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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성에 집착하지 말라 (창세기 6장 1-4절)

by 【고동엽】 2023. 1. 8.

번성에 집착하지 말라 (창세기 6장 1-4절) < 명성이 축복만은 아니다 >

 노아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는데 그들은 고대에 명성이 있는 용사들이었다(4절). 하나님이 추하게 생각하는 결혼에 의해 생겨난 자녀들이 용사가 되고 유명인이 되는 장면을 보면 세상적인 명성도 하나님의 복과는 관계없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육적인 아름다움과 명성을 추구하는 사람에 대해 이렇게 선포했다.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3절).”

 본문 3절의 표현은 성경에서 가장 난해한 표현 중 하나다. 도대체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된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2가지 견해가 가장 설득력이 있다. 첫째, 백이십 년은 ‘홍수가 이르기 전 기간’이란 견해다. 그 견해는 앞으로 백이십 년 후에는 모든 인류가 멸망한다는 견해다. 이 견해를 바탕으로 노아가 120년간 방주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주일학교 때 그렇게 배웠지만 성경에는 정확히 노아가 120년간 방주를 만들었다는 기록은 없다.

 둘째, 백이십 년은 ‘미래 사람의 나이’일 것이란 견해다. 즉 홍수 후에 하나님의 저주로 인해 사람의 수명이 120세로 한정될 것이란 견해다. 실제로 홍수 후에 사람의 수명이 점차 줄어들다가 나중에는 사람의 수명이 120세 이하로 줄어든다. 어느 견해가 옳은지 알 수 없지만 두 번째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많다.

 베뢰아 귀신론 주창자들은 본문 3절을 성경의 어떤 구절보다도 중요한 구절로 삼으면서 그 ‘백이십 년’이란 시간을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하신 수명 기간’으로 이해하고 그 수명 전에 죽은 불신자는 백이십 년을 채울 때까지 귀신으로 떠돌며 사람들에게 임해 괴롭힌다고 주장한다. 그 주장은 전혀 성경적인 주장이 아니다.

< 번성에 집착하지 말라 >

 명성이 축복만은 아니듯이 번성도 축복만은 아니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면서 죄악도 번성하게 되었다(1절). 진짜 축복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번성이다. 에녹의 경우를 보면 오래 사는 것 자체보다 짧게 살아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것이 더 축복이다. 그처럼 번성하는 것 자체보다 번성하지 못해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것이 더 축복이다.

 시인 카릴 지브란이 말했다. “사람은 선해도 사람들은 악하다.” 사람의 숫자가 많아지면 악의 가능성도 커진다. 그 원리는 역사 이래로 변함이 없었다. 혼자 짓지 못하는 죄도 여러 사람이 같이 지으면 쉬워진다. 숫자가 늘어나거나 일이 잘될수록 깨어 근신하라. 죄악에 노출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교회도 성장할수록 곳곳에서 인간적인 모습과 원리가 나타나기 쉽기에 그때 더욱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서기를 기도해야 한다.

 누군가가 엄청나게 커지면 다른 누군가의 설움도 커질 수 있다. 외적인 번성과 힘은 사람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대하기 쉽게 만든다. 그렇게 된 번성과 힘은 복이 아니다. 현대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불안은 힘과 번성을 얻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이다. 힘과 번성에 집착하면 긴장도 높아진다. 실패 혹은 뒤짐에 대한 불안감도 커진다. 또한 힘과 번성을 추구하면 공동체성은 약화되고 사랑과 우정도 외형주의에 의해 종속된다. 세상이 힘과 번성을 추구해도 인생을 힘과 번성으로 평가하지 말라.

 사람과 우정보다 힘과 번성의 논리에 맞춰 자기를 길들인 채 왜소하게 살지 말라.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힘과 번성의 논리를 극복하며 살라. 삶이 힘들 때마다 스스로 자문하라. “지금 나는 힘과 번성을 좇아 살고 있지는 않은가? 다른 세상 소리에 이끌려 살지는 않는가?” 세상이 힘과 번성을 좇아가도 나눔과 섬김의 비전을 품고 당당하게 사는 사람이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참된 하나님의 사람이다. 메마른 마음에 말씀의 물줄기를 끌어들여 역사의 봄을 선도하는 것이 진짜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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