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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한 자의 복 (본문 마5:1-12)

by 【고동엽】 2022.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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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한 자의 복   (본문 마5:1-12)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허락한 몇가지 복을 주님이 가르쳐주셨습니다. 첫번째 복은 부요하신,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도록 하는 마음, 심령가난이 첫번째 복이고, 그런 사람에게 천국을 준다고 약속했으며, 두번째는 지난 날 하나님 뜻대로 말씀대로 살지 못한 죄 때문에 애통하는 사람 복이 있나니 위로를 받는다 하였으며, 세번째는 온유한 사람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얻는다 하였습니다. 오늘은 땅을 기업으로 받는 온유한 사람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온유라고 하는 일반적 개념은 마음 착한 사람, 마음가짐이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온유한 사람은 남을 편안하게 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관용이 있어 남을 용서하고 허물이 있어도 감싸줍니다. 우리 주위에는 이런 온유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밝아질 수 있고 소망을 갖게 됩니다. 온유는 온순, 유순, 얌전함, 친절로도 이해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래서 온유는 대인관계에 있어서 기본이 되는 것이고 사랑실천의 기초가 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한 온유, 하나님 앞에서의 온유는 하나님 말씀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 실천하는 삶의 기본자세가 온유인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온유의 성품을 갖고 계십니다. 우선 성부 하나님이 온유하신 분이십니다. 다윗은 삼하 22:36 말씀에서 주의 온유하심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주는 곧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를 대하실 때 온유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온유하심 때문에 자기가 큰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시골 작은 마을 베들레헴이라고 하는 시골 촌에 목동의 아들출신입니다. 그의 부친 이새가 자기를 믿고 양을 맡겼을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작은 양 새끼 한 마리라도 물고 가면 좇아가 그것과 싸워 이기고 양을 끝까지 지켰던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다윗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은 온유하심으로 다가오셨습니다. 그에게 따뜻하게 부드럽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런 다윗, 그를 통해서 하나님은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물리치는 큰 공적을 세우게 했는데 그 일로 인하여 다윗의 인기는 하늘로 치솟았고, 사울의 인기는 땅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당시 왕이었던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미워하고 죽이려고 합니다. 그 때 다윗은 악을 악으로 대항하지 않고 도망다니면서 끝까지 악한 자를 선대했습니다. 그런 다윗을 하나님이 크게 세워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왕이 된 이후에 계속해서 하나님을 바르게 잘 믿었던 것은 아닙니다.
어느 한 때는 순간적 음욕을 절제하지 못하고 나쁜 죄를 범한 때도 있었습니다. 왕되기 전에는 항상 깨어서 기도했고, 정신을 차리고 신앙생활 잘했는데 왕이 된 이후 어느 날 낮잠을 실컷 자고 늦게 일어나서 보니 그때는 아침이 아니고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왕궁뜰을 거닐다가 담너머로 바라보니 어떤 여인이 벌거벗고 목욕을 하고 있는데 음욕이 불같이 일어나매 그를 끌어다가 간통합니다. 그 여인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였습니다. 그 우리아는 다윗 임금의 신복, 군대의 장군입니다. 자기 죄를 은폐하기 위해서 우리야 장군을 저 전선에 내보내어 적과 싸우다가 죽게 합니다. 얼머나 야비합니까?
바로 그 때에 선지자 나단이 다윗을 찾아와 이렇게 말합니다. 임금님, 어떤 마을에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부자는 양이 수천마리나 됐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이웃집에 암양 새끼 한마리만 키우는 가난한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부잣집에 손님이 왔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는 손님 대접할 때 자기집 양을 잡지 않고 글쎄 이웃집의 한 마리밖에 없는 양을 끌어다가 잡아서 대접을 했답니다. 그 말을 들은 임금님이 화가 났습니다. 그 고약한 놈, 그런 놈은 죽여 마땅한 사람이다 라고 말하자, 나단 선지자가 눈을 부릅뜨면서 바로 당신이 그 사람이요 라고 말함으로써 다윗이 은밀한 중에 지었던 죄를 지적합니다. 만일 이런 죄를 헤롯왕에게 지적했다면 그때 어떤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동생의 아내를 취하는 자가 사람이냐고 죄를 지적했던 세례요한을 헤롯은 목을 잘라 죽여버렸습니다. 마음이 강팍한 사람은 자기의 죄를 지적받았을 때, 상대방을 해칩니다. 그러나 마음이 온유했던 다윗은 자기의 은밀한 죄를 지적한 나단 선지자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그의 눈에서 흘렀던 회개의 눈물은 하루 이틀로 끝나지 않습니다. 여러 날 울었습니다. 그 침상 요를 적시는 그의 눈물은 얼마나 많았든지 요를 썩게 하기까지 했습니다. 자기의 죄를 지적했을 때, 온유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회개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버리지 않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 다윗을 하나님은 헤브롯에서 7년,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33년, 40년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는 임금이 되게 했으니, 하나님 앞에서 온유한 사람은 땅에서도 하나님이 복을 받게 하는 줄로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늘 마음에 모시고 사는 성령님은 아홉명의 아들을 거느리셨는데, 첫번째 아들의 이름은 사랑이고, 둘째 아들의 이름은 희락이고, 셋째 아들의 이름은 화평이고, 넷째 아들의 이름은 오래참음이며, 다섯번째 아들의 이름은 자비요, 여섯번째 아들은 양선이고, 일곱번째 아들 이름은 충성이고, 여덟번째 아들 이름은 온유이고, 아홉번째 아들 이름은 절제입니다. 이 말은 갈 5:22-23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성령의 열매, 그 가운데 여덟번째 열매인 온유가 빠지고는 앞에 나타나는 일곱형들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온유없는 사랑실천이 불가능합니다. 온유없는 화평은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온유없이 어찌 오래참을 수가 있겠습니까? 온유함이 없이 어찌 자비를 베풀 수있겠으며, 온유함이 없는 사람이 어찌 양처럼 순할 수 있겠으며, 온유없는 그런 충성이 어디 있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온유라고 하는 형이 절제라고 하는 동생을 돌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 교회의 화평을 구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강퍅한 사람은 다툼을 일으키고 마음이 온유한 사람은 화평을 이루어 갑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그 마음씨가 부드럽고 음성이 부드럽고 얼굴 표정이 밝기 때문에 언제나 어두움을 밝히는 빛으로 드러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부 하나님도 온유하시고 성령의 열매가 온유라면 예수님 성품도 온유이십니다.
그래서 마 11:29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예수님은 당신을 소개할 때 나는 온유라고 소개합니다. 누구든지 내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어야 되고 온유하신 예수님을 닮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위선된 사람들에게는 혹독하게 그들을 정죄하고 화가 임할 것이라고 경계하셨습니다. 마 23장에서 양의 옷을 입고 나타난 이리, 즉 위선된 종교인들을 향해서 주님은 이렇게 외칩니다. 외식한 자들이여, 회 칠한 무덤같으니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속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면하겠느냐? 말씀하시고 위선된 가면을 쓰고 나타난 위선된 사람들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나 가난하고 병들고 환경에 찌들린 사람들에 대해서는 주님이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요 5장에 보면, 어느 날 예수님는 베데스다 연못에 가셨습니다. 거기에는 38년동안 중풍병으로 고생하는 한 사람이 누워있었습니다. 주님이 다가가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었을 때, 주님, 이 베데스다 연못의 물이 천사들이 내려와 움직일 때 누구든지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에 걸렸든지 다 낫게 되어있지만 물이 동할 때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가버리고 나같은 사람을 집어 넣어줄 사람이 없나이다 하고 자기도 믿을 수 없고 어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절망상태에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주 앞에 보일 때 주님은 그에게 자비를 베푸십니다. 네 상을 들고 일어나라. 걸어가라 하시니 병이 떠나가고 건강이 회복되어 하나님의 은총을 입게 됩니다. 얼마후에 그를 성전에서 만났습니다. 그때에 주님은 온유한 심령으로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병이 생기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그랬습니다. 죄로부터 오는 병, 은혜로 고침받은 은혜받은 성도, 다시는 그 죄를 범치 말라고 주님이 당부했습니다.

예수님 당시 여리고성에 삭게오라는 세무서장이 살고 있는데 그는 부정축재로 부자가 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동네 사람들로부터 죄인으로 따돌림을 받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그 동네에 온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의 친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삭게오는 마음에 생각하기를 온 세상 사람들 다 나를 미워하고 나를 따돌려도 예수님만큼은 나를 버리지 않겠지 그런 믿음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여리고성에 온다는 말을 듣고 뛰어나갑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예수님을 볼 수 없습니다. 키가 작았던 삭게오는 길가 뽕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세무서장 체면도 있고 위신도 있지만, 은혜받는데 무슨 위신 체면 따지겠느냐 하고 뽕나무 위로 올라가서 예수님을 바라보는데 예수님의 시선이 뽕나무위에 올라앉은 삭게오에게로 향합니다. 그리고 삭게오야, 내려와라! 오늘 내가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니 삭게오는 너무 기뻐서 뛰어내려와 정성을 다해 영접하고 식사를 대접합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하는 말이 주님, 내 재산 다 팔겠습니다. 그래서 절반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남의 물건 토색한 것에 대해서는 내가 4배나 갚겠습니다 하고 자기의 지난 날 과거를 완전히 청산하고 회개합니다. 그때에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따돌려 놓은 죄인, 주님은 온유한 심령으로 받아들이고 회개한 그에게 구원을 선포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성품, 온유의 성품을 닮아야 합니다. 나를 배우라. 나는 온유한 자니 너희도 온유한 자가 되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장 5절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님의 마음은 곧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렘 29:11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선한 의지는 한 사람도 죄악으로 멸망받는 것을 원치 아니하고 다 죄에서 떠나 재앙을 면하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평안을 맛보고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 온유한 마음으로 모든 인류가 다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와서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며 평안을 누리고 사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온유한 자들의 중보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지 아니하고 구원을 주시는 그런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그 중에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생활하고 있을 때, 물이 없을 때, 고기 먹고 싶을 때, 뭐 사사건건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때에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합니다. 모세에게 무슨 죄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명령 따라서 애굽에 내려갔고, 계시의 말씀을 주면 그대로 전달하는 것밖에 없는데 자꾸 모세를 원망하니까 그 악한 사람들을 악하게 대항하고 싶지 않아 하나님 앞에 무릎꿇어 기도를 했습니다.
한번은 민수기 12장에 보면,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취하였는데 모세의 누나였던 미리암과 형이었던 아론이 모세를 비방합니다. 어찌 하나님이 모세에게만 말씀하셨느냐? 우리들에게도 말씀을 주지 아니하셨느냐 하며 모세의 이스라엘 지도자됨에 대하여 그 권위에 대하여 도전을 합니다. 아론과 미리암은 모세가 이방여인과 결혼했다는 것을 책잡아 모세의 지도권에 대하여 그의 권위에 대하여 시비를 걸어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모세에 대한 도전행위를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와 질서를 망각한 처사, 불법인 죄로 간주하시고 정죄하십니다. 그래서 징벌을 주셨는데 미리암에게 하나님이 문둥병을 허락합니다. 그렇게 되자 아론은 두려워 떨면서 모세를 붙들고 기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모세는 자신을 비난하다가 문둥병에 걸려있는 미리암을 향하여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며 간구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미리암의 문둥병을 고쳐준 일이 있습니다. 모세는 자기 비방하는 사람을 위하여 복을 비는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민수기 12장 3절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하였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않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습니다.
잠 16:32절에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 하였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외유내강, 속에는 강철같은 의지가 있고 바깥으로는 부드러운 사람, 이런 사람이 온유한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는 온유하신 그리스도를 닮아야 하나님께서 땅을 기업으로 준다는 약속을 우리가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잡으신 만왕의 왕이심에도 불구하고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는 양처럼 순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야 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엄격하나 남을 대할 때는 관용의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9:27절에서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내 자신이 버림이 될까 두렵다 하였습니다.
우리가 천국으로 가는데 있어서 걸림돌, 우리가 축복을 받는데 있어서의 걸림돌은 환경이나 사람이 아니고 깨어지지 못한 자아입니다.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평생에 걸쳐 이루어야 할 두 가지 과제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전도하여 그들의 영혼을 돌보는 일,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해야할 일입니다.
또 하나는 그리스도 예수의 형상을 닮아 날이 갈수록 그리스도에게로 가까이 가는 성화, 이것은 우리가 평생 이루어야 할 과제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 안에 이루어질 때까지 우리가 힘써야 할 일이 있습니다. 벧후 1:5절 이하에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이란 공동유익을 끼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오셔가지고 교회유익을 위하는 데에 힘을 쓰시길 바랍니다. 그 다음에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는 일을 힘쓰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사랑하는 일에 힘쓰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사랑의 대상이 천하만민, 인류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미워해야 할 대상은 딱 하나 있습니다. 마귀입니다. 죄악을 미워해야 합니다. 사람을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내 몸처럼 사랑할 때 우리에게는 온유와 겸손이 밑바닥에 깔여 있어야 됩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13:4절에서 사랑을 정의할 때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결코 앙갚음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나 원수까지라도 복수하겠다는 마음을 갖지 않습니다. 롬 12:19절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느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였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떠들지 않습니다. 잠잠합니다. 빈 수레는 요란합니다. 짐을 잔뜩 실은 수레는 조용합니다. 물표면에는 산더미같은 파도가 일어나도 100M, 200M 깊은 수심에 들어가면 그 곳엔 파도가 없습니다. 진정 무거운 십자가 등에 지고 사명감당하는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 충성하지 않는 사람이 말이 많고, 신앙이 옅은 사람들이 그냥 마음에 근심걱정, 불안, 두려움의 파도가 일어나고, 분노의 파도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깊은 신앙의 사람들은 무슨 일을 만나도 요동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이 무능하고 무지하고 어리석고 죄가 많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바로 아는 사람이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시편 4:4절에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그랬습니다.

이렇게 온유한 사람이 되어지면 하나님이 약속한 축복이 있으니 그것은 땅을 기업으로 얻게 한다 그랬습니다. 땅을 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땅은 두 가지 의미가 있으니 하나는 새 땅입니다. 이 새 땅은 천국을 의미합니다. 요한계시록 21:1절에 또 내가 보니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아니하더라 그랬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 나오는 이 새 땅은 천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땅을 기업으로 얻겠네. 어떤 자가? 온유한 자, 예수님의 성품 가진 자가 천국에 들어갈 줄로 믿습니다. 또한 이 땅은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이 세상에서 누리는 영화를 의미합니다. 시편 37:11절에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온유는 천국백성이 갖춰야 할 성품인데 온유한 사람은 이 땅에서 풍부를 누린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온유한 자가 되기 위해서 십자가의 도를 온유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약 1:20절 이하에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마음에 심긴 도는 십자가의 도, 하나님 말씀이니 하나님 말씀으로 온유한 마음으로 받아라. 하나님의 사명의 십자가는 온유함으로 감당하라. 온유한 사람의 특징, 하나님 말씀 앞에 예만 하고, 아니오가 없다는 것입니다. 온유한 성품을 가졌던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 말씀앞에 언제나 예만 하셨다는 말씀이 고후 1:19-20절에 나옵니다.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다는 말씀, 히 5:8절에 나옵니다. 온유하신 예수님은 힘들고 어려워도 말씀을 지켜살아 온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도여, 온유을 이루기 원하거든 하나님 말씀앞에 순종하되 온유한 심령으로 받아 지키시길 바랍니다.
빌 2:6절 이하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남아있는 고집과 교만과 완악한 것과 강팍한 마음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린다면 온유하신 그리스도의 성품이 우리를 지배하게 될것이고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이 동행해 주실줄로 믿습니다.

온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는 자,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바라보면 연민의 정을 느낍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마 9:36절에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이 세상에는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인생이 어디에서 왔고 왜 살아야 하는 것이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른채 살아갑니다. 병들고 망하고 가난하고 지옥가는 일들이 죄때문에 생겨난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불행은 부모때문이라고, 자식 때문이라고, 방종때문이라고, 거기에서 원인을 찾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떠난 죄가 인간 불행의 근본원인이었습니다.
온갖 저주가 죄 때문인데 그것을 모릅니다. 어떤 죄인, 괴수라도 십자가에 못박혀 흘린 주님의 피가 우리 죄를 사한다 그것을 믿기만 하면 죄와 사망에서 해방된다는 희생의 비밀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고 방황하는 사람들을 바라볼때 여러분, 민망한 마음 없습니까? 민망하다는 것은 마음이 안타깝고 답답하다는 뜻인데, 은혜받지 못한 사람, 구원받지 못한 불신자를 바라보면 불쌍한 마음이 없느냐 그 말입니다. 만일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을 바라보고, 은혜받지 못한 사람을 바라보는데도 마음에 슬픈 감정이 없다면 어찌 주님의 마음을 가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예수님을 예루살렘 거민들이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를 돌로 쳐서 죽이고 예수님까지도 거부할 때 회개하라고 외쳐도 회개하지 않을때 너무 안타까와서 눅 19:41절 말씀을 보면, 성을 바라보시며 눈물을 흘리시더라. 우셨습니다. 여러분은 회개할 사람이 회개하지 않을때 그 몸을 끌어안고 울어 보셨습니까? 온유하신 예수님은 죄인이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을 바라보고 남자가 울었다는 말입니다. 온유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랑의 감정입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온유한 마음을 가진 사도 바울은 행 20:31절 이하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였다는 것입니다. 에베소교회 성도들 가운데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하거나 거듭나지 못하거나 마음이 강팍하고 완악하거나 곁길로 가는 사람을 하나하나 붙들고 삼년동안 울었다는 것입니다. 영혼을 끌어안고 울었을 때, 그들이 거듭났고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의 마음에는 눈물이 있습니다. 우리는 진리에 거역한 자를 바라볼 때 주님의 심정으로 민망히 여길 뿐아니라 불쌍히 여기고 그들의 영혼을 끌어안고 기도하고 권면하고 바른 길로 인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선으로 악을 이긴 사람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앙갚음을 하지 않습니다. 원수 갚지 않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 말씀앞에 예하고 순종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 종이 됩니다. 온유한 사람은 순진한 양처럼 그리고 속죄하는 어린 양 예수님처럼 말씀앞에 복종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실 줄 믿습니다. 땅을 기업으로 얻는 축복이 성도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최낙중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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