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경배하는 방법 (신명기 12장 1-14절) 1. 우상의 흔적을 멸하십시오
모세는 우상의 흔적까지 없애라고 했습니다(2-3절). 우상숭배와 하나님 경배는 양립될 수 없습니다. 우상숭배는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주의의 산물입니다. 사탄은 자기중심적인 존재이기에 사탄의 영이 충만해지면 사람도 자기중심적인 존재가 됩니다. 그것이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고 하는 20세기 긍정주의의 산물인 ‘신념’이 가장 사탄적인 것이 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신념이 잘 활용되면 좋을 수 있지만 잘못 활용되면 가장 사탄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우상의 흔적을 멸하는 것은 주변 환경에서 우상적인 요소를 없애는 것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안에 욕심과 이기심과 자기중심주의를 버리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라는 말이 상당히 좋은 구호지만 그 구호가 “내가 할 수 있다. 내가 하면 된다. 내가 해보자.”라는 어투로 쓰이면 안 됩니다. 그 구호가 “하나님 안에서 할 수 있다. 하나님 안에서 하면 된다. 하나님 안에서 해보자.”라는 구호로 쓰일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참된 복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2. 택하신 곳으로 나아가십시오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을 섬길 때 산이나 푸른 나무 아래에 산당을 세워 제사했는데 하나님을 섬길 때는 그들처럼 행하지 말고 택하신 중앙 성소인 예루살렘에서 섬기라고 했습니다(4-5절).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경배하는 마음이 중요하지 경배하는 장소가 왜 중한가?” 원칙적으로는 그 생각이 맞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마음을 담는 틀을 만들어 지키게 해야 마음의 나태와 변질과 교만을 막을 수 있습니다.
순수함을 내세워 자기 마음대로 하면 공동체의 질서를 세울 수 없고 종교는 ‘제 멋대로의 종교’가 되면서 권위의 기초조차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미신적이고 무속적인 종교로 전락할 구 있습니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유독 심하게 하는 사람은 대개 ‘자기 마음’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 마음에 맡기면 법도 필요 없게 됩니다. 법이 없는 세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법이 있어야 하듯이 일정한 틀도 있어야 좋은 것을 오래 보존시킬 수 있습니다.
3. 제물을 드리고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은 각종 희생 제물과 십일조와 소나 양의 처음 난 것을 중앙 성소에 드리라고 했습니다(6절). 본문 7절에서 “여호와 앞에서 먹으라.”는 말씀은 하나님께 바쳤던 희생 제물들을 즐겁게 나눠먹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희생 제물은 제사장들의 몫으로 돌려졌습니다. 7절 말씀은 추수 후에 십일조의 일부를 구별해 드려서 감사 잔치를 베풀고 공동체 전 구성원이 잔치에 참여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명령입니다.
경배는 ‘드리는 삶’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드리는 삶은 욕심을 극복하는 삶의 가장 실제적인 훈련과목입니다. 드리기를 좋아하면 기쁨과 만족을 얻지만 받기를 좋아하면 기쁨과 만족을 얻기 힘듭니다. 왜 어떤 사람은 시험에 잘 듭니까? 취함(getting)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왜 어떤 사람은 시험에 잘 들지 않습니까? 드림(giving)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취함보다 드림에서 기쁨과 만족을 찾는 경배를 하나님께서도 기쁘게 받으십니다.
4. 모두 경배하게 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경배의 제사를 드리고 감사 잔치를 할 때는 자녀와 노비도 참여시키고 레위인도 참석하게 하라고 했습니다(12절). 하나님의 일에 전념하는 레위인을 따로 두었지만 하나님을 경배할 때는 모두가 참여해야 합니다. 즉 영적인 의미에서 모든 사람이 제물도 되고 제사장도 되어야 합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제물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제사장과 같은 존재로 여기십시오.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벧전 2:9).
요한계시록 5장 10절에는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한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권력이나 물질이나 외모로 자신을 인정받으려고 하지 말고 이미 지신이 왕과 여왕 혹은 왕자와 공주라고 의식하고 행동하십시오.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말은 ‘삶으로 드리는 예배’의 모범이 되라는 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죄가 없게 될 수는 없지만 비난이 없게 될 수는 있습니다. 어디에 가든지 성도답게 살아서 하나님의 제사장과 자녀로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거룩한 통로가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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