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신세대가 되십시오 (신명기 2장 6-15절) < 평화를 추구하십시오 >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 하나님은 이방민족을 무조건 배타하고 죽이라고 하지 않고 에돔 족속에게는 해를 끼치지 말고 에돔의 것을 약탈하지 말고 돈으로 지불해서 양식과 물을 사라고 했습니다(6절).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은 ‘대가를 치르는 신앙’이 탁월해야 합니다. 구원이 사람의 노력이나 공로로 얻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잘못 적용해서 공짜 의식에 젖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구원이 있기까지 ‘예수님의 피’라는 엄청난 대가가 치러졌음을 늘 기억하고 대가를 치르려고 하십시오.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성숙한 성도가 될 수 없고 가나안의 꿈과 비전도 이룰 수 없습니다. 물이 자기를 증발시켜 수증기가 되어 바람에 자신을 맡길 때 먼 곳에 비를 내려 그곳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자기를 증발시킬 줄 아는 사람이 메마른 사회에 유익한 비를 내려줄 수 있습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성도답게 살지 못하는 모습이 왜 생깁니까? 하니님의 뜻을 따라 대기를 치르려는 선택과 결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가를 치르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에 부족함이 없게 하십니다.
40년의 광야 기간 동안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는 일마다 복을 주시고 함께 하심으로 부족함이 없게 하셨습니다(7절). 40년 광야 기간은 ‘저주스런 형벌기간’이라기보다는 ‘은혜로운 훈련기간’이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광야 40년 동안 부족함이 없게 하셨던 은혜를 상기시켰습니까? 힘이 생겼다고 분수를 모르고 더 많이 얻으려는 욕심을 가지고 함부로 주변 민족들을 약탈하지 말라는 뜻도 있습니다. 특히 에서의 후손과는 욕심을 품고 더욱 싸우지 말라는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처럼 싸우지 않기 위해서 적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당시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 남부로 직행하는 길을 에돔 족속이 막고 있어서 한참 먼 우회길인 아라바를 지나 홍해의 아카바만 최북단에 위치한 2개의 항구 도시인엘랏과 에세온 게벨 옆을 통과한 후 모압이 차지한 광야 길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때 롯의 후손으로 이스라엘과 가까운 족속인 모압 족속과도 싸우지 말라고 했습니다(8-9절).
< 영적인 신세대가 되십시오 >
왜 하나님은 에돔이나 모압과 싸우지 말하고 했습니까? 그들이 형제 족속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상당한 군사력을 가졌던 그들과 싸우면 전투력의 약화로 가나안 정복전쟁은 더 힘들어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에돔 및 모압과 싸우지 않고 한참 우회하는 길을 택해 38년을 광야에서 지내야 했고 마침내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사해 남동쪽에 있는 세렛 시내를 건너므로 광야생활을 끝내고 가나안 진입 모드에 돌입했습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세렛 시내까지의 직선거리는 약 130km로서 1주일이면 가는 길을 38년 걸린 것은 에돔 및 모압과의 전쟁을 피하려고 한참 돌았기 때문이지만 결국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 때문이었습니다. 그 기간에 20세 이상의 구세대 군인들은 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14절). 그들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해서 결국 가나안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간 것입니다.
구세대 군인들이 출애굽 직후 아말렉과의 르비딤 전투(출 17:8-16)에서 승리하는 등 어느 정도의 전쟁 경험이 있어서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그들의 일부라도 있으면 가나안 정복전쟁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그들을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다 광야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한 명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마침내 신세대 군인들을 통해 가나안 정복전쟁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가나안 정복전쟁에 구세대 군인들을 한 명도 쓰지 않았습니까? 그들의 경험을 무시해서도 아니었고 그들이 너무 늙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불신과 불순종 때문이었습니다. 육신적으로는 나이를 가지고 구세대와 신세대를 구분하지만 영적으로는 믿음과 순종 여부로 구세대와 신세대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가지고 순종하는 신세대를 통해 가나안 정복전쟁을 수행하고 마침내 가나안의 축복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기도응답도 순종하는 믿음이 전제되어야 나타납니다. 엘리야도 순종하는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했기에 하늘의 불을 끌어내리는 위대한 선지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현대는 기적이 사라진 시대라고 말하지만 기적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기적을 일으킬만한 순종하는 믿음을 가진 영적인 신세대가 사라진 것입니다. 순종하는 믿음을 가진 영적인 신세대가 되면 가나안의 비전을 성취하는 날이 성큼 다가올 것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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