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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선희목사/교회 됨의 의미! (행 15:6-11)
오늘은 교회됨의 의미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예루살렘 교회는 아 시는대로 사도들이 세운 교회 가운데 제1교 회입니다. 시설이 그렇다는게 아닙니다. 행정이 그렇다는 게 아닙니다. 정치체제도 아닙니다, 무슨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는 것 도 아닙니다, 목회계획이 있는 것도 아닙니 다. 초대교회라는 것은 다만 하나님의 말씀 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일꾼 이 있을 뿐이요, 하나님께서 택하신 종을 통 하여 말씀이 전해지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 이 전부입니다, 이 교회는 폭탄처럼, 폭발
물처럼 부흥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흥될 때에 첫 번째로 걸린 문제가 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대로 그것 은 문화적 장벽이었습니다. 교회가 부흥됨 에 있어서 어쩌면 가장큰장애물이 바로 문 화적 장벽(cultural barrier)입니다. 교회는 예루살렘에서 시작이 됩니다. 유대사람들 이 먼저 예수를 믿었습니다. 유대말을 하 고, 유대문화에 젖어 있고, 성경을 알고, 할 례를 받고, 소위 거룩하게 산다는 선민의식 을 가진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이제
이방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됩니다. 이 사람 들은 율법도 모르고, 하나님의 법도 모르고, 안식 일도 모르고, 할례도 모릅니다. 운상을 섬기며 자기 나름대로 살던 사람들이 예수 를 믿고 세례를 받게 됩니다, 엊그제까지 유대사람들은 이방 사람들을 개같이 취급 했습니다. 상종하지를 않았습니다. 같이 만나고, 같이 음식을 나누고, 같이 유숙하 고, 통흔을 하고,,,,,, 이것은 상상도 못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은 저 이방사람을 한 형제로 영접해야 된다니, 그것은 보통 어 려운 일이 아닙니다. 신앙이 좋은 사람들은 가능했지만 일반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 입니다. 여기서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 보면 사도 베드로는 이 문제를 신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철학적 으로 설명하려 하지 않고 자기가 당한 경험 을 이야기합니다. 사도행전 10장 처음에서 부터 읽어가노라면, '하나님께서 내게 고넬 료의 집에 가라 지시하셨다'고 베드로는 말 씀합니다. "그는 로마 군인이요, 이방사람 이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그러한 사람입 니다마는 나는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기에 갔고, 유숙하라 하셨기에 유숙했고, 복음 전 하라 하셨기에 전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니 까 성령이 충만해지고, 저들이 방언을 하고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막을 수 있겠습니 까?" 현대말로 하면 노회, 총회에서 결의할 것도 없고, 공회 결의를 거치지도 아니하고 베드로는 이방사람에게 세례를 주었습니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내가 어찌 막
을 것이냐? 하나님께서 평등하게 대하시는 데 내가 어떻게 차별할 것이냐?하는 마음 에서 베드로는 그렇게 했습니다. 이것이 시 비가 되어서 모인 것이 예루살렘 공의회입 니다 그것이 사도행전 15장 전 장에 나타 나는 내용입니다. 공의회에서 지금 베드로 가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본문의 말씀 입니다
동질성을 인정하라
버나드 쇼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이웃 에 대한 가장 악한 죄는 이웃을 미워하는 것 이 아니라 그와 나를 구별하는 것이다" 여 러분,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가 된다는 것 을 알아야 합니다. 때로는 이것이 살인죄보 다도 더 무서운 죄입니다. 인권에 대한 살 인이니까요. 우리는 누구도 차별해서는 안 됩니 다.
교인들간에 주고 받는 대화를 들으면, 본인 들은 생각없이 하는 말이지만 저는 가슴이 뜨끔할 때가 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아주 예쁘고 돈이 많은 집 딸이 어떤 총각하 고 연애를 해서 그와 결촌을 하겠다고 했어 요. 그 총각은 신앙도 좋고, 공부도 잘하고, 머리도 좋은데 전혀 돈이 없습니다. 형편없 이 고학을 하고, 고생을 했습니다, 저도 옛 날에 고학을 했기 때문에 고학생에 대해서 는 동정하는 바가 많습니다. 어쨌든 지금 그 둘이 사랑해서 결혼한다고 하니까 그 신 부 어머니가 저한테 와서 직접 이렇게 말합 니다. "그 총각이 감히 어떻게 우리 딸을넘
봅니까?
족보를 봐도 시원치 않고, 공부를 봐도 저쪽 이 휠씬 낫고, 윌 봐도 얘기가 안되는데 이 쪽에서는돈몇 푼 있다고"감히 우리 가문 을 어떻게 넘보냐?고 합니다 죄송하지만 그 말을들을때에 저는 당장 벼락이 떨어지 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이 사람이 무사하 기 어렵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이 렇게 사람을 무시합니까? 돈 몇 푼이 뭐 대 단한 것인 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훅 불 어버리시면 하루 아침에 재가 되고 마는 것 인데 어떻게 감히 이런 생각을 합니까? 이 럴 때에 저는 너무도 괴롭습니다, 그 자리 에서 무슨 말을 못합니다마는 정말 괴롭습 니 다.
차별의식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무릇 사람 은 동질성을 확대하고 이질성을 줄여야 합 니다, 다 하나님 앞에 부족하고, 다 믿음으 로 구원을 얻고, 다 그렇게 태어나서 그렇게 죽어 가는 것입니다, 무덤에 가서 비석이 크든 작든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저는 무 덤에 장식하는 것처런 맹랑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썩는데 관이 크면 어떻 고 작으면 어떻습니까? 비석이 큰 게 무슨 대단한 얘기입니까? 쓸데없는 짓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동질(같은 것)이 99%입니 다. 다른 것은 고작 돌덩어리 하나 가져다 세워놓은 것 밖에 더 있습니까7남녀도 그 렇습니다. 아내와 남편 사이가 불화하다면 무엇 때문에 불화한 것입니까? "나는 본질 적으로 너와 다르다", "우리 가문과 네 가문
이 다르다"는 이것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 다. "알고보면 나와 너는 똑같다, 다 죄인이 고 다 부족하다, 하나는 돈벌어오고 하나는 아이 낳고, 그것만 다르다" 이렇게 생각을 해야가정이 평안할 텐데 무엇을더 좀배웠 다고 해서 대단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며칠 전에 95세이신 한경직 목사님을 뵈었 는데 그 분이 영어를 얼마나 잘하시는지 모 릅니다. 제가 늘 부러워했습니다. 영어실 력이 아주 뛰어나십니다. 그런데 이제는하 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답니다. 늘 읽던 영 어성경을 봐도 한 단어도 생각이 안난답니 다. 그런고로 우리는 같다는 것을 잊지마세 요. 부흥되지 않는 교회를 찾아가보면 거기 에 귀족이 있습니다, 터줏대감이 있어요. 오래 믿은 몇 사람이 앉아서 자기들이 주인 노릇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귀족 때문에 안됩니다, 제가 목회하는데 있어 10 가지 기본철학 가운데 하나가 그것입니다. 절대로 귀족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제 신조입니다. 제 목회 철학입니다. 이것 을 넘어서야 교회가 부흥되는 것입니다. 귀 족이 생기기 시작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특 별히 문화적 장벽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교회됨의 본질은 복음
그렇다면 교회의 교회됨이 어디에 있습니 까? 복음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 해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 야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전해 지고, 하나님이 사랑이 선포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를 주셨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십니다"하는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사랑의 복음이 그 마음 속에 깊이 들어가서 믿어지고 생명력 으로 활력으로 작용할 때에 비로소 중생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2세기에 사상가 셀서스라고 하는 사람이 있 었습니다. 문서적으로는 그의 글이 기독교 에 대한 비평의 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글입 니다. 그는 기독교인들을 이 렇게 비평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논리나 사상을 벗 어난 사람들이다. 인사도 나누기 전에 사랑 하며, 상대방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 하면서 사랑부터 먼저한다. 기독교인들은 부도덕하다. 왜냐하면 노예를 형제라고 부 르기 때문이다." 옛날에 노예라고 하면 사 람도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발거벗은 노예 를 그리기가 민망해서 옷을 입혀가지고 그 림도 그리고는 하지만, 사실 노예는 옷이 없 어요. 신발도 없어요. 침실도 없어요. 동물 들과 같이 외양간에서 먹고, 자고 했어요. 말을 못 배워서 말을 못하고 알아 듣기만 했 어요. 이게 노예입니다.
그런데 이런 노예를 기독교인은 '형제 자매' 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초대 교회로 돌아가 상상을 해보세요. 귀족과 노 예가 함께 앉아서 형제 자매라고 부르고, 기 도하고, 같이 먹고 마시고 나누어요. 이것 이 교회였어요.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리 고 여기에 성령이 역사했습니다, 고넬료의
집에도 역사하고, 베드로의 마음에도 역사 했습니다. 성령이 주인되어서 마음을 열고, 말씀을 영접하고, 말씀을 믿고, 말씀에 순종 해서, 성령이 함께 함으로 교회입니다, 성 령의 역사가 떠나면 교회가 아닙니다. 그런 고로 기도가 없으면 교회가 아닙니다. 기도 가 없으면 교인도 아닙니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는 은혜의 방편
성경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베드로는 "하 나님이--- 나를 택하시고(7절)"라고 말씀 합니다. 여기에 선택적 교리가 나옵니다. 이것은 특별한 의미입니다. 선민사상과 다 릅니다. 베드로를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라 함입니다, '사도'는 헬라어로 '아포스톨로스'라고 하는 데 여기서 '아포슬'이라고 하는 말은 보냄받 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나는 허물이 많고 예 수 믿는 사람들 속에 있을 수 없는 사람이 다. 예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고, 예수 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에 도망갔고, 비겁하 기 짝이 없는 나같은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 의 일을 하겠느냐?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나를 부르시고, 택함받았다고 하는 의식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들어 쓰신 다는 것입니다, 허물 많고 부족한 나를 들 어 쓰신다고 느낍니다, 그럴 때에 용기를 얻게 될니다. 이 용기와 담력이 초대교회 부흥의 근원입니다. 베드로는3천명 앞에 서서 담대하게 하나님 의 말씀을 전합니다 듣는 사람들은 베드로 의 말로 들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택하시사 우리에게 보내셔서 주 님의 말씀을 주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3천명이 회개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넬료 가 말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 있습 니다, 말씀하세요." 일개 갈릴리 어부 앞에 서 훈장을 단 로마군인인 백부장이 무릎을 꿇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께 주신 말씀을 전해주세요. 우리가 듣겠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 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선 것도 그렇습니다, 하나 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여기에 있는 것입니 다. 그 누가 나를 부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 님께서 나를 쓰셔서 내가 여기에 섰습니다. 내 의로 내 공로로 여기에 선 것이 아닙니 다,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시사 이 자리에 세우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함을 받아 내가 사 도간 진었土란." 전 역신 생각합닌각, - 식상익 난긱 전부턴 한난님찐선 낙를 택학 시사 나로 나되게 하시고, 훈련을 시키셔서 소망교회, 여기에 있게 하셨다"라고 이렇게 믿고 전합니다. 받는 여러분들도 똑같은 마 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저 분을 통하여 내 게 말씀하신다.
우리 교회에서 전도하는 분들이 종종 그런 답니다. 자기 친구 보고 교회나가자고 할 때에 "우리가 대학 다닐 때에 교양과목으로
철학을 듣지 않았느냐? 이제 나이도 들고 다 잊어버렸는데 교양과목 들으러 가자"라 고 말한대요. 그래서 교회에 나왔답니다. 그런데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강의가 아니 라, 철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 지는 바로 그때부터 교인입니다, 거기에 교 회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 을 수 없는 자, 아직도 듣지 못하는 자에게 는 여기가 교회가 아닙니다. 그에게 이곳은 하나의 강의실에 불과합니다,
교회의 교회됨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 께서 택하시고, 택함 받음을 믿고, 택함 받 은 자의 거룩한 신분을 인정하고, 그를 통하 여 시간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말 씀으로 받아들입니다. 여기에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죄와 율법으로부터 자유 합니다, 모든 불의로부터 자유합니다. 영 흔이 깨끗함을 얻습니다, 점점 소생하는 것 을 느낍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하나님 의 자녀굄의 역사가 여기에 있고, 자유케 하 는 역사가 여기에 있습니다. 너무나도 답답 한고 괼로운 센상을 살직만 교획왁 함께 우 픽는 무한한 자유를 얻습닉단, 오직 은힉로 우리는 구원을 받고, 교획는 부흥할 것입닌 다
교회를 가리켜서 신학적으로 이렇게 표현
합니다. the means of grace - 은혜의 방편“ 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마이크를 볼 때마 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 에 계실 때에 마이크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 았을까? 도대체 5천명을 앞에 놓고 광야에 서 설교를 하셨다는데 과연 몇 사람이나 들 었을까?-이것이 궁금합니다. 그래서 옛날 에는 아무리 교회를 크게 지어도 5백명 이 상 모이는 큰 교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옛날 목사님들은 목소리가 대개 컸습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제일이었습니다, 이 마이 크라고 하는 소음기구가 나온 다음부터 교 회가 커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는 만 명, 수십만 명도 일시에 들을 수 있지 않습 니까? 목사로서 이 마이크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의 방편입니다. 전해지는 말씀을 마이 크를 통해서 확성해서 모든 사람에게 전합 니다, 또 고장이 나서 지직거리면 야단이지 요. 깨끗한 육성으로 잘 들려지도록 해야합 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든 백성에게 전 하는 방편입니다. 'The means of grace'로 역사할 때에 교회는 반드시 부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교회를 통하여 모든 백성이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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