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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자와 화 있는 자 (누가복음 6장 20-26절)

by 【고동엽】 2022. 12. 29.

복 있는 자와 화 있는 자 (누가복음 6장 20-26절) < 바른 길을 추구하십시오 >
 
 A 치과는 선교사들은 무료로 치료해주고 목회자 가족은 할인해준다는 소문이 난 병원입니다. 그러나 그 소문을 듣고 간 사람들에게는 의료보험 되는 것 외에 불필요한 과다 진료로 폭리를 취합니다. 상담만 해도 과도하게 상담비를 받습니다. 그러면 돈을 내면서 의심합니다. “이상하다. 비양심적인 곳 같다. 그러나 아닐 거야. 선교사들을 공짜로 치료해주는 곳으로 소문난 곳이잖아.”

 아무래도 이상해서 치과 근처에 사는 사람에게 묻습니다. “그 치과 평판이 어때요?” 그가 말합니다. “거기요. 비싸게 받기로 유명해요. 소문도 안 좋아요. 제게 미리 말씀하셨다면 거기 가지 말라고 말렸을 거예요.” 결국 ‘선교사 무료, 목회자 할인’이란 광고가 ‘신실하고 헌신적인 신앙의 표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그렇게 비즈니스에 이용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싫으시겠습니까? 그래도 그 치과는 20여 년간 아주 커졌습니다.

 반면에 B 치과는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지만 과잉진료를 하지 않고 최대한 적게 비용이 드는 한도 내에서 최상의 진료를 해주고 서민들의 형편을 이해해줍니다. 잘한다고 선전하지도 않고 다른 치과를 비판하지도 않습니다. 동네에서 좋은 실력 있는 의사라는 소문이 났지만 그 치과는 20여 년간 거의 커지지 않았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외형적으로 큰 A 치과가 B 치과보다 좋은 줄 알지만 실제로는 반대인 셈입니다.

 외형이나 사탕 발린 말로 인해 판단력을 잃지 마십시오. 실력과 능력과 지식과 콘텐츠로 커진 것은 잘못도 아니고 외형주의도 아닙니다. 최고의 기술력을 가지고 큰 기업을 이뤘을 때 크다고 무조건 비판하지 않습니다. 좋은 내용을 가지고 커진 것은 심은 대로 거둔 것입니다. 그러나 다단계처럼 내용도 없이 거짓말이나 사탕 발린 말로 커지거나 고수익을 미끼로 커지거나 청탁으로 커진 것 등에는 미혹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교회 중에 거짓말과 사탕 발린 말로 미혹해 외형적으로 커진 이단 교회도 얼마나 많습니까? 병이 치유되면 자기가 기도해서 치유해준 것처럼 ‘치유의 종’이라고 선전합니다. 또한 어떤 교인은 누구의 안수기도를 받아 치유되었다고 선전합니다. 그러나 치유나 축귀는 사람이 한 일이 아니기에 어떤 경우에도 사람은 높여지지 말고 주님만 높여져야 합니다. 그때 사람을 높이면 이단 교주의 하수인처럼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선전은 이단 교주의 배만 불리고 많은 영혼을 미혹되게 합니다. 그런 이용도구가 되지 마십시오.

 간증도 바르고 지혜롭게 하십시오. 잘못된 간증은 이단 교주의 배만 불리고 이단 교주에게 영혼을 매이게 만듭니다. 제가 남의 간증이나 성공 얘기를 설교 중에 할 때 가급적 익명으로 하는 이유도 그 사람의 지역 평판이나 다른 이면의 사실을 잘 모른 채 한 부분만 보고 과잉 선전을 할 위험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다른 영혼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 미혹의 통로가 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선교사들을 무료로 치료해준다는 소문을 듣고 온 사람에게 폭리를 취하면 언젠가는 그 실체가 드러나고 역소문이 나면서 교인은 배신감을 느끼고 불신자는 교인을 손가락질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큰 배신감을 느끼실 것입니다. 사람은 다 이익을 추구하지만 A 원장과 같은 트릭은 기독교의 이미지를 먹칠합니다. 반면에 B 원장은 돈보다는 동네의 친절하고 실력 있는 의사선생님으로 남는 것을 기뻐합니다. 성도는 A보다는 B의 모습을 모델로 삼아 성공하고 인물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성도는 생각합니다. “그렇게 바른 것만 고집하면 어떻게 경제적인 인물이 되는가? 때로는 편법도 쓰고 약간은 과장도 해야 성공하지.” 그러나 나쁜 길로 성공하기보다 성공하지 못해도 바른 길을 택하십시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성공하려면 더 땀을 흘리고 더 지혜를 발휘하고 더 진실하고 겸손하게 사람을 섬겨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바르게 살면서도 인물이 되게 하심으로 기독교의 역설의 축복이 진짜 축복임을 증명해주실 것입니다.

< 복 있는 자와 화 있는 자 >

 누가 복 있는 자일까요? 첫째, ‘너희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20절). 이 말씀은 ‘가난한 자’가 무조건 복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무책임과 게으름에 의한 가난은 복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시고 ‘너희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을 때 ‘너희 가난한 자’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가난한 자’를 뜻합니다. 즉 예수님의 뜻과 삶과 일을 추구해 희생함으로 가난해진 사람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일과 뜻을 위해 가난해지는 것도 복이고 더 나아가 심령이 가난해서 겸손한 자가 되는 것도 복입니다.

 둘째, ‘주린 자와 우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21절). 이 말씀은 주린 자와 우는 자에게 천국 소망을 주시려는 말씀입니다. 특히 회개의 눈물을 통해 울면 천국 위로도 넘치게 되고 그때부터 놀라운 반전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결국 웃게 됩니다. 아모스 8장 11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것이 진짜 주리고 목마른 것”이라고 했습니다. 의에 주린 배를 채워주고 우는 자를 웃게 하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말씀입니다.

 셋째, ‘십자가를 지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22-23절). 본문 22-23절에서 핵심 말씀은 ‘인자로 말미암아’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잘못으로 미움 받고 욕먹고 악하다는 말을 듣고 버림받는 것은 저주지만 예수님으로 인해 미움 받고 욕먹고 악하다는 말을 듣고 버림받는 것은 가장 큰 축복입니다. 성도란 예수님을 위해 받는 고난의 십자가를 기쁘게 감수하는 사람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복이 얼마나 큰지 그런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면 기뻐하고 뛰놀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는 십자가로 끝나지 않고 부활의 역사를 낳고 하늘의 큰 상급을 예비합니다.

 누가 화 있는 자일까요? 예수님은 복 있는 자와 180도 반대되는 사람을 화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첫째, ‘너희 부요한 자’가 화가 있다고 했습니다(24절). 왜 부요한 자에게 화가 있습니까? 이 땅에서 위로를 이미 받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미래지향적인 것이고 성도의 삶은 현재보다 미래가 더 나아지는 삶이란 암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실패와 후퇴가 있으면 전혀 안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인생에서 실패도 있고 후퇴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실패와 후퇴 중에도 믿음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조만간 전진의 때가 찾아올 것입니다.

 둘째, ‘배부른 자와 웃는 자’가 화가 있다고 했습니다(25절). ‘배부른 자’는 하나님이 없이 영적인 진리도 외면하고 육신적으로만 배부른 사람을 뜻합니다. 그런 사람은 조만간 헐벗게 됩니다. 또한 ‘웃는 자’는 하나님이 없이 웃고 교만하게 남을 비웃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런 사람도 조만간 애통하는 일이 찾아오게 됩니다. 없는 것이 있는 것일 때도 많지만 반대로 있는 것이 없는 것일 때도 많습니다. 그런 역설의 진리를 기억하고 늘 겸손함을 잃지 않도록 힘쓰십시오.

 셋째, ‘칭찬받는 거짓 선지자’가 화가 있다고 했습니다(26절). 진실한 칭찬과 사탕 발린 말은 다른 것이고 참된 믿음과 영혼을 미혹하려고 내세우는 믿음은 다른 것입니다. 그 차이를 잘 구분해야 자기 영혼을 지킬 수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믿음 얘기를 많이 하지만 그가 말하는 믿음은 영혼을 미혹하려고 내세운 믿음입니다. 칭찬한다면서 불의한 일이나 불의한 사람까지 칭찬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진실한 칭찬은 기뻐하고 수용하되 계산된 칭찬은 잘 구분해서 “나는 그런 칭찬에 마음이 높아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다짐하면서 자신을 지키십시오.

 누가 “목사님! 기도해주셔서 감사해요. 병이 나았어요.”라고 하면 진짜 목회자는 즉시 “제가 낫게 하지 않았어요.”라고 선포하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그 일을 제 공로로 여기거나 그 일로 제 마음이 높아지지 않게 하소서.” 반대로 거짓 선지자는 자기가 진짜 치유의 종이 된 것처럼 자기가 안수하면 낫는다고 은근히 과시하고 심지어는 선전까지 합니다. 거짓 선지자의 그런 모습은 자기도 죽고 남도 죽이는 길입니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다.”는 말씀은 억지로 욕을 많이 먹으라는 말이나 욕을 많이 먹어도 좋다는 말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 칭찬 받는 삶을 사십시오. 그래도 누군가 비판하면 그때는 “모든 사람이 칭찬해서 나를 화가 있는 거짓 선지자가 되지 않도록 하는 악역을 그가 맡았구나.”라고 생각하고 넉넉하게 그 상황을 상처가 아닌 감사로 받아들이십시오. 또한 그 비판을 계기로 자기를 성찰한 후 잘못된 길로 가는 것 같으면 그 길을 수정하고 바른 길로 간다는 확신이 들면 그냥 밀고 나아가십시오.

< 사람을 미화하지 마십시오 >

 이 세상에 비판받지 않을 완벽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을 너무 비판해도 안 되지만 너무 미화해도 안 됩니다. 미화는 ‘미래의 화’를 부릅니다. 영웅적인 사람도 다 약한 존재이고 사소한 실수로 얼마든지 순식간에 망가질 수 있습니다. 사람을 영웅으로 너무 미화시키지 마십시오. 지나치게 미화된 사람에게 미혹되면 인생의 길과 방향과 참된 자유를 잃기 쉽습니다. 정말 존경스러운 사람은 적절하게 존경심을 표하십시오. 그러나 지나친 미화는 삼가십시오.

 대개 교주들은 스스로를 미화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자기 영혼을 맡기면 죽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스스로 미화하지 않아도 남이 미화하는 것을 은근히 즐기는 것도 거짓 선지자의 속성입니다. 남이 미화하면 즉시 자신을 낮춰야지 진짜 높은 줄 알면 언젠가는 무섭게 추락합니다. 왕이나 대통령이 정치를 잘해서 백성이 높여주면 더 낮아짐으로 왕좌에서 내려와 백성들에게 더 다가가야 합니다. 사람들이 높여준다고 마음이 높아지면 안 됩니다. 천국에서의 특별선택을 보장해주고 치유를 준다는 교주의 말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참된 치유자라는 말씀에서 끝내고, 믿으면 치유 가능성이 높아지고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뤄주신다는 말씀에서 끝내십시오. 그것이 지나쳐서 사람에 대해 ‘능력의 종, 치유의 종’이라는 말을 할 때 그 말을 거부하지 않거나 오히려 선전하는 교주는 즉시 떠나십시오. 그런 사람에게 가는 것은 자기 영혼을 사탄에게 파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이 치유의 종이라면 병 완치율을 높이는 현대 의사는 더 큰 치유의 종입니까?

 매년 국내 암 환자는 20만 명 이상 발생합니다. 한번이라도 암을 걸렸던 사람도 2015년까지 146만여 명입니다. 사실상 완치를 의미하는 5년 생존율이 계속 높아지면서 최근에 70.3%.까지 되었습니다. 해마다 20만 명이 암에 걸려도 14만 명이 암을 완치합니다. 그 완치된 사람들이 다 간증합니까? 대부분 조용히 있습니다. 최근에 암 완치율 70%가 넘은 사실은 자기만 놀라운 치유의 은혜를 받은 것처럼 과장 치유 간증을 하지 말고 치유를 선전하는 이단 교주를 너무 높이지 말라는 교훈을 줍니다.

 완치된 수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있는데 교인이 “하나님이 제 기도를 들어주셨어요. 누구의 안수기도로 치유되었어요.”라고 하면서 자기 기도나 특정한 사람의 안수가 능력 있는 것처럼 선전하면 나머지 완치된 사람은 어떻게 치유된 것입니까? 치유 간증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치유 간증도 겸손하게 해야지 자랑하듯이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간증이나 은사가 사람을 높이는 것으로 귀결되면 마귀의 미혹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치유 받고 마귀의 미혹에 넘어가려면 차라리 치유 받지 않고 천국 가는 것이 낫습니다.

 간증은 간증하는 사람이 극적으로 하려는 심리 때문에 과장될 위험성이 많습니다. 종교적인 치유와 관련해서는 그런 심리가 더 심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야 자기가 특별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존재처럼 우러러보게 할 수 있고 자기 믿음이 치유의 믿음인 것처럼 과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치유를 자랑하고 입으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면서 자기가 영광을 받는 간증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게 말이 앞선 사람을 보면 대부분 결말이 나빠지고 다시 병들어 죽는 경우가 조용히 겸손하게 있는 사람보다 더 많습니다. 그런 경우는 이단 교주가 최대한 감춥니다. 좋은 것은 지나치게 뻥튀기하고 나쁜 것은 최대한 감춰서 사람을 미혹하는 것이 이단 교주의 특징입니다. 그처럼 과장 간증은 사람들을 오도하고 거짓 치유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이단 교주의 이용도구가 되면서 하나님의 진노를 부르는 교만한 거짓입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이단 교주에게 미혹되지도 말고 미혹의 도구로 이용되지도 마십시오.

 누군가의 자랑하는 간증을 듣고 “나도 기도하자. 나도 안수받자.”라고 할 때부터 하나님은 사라지고 사람 및 사람의 행위에 집착하게 됩니다. 기도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병 앞에서 인간적인 것을 내려놓지 않고 오히려 붙잡으려는 헛된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말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기도하면서 사랑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고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기쁘게 하겠다는 마음을 가질 때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믿음은 인간적인 욕심을 버리는 것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때 영혼과 육신이 최상의 상태로 회복됩니다.

 치유를 준다는 집회에 가지 말고 “내가 안수하면 치유가 일어나고 귀신이 쫓겨난다.”고 선전하는 사람에게도 가지 마십시오. 그것 자체가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 높아진 모습입니다. 자기만의 특별한 영웅적인 믿음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습니다. 기도할 때도 욕심과 영적인 허영심을 버리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힘써 살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미움과 남 탓 없이 희생적인 삶을 사는 것이 진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영웅적인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참된 치유와 참된 복을 얻어 누리는 천국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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