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찍이 뒤따르지 말라누가복음 22장 54-60절 < 자만심에 빠지지 말라 >
예수님이 잡히시자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가장 열렬하게 따랐던 베드로도 3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닭이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한다.”고 했는데 그대로 되었다.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 인간의 연약성을 새삼 깨닫는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는 예수님을 부인한 실패자가 되었다. 무엇이 그를 실패하게 만들었는가? 자만심 때문이었다.
베드로는 다른 제자는 다 배반해도 자기는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고 했다(막 14:30-31). 가끔 보면 “나만은 결코 배반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배반하고 “나는 이곳에 뼈를 묻겠다.”는 사람이 어느 날 훌쩍 떠난다. 자만하면 반드시 실패한다. 충성도 하나님이 충성하게 도와주셔야 된다는 사람이 대개 변함없이 충성한다. 어떤 경우에도 자만하지 말고 남의 외적인 허물을 바라보고 판단하기 전에 나의 내적인 어둠부터 성찰할 줄 알라.
가끔 하늘을 보면 인간의 미소함을 절감한다. 해변에서 수평선만 바라봐도 인간의 성공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뼈저리게 느낀다. 사람의 시야가 얼마나 작고 사람의 지식도 얼마나 작은가? 수평선 너머에 많은 모습과 현상들이 존재하는 것을 생각하면 지식의 한계를 느끼고 자만은 가장 큰 죄와 실수임을 깨닫는다. 최종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라. 말씀 안에서 판단력을 키우면 오히려 판단하는 마음은 줄어든다. 성숙이란 판단력은 늘어나고 판단하는 마음은 줄어드는 것이다.
눈앞의 것을 가지고 뒹굴지 말고 눈앞에 보이는 것 때문에 상처로 신음하지 말라. 사람이 자기 한계를 깨닫지 못하고 덧없는 것에 매달리면 언젠가는 인생의 한겨울이 찾아온다. 나를 높이고 남을 내려다보면 오히려 낮아지고 나를 낮추고 남의 위치로 내려서면 오히려 높아진다. 내려서는 길이 올라서는 길이다. 보이는 것에 매달리지 말고 보이는 것 너머에 계신 하나님이 마련하신 은총의 새벽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라. 현재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고 낙심하지 말고 현재 눈에 보이는 것이 있다고 자만하지 말라.
< 멀찍이 뒤따르지 말라 >
사람들이 예수님을 잡아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 때 베드로는 멀찍이 따라갔다(눅 22:54). 멀찍이 뒤따르는 모습은 현대인의 신앙생활을 잘 보여준다. 하나님과의 거리가 멀어지고 교회와의 거리가 멀어지면 어느 때에 무서운 훈련과정을 겪는다. 그때는 울어도 소용없고 애써도 소용없고 도와줄 사람을 찾아다녀도 소용없다. 정말 행복하게 축복 받고 살기를 원하면 늘 하나님과 가까이하라.
권력은 대개 직책보다 최고 권력자와의 거리에서 나온다. 직급이 높은 장관보다 직급이 낮은 대통령 보좌관이 더 힘이 있다. 그래서 권력자와의 거리를 좁히려다가 때로는 크게 다친다. 그런 부작용이 없이 영원히 힘을 쓸 수 있는 위대한 방법은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이다. 참된 은혜와 축복은 하나님과의 거리에서 나온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느냐에 따라 은혜와 축복은 달라지고 하나님의 뜻을 기쁘게 행하느냐에 따라 행복도 좌우된다.
가끔 힘든 일을 당하면 “하나님도 무심하시지.”라고 탄식한다. 그때 오히려 “내가 하나님께 너무 무심했구나.”라는 생각부터 해야 한다. 힘들 때 나의 무심함을 탓하고 그때를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기회로 삼으면 하나님의 마음을 얻는다. 내가 하나님께 돌아서면 하나님이 내게 돌아와 주신다. 하나님의 마음의 항구에 닻을 내리면 고난에도 쉽게 흔들리거나 파선하지 않는다. 힘이 없게 느껴지는 상황은 꼭 필요하다. 그때 하나님을 꼭 붙잡아 나의 힘으로 삼고 힘없는 사람의 심정을 헤아리면서 참된 힘을 얻는 길을 찾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 안에 있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 안에서 살지 못하는 교인이 많다. 또한 “하나님은 나와 세상 끝 날까지 동행하신다.”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때도 많다. 믿음생활이란 나의 부족한 믿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의지해 끊임없이 불신과 의심과 나태를 극복하는 과정이다. 미성숙한 교인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까?”에 관심을 가지지만 성숙한 성도는 “내가 지금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에서 헤엄치며 살고 있다.”고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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