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755회] - 우주 탐사 - 다누리호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태복음 25:40)
한국에서는 달 탐사선 다누리 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어, 이제 한국은 세계 일곱 번째 달 탐사선을 보낸 나라가 되었다고 모두가 기뻐하고 있습니다. 다누리 호-KPLO:Korea Pathfinder Luna Orbiter가 2022년 8월 4일 오후 4시 8분 쯤 미국 Florida에 있는 Cape Canaveral Air Force Station에서 미국 민간 우주 기업 스페이스 X의 Falcon 9 로켓에 실려 발사되었습니다.
다누리 호는 오는 12월 16일 달 주변을 도는 궤도에 들어서, 31일에 목표 궤도인 달 상공 100Km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 궤도에 안착해 임무 수행을 시작해야 최종 성공으로 판단된다 합니다. 따라서 아직은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달 탐사선이나 착륙선을 보낸 나라는 러시아, 미국, 일본, 유럽, 중국, 인도 등 6개 나라였는데, 이번 다누리호 발사로 한국이 세계 7번째 나라가 되었습니다. 한국 인공위성인 우리별 1호가 1992년 하늘로 올라간 이후 30년 만에 한국은 다누리 호를 통해 지구를 넘어 또 다른 천체를 향한 발걸음을 내 디뎠습니다.
필자는 우주 과학에 지식이 전혀 없는 문외한(門外漢)이지만, 이번 다누리 호 발사를 보면서 몇 가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여기 쓰는 것은 순전히 필자의 생각이므로 과학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이므로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지나가시면 되겠습니다.
우선 우리는 이번 다누리 호 발사를 그렇게 흥분해서 볼 필요가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미국은 탐사선이 아니고, 착륙선을 1969년 발사하여, 두 사람의 우주인이 달 위를 걸어 다니고, 뛰어 다녔으며, 성조기를 꽂아 놓고, 달의 토양과 기타 필요한 자료를 갖고 돌아 왔습니다. 지금부터 53년 전의 일입니다.
우리 손으로 만든 다누리 호를 미국 Florida까지 옮겨가지 않고, 한국에서, 한국 시민을 태워 달에 착륙해서, 걸어 다니고, 태극기를 꽂아 놓고, 달에 있는 여러 자료를 갖고 돌아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때는 언제쯤 될까요?
우리나라가 달 탐사선을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쏘아 올렸다 하는데, 과연 일곱 나라가 달 탐사선을 각각 쏘아 올렸어야 하느냐 하는 점입니다. 어떤 나라의 우주에 대한 연구가 얼마큼 진척 되었으며, 성과를 얼마쯤 냈느냐를 경쟁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그 일을 하는 데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데, 이 일곱 나라가 달 탐사선을 보내기 위해 쓴 돈이 얼마나 될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 일곱 나라 과학자들이 다 같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연구를 해서 인간을 달에 보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달의 뒷면을 탐사하고, 달의 구석구석을 철저히 살펴 보고, 또 널리 퍼져있는 토양과 광물질 등, 물이 있는지, 생물체가 있는지를 탐사하는 일을 한다면, 한 나라가 하는 일보다도 훨씬 빠르게, 더 쉽고 간편하게, 더 많은 일을, 훨씬 적은 비용으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근본적인 문제인데, 과연 인간들이 우주 탐사에서 얻어지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점입니다. 현재 지구의 인구가 너무 많아, 감당할 수 없어서, 사람들 수백만 명을 달에 보내, 그 곳에서 살게 하고, 화성에 수 천만 명의 인구를 보내, 그곳에서 살 수 있게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어떤 면에서 인간이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과연 이 우주 탐사가 지구상의 수백 만 혹은 수천 만 명이 굶어 죽어가고 있고, 약 한 톨 써 보지 못하고 죽는 수많은 어린 것들과 노인들에게 과연 무슨 혜택을 줄 수 있을까요? 마실 물이 없어, 어린 것들이 3-4십리의 태양이 작열하는 거친 들판을 걸어가서, 겨우 구정물 한 통을 받아다, 가족이 먹고 사는 이 지구상의 비극을 달 탐사선이 무슨 이익을 줄 수 있을까요?
우주 탐사를 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고, 그 일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얼마든지 있다는 말입니다. 인류가 먹거리 문제와 병든 이들을 치료해 주고, 식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날이 올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주 개발에 드는 비용의 10%만 이들을 위해 쓴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을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서는 무엇을 더 기뻐하실까를 찬찬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샬롬.
L.A.에서 김 인 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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