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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은혜 받아 잘 사는 길/고린도후서 8장 1-8절

by 【고동엽】 2023. 1. 23.

큰 은혜 받아 잘 사는 길

2002-02-04 13:23:09 read : 967

 

고린도후서 81-8// 20020203

 

 

< 작은 교회가 가진 선교의 열정 >

 

제가 신학교에 있을 때 같이 공부하던 임병철 목사님이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지난 2000년에 우리 교회에 와서 주일예배에 설교하셨던 바로 그 목사님입니다.

 

1993, 그분은 선교의 열정을 가지고 괌 아래의 축(Chuuk)라는 섬으로 갔습니다.

그곳에 있는 독일의 리벤젤 선교회에서 세운 신학교에서 원주민들을 가르쳤습니다.

냉장고도 없는 그곳에서 더위와 싸우며 3년 동안 선교할 때, 다른 가족도 고생했지만

목사님의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습니다. 의사들은 얼마 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1996, 임목사님은 자신이 살던 뉴욕으로 돌아와 요양하면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교회는 많이 부흥하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6년 동안 20여명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교회가 얼마나 선교를 많이 하고, 어려운 이웃을 많이 돕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3년 전에 개척할 때, 헌금으로 도운 것을 아마 여러분들은 거의 모를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선교하니까 하나님께서 선교할 수 있는 힘을 그 교회에 주셨습니다.

어른 20여명밖에 안되는 작은 교회입니다. 가정으로 말하면 몇 가정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한 가정 당 평균 헌금이 5만 불(65백만원)이었다고 합니다.

한 가정 당 일년 평균 수입이 수십만 불이었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 교회에 특별한 부자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항상 역설합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에 단순한 밀리어네어(백만장자)가 아닌 멀티-밀리어네어가

많이 나오게 하소서! 그래서 정말 쓸 줄 아는 본을 보이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그렇게 목사님이 강조하니까 모든 교인들이 선교의 꿈을 가지고 열심히 벌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가진 소중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확실히 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토록 작은 교회이지만 누구보다도 선교와 구제를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전화통화를 했는데, 이제는 선교사를 후원하는 것보다 직접 선교하고 싶어

지금 섬기던 교회를 사임하시고 이번에 몽고로 선교를 가기로 작정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 및 요삼일육선교회도 열심히 그분을 후원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마게도냐 교회 >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은 남을 힘써 돕는 한 교회를 소개합니다. 1절 말씀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지금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고린도교회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가 무엇입니까? 2절 말씀을 보십시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연보라는 헬라어 '하플로데스''보상을 바라지 않는 사랑의 선교헌금'을 뜻합니다.

즉 마게도냐 교회들이 어려움 중에서도 기쁨으로 선교헌금을 넘치게 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의 의미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배경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땅에 큰 흉년이 들어 이스라엘 교회가 큰 어려움에 처했는데

마게도냐 교회들은 자신들도 어려우면서 이스라엘 교회로 막대한 헌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 최대의 항구도시로 부자들이 많았던 고린도교회는 잠잠하게 있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시골 교회들은 열심히 선교하는데 분당 교회는 잠잠했다는 말입니다.

그 이야기를 하며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 교인들의 행위가 바로 '은혜'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성경에서 말하는 은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사람들은 '은혜' 하면 받은 것을 연상하지만 본문에서는 주는 것이 은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는 '물질적인 유무'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물질이 없어도 주는 삶을 실천한다면 그것이 바로 은혜 받은 삶의 모습입니다.

 

가끔 어떤 분은 "줄 것이 없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은혜가 없는 것'입니다.

사실 받을 것이 없을 만큼 부자도 없지만 줄 것이 없을 만큼 가난한 자도 없습니다.

오히려 줄 것이 부족할 때 주면 우리의 몸은 힘들겠지만 영혼은 더 맑아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삶이고, 천국을 믿는 삶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주는 은혜'를 모르면 우리가 천국을 소망한다고 누가 믿어주겠습니까?

삶의 전도가 말의 전도보다 앞서야 합니다. 먼저 사는 모습이 매력적이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가진 것 없고, 연약하고, 배우지 못했어도 열심히 남을 돕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그 모습이 정말 은혜 받은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 우리가 진정으로 구해야 할 은혜 >

 

우리는 이런 은혜를 구하며, "제가 도울 일 없나요?"하고 요청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마게도냐 교인들은 사도 바울에게 그런 요청을 했습니다. 본문 4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이 구절을 통해 추정하면 아마 당시 마게도냐 교인들이 이렇게 말했던 것 같습니다.

"바울 사도님! 예루살렘 교회가 어렵다면서요? 우리가 어떻게 도울 일이 없을까요?"

바울이 대답했을 것입니다. "어렵지만 여러분들도 어려우니까 그냥 기도만 해주세요."

그러자 마게도냐 교인들은 사도 바울에게 간절히 요청합니다.

"바울 사도님! 우리도 어려운 예루살렘 교회를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주셔야 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것이 바로 마게도니아 교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믿음과 열심은 있었지만 이웃 사랑을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들도 돕겠다고 1년 전에 작정했지만 그것을 실행하지 못했습니다(10-11).

아마 고린도교회 안에서 벌어졌던 성도간에 여러 분쟁 때문에 그랬을 것입니다.

교회가 사랑이 없고 문제가 생기면 자연히 선교와 구제에 관심이 멀어지게 됩니다.

 

그 원리를 거꾸로 하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가 선교와 구제에 관심이 많아지면

우리가 속한 교회는 점차 사랑이 많은 성숙한 교회가 될 것이라는 말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교와 구제는 우리의 내적인 문제를 잠재우는 힘의 원천이 됩니다

이런 원리는 교회뿐만 아니라 가정이나 자기 자신의 삶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예를 들어, 부부가 서로 상대방만을 목표로 살면 빨리 싫증나고 권태기가 옵니다.

그러나 선교와 구제의 꿈을 가지고 사는 부부는 권태기는 별로 없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제와 선교는 가정도 살리고, 사람 관계를 건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외로워합니다. 부모는 부모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외롭습니다.

인기 있는 연예인은 제일 외롭지 않을 것 같지만 그들도 알고 보면 외롭다고 합니다.

마약을 복용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금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여자들은 외로워서 옛날 애인을 생각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때 외로움을 없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일에 대한 꿈을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교와 구제의 꿈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삶에 생동감이 넘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하나님은 물질, 건강, 여건들을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주인이 자동차에 기름을 채워주듯이 우리가 선교를 위해 뛰면 하나님이 채워주십니다.

그러므로 사업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항상 선교의 꿈을 가지고 하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은 물질보다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을 더 원하십니다 >

 

그런데 마게도냐 교인들에 어떻게 극한 가난 중에 풍성한 연보를 하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물질보다 자신을 주님께 드렸기 때문입니다. 본문 5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그들은 먼저 주님께 자기 자신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물질도 드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선물을 받을 때 좋아하는 것은 선물을 받기보다 마음을 받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을 받을 때에는 '아벨과 아벨의 제물'을 동시에 받았고,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을 때는 '가인과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았다고 성경은 전합니다.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은 우리 자신을 그대로 바치는 것이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먼저 자신을 그대로 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게 바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5절 말씀에서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렸다"는 말씀이 참 귀합니다.

아무리 봉사를 많이 하고 물질을 많이 드려도 자신을 드리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기도할 때에도 자신을 드리지 않고 복만 구하면 그 기도는 응답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원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헌신입니다.

 

빅터 프랭클의 '곡예사의 헌신'이라는 책을 보면 한 난쟁이 곡예사가 나옵니다.

그는 거꾸로 서서 공과 접시를 돌리며 먹고살았는데 나이가 들어 그것도 못하게 됩니다.

그러자 신부님이 그를 성당에 데려다 사는데 그때부터 그의 얼굴에 생기가 사라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사에서 "누구든지 자기 재능을 드리면 주님이 기뻐하신다"는 말을 듣고

그가 생각합니다. "내 재능은 거꾸로 서서 접시 굴리는 것밖에 없는데 이거라도 드리자."

그래서 새벽마다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물구나무를 서고 발가락으로 접시를 돌렸습니다.

그렇게 매일 새벽 혼자 재주를 부리면서부터 그의 얼굴에 다시 생기가 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청소부가 성당청소를 하려다가 난쟁이가 거룩한 성모 마리아 상 앞에서

요상한 재주를 부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신부님에게 달려가 일러바쳤습니다.

신부님이 사실을 확인하려고 새벽에 숨어서 지켜보는데 난쟁이가 먼저 무릎꿇고 나서

"성모님! 저의 재주는 이것뿐입니다."라고 말한 후 온갖 쇼를 다 부리는 것 아닙니까?

 

그것을 보고 신부님이 혼내주려고 일어서는데 갑자기 성모 마리아가 곡예사에게 다가와

그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며 말했습니다. "내가 너의 땀과 눈물을 받아 기쁘단다."

그 장면에 신부님도 무릎꿇었습니다. "주님! 저도 난쟁이처럼 저의 전부를 드리게 하소서!"

우리가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께 우리를 드리면 반드시 깊은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 다른 은혜를 구하지 말고 주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

 

여러분! 다른 은혜보다 주는 은혜가 풍성하기를 기도하십시오. 7절 말씀을 보십시오.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주는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찌니라."

 

지금 주는 은혜를 풍성히 받으십시오. 우리가 가진 것은 금방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어떤 분은 받는 은혜만 좋아해서 있는 사람, 높은 사람만 찾는데 좋은 일이 아닙니다.

높은 사람 알면 좋습니까? 나중에 그것 때문에 검찰에 불려 가는 사람 많지 않습니까?

왜 그런 어려움이 생겼습니까? 높은 사람만 만나려고 했기 때문에 자초한 것입니다.

그러나 약한 자, 가난한 자를 찾아가 도우면 절대로 그런 일을 당할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축복 받고 잘 사는 것도 은혜이고, 성공하는 것도 은혜이지만

잘 살고, 성공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인정해 주고, 사람들이 존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해도, 없어도 사람에게 존경받을 일을 해야 사람들이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힘있고, 성공해도 존경을 받기보다 오히려 욕을 먹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영국은 한때 전 세계 각 대륙에 자기 영토보다 몇백 배 큰 식민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식민지였던 나라들이 지금 대부분 영국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54개 영연방 국가들이 영국 국경일을 그대로 사용하고, 영국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중요한 행사에 영국 여왕을 초청하고, 자국 화폐에 영국 여왕의 초상화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같은 지배자였지만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나라들이 지금 일본을 존경합니까?

우리 나라,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모든 나라가 이를 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민족성이 자기밖에 모르고, 지금도 잘못을 뉘우치지도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본은 힘은 있지만 나눌 줄 모르는 고독한 민족으로 인식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힘의 철학으로 살면 안됩니다. 힘이 있을 때 좋은 일 많이 하려고 해야 합니다.

힘이 있고,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며 살라고 주신 좋은 기회입니다.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좋은 일 많이 해야 합니다. 높은 자리는 오래 못 있기 때문입니다.

낮은 자리는 오래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높은 자리는 잠깐밖에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오래 있으면 안될 자리가 바로 높은 자리이기에 오래 있으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그러므로 물질이 내게 주어지고, 높은 자리가 내게 주어질 때에는 더욱 정신을 차려

"이 짧은 기간 좋은 일 많이 하고, 좋은 소리 많이 들어야지!"라고 다짐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 되고 잘 사는 것은 감사할 일이고, 축복 받은 일이고, 분명 성공한 삶이지만

그 축복을 이웃과도 나눌 줄 아는 성도들이 될 때 그것이 진정한 축복이 될 것입니다.

 

< 기독교는 조용히 선을 베푸는 종교입니다 >

 

얼마 전, 한 조사 결과에 의하면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 종교를 선택하겠다는 순서가

불교, 천주교, 그 다음이 기독교인데 그 이유가 기독교의 이기주의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일반 사람들의 인식과는 달리 민간들이 하는 구제 사업, 복지 사업, 사회 사업,

NGO 활동, 여성복지 등 대부분의 활동과 재원이 기독교에서 감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보건복지부장관으로 부임하면 제일 먼저 그 통계를 보고 놀란다고 합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기독교가 이기주의적인 종교라는 말을 자꾸만 하는 것일까요?

기독교가 앞으로도 더욱 잘하라는 얘기이고, 지금보다 더 잘하라는 얘기 아닐까요?

정말 우리는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합니다. 그런데 계속 받는 은혜만 추구하면 될까요?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목사님이 쓴 책 중에 이런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더 받을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큰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사실상 더 받을 것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물질의 축복을 이웃들과 나누는 삶이 더 필요합니다.

 

우리는 보통 돈 많은 사람을 '잘 산다!'고 하고 돈 없는 사람을 '못 산다!'고 합니다.

그러나 돈의 유무를 가지고 '잘 산다, 못 산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말 잘 사는 사람은 나의 축복과 돈을 어렵고 힘든 이웃과 나눌 줄 아는 사람입니다.

 

< 선교와 구제의 꿈을 가지십시오 >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돈을 잘 사용하지 못해 허무하게 날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주식에 투자했다가 국민의 500만 정도가 거의 거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10억 중에 2천만원 남고, 어떤 분은 50억 중에 2억 남았다고 합니다.

그것 때문에 물질 날리고, 가정 날리고, 명예 날리고, 행복 날린 사람이 참 많습니다.

그것의 조금만이라도 좋은 일에 썼다면 얼마나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았겠습니까?

 

요즘은 경기가 어렵기 때문에 복권이 많이 팔린다고 합니다.

그러나 복권이 당첨되는 사람은 백만 명 중에 한 명입니다. 거의 가망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복권이 터져도 불행합니다. 그런 생각들 때문에 내리막길 인생이 됩니다.

결국 허황된 꿈은 마음의 고통을 주고, 가정을 불행하게 하고, 건강을 빼앗아갑니다.

그러므로 허황된 꿈을 꾸지 말고 소중한 돈으로 정말 좋은 일 하는 꿈을 꾸십시오.

 

여러분! 지금 요삼일육(3:16)선교회를 통해서 선교 후원을 많이 하는 것 아시지요?

이 선교회 사역에 우리 교인들이 누구보다 앞장서서 동참하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지금 몽고의 김재호 선교사님 차량의 부족한 금액 분을 채우는 일에 후원해보십시오.

대만에 있는 황수 선교사님이 갑상선 암에 걸려 치료 중인데 치료비를 도와보십시오.

안양에서 정길진 목사님이 외국인 근로자들 밴드를 조직하는 데에도 후원해보십시오.

수지에서 황용현 목사님이 제3세계 신학생들을 양성하는데 장학금으로 도와보십시오.

 

요삼일육선교회가 큰 선교단체는 아니지만 지금 그분들을 최선을 다해 돕지 않습니까?

금년에는 태국에 나환자를 위한 교회 하나를 짓는데 선교회가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와는 달리 태국에서는 4천만원 정도면 교회 하나를 지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선교지 교회 하나 짓는데 내가 도움이 되면 얼마나 보람있는 일입니까?

< 후원에 동참하실 분 안내/ 국민은행 284-21-0264-873 이한규(요삼일육선교회) >

 

지금 무엇 때문에 돈을 벌려고 일하십니까? 선교의 꿈을 가지고 일하기를 바랍니다.

그런 꿈을 가지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밀어주실 것입니다.

다른 것은 아깝게 생각하고 절약해야 하지만 선교는 결코 아깝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나의 필요에 대해서는 항상 만족해야 하지만 선교에 대해서는 늘 아쉽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가 선교를 많이 못한 것에 대해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선교의 꿈을 가지고 살 때

하나님은 우리 영혼을 평생 시들지 않도록 해주시고, 더욱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알바니아의 시골에 배우지 못하고, 인물도 없는 한 가난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뉴스를 통해 인도가 가난하다는 얘기를 듣고 인도 선교에 대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어서 수녀가 되어 인도의 빈민촌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 사랑을 가지고 가난한 자와 고아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그녀를 우습게 여겼지만 지금은 전 세계 사람들이 그녀를 존경합니다.

그분이 테레사 수녀입니다. 재작년 돌아가셨지만 온 인류의 사랑을 받지 않았습니까?

 

이웃사랑은 못 배워도 할 수 있고, 인물이 없어도 할 수 있고, 가난해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좋은 일을 많이 할 때 나의 교회와 가정이 행복해지고, 나 자신이 행복해집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우리 이웃들을 살맛 나게 해 주려는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땀흘려 얻은 열매를 이웃과 나누려고 할 때 우리 삶은 행복한 삶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구제하고 선교해야 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행복의 기회입니다.

그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이웃을 돕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 은혜가 복된 은혜입니다.

우리를 이웃을 돕는다고 하지만 그 덕분에 우리 영혼이 얼마나 깨끗해짐을 경험합니까?

우리가 이웃을 돕기 위해 허리를 숙일 때 우리는 반드시 축복의 열매를 줍게 될 것입니다.

 

항상 허리를 숙여 내가 도울 대상을 살피시고 더 많이 받기보다 더 많이 도우십시오.

사실상 우리는 더 받을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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