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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을 책망하시는 예수님 (눅13:10-21)

by 【고동엽】 2022. 10. 4.

외식을 책망하시는 예수님 (눅13:10-21)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구나 마
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이 십 팔 년 동안 사단에게
메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메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눅
13:15,16)


지난 주일에는 회개의 열매를 촉구하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님의 간청으로 이 한 해를 덤으로 살아가게 되는 성도님들이여 열매를 많이 맺어 주님
이 기뻐하시고 아끼시는 무화과 나무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회당 장의 외식을 책망하시며 꼬부라진 여인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
을 드리겠습니다.  이 시간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영접하여 자유를 얻는 시간이 되시기
를 기도합니다.


Ⅰ.여자여! 네 병에서 놓였다(10-13)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회당에 19년
동안이나 ① 귀신들려 ② 앓으며 ③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이 여자는 18년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려 앓고 있었습니다.  학자들은 등이 꼬부라져 조금
도 펴지 못하는 병은 "기형성 척추염"이라고 합니다.
여기 꼬부라졌다는 말은 "함께 혹은 같이"라는 말과 '굽은"이라는 헬라어의 합성어로 이중
으로 꼬부라진 것을 의미합니다.
이 여자는 이중으로 굽어 예수님의 얼굴도 바로 쳐다보지 못했을 것이고 18년이라는 긴
세월을 비참하게 살아왔습니다.  이 여자는 기형성 척추염으로 척추 뼈가 굳은 덩어리로 뭉
쳐지고 이중으로 꼬부라져 도저히 바로 설 수도 없고 곧 바로 펼 수 없었습니다.  척추에 관
한 병들은 대단히 고통스럽고 아픈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이 여자는 18년 동안 앓으며
하는 것으로  대단한 고통 속에서 살았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자세히 상고해 보면 이 여자는 귀신이 들리고, 병들어 앓으면서, 허리는 꼬
부라졌지만, 착하고 믿음이 깊은 여성 이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① 예수께서 친히 아브라함의 딸(16절)이라 하신 것이나
② 회당 예배에 꼬박꼬박 참여한 것이나
③ 18년 동안 앓으며 꾸준히 회당 출입을 한 것을 보면 믿음이 있었습니다.
④ 또, 5:23절처럼 죄가 많아서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한 말씀이 없는 것을 미루어 보아
착하고 믿음이 있는 여인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귀신이 들려 앓고 있었습니다.
모든 병이 귀신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니나 이 여인은 병을 주는 귀신에 잡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꼬부라져 앓고 있었습니다.  성경에도 귀 먹고 벙어리 된 귀신이 사람에게 들어가므
로 그 사람이 귀 먹고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이런 이 여자를 어떻게 도와
주셨습니까?

1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가르치시다가 귀신 들려 병을 앓으며 공생하는 여자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여자를 가까이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여인아 네 병이 물러갔다"(새번역) 하시며 예수님은
이 여인을 불러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자가 병마에 시달리며 고통을 당하는 것을
안타까이 여기시고 고쳐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이 여자가 18년 동안이나 고질병을 앓은 것
을 다 아시고 그 고통에서 풀어 주시고자 안수하셨습니다.
그러자 이 여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13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곧 허리를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 여자는 척추 병으로 인해 18년
동안이나 앓으며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또, 등이 꼬부라져서 똑바로 누워서 잘 수도, 쉴 수
도 없었습니다.  또, 등이 꼬부라졌으니 사람을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었습니다.  땅만 내려
다보며 살아야 했고, 희망 없이 살아야 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이런 병에 걸렸다면 시집
도 못 갔을 것입니다.  이래서 결국 이 여자는 등만 꼬부라진 것이 아니라 그 마음까지 꼬부
라지고 그 인생이 꼬부라지게 되었습니다.  열등 의식에 빠져 자신을 자학하며 살아야 했습
니다.
또, 회당에 출입을 하지만 회당장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이 여인이 나았을 때 기뻐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고, 어쩌면 귀찮은 존재였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이 관경을 예수께서 "보시고" 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보시고" 했습니다.  이 회당이 어느 회당인지 알 수 없으나 예수님께서
자주 드나시면서 이런 것을 보신 듯합니다.  그리고 그를 불렀습니다.  대개의 경우 병자가
예수님을 부르는 경우는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든지, "내 딸
을 고쳐 주소서" 라고 병자가 예수님을 찾고 예수님을 부르는데 여기서는 예수께서 친히 병
자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네가 네 병마에서 놓였다"하시고 안수하여 주셨습니다.  그랬을 때, 이 여자는 곧
허리를 펴고 일었을 뿐만 아니라 악귀는 어디론지 떠나갔고 병도 나아서 이 여자는 기뻐 하
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러 이 여자의 모든 일을 주목해 보시고, 그를 부르시고, 병이 나았다 하시
고 안수하시자 허리를 펴고 서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당하는 모든 형편을
다 보시고 우리를 긍휼이 여기사 그가 먼저 찾아오시고, 그가 먼저 우리를 부르셔서 낫게 하
시고, 우리의 허리를 펴게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어떤 실패나 어려움으로 허리를 펴지 못하던 우리를 주께서 찾아 오셔서 우리의 허리를
펴게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꼬부라진 인생을 펴 주시고 근본적으로 치료해
주시는 치료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가정이나, 개인적으로 꼬부라져 보기 흉하던 것을
예수님께서 찾아 오셔서 보시고 친히 손을 얻어 펴 주시는 은혜가 이 가운데 함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Ⅱ.아브라함의 딸을 메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14-17)


18년 동안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허리 한 번 펴지 못하던 여자가 예수님을 만나 사단
과 병에서 놓이고 허리를 펴게 되었다면 기뻐하고 기뻐해야 할 것인데 이 회당장의 반응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 것을 보고 분을 내었습니다.(14)
예수님께는 감히 화를 내지 못하고 무리에게 분을 내며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일할 날
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  이 사람은
18년 동안이나 꼬부라져 앓고 있던 여자가 병에서 놓임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도리는 것
을 보고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친다고 화를 냈습니다.  그는 회당장으로 그
사회의 종교 지도자로서 백성에 대한 사랑이 없었습니다.

이런 그를 보고 예수님은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
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18년 동안 사단에게 메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이 메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랍비들은 말을 하지 못하는 짐승들을 학대하는 것은 몹시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이
라고 해도 외양간에서 짐승을 풀어 물을 먹이는 일은 지극히 합법적인 일로 생각을 했습니
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가 안식일에도 외양간의 짐승을 풀어 물을 줄 수 있을진대 이 불
쌍한 여인을 병마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지극히 합당한 것이 아닌가 하
고 예수님은 회당장의 위선을 책망하셨습니다.  자기 짐승은 안식일에도 마구에서 풀어내어
물을 먹이면서 사단에게 메인 사람을 풀어 주는 것이 잘못되었느냐고 그들의 위선을 책망하
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믿는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단은 이 여
인의 행복을 빼앗아 가고, 18년 동안 앓게 만들고 꼬부라지게 하고, 허리를 못 펴게 만들었
지만 또, 회당장 같은 종교 지도자는 위선적으로 집에 먹이는 소나 나귀만큼도 여기지 않았
으나 예수님은 우리의 형편을 다 아시고, 내가 당하는 어려운 환경이나 처지, 역경을 보시고
찾아 오셔서 친히 불러 병에서 놓이게 하시고 친히 손을 얹어 아프던 것, 끙끙거리며 앓고
다니던 것을 깨끗이 낫게 하시고, 꼬부라진 것도 펴 주시고 자유와 해방을 주셨습니다.  사
단의 권세에서 놓이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안고 다니던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문제가 1년이
되었던, 5년이 되었던, 10년이 되었던, 18년이 되었던 것도 고쳐 주시는 주님이 나의 꼬부라
진 것에 손을 얹어 바르게, 곧게 펴 주시는 주님이신 것을 믿습니다.
Ⅲ.예수님의 비유(18-21)


예수님께서 꼬부라진 여인을 고쳐 주시자 바리새인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 하시
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인하여 기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이 낫고 모든 무리가 기
뻐하는 것을 보시고 이어 "하나님 나라의 비유" 2가지를 하셨습니다.
하나는 겨자씨 비유이고, 다른 하나는 누룩 비유였습니다.

18-2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꼬 내가 무엇으로 비유할꼬 마치 사람이
자기 채전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
들였느니라 또 가라사대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할꼬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
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사사건건 반대하고, 이 여인이 병 낫은 것도 못마땅하
게 생각을 하며 반대했으나 이 작은 보잘 것 없는 여인의 가슴에 심기어진 하나님의 나라는
마치 사람이 자기 채전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아 자라서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
이 깃들인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겨자 나무는 코스모스와 같은 일년생 풀입니다.  겨자씨는 아주 작아서 볼펜으로 점을 찍
어 놓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 겨자씨를 채소 밭에 뿌려 놓으면 엄청난 생명력이 있어
자라서 3~5m나 되는 나무가 됩니다.  가지가 단단해 지는 가을이 되면 온갖 새들이 날아듭
니다.  특히 이 작은 겨자씨를 새들이 좋아하여 이 나무에서 먹이를 얻고 쉼을 얻고, 폭풍우
가 몰아칠 때도 더 없는 안식처가 된다고 합니다.  이 여인의 심정에 심기어진 하나님의 나
라는 겨자씨처럼 강한 생명력이 있어 자랍니다.  이렇게 자라 온 백성이 이 하나님의 나라에
쉼을 얻게 되는 것을 비유하셨습니다.

또, 비유하시기를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
라" 하셨습니다.
누룩은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밀가루 반죽을 하룻밤 사이에 온 통 다 부
풀게 만듭니다.  이 누룩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내면적 변화를 의미합니다  사람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심기어지면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순간에 온통 변
화를 일으키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보십시오.  오늘 본문에 이 여인의 심령 속에 "하나님
의 나라" 복음이 들어감으로 사단이 물러가고, 병이 물러가고, 꼬부라졌던 것이 펴지고 온통
자유와 변화를 주었습니다.

영국은 원래 조상이 바이킹들입니다.  해적입니다.  이들이 지나가는 배들을 탈취하고, 여
인들을 데려다가 살았습니다.  특히 신앙의 자유를 찾아 헤매던 유대인 여인들을 잡아다가
아내를 삼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유태 여인의 심령 속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마치 누룩과
같아서 온통 가정을 변화시키고 영국을 변화시켜 복음의 나라, 신사의 나라로 변화시켰습니
다.  이 하나님의 나라, 이 복음이 가는 곳에는 참 자유와 쉼, 변화의 역사가 있으므로 채전
에 겨자씨를 심듯이, 떡 반죽 그릇에 누룩을 넣는 것과 같이 이 복음을 심을 수 있는 성도님
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허셀포드가 남긴 이야기 가운데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어떤 사공이 낡아빠진 나룻배로 학식 많은 교수 한 분을 태우고 강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 교수가 사공에게 물었습니다.  "천문학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습니까?" 하자 사공이 대답
하기를 "아니오 없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교수가 말하기를 "그러면 당신은 새의
4분의 1이 사라졌습니다." 하더랍니다.  그리고 다시 교수가 사공에게 묻기를 "당신은 식물학
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습니까?" 하자 사공이 대답하기를 "아니오, 없습니다" 하더랍니다.  
그러자 교수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당신은 생의 또 4분의 1이 사라졌습니다."하더랍니다.  바
로 그 때 나룻배가 암초에 부딪혀 침몰하고 있었습니다.  이젠 사공이 교수에게 "당신은 수
영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습니까?" 하고 외치자 교수가 대답하기를 "아니오"했습니다.  그러
자 사공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당신 생의 전부가 사라지겠군요"라고 말하더랍니다.

이 일화는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많이 가진 것 없고, 많이 아는 것이 없어도 예수님을 알면 생을 잃지 않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生命이 겨자씨 같이 자라 쉼을 주고, 온통 삶을 변화시켜 줍니다.  비록
꼬부라졌어도, 비록 앓고 있은 지 18년이 되었어도, 비록 남에게 멸시를 받아도 예수님을 만
나고 복음을 영접하면 참 변화로 자유와 쉼을 있습니다.  그분을 알고 있으면 영생을 얻습니
다.(요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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