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절 제도 규례(1) (신명기 16장 1-8절) < 유월절 제도 규례 >
유월절 의식은 아빕월 10일의 제물 준비부터 시작됩니다. 그때 준비한 제물을 14일 저녁에 잡아 무교병 및 쓴 나물과 함께 먹는 날이 유월절입니다(출12:3-11). 그때부터 7일 동안, 즉 21일 저녁까지 무교절로 지킵니다(출12:15-20). 유월절 의식은 유월절과 무교절을 합해서 8일 동안 지킵니다. 유월절을 지키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밤에 출애굽 시킨 것을 기념해 지키는 절기인데 오늘날로 말하면 ‘이스라엘의 광복절’과 같은 날입니다. 유월절 의식과 관련된 몇 가지 규례가 있습니다.
1. 중앙 성소에서 제사 드리십시오
출애굽 때는 각자의 집에서 유월절 의식을 행했지만 가나안 땅에 정착 후부터는 예루살렘 중앙 성소에서만 유월절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2절). 그 율법을 통해 제멋대로 하는 제사를 막아 이단적인 의식과 이단성의 침투를 막고 이스라엘 12지파의 결속을 다짐하는 부수 효과도 가져다주었습니다.
은혜를 지속시키려면 적절한 형식과 틀도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이런 음성을 주셨다. 성령께서 이렇게 하라고 하셨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음성과 성령충만을 내세워 기존의 틀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하다가 이단 교주가 나오는 것입니다. 형식과 틀도 중시하십시오. 그릇이 있어야 내용도 잘 보존됩니다. 율법을 형식주의의 뿌리로 여기고 무시하면서 깊은 진리에 대한 묵상도 없이 즉흥적인 자기 깨달음만 믿고 나아가면 믿음생활이 왜곡되고 결국 실패합니다.
복 있는 자는 율법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자입니다(시 1편). 율법을 묵상한다는 것은 말씀을 깊이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깊은 생각은 믿음의 왜곡을 막아줍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깊이 생각할 때 참된 믿음의 가능성도 커집니다. 말씀과 묵상은 서로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고 성령님도 하나님의 지혜와 비밀을 깨닫게 하십니다.
율법을 정죄의 도구로 삼는 율법주의는 버려야 하지만 율법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반 율법주의도 율법주의만큼 위험합니다. 율법을 배척하지 않고 깊이 묵상하면 하나님의 뜻이 더욱 분명하게 보입니다. 예배도 자기가 원하는 때에 자기가 원하는 장소에서 드려도 된다고 하다가 신앙생활이 제멋대로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모세를 통해 중앙 성소에서 제사를 드리는 원칙을 기본으로 확립한 것입니다.
율법을 깊이 묵상해 지키려고 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해되고 하나님의 소원이 생기고 하나님이 미래에 펼쳐주실 복과 희망도 뚜렷해집니다. 또한 자기 삶의 자리가 어디가 되어야 하는지도 깨달으면서 자연히 복도 넘치게 됩니다. 율법에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율법을 존중하는 것이 없다면 바람에 나는 겨처럼 빈껍데기 신앙이 됩니다. 제멋대로 그리고 시대의 풍조대로 움직이지 말고 형식과 틀과 율법도 존중하는 진중한 성도가 되십시오.
2. 제물과 고난의 떡을 먹으십시오
본문 3절에서 유교병을 먹지 말라는 말은 유월절만은 죄를 멀리하는 상징적인 의식으로서 한 명령으로서 애굽의 양식 혹은 옛 사람의 양식을 따르지 말라는 뜻입니다. 유교병이란 ‘누룩이 있는 떡’이란 뜻입니다. 빵을 부풀리는 효소인 누룩은 죄와 부패를 상징합니다. 유교병은 애굽의 빵을 상징합니다.
반대로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인 무교병을 먹으라고 한 것은 고난의 떡을 먹으면서 이스라엘 조상들의 고난을 상기하고 이스라엘의 해방과 그 해방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했습니다. 출애굽 때 유교병을 만들면 떡 맛은 있었지만 효소가 발효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당시 황급하게 애굽을 떠나야 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떡이 발효될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었기에 발효되지 않은 밀가루 반죽을 그냥 가지고 출발해서 맛없는 무교병을 먹은 것입니다. 그것을 먹으면서 이스라엘의 고난과 해방을 기념하게 했습니다.
구약의 유월절 행사는 신약시대의 성찬식과 관련이 깊습니다. 유월절의 큰 의의가 기념과 기억에 있다면 성찬식의 큰 의의도 기념과 기억에 있습니다. 유월절 행사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의 은혜를 생생하게 기억했듯이 제자들은 성찬을 통해 주님의 삶과 가르침을 기억하고 새로운 삶을 다짐했습니다. 성찬식의 지나친 신비화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성찬식은 예수님의 대속의 피를 기억하면서 십자가의 희생을 새롭게 다짐하고 실천하는 계기 및 공동체가 예수님 안에서 하나 됨을 다짐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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