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위기 때 필요한 것 (창세기 46장 1-3절)
< 두려움에서 영혼을 지키라 >
무속인이나 이단 교주가 영혼을 사로잡을 때 가장 잘 쓰는 방법은 귀신 얘기, 전쟁 얘기, 종말 얘기, 저주 얘기 등으로 영혼을 두려움에 싸이게 하는 방법이다. 어떤 이단 교주는 “나는 당신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압니다.”라는 투심 얘기로 영혼을 사로잡으려고 한다. 그런 이단의 농단에 속지 말라. 이단 교주가 남의 마음을 알아야 얼마나 알겠는가? 그저 신비감을 주어 약한 영혼을 사로잡으려고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다.
이단 교주는 악하게 영혼을 사로잡아 노동력을 착취하고 각종 명목으로 재물을 뜯어간다. 그렇게 순진한 사람들의 땀과 재물을 이용해서 이단의 번듯하고 화려한 건물들이 지어진 것이다. 영혼을 빼앗으려는 교주에게는 부모의 심정이 없다. 영혼을 살리려는 목자는 양떼가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게 기도하고 격려하고 살피지만 영혼을 빼앗으려는 교주는 양떼를 오히려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히게 해서 분별력과 판단력을 잃게 한 후 자기 종으로 만든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일은 이단 교주에게 사로잡혀 영혼과 물질을 빼앗기는 일이다.
필자는 청년 때 한 가지 사실이 궁금했다. “왜 귀신 얘기도 별로 안 하고 귀신을 쫓아낸다고 자랑하지도 않는 교회에는 귀신 들린 사람이 없고 귀신 얘기를 자주 하고 귀신을 쫓아낸다고 자랑하는 교회에는 귀신 들린 사람이 많을까?” 이단 교주가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병마야! 물러가라! 귀신아! 물러가라!”라고 하면서 능력 있는 것처럼 선포하는 것이 진짜라면 그 교회에는 귀신 들린 사람이 당연히 적어야 하는데 왜 오히려 많은가?
사탄과 그의 하수인인 이단은 영혼을 빼앗는 목적만 이룬다면 예수님의 이름까지 도용하는 존재다. 귀신 얘기를 수시로 하면서 귀신론을 주창하는 교주의 목적은 불쌍한 영혼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귀신 얘기를 통해 두렵게 함으로 귀신 들게 하거나 정상적인 판단력을 잃게 한 후 자기 종으로 만들고 영혼과 물질을 빼앗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이단에게 사로잡히지 않는가? 담대한 믿음으로 두려움을 잘 극복해야 한다.
1980년대 초 한 청년이 어떤 기독교 단체 멤버로 활동했다. 그 단체는 귀신 얘기나 종말 얘기보다는 전쟁 얘기로 공포감을 주는 단체였다. 그 단체에서는 가끔 초대형 회개 집회를 열었다. 모여서 나라를 위해 회개 기도를 하지 않으면 나라가 곧 망해서 국민들은 학살당한다고 하니까 그 청년도 열심히 집회 전단지를 돌렸다. 그러나 집회 후 나라가 망할 징조가 안 보이면 점차 회원들의 신앙 열정이 떨어졌고 그 청년의 신앙 열정도 나태해졌다.
얼마 후 또 나라가 곧 망한다고 하면서 초대형 회개 집회를 열었다. 그 청년은 또 집회 전단지를 돌리고 포스터를 붙이러 다녔다. 그 집회 후에도 역시 나라가 망할 징조는 전혀 없었다. 일부 회원은 “우리 회개 집회가 나라의 패망을 막았다.”고 자화자찬했다. 그런 집회가 1-2년에 한 번씩 계속되니까 서너 번 이상 겪은 회원은 “우리가 양치기 소년의 거짓에 속은 것은 아닐까?” 하면서 그 단체를 떠났다. 그 청년도 그런 의구심이 커졌다.
전쟁 공포를 내세워 초대형 회개 집회를 할 때마다 식상한 일부 회원은 이탈해도 매번 새로운 회원이 더해졌다. 그때 어떤 후원자는 나라를 위한 회개 집회에 쓰라고 물질적인 헌신을 크게 했고 어떤 후원자는 상당한 땅을 기증하기도 했다. “회개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만 계속 반복하니까 거짓으로 느끼고 멀어지는 후원자가 50명이면 초대형 집회를 통해 새로 충원되는 후원자가 100명이니까 그 단체는 꾸준히 사람 숫자도 늘고 재산도 많아졌다.
나라가 망한다니까 염려되어 기도하고 헌금하고 집회를 홍보한 우직한 교인들이 재주는 자신들이 부리는데 재물과 인력의 열매는 그 단체 회장이 취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순수하게 참여했지만 계속 같은 주장이 반복되니까 아무리 미련한 교인도 “내가 혹시 누군가의 이용을 당하는 호갱 신자가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가졌다. 점차 그 청년도 불순함과 부정직함을 느끼고 그 단체와 단체 대표를 멀리했다.
어느 날 그 단체 대표가 하나님이 계시를 주셨다면서 정치에 뛰어들었다. 중간 리더십은 거의 다 말렸지만 그 대표는 “하나님이 계시했어요. 아무개도 같은 계시를 받았어요.”라고 하면서 물러나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선거에 출마했다가 표를 아주 적게 받고 떨어졌다. 일정 표 이상을 얻어야 선거비용을 보전 받는 대상도 못 되어 엄청난 재정적 손실을 보았다. 누군가가 공포심을 확대 조장하는 이유는 대개 목적이 있다.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면 영혼도 빼앗기고 재물도 빼앗긴다. 그 단체 대표는 그 후 큰 시련을 연속해서 겪었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 노인이 된 그 대표가 옛날식으로 집회 전단지를 만들어 여기저기 집회협조를 구하러 다녔다. 후일에 목회자가 된 옛날의 그 청년도 오랜만에 만나 말했다. “지금 중국이 산동 반도에 한국을 향해 장사포를 진열해놓고 곧 한국을 공격할 준비를 다 갖췄습니다. 나라가 패망할 위기입니다.” 그러면서 집회 준비 기도회에 와달라고 요청했다. 그 목회자는 완곡하게 거절하고 귀가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아직도 옛날 모습 그대로구나.’
후일에 양치기 소년의 말대로 만약 전쟁이 벌어져도 “그때 그 사람 말이 맞았어. 그는 예언자였어.”라고 하지 말라. 마구 던지는 예상도 언젠가 한두 번은 맞는다.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워 “병이 나았다.”고 했다가 낫지 않거나 어떤 일을 예언했다가 틀리면 “그럴 수도 있지. 사람이 틀릴 수도 있지.”라고 좋게만 보지 말고 그가 왜 그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는지 의도를 알아야 한다. 그 핵심 의도는 영혼과 재물을 빼앗는 것에 있다.
공포심을 조장하는 목자를 주의하라. 그런 경향이 심한 이단 교주는 더욱 주의하라. 상식적으로 그런 모습은 참된 목자의 모습이 아니다. 자녀에게 공포심을 크게 불어넣고 키우는 부모는 없다. 그 사실만 기억해도 거짓 목자와 이단 교주를 비교적 쉽게 분별할 수 있다. 물론 사랑하는 부모도 악과 어둠의 세력에 대해 “얘야, 무서운 세상이야. 스스로를 잘 지켜라.”라고 경계시킨다. 그러면서도 그 다음에는 힘주는 말도 덧붙여 안심시킨다. “그러나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실 거야. 염려하지 마.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어.”
어느 부모가 “얘야, 사방에 귀신이 바글바글 들끓는단다. 이제 곧 세상은 끝날 거야. 악인들이 너를 인육으로 먹을 거야.”라는 말로 공포감을 주어 자녀를 영적인 장애아로 만들겠는가? 왜 이단 교주가 두려움과 공포를 심는 말을 자꾸 하는지 그 의도를 깨닫고 영혼과 재물과 시간을 빼앗기지 말라. 살다 보면 위기의 순간은 늘 있지만 성도에게 위기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이다.
< 삶의 위기 때 필요한 것 >
본문에는 이스라엘(야곱)이 아들 요셉의 초청을 받고 가족과 모든 소유를 이끌고 애굽으로 떠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는 위험과 기회의 가능성이 혼재한 상황이었다. 한자로 ‘위험’과 ‘기회’를 한 단어로 말하면 ‘위기’라고 한다. 삶의 위기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 국경을 넘으면서 이스라엘(야곱)은 애굽 총리가 된 아들 요셉을 만날 기대도 하면서 애굽에서 과연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불안도 있었을 것이다. 그때 야곱은 그 아비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렸다(1절). 인생의 위기 때 하나님께 예배드렸다는 뜻이다. 두렵고 불안하고 기도도 잘 안 될 때 그리고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나 극심한 고난에 처할 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예배다. 기도도 중요하지만 예배는 더 중요하다.
둘째, 절대 헌신을 다짐해야 한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희생 제사를 드리자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부르셨다. “야곱아! 아곱아!” 그때 야곱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대답했다. 그 대답에는 무슨 일이든 시키면 다 행하겠다는 절대 헌신의 자세가 내포되어 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절대 헌신의 자세로 반응하고 절대 헌신을 새롭게 다짐하면 삶의 위기는 곧 축복 기회가 된다.
셋째, 사명을 따라 살아야 한다. 야곱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하자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3절).” 약속된 가나안 땅을 떠나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으로 가면 안 될 것 같지만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고 애굽에 내려가라고 하셨다. 애굽에 내려가서도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고센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삶을 살면 된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있든지 자기 사명을 따라 사는 것이다.
< 두려움을 잘 극복하라 >
하나님의 뜻과 사명을 따라 살 때 힘든 과정이 예상되어도 두려워하지 말라. 사명을 따라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말아야 하지만 실제로 사명을 따라 살면 두려움이 크게 줄어들고 그때부터 번성의 기운이 깃든다. 그러므로 축복을 원하면 두려움을 잘 이겨내라. 두려워하는 삶과 번성의 축복은 정반대의 것이다. 그 사실을 사탄이 너무나 잘 알기에 번성의 축복을 막으려고 끊임없이 두려움을 심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사명을 따라 “죽으면 죽으리라! 망하면 망하리라! 잃으면 잃으리라!” 하고 나아가면 죽고 망하고 잃는 일은 오히려 줄어든다. 아무 준비도 없이 무모하게 일을 벌이라는 말은 아니라 두려움을 잘 극복하라는 말이다. 실패가 없도록 힘써 준비하고 노력하라. 그러나 준비를 잘해도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는 말아야 창조성도 발휘되고 더 나은 진전도 이뤄지고 결국 비전 성취도 이뤄진다.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미래에 큰 인물이 될 것을 알고 그가 크기 전에 미리 죽이려고 대적이 밀정을 보내거나 온갖 교묘한 수단으로 사전에 제거하려고 하지만 주인공은 그 모든 시련을 극복하고 마침내 큰 인물이 된다. 사탄도 큰 인물이 될 것 같은 사람을 미리 제거하려고 다양한 수단방법을 동원한다. 그 중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두려움을 심는 방법이다. 영적으로 어릴 때는 그 방법이 잘 통하지만 믿음이 커지면 잘 통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큰 믿음으로 두려움을 잘 극복해야 복된 인물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월새기(월간새벽기도)>를 처음 발행할 때 기도했다. “하나님! 2달 발행비만 가지고 시작합니다. 더 이상 발행하지 못하면 문서선교로 기쁘게 썼다고 생각하겠습니다.” 그때 “망하면 망하리라! 잃으면 잃으리라.”라고 생각하고 문서선교와 나눔을 위해 쓰는 돈이니까 아예 없는 돈으로 여기고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월새기>가 수많은 영혼 구원과 영혼 변화의 역사를 이루면서 5년 이상 지금까지 잘 지속되고 있다. 주님을 위해 소중한 옥합을 깨뜨리면 주위의 수많은 향내를 전파하면서 결국 더 소중한 하늘의 옥합을 얻는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만약 하나님이 실패하게 하셨다면 거기에도 선하신 뜻이 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이 거기로 보내 그 일을 하게 하신 뜻이 있다. 그 뜻대로 살면서 번성의 축복을 받고 그 축복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라. 우리 중에 하나님이 크게 쓰실 수 없다고 작정한 사람도 없고 우리 자녀 중에 하나님이 축복하시지 않겠다고 작정한 사람도 없다. 하나님은 내게 은혜와 축복을 크게 내리시기를 원하고 사전준비도 다 해놓으셨다. 문제는 나 자신이 준비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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