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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도 기도하심 (누가복음 22:39~46)

by 【고동엽】 2022.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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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도 기도하심   (누가복음 22:39~46)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실 필요가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기도를 받으시는 분이고,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땅위에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본문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는 예수님 기도의 가장 모범됨을 보여주시고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신 사건입니다. 왜 예수님은 기도하지도 않아도 될 분인데 기도를 하시는가? 첫째로 육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에게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시는 일입니다. 이런 의미를 가지고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기도는 “습관을 쫓아 감람산에 가셨다”고 기록합니다. 습관화된 기도, 매일 하시는 기도라고 우리 앞에 가르쳐 줍니다. 왜 주님이 기도하시지 않아도 되시는데 그토록 습관적으로 기도를 하시는가? 그만큼 기도의 사역은 가치가 있고 성스럽고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큰 일을 앞두고 큰 기도를 하셨습니다. 제자들을 택하는 문제를 두고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 지시는 일을 앞두고 기도하셨습니다. 기도의 습관은 은사가 아닙니다. 습관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습관은 행동의 반복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습관은 강력한 의지를 길러줍니다. 습관이 되어 있으면, 내가 그 습관에 쫓아 그 일을 하는데 강력한 의지를 발휘합니다. 나쁜 습관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쁜 일인데도 왜 끌려가는가? 그것은 나쁜 습관 안에 강력한 의지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습관을 깨트리지 아니하면 나쁜 것을 고치지 못합니다. 나쁜 것은 습관부터 깨트려야 고쳐질 수 있는 것입니다.

행동이 반복될 때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레는 기록을 가진 전도자입니다. 이 사람은 88세까지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로 사역을 했습니다. 그가 전도집회에서 4,200번 설교를 했습니다. 그리고 말을 타고 40만km를 여행한 사람입니다. 그런가 하면 그는 200권의 책을 저술했습니다. 그는 50년 동안 전도자로 사역을 했습니다. 그는 초인적인 건강과 정열과 능력을 가지고 한때 영국을 변화시키고, 온 세계를 변화시키는 놀라운 전도자로 사역을 했습니다. 그 비결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는 매일 아침 5시에 기도를 했다.’ 그의 50년 동안의 습관화된 기도생활은 좋은 건강을 주었고 좋은 인격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좋은 습관은 좋은 인격을 만듭니다. 우리가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으면, 좋은 인격이 형성됩니다. 좋은 습관 중에 가장 귀중한 습관은 기도의 습관입니다. 예수님은 그 기도의 습관으로 우리 앞에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습관은 행동이 반복되어야 됩니다. 결심만 가지고는 습관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한두 번 해가지고 습관이 안 됩니다. 지속적으로 행동이 반복되고, 이 반복됨이 과정을 이루어야 습관이 형성됩니다.
여러분이 건강식품을 드실 때 인스탄트식으로 복용하지 마세요. ‘이것을 1개월만 먹으면 좋아진다 하더라, 3개월만 먹으면 된다더라.’ 그런 식으로 식품이나 약을 먹거나 운동도 그런 식으로 단시간에 어떤 효력을 기대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건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일입니다. 우리의 건강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닙니다. 어린 영아 때부터 점점 자라가면서 오늘의 우리의 건강이 형성되었습니다. 또 우리의 건강은 점점 쇠해가고 그렇게 되는 것이지, 이게 어떤 기간 중에 건강이 형성되고, 건강이 망가지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한때 기도한다 해서 기도가 습관이 되는 게 아닙니다. 기도의 습관은 우리에게 끊임없는 반복의 훈련, 생활화의 훈련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도의 사람 중에 유대왕 히스기야가 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의 총리 다니엘이 있습니다. 믿음의 여인 한나의 기도가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평소에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기도가 생활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에게 위기가 닥쳐오고 중대한 도전이 일어났습니다. 이들에게 목숨을 걸어야 하는 도전이 닥쳐왔을 때 그들은 큰 기도를 했습니다. 큰 기도는 기도의 습관이 이루어져 있는 사람이라야 가능한 줄 믿습니다. 갑자기 마음먹고 한 번 기도하자고 해서 큰 기도가 되는 게 아닙니다. 기도의 습관화, 이것을 주님으로부터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할 이유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해야 할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도는 시험이 들었을 때도 해야 됩니다. 고난이 왔을 때도 기도해야 됩니다.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기도해야 됩니다. 실패했을 때 기도해야 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보다 더 한걸음 앞서서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 시험이 오기 전에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에게 세 가지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 보라.’ 이것은 물질의 영역입니다. 여러분들도 겪듯이 물질로 인한 시험들이 우리에게 날마다 부딪쳐 오고 있습니다. 이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 보라’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시험하는 일이고, 명예를 시험하는 일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한 번 뛰어내려 봐라! 그 다음에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천하만국을 다 주리라’ 이것은 영적 시험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끊임없이 이 세 영역의 시험을 받고 삽니다. 물질의 도전이 있습니다. 정신적인 도전이 있습니다. 신앙의 도전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끊임없는 도전 앞에 우리가 이 시험을 감당하고, 이 시험을 피하고, 이 시험을 이길 수 있도록 주께서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기도할 이유가 분명합니다. ‘이제는 이래도 저래도 안 된다. 기도나 해보자!’ 그렇게 수단화된 기도가 아닙니다. 그런 기도는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먼저 일하면서 기도하고, 일하기 전에 기도하고, 우리가 기도의 우선권을 늘 살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우선권이 기도의 습관입니다. 기도하고 일하십시오. 기도하고 행동하십시오. 기도하고 시작하십시오. 기도의 습관입니다. 문제를 느끼거든 먼저 기도하십시오. 도전이 오거든, 사명감을 느끼거든, 이것은 내가 할 일이라고 책임감을 느끼거든 먼저 기도하십시오. 책임의식을 안 가지기 때문에 기도를 안 하는 것입니다. 사명감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기도를 안 하는 것입니다. 진정 내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라고 느낀다면 그 사명을 붙잡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사명의식과 책임감을 동반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세

그 다음에 주님의 기도하는 모습을 잘 관찰해 보면 41절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세를 전에 종종 해보았습니다. 예배당에 의자가 없을 때는 무릎 꿇고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마루바닥에서 새벽기도 할 때면, 의례히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일들을 많이 했습니다. 주님이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셨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붙잡고 그냥 무릎을 꿇은 자세가 아니라 주님이 무릎을 꿇으신 거기에 담긴 영적인 뜻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주님! 무릎을 꿇으신 의미가 무엇입니까? 왜? 무릎을 꿇으셨어요?’하고 예수님이 무릎을 꿇으신 모습을 영적으로 함께 탐닉을 해보니까 제게 세 가지 의미가 잡혔습니다.
첫째는 겸손함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 놓치는 실수가 뭐냐 하면, 기도하면서 우리가 교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꼭 이 기도를 해야 되나?’ ‘이 기도를 하면 응답이 있겠나?’ 그렇게 불신하고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입으로는 ‘믿습니다!’ 하면서 마음으로는 불신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하면서 의심하고 있고, 믿지 않고 있는 이것이 교만입니다. 이것을 깨트리는 그 기도가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었다는 이 상징적인 말의 뜻은 항복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겸손은 항복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항복한 사람은 겸손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 항복을 하면서 기도를 해야 됩니다. 기도는 하는데 영적으로는 항복을 안 하고 있습니다. 육이 살아 있습니다. 주의 뜻을 말하면서도 자기 욕심은 살아 있습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의심하면서, 방황하면서 자기 욕심은 살아 있습니다. 이것을 깨트리는 요소가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자 치우고 무릎을 꿇는다고 기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 항복이 일어나야 됩니다. 항복한 자로 기도해야 됩니다.
두 번째는 전적 의지함입니다. 무릎 꿇은 사람은 상대방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달려들려면 일어나야 됩니다. 무릎을 꿇고 상대방하고 싸우려면 안 됩니다. 무릎을 꿇었다는 말은 ‘나는 항복했고, 당신의 처분대로 기다립니다. 전적으로 당신을 의지합니다’라는 그 뜻입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에 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주를 전적 의지하지 못합니다. 부수적인 아홉 가지는 주님께 의지하면서 중요한 한 가지는 내가 잡고 있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고 일어설 때는 그 한 가지를 안 놓기 때문에 일어서서 예배당 나갈 때는 열 가지가 다 따라오는 것입니다. 아홉 개를 놓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항복을 해야 합니다. 전적 의지해야 됩니다. 전적으로 맡겨야 됩니다. 전적 순종을 각오하고 기도해야 됩니다.

집중력이 있는 기도

세 번째가 간절합니다. 44절에 “힘쓰고 더욱 애써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고 했습니다. 기도의 생명은 간절성입니다. 기도가 분량으로도 중요합니다. 한 시간 기도한다는 것, 혹은 밤을 새워 기도한다는 것, 혹은 금식을 하며 많은 시간을 들여서 하는 기도는 그대로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가치는 그 기도에 담긴 간절함입니다. 오늘 우리가 특별히 기도를 장시간 하는 그런 기도시간은 평소에 가질 수 없습니다. 그건 어쩌다가 한 번 특별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5분을 하든, 10분을 하든, 한 시간을 하든 기도의 생명은 간절성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기도하신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는 이 간절함을 담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를 5분도 못해서 흐트러져 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기도의 집중력이 없습니다.
여러분, 영화가 왜 재미있습니까? 그 영화를 집중을 하고 보기 때문입니다. 만약 영화 상영하는 시간에 한 번은 화장실 간다고 나오고, 한 번은 매점에 간다고 나오고, 두 번만 들락날락 하면 영화가 하나도 재미없습니다. 집중하니까 재미가 있습니다. TV 드라마에 왜 그렇게 심취합니까? 집중해서 보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는다고 하면서 미적미적하다가 1년동안 책 1권 제대로 못 읽어 내는데, 드라마를 볼 때는 만사를 다 잊어버립니다. 그렇게 보니까 재미있는 것입니다. 성경도 집중력을 가지고 읽어 보세요. 성경이 내게 하나님의 음성으로 다가오도록 내가 마음을 열고 마음을 쏟아서 집중해서 성경을 읽어 보기 바랍니다. 기도의 생명은 간절성입니다. 집중력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무릎을 꿇은 이 기도의 의미가 오늘 우리 모두의 기도에 살아 역사하는 은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기도에 겸손의 덕을 살립시다. 전적 의지하는 믿음을 살립시다. 간절함을 살립시다. 괴롭고 힘들 때, 길이 막힐 때, 앞이 캄캄할 때, 그것 때문에 산만하지 말고 우리 주 앞에 집중력 있는 기도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기를 축원합니다.
닭이 병아리를 부화하는 것을 잘 보면 암탉이 종란을 품고 21일 만에 병아리를 부화시킵니다. 정확하게 21만에 병아리가 다 부화합니다. 그런데 훌륭한 암탉은 그 달걀을 품고, 거의 1주간 동안 밖을 안 나옵니다. 21일 동안에 두 세 번 밖에 안 나옵니다. 그래서 이 달걀을 품고 있는 암탉은 살이 쭉 빠져버립니다. 그만큼 집중을 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암탉이 집중력을 가지고 달걀을 품기 때문에 정상적인 병아리가 부화되는 것입니다.

기도의 항로

오늘 우리 신앙생활에 기도를 살려야 됩니다. 기도를 습관화하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이 무릎 꿇은 의미를 오늘 이 기도에 살려내야 됩니다. 이 요소가 결여되었다면, 오늘 우리 기도가 헛바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기도내용을 보면, “아버지여!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기도의 불변한 법칙은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고, 그 뜻을 이루어 드리는 일입니다. 대기권에는 헤아릴 수 없는 인공위성이 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위성들이 제 맘대로 도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본부의 지시를 따라 돕니다. 지구촌에는 비행기가 하루에 수백만 대가 뜨고 앉는다고 합니다. 비공식적으로 어떤 이가 말하기를 약 3백만 회선의 비행기가 뜨고 앉는다고 합니다. 그 큰 비행기가 뜨고 앉는 횟수가 3백만 회라면,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비행기가 제 맘대로 뜨고 항해하는 비행기가 한대도 없습니다. 항로를 따라 하는 것입니다. 관제탑에서 뜨라고 할 때 뜨는 것입니다. 앉으라고 할 때 앉는 것입니다. 항로를 따라 운행하는 것입니다. KAL기가 소련 미사일에 의해 격추당한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앵커리지에서 서울로 오는 비행기가 항로를 이탈하여 소련 영공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걸 유도를 해주고,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는 방향으로 안 해주고, 그만 미사일을 쏘아서 격추를 해버리기 때문에 우리가 큰 사고를 당했습니다. 항로를 이탈할 때 그렇게 위험합니다. 열차가 3백km를 달려도 선로를 달리면 안전합니다. 그러나 서행을 해도 선로를 이탈하면 사고가 납니다.
기도에도 불변하는 하나님의 법칙이 있습니다. 기도는 내 욕심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내 소원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최종목표입니다. 내 소원을 이루는 이 축복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이루는 것이 기도의 목적입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주님의 이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기도의 하이라이트는 기도의 결과입니다. 43절에 보면 “사자가 하늘로부터 나타나 예수께 힘을 돕더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고, 기도하는 사람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기도를 내게 어떻게 응답하시는가가 아주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기도의 응답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힘을 돕더라.”고 했습니다. 사자는 천사들입니다. 이 천사들은 하늘로부터 왔습니다. 땅의 군대가 아닙니다. 땅의 능력이 아닙니다.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하늘나라의 능력이 땅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에게 나타나서 돕더라고 하신 것입니다. 기도는 사람이 합니다. 기도는 땅에서 합니다. 그러나 기도의 응답은 하늘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응답은 주의 사자를 통하여, 천사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도와주는 역사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기도는 이렇게 사람이 하고 땅에서 하지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하늘의 능력을 부어주셔서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축복이 우리의 기도 생활에 있기를 바랍니다.
자동차는 주유소가 없다면 전부 올 스톱해야 합니다. 기름 떨어진 차, 주유소가 없다면 다 고철이 되어야 됩니다. 주유소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자동차는 기름이 떨어졌을 때는 아무리 바빠도 기름부터 넣고 일을 보아야 됩니다. 이 자동차가 주유소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교회는 영적으로 주유소입니다. 교회는 주차장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여기 오셔서 밤낮으로 예배만 드리고 예배당 안에만 머무는 게 아닙니다. 주유소는 기름 넣고 출발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예배를 통하여 하늘나라의 신령한 기름으로 주유를 받기 바랍니다. 위로부터 내리는 은혜를 입기 바랍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입기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하여 떠나가십시오. 은혜 받고 머물지 마세요. 은혜 받고 손을 모으고 살지 마세요. 은혜를 받고 나만 좋다고 감상하고 살지 마세요. 은혜 받았으면 은혜 받은 대로 살아야 됩니다. 은혜를 베풀고 실행해야 됩니다. 은혜의 역사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맺는 말

오늘 신앙생활을 주차장에 세워둔 차처럼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도무지 움직이지를 않습니다. 여러분의 주유소의 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름 받고, 당장 떠나세요. 기름 넣은 차는 출발할 때 보면 힘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런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기도는 하늘나라의 능력을 주유 받는 신령한 사역입니다. 이 축복이 습관화되기를 축원합니다.

출처/이용호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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