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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의 발원지! (출 16:4-12)

by 【고동엽】 2024.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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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의 발원지! (출 16:4-12)

 

여러분이 잘 아는 헬라 철학자 중에 한 사람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렇게 단정적인 중요한
명제를 말 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기는 하지만 합리적 존재는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이성이라고 하는 것이 있 습니다. 철학적 차원에서는 그
이 성 때문에 인간이 인간 될 수 있다 는 겁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바로 그 이성
때문입니다. 그 이성이라고 하는 말의 개념은 여러가지로 설명이 되겠습니다마는 쉽게 말해
서 그저 생각하는 기능입 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합리적이 어야 하겠는데 생각하는 기능은
아 주 중요해요. 이성적 존재는 되는 데 그 이성이 지시하는 대로 합리 적으로 살아가는 존
재는 못 된다 그런 말입니다. 이성의 기능 중에 하나가 비판기능입니다. 그런데 이 비판이라
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을 알기도 하고 결과를 놓고 원 인을 생각하기도 하고 또, 그 일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그것을 비 판하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이것 이 타락하면 어떻게 되
느냐. 생각 하고 비판하는 능력이 자기는 비판 하지 아니하고 남만 비판합니다. 자기 잘못은
비판하지 못하고 세상 만 탓하고 환경만 탓하는 비합리적 존재로 발전한단 말이요. 거기에
병통이 있는 것이에요.
또 그런가 하면 사람에게는 추리 기능이 있습니다. 이성의 기능입 니다. 그래서 현재에 살면
서도 과 거를 생각할 줄 알고 또, 현재에서 다시 미래를 생각할 줄 아는 그런 추리하는 능
력이 있어요. 자, 그런 데 이 사실을 넘어서는 이 추리능 력을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키면 얼
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꼭 이것 이 타락해 가지고 빗나갈 때는 나 쁜 방향으로만 추리하
는 겁니다. 그게 문제예요. 가령, 저녁에 남편 이 늦게 돌아올 때 '아, 무슨 바쁜 일이 있는
가? 또 무슨 사업이 어 떻게 됐나? 아주 참 좋은 일이 있 는가보다'하고 좋은 방향으로 좋
은 방향으로만 생각을 하면 '이렇게 늦도록 수고하는구나' 생각을 하고 저녁에 들어올 때
더 반갑게 맞이 할 수 있을텐데, 조금 늦어지기 시 작하면 생각이 이상한 방향으로 떨 어져
요. '요것이 또 어디로 샜나? 지금 어디서 노닥거리고 있나?'뭐 이렇게 이렇게 생각하고 있
는 가운 데 엉뚱한 방향으로만 생각을 합니 다. 그랬다가 문간에 들어서자마 자 '꽝'하고 터
지는 겁니다. 이게 소위 날벼락이라는 겁니다. 보세 요 왜 하필이면 그쪽으로만 생각이 가느
냐 이거죠. 이 병을 누가 치 료할 것이에요? 이건 정말 구제불 능이에요. 아주 근본적인 병
이거 든요. 그걸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 2년 반 동안을 비소설계 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던 유명 한 책이 있습니다. The
Seven Habits of Highly Affective People 이라고 하는 책인데 이 스 티븐 코비 박사가 쓴
책으로써 이 코비박사는 한국에 두 번이나 초청 을 받아서 와서 강연을 하고 갔습 니다. 상
당히 중요한 인물입니다. 또 그리고 한 번씩 꼭 읽어볼 만합 니다. 그런데 이 책이 말하는
내 용이 뭐냐는 거지요. 가장 중요한 주제는 이것입니다. 제목 그대로 성공한 사람의 성공은
조건적인 것 이 아니라는 거예요. 환경도 아니 라는 것이요. 나아가서는 지식도 아니라는 것
이요. 성품이요. 습관 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가진 독특한 성품이 있더라는 거예요. 공
통적으로 말이죠. 자, 우리는 여 건이 좋아야 되고, 환경이 좋아야 되고, 누구 말마따나 처가
집을 잘 만나야 되고, 선배를 잘 만나야 되 고, 무슨 정치가 줄을 타야 되고, 이건 이 사람
의 얘기가 아닙니다. 코비박사가 사회학적으로 열심히 연구한 결론은 성품이다. 일곱가 지
성품을 말해요. 이러 이러한 성품, 이러 이러한 습관의 사람이 성공했더라. 이런 사람이 '성
공한 다'가 아니에요. '성공했다' 그 말 이에요. 이미 된 사람을 연구한 거요. 그러니까 이거
는 부정할 수 가 없는 얘깁니다. 그리고 다시 들어가서 그 일곱가지 성품이 뭐 냐? 제가 이
시간에 그런 강의를 하고 싶진 않습니다. 통틀어서 요 지는 뭐냐하면은 Proactivity, 주도 성
입니다. 주도적 체질의 사람이 요, 주도적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요, 주도적 체질, 그런 성품
을 가진 사람이더란 말입니다. '주도적이 다'라는 말은 뭐냐하면, 다시 또 설 명을 붙이면
그것은
"내가 책임진 다"
그 말이요. 사람은 책임지는 만큼의 왕국을 살아가는 겁니다. 영역을 살아가는 것이요. 내
책임 내가 지면 내 왕국에 사는 것이요, 남의 책임도 내가 지면 그 사람도 내가 다스리는
것이요. 내 책임과 남의 책임까지 많은 사람들의 책임 까지 다 내가 느끼고 살면 그 사 람
은 그 만큼 넓은 영역의 인생을 사는 것이에요. 그렇다면 이제 잘 못된 책임, 내 잘못까지
남에게 돌 리면 나는 반으로 주는 거예요. 내 책임은 전혀 없고 완전히 남의 책임이라고 하
는 순간, 내 존재는 사라지고 마는 거예요.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어떤 남편이 하도 성격이 못돼서 불같아 가지고 자꾸만 벌컥벌컥 화 를 내니까 참다가 난감
하거든요. 그래서 아내가 하는 말이
"여보, 왜 당신 점점 더 이렇게 성격이 못 돼지느냐?"고 충고를 했답니다. 그랬더니 그 남편
하는 말이 뭔 줄 아세요?
"나는 본래 안 그랬는데 너하고 살면서 이렇게 나빠졌다."
성격 나빠진 것이 마누라 때문입니 까? 이런 사람은 구제불능이다. 그 소리예요. 그 책이 그
얘기예 요. 딴 얘기가 아니에요. 이런 사 람에게 성공이 없다. 오히려 다른 사람이 잘못한
것도
"내가 잘못해 서 네가 그렇구나."
이런 사람이 성공하더란 얘기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가 생각해야 합 니다. 적어도 다른 이성의 사람에 게는 결코 남을 원망하지
않아요. 환경을 탓하지 않아요. 환경이 잘 못될수록 더 강해지고 더 지혜로워 지니까. 더 성
공의 길이 열리니까. 실패한 과거 때문에 미래를 망치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사실로 문
제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성공한 과거가 미래를 망치는 겁니다. 뭔 가 지난날에 좀 잘된 것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여기에만 집착되어서 오늘과 내일을 망치는 거예요. 가 만히 보니까
어떤 분들, 뭐 일류대 학을 나왔다. 그것 때문에 망친 사람들 많아요. 그게 어느 세월의 얘
기요. 그거 하나 붙들고 일류대 학, 일류대학 하는 동안에 다 망했 지. 미래 다 망치고 만
거예요.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과거에 시원치 않았어요. 그러나 과거로 부터 결별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가 운데서 훌륭한 일을 많이했어요. 뭐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제가
어느 때에 참 좋은 책을 읽었 어요. '아버지는 IQ 어머니는 EQ' 아 그런 좋은 책을 보며
감동을 많 이 받았어요. 그리고 경력을 보니 까 이 사람이 국제대학 나왔어요. 야간대학. 이
정도 되면 한국에서 는 장가가기도 힘들어요. 그러나 세계적인 학자가 되어 가지고 하는 걸
내가 볼 때 '그래 그래 도대체 일류대학은 다 어디 갔나?' 여러분 왜 그런지 아십니까? 성
공한 과거 가 걸림돌이 된 거예요. 거기에 붙들려 있는 동안 미래로 향한 진 취력을 잃어
버렸어요. 그러곤 원 망 불평이에요. 세상이 어떻고 뭐 이 어떻고 말이에요. 이게 망조라 는
걸 알아야 합니다.

자,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 애 굽에서 나와서 광야에서 고생을 하 는데 그 애굽에 400년
동안에 그 고생 얼마나 큽니까? 노예생활, 거기서 영원히 노예로 노예로 나만 아니라 자손
만대에 노예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비참한 운명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
아서 홍해를 넘어 광야로 왔습니 다. 이제는 애굽 군대가 쫓아오질 못합니다. 완전한 자유인
이 됐습 니다. 애굽으로부터 자유했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자유인은 됐 으나 광야에서
태반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비롯한 몇 사람뿐이고 나머 지가 다 광야에서 40년 광야생활에
죽어버렸어요. 그리고 그 후손들 이 가나안에 건너가게 되는데 심지 어는 모세까지도. 왜 이
렇게 됐느 냐? 이것을 성경은 이렇게 말해 요. '원망 죄 때문이다.' 야고보서 와 고린도전서
10장에서 확실하게 말합니다. '원망하다가 광야에 떨 어져 죽었느니라. 그런고로 너희 는 원
망하지 말라.' 여러분, 우리 는 지금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어 요. 그러나 단 절대로 원망하
지 말아야 해요. 누구도 원망하지 맙 시다. 원망하면 끝이요. 모처럼 구원받았던 이 백성도
가나안에서 다 죽었으니까요. 이제 우리는 원 망하지 말아야 해요. 아무도 원망 해서는 안돼
요. 원망죄가 가장 무 서운 죄임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늘 말씀 드립니다마는 공산 주의가 망한 이유가 뭐냐? 공산주 의는 혁명철학에 볼세비
키 당 사상 에 두었거든요. 그런데 이 공산주 의 철학의 근본이 뭐냐? 혁명철학 이요. 혁명
이 뭐냐하면 혁명의식 이란 내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거 에요. 부르즈아가 있기 때문에 프
롤레타리아가 있다는 거지요. 내 가난이 부자 때문이라는 거예요. 내가 못사는 것이 지식인
때문이라 는 거예요. 이 의식 때문에 서로 책임전가 하다가 망한 거예요. 철 학적으로는 오
직 그에게는 주도성 이 없어요. 모든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거예요. 이것이 혁명입니 다. 이
것이 혁명 철학이요. 그래 서 저 사람을 죽여야 내가 산다고 생각합니다. 이 변증법적 유물
론 이요. 여기서 망조가 든 거예요. 인간성이 다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믿거나 말거나 이 건 사실이요. 가끔 이런 얘기해 보면 '픽 픽' 웃더라고요.
웃을 얘 기가 아닙니다. 이거는요. 심각합 니다. 북조선이 못사는 이유, 남한 때문이라고 생
각해요. 지도자이건 백성이건 어린아이까지도. 자기들 이 못사는 이유가 철저하게 우리 때문
이랍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쌀가마니 하나 보내줬다고 고맙다 고 생각 안 해요. 하게 되어
있지 않아요. 믿거나 말거나 사실이에 요, 이게. 그래서 위험한 것이에 요. 자기들이 그렇게
못살고 굶어 죽는 이유가 우리 때문이래요. 말 돼요, 안 돼요? 안되지요? 내가 한 시간만 설
명하면 말 돼요. 이 게 되게 되어 있어요. 꼭 그렇게 돼 있어요. 지금. 이게 바로 자기 가 못
살게 되는 이유요 앞으로도 이래서 못사는 거예요. 이렇게 되 면 살아갈 길이 없는 거예요.
개 인이건 민족이건 나라이건 마찬가 지예요.
그런데 아시는 대로 원망이라고 하는 것은 에스칼레이팅합니다. 원망하기 시작하면 자꾸만
버릇이 되요. 그 다음에는 부모 탓, 형제 탓, 이웃 탓, 아내 탓, 무슨 심지어 는 자기가 낳은
자식을 놓고 자식 탓, 전부 원망하게 됩니다. 여러분 그 말 속에서 원망조의 말이 있어 서는
안됩니다.
"누구 때문에"
그 말은 말이 안 됩니다. 그 자체가 문제입니다. 심지어는 아이들은 놓고
"너 때문에"하고 말해보세요. 아이는
"나는 당신 때문에"그래요. 어느 누구하나 여기에 대해서는 원 망은 원망을 낳게 돼있지요.
끝도 없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말씀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그러 지 않습니까? 이걸 바꾸어 놓으면 우리 인간은 어떠냐? 범사에 원망 해요. 여기 있는
범사라는 말은 'in every circumstances', '조건 없 는' 그런 얘기예요. '이유 없이 어 떤 경
우에도' 그 말이에요. 범사에 확실히 그래요. 불평하는 사람은 범사에 불평해요. 원망하는
사람 은 모든 일에 원망해요. 반대로 똑 같은 환경 속에서도 은혜 받은 사람은 달라요. 범사
에 감사해요. 그걸 알아야 합니다.

장애인들을 위해서 평생을 봉사 하는 전도사님이 계시는데 그가 간 증을 한 간증 설교를 제
가 테이프 로 들어보았습니다. 너무 많은 은 혜 받았습니다. 그 장애자들이라 는 건 여러 모
습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상한 건 팔 하나가 없는 사람이 있어요. 그럼 팔 두개 있 는
사람을 부러워해요. '팔 둘 있 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그런 가 하면 또 팔 둘 다 없는
사람은 팔 하나 있는 사람을 부러워해요. 왜냐하면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요.
"나는 사랑하는 아내도 안아볼 수 가 없고, 사랑하는 아이들도 팔로 안아보지 못한다."이거
예요. 얼마 나 괴로워요. 그 뿐 아니라 어떤 부인은 자기 남편이 12년 동안 식 물인간으로
있는 거예요. 12년 동 안을 아내는 남편을 위해서 정성을 다하고 있는데 이 효력이 없는 거
예요. 그 아내의 소원은 눈을 뜨 면서 과거와 같이
"여보, 수고하 오."
한 마디만 하는 이야기를 들 었으면 한이 없겠다고 그래요. 그 러면 그 외에 사람들은 다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럼 다시 한번 물어봅시다. 그러면 그대로 소원 대로
"여보, 내가 당신 12년 동안 수고한 것 정말 고맙다"고 하면 한 번쯤은 감격하겠지. 그러면
이제 다시는 원망이 없을까요? 여기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그런가 하면 또 어떤 분은 그런
남편이라도 있 으면 좋겠다고 또 그런대요. 끝이 없는 거예요.
그런고로 우리가 깊이 깨달아야 할 절대적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원망과 감사는 결
코 환경에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건 체 질이요, 이건 성품이요, 그건 존재 의 문제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는 거예요.
가만히 보면 그렇더만요. 제가 그 교인들 사는 걸 보아도 가만히 보니 남편도 좋고, 마누라
도 좋고, 음식 솜씨도 좋고, 다 좋은 것 같 은데 그 가정에 문제가 많아요. 또 어떤 때 보면
은 '저런 집도 무 사히 살 수 있을까?' 싶은데 그것 도 또 잘 살더라고요. 세상에 알 수 없
는 게 이거예요. 그러니까 환경이나 여건이나 조건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이걸 알아야 되
요.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서 나왔죠. 그 원망하는 내용들을 가만히 보면은 내용이 기
가 찹니 다. 아니 어떻게 됐습니까? 400 년 동안 노예생활 하다가 거기서 구원받았다고 하
는 것은 이건 엄청 난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까 홍해를 건너서 광야를 나왔다, 감격
했지요.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래 며칠 있다 원망했나 조사해 보면 꼭 열 나흘, 열 나흘만에
원 망을 시작해요. 알겠습니까? 그 리고는 또 원망하되 얘기가 뭐냐하 면
"애굽으로 돌아가자."에요. 이 게 이래될 수 있느냐는 거지요. 그래 원망하는 것 보면 물이
없다 고 원망해요. 그럴 수 있죠. 목마 르면 힘드니까. 또 떡이 없다고 원망해요. 그것도 있
을 수 있어요. 또 고기가 먹고 싶다고 원망해요. 그러면서
"애굽에 있을 때 노예생 활 할 때 고기가마 끝에서 주인들 의 음식 만들면서 좀 갈쿠리로
훔 쳐먹었는데 그거 맛이 있었는데"
이 소리하고 앉았어요. 그 다음엔 또 보세요. 여러분, 성경 슬쩍 보 니까 자세히 보면 재미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거기에도. 원망 속에도. 뭘 원망하는고 하니 마늘과 부추가 없다고 원
망을 해요.
"이 광야에 는 마늘도 없고 부추도 없도다"
그리고 주가 달렸는데 정력 떨어진 다고. 그게 정력제래요. 이거 없 다고 원망이에요. 가지
가지예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이게 원망 이 됩니까? 이게 어떻게 구원받은 사람들이 이
모양이에요. 그 어떤 의미의 생을 살아가는데 그 따위 가지고 원망을 하고 있느냔 말이 요.
이게 남의 얘기가 아니란 말 입니다.
여러분 이거 알아야 됩니다. 왜 그럼 원망하게 되느냐 그거죠. 과 거 지향적이기 때문이요.
특별히 우리 민족은 과거 지향적이요. 옛 날 얘기, 정말 옛날 얘기만 해요. 옛날로 생각이
돌아갑니다. 거기 에 문제가 있습니다. 과거로부터 완전히 단절할 수 있어야 해요. 결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공했 던 것도 그렇고 실패했던 것도 그 렇고 어차피 과거로 돌아갈 수
는 없는 거예요. 잊어버려. 굉장해봐 도 별거 없어요. 좀 전에 말씀드 린 대로 성공한 과거
가 문제라니까 요. 그게 병통이요. 어쨌든 과거 로부터 깨끗이 끊고 그 다음에는 또 과거에
대한 것이 있다면 그것 은 해석 문제올시다. 어떻게 해석 하느냐는 겁니다. 자, 보세요 좋은
사람은요 항상 오늘이 더 낫다고 생각해요. 어제보다 낫다, 아∼ 피 난 때 보다 낫다, 작년
보다 낫다, 언제나 지난 날 보다 낫다. 오늘 이 더 훌륭하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
니다. 이 사람은 범사 에 감사할 수가 있고, 반대로 어떤 사람은 항상 과거가 오늘 보다 낫
대요. 그때는 그때대로 죽을 지경 으로 살아놓고도
"그때가 좋았 지∼"그래요. 이게 말이나 되는 겁니까? 자꾸만 옛날로, 옛날 지 향으로 돌아
갑니다. 이게 해석 능 력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그게 이성이 병들었기 때문이요. 그런 가
하면 노예생활의 회고, 그 잠깐 잠깐에 있었던 즐거움. 그거 하나 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요.
고기가 마 끝에서 그 고기 한 점 얻어 먹 을 때 도대체 어찌 이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까?
이렇게 육체적이고 세속적이요. 물질적이고. 그런고 로 생각해 보십시다. 이 구속받은 은혜
에 대한 엄청난 감격은 다 사 라지고 고기 한 점에 목을 매고 있 는 거야. 어찌 생각하면은
'거기서 노예적으로 향락하기보다는 자유인 으로서 광야에서 죽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냐?'
여기까지 생각했더라면 저들은 원망할 수가 없었죠. 하나 님을 기쁘시게 했을 텐데. 어찌 이
런 저속한 인간이 되었더냐 말입 니다.
또 한가지는 미래에 대한 약속을 믿는 믿음이 허약했기 때문이에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서 여기에 온 것 아닙니까? 이게 가나안의 약속이 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앞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한 것입니다. 이게 그 약속한 땅에 들어가서 살 꿈이 나
꾸고 있으면 되는 거예요. 그 거 준비하면 되는 건데 왜 자꾸만 이렇게 복잡해집니까? 하나
님의 약속, 미래에 대한 확실한 약속을 믿었어야지요. 이걸 못 믿었기 때 문에 문제가 된 겁
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 생활 했습니다. 물리적으로는 벗 어났지마는 노예성, 노예
성이라는 것이 남아 있어요. 노예적 체질이. 노예적 의식, 노예적 철학, 이것을 벗겨서 자유
인 되게 하고 자유인으 로부터 다시 비약을 해서 선민 되 게 하려고 할 때, 거기는 많은 훈
련이 필요합니다. 많은 시련도 필 요합니다. 많은 사건을 겪기도 해 야 됩니다. 그리고 단련
하고, 씻어 지고, 훈련이 되어서 하나님의 선 민이라고 하는 높은 존재에 도달하 게 되는 것
이요. 이것을 믿고 있 다면 오늘 당하는 고난 그게 무슨 문제가 됩니까? 이 커리큘럼에 대
해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이 discipline, 이 훈련과정에 대하여 오히려 감사해야 될 것이 아
니겠습 니까? 이건 미래 지향적 의미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지요. 선민 되 게 하는 하나님의
확실한 축복이기 때문이지요.
또 한가지는 모세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함께 계시고 모세 가 백성에게 말을 합니
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 세가 여기에 있다는 것만가지고 충 분합니다. 모
세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함 께 하시고, 모세가 여기서 말씀하 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원망입니 까? 하나님이 임마누엘하고 계시 는데. 그래 오늘 성경은 말
합니다. 모세가 말합니다.
"너희가 나를 원망하느냐? 나를 원망함이 아니 오 하나님을 원망함이다. 우리가 무엇인데
너희가 우리를 원망하느 냐? 우리는 심부름하고 있는 것뿐 이다. 그런고로 나를 원망하지
마 라. 나를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되느니라."
여러분, 환경을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 리를 원망하는 것이요, 사람을 원 망하는 것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 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 다. 그런고로 하나님과 나와의 관
계를 다시 새롭게 할 때 아무 원망 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원망의 발원지가 어디입 니까? 그건 환경도 아니고 세상사 가 아닙니다. 그 누구도
아닙니다. 이것은 불신앙적 교만입니다. 한 번 더 교만을 버리고 겸손해 보세 요. 한 번 더
내려앉아서 자기를 비우고 깨끗한 믿음으로 하나님 앞 에 겸손한 자로 나타나 보세요. 모든
원망은 다 사라지고 하나님의 약속의 세계와 그 능력이 바로 우 리 눈앞에 보여질 것입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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