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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인 명설교편◑/이정익목사 명설교(385편)

영혼의 데이트 (2)

by 【고동엽】 2024. 11. 19.

영혼의 데이트 (2)  

 

 

 

 

                                     왕상 19:15-18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

 

                 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

 

                 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세상에는 참 무서운 병들이 다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누가 병원에 입원했다 하면 겁부터 납니다. 오늘은 암이 가장 무서운 병입니다. 아직 치료할 묘안이 없어서 더욱 무섭습니다. 조기발견이 가장 좋은 방법이고 치료할 의사를 잘 만나는 것이 그래도 좋은 방법일 뿐입니다. 치매도 무서운 병입니다. 어떤 면에서 암보다 더 무서운 병은 치매일 수 있습니다. 이 치매는 몸은 멀쩡한데 생각이 망각되고 기억이 소멸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멀쩡하게 잠자고 일어나서 옆에 있는 아내보고 “아줌마는 누구세요“ 한다면 참 황당할 것입니다. 암보다 더 무서운 병입니다.  

 

 그런데 오늘 현대인들에게는 또 하나의 무서운 병이 더 있습니다. 그것이 우울증입니다. 이것도 참 무서운 병입니다. 몸과 정신은 말짱한데 깊은 우울증에 빠져버리면 무서운 환자가 되어버립니다. 우울증 증상은 우선 만사가 귀찮아집니다. 그래서 대낮인데도 이불로 머리를 덮어쓰고 누워 있습니다. 그렇다고 잠을 자는 것도 아닙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싫고 누구도 반갑지 않고 움직이기도 싫고 피곤하고 가슴은 무겁고 답답하고 외롭고 하루에도 몇 번씩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우울증입니다. 지금 여러분들 중에도 이 우울증에 시달리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병은 고칠 수 있습니다.  

 

 

 

 

 

성경에도 우울증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킨 사람입니다. 홍해를 갈라 백성들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게 한 사람입니다. 모세는 백성들을 이끌고 미처 완벽하게 준비하지 못하고 애굽을 빠져나왔습니다. 광야에서 몇 날을 보내는 동안 불편하기 짝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 백성들은 고기를 달라 물을 달라고 아우성입니다.  또 “누가 우리를 애굽에서 끌어내라 하였느냐”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때 모세는 머리를 싸맸습니다. 정신이 어지러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호소하기를 “왜 내게 이 짐을 주셔서 나로 이 고난을 받게 하십니까, 이 백성을 내가 낳았습니까, 내 어찌 이 백성들을 어미가 아이를 품듯 품고 가나안까지 가라고 하십니까, 이 백성들에게 줄 고기가 어디 있습니까, 차라리 나를 죽여 이 비참한 모습을 보지 않게 해 주소서”하고 울부짖었습니다. 그 내용이 민 11:11-15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때 모세는 만사가 귀찮아졌습니다. 지쳤습니다. 탈진했습니다. 얼마나 심각합니까. 이것이 우울증 증세입니다.    

 

 또 욥을 보십시오. 욥은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을 다 잃었습니다. 열 남매를 잃었습니다. 몸에 병까지 들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아내는 욥을 저주하고 집을 나가버립니다. 그때 욥은 심각한 우울증 증세를 보입니다. 그리고 욥은 3장에서 이렇게 한탄합니다. “내가 태어나던 날 멸망하였더라면, 그 날이 캄캄한 밤이었더라면, 흑암이 그 날을 덮었더라면, 그 밤에 자식을 배지 않았더라면, 그 밤에 새벽 별이 어두웠더라면,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가 젓을 빨았던가.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금 내가 평안히 자고 있을 것이 아닌가.” 얼마나 큰 절망입니까. 그 상태에서 세상에 즐거움이 있고 단잠이 있었겠습니까.      

 

 또 오늘 읽은 본문을 보십시오. 선지자 중의 선지자인 엘리야는 바알선지자 850명과 갈멜산 전투에서 혼자 싸워 통쾌한 승리를 거둡니다. 그 날은 엘리야의 날이었습니다. 아주 멋있게 깨끗하게 아주 통쾌하게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이세벨로부터 내일 이 맘 때 너도 저 사람들과 똑같이 만들어주겠다는 전갈을 받습니다. 엘리야는 그 길로 브엘세바 광야로 도망갑니다. 싸리나무 아래에 앉아 하나님께 죽기를 바라며 눈물을 흘립니다. “이제는 넉넉하오니 나를 죽여주소서” 그리고 쓰러져 잠들었습니다.

 

 이상에 나오는 모세나 욥이나 엘리야는 모두 신앙의 위인들입니다. 이들 모두 어느 날 차라리 죽여 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울증입니다. 지금 여러분들 중에도 이런 증상을 느끼는 분들이 꽤 많을 것입니다. 의욕상실, 미래 암담, 기쁨상실, 행복상실이 우울증의 증상입니다. 이때는 만사가 귀찮아집니다. 죽고 싶어집니다. 우리 모두는 이런 우울증 상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엘리야가 어떤 사람인데 우울증에 빠집니까. 엘리야는 기적의 사람,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한때 그는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우울증은 특정인에게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감기처럼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감기 바이러스는 지금 이 시간 여기에도 집에도 밖에도 다 있습니다. 그런데 걸리는 사람이 있고 안 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감기 바이러스를 이길 만한 인체의 면역기능이 제대로 작동되면 안 걸리는 것이고 면역기능이 약하면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울증도 우리주변에 널려 있습니다. 우리의 삶속에, 사역 중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기대가 좌절되었을 때 찾아오는 실망감, 심한 스트레스, 갑작스런 재난으로 인한 고통, 신체적인 부작용 등 이 같은 요인들이 발생할 때 우울증이 찾아옵니다. 그때 그것을 이길만한 면역이 있으면 이길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그때 우울증이 찾아오게 됩니다. 모세도, 엘리야도, 욥도 모두 그 충격에서 헤어날 만한 힘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충격에서 차라리 죽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 죽기를 한한 것입니다. 이 우울증을 말할 때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중 핵심인물들도 이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얼마든지 이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사람이 죽는 것을 보면 병이 커서 죽는 것 아닙니다. 작은 병도 그냥 놔두면 죽는 단계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우울증을 앓는 분들이 종종 자살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어느 의과대학에서 발표한 것을 보면(미국 존스 홉킨스) 우울증 환자의 자살비율은 보통 사람의 4배나 높다고 발표했습니다. 그 말은 이 우울증을 그냥 놔두면 큰 병이 된다는 말입니다. 감기를 우습게 여기지만 악화 되면 독감으로 폐렴으로 발전하여 마침내는 생명을 위협하듯이 감기도 처음에는 가벼운 증상이었지만 그냥 놔두면 큰 병으로 발전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우울증은 특히 오늘 현대인들에게 많이 찾아오는 병입니다. 삶에서 지쳤을 때, 실패했을 때, 관계가 악화 되었을 때, 소외당했을 때, 감당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쳤을 때,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졌을 때, 인생의 허무를 느낄 갱년기에 이 우울증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이 우울증을 현대병이라고도 합니다. 이 병의 문제점은 딱히 수술하고 도려내고 약을 바르면 낫는 그런 병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면 신경성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문제가 있습니다. 일차적인 병 같으면 수술하고 치료하고 약을 먹으면 낫는데 이 우울증은 그렇지 못하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데이트 할 기회

 

 

 

 

이 우울증은 인간이 그만큼 약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병입니다. 이 우울증은 현재 성공한 사람, 행복한 사람, 즐거움이 있는 사람, 기쁘게 할일이 있는 사람, 그리고 영적으로 은혜를 깊이 유지하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삶에 허무를 느낄 때, 위기가 찾아왔을 때, 삶에 큰 충격을 받았을 때 그때에 이 병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이 우울증은 사람이 약해질 때 찾아옵니다. 모세도 엘리야도 욥도 모두 실패했을 때, 가장 약해졌을 때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렇게 약한 심성을 가진 인간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예수를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인간의 약한 육체적 한계를 먼저 체휼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세상에서 약하게 살아가고 병들고 고난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눈물을 흘리셨고 애통하셨고 금식하셨고 병든 사람들이 오면 누구든 그냥 돌려보낸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죽은 사람의 무덤 앞에서 한없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모세가 죽기를 한하고 넋두리를 하고 지쳐서 나를 이제는 죽여 달라고 한탄할 때 그때 하나님은 “그럼 죽어버려“하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낙심해 있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이스라엘 노인 중에서 70명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도 네게 준 영감을 주어 백성을 지도하게 하리라, 그리고 백성들에게 이르라, 내일 백성들에게 고기를 먹일 것이니 하루나 이틀이 아니라 코에서 고기 냄새가 날 때까지 먹여 주리라“고 말씀하시고 위로하여 주셨습니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어디서 고기를 준비하여 장정만 60만 명인데 한 달 동안 어디서 무슨 방법으로 고기를 먹이겠나이까.”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왜 걱정이 많으냐, 여호와의 손이 짧아서 못할 줄 아느냐, 네가 이제 네 눈으로 보리라.” 그리고 하나님은 메추라기를 보내서 입에서 고기냄새가 나도록 먹게 하셨습니다.( 11:) 이것이 이 우울증을 고치는 방법입니다. 이 우울증은 하나님과 깊은 대화 즉 영혼의 데이트를 함께 걷게 되면 낫는 병입니다. 그리고 실패감이 회복되면 우울증은 저절로 치유되는 병입니다. 모세가 그래서 우울증에서 치유됩니다.  

 

 

 이것은 엘리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엘리야는 지금 바알 선지자 850명과 싸워 통쾌하게 승리한 만큼 이번에는 자기분노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빨리 나를 죽여 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치고 허기진 상태로 누워 깊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잠들어 있는 엘리야에게 다가 오십니다. 오셔서 그를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지시고 위로하시고 격려하셨습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어루만지시며 엘리야의 상한 마음속을 깊이까지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리고 허기진 그를 위하여 숯불에 구은 떡과 물을 주시며 먹으라고 권하셨습니다. 엊그제까지 영적 전투에서 치열하게 싸워 통쾌하게 승리한 엘리야가 지금은 초죽음이 되어 죽여 달라고 항변하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네가 사역자냐?, 네가 내 종이냐?, 꼴좋다, 당장 일어나라”하고 호통치고 비난하고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지친 육신을 쉬게 하시고 지친 그의 영혼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셨습니다.

 

 그리고 힘을 얻은 엘리야는 비로소 하나님과 진지하게 대화를 합니다. 왕상 199절부터 보면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서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히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왕상 19:9-10). 그러니까 엘리야가 하나님께 하소연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지금 자신이 우울증에 걸린 이유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넋두리를 하고 일러바치고 어린 아이처럼 응석을 부리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응석을 부릴 대상이 있다는 것이 축복입니다.

 

 이 일러바치는 행동이 참 좋은 것입니다. 응석은 일러바치는 행위입니다. 아이들이 밖에서 놀다가 얻어맞고 울면서 집에 옵니다. 와서 울면서 일러바칩니다. 그 때는 아이가 병신같이 보입니다. “병신같이 얻어맞지 말고 한대 때리고 들어오지“ 하는 그런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참고 그 응석을 다 받아주며 일러바치는 아이에게 응답해 주어야 합니다. 그때 그 아이가 울음을 그칩니다. 왜냐하면 얻어맞은 분노와 상한 마음과 아픈 기억이 치유되고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 응석부리는 시간이 모든 병이 치유되는 순간입니다. 아이가 응석 부리고 나면 곧 웃음을 되찾고 또 뛰어나가 다시 놀기 시작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응석부리는 시간이 내가 하나님과 함께 영혼의 데이트를 하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에 내 몸의 상한 마음이 치유되고 상한 감정도 치유되고 우울증이 다 사라지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결국 엘리야가 건강한 모습으로 치유되어 3일 길을 더 걸어서 목적지 호렙산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병을 약으로 치료하려고 애를 씁니다. 이 병은 약으로 치료되는 병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엘리야가 하나님과 깊은 대화 속에서 이야기를 하며 질문을 주고받는 과정을 잘 살펴보십시오. 왕상 194-14절까지를 보면 하나님과 엘리야가 계속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여기 주고받는 이 대화가 하나님과 단둘이서 나누는 대화내용입니다. 이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엘리야는 우울 증상에서 벗어납니다. 그때 내 속에 쌓인 분노, 우울함, 의기소침, 실패감, 마음의 상처들, 육체적 무력감등이 모두 밖으로 빠져 나옵니다. 밖으로 빠져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리면 자꾸만 속으로 더 숨어 들어갑니다. 그래서 병을 키우는 것입니다. 우울증에 걸렸을 때 숨지 말고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아가야 합니다. 나와서 외쳐야 합니다. 속에 있는 것 다 털어 내 놓고 응석을 부리고 일러바쳐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무능과 실패감과 영적 고뇌와 무력감을 고백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마침내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마음속의 고백을 하고 나면 마음이 시원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입을 열어 고백하면 슬픈 고백이 변하여 나중에는 찬송으로 변하여 내 속의 우울한 감정은 다 밖으로 발산되어 치료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혼의 데이트에서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삶입니다. 거기서 치료되지 않을 병이 어디 있겠습니까.

 

 

 

 

 

치료 후 소명 받는 일

 

 

 

 

엘리야와 대화를 나누신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엘리야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14). 그 산속 굴은 엘리야가 서 있을 곳이 아닙니다. 엘리야는 지금 할 일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네가 왜 여기 있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완전히 치유된 엘리야에게 다시 사명을 주셨습니다.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라.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건강이 회복되면 할 일을 해야 합니다. 또 굴속으로 들어가면 안 됩니다. 은혜로 병을 고침 받은 사람이 건강이 회복되면 대부분 또 타락합니다. 그때는 정말 또 고침 받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고침 받으면 할 일 해야 합니다.

 

 인간은 때로 큰소리 치고 살지만 실은 교만하고 살 주제가 못됩니다. 인간처럼 나약한 존재도 없습니다. 그래서 때로 병든 채 살아가기도 하고 때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병을 주시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 이 질병이 온 것도 축복이고 은혜일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영혼의 데이트를 하자고 불러내시는 것입니다. 그 때는 주저하지 말고 그 데이트에 응해야 합니다. 가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만나서 다 일러바쳐야 합니다. 그때 나는 예전보다 더 건강한 사람으로 태어 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주신 힘으로 소명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삶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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