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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회개

너희 죄가 사함을 얻음이요 요일 2:12

by 【고동엽】 2025. 1. 1.

너희 죄가 사함을 얻음이요                요일 2:12       

 

존 C. 라일

 

“너희 죄가 사함을 얻음이요” 요일 2:12

      

걱정스러워하는 점은 이 구절이 수천 번 말해졌다 해도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정확히 전달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부활을 믿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죄의 용서”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죄에 대한 용서의 필요이다.

 

죄의 용서는 기독교 신앙의 첫걸음이 된다.

인간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가 서 있어야 할 올바른 위치를 마땅히 알아야 하며

자신의 무가치함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큰 죄인이다.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났으며 그리고 “죄의 삯은 사망”이다. 롬6:23.

그러기에 우리는 반드시 용서를 받아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잃어버려지게 된다.

 

우리는 그분의 거룩한 법을 깨뜨렸으며 모두 그분의 법을 어겼다.

십계명 중에서 우리를 정죄하지 않을 계명은 하나도 없다.

 

우리는 행실을 통해, 때로는 말로 또는 생각과 상상을 통해 끊임없이

그 법을 어겨왔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있다.  히9:27

 

우리는 용서를 받아야 한다. 우리 중에 진노를 피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적인 죽음을 거쳐야 하며,

또한 마지막 날에 정죄 받지 않기 위해 다시 태어나야 한다.

 

▲예술과 과학과 군사력을 통하여서도, 또는 법률가와 정치가를 통하여서도

우리의 본성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죄는 아담의 자손, 모두에게 있는 유전병이다.

우리의 믿음은 얼마나 연약한가!

또 우리의 사랑은 얼마나 냉정하며, 우리의 행위는 얼마나 보잘 것 없는가!

 

우리의 열심, 이것은 또 얼마나 작은가!

우리의 인내의 약함, 우리의 겸손의 미약함은 또 어떤가!

우리의 자기 부정은 얼마나 왜소하며, 우리의 지식은 또 얼마나 모호한가!

 

우리의 영성은 얼마나 얕은가! 우리의 기도는 또한 얼마나 형식적이며,

은혜를 구하는 우리의 열망은 얼마나 부족한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라고 한 다윗의 말은 진리이다.” 시14:3

 

▲우리를 굽어보시고 언젠가 그분 앞에서

자신의 행위를 설명하게 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분 가까이 있었던 자들은 그분을 일컬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고 하였다. 계 4:8

 

“하나님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합1:13,

성경에는 “하나님은 그 사자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 욥4:18

 

“하나님의 눈에는 달이라도 명랑치 못하고 별도 깨끗지 못하거든” 욥25:5,

“하늘이라도 그의 보시기에 부정하거든” 욥15:15 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으신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 중 비참한 죄인이 아닌 자가 누가 있겠는가?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오만한 생각을 벗어버려야 한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함께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 창18:27.

라고 말해야 하며, 욥과 함께 “나는 비천하오니” 욥40:4. 라고 말해야 하며,

 

이사야와 같이 “우리는 다 부정한 자” 64:6.라고 말해야 하며,

요한과 같이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1:8. 라고 말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내리게 될 분명한 결론은

우리 모두가 큰 죄인이며 우리 모두는 큰 용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천국을 향한 첫 단계는 우리가 지옥에 떨어질 마땅한 자들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아는 것이다.

 

우리 앞에는 두 가지 선택이 놓여 있다.

즉 우리는 반드시 용서를 받아야 한다는 것과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비참해지는 길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교회를 가는 목적이 단지 그들의 마땅한 의무를 배우고

도덕성을 키우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교도의 철학자 또한 교회에서 듣는 것과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그들에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기독교 신앙의 본체는

죄를 치료하는 치료약이라고 배우고 알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복음의 영광이며 탁월함이라고 생각한다.

 

이 생각은 인간의 마음을 충족시키게 됨으로써

사실상 그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들기도 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당신은 어떤 자인가를 정직하게 생각해 보라.

당신의 기독교 신앙이 당신을 위해 아무런 일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이 위대한 진리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욥과 같이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욥13:23.라고

기도하게 될 것이다.

 

 

◑2. 용서의 방법

 

1. 당신은 목사를 의지하고 신뢰할 것인가?

목사는 당신을 용서할 수가 없으며 단지 그 길을 제시해 줄 수 있을 뿐이다.

 

그는 당신에게 생명의 떡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먹어야 하는 것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

 

목사는 당신에게 평화의 길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은 스스로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목사는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능을 가지지 못했으나

용서받을 자들이 누구인가에 대하여 선포할 수는 있다.

 

2. 당신은 성찬과 의식에 의지하고 매달릴 것인가?

이를 올바르게 이용하는 한 그로 말미암아 믿음이 확고해지고

은혜를 더욱 받게 되지만, 그러한 것들이 죄인을 의롭게 할 수는 없다.

 

규칙적인 예배로 자신의 의를 세웠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매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결과를 빚게 될 뿐이다.

 

3. 당신은 자신의 행위와 노력, 선행, 기도와 은혜 베풂을 신뢰하겠는가?

자신의 행위와 선행, 기도와 은혜 베풂을 신뢰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빚을 청산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4. 당신은 자신의 회개와 회심을 신뢰하겠는가?

만일 자신의 회개와 회심에만 의지하고 있다면,

당신은 상한 갈대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

 

심판관은 도둑이 그가 한 행동에 대해 후회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용서하지 않는다.

불편한 양심을 깨끗이 하고 평화를 얻게 해주는 것은 눈물에 의한 것이 아니다.

 

5. 그렇다면 인간이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어디로 가야만 하는가?

단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세주로서 믿는 것이다.

 

그것은 당신의 영혼을 그 죄와 더불어

그리스도께 유보 없이 맡기는 것이며,

자신의 행위와 공로에 의지하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리스도의 의, 그리스도의 공로를 소망의 바탕으로 의지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 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행 10:43.고 말한다.

 

바울은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골 1:14.라고 기록하였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죽으심으로써

우리 죄에 대해 온전하고 만족할 만한 보상을 하셨다.

이제 천국의 문에 관한 권한은 그분의 어깨 위에 놓였다.

 

그분께서는 친히 문이 되셔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 문으로 들어가는 자만이 구원받게 될 것이다. (행 5:31, 계 1:18, 요 10:9)

 

한마디로 말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기꺼이 그것을 구할 수 있도록

가능한 온전한 용서를 베풀기 위하여 하나님과 우리를 화해시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고통을 다 감당하셨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옷을 입히기 위해 의의 옷을 마련해 놓으셨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정결케 하기 위하여 생명 샘을 열어 놓으셨다.

 

그분께서는 우리와 하나님 아버지 사이에 놓인 모든 장벽을 제거하시고

가장 사악한 자라도 되돌아 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길을 닦아 놓으셨다.

 

이제 모든 것은 다 준비되었으며 죄인들은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고,

공급받을 수 있다.

 

6. 우리가 용서받기 위하여 요구되는 단 한 가지 일은 순수한 믿음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단지 죄인으로서

예수님을 온전히 믿으며,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께 의지하며,

그분께 기대고, 그분께 의뢰하며, 우리의 영혼을 그분께 맡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단지 다른 모든 소망을 버리고

오로지 그분께 매달리는 일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믿음이지 지식이나 회심이나 거룩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지체 없이 그리스도께로 나아오라.

 

자신의 용서와 칭의의 문제에 있어서 요구되는 것은

단지 그리스도를 믿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마음속에 확고히 새겨 두기를 바란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은 천국으로 가는 길을 너무 쉽게 만들기 때문에

교리에 맞지 않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교리가 어리석고 열광적이라고 말한다.

 

이 선언만큼 세상에 영향을 끼쳤던 교리는 없다.

이것은 사도들이 이방인 지역으로 나아갈 때

그들에게 커다란 힘이 되어준 영광스런 교리였고,

그들은 세상을 거꾸로 뒤집었다.

 

이것은 종교개혁의 교리였고, 지난 세기 중반에 교회를 소생시켰던 교리이다.

휫필드와 웨슬리, 베리지 등, 그들은 비록 숫자는 적었지만

많은 영혼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이것은 오늘날 이 땅 위에 있는 교회의 진정한 힘이 되는 교리이다.


교회를 살아있게 하는 것은 어떤 법령도 기부금도 학식도 아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값없는 용서가

교회의 제단에서 신실하게 선포될 때,

지옥의 문은 교회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이 교리가 잊혀지고 억눌릴 때, 교회의 촛대는 곧 옮겨질 것이다.

사라센이 제롬과 아타나시우스 그리고 키프리안, 어거스틴이 설교했던 지역을 점령했을 때,

그들은 이 교리의 설교를 기억하지 못함으로 인해

그 지역의 교회들은 일소되었다.

 

교회가 가장 융성하였던 시기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가

가장 높여질 때였음을 잊지 않도록 하자.

교회는 그곳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값없는 용서를 찬양할 때 비로소 유익한 곳이 된다.

 

이것은 다른 어느 것보다도

사탄의 왕국을 넘어뜨리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되는 교리이다.

 

존 베리지는 그의 교구에서 도덕성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설교하지 않음으로 해서

그의 교구인들 중에는 도덕적이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죄인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믿음으로 말미암은

값없는 구원을 설교하기 시작하자 많은 영혼이 하나님께로 돌아서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불편한 양심에 평화를 가져다주며 고통 받는 영혼에 안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유일한 교리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영적 상태에 관해 알지 못하는 동안에는

이 교리 없이도 지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일단 그가 영혼의 잠에서 깨어난다면,

속죄의 보혈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게 되는

평화 이외의 어떤 것도 그를 평안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 교리를 확고히 붙잡지 않고 어떻게 성직자가 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값없는 용서의 교리는

그리스도의 성직자의 오른손이다.

 

이 교리가 주어짐으로 해서 힘을 갖게 되며,

인간의 영혼에 선을 행하게 되므로 결코 절망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교리는 법 제도와 형벌 제도가 해내지 못하는 도덕적인 변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세속의 지식으로도 해결해 내지 못하는 일을 해내고 있다.

 

가장 사악하고 완고한 죄인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예수의 사랑하심과 그분의 값없는 용서에 대해 듣고는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처럼 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나니”(갈6:14)

 

7. 당신은 이 진리를 정말로 받아들였는지 스스로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습관처럼 행하고 있는 성직의 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분께서는 오늘날 외적인 의식에 의해 잊어버려졌으며

교회의 시야에서 벗어나 버렸다.

 

“사람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요20:13)

 

아마도 그곳에는 안락한 의자와 훌륭한 성가대, 훌륭한 설교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일 그리스도의 복음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고 있지 않다면

그곳에 머물러 있지 말라.

그곳은 당신의 영혼이 있어야 할 장소가 아님이 확실하다.

 

 

◑3. 용서받기 원하는 모든 자에 대한 격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1:17

 

1. 그것은 온전하고 완전한 용서이다. 그 아들은 자신의 의로 옷 입히시며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아무 흠이 없구나”라고 말하신다. 아4:7.

 

2. 그것은 값없고 무조건적인 용서이다.

예수님이 요구하는 한 가지 자격은 단지 당신이 스스로 죄 있는 사악한

자임을 느끼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도록” 초청하시며,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고 말씀하신다. 사55:1, 계 22:17.

 

3. 그것은 제안된 용서이다. 죄인들이 구세주를 구하기 전에 구세주께서

죄인들을 구하시는 이 복음은 실로 커다란 용기를 주며 우리를 강력하게 위로하는 것이다.

 

4. 그것은 기꺼운 용서이고 확실한 용서이며 현재의 용서이다.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신다.

 

당신이 그리스도께 피하는 그날, 당신의 죄는 모두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이미 당신의 죄를 용서할 준비를 하고 계신다.

 

5. 무엇보다도 그것은 영원한 용서이다. 한 번 생명책에 기록되면

그 이름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망설이지 않고 심판을 기대하며

무거운 마음 없이 영원을 기대할 수 있다.

 

 

◑4. 용서를 발견하는 표지

 

1. 용서받은 영혼은 죄를 미워한다. 그것은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인데,

어떻게 그것을 싫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그들을 종노릇하게 하는 애굽 원수인데

어떻게 쓴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일 당신이 아직도 죄와 친구관계를 이루고 있다면

당신과 하나님 사이에는 아직도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2. 용서받은 영혼은 그리스도를 사랑한다. 그분을 가장 높아지게 하는 일은

그들을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이다.

그분으로 가득한 내용을 가진 책은 그들의 마음을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이다.

 

이 땅에서 그들이 가장 가깝게 느끼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알아보는 자이다. 그리스도는 그들의 구속자이며, 목자이며,

의사이며, 그들의 왕이시며, 구원자이며, 그들의 친절한 안내자이며,

그들의 희망이며 기쁨이며 그들의 모든 것이다.

 

3. 용서받은 영혼은 겸손하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빚지고 있는 것이며, 그리고 그 은혜를 갚을 것을 망각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무슨 권리로 교만할 수 있겠는가? 자신을 죄인이며

연약한 자로 인정한다면, 겸손만큼 우리에게 어울리는 옷도 없다.

 

4. 용서받은 영혼은 거룩하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며, 그분의 뜻대로 행하며,

자신의 몸과 영을 통하여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다.

 

죄를 용서 받는 것과 죄를 사랑하는 것은 물과 기름과 같은 것이다.

그 두 가지는 결코 함께 갈 수 없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겨진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된다.

 

5. 용서받은 영혼은 용서한다. 그들은 자신에게 행해졌던 일을 그대로 행한다.

그들은 형제의 죄를 비난하지 않는다.

구원받게 되는 모든 영혼은 용서를 통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그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표지는 용서이다.

용서는 천국에 거주하는 모든 구속받은 자들이 영원히 노래하게 되는 주제이다.

 

 

◑5. 맺는 말

 

1. 질문을 한다. 당신은 용서를 받았는가? 그분으로 인한 평화를 발견하였는가?

당신에게 제안된 용서를 통해서 유익함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 제안된 용서는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의사가 처방된 약을 병자가 쳐다보기만 하고 삼키지 않는다면

그 약이 병자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죄가 용서 받아야 한다면 그 시기는 이 땅에 살고 있는 바로 지금이다.

당신의 죄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분께 놓여야 하며

그리고 그분의 의는 당신 위에 놓여야만 한다.

예수님의 보혈은 당신의 양심에 가책이 되도록 해야 한다.

 

2. 경고한다. 만일 당신이 용서 없이 죽는다면,

당신의 머리 위에는 검이 놓여 있는데,

그것은 당신과 죽음 사이에 단 한 걸음의 간격으로 놓여 있다.

 

그런데도 잠자리에서 편안히 잠잘 수 있을 것인가?

만일 당신이 용서받은 영혼이 아니라면, 자신의 신앙으로 인해 무엇을 얻었는가?

 

당신은 예배에 참석하고 성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결국 당신이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이 얻은 것은

단지 일시적인 것들에 불과하다.

 

당신이 그분의 방식대로 그분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그분으로부터 어떤 자비도 얻지 못하는 쓰라린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당신은 언젠가 자비를 얻게 될 것을 소망하고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 목을 조르는 것과 같다.

주의 자비만을 생각하다가는 이미 때가 늦을지도 모른다.

 

3. 초대한다. 그리스도께로 나오기 전에 행한 일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라.

지금 모습 그대로 나아오기를 청한다. 회개를 통해 하나님과 화평하고

그리스도께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함께 시작하는 것이다.

 

마음을 고치고 새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 다음에 행위를 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어떤 것이 진정한 기독교 신앙인지 판단해 보라.

기쁜 소식은 과연 어떤 것이겠는가? 그러니 죄와 함께 나아와서 기꺼이 받으라.

 

4. 충고한다. 그분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런데 왜 불안해하며 의심하고 있는가?

그것은 약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은혜 안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 가운데서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 의탁하는 일, 그리고 어느 곳에서나 그분으로 옷을 입는 일,

더욱 잘 보고, 더욱 잘 느끼며, 더욱 잘 알고, 더욱 행하는 일,

이 모든 것이 우리의 목적하는 바가 되어야 하며

매년 새롭게 시작하는 일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더욱더 다른 영혼을 위해 선을 행하도록 힘써야 한다.

자신의 영적인 관심에만 빠져 있거나

자신의 영적인 병에만 관심을 쏟으면서

다른 영혼에 대해서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앙적 이기심에 빠져 있는 것이다.

 

모두 다 함께 천국에 갈 수 있기를 추구해야 한다.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 지리라” 민11:25

 

무엇보다도 먼저 지금까지 해왔던 것보다 더욱 예수 안에서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의 목표를 높이 잡도록 하자.

의의 태양 안에서 걸어 나가도록 하자.

그리하면 계속 성장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분과의 교제에 대해 빨리 눈떠야 하며,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귀를 밝혀두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자신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를 방해하는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서 “옆으로 물러서라”고 말하도록 해야 한다.

그분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면 세상이 암흑과 냉기로 가득 차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의 죄가 용서받았다고 해도 우리의 가장 좋은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

 

 

*출처 자기부인 / 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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