 선언은,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결코 하나님께 도달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찾아오심만이 유일한 희망임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3. "열린 무덤 같은 말은 생명을 죽이고, 독사의 독 같은 말은 영혼을 파괴한다."
  4.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사라진 눈은 오직 자신과 세상의 유혹만을 쫓을 뿐이다."

7. 신학적, 주제별, 목회적 정리 (Theological, Thematic, and Pastoral Review)

A. 신학적 정리 (Theological Review)

  • 전적 타락/부패 (Total Depravity): 이 구절은 인간의 타락이 단순히 일부 기능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지성(깨닫는 자도 없고), 의지(찾는 자도 없고), 감정 및 행위(온 몸의 지체들) 등 인간 존재의 전 영역에 걸쳐 있음을 완벽하게 증명합니다. 인간의 어떤 부분도 죄의 오염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 죄의 법적 및 실존적 측면: 죄는 단순히 도덕적 행위 목록(crime)이 아니라, 인간을 지배하는 '권세(power)'이자 '법적 상태(status)'입니다. 이 상태 아래에서는 그 어떤 선행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거나 죄의 권세에서 해방될 수 없습니다.
  • 구약 성경의 통일성: 바울은 구약 성경의 다양한 구절을 '꿰어 맞추는' 방식으로 인용함으로써, 유대인들이 그토록 자랑하던 율법과 선지서 자체가 유대인 포함 모든 인류의 죄인 됨을 선언하고 있음을 보여주어, 율법의 기능을 '의로움의 근거'가 아닌 '죄를 깨닫게 하는 거울'로 확립합니다 (롬 3:20).

B. 주제별 정리 (Thematic Review - 죄의 해부학)

본문은 죄가 인체를 통해 어떻게 발현되는지 체계적으로 나열합니다.

지체 (기관)죄의 발현파괴의 결과

목구멍 열린 무덤 부패, 죽음의 악취, 생명 상실
혀/입술 속임수, 독사의 독 관계 파괴, 치명적인 상처, 저주와 악독
피 흘리는 데 빠름 파멸(고통), 평강의 길 상실
눈앞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음 모든 죄의 근원, 신적 권위에 대한 반항

C. 목회적 정리 (Pastoral Review)

  • 겸손의 기초: 이 말씀은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의 의를 포기하고 절대적인 겸손 위에 서게 만듭니다. 타인과의 비교를 멈추고,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 기준 앞에서 자신의 죄인 됨을 깊이 고백하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 은혜의 필연성 강조: 인간의 전적 부패를 선명하게 보여줌으로써, 3장 21절 이후에 나올 '하나님의 의'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이 얼마나 값없는 은혜이며 필수적인 것인지를 깨닫게 하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 회개와 변화의 촉구: 목회자는 성도들이 단순히 지적으로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말과 행동(목구멍과 발)이 실제로 파멸이 아닌 평강을 생산하고 있는지 점검하도록 구체적인 회개를 촉구해야 합니다. 진정한 변화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곧 경외심을 회복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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