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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지어져 가는 교회! (엡 2:16-22)

by 【고동엽】 2022.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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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지어져 가는 교회! (엡 2:16-22)
 

어떤 아이가 자기 방에서 장난감 벽돌을 가지고 이것을 높이 쌓으면 서 혼자 놀고 있었습니
다. 아버지 가 밖에서 들어가면서 이 아이의 방 에 들어가서 관심을 보이느라고 아 이가 하
고 있는 일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아버지가 옆에 있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무언가
벽돌을 쌓고 있는 아이를 향해서
"너 뭘 하 고 있는 거냐?"
하고 물었습니다. 했더니 이 어린아이가 뒤돌아보면서
"쉿! 아빠 조용히 하세요. 지금 교 회를 짓고 있는 겁니다."
아버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 어린것의 손 을 잡고 교회에 늘 다니긴 했지만은 교회에 갈
때마다 떠들어서 조용히 하라 그러고 늘 말썽이었는데 이 만 큼의 믿음이 생긴 것 같이 생
각이 되어서 대견하게 여기고 한 마디 더 물었습니다.
"애야, 교회에서는 왜 조용히 해야 되느냐?"
하고 물었습 니다. 이때에 아이의 대답이 걸작 입니다.
"아빠 참! 교회에서는 조 용해야지요. 사람들이 다 잠들었으 니까요. 떠들면 깨잖아요."
이 아버 지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교회 나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갈 때마다 잤거 든요. 졸은
게 아니라 잤어요. 애 가 이걸 보고 있다가 교회는 가서 조용히 자야 되니까 떠들지 말아야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더랍니다. 이 기막힌 얘기가 아닙니까? 문제 는 내가 생각하는 교
회관 그것이 문 제입니다. 도대체 당신은 교회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교회를 어느 정
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 까? 내 모든 생활 중에 교회가 차 지하는 비중이 얼마입니까?
이 문 제는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 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세 가지 고백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 각합니다. 첫째가 하나님께 대한 고백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누구
라고 생각하느냐? 어떤 분으로 생 각하고 믿고 있느냐? 당신은 하나 님에 대해서 어떻게
고백하고 있느 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옛날 유 대사람들은 하나님은 창조주요 심판 하시는
분이요 죄인을 가차없이 벌 하시는 분이요 아주 무서운 폭군과 같은 분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다면 그대로 즉시 즉시 벌이 내린다고 생각을 했 습니다. 좀
더 나아가서는 이미 법 을 어겼기 때문에 나는 구제 받을 수가 없다. 그래서 아주 하나님의
백성 됨이나 율법을 지키는 일을 아 예 포기하고 버려진 자로서 사는 그 런 사람들이 많았
습니다. 어차피 죄를 너무 많이 지어서 나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으니까 율법이고 뭐고 축
복이고 저주고 생각할 것 없이 되 는대로 살아버리고 말자 하는 그렇 게 버려진 존재의식을
가지고 사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 예수님 당시 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에 비해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신관, 즉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그 렇질 않습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
나님이요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하 나님, 아버지 하나님. 그래 우리가 외우고 있는 주기도문
에 하나님이란 말이 없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만 큼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이요, 사랑스러운
아 버지, 설사 진노가 있어도 그 진노 속에 사랑이 계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진노적 사랑,
그런 하나님으 로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탕자의 비유입니 다. 탕자
의 아버지 얼마나 좋은 아 버지입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참으로 좋은 아버지입니다. 그
못 된 아들이 집을 나가겠다고 할 때에 유산을 나누어주는 아버지, 그 아들 이 돌아올 것을
생각해서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 또 돌아왔다고 해서 재산을 다 탕진하고 거지가 돼서 왔
지만 살아 왔다고 고마워서 잔치를 열고 기뻐하는 바로 그 아버지, 이 좋은 아버지가 예수
님께서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는 하나님 상입니다. 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을 이렇게
믿는 사람은 그 하나님의 품 에 하나님의 사랑 안에 오늘도 행복 한 것입니다. 이것이 신관
이 나 자 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요. 세 번째는 교회관입니다. 교회가 무엇 입니까? 긴
설명을 드리진 못합니 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을 잊지 마 십시오. 교회는 친교기관이 아닙니
다.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인사하 고 악수하고 뭐 그런 얘기가 아닙니 다. 이건 봉사기관이
아닙니다. 봉 사 하지만은 봉사가 목적은 아닙니 다. 또한 이것은 학문을 가르치고 지혜를
가르치고 생활철학을 가르치 는 그러한 학원이 아닙니다. 이런 지적인 기관이 아닙니다. 인
스티튜 트(Institute)가 아니요, 또 하나는 여흥기관이 아닙니다. 요새는 이상 한 모습으로 교
회가 발전하면서 교 회를 하나의 감정순화의 기관으로 생각해요. 소리 지르고 손뼉 치고 요
란하게 이렇게 해서 오락기관으로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이런 여흥기관으로 흘러가
는 것을 참 유 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교회는 이런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내 아버지 의 집이
요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계 신 곳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열두 살 때 하신 말씀이 있지 않습
니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 을 몰랐나이까?"
너무나 좋은 말씀 이요. 열두살 된 어린이 예수님도 성전을 생각할 때 내 아버지의 집, 거기
에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여기 에 있어요. 내 아들로 여기에 있다, 이런 마음 바로 이것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그 리스도를 구주로, 그리고 전통적 상 징표현
에 의하면 교회를 어머니로, 신령한 어머니로 생각하는 그러한 고백 속에 나의 나 됨이 있
고 구원 의 길이 있다 하는 말입니다. 이 교회관에 문제 있습니다. 교회는 결정적으로 그리
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만이 영광을 받고 그리스도 의 능력이 함께 하므로 교회입니다.
물론 교회에 나오는 사람마다 여기 에 와서 그리스도를 만나야 됩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우스운 얘깁니다 만은 제가 교회가 이렇게 수가 적을 때는 교인의 이름 도 외
우기도 하고 부지런히 교인들 과 개인적 관계를 많이 맺으면서 목 회해 왔습니다 만은 이렇
게 교회가 수만명 되고 그러니깐 이제는 제 기 억력으론 도저히 불가능해서 아예 포기했습
니다. 뭐 외우려고 하지도 않고 꼭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습니 다. 그렇게 목회하고 있는데
간혹 우리 권사님들 가운데 보면, 권사님 이 한 오백여명 되는데 제가 권사님 들의 이름이
나 얼굴을 알 수가 없거 든요. 그런데 어떤 때는 길에서 딱 만나면은 좀 나를 괴롭히는 권
사님 이 계세요. 딱 만나서는
"목사님 저 아십니까? 저 소망교회 교인인 것을 압니까?"
"모르겠는데요"
그러 면 하는 말이
"저 소망교회 권사입 니다."
이런 얘기 할 때 제가 농담 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자고로 나 는 여자 얼굴을 똑똑히 안 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곽목사가 알면 어떻고
모르면 어떻습니까? 주님이 알아야지요. 예수님이 알면 그만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깐
"그야 그 렇지요"
합디다 만은 이건 농담이 아닙니다. 그 누가 알고 모르고 알 아주고 몰라주고 그 무슨 대수
로운 얘기입니까? 잊어버리세요. 중요 한 것은 예수님을 만나야 되고 예수 님과 만나는 체
험이 있어야 되고 생 명력을 체험해야 되고 주님의 말씀 을 개별적으로 들어야 됩니다. 그
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새롭게 확인하는 체험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예
수의 영광 예수의 말씀이 있어서 교회입니다. 이건 사람들이 모여서 친교하는 그 런 얘기는
아닙니다. 유명한 신학 자 폴 틸리히는 교회의 필요성에 대 해서 이렇게 피력하고 있습니다.
"나는 교회를 떠나서 기독교를 생각 할 수 없다 비록 교회에 문제가 많 다 하더라도 기독교
가 교회를 떠나 서 존재할 수는 없다."
아주 못박아 말하고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기 독교는 사랑의 종교이기 때문에 교 회 안에
서 우리가 사랑을 주고 사랑 을 받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사람의 궁극적 관심은 예배다. 하나님과의 만남이요 하나님께 예배하는데 있는 데 그 예배
는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 지기 때문에 교회는 절대적으로 필 요한 것이다. 또한 교회에서
복음 이 선포되고 있다. 복음이 선포되 고, 복음을 듣고, 이것이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니깐 교회가 필요하 다. 또한, 넷째는 '성경을 바로 해 석해 줌으로써 모든 사람들로 하여
금 바른 신앙에 서도록 지도하는 곳 이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가 중요하 다.' 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말씀 을 드릴 때마다 생각나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73년에 제 개인으 로서는
자가용 자동차를 처음 가져 보았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에 절 아는 교인들이
"목사님, 이거 왕 래하는 데 여기서 차 없이 힘듭니 다."
그래서 돈을 개별적으로 모아 서 아주 좋은 차를 사 주셨어요. 좌우간 제가 다니는 학교에
총장서 부터 교수, 학생의 모두 중에서 내 차가 제일 좋았어요. 그런 차를 아 주 브랜드-뉴
(Brand-new)로 사주 는 데, 사주고 나서 딱, 그 집사님 짓궂은 분이에요. 주의를 줘요.
"두 가지 조심하십시오. 목사님 맘 대로 운전하시되 딱 두 가지 조심하 는데 첫째, 여자 꽁
무니 따라다니지 마세요."
여자 모는 차 따라가다가 는 안 된다. 비껴가야 됩니다. 그 이유는 여자들은 위험한 일을 당
하 면은 눈 딱 감고 맙니다. 그러면은 이름도 모르고 동사하게 됩니다. 그런고로 여자 운전
하는 거 불안하 니까 고 뒤따라가지 마세요. 첫째 요. 두 번째는 기름 넣는 거 조심 하세요.
미국에 많은 주유소가 있 는데 이 주유소 중에는 열악한 환경 에 있는 주유소도 있어요. 이
가솔 린이라고 하는 것은 땅 속에다 넣어 놨는데 이거 잘못 관리하면 기름 속 에 물이 들어
가서 섞여 가지고 있는 데 막 그런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날이면은 낭패입니다. 그런고로
반 드시 주유소에 기름을 넣되 넣으면 서도 고급, 잘생긴 주유소에 가서 넣을 것이고 그걸
조심하라고. 그 런데 그게 마음대로 됩니까? 내가 한번 진짜로 경험했어요. 멀리 여 행을 하
다가 산으로 올라갔는데 여 기서 기름이 떨어졌어요. 거기 보 니까 정말 아주 열악한 주유
소에 기 름 펌프가 둘밖에 없는데 노인이 앉 아서 졸고 있더라구요. 이 기름이 이거 시원치
않은데 하면서도 뭐 어 찌할 수가 없어서 넣었지요. 아니 나 다를까 가다가 딱 막히질 안습
니 까. 몇 번 수리해도 안 되요. 마지 막에는 기름 탱크를 이 휘발유 탱크 를 뜯어 가지고
이걸 청소해 내는데 요 아 이거 참 큰 일이더라구요.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교회는 주 유
소와 같아요. 아무리 좋은 차라 도 주유소에 들러서 기름을 넣어야 되요. 그런가 하면 그 주
유소에서 주는 공급하는 기름이 깨끗해야 되 요. 티가 없어야 되요. 여기가 오 염되고 이게
시원치 않으면은 여러 분의 인격은 곤두박질해요. 운명도 엉망이 되고 말아요. 그런고로 여
러분 교회 잘 선택하는 것이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큰 축복임을 알아야 되요. 좋은 주유
소에서 깨 끗한 휘발유를 넣고 달려야 이 차가 제 구실을 하는 것이거든요. 그와 같이 우리
는 교회에서 순수하고 온 전한 복음을 계속 공급받아야 우리 의 가정 우리의 사업 우리의
인격 우리의 운명이 바로 갈 수 있는 것 이다 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교회를 하나님과 의 화평에서부터 설명해 나갑니다. 그래서 14절에 보면은
예수는 화평 이다. 화평이시라고 결정적으로 말 하고 15절에는 예수께서 화평을 이 루신다
고 말하고 17절에 가서는 화 평을 전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친히 전하십니다. 교회를 통하여
존재하 고 교회를 통하여 역사하고 전도자 를 고용하고 성령의 역사와 함께 주 님 친히 화
평을 이루시고 화평을 전 하시는 것이올시다. 그렇다면 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 있
는 우리 교인은 누구냐 이거예요. 우 리 교인은 오늘 본문에 보면 그 권 속이라고 말했습니
다. '오이케이오 이'라고 하는 말은 '오이코스'라는 말은 집이라는 말입니다. 그 집에 한 식
구가 된다는 겁니다. 이 집은 건물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가정을 말합니다. 가문을 말하는
것이에요. 그리스도의 가정에 이 하나님의 가 정에 한 권속 한 식구가 된다 멤버 쉽이 된다
는 말이에요. 여러분 이 가정이라고 하는 건 흔히 말하기를 뭐 끈끈한 정이라고 합니다만은
이 건 얘기가 다릅니다. 끈끈한 게 아 니라 영영 끊을 수 없는 관계입니 다. 이것은 피로 맺
은 것이니까요. 내 자식이요 내 부모입니다. 이 관 계는 어떤 것으로도 끊을 수 없는 관계입
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 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해서 이루 어진 관계입니다 이것은. 절
대로 끊을 수 없는 관계예요.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리스도를 주로 고
백합니다. 그 주 는 성현이 아닙니다. 선생이 아니 요 능력 있는 자가 아닙니다. 과거 의 예
수가 아닙니다. 십자가에 죽 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앞으 로 재림하실 분입니다. 리
빙 크라 이스트(Living Christ), 과거의 예수 를 믿는 게 아닙니다. 현재 살아 계신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그 세 력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생명력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권속입니
다. 구속함을 받은 권속, 하나의 식 구가 되는 겁니다. 이건 피로 맺어 진 관계입니다. 그리
스도와의 관계 또 우리 성도들 간의 관계가 그렇습 니다. 이건 윤리 이전에 있는 큰사 랑이
요 확실한 사랑의 실체입니다. 나아가서는 절대적 관계입니다. 전 인적 관계요 공동 운명에
속한 관계 요 그리고 영원한 관계입니다. 그 래서 교회를 흔히 이름지어서 종말 론적 공동
체라고 합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어떻게 살던지 가정이야 어떤지 상관없습니다. 이 교회 안
에서 우리가 한 식구가 되고 서로 교제하며 그리스도 안에 하나가 되 어 살다가 이대로 하
나님 나라로 옮 겨갑니다. 영원한 종말론적인 공동 체가 교회입니다. 또한 오늘 성경 은 말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나라의 시민이라고 그런고로 우리가 왕 되신 그리스도께 충성을
다하고 그 안에서 화평을 누리는 겁니다 또 나아가서는 성도라고 했습니다. 거 룩히 구별된
무리입니다. '하게우스' 라는 말은 구별됐다는 겁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도 구별되었습니다.
비록 속된 세상에 살지만 거룩한 백 성으로 살아갑니다. 비록 세상에 살지만 하늘의 시민권
을 가지고 사 는 것이 그리스도입니다. 영원한 약속을 보장받고 오늘은 살아가는 것이 그리
스도인입니다. 성도올시 다. 거룩한 무리들입니다. 깊이 생 각해야 합니다.
1924년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제8회 올림픽 경기가 있을 때 파리 에서 열렸는데 이 올림
픽 경기에 에 릭 리들이라고 하는 영국청년이 100m경주의 선수로 나가게 됩니다. 그는 좋
은 기록을 가지고 있어서 확 실하게 금메달 유망주로 다같이 인 정을 했는데 경기 일정이
주일날로 잡혔습니다. 그럴 때 이 신실한 그 리스도인은 올림픽 경기를 포기하겠 다고 그랬
어요. 절대 안 나가겠다 고, 뛰지 않겠다고 단호히 거절하게 될 때 영국 국민들이 분노했습
니다. 조국을 배반한 자요, 위선자요, 옹졸 한 신앙인이요, 비겁한 자요. 뭐 있 는 대로 폭언
을 하고 비난을 했습니 다마는 이 청년은
"아니요. 주일을 범하면서까지 금메달을 향해서 뛸 마음은 없어요."
거절해버렸어요. 그리고 주일날 교회 나가서 종일 경 건하게 하나님 앞에 예배했답니다. 그
다음에 다른 분들이 좀 설득을 해서 이제 주일을 지키고 난 뒤에 400m경기가 있는데 400m
경기에 좀 나가줄 수 없겠느냐고 그래요. 주 일날이 아니면 나가보겠다고. 100m 경주자가
400m경주에 나가서 뜁니다. 이건 사실은 불가능한 겁 니다. 그런데 경기는 이러했답니다.
처음부터 100m경주하는 사람의 솜 씨로 총알같이 뛰었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을 보고 모두
가 생각하기를 '저 사람 200m 뛰고 나서 아마 고 꾸라질 모양인가 보다' 했는데 그대 로
줄기차게 뛰어서 그는 세계 기록 을 내면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목 에 걸었을 때 기자가 물
어봅니다.
"어떻게 그렇게 100m 경주자로서 400m를 뛸 수 있었느냐?"
"200m는 내 힘으로 뛰고 나머지 200m는 하 나님의 힘으로 뛰었습니다. 내가 100m 경주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섬 깁니다. 나머지 길은 주여 인도하 소서 하고 뛰었는데 내가 금메달을
땄다"고. 잘했느냐 못했느냐는 묻 지 마십시오. 그러나 그의 경건을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은 교회를 어느 정도 중요 하게 생각하십니까? 어느 정도 필 요하다고 생각하십니
까? 내 생애에 있어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이 교회 요, 내가 마지막 의지할 것이 교회 요,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압구정동 이 주변이 벌써 오래 전에 지은 아파트인데 아직도
집 값이 내 려가질 않습니다. 그 이유는 가끔 이런 사람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복덕방
주인이 말합니다. 복덕방에 와서
"내 이 교회 주변에서 교회와 함께 살다가 마지막 죽을 랍니다. 집 값은 얼마라도 좋으니
소개하시 오."
이런 사람 일년에 몇 사람만 있어도 집 값은 안 내려가는 거예 요. 나는 이것을 자랑삼습니
다. 이 교회와 함께 마지막 생을 산다. 아 니 그렇습니까. 무슨 경치 좋은 데 가 중요합니까.
뭐 공기 맑은 데. 몇 일이나 더 살겠다고. 중요한 건 교회예요. 마지막 의지할 곳은 교 회밖
에 없어요. 그래서 어떤 분들 은 큰 계약을 하다가 주일날 꼭 해 야한다면 안 해요. 포기하
는 분도 있어요. 멀리멀리 여행하다가도 주 일 하루 지키기 위해서 달려오는 사 람도 있어
요. 모두가 다 그러라는 얘기는 아닙니다마는 그의 신앙은 특별합니다. 거룩함, 주일을 거룩
히 지키고, 거룩히 지키면서 나 자신이 거룩하고, 내 생활이 거룩하고, 내 입지가 거룩하고,
내 운명이 거룩해 지는 것이 성도올시다. 교회와 함 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 와
사귀고, 그리스도를 만나고, 교회 의 권속으로서의 행복을 즐깁니다. 여기에 승리의 생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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