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 창9:1-7, 고전10:23-33, 마9:9-13
1. 그리스도인은 참 자유인입니다.
바울은 ‘모든 것이 가하다(고전10:23)’는 말씀으로 그리스도인의 참 자유를 선포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자유인입니다(롬:8:1-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맙시다(갈5:1)’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원함을 받고 자유인이 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도 진정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총으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얻은(요1:12)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취득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먹고 마실수도 있고, 결혼할 수도 있고, 일을 해서 대가를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9:4-7).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모든 식물(食物)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선한 것이라고 믿고, 무슨 음식이든지 가리지 말고 감사함으로 먹으라 하였습니다(10:25-27). 태초에 하나님께서 모든 채소를 먹을거리로 주셨고, 노아 홍수 후에는 모든 산 동물까지 먹을거리로 허락하셨습니다(창9:1-3).
사도 베드로가 부정한 짐승을 먹지 못하겠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꾸짖으신 일이 있었습니다(행10:15). 주께서는 그리스도인에게 베풀어 주시는 무한한 자유를 언제나 감격해 하면서 살도록 허락하셨습니다.
2. 그리스도인의 자유에는 사랑에 의한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에는 원칙적으로 한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윤리에 있어서 가장 높은 가치는 스스로 자유를 제한하는데 있습니다.
‘모든 것이 가하다’는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무한함을 의미하고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한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고전10:23).
바울은 자신이 완전한 자유인이지만 스스로 자신의 자유를 제한하여 모든 사람의 종이 된 것은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증거했습니다(고전9:19).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우상에 바친 제물을 먹어도 좋으냐? 먹으면 죄를 범하느냐? 라는 문제로 논란이 있을 때, ‘음식’ 그 자체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전8:9)’고 하였고 또한 ‘만일 내가 고기를 먹는 것을 보고 실족하는 성도들이 있으면 나는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고전8:13). 바울은 약한 형제를 구원하고 신앙을 지켜주기 위해서 스스로 절제한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의 유익과 약한 성도들 신앙생활에 덕을 세우기 위해서 자신의 그 자유를 스스로 제한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많은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자신의 자유를 유보하고 절제하여 궁극적으로는 많은 사람을 구원하라는 것이었습니다(고전10:33).
자신의 행동이 비록 옳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남에 의해 판단 받는다면 이는 결국 상대방에게도 유익이 되지 않을뿐더러 자신에게도 덕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유인이 교회에 거치는 자가 되지 않도록 섬기는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3. 참 자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는 말씀은 기독교 윤리의 최고강령입니다. 이것이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는 사랑의 대원칙입니다. 참 자유인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이웃에 대한 유익과 교회에 대한 건덕을 먼저 생각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양심적인 삶을 강조하였습니다. 양심은 하나님께서 주신 고귀한 선물인 자유를 통제할 수 있는 행동의 최고 감독자입니다. 그러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신을 강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양심의 자유는 모든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이자 또 하나의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양심과 타인의 양심의 차별성과 공통점을 인정하면서도 최고의 가치기준을 ‘자신과 이웃과 교회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에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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