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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에게 중요한 5가지 신앙 느9:1~38

by 【고동엽】 2022. 12. 22.

성도에게 중요한 5가지 신앙              느9:1~38           *출처

 

이한규 목사   

 

 

 

▲진실한 성도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어느 수필가의 이야기다. 그가 신설동에서 봉천동으로 이사할 때,

원래 살던 신설동 집의 방마다 창호지를 북북 찢어 놓고,

청소도 엉성하게 했다.

미신에 따라, 복이 그 집이 싫어서 자기를 쫓아오게 하기 위해서였다.

 

드디어 봉천동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집이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고 부엌도 깨끗했다.

그리고 방마다 연탄불이 피워져 있었고,

눈에 잘 띄는 곳에 종이 한 장이 있었는데 이런 글이 적혀있었다.

 

“이사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 집에서 부디 행복하게 사세요.

저는 다음 주소로 이사 갑니다. 혹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연락주세요.”

 

이것이 바로 미신과 진실한 신앙의 차이다.

한 사람의 진실한 성도는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진실한 성도 한 사람이 세상을 밝게 한다.

우리는 어떻게 진실한 성도가 될 수 있을까? 느 9장을 통해 살펴보면...

 

◑1. 회개하는 삶

 

‘그 달 이십사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를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느 9:1

 

금식하고 굵은 베를 입고 티끌을 뿌리는 것은

가장 극한 슬픔을 당했을 때 나타내는 표현인데

그 정도도 그들은 철저히 회개했다.

형식적인 회개는 상황을 변화시키지 못하지만

철저한 회개는 상황을 극적으로 변화시킨다.

 

▲잘못된 습관은 끊어라

모든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열조의 허물을 자복하고 9:2

이방 사람과 절교했다는 것은→오늘날로 말하면 잘못된 습성을 끊었다는 뜻.

참된 회개에는 잘못된 것을 과감히 끊어내는 행동이 있어야 한다.

 

또한 그들은 죄를 회개할 때 자기의 죄뿐만 아니라,

조상들의 죄까지도 회개했다. 그처럼 그들은 철저히 회개했다.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사람은 애통하며 회개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회개할 줄 모르는 의인보다

회개할 줄 아는 죄인을 더 기뻐하신다.

왜냐하면 아무리 의인인 척 해도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죄인이기 때문이다.

 

 

◑2. 말씀 중심적인 삶

 

‘이 날에 낮 사분지 일은 그 처소에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지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느 9:3

 

▲기도와 말씀은 병행 되어야 한다.

낮 4분지 1인 아침 6-9시까지 먼저 말씀을 낭독했고, 그 말씀을 바탕으로

두 번째 낮 4분지 1인 아침 9시부터 정오까지 회개하는 기도를 했다.

그처럼 기도할 때도 먼저 말씀을 보고 기도했다.

또한 그들은 말씀 읽는 시간과 기도 시간을 똑같이 3시간씩 했다.

그것은 말씀과 기도가 다 중요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기도 할 때 항상 말씀 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먼저 찾아야 한다.

내 뜻이 아닌, 주님 뜻(말씀 ) 대로 기도 해야 응답 받는 기도가 된다.

 

▲결산하면 늘 흑자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에 대한 확신을 가지면

어떤 실패와 절망 속에서도 일어설 수 있다.

 

살다 보면 가끔 성도도 실패한다. 그때 말씀은 뭐라고 말하는가?

성도의 실패는 저주나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담긴 일시적인 시련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우리는 실패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얻는 경우가 많다.

 

소유를 잃고 나서 지혜를 얻고,

사업을 잃고 나서 친구와 아내의 사랑을 얻고,

지위를 잃고 나서 더 좋은 겸손을 얻는다.

 

성도에게는 절대로 적자가 없다. 결산하면 늘 흑자다.

성도는 실패 속에서도 더 큰 축복이 있음을 믿고

낙심하지 말고 긍지를 잃지 말아야 한다.

성도는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난다.

 

그러므로 성공을 얻겠다고 용을 쓸 필요가 없다.

성공이란 악착같이 산다고 얻는 것이 아니다.

성공에 집착하면 그 집착이 오히려 우리를 파멸시킬 수 있다.

 

성공은 주어지는 것이다.

성공은 선하고, 진실하고, 사랑과 용서를 알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 바로 성공입니다.

 

▲주위 환경에 흔들리지 말라

우리는 환경을 보고 성공과 실패를 단순히 평가하지 말고,

남의 시선과 소리에 흔들리지 말고 말씀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사람이 실패할 때 실패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

그것은 주위 사람들의 편견과 정죄다.

누가 실패하면 “게을러서 그렇다. 성격이 나빠서 그렇다.

말이 앞서서 그렇다. 교만해서 그렇다. 실력이 없어서 그렇다” 라고

평가하기 쉬운데 (물론 그런 것이 성공에 장애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꼭 그것 때문에 실패한 것은 아니다.

사람의 실패에는 수많은 감춰진 요인도 있고, 하나님의 뜻도 있다.

 

그러므로 남의 시선과 소리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자기 생각만 가지고 판단하고 쉽게 얘기하는 사람은 어디나 있다.

그러므로 남이 하는 소리와 남의 시선에 흔들리지 말고

오직 말씀 위에 든든히 서고 말씀 안에서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3. 찬양하는 삶

 

▲찬양으로 기도를 시작함

레위 사람 종교 지도자들은 강단에 올라서서 큰 소리로 말했다.

‘너희 무리는 마땅히 일어나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찌어다

주여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송축하올 것은

주의 이름이 존귀하여 모든 송축이나 찬양에서 뛰어남이니이다.’ 느 9:5

그들은 기도 전에 하나님을 송축하라고 강조했다.

 

우리도 기도할 때 먼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쳐주실 때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며

하나님을 송축하는 것으로 기도를 시작했다.

 

그처럼 항상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원망과 불평을 앞세우는 부정적인 사람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신다.

 

▲나는 어느 쪽인가?

가끔 자녀 중에 부모의 사랑은 외면하고

부모가 상처를 준 것만 기억하는 자녀들이 있다.

그래서 “엄마 아빠가 날 사랑한 적이 언제 있느냐?”고 따진다.

기가 막힌 일이다. 철이 없으면 사람이 그렇게 앞뒤가 꽉 막히게 된다.

 

반면에 어떤 자녀는 너무 가난하게 자랐지만

부모가 자기를 고생시킨 것은 하나도 생각 안 하고

부모가 자기를 위해서 고생한 것만 생각해서

늘 감사하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얼마나 복된 자녀인가?

 

▲항상 기뻐 찬양

성 프랜시스는 새들에게 항상 말했다고 한다;

“새들아! 하나님께서 너희들에게 날 수 있는 자유를 주시고,

먹을 것과 샘물을 주시고, 둥지를 주셨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항상 하나님을 찬미해라!”

우리도 수많은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결코 잊지 말고

항상 우리의 입술에 항상 찬송이 넘치도록 하자.

 

 

◑4. 기도하는 삶

 

느헤미야 9:6-38절까지는 장문의 기도가 나온다.

기도의 전체 주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가나안의 축복을 주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시로 불순종해서 이방인의 손에 잡히게 되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공의와 신실하심을 확신한다는 내용이다.

 

이 기도를 보면, 당시 지도자들은 기도할 때

무조건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얘기하고 반성하면서 기도했다.

 

그처럼 우리의 기도에는 자기 성찰 과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신뢰가 담겨 있어야 한다.

      

이제 달라는 기도는 조금 줄이고

자기 성찰과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는

조금 더 늘려야 하겠다.

성숙한 기도만큼 우리 마음에 평안과 치유를 주고

문제를 해결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개를 바라보며 얻는 통찰력

개들이 주인의 손에 있는 고기를 먹고 싶을 때 어떻게 하는가?

고기를 먹고 싶지만 주인이 주기를 기다리면서

가끔씩 주인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러면 그 애틋한 개의 눈동자를 보고

바로 주인은 고기를 개에게 준다.

 

만약 개가 고기만 쳐다보고, 고기를 향해서 멍멍 짖으면

주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용히 기다리면서 한번씩 고기 주인을 바라보니까

더 주고 싶은 생각이 난다.

 

우리도 기도할 때 욕심을 가지고 너무 자기 목표만 바라보지 말고

기도를 이뤄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확신하며 믿음으로 기도하고,

기도를 마칠 때도 “주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처럼 우리의 기도가 ‘응답 중심적인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중심적인 기도’가 될 때

오히려 더 응답받는 역사가 있게 될 것이다.

 

 

◑5. 결단하는 삶

 

▲결단 하며 기도를 마침

‘우리가 이 모든 일을 인하여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을 치나이다 하였느니라.’

느 9:38

 

위의 9:38절처럼, 기도는 최종적으로 헌신의 결단으로 마쳐져야 한다.

헌신을 결단하지 않고, 새로운 역사만 기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헌신적인 행위가 필요하다

아무리 큰소리로 부르짖으며 기도해도 순종이 없으면 허무한 기도가 된다.

예배조차 순종을 전제로 해야 참된 예배가 된다.

그래서 사무엘상 15장 22절에서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말하고 있다.

말씀과 기도는 항상 순종하는 행위로 나타나야 한다.

 

기도하는 입술도 중요하지만, 남을 돕는 손길도 중요하다.

행위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행위가 드러난다.

성도의 의무와 책임을 외면하고, 은혜와 축복만 바라는 것은

잘못된 은혜주의다.

 

행함을 절대시하는 율법주의만큼,

행함을 무시하는 은혜주의도 잘못되었다.

 

구원은 공짜로 얻었지만

구원받은 사람은 자기의 소중한 것을 드리고,

최종적으로는 자기 몸까지 드릴 줄 알아야 한다.

 

구원받은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성도에게는 행위도 있어야 한다.

물론 행위를 자랑하지는 말아야 한다.

우리가 자랑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뿐이다.

 

▲제가 요새 문자 메시지를 배웠다.

그래서 말로는 전혀 못할 사랑 얘기를 아내에게 문자로 보낸다.

 

“사랑을 씹고 그리움을 씹어 봐도 입술에 부딪치는 이름은 그대 이름뿐!

눈을 뜨면 자꾸만 보고 싶다! 날씨도 꿀꿀한데 사랑하고 싶구나!

당신이 있어 행복해요 내 마음은 당신뿐!

하늘처럼 높고 바다처럼 넓고 봄 향기 같은 그대 마음이 그립네.”

 

그런데 제가 만든 얘기는 하나도 없다.

남들이 만들어놓은 얘기를 베껴서 보낸 것이다.

 

그런 식으로 말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메시지를 문자로 보내니까

요새 아내의 서비스가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저는 그 동안 아내가 목석같은 여자인 줄 알았다.

꽃을 사오면 “왜 꽃을 사와요? 빵을 사오지!”라고 말하면서

그런 일에는 신경을 안 쓰는 여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에 장난삼아 문자로 좋은 말 몇 마디 해주니까

얼굴 표정이 좋아지고 얼마나 대접이 좋아지는지 모른다.

 

내가 사랑한 만큼 사랑을 받고, 칭찬한 만큼 칭찬을 받고,

남을 행복하게 한 만큼 내가 행복하게 된다.

그처럼 내가 하나님께 드린 만큼 받는다.

 

▲달라 는 것은 주시겠다 는 뜻★★

왜 하나님께서 “네 몸을 달라!”고 하실까?

그 말에는 “내 축복을 너희에게 다 주마!”라는 약속이 담겨 있다.

 

사람 사이에서도 “너 나 사랑해?”라는 질문은 질문이 아니라 고백이다.

아이들에게 “은혜야! 한나야! 너희들 아빠를 사랑해?”라는 질문은

질문이 아니라 아빠가 너희들을 사랑한다는 고백이다.

연인들이 “당신 나 사랑해?”라고 묻는 것은

“나는 당신을 사랑해”라고 하는 고백을 질문으로 한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이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다.

그것은 주님이 베드로를 사랑한다는 고백이다.

사랑관계에서는 질문이 고백이고, 달라는 요구는 주겠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네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것은

“내가 너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겠다”는 사랑의 말씀이다.

우리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 드려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나도 없고

온통 얻는 것만 생기게 될 것이다.

 

▲주면 빼앗기지 않지만, 안 주면 빼앗긴다.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이다.

사실 드리는 삶에 행복이 있다. 부부관계를 생각해 보시라.

부부끼리는 줘도 빼앗기지 않는다. 그러나 안 주면 안 주는 것만큼 빼앗긴다.

신앙생활에서도 하나님께 안 드리면 안 드리는 것만큼 빼앗긴다.

그러나 드리면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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