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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사랑의 '가치! 본질! 영원성! (고전13:1-13)

by 【고동엽】 2022.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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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가치! 본질! 영원성!  (고전13:1-13)

  갓 시집을 온 새색시가 처음으로 밥을 지었는데 그만 삼층밥을 짓고 말았습니다. 1층은 타고, 2층은 되고, 3층은 섧었습니다. 안방에서는 가족들이 며느리가 처음으로 지은 밥상을 받기 위해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밥상이 들어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웬일인지 들어오지를 않자, 시어머니가 걱정이 되어 부엌으로 가보았더니 부엌에서는 며느리가 밥상을 다 차려놓고서 두 손을 예쁘게 모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오늘은 제가 시집와서 처음으로 밥을 지었습니다. 잘 지으려고 정성을 다했는데 그만 3층 밥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 비록 3층 밥이지만 이 식탁에 복을 주셔서 우리 시부모님이 3층 밥일지라도 맛있게 드시고 건강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앞으로는 더 잘 지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시어머니는 못들은 척 하고서 안방으로 돌아왔고, 조금 후에 며느리가 밥상을 들고 왔습니다. 시어머니는 밥상을 받고 식사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오늘 우리 며느리가 시집을 와서 처음으로 지은 밥상을 받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비록 3층 밥을 지었다할지라도 온 가족이 맛있게 먹게 해 주시옵소서. 제가 시집와서 처음 밥을 지었을 때는 다 타버린 불탄 밥을 지었었는데 우리 며느리는 그것보다 나은 3층집을 지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가요?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복 주셔서 이곳에 3층집을 짓고 우리 모두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살 수 있게 해 주세요!"
  며느리는 잔뜩 긴장해 있다가 시어머니의 사랑 어린 기도소리를 듣고서 마음이 완전히 풀어졌고, 아들은 "야! 역시 우리 어머니가 제일이야. 어머니의 소원대로 제가 열심히 노력해서 반드시 3층집을 지어 부모님께 효도하겠습니다."
  행복한 가정입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이런 사랑이 있는 가정입니다. ◀제목소개!▶

  베드로는 소망의 사도, 요한은 사랑의 사도, 바울을 믿음의 사도라고 말을 하지만 바울만큼 사랑을 강조한 사도도 없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아볼로파, 게바파, 바울파, 그리스도파'등 파벌 싸움을 우려하여 본 장에서 사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기적도 필요하고 방언 등 은사도 필요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기적도 필요하나 이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성 프렌시스는 사랑으로 공중에 나는 새들을 부르기도 하고, 사랑으로 이리떼를 굴복 시켰다고 합니다.
  돈으로 할 수 없는 일도 많고 권력으로 할 수 없는 일도 많습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할 수 없는 일은 없습니다. 칼로 원수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으나 사랑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사랑은 만능입니다.
  ▶'산 순교자'라고 부르는 루마니아의 '리차드 범브란드' 목사님이 감옥에 갇혀 있는데 하루는 바로 자기를 잡아넣고 고문하던 비밀경찰 대위가 잡혀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어떻게 여기를 들어오게 되었소?" 물었더니 "나도 기독교인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다시 "어떻게 당신 같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소?" 물었더니 그가 이야기를 합니다.
  며칠 전에 열두 살 난 어린이가 꽃다발을 들고 자기를 찾아와서는 자기 아내에게 갖다 주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웬 것이냐?"고 물어보았더니 그 어린이가 "저는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다 감옥에 갇히셨습니다. 어머니의 생일에는 꽃다발을 꼭 드려 왔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다 붙잡아갔기 때문에 오늘은 드릴 수가 없어서 당신께 가져왔어요. 이것을 당신 부인께 갖다 주세요"하더라는 것입니다. "그건 왜?" "어머니께서 항상 가르쳐주셨어요. 원수를 사랑하라고요. 그래서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붙잡아간 원수인 당신을 내가 사랑해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 후 이 경찰은 어린이가 안겨준 사랑의 꽃다발을 붙들고 이 아이와 함께 울면서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마침내 체포되어 감옥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어린아이의 성숙한 사랑이 마침내 원수도 정복하고 말았습니다.

  ▶장로님 한 분이 한때 사업에 실패하여 많은 빚을 안고 하루아침에 딱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온 가족에게 면목이 없고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어서 밖에 나가 밤늦게까지 배회를 하다가 '이대로 그만 죽어버릴까?' 하다가 밤늦게 힘없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 보니 몸가짐을 단정히 한 아내가 다소곳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들어서자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하고 미소를 짓고 난 뒤 조용히 기도를 한 다음에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당신을 손가락질해도 나는 당신의 진실을 믿습니다. 비록 부도가 나서 많은 빚을 졌지마는 당신의 진실은 부도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그 옛날 욥이 다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일어난 것처럼 당신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언젠가는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변함 없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장로님은 부인의 말을 듣고 다시 하나님께 메달이며 기도하다가 용기를 얻고 마침내 사업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사랑의 말 한마디가 이런 위대한 힘을 나타냅니다.

  ▶한 기자가 '테레사 수녀님,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묻자 '사랑이란 캘커타의 한 소년이 사랑의 집에 들고 오는 사흘 분의 설탕입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어느 날 테레사 수녀가 운영하는 '사랑의 집'에 설탕이 떨어졌다는 소문이 캘커타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 날 저녁 그 지방에 사는 한 소년이 그의 어머니에게 "어머니, 오늘부터 사흘동안 전 설탕을 먹지 않겠습니다. 그 대신 제가 먹지 않은 그 사흘 분의 설탕을 제게 주십시오." 사흘 후 이 소년은 자신이 아낀 사흘 분의 설탕을 들고 테레사 수녀의 사랑의 집에 찾아온 것입니다.
  사실은 켈커타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사랑의 집에 설탕이 떨어졌다는 소문을 다 들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집을 돕기 위해 결단하고 그 날 저녁부터 자기 몫의 설탕을 먹지 않고 그것을 가지고 간 사람은 오직 어린 소년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사랑은 보고, 느끼고, 그리고 책임지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이름도 알 수 없는 그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꼭 그렇게 해야 할 무슨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를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을 마치 자기가 그렇게 한 것처럼 끝까지 책임을 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에는 5단계가 있습니다.
  ①받는 단계: 무조건 받기만 하는 유치한 단계입니다.
  ②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단계: 주고받는 관계입니다.
  ③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사랑하는 단계: 성숙한 사랑입니다.
  ④자기에게 해롭게 하는 사람까지 사랑하는 단계: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⑤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내 생명을 내 놓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아가페 사랑입니다.

  ▶고전13장은 그 유명한 사랑 장입니다. 12-13-14장은 은사 장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신비적인 것만 추구하여 예언이나 방언이 최고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방언을 하는 사람들은 우쭐하고, 못하는 사람들을 보고 무시하고 교만을 떨었습니다. 그 모습을 누가 보았는가? 사도 바울이 보았습니다. 그런 부도덕한 성도들을 향하여 12장 마지막 절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권고하면서 본 장에서 사랑의 가치와 본질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르낙'은 "바울이 기록한 것 중 가장 위대하고 가장 강하고 가장 깊은 것이라"고 했고, '크레이크'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한 바울의 기록 중의 최고봉" 이라고 극찬했으며, '모리스'는 "기독교 교훈의 진수"라고 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성경에는 위대한 봉우리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시편 23편, 사53, 61장, 산상보훈(마5-7) 자유의 대 헌장이라는 갈4장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중 가장 높고 아름다운 봉우리는 고전13장이라고 극찬했습니다.

  ▶본문은 크게 세 단락으로 분류해 봅니다. 1-3: 사랑의 가치. 4-7: 사랑의 본질(요소). 8-13: 사랑의 영원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사랑을 네 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⑴창37:4절 이하에서 야곱이 요셉을 지극히 사랑하는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을 '스톨케'로 표현했고, ⑵삼하3:4절 이하에서 암놈이 다말을 사랑하는. 그러니까 남녀간의 이성적인 사랑을 '에로스'로 표현했고. ⑶삼상20:17절 이하에서 사울왕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친구로 사랑했는데, 자기 생명처럼 사랑했습니다.
  친구의 우정적인 사랑을 '휠리아'로 표현했으며, ⑷하나님의 사랑은 인류를 죄에서 사망에서 건져내기 위하여 자기 몸을 십자가에 던진 희생의 사람을 '아가페' 사랑으로 표현했습니다.

1. 사랑의 가치(1-3)

  ①1절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여러분! 하늘의 방언, 천사의 말을 한번 생각해 보셨습니까? 얼마나 그 말이 아름답고 감미로우면 하늘의 방언, 천사의 말이라고 했겠습니까? 사람이 외국어만 잘해도 부러운데 아주 신비스러운 하늘의 말을 하고 천사의 말을 할 줄 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신비롭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그런 신비스러운 말을 할 줄 안다고 해도 그 속에 사랑이 없으면 그 소리는 한낱 울리는 꽹과리 소리에 불과합니다.
  꽹과리가 무엇입니까? 농악대 가장 앞에서 울리는 악기가 꽹과리입니다. 이것은 구리로 만든 것이라 소리가 아주 요란합니다. 그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방언이나 예언을 하게 되면 우월감을 가졌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교만했고, 편을 갈랐으며 파벌을 조성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는 언제나 갈등과 불화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만 요란하고 실천이 없으며, 방언만 강조하여 우월감에 빠져 있는 그들에게 바울은 "하늘에 말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 소리는 한낱 구리로 만든 꽹과리 소리에 불과하다"고 일침을 놓았습니다.
  원래 말이란 오래 남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현들의 말은 교훈이 되어 글로 오래도록 남아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말속에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울리는 꽹과리는 한번 울리면 곧바로 사라져 버립니다.

  ▶중세기에 십자군 전쟁이 한창일 때, 젊은이들이 전쟁에 나가는 것을 기피했습니다. 그때 웅변가 '베르나르'가 아테네 광장 연단에 서서 수천 군중이 모인 자리에서 십자군 전쟁의 당위성을 웅변했습니다. 그 연설을 듣고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자원하게 되었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부러운 말솜씨입니까? 히틀러도 웅변가였다고 합니다. 그가 베를린 광장에서 "유대인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내용으로 연설을 했습니다. 그 히틀러의 연설을 듣고 수많은 나치의 전사들이 혈안이 되어 유대인들을 학살했는데, 이때 천만 인구 중에서 600만을 무자비하게 죽였습니다.
  사람을 죽이는데도 사람의 말이 이렇게 위력을 발휘합니다. 이렇게 유창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참 부러운 일입니다. 사람들 앞에 서서 한번 연설함으로써 청중들의 마음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그러나 성경은 아무리 말을 유창하게 한다고 해도 그 말속에 진실(생명)이 없고,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도자 무디는 말이 어눌했다고 합니다. 한번은 집회를 마치고 내려오는데 문학 교수 한 분이 쫓아와 "목사님의 설교는 참으로 은혜로 왔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문법적으로 틀린 곳이 50군데나 되더군요!" 이 말에 무디는 "나는 어법이 틀린 말로 수천 군중을 회개시켰는데 선생은 그 정확한 문법으로 몇 사람이나 구원시켰습니까?"
  말에는 진실성이 있어야 하고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②2절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모든 인류는 미래에 대하여 불안감과 초조함을 가지고 내일을 바르게, 정확히 알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종교는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예언에 관한 나름대로의 이론을 정립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회과학에서도 미래학은 대단한 인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은 한마디로 예언입니다. 예언에는 '깨우치는 것과, 바르게 살라'는 경고도 들어있습니다.
  여기 2절에 예언하는 능력은 설교를 잘하는 주의 종들을 가르치는 것이고, 비밀을 아는 지식도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잘 가르치는 은사를 말함이요, 산을 옮길 만한 그런 믿음이 있다 할지라도 그 속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사랑의 은사는 귀한 것입니다. 여기서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은 쓰레기와 같이 무가치한 것을 말합니다. 아주 심한 표현입니다.

  ③3절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무슨 말인가? 한 마디로 전 재산을 털어 구제한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무익하다는 말입니다. ▶구제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끔 메스컴을 보면 전 재산을 털어 대학에 기부하고 자선 단체에 헌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하나의 사건이요 기적 같은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 기적 같은 일 조차도 사랑이 없으면 자선 사업 차원을 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구제할 때, 반드시 나팔을 불어 사람들을 모아 놓고 구제헌금을 전달했습니다. 왜? 생색을 내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항상 예수님께 책망을 들었습니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구제는 사랑의 마음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어떤 성도가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가다가 걸인을 만났습니다. 이 걸인이 도와달라고 손을 벌렸으나 주머니를 뒤져보니 한 푼도 없었습니다.  참 난처했습니다. 그래서 걸인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마침 가진 돈이 없습니다. 대신 따뜻한 마음으로 당신의 손을 녹여드리겠습니다." 하며 걸인의 손을 꼭 잡아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걸인이 눈물을 흘리며 "지금까지 받은 것 중에 가장 좋은 선물을 주셨습니다."하며 감격했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위력입니다.

  ④3절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헌신도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부모를 섬기고, 남편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고, 하는 일이 사랑에 마음에서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이 헌신은 사랑이 앞서야만 가장 값비싼 헌신입니다.
  계20장을 보면 '순교자는 하나님나라에 별'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순교자는 마침내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하리라'고 합니다. 왜? 그 죽음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고 사랑이며 신앙 때문에 당한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의 교부 '폴리캅'은 불구덩이 속에서 순교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도 불구덩이 속에 던져졌습니다. 이 수난은 모두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과 신앙 때문에 당한 수난이기에 빛난 것입니다.
  한때 대학생들이 분신하여 죽는 일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타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죽음 속에는 사랑보다는 증오와 미움과 권력 타도가 들어 있기 때문에 안타까운 죽음입니다. 우리의 모든 헌신은 사랑의 마음에서 해야 합니다.  '페스탈로찌'는 '사랑은 세상을 한데 묶는 줄'이라고 말했습니다. /할/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서 '사랑의 가치'를 요약하면, '방언, 천사의 말, 예언, 산을 옮길만한 믿음, 구제, 심지어는 자기 목을 내놓는 것' 등 이러한 것들은 정말 너무나 귀한 은사들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러나 이것들이 사랑이 동기가 되어 사랑으로 행해지지 않으면 다 무가치한 것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이 없는 은사 이것은 분명히 교회를 허는 무서운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 때문에 교회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고린도 교회가 그런 교회였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부르심을 받고 주님의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그가 예수의 사랑을 경험하자마자 그는 즉시 이웃에 대한 사랑의 빚을 기억했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내어놓았습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이 너무 많아 사람들에게 불의한 세리라는 손가락질을 당했던 그가 이웃을 위하여 자기 재산 반을 내어놓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삭개오에게 불의한 세리였다고 그의 죄를 고발했습니까? 토색한 것들에 대하여 다그쳤습니까? 예수님은 그의 허물, 그의 죄악을 끝내 고발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것이 삭개오의 그 완악한 마음을 녹아 내리게 했습니다.
  자기 자신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죄악들을 끝내 말씀하시지 않고 무한한 사랑으로 덮어 주시는 주님의 품안에서 삭개오는 아가페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체험하고 난 후에 그는 가난한 사람에 대한 책임과 자기가 토색한 것에 대한 책임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요일4:10-11절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이같이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할/

2. 사랑의 요소는 무엇입니까?

  ①사랑은 관심입니다.
  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꽃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집니다. 꽃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벌레를 잡아 주고, 소독을 해주고, 풀을 뽑아 줍니다. 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꽃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사랑과 관심은 정비례합니다. 사랑이 깊으면 깊을수록 관심이 크고, 사랑이 적으면 적을수록 관심이 적습니다. 아들을 사랑하면 아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집니다. 내가 누구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사실은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무관심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내 가정에 얼마나 관심이 있습니까? 내 교회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입니까? 내 나라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을 기울입니까?

  ②사랑은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책임이란 말을 영어로 '대답한다' 또는 '응답한다'는 뜻입니다. 책임을 느낀다는 것은 상대방이 나를 부를 때 내가 대답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몸이 아파서 엄마를 찾으면 어머니는 곧 대답합니다. 그리고 의사에게 가든지 약국에 가서 약을 사옵니다. ▶책임은 부르는 데 대한 대답입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해서 우리를 부를 때 우리는 당장 달려가서 나라를 위하여 싸우고 나라를 지키는 역군이 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의 대상에 대해서 깊은 책임을 느끼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녀의 건강에 대한 책임, 생활에 대한 책임, 교육에 대한 책임, 결혼에 대한 책임, 미래에 대한 책임을 느낍니다. 사랑과 책임은 비례합니다. 얼마나 책임감을 느끼는 지를 보면 얼마나 사랑하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면 무책임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지 않은 것 중의 하나가 무책임, 책임 회피, 책임 전가 입니다.

  ③사랑은 존경입니다.
  사랑은 남을 지배하거나 억압하거나 착취하지 않습니다.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의 자유를 존중하고 아내의 인격과 생각과 개성을 존중합니다.
  얼마나 상대방을 존중하느냐 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은 자기 중심이 아니라 상대방 중심입니다. 사랑하면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고, 그 인격을 존경합니다.
  사랑은 이기주의가 아니고 이타주의입니다. 사랑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고 상대방을 위한 것입니다.

  ④사랑은 이해입니다.
  사랑하면 할수록 이해하는 마음이 깊어집니다.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집니다. 사랑은 이해를 심화시키고, 이해는 사랑을 심화시킵니다.
  사랑이 없을 때 이해심이 부족하고, 이해심이 적으면 사랑도 부족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아야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보아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사랑의 별명은 이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면 상대방의 고민, 불만, 고독, 슬픔을 깊이 이해합니다.
  상대방의 눈동자, 몸짓 하나, 얼굴의 표정, 말의 억양만 들어도 상대방의 심중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⑤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상대방에게 아낌없이 줍니다. 사랑하지 않을 때는 아까워서 줄 수가 없습니다. 무엇을 얼마나 주는가를 보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적게 사랑하면 조금 주고, 깊이 사랑하면 많이 줍니다. 사랑하는 것과 주는 것은 정비례합니다. 많이 주면 많이 사랑하는 것이요, 적게 주면 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할 때는 주는 것이 아깝지 않습니다. 사랑하지 않을 때는 주는 것이 아깝기만 합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돈을 주고, 정성을 주고, 모든 것을 아낌없이 줍니다. 사랑하면 주는 것이 기쁨이요, 보람이요, 축복이요, 만족입니다. 주고 나서 아깝지 않은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3. 사랑의 본질 15가지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4-7절을 보면 사랑의 본질이 15가지가 나옵니다. 사람들은 사랑에 대하여 오해를 할 때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무지개 빛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사랑은 모두 즐겁고 포근하며 달콤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편지는 구구절절 핑크빛이 뚝뚝 떨어지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랑에는 상당한 아픔과 고통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눈물과 희생이 요구됩니다. 이것을 모른 채 사랑하다가는 실패하기 쉽습니다.

  ①사랑은 '오래 참고'입니다.
  원어에 보면 '조급해 하지 않고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오래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활을 하다보면 인간관계에서 많은 문제들이 야기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갈등하고 불화와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자칫하면 다투기 쉽고, 불화하기 쉽습니다. 이럴 때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오래 참는 것입니다. 때때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이때 내가 얼마든지 보복할 수 있는 데도 보복하지 않고 참는 것은 적극적인 의미에서 오래 참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힘이 없어서 참는 것은 오래 참는 것이 아닙니다. 힘이 없는 사람은 참지 않으면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문제는 얼마든지 보복할 수 있고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제하고 참은 것, 그것이 적극적인 의미에서 오래 참는 것입니다. 오래 참습니까?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의 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골3:12절 "너희는 오래 참음의 옷을 입으라!"
  ▶왜 고린도 교회가 다툼이 있었습니까? 서로가 서로를 향해서 참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속상한 일을 당했습니다.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래도 꾹 참으면 무슨 문제가 생기겠습니까? 참지를 못하고 앙갚음하려고 하고, 복수하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사랑은 오래 참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오래 참음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벧후3:9절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②사랑은 '온유하며'입니다.
   온유는 앞서 말씀드린 오래 참음보다도 더 적극적인 것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래 참음입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선으로 악을 갚아버리고 이겨버리는 것이 바로 온유입니다.
  누가 우리의 오른편 뺨을 때렸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오래 참음입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조용히 왼편 뺨을 돌려대면 그것이 바로 온유입니다. 그러니까 온유는 오래 참음보다 더 세련 된 정신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다스려 놓아야 합니다. 온유는 잘 길들여진 마음입니다. 이렇게 되지 않고는 흉내도 낼 수 없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는 온유함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파당을 만들었습니다. 서로 배타적이었고, 이기적이었습니다. 텃새가 심했습니다. 이러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바울은 사랑은 온유한 것이라고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온유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마11:28-29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③사랑은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입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질투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먼저 사랑이 가야할 길을 말씀해 주었습니다. 오래 참음의 길입니다. 온유의 길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가서는 안 되는 길이 있습니다. 투기의 길입니다. 질투의 길입니다. 사랑이 그 길로 가게 되면 걸려서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두 형제가 각기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형의 제사는 열납지 아니하시고, 동생의 제사만 열납하셨습니다. 형은 동생에 대해서 시기했습니다. 결국은 동생을 돌로 쳐죽이고 말았습니다. 그가 누구였습니까? 가인입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도 결국은 시기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아버지가 동생만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동생에게만 채색 옷을 지어서 입혔기 때문입니다. 결국 형들은 동생을 시기했습니다.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 동생을 애굽에 종으로 팔아먹었습니다. 그가 누구였습니까? 요셉의 형들이었습니다. 시기심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④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자랑은 잘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입히게 되고, 투기를 일으키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힘든 일을 해 놓고 공치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그 공치사로 인해 자신의 공로가 없어지고 맙니다. 자랑도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⑤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자랑이 외적인 것이라면 교만은 내적인 것입니다. 자랑이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면 교만은 마음 자세입니다. 잠16:18절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⑥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
  무례는 '아름다움이 깨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이를테면 그릇에 금이 간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이 무례입니다. 밥그릇에 금이 가 있으면 밥맛이 없어지고 보기에도 흉합니다. 그 그릇은 값이 떨어집니다. 이미 아름다움이 살아졌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무례입니다.
  사람도 무례한 사람이 있습니다. 말을 함부로 합니다. 예의가 없습니다. 행동을 함부로 합니다. 이런 사람은 아름다움이 없고 값이 떨어진 사람입니다. 왜? 인격에 금이 갔고 깨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말과 행동에 최고의 예절을 갖는 것입니다. 남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은 무례히 행하는 것입니다.

  ⑦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합니다.
  이 시대에 특징 중에 하나가 지극히 이기적이라는 것입니다. 모두 자기 본의로, 자기 위주로 살아갑니다. 남이야 어쨌든 나만 배부르고 나만 편하고 나만 출세하면 된다는 의식입니다. 자기 유익을 구하는 처사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에게는 반드시 청지기의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나누게 되고, 베풀게 되고'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치 않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주고 베풉니다.
  '빅토르 위고'가 쓴 '나인 더 쓰리'라는 작품 중에서 프랑스 혁명이 한창일 무렵 군인들이 숲을 지나가는데 허기진 어머니와 세 아이가 앉아 있었습니다. 군인들이 빵 한 개를 던져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빵을 받자 맞자 세 등분하여 세 아이에게 나누어줍니다. 이 모습을 본 한 병사가 말하기를 "저 여자는 배가 고프지 않은가?"
  그때 상사가 말합니다. "야, 이 바보야! 바로 그게 어머니야" ▶어머니는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습니다.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이 있기 때문에 어머니는 자기를 극복합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사랑은 하늘 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고 노래합니다.

  ⑧사랑은 성내지 아니합니다.
  현대인들이 가장 심하게 늘어난 것이 혈기와 분내는 일이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요즘 세상이 복잡하고 경쟁 사회에서 살다보니 자연 혈기가 나고 분이 폭발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절대로 성내지 말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의 영은 분내고 성낸 사람과는 함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은 원수들에게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성내지 않고 오히려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⑨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합니다.
  여러분! 악한 마음을 품으면 악한 행동이 유발됩니다. 모든 것은 생각에서 이루어집니다. 모든 범죄도 생각에서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악한 마음을 다 내어버리고 미워하는 마음 시기, 질투, 분내는 마음까지도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마음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기적은 일어납니다. /할/

  ⑩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합니다.
  절대로 부정한 짓을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불의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가 불의를 행할 때 그들을 징계합니다. 불의의 결과가 너무나도 나쁘게 나타나는 것을 부모는 잘 알기 때문입니다. 불의는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하지 아니할 때 그 결과가 매우 위험하게 나타납니다. 고통을 수반하게 됩니다.

  ⑪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소극적으로는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적극적으로는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진리는 '진실, 참, 정직'을 말합니다. 가장 힘있고 능력 있는 자는 진실 되고 정직한 자입니다. 모범을 보이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⑫사랑은 모든 것을 참습니다.
  여기 참음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기까지 참아 가는 면을 말합니다. 신앙은 인내입니다.

  ⑬사랑은 모든 것을 믿습니다.
  진실된 사랑은 믿음에 관계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믿고, 아내가 남편을 믿을 때, 그 믿음의 사랑이 싹트게 됩니다.

  ⑭사랑은 모든 것을 바라봅니다.
  여기 '바란다'는 것은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기대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기대하고, 아내가 남편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 기대에 어긋나면 사랑에 금이 갑니다.
  또 여기 바란다는 것은 사랑하는 자의 앞길을 기대하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실 믿음의 정의가 바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히11:1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⑮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어떤 한 고난과 비난이 있을지라도 넉넉히 참고 견디어 냅니다. 손해를 보고 불이익을 당해도 견디어 냅니다. 우리의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고난도 견디어 내셨습니다. 여러분 어렵습니까? 견디십시오, 끝까지 견디십시오.

4. 사랑의 영원성!(8/13)

  ①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않습니다.
  바울은 사랑의 특성을 마무리하면서 사랑은 영원하다는 것과 사랑은 완전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즉 주님의 십자가 사랑입니다.
  요10:28-29절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롬8:37-39절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할/

  ②'예언과 지식'은 폐하리라고 했습니다.
  은사는 사랑처럼 영원하지 못합니다. 일시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일시적인 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말고 영원한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③방언은 그친다고 했습니다.
   예언과 지식은 "폐한다"는 말을 썼고 방언은 "그친다"는 동사를 사용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면 천국 방언이 있는 줄 믿습니다.

  ④결론적인 말씀입니다.  13절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항상 있을 믿음으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반석 같은 믿음은 '항상 있는 믿음'입니다.
  ▶우리의 소망도 영원합니다. 저 천국은 영원한 곳입니다.
  ▶결론입니다.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사랑은 영원하고 완전합니다.
                                            


출처/송수천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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