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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을 잘 지키는 길 (신명기 24장 1-5절)

by 【고동엽】 2022. 12. 24.
  가정을 잘 지키는 길 (신명기 24장 1-5절) 

  

< 가정을 잘 지키는 길 >

 요새 싱글로 살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자녀를 잘못 키워 사회에 큰 폐를 끼칠 바에야 차라리 자녀가 없는 것이 낫다는 말도 합니다. 그러나 자녀가 없는 것이 낫다고 하기보다 자녀를 잘 키워 사회로 내보내면 얼마나 좋습니까? 결혼해서 자녀가 생기면 ‘부모의 심령’이 생깁니다. 그 부모의 심령은 각종 상처를 치료하는 핵심 치료약이 됩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신부를 독신으로 지내게 하는데 왜 기독교에서는 목회자의 결혼을 장려합니까? 혼자 살면서 ‘구도자의 심령’으로 중생을 이끌기보다 가정을 이루어 ‘부모의 심령’으로 양떼를 이끌라는 뜻입니다.

 싱글로 있을 때의 가장 큰 실제적인 아쉬움은 자녀가 없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복의 핵심 내용 중 하나입니다. 자녀가 없음으로 번성의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그것도 부족하나마 입양 혹은 전도와 선교를 통해 영적인 자녀를 많이 낳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싱글로 있기보다는 특별한 사명이 없다면 힘써 가정을 이루려고 해야 합니다.

 요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자녀를 가장 많이 낳지 않으면서 인구가 급속히 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때 교회가 앞장서서 조혼 문화를 장려해야 합니다. 다른 견해도 있겠지만 저의 목회 경험에 의하면 일찍 결혼하면 유익이 많습니다. 자녀에게 조혼을 지혜롭게 권면하면 만남과 사귐도 보다 신중하게 가질 것입니다. 그처럼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려면 조혼과 출산율 증대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현재의 자기 가정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가정을 잘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이혼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당시에 어떤 남편은 아내가 ‘수치되는 일’을 행했다고 누명을 씌워 아내를 집에서 쫓아냈습니다. 그러면 그녀는 사람들의 욕을 먹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생존 자체가 힘들어졌습니다. 그런 폐단에 희생되지 않도록 수치되는 일이 무엇인지를 명백히 밝히고 이혼증서를 써서 손에 쥐어주고 내보내게 해서 함부로 여자를 버리지 못하게 했습니다(1절). 결국 이혼증서 율법은 “이혼해도 좋다.”는 것이 강조된 율법이 아니라 오히려 “이혼을 쉽게 하지 말라.”는 것이 강조된 율법입니다.

 당시에 어떤 남편은 아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잠깐 다른 침실을 이용한 것이나 음식을 못하고 집안정리를 못하고 옛 친구를 만난 것까지 트집 잡아 이혼증서를 써주고 내보냈습니다. 인간의 죄성과 이기심 앞에서 그처럼 법이 무력하게 악용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성도는 법 이상의 삶을 통해 죄성과 이기심과 무책임을 합리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법 이상의 하나님의 뜻을 삶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혼을 쉽게 하지 말라는 말씀은 그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짐과 상처가 되는 말씀이지만 그래도 기쁘게 들으려고 해야 합니다. 율법은 이혼증서를 써주라고 했어도 성도는 이혼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혼증서를 써주라는 율법은 있어도 이혼 자체는 본래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법이 없으면 인간사회가 약육강식의 정글이 되기에 법은 대개 피해자나 약자의 보호를 위해 생긴 것입니다. 이혼증서 율법도 여성을 보호하고 쉽게 이혼하는 것을 막으려고 제정한 것이지 “이혼해도 좋다.”는 허가서가 아닙니다.

 이미 이혼했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평생 다시 결혼하지 말고 죄책감 중에 살아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사함 받지 못할 죄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혼한 사람이 이혼 안한 사람보다 더 죄인은 아닙니다.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이혼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이혼이 죄라는 점만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미 이뤄진 이혼은 현실로 받아들이고 회개한 후 멋지게 새 출발을 하되 그 전까지는 이혼을 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2. 서로 힘써 섬겨주십시오

 어떤 부부는 결혼 전에 가사를 공평하게 하자고 약속합니다. 그러면 이혼율이 낮아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결혼 자체에 그런 약속이 내포된 것인데 외적으로 그렇게 약속하는 것 자체가 깊은 신뢰를 막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완벽하게 공평한 배분은 없습니다. 결혼은 자신이 더 희생하려고 할 때 견고해집니다. 외적인 약속이 없어도 내적인 약속을 중시하는 언약관계는 상처를 아물게 하지만 외적인 약속을 해야 믿겠다는 계약관계는 오히려 상처를 도지게 합니다. 부부관계는 계약관계가 아닌 언약관계입니다.

 ‘계약적인 의무감’은 짜증과 피로를 가중시키지만 ‘언약적인 책임감’은 짜증과 피로를 덜어줍니다. 언약적인 책임감은 행동하는 믿음이고 이기심의 반대말입니다. 자기 필요를 먼저 채움 받기보다 상대의 필요를 먼저 채워주려는 것이 책임감입니다. “가사를 똑같이 나누자! 수입이나 지출도 똑같이 책임지자!”라고 하기보다 언약관계에 충실해서 받기보다 주려고 하고 섬김 받기보다 섬겨주려고 하면서 기쁨과 행복을 느껴야 합니다.

 아내가 가사를 맡은 가정에서 아내가 피곤해서 녹초가 되면 일터에서 귀가한 남편이 피곤해도 힘써 도와줍니다. 그것이 섬김입니다. 어떤 아내는 피곤해도 “남편에게 이런 가사를 시키면 큰 인물이 못 되지..”라고 하면서 자기가 애써 합니다. 그것도 섬김입니다. 그렇게 서로 섬기고 배려하면 상황에 따라 일의 조정과 배분이 저절로 아름답게 이뤄집니다. 그러면 일의 조정과 배분을 구두로 약속하고 심지어 계약까지 하는 것보다 신뢰관계가 더 깊어집니다.

 믿음의 중요한 열매 중의 하나는 섬김입니다. 섬길 줄 모르는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가정에 섬김의 기쁨이 넘치게 하십시오. 결혼할 때 가장 준비해야 할 것은 혼수가 아니라 섬김의 자세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란 간단히 말하면 섬길 줄 아는 사람입니다. 교회에서도 얻으려고만 하지 마십시오. 이미 받은 은혜가 많다고 여기고 주려고 할 때 더욱 큰 은혜가 따라옵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족과 교우를 힘써 섬길 때 그 관계가 견고해집니다.

3. 가정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이혼증서를 받고 내쫓겨진 여성은 어떻게 됩니까? 남편이 사망한 여성처럼 이혼증서를 받고 이혼당한 여성도 다시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2절). 그렇게 다시 결혼했다가 둘째 남편으로부터도 이혼증서를 받고 이혼당하거나 둘째 남편이 죽었다면 어떻게 됩니까? 다른 남자를 만나서 또 결혼할 수 있지만 첫째 남편과는 다시 결혼할 수 없었습니다(4절). 그 율법은 결혼과 이혼을 함부로 하지 말고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성적인 순결도 지키라는 뜻입니다.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배우자와 가족을 지켜주십시오. 그렇다고 늘 가정에만 있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에 나가서 열심히 제 역할을 해서 지경을 넓히려고 해야 합니다. 가정적인 삶이란 가정에만 있는 삶을 뜻하지 않습니다. 교회중심적인 삶도 맨날 교회에 와서 사는 삶을 뜻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주일에 교회에 와서 힘써 예배하고 교제하고 봉사하는 삶이 진짜 교회중심적인 삶입니다.

 가정적인 삶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재택근무를 하는 것도 아닌데 맨 날 집에 있으면서 아내의 가정 일을 잘 도와주는 것이 가정적일까요? 남편이 밖에 나가서 돈도 벌어오지 않고 집안에만 있으면 아내가 가정적이라고 좋아해줍니까? 밖에 나가서는 ‘포효하는 호랑이’처럼 열심히 일하고 지경을 넓혀 가정을 물질적인 궁핍과 환경적인 고난으로부터 힘써 막아내려고 한 후에 집에 와서는 ‘순한 양’처럼 수고하는 아내의 손을 꼭 잡아주는 것이 가정적인 것이지 밖에서의 할 일을 외면한 채 집안 일만 도와주는 것은 가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아내는 가끔 그윽이 커피를 들이키며 독서도 하고 묵상도 하고 혼자 휴식을 즐기고 싶습니다. 때로는 남편이 집을 떠나 아내가 혼자 있도록 해주는 배려도 있어야 합니다. 맨날 남편이 특별한 일도 없이 집에만 있는 것은 아내에게 고통일 수 있습니다. 아내와 함께 하라는 말이 아내랑 늘 붙어 다니라는 말은 아닙니다. 때로는 가족이 혼자 있는 시간도 필요한 줄 알고 일터가 없으면 산이라도 가서 혼자 있게 배려해주십시오. 그런 지혜와 사려를 가지고 가정을 소중히 여길 때 그 가정이 복된 가정이 됩니다.

4. 가족을 즐겁게 하십시오

 본문 5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람이 새로이 아내를 맞이하였으면 그를 군대로 내보내지 말 것이요 아무 직무도 그에게 맡기지 말 것이며 그는 일 년 동안 한가하게 집에 있으면서 그가 맞이한 아내를 즐겁게 할지니라.” 이 구절에서 “아내를 즐겁게 하라.”는 말씀은 좋은 성적 파트너가 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결혼한 후 1년 동안 군역과 공역을 면제시켜준 것은 신혼기간에 자녀를 출산해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문화 명령을 이루라는 뜻입니다.

 또한 “아내를 즐겁게 하라.”는 말씀은 “가족을 즐겁게 하라.”는 말씀으로 의미를 확대시킬 수 있습니다. 가족을 즐겁게 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 중의 하나입니다. 가족에 대한 비난은 힘써 주의하십시오. 가족의 잘못에 대한 사려 깊은 지적은 필요하지만 가족의 존재 자체를 비난하면 상처만 되고 잘못을 고치는 데 전혀 유익이 없습니다. 경멸하는 표정과 말투를 삼가고 창조적인 침묵이 아닌 경멸하는 침묵도 삼가십시오.

 가족 간의 다툼과 갈등의 근본원인은 구체적인 어떤 문제보다는 ‘불신’입니다. 그런 불신이 깊어지면 사소한 태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가족의 언행을 나쁘게만 보면서 사소한 문제가 큰 싸움으로 변질됩니다. 가족이 다툴 때 “누구 잘못이 크냐? 원인제공자가 누구냐? 누구 말이 옳으냐?”를 따지는 것은 문제해결에 거의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런 지능지수를 요구하는 의문들은 오히려 다툼을 키울 때가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랑과 섬김을 작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툼이 있어도 다툼 후에 더 성숙한 관계가 됩니다.

 서로 섬겨주고 순종하려고 하십시오. 가족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자기 몸을 가족 위주로 운용하십시오. 순종이란 가족이 자기 몸을 주관하게 하고 기쁘게 지배당하는 것입니다. 서로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지배당하려고 하십시오. 영적인 의미에서 완전히 지배당하고 제압당하십시오. 법과 원칙과 질서와 통념과 관습의 수준으로 살지 말고 그 이상의 수준으로 사십시오. 평등을 내세우기보다 서로 먼저 섬기는 삶을 내세우십시오.

<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가족이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서로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겨주고 서로의 약점을 꼬집지 마십시오. 특히 “믿는 사람이 왜 그래?”라고 하지 마십시오. 믿음을 약점으로 삼는 언사는 가장 비겁한 언사입니다. 부족한 존재임을 자인하면서 바른 믿음을 가지고 바르게 살아보려는 것을 가족이 격려하기는커녕 악용하면 안 됩니다. “믿는 사람이 왜 그렇게 자기주장이 심해?”라고 하면서 자기주장에 동조해야 잘 믿는 것이라는 뉘앙스를 주는 언사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비겁한 언사입니까?

 가족에게 상처를 주지 말고 가족을 최대한 즐겁게 해주십시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가정에서 평안을 찾고 가정에 평화를 전해주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쉽게 무너지듯이 가정도 쉽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음란의 누룩이 퍼지면 자신도 망하고 가정과 교회와 국가도 망합니다.

 어느 날, 한 여자 집사가 한 남자 댄스 교사에게 세를 내주었습니다. 그때부터 그 남자가 매일 음악을 틀어놓고 춤 연습을 하자 말씀생활과 기도생활이 방해되고 머리가 지근지근 아프다고 목사님께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몇 달 후 그 여 집사가 그 댄스 교사와 바람이 나서 도망쳤습니다. 사람이 죄로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삶과 가정을 지켜주셔야 합니다. 가정을 잘 지킬 때 교회도 잘 지킬 수 있습니다. 가정을 잘 섬기지 못하고 교회를 잘 섬긴다는 것은 사실상 복된 모습이 아닙니다.

 지난주에 여선교회 회원들이 사정상 설거지를 못하게 되자 몇몇 여학생들이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하며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 장면은 이제까지 목회하면서 본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였습니다. 그 여학생들의 섬김 교육은 다른 어떤 교육보다 소중한 교육입니다.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어린 여학생들이 교회 식당에서 은밀하게 설거지하는 모습이 교회 본당에서 두 손을 들고 화려하게 찬양하는 모습보다 더 아름답게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가정과 큰 가정인 교회를 잘 섬기면 인물의 축복과 행복한 가정의 축복이 더욱 가까이 문 앞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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