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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선희목사/여호와께 맡기라! (잠 16:1-9)
이스라엘 나라에 가면 '사해'라는 호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사해바 다'라고 하지만은 바다
는 아니고, 호수가 분명합니다. 왜 하필이면 사해냐 하면 영어로 Dead Sea 입니 다. 거기에
는 아무 생물도 살지 못 합니다. 그것은 물이 너무 짜기 때 문입니다. 너무 염도가 높아서
어 떤 생물도 거기에 살아 남지를 못하 는, 그러한 호수가 있습니다. 염도 가 높아서 그저
수영을 한다 치면은 그대로 사람이 이렇게 부력이 높아 가지고 둥둥 뜹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 지방을 지나가다가 그만 그 사해바다에 빠졌어요. 살려달라 고 허우적거리고 있
지만은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답니다. 그리고 멀리서 소리를 지릅니다.
"손을 드 세요. 손을 펴세요. 허우적거리지 말고 손을 펴세요."
그렇습니다. 손 을 펴면 그대로 둥둥 뜨게 돼있어 요. 그대로 둥둥 떠서, 누워 가지고 책을
볼 수가 있으니깐, 그런데 이 사람 쓸데없이 허우적거리니깐 자꾸 짠물만 먹게됩니다. 저도
얼마 전 에 한번 거기 갔을 때, 수영하는 사 람들, 전부 수영을 하니까, 하는 사 람은 문제
없지만 못 하는 사람들도, 가만히 누워만 있으면 저절로 뜨는 데, 괜히 버둥거리다가 자꾸
들어가 더라고요, 물속에…. 이것은 대단 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우 리가 손을 들고,
완전히 항복하고, 손을 펴면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허우적거리면, 몸부림치면 칠수
록 점점 더 일이 어려워집니다.
사람은 한평생 자기 자신에 대하 여 실망하며 사는 것 같습니다. 자 기 지식에 대하여, 그렇
게 애써놓은 모아놓았던 재물에 대하여, 또 애써 서 키워놓은 자식에 대하여, 능력, 지위, 명
예에 대해서 계속 실망합니 다. 낙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도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합
니다. 그렇게 헛된 줄 알면서도 또 물질을 의지하고, 믿을만한 것이 못되는 것 줄 알면서 자
기 의지를 믿고, 아무 쓸모도 없는 줄 알면서도 그 쓸데없 는 자기 지위나, 명예나, 그 부끄
러 운 과거를, 그래도 붙들고, 무슨 큰 훈장이나 되는 것처럼 내세울려고 합니다. 가소로운
것입니다. 철학 에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인간궁 극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만난다.' 그 래
요. '인간궁극'. 우리의 한계, 모 든 것에 한계 끝에서, '이제는 끝났 다'할 때 하나님은 그때
부터 일을 시작합니다. 아직도 여러분이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동안은 하나 님은 여러
분과 합작하지 않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할려고 들지 않습니 다. 완전히 손을 들고, 백기를
들 고, 손을 펴야, 그때부터 하나님은 역사 하십니다. 여러분의 지혜를 통하여, 여러분의 능
력을 통하여, 여 러분의 마음을 통해서 역사 하신다 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한번은 벨기에의 여왕이 폴란드를 방문했습니다. 그 당시 폴란드는 공산 치하에 있었습니다.
이 여왕 께서 카톨릭 미사에 참례했습니다. 그때에 한 공산당 간부가 그를 뒤따 랐습니다.
당 간부가 카톨릭 미사 의식에서 따라서 그 의식을 잘 참례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여왕은
한 마 디 했습니다.
"당신은 카톨릭 교인 입니까?"
그는 대답하기를
"여왕이 여, 저는 믿기는 하지만은 실천은 하지 않습니다."
그 말은 '마음으로 는 믿어도 교회 다니지 않는다.' 그 런 뜻입니다.
"그러면 공산당원이 군요."
당 간부 말하기를
"나는 공 산당원으로서 실천하기는 하지만 믿 지는 않습니다."
여기에 갈등이 있 습니다. 교회에 대해서는 마음으로 는 믿는 척 하지만 실천이 없고, 공 산
당원으로 살아가면서 행위와 실천 은 있는데, 그 이데올로기에 대한 믿음은 없어요. 언제까
지 이렇게 살아야하는 것입니까? 우리 교인들 가운데도 어떤 때는 하나님을 믿는 것 같아
요. 그러나 믿는 대로 살지 못해요. 그 또 안 믿는 다고 하자 니 또 그렇다고 안 믿는 것도
아니 예요. 휘청휘청해요. 언제까지 허 우적거리오. 왜 이렇게 선명치 못 한 생을 살아가야
하느냐? 깊이 깊 이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영어로 표현할 때 Total Acceptance, Total Discipline, Total Commitment
그렇 게 말합니다. Three Totality, 세 가지를 전적으로, 전적으로 수락하 고, 전적으로 순종
하고, 전적으로 위 탁하고. 그것이 신앙입니다. 그런 데 어정쩡 해 가지고 전적으로 믿지 도
않고, 전적으로 부인하지도 않고. 그렇게 세월을 보낸 거예요. 그렇 게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거예 요.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 하십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행사도 맡기고, 마음 도 맡기고, 운명도 맡기라. 맡기라 는 말은 뭡니까? 이것은 소극적으
로 볼 때는 자기 자신을 포기하라는 거죠. 자기가 하던 일, 자기가 하던 계획, 자기의 능력,
자기 지식…. 그 모든 것을 다 부정해 버려라. 다 포기하고 손을 들어라. 동시에 적극적으로
는 전적으로 그를 신뢰하 라. 하나님만 의지하라. 그리고 그 에게 위탁하라는 말입니다. 그
말 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사랑에 대한 전적인 신앙,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
뢰와 그 말씀에로의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좀 더 깊이 심리학적으로 생각해 보 면요. '책임을 하나
님께 전가한다' 는 뜻입니다. 책임을 많이 지고 있 는 사람은 언제나 불안합니다. 내 가 내
운명 내가 책임져야 되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주신 말씀에 전적 으로 순종하고 나면은 하나
님이 책 임집니다. 이건 이제 내 책임이 아 닙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
람이, 그 영이 언제나 자유로운 것입니다. 걱정이 없어요. 하나님 뜻대로 순종했으니까 이젠
하나님이 알아서 할거요. 내게는 아무 책임도 없습니다. 그걸 알아 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의 말씀을 거역하는 사람은 거역하면 거역할수 록, 점점 더 마음이 무거워지게 마 련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 자세히 보면은 '계획하는 바도 하나님께 맡기고 하 나님께 기도하라. 기
도하고, 마음을 맡기고, 뜻을 맡기고, 그리고 그를 기뻐하라.' 이렇게 성경은 말하고 있 습니
다. 미국에 가면 '나이아가라' 라는 폭포가 있는데,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 그 폭포 바로 밑
에 그 폭 포가 물이 떨어져 가지고 여울지면 서 흘러가는 물이 좀 거셉니다. 거 기에 한 나
룻배가 있었답니다. 나 룻배에 사람들이 몇 사람 타고, 건 너가게 되는데 나이 많은 노인이
노 를 저으면서 건너가는데, 배가 빙빙 돌면서 이렇게 갑니다. 그 왜냐하 면, 여울져가기 때
문에, 거기 한 손 님 하나가 겁이 났어요. 겁이 나가 지고,
"사공, 노를 젓는 양반!"
"네"
"당신 몇 년 동안이나 이 사공 노릇 을 했소?"
"이십 년 넘은 것 같습니 다."
"그 동안 사고 난 일이 없었 소?"
"아직까지는 없었습니다. 사 고 나게 돼있지만 아직까지는 없습 니다."
아 이 사람이 점점 더 겁이 나는 거예요. 벌벌 떨고, 이렇게 하 면 되고, 저렇게 하면 되
고…. 자 꾸 말이 많아요. 그러니까 사공이 하는 말이
"여보시오. 손님! 당신 노 저을 줄 알우?"
"모릅니다."
"그 러면 입 다물어. 내가 저을 테니까. 이제는 죽거나 살거나, 당신 목숨은 내게 있소."
가만히 보니 그렇거든 요.
"단, 당신하고 나하고 같이 가 는 거요. 그러니까 아무걱정하지 마시오. 당신 죽을 때 나도
죽고, 나 죽을 때 당신도 죽을 거요."
그 때부터 조용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노도 젓을 줄 모르면서 잔소리만 하 지 마세요. 어차
피 당신의 힘으로 살지 못하는 세상인데 왜 그렇게 말 이 많아. 왜 그렇게 생각이 많아. 손
들어. 깨끗이 들고, 운명을 맡겨 버려. 그리고, 조용히 계세요. 세 상이 어디로 가든 하나님
알아서 인 도할 겁니다.
특별히 오늘 성경말씀을 잘 보면 은 '의를 하나님께 맡기라.' 그랬어 요. '사람의 행위가 자
기가 보기에 는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그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자기 보기엔 자기 가 깨
끗하지. 하나님 보실 때 어떻 게 보느냐가 문제죠. 그런고로 의 를, 의를 하나님께 바쳐버려
요. 자 기 의, 자기 의를 하나님께 위탁해 버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고린도전 서 4장 3절, 4
절에 보면, 사도 바울 이 그런 말을 합니다.
"나는 아무 자책할 것을 깨닫지 못한다. 나로 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자책할 것이 없다. 그
러나 이로 인하여 의롭다 함은 얻지 못한다. 나를 판단하실 이는 오직 하나님뿐이시니라."
그런 말씀을 합니다. 옳은 말씀이에요. 가끔 우리는 이런 말을 해요.
"최 선을 다 했다."
최선가지고 통합니 까? 당신의 최선이 무슨 의미가 있 는 거요? 이것 때문에 쓸데없는 고
집에 빠져요. 나 나름대로의 최선 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아무 소용없는 거예요. 내
의를 버리세 요. 제가 가끔 무슨 공동체 모임이 나, 혹은 성경공부 모임, 이런데 많 이 강사
로 나갑니다. 가면은 거기 에 사회하시는 분이 늘 있어요. 그 리고 저는 성경공부만 인도하
는데, 가만히 보면 이렇게 앉았다가, 그 차례차례 돌아가면서 하는 거니까 좀 서툴죠, 사회
하시는 분들이. 이 렇게 않았다가 벌떡 일어나서 서 가 지고는 자기 시계를 보면서
"시간이 됐으므로 이제 성경공부 시작하겠습 니다."
이 제가 보니까 아직도 5분 남았어요. 그건 자기 시계가 빠르 거든요. 대체로 그러더만요.
그래 시계는 좋은걸 차야돼요. 고장난 시계가지고…… 어 그러고 하는 소 리가
"시간이 됐으므로……."
이 사 람은 이렇게 하고, 자기가 실수하는 걸 몰라요. 왜? 자기 시계는 맞잖 아요. 그것처럼
미련한 게 없어요. '내가 나대로의 The best, 진실 을 살고, 정직함을 살고…, 나대로 의 최
선을 다했노라.' 그건 당신마음 이지. 객관성이 없어요. 그게 하나 님 앞에 통하는 게 아니
에요. 주로 이렇게 최선을 다했다는 사람들이 교만해. 최선을 다했다는 사람들이 문제예요.
그걸 알아야돼요. 내 의 를 하나님께 위탁을 해요. '당신만 이 아십니다. 내가 어떻게 알겠
어 요? 당신만이 아십니다.'
범브란트라는 목사님이 쓴 '승리 하는 신앙'이라고 하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
기 하나를 얼마 전에 제가 말씀드렸습니다만 다시 말씀드립니다. 랍비가, 유대 랍비가 아주
유대사람들, 교인들을 앞에 놓고, 이렇게 한 사람에게 물 었답니다.
"당신에게 어떤 길을 가 는데, 당신 앞에 돈이 많이 들은 지 갑이 하나 길에 떨어져 있다
하자 그걸 주웠어요. 아무도 안 보는데 서 주웠으면, 이 돈 많이 들어 있는 지갑을 어떻게
하겠냐?"
하고 물으 니까, 한 사람이 하는 말이
"저는 아이도 많고 살림이 어려워서 하나 님께서 내게 주신 선물인줄 알고 잘 쓰겠습니다."
랍비가 하는 말이
"이 놈아, 너는 도둑놈이다."
그러더래 요. 또 한 사람에게 물어보았더니, 한 사람 하는 말이
"아 그거야 빨리 주인을 찾아 줘야지요. 난 냉큼 주 인 찾아 주겠습니다."
이러니까
"야 이놈아, 바보다 너는."
그래요. 또 한 사람에게
"이렇게 돈 많이 들은 지갑을 발견했으면 어떡하겠느냐?"
그러니까
"저요? 저는 제 자신을 믿 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일을 당해봐야 알지. 난 워낙 마음이
약 하고 욕심이 많아서 그런 일 당할 때 내가 정말 이걸 주인에게 돌려 줄 수 있을는지, 없
을는지 모르겠는 데요. 그저 하나님의 은총에 맡길 뿐입니다."
랍비가 말하기를
"네 말이 옳도다."
그랬어요. 내 힘으로 정직할 수 있던가요? 하나님이 내 게 은총을 베푸시지 아니하면, 조그
마한 일에도 내가 바로 살수가 없는 거예요. 내 나름대로의 생각, 내 나 름대로의 도덕성,
내 나름대로의 규 범을 놓고, 의이니, 선이니, 옳으니, 내 나름대로 생각하는 잣대를 놓고 남
을 비판하고, 잘못된 거예요. 내 의를 하나님 앞에 맡겨버려. '당신 만이 아십니다.'
또 하나는 여기 보니 원수가 있어 요. 악한 사람들이 있는데, 악한 사 람, 즉 원수를 하나님
께 맡겨버려. 나를 괴롭히는 이런 대립, 혹은 대 적 상황 속에 살아갑니다. 다 좋은 사람만
아닙니다. 내게 손해를 끼 치고 나를 비방하고, 나를 욕되게 하고 못 살게 구는 사람들이 많
아 요. 뭐 그런 상황 속에 사는 거요. 그럴 때 이를 어떻게 합니까? 그쪽 으로 자꾸 마음이
가면 안됩니다. 그러다가 내가 나빠집니다. 나쁜 사람 내가 미워하다가 내가 더 나빠 집니
다. 그 사람이 분명히 나쁜 사 람이라 하더라도 악한 사람에게 마 음을 쓰다가 내 자체가
페이스를 잃 어버려요. 내 자체가 기본을 잃어 버려요. 그걸 알아야돼요. 그런고 로 원수?
그것 갚는 것 하나님께 있어요. 미워할 것 없습니다. 그래 서 성경은 말합니다. 여러 곳에서
같은 말씀으로 말씀 합니다. '악인 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아라. 원 수갚는 것이 내게 있느
니라. 너희 가 갚으려고 하지 말아라.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배고프거든 먹이 고, 목마르
거든 마시우라. 너 할일 만 해. 미워하지 마라.' 원수, 나를 괴롭히는 상황, 하나님께 맡겨버
려.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깐, 하나님께 맡겨버려. 합동하여 선을 이룰
것이니까 하나 님께 맡겨버려. 요 성경 말씀에 '악 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지으셨느 니
라.' 아주 귀한 말씀이오. 잘 참 고 견뎌보세요. 거 괜찮아요. 좋은 일이 될 거예요.
우스운 얘기입니다만은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중학교를 가야겠는데 그 때 상황이 그렇질 못
했어요. 그래 서 내년에 중학교를 들어가게 될 때 에 좌우지간 몇 달 남았어요. 제가 제 외
삼촌댁을 갔어요. 외삼촌은 의사고, 세브란스 제 2회 졸업생입 니다. 그런데, 책도 많고 그렇
더라 고요. 그래 제가 외삼촌한테 가서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제가 며칠 시간이 남아서 그러는데 영어공부를 좀 할라고 그러는데 책 좀 빌려 주 시요."
그랬다고요. 그랬더니 외삼촌 께서 말씀하시길
"너는 농사꾼의 아 들로서, 농사 배워서 농사 잘 하고 살면 되지, 뭘 공부 할라고 하냐."
그러더라구요. 그 말을 듣고요. 제 가 돌아서서 나와 가지구 40리 길을 엉엉 울면서 집에 돌
아왔어요.
"두 고보자, 나 공부하고야 만다. 내가 삼촌네 아들들보다 내가 공부 더 많 이 할거요."
그래서 그것이 미안했 던지 모르지만, 외삼촌이 92세에 세 상을 떠나는데 아들 다섯, 딸 셋,
쭉 둘러앉았는데요. 이상하게 내 손을 딱 잡고 세상 떠났어요. 거 좀 미 안했던가봐요.
여러분 조금 섭섭한 일이 있어요? 그거 뭐 그리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 세요. 손해 좀 보면
그저 '좀 보 는가 보다'하세요. 이게 다 하나님 의 장중에 있으니까. '합동하여 선 을 이룰
것이다.' 그런고로 원수를 혹은 이 대결 상황을 하나님께 맡겨 버려요. 또 소득에 대해서도
그렇 습니다. 우린 너무 자꾸 돈을 많이 벌려고 애쓰는데, 소득은 하나님께 있어요. 많이 벌
리려는지, 못 벌리 려는지 그거 내 마음대로 생각하지 마세요. 나는 씨를 뿌리고 가꿀 뿐 이
지 농사가 잘 되고, 안 되고는 하 나님의 손에 있지. 그래서 오늘 성 경말씀에 보니깐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이 소득이 불의를 겸하는 것 보다 나으니라.' 무슨 말입니까? '많이
벌고 적게 벌고, 야 그 신경 꺼라. 그저 정직하게, 진실하게 ……. 좀 소득이 적더라도 의롭
게, 그렇게 살아.' 소득은 하나님께 맡 기세요. 거 신경 쓰지 마세요.
이런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 유명한 Positive Thinking 이라 고 하는 소위 '적극적
사고'라고 하 는 것을 철학 기초로 해서 '카네기' 식 교육을 내세운 그 유명한 '카네 기'라
는 사람이 있죠? 그 카네기가 어렸을 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서 시 장에를 갔는데, 그 시장
에 많은 물 건들이 있는 데 특별히 큰 바구니에 다가 앵두, 그 앵두가 이쁘잖아요? 빨간 앵
두를 수북히 쌓아 놓았거든 요. 이 어린아이가 그 앞에 서서 먹고싶어서, 고 서 있는 거야.
어머 니가 그 사정을 알지마는 그 늘 사 줄 수가 없었던 가봅니다. 거 가만 히 한참 서 있
으니깐 그 주인 할아 버지가
"얘야, 너 이거 먹고 싶으 냐?"
아주 부끄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끄덕했어요. 이거 그 주인이 참 마음이 좋아서
"네 손으로 한 웅 큼, 한 웅큼, 네가 한 줌, 네가 가져 라. 그걸 먹어라."
그러더래요. 가 만히 있는 거야. 한참 일보다 보니 까 아직도 거기 있어요.
"야, 먹으 라는데, 왜 안 먹냐? 먹고 싶으 냐?"
먹고 싶다고,
"한 줌 가져라."
안 가지고 서 있어요. 할아버지가 한 줌을 줬어요. 그러니까 웃으면 서 받아 가지고
"고맙습니다."
그리 곤 받아 가지고 나와서 어머니 가방 에다가 집어넣어 놓고, 몇 개를 입 에다 넣었어요.
집에 돌아온 다음 어머니가 말하기를
"얘야, 너 왜 할 아버지가 '한 줌 먹어라'그런데 왜 안 먹고 거 오래 서 있었냐?"
그러 니까 얘가 대답하기를
"할아버지 손 이 내 손보다 크거든요."
아 고놈 똑똑하단 말이야. 그렇잖아요? 여 러분, 여러분이 버둥버둥 해봤대자 손이 작아서
시원치 않습니다. 하 나님의 손이 커요. 조용히 기다리 세요. 하나님이 주실 때까지…….
또한 나의 기쁨, 나의 행복을 맡 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라. 그러면 네 소원을 이루
어 주실 거 다.' 기쁨, 기쁨을 또 반납해버려요. 사람이 본능적으로 자기를 기쁘게 할려는
마음이 많아요. 그러다가 망치는 거요. 가만히 보세요. 이 부부간에 두 사람 살면서도 상대
방 을 기쁘게 하고야 내가 기쁘지, 자 기만 기쁘게 하겠다고 한다고 기뻐 집니까? 기쁨이란
도둑질 못하는 거요. 기쁨은 강도질도 못해요. 기 쁨은 빼앗을 수가 없는 거예요. 아 무리
앙탈을 해도 기쁨은 주워지지 않아. 그렇게 주워지는 것이 아니 오. 기쁨은 상대방에게 먼저
기쁘 게 해야 돼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야 내가 기쁜 거요. 내 기쁨을 하나님께 맡겨버
려. 하나님을 기쁘 시게 하는 일에 온 정력을 쏟으면, 마침내 하나님의 기쁨에 의해서 내 가
기뻐할 수 있는 거요. 또 이웃 을 기쁘게 해 보세요. 그러면 결국 은 그 기쁨이 내게 돌아오
는 거예 요. '그런고로 너의 기쁨, 너의 행 복, 너의 즐거움을 하나님께 맡겨 버리라. 그리하
면 네게 기쁨이 돌 아오리라.' 그 말씀입니다.
마틴 루터가 어느 날 좀 피곤했던 가봐요. 저녁에 잠자리에서 이렇게 기도한 일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 님, 이 세상이 하나님의 것입니까, 내 것입니까? 하나님, 이 교회가 하나님의 것입니
까, 내 것입니까? 당신의 세상이고, 당신의 교회입니 다. 이제 그들을 당신이 돌보세요. 나는
자겠습니다."
그러고 잤답니다. 하나님께 맡겨버리세요. '너의 행사 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그 가
이루시리라.'
📖 곽선희 목사 설교 요약: 여호와께 맡기라! (잠 16:1-9)
곽선희 목사님의 설교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순종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메시지를 강조합니다. 이는 자기 포기(소극적 태도)와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 및 위탁(적극적 태도)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1. 사해(死海)의 교훈: 완전히 항복하라
- 사해의 원리: 염도가 높아 가만히 누워 손을 펴면 저절로 뜨는 사해처럼, 인생의 문제 앞에서 허우적거리거나 몸부림치지 말고 완전히 손을 들고 항복해야 살 길이 열립니다.
- 인간의 한계와 실망: 사람은 평생 자신의 지식, 재물, 자식, 능력, 지위, 명예에 대해 실망하면서도 헛된 것을 계속 붙잡는 미련함이 있습니다.
- 하나님의 시작: 철학의 '인간 궁극'처럼, 인간이 **'이제는 끝났다'**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할 때, 즉 완전히 손을 들고 백기를 들 때부터 하나님은 비로소 역사하기 시작하십니다. 자신이 무엇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동안은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습니다.
2. 신앙의 본질: 전적인 수락, 순종, 위탁
- 갈등하는 신앙생활: 벨기에 여왕과 폴란드 공산당 간부의 대화처럼, 마음으로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천하지 못하거나(교인) 실천은 하면서도 믿음이 없는(당원) 어정쩡하고 선명하지 못한 신앙생활을 반성해야 합니다.
- 신앙의 세 가지 전적 태도 (Three Totality):
- Total Acceptance (전적인 수락): 자기 포기, 즉 자신의 계획, 능력, 지식, 모든 것을 부정하고 손을 드는 것.
- Total Discipline (전적인 순종):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와 순종.
- Total Commitment (전적인 위탁):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
- 책임 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한다'**는 뜻입니다. 내 운명의 책임을 하나님께 맡기므로 불안과 걱정에서 해방되어 영이 자유로워집니다.
3. 하나님께 맡겨야 할 구체적인 영역
| 맡겨야 할 대상 | 내용 및 교훈 |
| 행사/계획 | 모든 계획과 마음, 뜻, 운명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며 그분을 기뻐해야 합니다. (나이아가라 뱃사공 이야기: 노를 젓지 못하면 잠자코 맡겨야 한다.) |
| 자기 의(義) |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그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자신의 최선, 정직함, 진실함이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기 의를 버리고 하나님께 위탁해야 합니다. (랍비의 지갑 이야기: 내 힘으로는 정직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총에 맡길 때 옳다 함을 받습니다.) |
| 원수/대결 상황 | 악한 사람이나 대적 상황에 마음을 쓰다가 나 자신이 나빠집니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으니 미워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지으셨느니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을 믿고 견뎌야 합니다. |
| 소득/재물 | 돈을 많이 벌려는 노력보다 소득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소득의 많고 적음에 신경 쓰지 말고 정직하고 의롭게 사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카네기 앵두 이야기: 어린 아이의 작은 손보다 할아버지의 큰 손(하나님의 손)이 더 많이 줄 수 있습니다.) |
| 나의 기쁨/행복 | 나의 기쁨과 즐거움을 하나님께 반납하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전력을 쏟을 때, 마침내 그 기쁨이 내게 돌아옵니다. (마틴 루터의 기도: "당신의 세상이고 당신의 교회입니다. 이제 그들을 당신이 돌보세요. 나는 자겠습니다.") |
📝 결론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그가 이루시리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며, 그저 조용히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 참된 신앙의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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