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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전쟁(1) (신명기 2장 16-19절)

by 【고동엽】 2022. 12. 18.

평화와 전쟁(1) (신명기 2장 16-19절) < 순교자의 영성으로 사십시오 >

 시편 23편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목자로 묘사하고 성도들을 양떼로 묘사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성도를 양떼로 묘사했습니까? 맹수는 싸워서 이겨야 사는 존재지만 양은 목자를 따라다니며 푸른 풀밭에서 평화롭게 지내며 사는 존재로서 그 모습이 성도의 삶의 예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일꾼’이 아닌 ‘파트너’로 여겨주십니다. 하나님을 대할 때 일꾼보다는 파트너라는 의식을 우선적으로 가지십시오. 즉 하나님의 일을 하기 전에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십시오.

 다른 짐승들은 뿔이 있거나 뒷발이 강하거나 독소가 있어서 자기를 방어하지만 양은 방어무기가 거의 없기에 맹수가 달려들면 그냥 잡혀 먹힙니다. 양은 목자의 보호로 사는 것이지 혼자 놓아두면 죽습니다. 양은 잡혀 먹히지만 잡아먹지 못합니다. 성도도 잡혀 먹힐지언정 잡아먹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실 때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시면서 제자들이 잡혀 먹힐 현실을 측은하게 여기셨습니다.

 잡아먹기보다 잡혀 먹히면서 잡아먹은 사람의 체질을 바꾸는 것이 십자가의 원리입니다. 거룩한 리더십의 요체는 자기를 잡아먹도록 내놓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 양을 위해 목숨을 버렸다.” 목자가 목숨을 버려 양떼를 지키려면 십자가를 지고 잘 죽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어떤 존재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면 선한 영향력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그런 깊은 순교자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을 믿음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요새는 설교할 때 순교 얘기를 잘 꺼내지 못합니다. 교회가 크게 성장하려면 “예수 믿으면 축복 받고 별을 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얘기하면 별을 못다는 사람은 100명 중의 99명이기에 별을 못 다는 99명의 교인은 결국 믿음생활에 회의가 생깁니다. 그런 회의를 막으려면 예수님의 길과 진리와 생명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순교자란 누구입니까? 믿음 때문에 죽는 사람만이 순교자가 아닙니다. 죽음과 상관없이 자기 죽음을 선언하고 예수님의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사는 사람이 순교자입니다. 즉 상대방이 죽이려고 할 때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하는 것이 순교입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순교자의 영성을 가지고 평화를 추구하며 사람과 환경과 역사 속에 들어가 사람과 환경과 역사를 변화시키는 초석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 싸우지 않으려고 애쓰십시오 >

 출애굽 당시에 20세 이상의 남자는 애굽의 고난, 광야의 경험, 아말렉과의 전투 등을 겪어서 가나안 정복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다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나안 땅으로 향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능력보다 믿음과 순종이 더 중요하다는 암시입니다. 그렇게 가나안 땅으로 다시 향하게 하면서 에돔 및 모압과 싸우지 말라는 명령을 주신 하나님께서 본문에서는 암몬과 싸우지 말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본문 18절에 나오는 ‘아르’는 아르논 계곡에 있는 모압 변경의 성읍으로 한때 모압의 수도였습니다(민 22:36). 아르논 계곡은 사해 동쪽에 있는 약 30km 길이의 가파른 골짜기로 그 골짜기를 따라 아르논강이 사해로 흘러갑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모압 변경인 아르를 지나 암몬 족속의 경계에까지 이르렀을 때 암목 족속과 싸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암몬 족속도 모압 족속처럼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으로서 이스라엘과는 형제 족속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전쟁보다 먼저 평화를 추구하기를 원하십니다.
 
 인생은 전쟁과 같습니다. 인생 전쟁에서 진정한 성공과 발전을 이루려면 최대한 평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성도는 더욱 그래야 합니다. 평화롭게 살려면 나쁜 것을 잘 버리고 좋은 것을 잘 추구하십시오. 또한 억압과 미움과 교만을 버리고 섬김과 사랑과 겸손을 추구해서 세상을 평화롭게 이끌려고 하십시오. 자기의 억압된 감정을 풀려고 남을 억압하고 자신의 소외감을 풀려고 남을 따돌리는 것처럼 불행한 태도는 없습니다. 평화를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온정주의가 남용되면 안 되지만 온정은 늘 살아있어야 합니다.

 국가나 사회도 발전을 이루려면 전쟁이 없어야 합니다. 전쟁이 벌어지면 전쟁 당사자는 무수한 것을 잃습니다. 전쟁은 물질세계는 물론 정신세계까지 폐허로 만듭니다. 한 나라가 문화적인 융성기를 맞이하려면 최소한 50년 이상은 전쟁이 없어야 합니다. 한국 역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우리나라 역사상 50년 이상 전쟁이 없었던 기간은 육이오 전쟁 이후로 63년 간 전쟁이 없었던 지금 시대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지금의 기조를 잘 이어가야 세계의 영적인 장자국가로서 또한 선교하는 국가로서 한민족의 때가 성큼 다가올 것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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