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가기 |
사회자 :
저는 미국에서 초중고 12년이라는 미션스쿨에서 종교교육을 마친 후
무신론자가 되어있었습니다.
제게 있어서 종교의 가장 큰 난제는 바로 홀로코스트였습니다
저는 어떻게 6백만 명의 사람들이 살해당한 가운데
그것도 비참하게
아니 전쟁 전체로 따지면 8천만 명이 죽은 와중에
어떻게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팀켈러 목사님은 이에 대해 어떻게 대답해 주시곘습니까?
팀 켈러 답변 : 일단 하나만 질문드릴게요
이 질문 속에 두가지 의도가 모두 가능할 것 같습니다.
둘 다 중요한 질문입니다.
1) 하나는, ‘어떻게 1천년 가까이 기독교 기반으로 세워졌던 유럽 사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하는 것이고
2) 또 하나는,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어떻게 하나님이 세상이 이런 고통을 허용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첫 번째 질문 또한 매우 까다로운 질문입니다.
특히 제가 기독교 목사로서 대답하기 쉽지 않습니다.
어쨌든 목사로서, 물론 저는 홀로코스트는 매우 끔찍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목사로서, 지난 35년 동안 여러 사람들과 방에 앉아서
이를테면 겨우 2살에 차에 깔려 죽은 아이의 부모님과 상담할 때도 있었죠.
유대인 학살과 같지는 않지만
똑같은 종류의 비극입니다. 똑같은 종류의 질문이겠죠.
왜 하나님은 고통과 악을 이 세상에 허용하시는가?
뭐 이런 질문이 반복, 반복, 또 반복되어오는 거죠.
사실 당장 고통 한 가운데 있는 사람을 대하는
진정 올바른 방법은
침묵, 사랑, 그리고 오직 필요로 할 때(대답을 물어올 때)만 말하는 자세입니다.
저는 그 분들이 먼저 제게 질문할 때까지
몇 년이고 기다리곤 해요.
제가 먼저 나서서 고통에 대해, 그 배후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를 말하진 않습니다.
첫째로, 저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고통을 견뎌내는게 수월해질 일은 없다고 봅니다.
저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버링햄 감옥에서 쓴 편지를
언급하고 싶은데요.
그는 “인간이 저지른 일들이 불의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고 묻습니다.
“인간이 저지른 일들이 불의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오직 더 높은 법이 존재해야만
홀로코스트 같은 이 세상의 불의를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신이 없다면, 오로지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을 뿐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안 계신다면 당신과 제 인생은,
또한 세상 모든 사람들의 삶은
오직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게 인생의 전부입니다.
정말로 자연스러운 거죠. 신이 안 계신다고 가정할 때!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세상!
다른 말로 동물의 왕국,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
제 말을 듣는 당신의 마음 속에
얼핏 ‘그건 옳지 않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세상이라고?’라는
생각이 드시겠습니다만
‘신이 안 계시는 세상에, 그건 필연적입니다.
하등 옳지 않을 게 없습니다! 뭐가 옳지 않겠습니까!’
마틴 루터 킹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것이
불의하다는 사실을
더 높은 법에 근거해서 믿는 것이다”
만약 상위의 법(하나님, 성경말씀)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세상 불의, 부조리, 악에 대한 당신의 분노조차도
정당화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강자는 약자를
하루도 빠짐 없이 잡아먹습니다.
그렇죠.
그렇다면 이런 세상에
상위법이 존재하고, 하나님이 존재 하신다는데,
그래서 우리가 악을 악으로 판단하고 정죄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홀로코스트의 순간에, 또 다른 살인의 순간에
왜 하나님은 순간 즉시 끼어드셔서
‘이봐, 너희들은 사람들을 함부로 죽여선 안 돼, 이제 그만 둬!“
라고 말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여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대답이 가능합니다.
첫 번째는, 무신론이 이 문제를
전혀 간단하게 대답해 주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면 도대체 무신론은 무슨 근거로
우리에게 도덕적 분노가 일어나는지 모르니까요.
신이 없는 한, 악을 악으로 규정할 수 없습니다.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자기 원하는 대로 행하는 것이니까요.
약육강식, 적자생존은 무신론자에겐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냥 자연의 법칙대로 사는 겁니다.
그래서 어쩌면 강대국은 약소국을 잡아먹고
강자는 약자를 잡아먹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습니다.
오히려 자기들 논리로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완전한 대답은 안 되겠지만
저는 지금 무신론자의 입장이나 정신세계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들이 약자의 고통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생각해 보는 겁니다.
그들 입장에선, 악이 절대적으로 중단되어야만 한다는
설득력 있는 이유는 없어요.
두 번째 대답은 이것입니다.
신을 바라보는 기독교적 관점은
신에 대한 다른 관점들에 비해 매우 다릅니다.
왜냐면 기독교적 관점은, 신이 직접 내려와
이 세상에 들어오셔서 고통 받으셨다고 말하거든요.
저는 고양이 한 마리를 키웁니다.
아내와 저는 그 고양이를 아주 사랑하죠.
그런데 고양이가 하루는 사고로
그만 다리 하나가 부러졌습니다.
병원에 가서 봉합수술을 해서 고쳤습니다.
하지만 고양이는 틀림 없이 고통받았을 겁니다.
그러나 정직하게 말하면, 고양이는
사람만큼 자아의식이 없기 때문에
사람의 고통이, 고양이의 고통보다는
일종의 더 고차원적인 고통일거란 말입니다.
사람은 육체적 고통과 더불어
정신적 고통도 있겠고, 감정적 고통도 있겠고,
우리가 만약 다리를 다쳤다면,
더 많은 것을 인식할 수 있으니
고양이보다 그 분노가 더 크겠죠.
만약 하나님이 진짜 예수 그리스도로서 이 땅에 오셨다면
그분이 자발적으로 십자가에서 겪은 고통은
인간이 십자가로 받는 고통보다는 훨씬 고차원의 고통일 것입니다.
아까 고양이와 사람을 비교했는데,
같은 방식으로 사람과 신이신 예수님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온갖 고통과 죽음을 당하셨다고 믿게 될지라도
이것이 사람들에게 '고통을, 혹은 홀로코스트를 허용하시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복음은
그 질문에 대한 틀린 답이 무엇인지는 말해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아서 홀로코스트를 허락하셨다’는 답이 아니죠.
만약 그렇다면 왜 예수님이 굳이 세상에 내려와서 십자가에서 죽습니까?
그건 고양이의 죽음과 차원이 다르고, 심지어 사람의 죽음이나 고통과도 차원이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고 제가 좀 전에 설명드렸습니다.
‘하나님이 무관심해서 홀로코스트를 허락하신다’ 또한 답이 되지 못해요.
그럼 왜 하나님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그것도 가장 고통스럽다는 십자가에서, 굳이 죽으시냐고요?
아직 하나님이 악을 막지 않으시는 이유를
우리는 다 알지 못하지만, 그 정답을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답이,
'하나님의 무신경' 또는 '신의 무관심'은 될 수 없다는 거죠.
그랬다면 신이 성육신하셔서, 사람들과 같이 고통 받으실 이유가 없으니까요!
왜 세상에서 악과 고통이
아직 멈추지 않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단지 무관심, 무자비, 사랑의 결핍 등은 될 수 없습니다.
사회자 : 그렇다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신은 도대체 왜 내려와서 홀로코스트를 막지 않으신 겁니까?
팀 켈러 : 당신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보세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
만약 당신이 이유를, 그 답을 생각해 낼 수 없다면
그게 이유가 없다는 뜻은 혹시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서, 거기에 대한 변증을 하겠습니다.
알빈 플란팅가의 ‘진드기 비유’ 혹시 들어보셨나요?
플란팅가가 고안해 낸 비유인데,
당신이 텐트 안을 지켜보는 도중에
근처에서 누가 당신에게 ‘거기 성 버나드(가톨릭 성인 중 한 명)가 계시니?’ 라고 물으면
성 버나드가 안 보일 경우, 당연히 성 버나드는 옛날 분이라서 거기에 없습니다.
그럼 당신은 ‘아니, 성 버나드는 없는데요’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당신이나 묻는 사람이나 똑같이
'텐트 안에 성 버나드가 없다'고 자신 있게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왜냐면 성 버나드가 그 안에 있었다면
두 사람 다 그를 볼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러나 만약 당신이 텐트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근처에서 누가 ‘거기 진드기 있어요?’ 라고 질문한다면
참고로, 진드기는 모기망(방충망)을 뚫고서라도
사람을 기어코 물어뜯을 정도로 아주 작은 벌레입니다.
어쨌든 만약 당신이 텐트 안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누가 ‘그 속에 진드기가 보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아니, 아무 진드기도 안 보여’ 라고 말하겠죠.
하지만 그것이 텐트 안에 진드기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진드기가 거기 있었더라도
너무 작아서 눈에 안보였을 테니까요.
이 비유를 통해 플란팅가는 말하길
만약 당신이
‘하나님이 세상에 지속적으로 악과 고통을 허락하는 이유를
나는 도무지 생각해 낼 수 없다.
그러므로 그런 이유 따윈 없을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없다는 거죠.
눈에 안 보이더라도, 논리적으로 납득이 안 되더라도, 이유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진드기보다 성 버나드 쪽으로 생각한다는 겁니다.
즉 눈에 안 보여도, 진드기가 있을 수 있다고 믿어야 되는데,
성 버나드 쪽으로 생각해서, '눈에 안 보이니까 없다'라고 생각한다는 거죠. 사람들은!
홀로코스트의 이유를 모르겠으니, 그건 답이 없는 것이다! ..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눈에 안 보여도, 즉 내 생각에 납득이 안 되어도, 진리가 존재할 수 있어요!
플란팅가가 말하려는 것은
하나님이 악을 왜 아직 멈추지 않으시는지에 대한
좋은 이유를 찾아내지 못했다고 해서
이유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 세상에 복음이 없다면,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곁에 내려오지 않으셨다면
홀로코스트의 이유를 의심해 볼 수 있겠습니다만..
이 세상에는 복음이 있고, 그리스도께서 이 고통의 세상에 내려오셔서
우리 고통에 동참하셨다는 것은,
그 홀로코스트의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간에
두 살 배기 아기가 소아암으로 사망하는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간에
그 이유를 우리가 다 알지는 못하지만
그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플란팅가의 비유로 답하자면,
진드기가 보이진 않지만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자료 18,185편 ◑ > 자료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존 뉴턴의 생애와 신앙 P1 -죤 뉴턴 (0) | 2023.01.16 |
---|---|
하나님 정말 어떻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시88:1~18, 시39:1~13 -팀켈러 (0) | 2023.01.16 |
지옥의 형벌이 과연 공평한가? 눅16:19~31-팀 켈러 (0) | 2023.01.16 |
성공/고난보다 위험한 상황은 없습니다 잠3:9~12-팀 켈러 (0) | 2023.01.16 |
내가 만든 신은 반드시 나를 배신한다 롬1:24 팀 -켈러 (0) | 2023.01.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