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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요한계시록 8장8-13 / 둘째, 셋째, 넷째 나팔

by 【고동엽】 2022. 11. 17.
■2022년 7월26일(화)■
 
(요한계시록 8장)
 
8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 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9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지더라
10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11 이 별 이름은 쓴 쑥이라 물의 삼분의 일이 쓴 쑥이 되매 그 물이 쓴 물이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더라
12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추임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13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니 이는 세 천사들이 불어야 할 나팔 소리가 남아 있음이로다 하더라




(묵상/계 8:8-13)


◆ 나팔 재앙 - 삼분의 일이 죽는 재앙


8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나팔 재앙으로 지구 전체에서 삼분의 일이 손상된다.


>첫째 나팔로는 땅과 수목의 삼분의 일이 타버린다


>둘째 나팔로는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생물 삼분의 일이 죽고, 배가 삼분의 일이 깨진다.


> 셋째 나팔로는 강과 물 샘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된다.


> 넷째 나팔로는 해와 달과 별의 삼분의 일이 어두워진다.
해가 삼분의 일이 어두워진다는 것은 삼분의 일의 열기가 식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낮의 삼분의 일과 밤의 삼분의 일 시간 동안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여섯째 나팔로는 사람의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한다.


◆ 셋째 나팔


(10)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셋째 나팔은 강들과 물 샘의 삼분의 일이 오염되는 재앙이다. 그런데 이 강과 샘에 떨어지는 별의 이름이 특이하다. '쑥'이라는 것이다.


셋째 나팔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다.
1986년에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로가 폭발한 사건이 있었다. 원자로의 상부가 날아가고 연기는 무려 1,000미터나 치솟았다. 이것은 인재로는 20세기 최대 · 최악의 사고로 알려져 있다. 피폭(被曝) 등의 원인으로 1991년 4월까지 5년 동안에 7,000여 명이 사망했고 70여만 명이 치료받았다. 그러나 폐쇄된 소련의 공식적 발표가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훨씬 더 큰 피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체르노빌 사건을 시작으로 소련은 급속도로 쇠약해지고, 연방제가 해체되었으며 마침내 1991년에 공산주의 종식을 선언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체르노빌의 뜻이 "쑥"이라는 것이다. 세 번째 나팔에서 나타나는 별의 이름과 같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이것을 세 번째 나팔로 추측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팔 재앙은 땅의 삼분의 일이 손상을 입는 재앙이다. 체르노빌과 같은 국지 사고에 적용하기에는 규모가 안 맞는다.


그러나 체르노빌 사건은 예언이 어떻게 성취될 수 있는지에 대해 큰 힌트를 주었다.


미래에 지구의 물과 샘의 삼분의 일을 못 쓰게 만드는 재앙이 일어날 텐데, 그 재앙의 원인이 되는 사건과 '쑥'이라는 이름은 매우 밀접한 관계일 것이다. 체르노빌 사건은 셋째 나팔의 예표와 같다.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의 모의고사를 치른 셈이다.


누구도 계시록을 통해서 미리 체르노빌 사건과 같은 것을 예견할 순 없다. 그러나 사건 이후에는 반드시 하나님 말씀의 정확함에 놀랄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아무리 연구해도 미래를 짐작하기 어렵게 기록되어 있다. 미래에 이런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하지만, 이것이 어떤 방식으로 어느 때에 일어날지는 알 수 없게 기록되어있다. 


예언은 인간으로 하여금 미래를 아는 전지한 자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고, 그 앞에 겸손하게 하심이 목적이다. 


따라서 우리는 겸손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호기심을 가지고 궁금해해도 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요한계시록 맨 처음의 말씀처럼 '읽는 자와 듣는 자, 그리고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계 1:3)라는 말씀처럼 읽고 듣고, 지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계시록의 분명한 교훈은 이것이다.
일의 결국이 이렇게 끝나니, 어떤 일이 있어도 의심하지 말고 인내하고 이기라는 것이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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