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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도시들 자료원

by 【고동엽】 2022. 11. 12.

저주받은 도시들 자료원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 : 마 11:20-24 현대 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인구 집중문제, 교 통문제, 주택문제, 대기오염, 환경파괴,범죄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세계의 어느 나라를 가 봐도 도시가 크면 클수록 그 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도 큰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대도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도시규모가 크면 클수록 문제도 크 고 많았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도시가 오늘까지 남아 있는 것도 없 어져 버린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소돔과 고모라 라든지, 폼페이 같은 도시는 없어졌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세 도시도 없어졌습니다. 그 세도시는 고라신, 벱세다, 가 버나움입니다. 그 세도시는 서울이나 뉴욕처럼 큰 도시느니 아닙다만 그러 나 그 당시 그 지역에서는 큰 도시 구실을 했습니다. 그 도시들이 왜 없어졌는가 하는 이유를 찾는 것은 현대 도시의 성격 규명 과 우리의 입장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1. 불신의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20절을 보면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 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라고 했습니다.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은 불신의 결과입니다. 믿으면 회개운동이 일어납니 다만 안 믿으면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도시를 사람으로 의인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고라신,벱세다,가버나움이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 이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회개는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인간의 도리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과정입 니다. 다시 말하면 회개가 없으면 구원이 완성되지 않는 것입니다. 회개에는 다음과 같은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 단계는 자각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를 깨닫고 느끼고 발견해야 합니다. 둘째 단계는 시인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지은 죄와 가지고 있는 잘못을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변명하거 나 핑계를 대면 안됩니다. 셋째 단계는 고백하는 것입니다. 죄도 자기 입으로 고백해야 하고 믿음도 자기 입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다 시 말하면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낱낱이 마치 자술서를 쓰는 것처럼 내가 지은 죄를 숨김없이 고백해 야 합니다. 넷째 단계는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고백만으로 끝나 버리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내가 고백한 죄를 용서해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다섯째 단계는 사죄를 믿어야 합니다. 내가 내 죄를 고백하면 그리고 용서를 구하면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도처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다고 약속하고 있 습니다. 눈보다 더 희개 양털보다 더 희게 사하신다고 약속하셨고(사 1:18), 우리의 죄를 도말하신다고 했습니다 (사 44:22). 그리고 동이 서에 서 먼 것같이 우리의 죄가를 멀리 옮기시겠다고 했습니다 (시 103:12). 여섯째 단계는 돌아서는 것입니다. 참회개는 거기서 돌아서야 합니다. 거기서 발을 빼고 손을 씻고 그 현장을 떠나야 합니다. 죄에 대해 미련을 버려야 합니다.참된 회개는 방향을 바꾸 는 것입니다. 일곱째 단계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방향을 돌이켰으며 즉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딴데로 가면 안됩니다. 여덟번째 단게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인간에게는 되돌이 근성이 있습니다. 회개했노라고 하지만 옛날 그때 거기 로 되돌아 갈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내가 성령을 충만히 받고 성령의 지시하심을 따른다면 죄길로 되돌아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성령 하 나님의 능력에 사로잡히면 성령님이 인도하시는대로 따라 살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고라신 도시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주님이 행하시는 기적도 목격했습니다 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현대 도시들은 어떻습니까? 서울 장안에 사는 사람치고 교회를 모르는 사 람과 예수를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만일 있다면 극소수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 니 서울 시민 1200만을 생각할 것까지도 없습니다. 내 가족, 내 친척, 내 이웃, 내 친구들 가운데 고라신처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회개가 없으면 그 다음은 멸망 밖에 없는 것입니다. 2.교만의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23절을 보면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 지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대등한 자리에 올라 가겠다고 설쳤던 루시퍼 천사가 있었습니다. 그 천사가 타락하여 마귀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11장을 보면 시날 평원에 모여 성을 쌓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벽 돌을 만들고 역청을 만들어 성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성의 높이는 하늘에 닿게 하자는 것이었고 그 목적은 하나님을 낮추고 자 기네 이름을 떨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탑은 무너졌습니다. 인간이 최초로 쌓으려 했던 교만의 탑은 지금 흔적도 없어졌습니다.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역시 교만과 패륜과 부도덕과 불신 때문에 유황불에 녹아 없어졌습니다. 개인도, 도시도, 역사도, 왕조도 교만하면 안됩니다. 특히 신앙생활에서의 교만은 금물입니다. 바벧론 왕조의 느브갓네살 왕은 교만 때문에 쫓겨났고, 이스라엘의 사울 왕도 왕위에서 쫓겨갔고, 페르시아의 국무총리 하만도 교만 때문에 죽었습 니다. 영국의 신학자였던 테일러(Jeremy Taylor)는 "당신이 태어나기 전에 무엇 이었는가를 생각해보라. 그때 당신은 無였다. 그후 여러해 동안 당신은 무 엇이었는가를 생각해봐.그것은 연약함이었다. 그 다음 당신은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라 그것은 큰 죄인이다. 당신은 이웃 과 하나님 앞에서 누구인가. 그것은 하나님과 부모와 이웃에게 빚진 자이 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한다면 날마다 우리는 겸손해야 된다"라고 했습니 다. 주기철 목사님이 평양 산정현 교회의 청빙을 받게 되었습니다. 교회대표로 조만식장로님이 주기철 목사님을 찾아가 교회의 청빙결정을 전하고 모시기 로 했습니다. 주기촐 목사님을 찾아온 조만식 장로님은 젊은 주목사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 저희 교회에 부임하실 것을 허락해 주 십시오"라고 청원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주기철 목사님이 오산학교 를 다닐 때 조만식 장로님은 교장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일화도 있습니다. 어느 주일 낮 조만식 장로님이 바쁜 일로 예배에 늦었습니다. 황급히 들어서는 조만식 장로님을 본 주기철 목사님이 소리쳤 습니다. '조장로님 거기 서 계십시오. 장로님이 예배에 늦으면 어떻게 본이 되겠습니까?" 그날 조장로님은 문간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배 후 다시 는 예배에 늦지 않겠다고 사과를 했다는 것입니다. 초대 한국교회를 빛냈던 두 거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합니까?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다던 가버나움 도시는 흔적도 없어졌습니다. 이 이야기는 가버나움만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교만이라는 히브리어 단어 가운데 가온(gaon)이라는 말이 있스빈다. 그 뜻 은 "베풀다"라는 것입니다. 자기 실체나 가진 것은 손톱만한 것인데 그것을 부풀려서 마치 세상 것을 다 알고, 다 가졌고, 다 통달한 것처럼 자기도취 에 빠져 있는 것이 교만 즉 [가온]인 것입니다. 주드(zud)라는 단어도 있습 니다. 그 뜻은 우쭐대다. 거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만을 가장 적절하 게 묘사한 헬라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투포(tupho)라는 단어입니다. 그 뜻 은 "천천히 타 버리다","꺼져가다"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겸손한 사람 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일어섭니다. 그렇지만 교만한 사람은 천천히 마 치 촛불이 꺼져가는 것처럼 천천히 타버리고 맙니다. 그뿐입니까? 교만은 언젠가는 명성도,성공도, 소유도,인기도 꺼져 버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시편 119:21을 보면 '교만은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4:6을 보면 "주께서는 굡나한 자를 물리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교만을 경계해야 합니다. 교만을 멀리 해야 합니다. 3.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고라신,벱세다,가버나움,이 도시들이 왜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졌습니까? 20절을 보면 "책망을 받았고",21절을 보면 "화가 있을찐저"라고 저주를 받 았습니다. 그리고 23절을 보면 "음부에가지 낮아지리라"는 책망과 저주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땅도, 사람도 국가도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이 저주받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 니다. 아버지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벌거 벗은대로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 러나 셈과 야벱은 얼굴을 돌리고 뒷걸음질로 들어가 옷을 덮어 드렸습니다. 잠이 깬 뒤 노아가 이 사실을 알게 됐고 함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고. 바로 그 함의 자손들이 훗날 시돈, 그랄, 소돔,고모라에 흩어져 살았고 흑 인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저주의 반대는 축복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저주가 아닙니다. 우리 가 바라는 것은 축복입니다. 나와 내 가족과 내 친척과 내 이웃과, 내 친구 와 그리고 우리나라가 축복받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복도 여러가지입니다. 재물의 복, 건강의 복, 자녀의 복, 명예의 복, 부부 이 복 등 그 종류가 가지가지 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복음 다 받거나 소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가운데서 한 가지 복을 선택해야 된다면 여러분은 어떤 복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저는 예수 믿는 복을 선택했습니다. 믿음은 모든 복의 비결이기 때문입니 다. 저는 가난한 농군의 아들이었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은 제대로 먹고,입고, 쓰는 것이 한스러울 만큼 부러웠습니다. 제가 살던 동네에서 제가 제일 가 난했습니다. 그러나 제 어머님은 저에게 예수 믿는 것과 공부하는 것은 그 만두어선 안된다면 논을 팔고 밭을 팔아 공부를 시켜 주셨습니다. 만일 제가 예수를 믿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공부를 계속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무엇이 무엇이 되었을까 생각해 보면 눈앞이 아찔합니다. 박도둑놈 이 됐을까?깡패가 됐을가?아니면 벌써 죽었을까? 생각할 수록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 없는 몸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라는 찬송이 감격으로 다가섭니다. 여러분, 불신은 저주의 원인입니다. 교만은 저주와 패망의 원인이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교만을 버립시다. 믿음을 고백합시다. 그리고 저주받아 죽어가는 내 가족, 내 친척,내 이웃, 내 친구들을 건져냅 시다. 저들에게 내가 믿는 예수 내가 만난 예수 내가 사랑하는 예수 내가 받은 구원을 증거합시다. 저들을 저주의 무더기 속에 방치해 둘 수가 없습니다. 건져내야 합니다. 살려내야 합니다. 함께 축복받고 영생을 얻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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