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아는 지식 (이사야 33장 20-24절) < 참된 예배자가 되십시오 >
본문 20절에서 ‘절기의 시온성’이란 표현은 유다 사람들이 중요한 절기를 지킬 때 시온성을 찾았음을 나타냅니다. “예루살렘이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다.”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솔로몬 성전이 세워졌을 때 성전은 더 이상 여기저기 옮겨지지 않는 장막이 되었지만 영적으로는 참된 예배 처소의 구실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메시아가 통치할 때는 예루살렘에 영원한 예배처소가 선다는 것입니다. 회복의 때에 하나님이 예배처소를 굳건하게 하신다는 것은 예배의 중요성을 잘 보여줍니다.
예배는 신앙생활에서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드리고, 그 마음을 하나님이 받으시고 말씀과 성령으로 심령이 뜨거워지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예배 중에 생기는 심령의 변화는 인생과 미래를 변화시키는 원천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달달 외우고 오래 교회를 다니고 기도를 많이 해도 한 주만 예배를 빠져도 그 영혼은 수렁 속에 빠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에게 예배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예배를 통해 성도는 우울과 실패와 번민과 낙심과 좌절로부터 믿음을 가지고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을 얻습니다. 그 능력으로 이웃들에게 용기와 믿음과 소망을 주게 됩니다. 예배에서 승리하는 사람이 참된 믿음을 가지고 더 좋은 내일을 향해 담대히 모험할 수 있고 가정과 교회에 선한 변화를 선도하면서 역사를 움직이는 수레바퀴의 축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의 행위 중에 가장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행위가 예배이기에 진실한 예배만큼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진실한 예배는 각종 저주와 속박을 물리치게 하는 지상 최대의 힘입니다.
< 하나님을 아는 지식 >
진정한 힘의 원천은 ‘견고한 성’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풍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확실히 알면 어떤 환경에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본문 22절은 하나님을 3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 재판장’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의로운 재판장이심을 믿는다면 고통 받는 사람들의 탄식소리와 신음소리에 민감해야 합니다. 성도는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라고 기도하면서 동시에 그 기도가 응답되도록 불의로 고통 받는 자들을 구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의로운 세상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비전을 가슴에 품고 그 비전을 이루려고 자신을 드리는 삶이 믿음의 삶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이’입니다. 율법도 필요합니다. 율법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율법은 ‘영혼의 자유를 막는 울타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사탄의 공격을 막는 울타리’입니다. 개혁주의자들이 전도 원리로서 믿음을 강조하다 보니까 율법을 좋지 않게 느끼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율법의 참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자부심의 최대 원천은 하나님의 말씀인 토라를 받은 백성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율법은 낮게 볼 것이 아니라 높게 볼 것입니다. 율법은 원래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고 성민을 성민답게 만들고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려고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것입니다. 그것을 율법주의자들이 사람을 억압하고 차별하고 분리하는 도구로 전락시키면서 율법의 원래 의미와 속성을 변질시켰기에 좋지 않은 것처럼 오해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시지 않고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율법이 지닌 참된 의미를 따르는 삶이 믿음의 삶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의 왕’입니다. 하나님은 왕처럼 우리를 다스리시고 보호하시며 필요를 공급해주실 것입니다. 또한 모든 문제로부터 구원해주실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승리의 길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왕으로 높이고 있습니까? 믿는다는 것을 구원받아 영생을 얻고 문제를 해결 받고 축복을 얻는다는 개념만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믿는다는 것은 왕이신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에 자신을 드린다는 개념으로도 생각하십시오.
예수님의 따뜻한 눈과 손과 가슴과 심장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품는 것이 믿음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입에서 나오는 말’과 ‘입에서 나오는 고백’은 다른 것입니다. 성육신의 사랑을 실천하려는 다짐이 담긴 말이 고백입니다. 말로 주님을 부르는 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주님을 고백하는 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갑니다(마7:21). 예수님 당시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무리의 왕’으로 삼으려고 했지만 믿음이란 예수님을 ‘무리의 왕’이 아닌 ‘우리의 왕’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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