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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선희목사/여호와께 맡기라! (잠 16:1-9)
이스라엘 나라에 가면 '사해'라는 호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사해바 다'라고 하지만은 바다
는 아니고, 호수가 분명합니다. 왜 하필이면 사해냐 하면 영어로 Dead Sea 입니 다. 거기에
는 아무 생물도 살지 못 합니다. 그것은 물이 너무 짜기 때 문입니다. 너무 염도가 높아서
어 떤 생물도 거기에 살아 남지를 못하 는, 그러한 호수가 있습니다. 염도 가 높아서 그저
수영을 한다 치면은 그대로 사람이 이렇게 부력이 높아 가지고 둥둥 뜹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 지방을 지나가다가 그만 그 사해바다에 빠졌어요. 살려달라 고 허우적거리고 있
지만은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답니다. 그리고 멀리서 소리를 지릅니다.
"손을 드 세요. 손을 펴세요. 허우적거리지 말고 손을 펴세요."
그렇습니다. 손 을 펴면 그대로 둥둥 뜨게 돼있어 요. 그대로 둥둥 떠서, 누워 가지고 책을
볼 수가 있으니깐, 그런데 이 사람 쓸데없이 허우적거리니깐 자꾸 짠물만 먹게됩니다. 저도
얼마 전 에 한번 거기 갔을 때, 수영하는 사 람들, 전부 수영을 하니까, 하는 사 람은 문제
없지만 못 하는 사람들도, 가만히 누워만 있으면 저절로 뜨는 데, 괜히 버둥거리다가 자꾸
들어가 더라고요, 물속에…. 이것은 대단 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우 리가 손을 들고,
완전히 항복하고, 손을 펴면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허우적거리면, 몸부림치면 칠수
록 점점 더 일이 어려워집니다.
사람은 한평생 자기 자신에 대하 여 실망하며 사는 것 같습니다. 자 기 지식에 대하여, 그렇
게 애써놓은 모아놓았던 재물에 대하여, 또 애써 서 키워놓은 자식에 대하여, 능력, 지위, 명
예에 대해서 계속 실망합니 다. 낙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도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합
니다. 그렇게 헛된 줄 알면서도 또 물질을 의지하고, 믿을만한 것이 못되는 것 줄 알면서 자
기 의지를 믿고, 아무 쓸모도 없는 줄 알면서도 그 쓸데없 는 자기 지위나, 명예나, 그 부끄
러 운 과거를, 그래도 붙들고, 무슨 큰 훈장이나 되는 것처럼 내세울려고 합니다. 가소로운
것입니다. 철학 에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인간궁 극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만난다.' 그 래
요. '인간궁극'. 우리의 한계, 모 든 것에 한계 끝에서, '이제는 끝났 다'할 때 하나님은 그때
부터 일을 시작합니다. 아직도 여러분이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동안은 하나 님은 여러
분과 합작하지 않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할려고 들지 않습니 다. 완전히 손을 들고, 백기를
들 고, 손을 펴야, 그때부터 하나님은 역사 하십니다. 여러분의 지혜를 통하여, 여러분의 능
력을 통하여, 여 러분의 마음을 통해서 역사 하신다 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한번은 벨기에의 여왕이 폴란드를 방문했습니다. 그 당시 폴란드는 공산 치하에 있었습니다.
이 여왕 께서 카톨릭 미사에 참례했습니다. 그때에 한 공산당 간부가 그를 뒤따 랐습니다.
당 간부가 카톨릭 미사 의식에서 따라서 그 의식을 잘 참례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여왕은
한 마 디 했습니다.
"당신은 카톨릭 교인 입니까?"
그는 대답하기를
"여왕이 여, 저는 믿기는 하지만은 실천은 하지 않습니다."
그 말은 '마음으로 는 믿어도 교회 다니지 않는다.' 그 런 뜻입니다.
"그러면 공산당원이 군요."
당 간부 말하기를
"나는 공 산당원으로서 실천하기는 하지만 믿 지는 않습니다."
여기에 갈등이 있 습니다. 교회에 대해서는 마음으로 는 믿는 척 하지만 실천이 없고, 공 산
당원으로 살아가면서 행위와 실천 은 있는데, 그 이데올로기에 대한 믿음은 없어요. 언제까
지 이렇게 살아야하는 것입니까? 우리 교인들 가운데도 어떤 때는 하나님을 믿는 것 같아
요. 그러나 믿는 대로 살지 못해요. 그 또 안 믿는 다고 하자 니 또 그렇다고 안 믿는 것도
아니 예요. 휘청휘청해요. 언제까지 허 우적거리오. 왜 이렇게 선명치 못 한 생을 살아가야
하느냐? 깊이 깊 이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영어로 표현할 때 Total Acceptance, Total Discipline, Total Commitment
그렇 게 말합니다. Three Totality, 세 가지를 전적으로, 전적으로 수락하 고, 전적으로 순종
하고, 전적으로 위 탁하고. 그것이 신앙입니다. 그런 데 어정쩡 해 가지고 전적으로 믿지 도
않고, 전적으로 부인하지도 않고. 그렇게 세월을 보낸 거예요. 그렇 게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거예 요.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 하십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행사도 맡기고, 마음 도 맡기고, 운명도 맡기라. 맡기라 는 말은 뭡니까? 이것은 소극적으
로 볼 때는 자기 자신을 포기하라는 거죠. 자기가 하던 일, 자기가 하던 계획, 자기의 능력,
자기 지식…. 그 모든 것을 다 부정해 버려라. 다 포기하고 손을 들어라. 동시에 적극적으로
는 전적으로 그를 신뢰하 라. 하나님만 의지하라. 그리고 그 에게 위탁하라는 말입니다. 그
말 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사랑에 대한 전적인 신앙,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
뢰와 그 말씀에로의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좀 더 깊이 심리학적으로 생각해 보 면요. '책임을 하나
님께 전가한다' 는 뜻입니다. 책임을 많이 지고 있 는 사람은 언제나 불안합니다. 내 가 내
운명 내가 책임져야 되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주신 말씀에 전적 으로 순종하고 나면은 하나
님이 책 임집니다. 이건 이제 내 책임이 아 닙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
람이, 그 영이 언제나 자유로운 것입니다. 걱정이 없어요. 하나님 뜻대로 순종했으니까 이젠
하나님이 알아서 할거요. 내게는 아무 책임도 없습니다. 그걸 알아 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의 말씀을 거역하는 사람은 거역하면 거역할수 록, 점점 더 마음이 무거워지게 마 련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 자세히 보면은 '계획하는 바도 하나님께 맡기고 하 나님께 기도하라. 기
도하고, 마음을 맡기고, 뜻을 맡기고, 그리고 그를 기뻐하라.' 이렇게 성경은 말하고 있 습니
다. 미국에 가면 '나이아가라' 라는 폭포가 있는데,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 그 폭포 바로 밑
에 그 폭 포가 물이 떨어져 가지고 여울지면 서 흘러가는 물이 좀 거셉니다. 거 기에 한 나
룻배가 있었답니다. 나 룻배에 사람들이 몇 사람 타고, 건 너가게 되는데 나이 많은 노인이
노 를 저으면서 건너가는데, 배가 빙빙 돌면서 이렇게 갑니다. 그 왜냐하 면, 여울져가기 때
문에, 거기 한 손 님 하나가 겁이 났어요. 겁이 나가 지고,
"사공, 노를 젓는 양반!"
"네"
"당신 몇 년 동안이나 이 사공 노릇 을 했소?"
"이십 년 넘은 것 같습니 다."
"그 동안 사고 난 일이 없었 소?"
"아직까지는 없었습니다. 사 고 나게 돼있지만 아직까지는 없습 니다."
아 이 사람이 점점 더 겁이 나는 거예요. 벌벌 떨고, 이렇게 하 면 되고, 저렇게 하면 되
고…. 자 꾸 말이 많아요. 그러니까 사공이 하는 말이
"여보시오. 손님! 당신 노 저을 줄 알우?"
"모릅니다."
"그 러면 입 다물어. 내가 저을 테니까. 이제는 죽거나 살거나, 당신 목숨은 내게 있소."
가만히 보니 그렇거든 요.
"단, 당신하고 나하고 같이 가 는 거요. 그러니까 아무걱정하지 마시오. 당신 죽을 때 나도
죽고, 나 죽을 때 당신도 죽을 거요."
그 때부터 조용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노도 젓을 줄 모르면서 잔소리만 하 지 마세요. 어차
피 당신의 힘으로 살지 못하는 세상인데 왜 그렇게 말 이 많아. 왜 그렇게 생각이 많아. 손
들어. 깨끗이 들고, 운명을 맡겨 버려. 그리고, 조용히 계세요. 세 상이 어디로 가든 하나님
알아서 인 도할 겁니다.
특별히 오늘 성경말씀을 잘 보면 은 '의를 하나님께 맡기라.' 그랬어 요. '사람의 행위가 자
기가 보기에 는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그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자기 보기엔 자기 가 깨
끗하지. 하나님 보실 때 어떻 게 보느냐가 문제죠. 그런고로 의 를, 의를 하나님께 바쳐버려
요. 자 기 의, 자기 의를 하나님께 위탁해 버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고린도전 서 4장 3절, 4
절에 보면, 사도 바울 이 그런 말을 합니다.
"나는 아무 자책할 것을 깨닫지 못한다. 나로 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자책할 것이 없다. 그
러나 이로 인하여 의롭다 함은 얻지 못한다. 나를 판단하실 이는 오직 하나님뿐이시니라."
그런 말씀을 합니다. 옳은 말씀이에요. 가끔 우리는 이런 말을 해요.
"최 선을 다 했다."
최선가지고 통합니 까? 당신의 최선이 무슨 의미가 있 는 거요? 이것 때문에 쓸데없는 고
집에 빠져요. 나 나름대로의 최선 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아무 소용없는 거예요. 내
의를 버리세 요. 제가 가끔 무슨 공동체 모임이 나, 혹은 성경공부 모임, 이런데 많 이 강사
로 나갑니다. 가면은 거기 에 사회하시는 분이 늘 있어요. 그 리고 저는 성경공부만 인도하
는데, 가만히 보면 이렇게 앉았다가, 그 차례차례 돌아가면서 하는 거니까 좀 서툴죠, 사회
하시는 분들이. 이 렇게 않았다가 벌떡 일어나서 서 가 지고는 자기 시계를 보면서
"시간이 됐으므로 이제 성경공부 시작하겠습 니다."
이 제가 보니까 아직도 5분 남았어요. 그건 자기 시계가 빠르 거든요. 대체로 그러더만요.
그래 시계는 좋은걸 차야돼요. 고장난 시계가지고…… 어 그러고 하는 소 리가
"시간이 됐으므로……."
이 사 람은 이렇게 하고, 자기가 실수하는 걸 몰라요. 왜? 자기 시계는 맞잖 아요. 그것처럼
미련한 게 없어요. '내가 나대로의 The best, 진실 을 살고, 정직함을 살고…, 나대로 의 최
선을 다했노라.' 그건 당신마음 이지. 객관성이 없어요. 그게 하나 님 앞에 통하는 게 아니
에요. 주로 이렇게 최선을 다했다는 사람들이 교만해. 최선을 다했다는 사람들이 문제예요.
그걸 알아야돼요. 내 의 를 하나님께 위탁을 해요. '당신만 이 아십니다. 내가 어떻게 알겠
어 요? 당신만이 아십니다.'
범브란트라는 목사님이 쓴 '승리 하는 신앙'이라고 하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
기 하나를 얼마 전에 제가 말씀드렸습니다만 다시 말씀드립니다. 랍비가, 유대 랍비가 아주
유대사람들, 교인들을 앞에 놓고, 이렇게 한 사람에게 물 었답니다.
"당신에게 어떤 길을 가 는데, 당신 앞에 돈이 많이 들은 지 갑이 하나 길에 떨어져 있다
하자 그걸 주웠어요. 아무도 안 보는데 서 주웠으면, 이 돈 많이 들어 있는 지갑을 어떻게
하겠냐?"
하고 물으 니까, 한 사람이 하는 말이
"저는 아이도 많고 살림이 어려워서 하나 님께서 내게 주신 선물인줄 알고 잘 쓰겠습니다."
랍비가 하는 말이
"이 놈아, 너는 도둑놈이다."
그러더래 요. 또 한 사람에게 물어보았더니, 한 사람 하는 말이
"아 그거야 빨리 주인을 찾아 줘야지요. 난 냉큼 주 인 찾아 주겠습니다."
이러니까
"야 이놈아, 바보다 너는."
그래요. 또 한 사람에게
"이렇게 돈 많이 들은 지갑을 발견했으면 어떡하겠느냐?"
그러니까
"저요? 저는 제 자신을 믿 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일을 당해봐야 알지. 난 워낙 마음이
약 하고 욕심이 많아서 그런 일 당할 때 내가 정말 이걸 주인에게 돌려 줄 수 있을는지, 없
을는지 모르겠는 데요. 그저 하나님의 은총에 맡길 뿐입니다."
랍비가 말하기를
"네 말이 옳도다."
그랬어요. 내 힘으로 정직할 수 있던가요? 하나님이 내 게 은총을 베푸시지 아니하면, 조그
마한 일에도 내가 바로 살수가 없는 거예요. 내 나름대로의 생각, 내 나 름대로의 도덕성,
내 나름대로의 규 범을 놓고, 의이니, 선이니, 옳으니, 내 나름대로 생각하는 잣대를 놓고 남
을 비판하고, 잘못된 거예요. 내 의를 하나님 앞에 맡겨버려. '당신 만이 아십니다.'
또 하나는 여기 보니 원수가 있어 요. 악한 사람들이 있는데, 악한 사 람, 즉 원수를 하나님
께 맡겨버려. 나를 괴롭히는 이런 대립, 혹은 대 적 상황 속에 살아갑니다. 다 좋은 사람만
아닙니다. 내게 손해를 끼 치고 나를 비방하고, 나를 욕되게 하고 못 살게 구는 사람들이 많
아 요. 뭐 그런 상황 속에 사는 거요. 그럴 때 이를 어떻게 합니까? 그쪽 으로 자꾸 마음이
가면 안됩니다. 그러다가 내가 나빠집니다. 나쁜 사람 내가 미워하다가 내가 더 나빠 집니
다. 그 사람이 분명히 나쁜 사 람이라 하더라도 악한 사람에게 마 음을 쓰다가 내 자체가
페이스를 잃 어버려요. 내 자체가 기본을 잃어 버려요. 그걸 알아야돼요. 그런고 로 원수?
그것 갚는 것 하나님께 있어요. 미워할 것 없습니다. 그래 서 성경은 말합니다. 여러 곳에서
같은 말씀으로 말씀 합니다. '악인 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아라. 원 수갚는 것이 내게 있느
니라. 너희 가 갚으려고 하지 말아라.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배고프거든 먹이 고, 목마르
거든 마시우라. 너 할일 만 해. 미워하지 마라.' 원수, 나를 괴롭히는 상황, 하나님께 맡겨버
려.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깐, 하나님께 맡겨버려. 합동하여 선을 이룰
것이니까 하나 님께 맡겨버려. 요 성경 말씀에 '악 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지으셨느 니
라.' 아주 귀한 말씀이오. 잘 참 고 견뎌보세요. 거 괜찮아요. 좋은 일이 될 거예요.
우스운 얘기입니다만은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중학교를 가야겠는데 그 때 상황이 그렇질 못
했어요. 그래 서 내년에 중학교를 들어가게 될 때 에 좌우지간 몇 달 남았어요. 제가 제 외
삼촌댁을 갔어요. 외삼촌은 의사고, 세브란스 제 2회 졸업생입 니다. 그런데, 책도 많고 그렇
더라 고요. 그래 제가 외삼촌한테 가서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제가 며칠 시간이 남아서 그러는데 영어공부를 좀 할라고 그러는데 책 좀 빌려 주 시요."
그랬다고요. 그랬더니 외삼촌 께서 말씀하시길
"너는 농사꾼의 아 들로서, 농사 배워서 농사 잘 하고 살면 되지, 뭘 공부 할라고 하냐."
그러더라구요. 그 말을 듣고요. 제 가 돌아서서 나와 가지구 40리 길을 엉엉 울면서 집에 돌
아왔어요.
"두 고보자, 나 공부하고야 만다. 내가 삼촌네 아들들보다 내가 공부 더 많 이 할거요."
그래서 그것이 미안했 던지 모르지만, 외삼촌이 92세에 세 상을 떠나는데 아들 다섯, 딸 셋,
쭉 둘러앉았는데요. 이상하게 내 손을 딱 잡고 세상 떠났어요. 거 좀 미 안했던가봐요.
여러분 조금 섭섭한 일이 있어요? 그거 뭐 그리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 세요. 손해 좀 보면
그저 '좀 보 는가 보다'하세요. 이게 다 하나님 의 장중에 있으니까. '합동하여 선 을 이룰
것이다.' 그런고로 원수를 혹은 이 대결 상황을 하나님께 맡겨 버려요. 또 소득에 대해서도
그렇 습니다. 우린 너무 자꾸 돈을 많이 벌려고 애쓰는데, 소득은 하나님께 있어요. 많이 벌
리려는지, 못 벌리 려는지 그거 내 마음대로 생각하지 마세요. 나는 씨를 뿌리고 가꿀 뿐 이
지 농사가 잘 되고, 안 되고는 하 나님의 손에 있지. 그래서 오늘 성 경말씀에 보니깐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이 소득이 불의를 겸하는 것 보다 나으니라.' 무슨 말입니까? '많이
벌고 적게 벌고, 야 그 신경 꺼라. 그저 정직하게, 진실하게 ……. 좀 소득이 적더라도 의롭
게, 그렇게 살아.' 소득은 하나님께 맡 기세요. 거 신경 쓰지 마세요.
이런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 유명한 Positive Thinking 이라 고 하는 소위 '적극적
사고'라고 하 는 것을 철학 기초로 해서 '카네기' 식 교육을 내세운 그 유명한 '카네 기'라
는 사람이 있죠? 그 카네기가 어렸을 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서 시 장에를 갔는데, 그 시장
에 많은 물 건들이 있는 데 특별히 큰 바구니에 다가 앵두, 그 앵두가 이쁘잖아요? 빨간 앵
두를 수북히 쌓아 놓았거든 요. 이 어린아이가 그 앞에 서서 먹고싶어서, 고 서 있는 거야.
어머 니가 그 사정을 알지마는 그 늘 사 줄 수가 없었던 가봅니다. 거 가만 히 한참 서 있
으니깐 그 주인 할아 버지가
"얘야, 너 이거 먹고 싶으 냐?"
아주 부끄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끄덕했어요. 이거 그 주인이 참 마음이 좋아서
"네 손으로 한 웅 큼, 한 웅큼, 네가 한 줌, 네가 가져 라. 그걸 먹어라."
그러더래요. 가 만히 있는 거야. 한참 일보다 보니 까 아직도 거기 있어요.
"야, 먹으 라는데, 왜 안 먹냐? 먹고 싶으 냐?"
먹고 싶다고,
"한 줌 가져라."
안 가지고 서 있어요. 할아버지가 한 줌을 줬어요. 그러니까 웃으면 서 받아 가지고
"고맙습니다."
그리 곤 받아 가지고 나와서 어머니 가방 에다가 집어넣어 놓고, 몇 개를 입 에다 넣었어요.
집에 돌아온 다음 어머니가 말하기를
"얘야, 너 왜 할 아버지가 '한 줌 먹어라'그런데 왜 안 먹고 거 오래 서 있었냐?"
그러 니까 얘가 대답하기를
"할아버지 손 이 내 손보다 크거든요."
아 고놈 똑똑하단 말이야. 그렇잖아요? 여 러분, 여러분이 버둥버둥 해봤대자 손이 작아서
시원치 않습니다. 하 나님의 손이 커요. 조용히 기다리 세요. 하나님이 주실 때까지…….
또한 나의 기쁨, 나의 행복을 맡 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라. 그러면 네 소원을 이루
어 주실 거 다.' 기쁨, 기쁨을 또 반납해버려요. 사람이 본능적으로 자기를 기쁘게 할려는
마음이 많아요. 그러다가 망치는 거요. 가만히 보세요. 이 부부간에 두 사람 살면서도 상대
방 을 기쁘게 하고야 내가 기쁘지, 자 기만 기쁘게 하겠다고 한다고 기뻐 집니까? 기쁨이란
도둑질 못하는 거요. 기쁨은 강도질도 못해요. 기 쁨은 빼앗을 수가 없는 거예요. 아 무리
앙탈을 해도 기쁨은 주워지지 않아. 그렇게 주워지는 것이 아니 오. 기쁨은 상대방에게 먼저
기쁘 게 해야 돼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야 내가 기쁜 거요. 내 기쁨을 하나님께 맡겨버
려. 하나님을 기쁘 시게 하는 일에 온 정력을 쏟으면, 마침내 하나님의 기쁨에 의해서 내 가
기뻐할 수 있는 거요. 또 이웃 을 기쁘게 해 보세요. 그러면 결국 은 그 기쁨이 내게 돌아오
는 거예 요. '그런고로 너의 기쁨, 너의 행 복, 너의 즐거움을 하나님께 맡겨 버리라. 그리하
면 네게 기쁨이 돌 아오리라.' 그 말씀입니다.
마틴 루터가 어느 날 좀 피곤했던 가봐요. 저녁에 잠자리에서 이렇게 기도한 일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 님, 이 세상이 하나님의 것입니까, 내 것입니까? 하나님, 이 교회가 하나님의 것입니
까, 내 것입니까? 당신의 세상이고, 당신의 교회입니 다. 이제 그들을 당신이 돌보세요. 나는
자겠습니다."
그러고 잤답니다. 하나님께 맡겨버리세요. '너의 행사 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그 가
이루시리라.'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क्वाक पास्टर 1,910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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