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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 같은 과거도 사랑하라 (요한복음 21장 16-17절)

by 【고동엽】 2023. 1. 5.

원수 같은 과거도 사랑하라 (요한복음 21장 16-17절) < 절대 사랑은 절대 능력을 준다 >

 성도의 첫째 사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지만 둘째 사명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내 양을 먹이라.”는 말은 결국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이다. 왜 예수님은 베드로의 사랑고백을 받은 후 바로 양떼를 먹이라고 하셨는가? ‘예수님 사랑’은 ‘양떼 사랑’과 같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사람도 사랑하고 존중하라. 최고 인격은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인격이다. 천하를 얻고도 사람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사람을 무시하면 내 가치도 떨어지고 하나님도 외면하신다.

 하나님의 관심 중의 관심은 사람이다. 잘 믿을수록 나타나는 것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다. 자녀를 양육할 때 가장 많이 가르쳐야 할 것은 사람을 존중히 여기는 태도다. 친구를 무시하면 ‘하나님의 거룩한 분노’로 자녀를 즉시 야단치라. 어렸을 때 그런 태도를 고쳐주지 않으면 커서는 더욱 버리기 힘들게 되고 결국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된다. 사람이 가장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사람을 무시하는 일이다.

 이웃을 나무로 알고 그의 땅이 되어주라. 이웃에게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평안을 전해주는 소중한 이웃이 되라.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다.”는 속담대로 살지 말고 종로에서 뺨을 맞아도 한강에서 화풀이하지 말라. 직장에서 야단맞았어도 집에 와서는 미소를 지으라. 그렇게 남을 배려하며 살 때 축복 그릇이 커진다.

 예수님의 세 번의 질문은 같은 것 같지만 엄밀히 보면 다르다. 예수님이 첫째와 둘째 질문에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할 때 사용한 단어는 아가페였다. 그때 베드로는 아가페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자신이 없어 두 번 모두 “제가 필레오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십니다.”라고 대답했다. 결국 예수님은 셋째로 “네가 나를 필레오의 사랑으로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다. 베드로가 아가페로 도달하도록 다그치지 않고 필레오의 사랑으로 사랑의 기준과 눈높이를 낮춰주신 것이다.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처럼 되는 것이다. 그런 성육신의 사랑이 참된 변화를 낳는다. 성육신의 사랑은 쉽지 않다.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자기 사랑은 본능이지만 자기희생은 의지다. 그 자기희생적 사랑이 바로 아가페다. 아가페란 자기를 조각조각 찢어주면서 완전히 없어져 버리는 절대 사랑이다. 절대 사랑은 절대 능력을 주고 절대 변화를 일으키고 절대 축복을 준다. 남의 희생을 강요하면 잠깐만 살지만 자기희생을 각오하면 영원히 산다.

< 원수 같은 과거도 사랑하라 >

 베드로를 일으킨 것은 예수님의 성육신의 사랑이었다. 사랑은 과거의 수치를 이기게 하고 깨진 관계를 복원시켜준다. 내 한과 상처와 힘든 삶의 여정을 극복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실제로 예수님의 세 번의 질문이 끝나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예수님의 질문이 자기 상처를 덧나게 하는 줄 알았는데 그 질문들을 주고받는 사이에 어느새 마음의 질병이 다 치유되는 것 같았다. 결국 그는 과거의 수치를 깨끗이 잊고 누구보다 훌륭한 제자의 길을 새롭게 갈 수 있었다.

 누구나 자신을 붙드는 과거의 아픈 기억이 있다. 그 과거를 극복하지 못하면 불행해진다. 어떤 사람은 회를 먹다가 체한 후 더 이상 회를 먹지 않는다. 한 번의 체한 기억이 맛있는 회를 먹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처럼 과거에 실패한 경험을 잘 극복하지 않으면 삶의 소중한 일부분이 파괴될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생긴 실패의 경험도 잘 극복하지 않으면 삶의 상당 부분이 파괴될 수 있다. 그때 무엇이 필요한가? 사랑이다. 특히 원수 사랑이 필요하다.

 링컨은 원수는 마음에서 없애라고 했다. 누군가 링컨에게 원수를 없애버리라고 하자 링컨이 말했다. “당연히 원수를 없애야지요. 저는 원수를 사랑함으로 친구로 만들어 원수를 없앨 겁니다.” 복된 삶을 살려면 원수 사랑은 필수적이다. 원수는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짜 원수는 ‘과거의 실패와 수치의 기억’이다.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그 기억을 잘 극복하고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모든 원망과 과거의 아픈 기억을 극복하라.

 ‘원수 같은 과거’를 잊어버리고 더 나아가 ‘원수 같은 과거’까지 사랑하라. 원수 같은 과거를 그냥 잊어버리는 것도 훌륭하지만 더욱 훌륭한 일은 그 원수 같은 과거까지 사랑하는 것이다. “그때 그 수치로 내가 이렇게 겸손할 수 있었구나. 그 실패로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사랑 받는 존재가 되었구나.”라는 넉넉한 믿음의 고백으로 원수 같은 과거까지 사랑으로 품고 승화시켜 나갈 때 멋지고 사랑스런 미래가 펼쳐진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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