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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지 맙시다 자료원

by 【고동엽】 2022. 11. 15.

제 목 : 졸지 맙시다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행 20:7-12 정상적인 수면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시편 127:2에서 "여 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라고 노래했습니다. 그 러나 잠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교통사고의 주된 원인은 과속운전, 과로운전, 음주운전, 졸음운전이라고 합니다. 고속도로를 주행해본 운전자는 누구나 경험했을 것입니다만 주행중 조는 시간은 불과 2-3초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2-3초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졸지 않아야 될 자리에서 조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졸음은 일종의 생리 현상입니다. 졸음의 원인은 수면부족일 때,피곤할 때, 식사 후 식곤증 때문에, 허약할 때 등입니다. 졸릴 때 잠자고, 깨야할 때 깨는 것은 자유로운 행복입니다. 그러나 잠자고 싶을 때 잠자지 못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3일간 밥을 먹지 않는 고통보다는 3일간 잠자지 않는 고통이 더 큰 것입니 다. 그래서 고문 가운데 무서운 것은 잠을 못자게 하는 고문이라고 합니다. 분명히 잠은 은헤이며, 축복입니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잠을 잔다든지, 때와 장소도 가리지 않고 졸고 앉 아 있다면 그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의 중요정책을 결정하는 각료회의에서 장관이 끄떡거리고 졸고 앉아 있는 모습이 전국에 생중계 됐다면 그 장관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가 오늘 말씀드리려는 골자는 영적인 졸음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여 기서 주목할 것은 영적 상태가 무너지면 정신상태가 무너지고, 정신상태가 흔들리면 육체도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 긴장상태가 무너져 내리면 모든 분야의 나사못이 풀리게 된다는 것이빈다. 우리는 본문 속에서 졸다가 떨어져 죽은 한 젊은이의 사건을 통해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다. 1. 주일에 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7절을 보면 '안식후 첫 날에'라고 했습니다. 안식후 첫날은 주일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주일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였고 마침 선교여행중 드로아를 방무한 바울사도가 말씀을 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스럽고 복된 날, 복된 장소에서 불상사가 벌어진 것입니다. 유두고라는 청년이 3층 다락난간에 걸터 앉아서 졸다가 떨어져 죽은 것입니다. 북한이 남한을 침공했던 1950년 6월 25일은 주일 새벽이였습니다. 그동안 일어났던 대형 사건이나 사고들은 대부분이 주일에 일어났습니다. 작년 (1993년)10월 10일 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침몰로 270명이 희생당한 사건도 주일에 일어났습니다. 휴일을 즐기려는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습니 다. 그중에는 교회다디는 교인들도 더러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안식일이나 주일에 대한 개념을 올바로 정립해야 합니다. 창세기 2:2을 보면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 시니라"고 했고, 3절을 보면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렸음이더라"고 했습니다. 안식일의 출발은 엿새동 안 천지창조 사역을 의해 노동하신 하나님이 쉬신날입니다. 아담이나, 하와 가 쉬는 날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후에 하나님은 인간에게도 쉬라고 안 식의 법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쉬시도록 해드리고 그대신 인간이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 날이 안식일의 원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엿새동안 눈코뜰새없이 자기 사업, 자기 직장, 자기 생업에 골몰하다가 안식일이 되면 내가 쉬는 날로 착각하고 놀고 쉬려하고 있습니 다. 그것은 안식일의 기본정신을 망각한 처사인 것입니다. 주일의 경우는 구약의 안식일이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사건으로 바뀌면서 지키게 된 주의 날입니다. 글자 그대로 주일은 주의 날, 주님의 날입니다. 그날의 주인은 주님이십니 다. 그런데 우리는 주인한테 물어보지 않고 휴일이니, 공일이나, 주일이니 하여 제멋대로 남용하고 죄짓는데 쓰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유두고의 경우는 안식후 첫날 교회에 나와 앉 아 있었고 예배를 드리고 있었고 말씀을 듣고 있었는데 떨어져 죽었다는 것 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건의 교훈은 주일에 교회 나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예배를 드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의 날 주의 전에 나오지 않는 것은 말할 가치도 없습니다. 그러나 나와 앉아 있다고 하더라도 참 예배자의 정신과 자세를 가다듬고 앉아 있어야 되 는 것입니다. 주의 전에 나와 바른 에배를 드려야 합니다. 2. 그 사건은 말씀듣는 도중에 일어났습니다. 7절을 보며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 때 말을 밤중 까지 계속하매"라고 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저녁집회가 좀 길어졌는데 3층에서 졸던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잡담하고 노닥거리는 것은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만 진리를 탐구하고 말씀 을 들으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은 지루하고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 나 그것은 내 생각에 잘못이 있는 것입니다. 옛날 얘깁니다만, 영화곤에 영화보러 갔다가 중간에 쉬고 본 영화가 둘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빅터 플레밍'이 감독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영화였고, 하 다른 하나는 '윌리엄 와일러'가 감독한 [벤허]였습니다. 지금도 생생한 것 은 그 누구도 '무슨 놈의 영화가 이렇게 길담','쓸데없이 길구먼'이라며 짜 투덜댄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영화의 끝을 알리는 The End싸인이 화면에 나오고 극장 안의 불이 켜졌는 데도 사람들은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물론 조는 사람도 없었 습니다. 세기의 명화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면서 조는 사람은 [바 람과 함께 사라질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유두고는 하나님을 만나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졸 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졸아선 안될 이유가 또 있었습니다. 8절을 보면 "우리의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다"고 했습니다. 조명은 수면과 직접 관계가 있습니다. 불을 끄거나 조명이 어두우면 졸거나 잠을 청하게 됩니다. 그러니 그날 밤의 경우는 윗다락까지 등불을 밝혀 두었습니 다. 그리고 그날 밤 졸았던 사람의 수가 수십 명이었다면 그건 바울의 책임입 니다만 다 정신차리고 말씀듣는데 유두교 혼자만 졸았습니다. 한마디로 은 혜의 등불, 마음의 등불, 영혼의 등불이 꺼졌기 때문입니다. 꽃피고 새우는 봄날도 마음이 싸늘하게 식으면 춥게 느껴지는 것처럼 마음 의 등불이 꺼지면 은혜는 떠나고 졸음만 오는 것입니다. 마귀는 신자가 은혜받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이유는 은혜를 받지 못해 야 다루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사단이 은혜받는 것을 방해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말씀에 대해 거부감을 일으킵니다. 둘째 말씀에 대해 의심을 일으킵니다. 셋째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대해 불평스러운 마음을 일으킵니다. 넷째 교회를 등지게 만듭니다. 다섯째 졸도록 유도합니다. 시험 중에 가장 심각한 시험은 말씀듣다가 거의 걸려 넘어지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설교듣다가 시험드는 것입니다. '새롭게 하소서' 상담시간에 보낸 편지사연 가운데 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헌금이야기를 하면 거부감이 일어나고 은혜가 안되는데 이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이 있었습니다.제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설교는 합시다와 하지 맙시다로 구분됩니다. 전도해라, 기도해라, 사랑해 라,봉사해라,바로 살아라, 못된 짓 하지말라, 미워하지 마라,죄짓지 말라 등이 계속 반복되고 설파됩니다. 그런데 다른 얘기는 아무 반응이 없다가도 헌금문제만은 민감한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나 부정적 반응을 보이면 내 신 앙이 모자라고 그것이 습관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거부하는 습관을 형성하게 됩니다. 맨날 설교가 헌금소리로 채워진다면 그건 잘못이지만 한두번 정도라면 '주 님 저도 헌금생활 많이하고 바로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소 원하는 것이 훨씬 더 아름답고 복받는 태도인 것입니다. 그날 그날의 말씀 을 긍정적으로 받아드리도록 노력하십시오."라는 내용의 대답을 한 일이 있 었습니다. 유두고는 말씀듣다가 떨어졌습니다. 만일 충신교회에서 누구누구가 설교 듣다가 떨어져 죽었다고 보도가 된다면 그 꼴이 뭐가 되겠습니까? 3. 걸터 앉았기 때문이었습니다. 9절을 보면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졸 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층 누에서 떨어지거늘"이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왜, 뭣하러 3층까지 올라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위험은 피하는 것이 최상의 예방책입니다. 화재를 예방하려면 불을 조심해 야 하고, 교통사고를 예방하려면 차를 조심해야 하는 것처럼 추락을 막으려 면 걸터앉아서 안됩니다. 저는 이 상황을 영적 사건으로 조명해 보고 싶습니다. 걸터 앉았다는 것, 그것은 안정감이 없습니다. 그리고 방자스러운 행동입 니다. 의자에 앉는 것도 엉덩이를 디밀고 허리를 등받이에 붙이고 똑바로 앉는 것이 가장 단정한 자세입니다. 영적으로 걸터 앉는다는 것은 뭔가 산만하고 오만하고 그러면서 지쳐있느 니 그런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신앙의 위기입니다. 지난 주간 뉴스위크지 뉴스메이커 안에 두 사람이 소개된 바 있습니다. 하나는 미국의 인기 텔레비젼 토크쇼의 호스트로 최상의 인기를 누리고 있 는 [오프라 윈프리]에 관한 얘기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홍보담당 비서였던 콜린랠리를 내쫓고 다른 사람을 채용했는데 전비서가 20만달러의 손해배상 청구를 했다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시청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것입니다. 거기다가 시청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중이어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미지 수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현재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바이얼린 연주가인 금년 23세의 [질 새햄]에 관한 얘기입니다. 지난 주 필라델피아 교향악단과 함께 카네기 홀에서 연주회를 가졌는데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얼린 협주곡 연주가 끝나자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박수가 끝나자 그는 슬금슬금 무대 뒤로 걸어가더니 오케스트라의 바이얼린 파트 제일 마지막 줄에 앉아 다른 단원들과 함께 [드보르작] 의 제8번 교향 곡을 신나게 연주했던 것입니다. 교만방자한 윈프리는 구설수에 오르고 겸솨난 질 새햄은 칭찬을 받고 있다 는 기사였습니다. 성공했든지 실패했든지, 잘 살든지 못 살든지, 힘들든지 쉽든지, 편하든지 괴롭든지, 걸터 앉으면 안됩니다. 정신차리고 말씀듣고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졸고 있는 사단병력보다는 깨어있는 1개 소대가 훨씬 더 강한 법입니다. 졸고 있는 교인 10만 명보다는 눈을 똑바로 뜨고 말씀을 경청하는 1천명 교인이 힘이 있습니다. 운전도 졸면 안되고, 공부도 졸면서 하는 것은 효과가 없습니다. 몽롱한 상태에서는 능률도 오르지 않습니다. 신앙생활도 몽롱한 상태에서 하면 안됩니다. 분재토양에 3대조건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흡수성이고, 둘째는 통기성이고, 셋째는 배수성이라고 합니다. 분재에 적합한 흙은 공기가 통해야 하고, 물이 흡수가 잘 되어야 하고, 배 수가 잘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성장의 조건이 있습니다. 교회출석 잘하고, 말씀 잘 먹고, 졸지 않고 깨어 기도하고, 예수님 바라보 고 전진하노라면 믿음은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졸지 맙시다. 정신차립시다. 깹시다. 일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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